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 여행기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뫼니에 드 케를롱 엮음, 이채영 옮김 / 필로소픽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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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누리사랑방에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 여행에 나설 수 없을 때 와유지락(臥遊至樂) 삼아 읽어볼 요량이었는데, 지인들과 공유하면서 기회가 되면 책으로 묶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행기를 쓰면서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어 도움을 얻기도 합니다. <몽테뉴 여행기> 역시 그런 책읽기였습니다.


<수상록;  https://blog.naver.com/neuro412/222271605150>을 몇 년에 걸쳐 머리카락을 뽑아가며 읽었던 탓에 <몽테뉴의 여행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만, 비교적 수월한 책읽기였습니다. <몽테뉴 여행기>는 몽테뉴가 <수상록>의 초고 집필을 마친 뒤, 1580622일 보르도 근교에 있는 몽테뉴성을 출발하여 파리를 거쳐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등을 돌아보고 이듬해 1130일 몽테뉴성으로 돌아오기까지 15개월 8일의 대장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요즈음처럼 비행기, 고속열차, 버스 등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탈 것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마차가 아닌 말을 타거나 걸어서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생전에 출간한 뒤에 가필과 수정을 거쳐 증보하였을 뿐더러 죽을 때까지 수정을 거듭한 <수상록>과는 달리 <몽테뉴 여행기>의 경우는 출간을 고려하지 않은 듯 수사본의 형태로 1770년에 이르러서야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지나는 마을과 도시마다 그곳의 자연과 역사, 건축, 풍속 등을 정리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책을 열면 몽테뉴의 여정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 여정을 살펴보니 독일에서는 뮌헨, 이탈리아에서는 베네치아, 베로나, 피렌체, 로마, 피사, 밀라노, 프랑스에서는 리모주 등 몇 곳만이 가본 곳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여행기는 글을 쓴 사람의 주관적 느낌을 적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 가더라도 같은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몽테뉴 여행기>를 통하여 알 수 있는 몽테뉴의 시선을 편집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몽테뉴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아름다움 풍경과 지역마다 다양한 특징, 지리적으로 쾌적라허가 독특한 지형, 때로는 황량하고 거친 곳이나 경작 활동이 아주 활발한 농경지를 바라보는 것, 산들이 이루는 압도적인 분위기 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34)” 몽테뉴는 나무, , 동물 등 박물학적 요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건축물에 대한 것도 보고 느끼는 바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입니다.


피렌체에서 멀지 않은 루카나 빌라 등지에서는 꽤나 오래 머물면서 온천욕을 즐기고, 온천수를 마셨는데, 마시는 온천수의 양과 소변을 통하여 배설되는 돌의 양까지 꼼꼼히 기록하였습니다. 몽테뉴가 평생을 두고 고통받은 신장결석의 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빌라온천에서는 1차로 158157일부터 620일까지, 2차로 814일부터 911일까지 무려 두 달 이상 체류한 것을 보면 온천의 효능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의존하는 경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는 토양이 석회질이 많아 음식이나 식수 등에 칼슘 성분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몸에 들어온 칼슘 성분은 음식물에 들어있는 성분과 결합하여 소변으로 배출되면서 단단한 덩어리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돌을 만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약을 먹거나, 이미 뭉쳐진 돌을 깨는 쇄석치료 등을 받기도 합니다만, 옛날에는 맥주나 물 등을 많이 마셔서 소변으로 배설되도록 하는 치료법이나, 그도 안되면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몽테뉴가 온천에서 온천수를 많이 마시는 방법으로 뇨로결석을 배출하려 노력을 했습니다만, 먼저 칼슘이나 칼슘과 결합하여 돌을 만드는 성분이 많은 음식을 가려먹어야했을 것입니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의학과 의사에 대한 불신을 적나라하게 표현했습니다만, <몽테뉴 여행기>에서는 간혹 의사를 만나 치료법에 대한 조언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다만 당시의 의학수준으로는 뇨로결석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온천수를 많이 마셔 결석이 만들어지지 않고, 작았을 때 배출되도록 한 치료법은 의학적으로 타당성이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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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관한 모든 것 - 향수의 심리적 효능과 경제적 가치에 대하여
다니엘 레티히 지음, 김종인 옮김 / 황소자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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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도 때로는 같은 주제의 책을 몰아 읽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딱 그랬습니다. ‘향수를 주제로 한 다우어 드라이스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에 이어 읽은 다니엘 레티히가 쓴 <추억에 관한 모든 것>도 향수를 주제로 한 책이었습니다.


