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정치철학사 - 세계사를 대표하는 철학자 3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첫걸음
그레임 개러드.제임스 버나드 머피 지음, 김세정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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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즉 혼자서 살기보다 모여서 사는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관계가 원만해야 하겠습니다. 규모가 작을 때는 암묵적인 동의로 관계가 설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게 되면 관계가 복잡해지기 마련이고, 그러한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조직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이 권한 혹은 권력 같은 것도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조직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조직원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원칙, 그것이 법이 될 수도 있고, 철학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한 이래 수많은 집단이 명멸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계를 엮는 법 혹은 철학도 세월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 변해왔던 것입니다. <처음 읽는 정치철학사>는 세계사를 대표하는 철학자 30명을 선정하여 그들이 내세운 정신을 중심으로 정치철학이라고 하는 거창한 영역에 입문해보자는 기획의도를 가진 것 같습니다. 즉 세계를 움직여온 정치의 법칙을 찾아보자는 기획입니다.


사실 정치라는 행위가 선한 측면보다는 더럽다고 할 만큼 부정적인 느낌이 들어서 철학이라는 학문적 개념을 붙이기도 뭐합니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뭔가 철학적 원칙이 들어있었을 것이고, 그런 철학적 원칙을 정리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자들이 꼽은 30인은 무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정치연구자라고 합니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활동한 공자로부터 기원전 5세기로부터 4세기 무렵에 활동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서가 4세기 무렵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티누스 등을 고대로 하고, 중세에는 알 파라비, 마이모니데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을 꼽았고, 근대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데이비드 흄, 장 자크 루소, 에드먼드 버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이마누엘 칸트, 토머스 페인, 프리드리히 헤겔, 제임스 메디슨, 알렉시 드 토크빌,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등 15명을, 현대에서는 모한다스 간디, 사이드 쿠틉, 한나 아렌트, 마오쩌둥,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존 롤스, 마사 누스바움, 아르네 네스 등까지 8명을 뽑았습니다.


솔직히 근현대의 인물들 가운데는 모르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의 주장이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을까 싶은 부분도 없지 않을까 싶은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지나치게 근현대 중심으로 선정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다만 이 책을 만약 100년 전에 썼다면 공자, 알 팔라비, 마이모니데스 같은 고대 사상가는 포함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라고 하면서 20세기 초만 해도 유교, 이슬람교, 유대교 기반 정치사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치철학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새로운 형태의 정치를 생각하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역할을 한다는 견해도 맞는 말이지만, 사실 그만큼 과거도 들여다본다고 저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정치철학에서 가장 혁신적인 측면 역시 지난 역사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정치철학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이유인 듯합니다. 그리고 보면 저자가 꼽은 한나 아렌트는 고대 아테네의 철학을 근간으로 하여 철학적 사유를 전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록으로 남은 역사의 범위도 방대한 것인데, 그 가운데 30인을 뽑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습니다. 기왕의 것과는 다른 독창적인 사유를 내세운 분들을 중심으로 뽑아도 30명을 뽑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학자들을 15명씩이라 뽑은 것은 정치 분야에서 철학적 사유가 분출한 시기라고 보았기 때문일 듯합니다. 중세의 오랜 암흑기를 통하여 논의조차 활발하지 못했던 유럽의 사상사에 대변혁이 일었던 시기라서 였을 것입니다. 유사한 분위기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4자성어로 요약하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의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명가 등 9개의 유파로 나뉘는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고저 공자 한 분으로 정리한 것은 적절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역시 서구 중심의 사고에 묶여있는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를 움직이고 있는 정치철학의 흐름을 개괄하는 좋은 책읽기였습니다. 처음 접하는 사상가의 생각도 앞으로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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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왜 사라지는가 - 인류가 잃어버린 25개의 오솔길
하랄트 하르만 지음, 이수영 옮김, 강인욱 해제 / 돌베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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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구경을 하다 보니 인류문명이 발전해온 과정을 거슬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겨우 이집트, 한 곳을 다녀왔지만, 우한폐렴 사태가 마무리되어 세상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미진한 곳을 찾아가보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고대 문명이 남긴 유적, 혹은 유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역시 고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문화학자로 고문헌학과 선사시대의 역사를 전공한 하랄트 하르만이 쓴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도 그런 맥락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잃어버린 25개의 오솔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유허는 남아있으되 실체를 증명할만한 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25개의 인류문명을 다루었습니다. 서문의 제목을 세계사의 불가사의한 의붓자식들이라고 적은 것은 부제에 들어가 있는 오솔길이라는 단어와 맥을 같이 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인류사의 주류에 끼어들지 못한 그런 문명들이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심지어는 주류 문명을 꽃 피웠던 곳에 있는 흔적들도 있습니다.


