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 깐깐한 의사 제이콥의 슬기로운 의학윤리 상담소
제이콥 M. 애펠 지음, 김정아 옮김, 김준혁 감수 / 한빛비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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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고도 이형성을 동반한 선종으로 진단된 위점막 생검의 병리진단이 상피내암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하는데, 병리표본을 다시 검토하여 진단을 변경할 수 있는가 하는 환자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전임 과장이 내린 고도 이형성을 동반한 선종의 병리진단은 제가 다시 보아도 타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병리진단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을 드렸습니다. 이와 같은 요구는 실손보험에서 보상을 받으려면 최소한 상피내암이라는 병리진단이 붙어야 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 환자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자신의 병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궁금한 것도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례 이전에는 전립선 생검을 통하여 선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분이 자신의 병리소견을 보여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제 사무실에는 현미경에 올려놓은 병리슬라이드의 내용을 컴퓨터에 연결하여 화면에 띄울 수 있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립선의 선암이라는 병리진단을 내리게 된 이유, 즉 병리소견을 환자분이 이해하실 수 있도록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제가 병리공부를 시작하고 41년이 되어가는 동안 처음 있었던 일입니다.


이처럼 의학과 의료에 대한 환자들의 앎이 많아지고, 요구도 다양해지면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 역시 의료윤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관련법이나 규정에 정해진 것들은 정해진 바에 따르면 되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마운트사이나이 의과대학에서 생명윤리를 가르치는 제이콥 M. 애펠박사는 의료현장에서 흔히 마주치거나 발생할 수도 있는 79가지 상황을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에 정리해냈습니다. 특히 저자는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의 자격을 딴 의학박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의학적인 면과 법률적인 면을 같이 연계하여 생각할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관련법이나 규정이 정하고 있는 상황은 명쾌하게 답을 내놓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어떤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79가지의 상황들은 1. 현장의 의사들이 고민하는 문제들, 2. 개인과 공공 사이의 문제들, 3.현대의학이 마주한 문제들, 4. 수술과 관련한 문제들, 5. 임신출산에 얽힌 문제들, 6. 죽음을 둘러썬 문제들, 6가지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남자친구가 결혼과 출산에 소극적인이라는 이유로 백인의 정자를 구하여 인고임신을 한 방송인의 사례에 관한 글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사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최근에 국회에서 입법추진하고 있는 금고이상의 형이 확정된 의사들의 면허를 일정기간 정지시키겠다는 의료법 개정과 관련된 상황에 참고할만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입법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진료를 하도록 하는 것이 옳으냐는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국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금고이상의 형이라는 포괄적인 법조항대로라면 불합리한 정책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다가 입건되어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도 포함되기 때문에 의료인들을 정부의 수족으로 묶어두겠다는 속셈이 담겨있으니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한명의 의사가 만들어지기까지 십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고, 자원도 투입돼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들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인적자원입니다. 그런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보다는 나쁜 사람이라는 굴레를 씌워서 용도폐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는 의료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의료인들이 읽어서 평소 진료를 함에 있어서 윤리적이면서도 환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반인들 역시 읽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의료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배우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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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지식 - 역사의 이정표가 된 진실의 개척자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승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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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던가 옷장에 걸려있던 넥타이를 몽땅 버린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신혼 때 매던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넥타이의 유행은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면서 돌고 돌더라는 이유로 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닌 듯합니다. 최근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언젠가 사라졌던 적폐가 슬며시 돌아와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적폐를 몰아내겠다는 분들이 새로운 적폐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듯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집살이 모질게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되면 새 며느리에게 더하더라는 우리네 옛말도 있습니다.