다우어 드라이스마가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한 것과는 달리 다니엘 레티히는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언론인입니다. ‘자기만의 기억이 있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진 사람보다 더 부유하다라는 키르케고르의 말을 인용한 저자는 향수가 우리 인생 전체를 결정한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세상은 혼란스러워졌고, 현재는 더 분주해졌으며, 미래는 더 불확실해졌기에 사람들은 과거로 도망친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젊었을 때는 윗분들이 나 때는 말야!’하고 하시면서 옛날이야기를 하면 경청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젊은이들한테 나 때는 말야!’하고 이야기하면 완전 꼰대 취급을 받기 마련입니다. 사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나 때는 말야!’에 해당하는 향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심리학자들이 왜 향수를 영혼을 위한 약품이라고 생각하는지, 신경학자들이 어떻게 기억에서 향수의 근원을 찾아냈는지, 경제학자들과 시장 연구가들이 왜 향수가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하는지, 그리고 기업들이 향수를 이용해 어떻게 이익을 얻는지 알게 될 것이다.(13)”라고 말합니다.


책은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노스탤지어의 탄생에서는 향수(鄕愁)라는 개념에 생겨난 이력을 살펴봅니다. 용병으로 유명한 스위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중세부터 용감하게 싸우고 계약을 중시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용병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런데 고향을 떠난 스위스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는 병이 생기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향수병이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명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2흑백사진을 보는 마음에서는 기억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기억된 것을 소환하는 회상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기억을 되살려 향수에 젖게 하는 과정도 설명합니다. 3기억의 과학, 향수의 마법에서는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합니다. 마지막 4추억을 판매합니다에서는 저자의 전공에 해당하는 향수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독일어 사전에서는 고향병과 향수를 차별화된 개념으로 설명하나 봅니다. 고향병은 멀리 떨어진 고향 혹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큰 그리움이라고 설명하는 한편, 향수는 사람들이 유행과 예술, 음악 등을 부활시키는 기분, 관념 속에서 미화된 지난 시절을 회고할 때 생기는 기분. 현재에 대한 불안에서 시작돼 불확실한 동경으로 가득 찬 기분상태라고 설명합니다. 향수병과 향수를 설명하는 개념을 단어적 의미에 따라 직역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는 심리학 연구의 성과를 인용하기도 하는데, 그 가운데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에 들도록 인위적으로 생각을 만드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1. 기억은 기억하는 당사자에게만 기쁨을 준다. 2. 우리의 수용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3. 미래는 논리적으로 매우 불분명하다. 4. 퇴색하는 감정적 편향이 있다. 등입니다. 그런가 하면 20가지나 되는 간단한 향수 훈련을 하게 되면 살아가는데 훨씬 수월할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옛날 일을 소환하는 것과 관련하여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빠트릴 수 없습니다. 저자 역시 마들렌을 차에 적셔 입어 넣는 순간 어린 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대목을 인용하였습니다. 어린날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마르셀이 즐거움을 느낀 것은 마들렌의 맛이나 차의 향기 때문이 아니라 이 두 가지 감각이 불러일으키는 기억 때문이라는 설명이 색다른 맛을 줍니다.


