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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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첫 번째 독후감은 책이 아니라 잡지에 대한 것입니다. 다산북스가 지난 가을 창간한 계간잡지 <에픽>입니다. 제가 읽은 잡지는 <에픽 #2>입니다. 그러니까 2021년 신년호인 셈입니다.


잡지를 읽고서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에픽 #1>, 즉 창간호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에픽>은 픽션과 넌픽션을 아우르는 신개념 서사 중심의 문학잡지라는 설명입니다. 1. 서사시, 2. 웅대한, 3. 영웅적인, 등을 의미하는 영어 ‘epic’의 모음에 ‘i’를 추가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란, 서사란, 하나의 내[i]가 다른 나[i]와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겨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설명을 읽으면서 강남구에서 내세운 ‘ME() ME() WE(우리)’라는 홍보문구가 생각납니다. 각각의 단어는 문제가 없지만, 신박하다고 생각했을 해석이 문법적으로 오류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간지 <에픽>에서 내세운 ‘epiic’이란 단어를 구글에 넣어보면 다양한 의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창조적인 일이나 지도자교육 등과 관련된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였습니다. 아일랜드 환경청의 EPIIC‘Environmental Policy Integration-Innovation and Change’의 머릿글자 모음이고, 터프트 대학의 글로벌 리더십 연구소에서는 ‘Education for Public Inquiry and International Citizenship’의 머릿글자 모음입니다. 그런가하면 미국 보스턴에서는 epiic solution이라는 고등학교 학생들의 여름방학 과정이 있습니다. 사고방식과 방법 그리고 사회연결망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혁신과 창업에 관한 생각을 만들어내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계간지 <에픽>은 기존의 문학잡지와는 차별화된 창조적인 무엇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느낌이라서 두루 사용되고 있는 영어 단어 epiic의 의미와 부합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잡지는 세부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creative non-fiction’은 창조적인 비소설 부문입니다. 2‘virtual essay’는 소설과 비소설이 만나는 부문입니다. 3fiction은 소설부문입니다.


<에픽 #2>창조적 신세계를 내세웠습니다. 각 부분에는 주제에 걸맞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1부에서는 구술생애사라는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고 계신 최현숙 작가가 취재한 여성 노숙인의 삶, 밀리터리 덕후가 된 소설가의 이야기, 응급실 노동자들의 속마음을 취재하여 정리한 내용입니다. 흔히 읽어볼 수 없는 글이란 생각입니다. 2부에서는 독특한 독후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두 권의 책을 선정하여 서로 비교해서 쓴 독후감입니다. <출발 비디오 여행>이라는 TV방송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 두 편의 영화를 비교하는 방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로운 형식의 독후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부에서는 5편의 단편소설을 실었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없지 않았습니다. 굳이 외래어를 써야했을까 싶은 대목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는 점입니다. 최근 저는 외국어에 강박증이다 싶을 정도로 과민한 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하는 책에서는 외래어를 최대한 우리말로 옮겨보았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도 책을 읽는 분들이 우리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외국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에는 의미가 바로 와 닿지 않더라고 반복해서 읽다보면 그 뜻을 찾아보시고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잡지는 한권 분량의 책입니다만,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얻는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구나 실험정신이 가득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글줄깨나 쓴다는 분들로서는 호기심이 일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1부의 비소설부문과 3부의 소설부문에는 등단여부와 관련 없이 원고를 모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일정한 수준을 맞춰야 발표가 가능하겠지요? <에픽>의 정신에 맞는 창조적인 양식과 내용의 글을 써 응모해보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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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백수린 옮김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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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이 새로 번역되어 나왔다고 해서 읽었습니다. 나이 때문인지 <연인>을 읽고 뭘까?’하는 느낌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독후감 제목에도 일탈이라는 단어를 넣었던 것 같습니다.