저자가 고른 세계사의 의붓자식 같은 25개의 인류문명의 흔적이 있는 장소는 아주 다양합니다. 남극 대륙과 오세아니아 대륙을 제외한 나머지 5개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들 문명이 사라진 이유를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보일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문화적 기억이 사라진 문명의 원래의 주변 환경에 배치할 수 있게 할 방향 지시선이나 기준점을 제공하기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단초적이나마 그러한 기준점의 역사적 관계망을 펼치려했다고 합니다. 즉 수수께끼를 풀 단초라 할 만한 추리를 해보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는 쇠닝겐 창을 재료로 하여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사냥문화를 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신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속을 시작하는 크로마뇽인에 선행하는 구인류에 속합니다. 쇠닝겐 창이 발견된 유적은 337천년부터 30만 년 전으로 하이델베르크인의 후기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유적지의 형태로 보아 하이델베르크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는 있었지만, 그들이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언어와 관련이 있는 유골이 발견된 바가 없어서 예단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터키의 챠탈회위크 유적에 이르러서는 남겨진 유골들 가운데 말라리아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형적 뼈를 토대로 하여 기원전 5800년 무렵부터 시작된 기온 상승의 결과로 습한 저지대에 말라리아모기가 번창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고통을 받게 되자 사람들은 챠탈회위크를 버렸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물론 챠탈회위크에서 번영을 구가하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단서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챠탈회위크를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챠탈회위크에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하질라르라는 도시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리고 챠탈회위크의 도시 구성이 초기 문명의 발전에 있어 모형과도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세계4대문명이라는 개념은 청나라 말기의 변법자강운동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1900년에 발표한 저서 <20세기 태평양가(二十世紀太平洋歌)>에서 처음 주장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아 마저도 나름대로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것은 아니고, 당시 서구 학계에서 통용되던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에 포함되었던 비옥한 초승달지대(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이집트문명), 인더스 문명, 황허문명을 포함하는 중국문명, 잉카문명을 포함한 안데스문명, 아즈텍문명과 마야문명을 포함하는 메소아메리카문명 등 6개의 문명 가운데 우리가 익히 아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그리고 황허문명을 꼽을 것이라고 합니다. 서구의 문명의 요람이라는 개념도 처음에는 이집트문명 하나로 시작하여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인더스문명이 추가되는 등 시대에 따라서 추가되어 여섯이 되었으며, 에게문명을 포함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25개의 유적지 가운데 일부는 아직은 문명이라고 할 만큼의 고고학적 뒷받침이 되지 않고 있어 문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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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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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으나 읽을 때마다 소박한 듯 정제된 느낌을 얻습니다.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는 고인이 타계한지 10년을 앞두고 나온 수필집입니다. 선생님께서 생전에 쓰신 660편의 수필 가운데 35편의 글을 골라 묶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에 대하여 선생님의 맏딸이신 수필가 호원숙님은 어머님이 남긴 글을 읽다보면, “가족들에게 사랑의 입김을 불어넣어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젊은이들이 밝고 자유롭게 미래를 펼쳐가기를 얼마나 기원했는지, 하찮은 것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진실을 알려주려고 얼마나 고심했는지, 생의 기쁨과 아름다움에 얼마나 절절하게 마음이 벅찼는지알 듯하다고 했습니다.


서른다섯 편의 글들은, 마음이 낸 길, 꿈을 꿀 희망,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 사랑의 행로, 환하고도 슬픈 얼굴, 이왕이면 해피엔드 등의 여섯 가지 주제로 묶였습니다. 중학교만 나와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쉬운 글이라는 설명이 납득이 가는 글들입니다. 요즘 저는 우리말을 골라 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읽는 흐름이 깨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외래어도 이미 굳어진 것들은 그냥 사용했기 때문에 수월하게 읽히는 느낌입니다.