사실 저는 기억이 만들어지고 기억을 소환하는 과정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억이 잘 만들어지지 않고, 빠르게 소실되는 치매라는 질병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는 별도로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을 되살려보려는 기획을 하고 있기 때문에도 기억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사에 일조를 할 것으로 믿어지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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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 - 기억, 시간 그리고 나이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권세훈 옮김 / 에코리브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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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시간 그리고 나이라는 부제가 없었더라면, 이 공장에서는 무엇을 만드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 공장에서는 향수(香水)가 아니라 향수(鄕愁)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향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일컫는 단어라고 설명합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일단 기억을 기반으로 하는 셈이니 향수는 기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은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의 다우어 드라이스마 (Douwe Draaisma) 교수가 쓴 책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자전적 기억을 주제로 한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를 펴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시간이 기억력에 영향을 미치듯이 기억력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정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에서는 기억의 불확실함, 망각에 대한 불안,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향수, 그리고 망각의 역현상 효과처럼 노년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되살아나는 젊은 시절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기억이 신의 선물이라고 한다면,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망각의 역현상 효과를 설명하기 위하여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였습니다.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망각의 역현상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수수께끼 현상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오래된 기억일수록 희미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오래된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나게 된다는 것이 기억의 역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제가 일종의 자서전 성격의 옛날이야기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망각의 역현상 효과가 나타나는 나이에 들어선 모양입니다. 이제라도 옛 기억을 되살려 정리해두지 않으면 영원히 저만의 기억 속에 묻혀버릴 것 같다는 안타까움에서 시작한 일입니다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기억력 감퇴가 중요한 증상인 치매에 관심이 많다보니 언젠가는 기억을 주제로 책을 써보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생기는 생리적 건망증과 치매환자가 보이는 기억력감퇴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각각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전망적 기억이라는 개념이 생리적 건망증과 치매환자의 기억력감퇴를 설명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심리학 분야에서 이룬 기억에 관한 다양한 연구성과는 물론 기억에 관한 내용을 담은 문학작품들도 다양하게 인용하고 있어, 기억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생명과학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저자가 인용한 영화 <망각에 맞서>에 등장하는 데 로더 부인은 92살이 될 때까지 수백번의 여행을 했고, 모든 여행의 기록을 정리하였고, 탑승권과 입장권, 식단과 도시지도, 그림엽서, 사진 등, 여행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보관해왔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 이사를 가야할 형편이 되었지만, 그 자료들을 가져갈 수 없어, 결국 이사를 가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살아오면서 쌓인 삶의 기록이 이사를 다닐 때마다 줄어서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10년전까지는 초등학교 6한년 때 치렀던 시험문제지, 중고들학교 시절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편지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남아있는 자료들을 지금이라도 스캔을 떠서 파일로 만들어 보관하도록 해야하겠습니다. 진즉 시도했어야 했던 일입니다. 추억이 가장 왕성하게 되돌아오는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해서 옛기억을 정리하는 작업도 열심히 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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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 - 길을 안다는 것, 길을 간다는 것 여행자의 독서 2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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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여행과 책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둘을 아우르는 책을 만나면 절로 손이 가는 것 같습니다. 광고 문안가 이희인의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를 읽은 이유입니다. 제목을 보니 익숙한 느낌이어서 찾아보니 그가 쓴 <여행자의 독서>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독후감의 제목을 정말 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구요?’라고 적은 것을 보면 작가는 독특한 여행가라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행자의 독서>를 읽고 쓴 독후감을 찾아보니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와는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저로서는,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배낭을 싸는 시간, 그중에서도 어떤 책을 넣어 갈까 고민하는 시간들입니다. 어떤 책이 가고자 하는 땅과 어울릴까 고민하는 일은 여행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합니다.(5)”라고 서문에 적었습니다. 저 역시 나름대로는 고민을 합니다만, 여행을 떠나면서 무슨 책을 가져갈까 하는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 싶습니다.


<여행자의 독서>의 구성은 1. 구원을 찾아 떠나다, 2. 사랑을 찾아 떠나다, 3. 이야기를 찾아 떠나다, 4. 나를 찾아 떠나다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의 구성은 1. 추억을 찾아 떠나지 마라, 2. 희망을 찾아 떠나지 마라, 3. 낙원을 찾아 떠나지 마라, 4. 낭만을 찾아 떠나지 마라 등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여행의 중요한 목적의 순서로 정했다면, 이번에는 여행의 목적으로 삼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적은 셈입니다. 물론 내용은 제목들과 크게 연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행자의 독서>에 나오는 22꼭지의 이야기에서 소개한 39권의 책들 가운데 읽어본 책은 6권밖에 되지 않아 멋쩍었습니다. 그 뒤로 6권을 더 찾아 읽었습니다. 아직도 읽어야 할 책이 더 남아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역시 22꼭지의 이야기에서는 무려 58권의 책을 다루었는데, 18권을 읽어보았으니, 첫 번째 책을 읽고 7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던 셈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여행지에 관한 책들이 많았던 것과는 달리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여행지와 무관한 책들이 더 많은 느낌입니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모자를 벗을지언정 머리르 비우며 여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땅의 내력이 담긴 책들을 가져가야 마땅한 듯합니다.(7)’라고 적은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책읽기를 위해서 여행을 한다는 느낌이 여전합니다.