<여름비>는 더 난해했던 것 같습니다. “, 아버지는 그것을 교외선 기차에서 주워오곤 했다.”라고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책이 꼬투리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파리 13구의 남동쪽 센 강의 서안에 위치한 비트리에 사는 소년 에르네스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러시아에서 이주해온 부모 사이에 태어난 일곱 자녀의 막내아들이고 잔이라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성장소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의외로 에르네스토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왜냐구요? “학교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걸 가르쳐주니까요.”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에르네스토는 독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읽을 줄만 안다면 많은 책을 읽어서 비교하고 그러는 가운데 진리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자녀가 의무교육을 받지 않으면 부모와 아이까지 감옥에 가는 모양입니다.


어떻든 에르네스토는 학교에 가지 않고서도 독일철학까지 독파하게 됩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방식을 들어보면 여러 학교의 입구까지 가서 교실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학교에서 신의 부재를 배웠다고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수년에 걸쳐 공부할 것을 한번에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일관성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것 같습니다.


<연인>에서도 그랬습니다만, <여름비>에서도 에르네스토와 여동생 잔 사이의 관계를 비롯하여 시베리아의 야간열차에서 만난 남녀 사이에 생기는 관계 등이 꼬집어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일이라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옮긴이는 초기 작품을 제외하면 뒤라스의 작품들은 대체로 심리묘사를 배제한 채, 암시와 반복, 맥락 없는 대화들로 모호하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여름비>에서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간에 희곡 작품처럼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성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흐름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도록 합니다.


아마도 제목과 관련한 묘사일 것 같습니다. “비트리에 첫 여름비가 내린 것은 바로 그날 저녁, 어머니가 눈물을 머금은 라 네바를 오래도록 부르는 동안이었다. 비는 시내 전역에, 강과 파괴된 고속도로에, 나무, 오솔길, 아이들이 지나던 비탈길에, 세상의 끝까지 떠돌아다닐 창고 옆의 서글픈 의자들 위에도 오열하는 파도처럼 세차게, 격정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비가 왜 내려야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씻어내기 위하여 쏟아졌던 노아의 홍수를 연상시키는 대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무리 역시 에르네스토와 잔, 그리고 교사가 비트리를 떠나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부모는 비트리를 지키다가 자신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둔 이유도 모호합니다. 옮긴이의 말씀대로 정말 이상한 소설입니다.


그리고 의사로서의 제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대목도 눈에 띄었습니다. 에르네스토의 여동생 잔은 어렸을 때 불에 너무 매료되었다는 이유로 시립 진료소에서 혈액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혈액 속에서 잔이 방화범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혈액검사를 통하여 방화범의 기질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유전자검사를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방화범 유전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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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의 연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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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마지막 작품 <노르망디의 연>을 고른 것은 긴 꼬리를 매단 연이 노란 하늘에 떠있는 표지 그림이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습니다. 물론 지난해 다녀온 노르망디에 대한 추억 한 자락도 깔려있지 싶습니다.


이야기는 클레리(Clary)라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노르망디에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벨기에에 가까운 아주 작은 마을로 보입니다. 이야기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부모를 여의고 연을 만드는 장인 앙브루아즈 플뢰리와 함께 사는 뤼도비크의 성장소설처럼 시작합니다. 뤼도는 비상한 기억력과 뛰어난 암산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선생님들의 걱정거리가 됩니다.