2004년에 발표한 <그 남자네 집; http://blog.naver.com/neuro412/221936043136>에서 선생님께서 보문동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보문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문동 집의 뒷이야기를 이 책에 적어놓으셨습니다. “조그만 한옥인 그 집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그 집이 있는 좁은 골목은 한 쪽의 집들이 헐려서 큰 한길이 되어있었다. 골목 속에 다소곳이 있던 집이 아무런 단장도 안 하고 별안간 큰 한길로 나앉은 것은 어딘지 무참한 느낌을 주었다.(64)”


저도 예전에 살던 동네와 집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살았던 집이 바로 이런 상황이되었습니다. 큰길에서 세 번째 집이었는데, 도로를 넓히면서 두집이 헐렸고, 제가 살던 집은 두 번째 집이 남은 부분과 합쳐서 새로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동네 분위기도 전혀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문화집시라고 일컫는 J페페님은 자신의 옛집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개발 사업에 밀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마음이 기억하는 한 사라지자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흐려져 가는 기억을 붙들어 매둘 요량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들면서 최근의 기억은 형편없이 희미해지는 반면 오래된 젊은 날의 기억은 변함없이 생생하고, 어린 날의 기억 중에는 미세한 부분까지도 놀랄 만큼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하셨는제, 제 경우는 그마저도 흐릿해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어머니보다 연배가 1년 정도 적은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 시골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도 선대와 비교하여 그리 나을 것이 없던 시절인지라, 저의 어렸을 적 생활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글에 등장하는 그런 부분들이 저의 어린 시절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는 6.25동란이 휴전협정으로 끝난 뒤에 태어난 탓에 전란의 어수선함은 겪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들께서는 전후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시느라 고초가 심하셨지만, 그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오늘까지 살아왔을 것입니다. 물론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그런 고생마저도 겪지 않은 천운을 타고 났지만, 그마저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하고 이야기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일을 요즈음 일과 비교하는 일은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지하고 혼자서 새겨보는 일까지 그만 둘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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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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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만났던 줄리언 반스의 작품이라고 해서 읽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시 다 읽고 나서도 이야기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했던 바 있습니다만. <시대의 소음>은 그보다도 더한 책읽기였습니다. 우선 서두에 나오는 길지 않은 글에 등장하는 듣는 자, 기억하는 자, 그리고 술 마시는 자 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모스크바를 떠나 동쪽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만난 것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층계참에서, 비행기에서 그리고 차안에서라는 제목으로 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제목도 없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주인공인 듯싶은 가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라는데, 이야기가 한참 흘러가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와서야 쇼스타코비치의 삶에 관한 이야기구나 싶습니다. ‘층계참에서라는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그는 작은 여행 가방을 챙겨서 승강기 옆에서 밤을 보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오밤중에 사람을 데리러 오는데, 잠옷바람으로 가끌려가는 비참한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기가 싫어서였다는 것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처럼 비참한 처지가 된 것은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의 초연에 온 스탈린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데다가, 프라우다가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는 제목으로 비난하는 논조의 평을 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작곡가는 소비에트 관객이 음악에서 무엇을 구하고 기대하는가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 소비에트 음악에 이러한 경향이 미칠 위험은 명백하다. () 이렇게 교활한 재주로 장난치는 행위는 끝이 대단히 안 좋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런 정도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했던가요? 쇼스타코비치가 초연하게 죽음을 맞으려 한 까닭인지 막상 쇼스타코비치에게 심각한 위기상황은 닥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서방에서 유명해진 탓에 그를 함부로 처리할 수 없었거나 대외적으로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스탈린이 먼저 죽었습니다. 후루쇼프가 권력을 쥐면서 상황이 반전되어 쇼스타코비치를 중용하기에 이릅니다. 러시아연방 작곡가 조합의 의장으로 임명된 것입니다. 물론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지만 소비에트에서 개인의 뜻이 반영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반스가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시대의 소음이란 억압과 부조리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추구했던 음악이 바로 시대의 소음을 지우는 그것이었다는 점이 뒷부분에서 나옵니다.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우리 존재의 음악-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181)”라고 했습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듣는 자, 기억하는 자, 그리고 술 마시는 자에 관한 속담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의사들이 뭐라고 충고하건 술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듣는 것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기억하기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속담에서 이야기하는 듣는 자, 기억하는 자, 그리고 술 마시는 자라는 존재는 한 사람 안에 들어있는 세 가지 형태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쇼스타코비치는 모든 것을 기억했지만 그것들은 종종 그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들에 덮이고 뒤엉켜, 그를 괴롭혔던 것입니다.