곳곳에 여행과 책읽기에 관한 주옥같은 대목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여행과 책은 대개 세 지점에서 만난다. 여행 전과 여행중, 그리고 여행 후. 일상에서 만난 어떤 영감에 가득 찬 책은 독서가를 여행으로 내몬다. 길 위에서의 책은 여행자의 고달픈 길에 길동무가 되어준다. 여행 뒤 만나는 책은 다녀온 땅에 대한 지식과 감상을 완성시켜준다. 어느 지점에서도 책은 요긴하고 그만큼 여행은 풍부해진다.(22)”


이 대목도 좋았습니다. “길 가기와 책 읽기에 관해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걸 당신에게만 말해주겠다. 부지런히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부지런히 읽는 책이 가장 빨리 읽는 독서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막막했던 길들이 내 등뒤에 납작 엎드려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뒤돌아보면 저걸 언제 읽지 했던 책들이 내 손때를 잔뜩 묻힌 채 서가에 꽂혀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한숨 쉬지 말고 가던 길을 갈 것. 읽던 책을 읽어 나갈 것.(329)”


저자 역시 여행사의 상품을 통해서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고 한탄하는 듯합니다. “여행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는 긍정적인 현상의 이면에, 우리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설렘과 두려움, 감동이 가장 희박한 여행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들이 흔히 예술에 대해 남발했듯이, 우리 시대에는 여행마저도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339)”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기행 혹은 여행의 문학이란 본질적으로 허풍과 과장을 일삼는 문학일지도 모른다. 남들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는 순간 이야기꾼으로 변모해버린 여행자에게 과장과 허풍의 유혹을 물리치기란 힘든 일이다.(416)”


어떻든 저자가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에서 소개한 책들도 골라서 읽어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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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과 예술
메를로 퐁티 지음 / 서광사 / 198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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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과 예술>은 저자가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라는 점과 현상학과 예술과의 관계를 다루었다고 해서 읽게 된 책입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프랑스 현대철학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매김되었고, 현상학과 실존주에 천착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현상학을 공부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현상학은 에드문트 후설이 시작한 현대철학의 사조입니다. 우리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현상 자체를 기술하고 분석하는 철학을 말합니다. 의식의 현상을 분석한다고 설명하지만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식 자체의 생물학적 특성이나 인과법칙 등은 논의대상이 아니고 의식자체만을 순수하게 기술하고 그 구조를 분석한다는 의미입니다.


후설이 현상학을 제안한 배경에는 20세기 초반 들어 부각된 철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 급속한 과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심리학에서도 과학적 방식으로 대상을 계량하려는 실증주의가 대두되면서 의미의 근원이라 할 의식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후설은 실증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의 삶의 근본이 되는 의식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환원시키겠다는 의도로 고안한 철학의 한 형태가 현상학이었습니다. 20세기 유럽 철학의 현상학 시대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현상학을 이해하려면 몇 가지 현상학적 개념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의식의 지향성(intentionality)은 의식이 무언가를 표상한다는 것, 무엇에 관한의식을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 회의론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판단 중지라는 의미를 담은 '에포케(epoché)'가 있습니다. 이는 어떤 것에 대한 판단이 과도하게 치우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전제조건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미 같습니다. 노에시스와 노에마가 있습니다. 노에시스(νόησς, nóēsis)고대 그리스어로 지식 혹은 지성을 의미하는 누스(νους, nous)와 지각의 의미하는 노에인(νοεν, noeín)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로, 의식이나 사고 자체, 좁게는 특정 대상을 지향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한편 노에마(νόημα, noema)는 생각된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를 차용한 것으로, 대상을 의식하고 생각한 결과물, 즉 내용으로서의 의미를 말합니다.


현상학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찾아 이해하였지만, 메를로-퐁티의 <현상학과 예술>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았습니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오병남 교수님은 서문에서 현대미학에 관한 강좌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메를로-퐁티가 쓴 아홉 편의 논문과 드 뷀렌의 논문 한 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조명을 이해시키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글, 드 뷀렌의 머리말은 1949년에 나온 메를로-퐁티의 <행동의 구조> 2판에 더해진 것입니다. ‘애매성의 철학이라는 제목은 <행동의 구조>가 당대 철학계의 고민을 대변한 것일 수도, 그 고민을 해결해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어지는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이란 무엇인가?’지각의 기본성과 그 철학적 제 귀결에서는 현상학의 본질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설명이 담겼습니다. ‘현상학은 기술하는 일이지 설명을 하거나 분석을 하는 일이 아니다(31)’라는 설명이 현상학의 본질을 대변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몬느 드 보봐르의 <초대받은 여인>을 인용한 문학작품, 세잔느를 인용한 회화에 대한 현상학적 이해에 대한 논설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기술한다는 것은 기술하는 사람의 주관이 작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저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초대받은 여인>을 읽어보고 메를로-퐁티의 설명을 확인해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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