금지하다라는 부정적인 단어는 소수의 특정 집단만이 앎을 공유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도록 한다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바로 금지하는 것이 많아지고 있는 듯하여 시간의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듯하다는 말씀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과학사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쓴 <금지된 지식>은 앎을 금지하던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았습니다. 논어학이편은 학이시습지 불열호(學而時習之 不易說乎)로 시작합니다. ‘배우고 그것을 때로 익히니 기쁘지 않겠는가라고 새깁니다. 사람이라면 새로운 것을 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앎을 금지한다는 것은 앎을 독점하려는 욕망에서 비롯한 것일 터이니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기독교에서는 앎을 금지한 첫 번째 주체가 바로 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금단의 사과를 먹지 말라는 영을 아담과 이브에게 내렸던 것입니다. 먹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으니 금단의 사과에 대한 앎을 독점한 셈입니다. 신의 이런 독특한 점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특히 교리에 어긋나는 사실 혹은 앎은 철저하게 감추려 노력했습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금단의 영역을 개방한 삼인방으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찰스 다윈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들었습니다. 지식사의 큰 흐름에서 격랑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나 다윈은 분명 꼽을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프로이트가 그 두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인가에 대하여는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 듯합니다. 다만 젝 관심을 두고 있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해석에서 도움이 될만한 관점을 챙기는 정도에 만족하려 합니다.


저자는 지식이 주는 기쁨에 대하여 논어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알아가는 것의 즐거움을 언급합니다. 신으로부터 지식을 금하는 법을 배웠던 인간들이 개화되어가면서 앎을 나누는 범위가 확대되어오다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시 앎을 봉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을 깨우칩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의 흐름은 낙원에서 금지된 것, 우리에게 지식이란 무엇인가, 비밀을 다루는 법, 성스러운 것을 엿본 죄, 인간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하라, 과감하게 봉인을 떼다, 지식사회이 사생활과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이어 설명합니다. 종교계에서 금지해야만 했던 앎은 무엇이었고, 왜 그랬는지를 다양한 시각에서 설명합니다.


특히 과학이 발전해옴에 따라서 사람들의 앎의 폭은 빠르게 넓어졌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알리고 싶지 않은 대목들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 국가적인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인간이 신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일까요?


저자는 과학과 신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금지된 지식에 관한 역사적 흐름을 정리해냈습니다. 혹자는 과학의 발전이 무서울 정도의 지경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제동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사물의 원리를 깨우쳐온 과학이 넘어서서는 안되는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적절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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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부터 시간을 다시 쓰는 중입니다 - 인생 후반의 시간을 잘 기획하고 잘 쓰는 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혜윤 옮김 / 유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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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새해 들어 일터를 옮겼습니다. 12년을 일해 온 직장을 그만 두기로 결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앞으로 4년을 더 도와달라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만, 뭔가 달라진 느낌이 결국은 일을 접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그런 결정을 내린 뒤에도 되돌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 여지가 없었다는 것도 섭섭하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앞으로 4년 정도 더 일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불편함이 이어졌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고, 그때는 갈만한 곳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와 같은 결단은 2년 전에 내렸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체력이 지금보다 더 나았을 때 결단을 내렸어야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오래 전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한 지금의 병원은 규모로 보아 업무에 익숙해지는데 유리한 곳이라는 점입니다. 다만 업무의 양은 생각보다 많은 것 같고, 업무를 덜어줄 직원이 있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저지른 작금의 상황은 메이지대학교 문학부의 사이토 다카시 교수가 쓴 <55부터 시간을 다시 쓰는 중입니다>와는 숫자를 제외하면 맥을 같이 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에 들어간 55라는 숫자는 55세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카시 교수는 55세라는 나이에 이르면 삶에 여러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 마지못해서라도 이제 슬슬 전환점이 왔구나하고 자각하게 되는 나이라고 했습니다.