열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뤼도는 숲에서 금발의 소녀 릴리를 만나게 됩니다. 폴란드 귀족가문의 딸입니다. 두 사람을 엮은 인연의 고리가 단단했던가 봅니다. 4년의 기다림 끝에 재회하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되고, 폴란드에 있는 릴리의 집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브뤼노, 한스 등과 함께 릴리를 둘러싸고 경쟁하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뤼도가 사는 클레리 마을에도 독일군이 진주해옵니다. 독일군에 협력하는 프랑스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드러나지 않게 독일군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도 적지 않았던가 봅니다. 뤼도 역시 기억력과 암산의 재능을 바탕으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하는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세평으로 독일군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삼촌 앙부루아즈 플뢰리와 가까운 요리사 마르슬랭 뒤프라는 자신이 식당 클로 졸리를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클로 졸리는 금세 독일군 고위층이 모이는 장소가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뒤프라가 독일에 부역을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뒤프라의 목표는 프랑스 요리의 영속성을 지키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뤼도가 파리에 잠시 머물 때 만났던 쥘리 에스피노자부인은 신분을 세탁하고 독일군 고위층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기밀을 빼내 뤼도에게 전합니다. 그 정보는 런던으로 보내지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 좌절과 피로가 극에 달하는 순간마다 뤼도는 폴란드에서 헤어진 릴리를 소환하곤 합니다. 꿈속에서 뤼도가 릴리에게 건네는 모르겠어. ‘희망으로 산다라는 오래된 표현이 있잖아. 그런데 난 희망이 우리로 인해 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233)”라는 말은 독일군에 저항하던 프랑스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릴리가 한스와 폰 틸러 장군과 함께 클레리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릴리의 가족이 폴란드를 탈출해서 프랑스에 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릴리는 뤼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선 살아남아야 했고, 내 가족을 구해야 했어..... 이해하지, 뤼도?300)” 뤼도는 릴리를 이해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 릴리의 머리카락을 잘라냅니다. 전후 독일에 부역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노르망디의 연>을 읽다보면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독일군에 저항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독일군에 부역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기밀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경우도 있었던가 봅니다. 실제로 독일군 내부에서도 광기의 전쟁을 멈추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전후 프랑스에서는 부역자 처단의 광풍이 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던 것은 부역의 진실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역자 처단에 앞장 선 사람들이 오히려 부역자일수도 있었지 않았을까요?


로맹 가리는 이야기를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라고 끝을 맺습니다. 로맹 가리는 이 작품을 발표하고 얼마 뒤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남긴 글에서 자신의 죽는 이유를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에서 찾으라 했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431) 그러니까 <노르망디의 연>은 로맹 가리가 스스로를 완성한 작품인 것입니다. ‘노르망디의 연은 독일군에 점령된 프랑스 사람들이 띄운 희망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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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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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https://blog.naver.com/neuro412/222045590302>로 만났던 스위스 사회학자이자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인 장 지글러 교수의 신간 <인간 섬>을 읽었습니다. 중동,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난민들을 유럽사회가 어떻게 대하는가를 고발하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연전에 스페인-모로코-포르투갈을 여행할 때 역시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목숨 건 이주행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https://blog.naver.com/neuro412/221396359004). 그리고 이듬해에는 터키를 여행할 때, 이즈미르에서 묵은 적이 있습니다. 차창 밖으로 지나는 초라한 몰골을 한 사람들이 바로 시리아 등지에서 몰려온 난민들이라고 했습니다(https://blog.naver.com/neuro412/221409725465. 그 무렵 이즈미르 해안가에서 발견된 소년의 주검은 유럽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에 난민을 할당하는 조처를 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뒤인 20154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그리스와 협약을 맺고 에게해에 흩어져 있는 섬들 가운데 터키 연안에 있는 5개의 섬(레스보스, 코스, 레로스, 사모스, 키오스)를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분쟁지역(hot spot)으로 지정하였습니다. 공식명칭은 ‘1차 접수 시설입니다.


이야기는 그리스에 속하는 섬, 레스보스에서 시작합니다. 그리스의 섬이라고는 하지만, 그리스 본토에서는 멀리 떨어져, 터키의 코앞에 있는 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즈미르에서 멀지 않은 섬입니다. 터키는 아직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는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이기 때문에 일단 그리스에 들어가면 다른 유럽연합국가로 이주할 수가 있습니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가장 짧은 경로이기 때문에 난민들이 도전하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북쪽에서는 주로 지중해를 건너는 경로를 찾는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이면 그리스의 무장경찰들이 해안을 순찰하고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있는 난민들을 색출하여 모리스에 있는 수용소로 데려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용소는 험한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 몸을 쉴만한 장소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터키와 레스보스 섬 사이의 바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와 프론텍스 소속의 함정이 순회하고 있습니다. 이들 함정은 터키에서 레스보스로 향하는 이주민들이 탄 보트를 안전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트가 레스보스로 향하지 못하게 밀어내는 (pushback) 작전을 펼치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보트가 전복되어 배에 탄 이주민들이 익사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구조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동아일보의 이샘물 기자가 쓴 <이주행렬; https://blog.naver.com/neuro412/221941923175>에서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실상을 조금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주민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세상에 태어나 사는 장소에서 한발 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모두 이주민이 되는 셈입니다. 생각해보니 저 역시 이주민이었던 적이 있더라구요.