서방으로의 망명을 유혹받기도 했지만, 그는 소련의 국가정책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나아가 이를 외부에 선전하고 홍보하는 모습까지 보였기 때문에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창작활동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가면을 썼던 것이라는 재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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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과민대장증후군 - 개정판, 오랜 시간 괴롭히는 설사, 화장실 가기 두려운 변비, 사회생활을 힘들게 하는 가스와 복통
이진원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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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허리도 아프고 무릎이 쑤시기도 합니다. 병원에 가보아도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하고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받아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바뀌는 삶의 환경에 맞추어가느라고 여기저기 삐걱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기계도 오래되면 닳고 망가지는 것처럼 평생을 사용해온 신체기관이 이제는 쓸 만큼 썼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현대의학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병원에 온 환자들은 의사들이 병명을 콕 짚어 정하고 치료법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몸은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게다가 우리 몸에 얹혀사는 미생물도 120조에서 500조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 몸은 가히 소우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체물리학이 발전함에 따라 우주를 구성하는 별과 행성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우주의 신비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소우주라 할 인체의 신비도 풀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과민성 장증후군도 풀어야 할 비밀이 많은, 아직은 질병이라고 할 수도 없는 증상입니다. 복부팽만감, 복통, 복부 불쾌감, 헛배부름, 잦은 트림 등이 주된 증상인데, 소화불량, 가슴 쓰림, 구역질 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최근 3개월간 3일 이상 복통이나 복부불쾌감이 있으면서 1. 배변횟수가 변하거나, 2. 변의 형태가 달라지거나, 3. 변을 보고나면 증상이 완화되는 등의 3가지 가운데 2개 이상이 있으면 일단 과민성 장증후군으로 의심해볼만하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종양이나 감염 등이 있는 경우도 같은 증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원인이 분명한 질환들을 제외해가다 보면 남는 것이 과민성 장증후군입니다. 현재로서는 심리적 요인 등으로 장운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자가 보이는 증상을 가라앉히는 약물치료를 비롯하여 장운동을 자극하는 음식을 피하도록 하는 등의 대증요법을 적용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물론 환자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참고할만한 정보도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굿바이 과민대장증후군>은 과민성 장증후군이라고 진단받은 환자들이 참고할만한 책입니다. 지금까지 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과민성 장증후군의 원인과 진단, 치료법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저자가 미국 휴스턴에 있는 엠디 앤더슨 병원에서 통합의학과정을 수료했다고는 하지만 한의학을 전공하신 한의사라는 점이 걸립니다. 엠디 앤더슨 병원의 통합의학과정의 교과과정은 얼핏 보기에는 심신의학, , 생약 등 주류의학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못한 영역을 현대의학에 접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의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과정을 이수하고 돌아와 진료에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의료 환경이 우리나라와 미국은 차이가 있어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생각입니다.


<굿바이 과민대장증후군>으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의 대부분의 현대의학의 영역에서 연구 발전시킨 내용이며, 저자의 전공분야인 한의학에 관한 부분은 그럼 한의원에서 치료는 어떻게 다를가?”라는 소제목으로 된 8쪽 분량이 전부입니다. 과민성 장증후군에 대한 원인과 진단과 치료에 관한 내용의 대부분을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설명하고는 약을 먹어도 증상이 바로 낫는 느낌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이에 영향을 받아 치료율도 떨어지게 됩니다.(155)”라고 단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요? 한의학적 치료효과 역시 서서히 나타난다고 하고, 과민성 장증후군이 심리 영향을 많이 받는 질환이라고 부연설명하면서 말입니다. 과민성 장증후군의 차료에 있어서 한의학적 접근에 대한 설명을 들여다보면 아직 밝혀지지 못했지만~’이라는 단서 아래 개선 효과는 괜찮은 편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넘기고 있습니다. 과민성 장증후군으로 진단하려면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감염이나 종양과 같은 심각한 질병을 제외해야 하는데, 한의학 영역의 진단술기로는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므로 병원이나 의원 등 의과 진료를 통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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