전작인 <성숙력-45세를 이후로 후회 없이 사는 인생 리스타트>의 속편인 셈입니다. 45세를 짚었던 것은 인생을 90년으로 보았을 때 반환점을 도는 시점으로 보았던 것인데, 55세라고 한다면 그 사이에 세상이 바뀌어 인생을 110년으로 본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일본의 직장의 정년은 65세라고 하는데, 55세에 이르면 젊은 세대에게 중요한 업무를 물려주고 뒤로 물러나앉는 시점이라는 것 같습니다.그러니까 10년의 시점을 두고 은퇴를 준비한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10년이라는 기간은 꽤나 길어 보입니다만, 금세 지나가는 세월입니다. 따라서 계획을 잘 세워야 훗날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을 인생의 나머지 절반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방법들을 시간활용법 중심으로 생각해보는 안내서라고 하였습니다. 제 경우는 금년에 67살이 되어가고 있으니 이 책에서 이야기한 35년의 기간 가운데 3분의 1을 보낸 셈입니다. 그리고 보니 이번에 그만 둔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의 나이가 55살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인생의 나머지 절반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옮긴 직장 역시 잊고 있었던 본업에 복귀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습니다.


젊었을 적에는 65살에 은퇴를 하면 전공을 살려 3국에서 봉사하면서 삶을 마무리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까지 여섯 차례의 전직을 통하여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아서 아마도 편안하게 쉬는 기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55가 아닌 어느 숫자에 이르러 여생을 행복하게 보낼 준비를 하는데 이 책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장에서 정리해놓은 55세 이후의 시간활용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3-5장에 이르는 실천편은 구체적으로 여생을 설계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지겨운 일도 무료함보다 괴로울 수는 없다고 한 저자의 말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굳이 밝힐 이유는 없어 보이는 소소한 것들 가운데 저와 생각이 다른 것도 없지는 않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오래 전에 읽은 <갈 곳 없는 남자, 시간이 없는 여자>의 저자가 일본의 남자들은 정년을 하고나면 정말 봐줄 수가 없다는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꼭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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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그릇 -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
이즈미 마사토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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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검색을 하고서야 <부자의 그릇>2015년에 초판으로 소개되었고, 초판을 읽고 독후감을 적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판의 독후감은 공부를 하는 일은 의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돈을 버는 일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시작했었습니다. 벌써 6년 전의 일입니다만, 저는 지금도 공부를 하는 일이 돈을 버는 일보다 쉬운 것 같습니다.


12년 일해온 직장을 떠나 금년 1월부터는 대전 유성에 있는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병원은 제가 40년도 전에 근무했던 군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당시에는 허허벌판에 병원만 달랑 서 있던 것이었는데, 그때 봉급으로 땅을 샀어도 대박이 났을 것입니다. 돈을 버는 일도 각자가 알아서 하는 일일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손금에 나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버는 일에 목숨을 거느니 차라리 예측 가능한 무엇에 몰입을 하는 편이 훨씬 수월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은행이라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주인공 에이스케가 학창시절의 경쟁자 오타니의 꼬임에 넘어가 주먹밥집을 창업하고, 인기몰이를 하면서 점포를 늘려가다가 한순간에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사업이라는 것이 운을 타고 승승장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판을 키울 때와 쉬어갈 때를 잘 알아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꺽여본 사람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창업을 한 것은 아닙니다만,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같은 궤적을 그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제가 경험으로 느낀 것입니다만, 잘 나갈 때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면 몰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경우는 재기가 어렵다는 것이 창업과는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해부터 직장을 옮겨 아주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손을 놓은 티가 너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13시간 이상 일을 해도 처리가 되지 않아 헤매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이런 규모인지를 모르고 덤빈 셈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계속 할 것인지 숨고르기를 할 것인지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받았던 제안이 새삼스럽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만,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는 성과를 거두었던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습니다. 단 돈을 버는 일만큼은 예외일 것 같습니다.


<부자의 그릇>을 읽다보면 돈을 버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금언을 곳곳에 배치해놓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눈에 띈 구절은 이렇습니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돈의 크기가 있다.(41)” 마침 눈에 들어온 이 구절이 제게 의미심장한 것은 제가 새가슴이라서 큰 돈을 써야하는 순간에는 쫄리더라는 경험 때문입니다.