저자는 유엔이 정한 난민보호와 관련한 협약을 소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의 유입을 차단하려는 유럽 국가들의 행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난민들이 이주를 희망하는 나라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주에 들어온 예멘의 난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군들 고향을 등지고 싶겠습니까? 생명이 위협받는 끔찍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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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자
재스퍼 드윗 지음, 서은원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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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이야기들은 괴기스럽거나 음모와 폭력이 배경에 깔려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보면 정신질환에 대한 서구사회의 인식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정신병원이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격리시키기 위한 시설로 만들어졌던 것이라서 외진 곳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정할 때 정신의학과의 경우는 환자를 치료하다보면 의사가 환자가 될 것 같다는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정신의학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져서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 개인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을 둘러싼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국 코네티컷 주에 있는 어느 주립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그 환자>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의사들이 참여하는 MDConfessions.com이라는 웹포럼에 게재된 나는 어쩌다 의학을 포기할 뻔했는가라는 제목으로 올려놓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실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서문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내가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이 미쳐버린 건지 현재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아 이 글을 쓴다.” 마치 실화인 것 같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하다는 생각이 들수록 기괴합니다.


이야기는 명망 있는 의대를 졸업하고 혹독한 전공의수련을 마친 우수한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잘 알려지지도 않고, 재정도 열악한 주립 정신병원에서서 일을 시작합니다. 약혼녀의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 하나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정신의학을 전공하게 된 배경에는 망상형 조현병을 앓던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후 정신의학계의 추악한 면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으로 본다면 필자가 과연 정신의학을 전공한 것 맞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정신질환자는 병원에 입원시키지, 수용한다고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조기에 외래진료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도심에 정신의학과 의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가족과의 유대를 긴밀하게 하는 것이 치료효과를 좋게 할 것이므로, 정신병원의 접근성도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환자>의 무대가 되는 정신병원은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모양입니다. “도로를 벗어나 복잡하고 음산한 샛길 중 첫 번째 길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나마 미리 지도를 출력해오지 않았더라면, 구불구불 산길을 헤매며 병원이 위치한 구릉지대를 찾는데 몇 시간은 허비했을 것이다.(19)”


세상과 격리된 정신병원 안에서도 근무자들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병실에 격리된 환자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진료기록부마저 없어서 의료진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그 환자의 존재를 알고 있는 환자였습니다. ‘의료진을 미치거나 자살하게 만든 접근 금지 환자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만큼, 이 환자는 위험한 존재 맞을까요? 여섯 살에 처음 입원하여 30년 동안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환자는 진단불명이었습니다. 진단을 정하지 못하면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환자가 보이는 증상을 중심으로 대증요법을 해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병원은 환자의 병명을 결정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통하여 완치시킬 의지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제로 달려있는 의료진을 미치거나 자살하게 만든 환자의 비밀은 환자와 접촉한 의료인에 관한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을 알고 있으며, 그 비밀을 이용하여 의료인을 조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초현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사실은 이야기의 끝부분에 등장하는데, 환자의 존재 자체가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과연 그 환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야기를 모두 읽은 느낌은 동그랑 땡이었습니다.


모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가 미상이라고는 합니다만, 이 이야기가 20세기 폭스사에서 영화로 만들기로 확정되었고, 20개 국가에서 출판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계약의 주체가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가가 신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보는 점입니다. 결국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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