은행원이 주먹밥집을 창업했다가 말아먹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역시 창업이란 간단한 것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세상을 사는 일처럼 진퇴를 잘 알아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만, 잘 나갈 때 쉬는 법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부자의 그릇>의 주인공 에이스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운이 아니라 딸 덕분에 기댈 수 있는 언덕을 만나고, 무너졌던 가정을 되살릴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역시 소설을 단숨에 읽을 수 있고, 맥락을 파악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자기계발서의 형식으로 만들었더라면 술렁술렁 읽고 넘어갔을 것이나 소설이기 때문에 더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미 그럴 가능성이 없습니다만, <부자의 그릇>을 읽은 독자 여러분들, 모두 부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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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 고대~근대 편 - 마라톤전투에서 마피아의 전성시대까지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빌 포셋 외 지음, 김정혜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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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을 여행하다보면 그곳에 관한 역사를 공부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로부터 고려-발해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고, 또 학창시절 국사과목을 통하여 배워 역사의 흐름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의 역사, 즉 세계사는 그 범위에 비하여 배정된 시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솔직하게 말씀드려 수박 겉핥기 식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정사(正史)보다는 야사(野史)가 더 재미있기도 합니다.


다산초당에서 기획한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고대~근대편>을 읽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우선 제목부터 흥미로웠습니다. 역사면 역사지 흑역사는 무엇일까 싶었습니다. ‘흑역사라는 용어는 1999년말 방영된 일본의 만화영화 <건담>에서 사용된 것으로 없었던 일로 해버리고 싶거나 없던 일로 된 과거이 일을 말하는 신조어라고 합니다. 빌 포셋 등 12명의 필진이 참가하여 고대 페르시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인간 군상이 만들어낸 101가지 실수를 다루었습니다. 이와 같은 실수들 가운데 어떤 실수는 재앙을 야기했고 어떤 실수는 우리가 생각하거나 인식하는 방식을 몰라보게 바꾸어 놓았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서 이 책의 원제목은 <101 Stumbles in the March of History>입니다. 직역을 하면 <역사의 행진에서의 101가지 걸림돌>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대부분의 사건이 누군가의 실수로 역사의 흐름이 바뀐 것 맞습니다. 하지만, 안전유리의 개발과 같이 실수로 인하여 우리네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사건도 있었고 보면, 걸림돌이니 흑역사니 하는 제목이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역사라는 것이 대부분 상대적인 것이라서 누군가의 실수로 인하여 손해를 본 쪽이 있으면 상대방은 이득을 본 셈이기 때문에 상대방에서 보면 흑역사가 아닌 셈입니다.


제목부터 시비를 붙인 셈입니다만, 역사의 흐름은 정말 누군가의 얼척 없는 판단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최선이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건은 후세 사람들의 평가를 받을 일이라고 했던가요? 후세 사람들도 입장에 따라서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필진 가운데는 역사를 전공하신 분도 있지만, 소설가 혹은 작가가 많은 편입니다. 필진에 따라서는 실수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역사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졌을 것인가를 상정해보기도 합니다. 일종의 대체역사를 서술하였습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오해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그리스, 로마, 비잔틴, 스페인,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를 거쳐서 미국에 더하여 일본 역사와 관련된 2개의 이야기와 영국의 식민지시절의 인도 이야기 하나가 덤으로 들어가 모두 50개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본에 관한 이야기 2개는 모두 우리나라와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몽 연합군의 일본정벌과 관련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선조 때 벌어진 왜란을 다루었습니다. 이야기들 가운데는 정말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큰 사건도 많습니다만, 그럴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고 보기 어려운 사건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흑역사의 세상으로 시간과 공간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각 여행의 말미에서 그런 흑역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 삶이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라고 서문에 해당하는 글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과거에 일어난 일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의 기획은 참신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역사에 대한 성찰의 깊이가 다소 부족하지 않나 싶기도 한 이유는 분명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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