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피보팅 - AI는 어떻게 기업을 살리는가
김경준.손진호 지음 / 원앤원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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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이세돌 기사가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대결을 펼친 끝에 14패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은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의 방식을 향상시키는 대체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AI 피보팅>AI를 도입하여 기업경영을 혁신시키는 방법을 쉽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인공지능이란 학습능력, 추론능력, 지각능력 등 인간의 두뇌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한 전산체계를 말합니다. 피봇은 회전축을 의미합니다. 어제 종영된 농구예능 뭉치면 쏜다에서도 피벗플레이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한발을 고정한 채로 다른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상대를 현혹하다가 득점을 노리거나 공을 넘기는 공격방식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창업(start-up) 부문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창업 부문에서는 피봇이라는 개념을 기왕의 회사에서 사업형태나 경영전략의 방향을 틀어서 새로운 제품이나 사업을 창조해내는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오랜 경험에 의지하여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하던 것은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성공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들은 <AI 피보팅>에서 디지털 피보팅, 즉 아날로그 방식으로 경영하던 기업이 디지털방식을 도입하여 사업 모델을 혁신하고, ‘전략적 지향점을 수립하며, 나아가 ‘AI 디지털로의 전환을 달성한다는 3가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1부에서는 디지털 환경의 격변으로 펼쳐지게 될 새로운 사업의 지평을 정리했습니다. 2부에서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요인을 살펴보고, 디지털로의 전환 과정에서 혁신 엔진으로서의 AI의 전략적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3부에서는 국내기업들이 AI를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4부에서는 AI와 디지털기술을 적용하여 성공을 거둔 국내외 기업의 성공사례를 들었습니다. 5부에서는 AI로 매개로 한 디지털 전환기에 시회를 잡기 위한 7가지 전략적 접근방식을 설명합니다.


필자처럼 옛날 사람들은 일단 개념부터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날로그 방식이란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구체적인 통계보다도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요예측, 원료구입, 홍보, 매출 등 모든 것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이 되는 셈입니다. 아날로그방식은 계절의 변화라던가 날씨 등에서 돌발변수가 등장하면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됩니다.


반면 디지털방식은 사업을 운영하면서 얻은 자료들을 분석하여 경향을 파악하고 이에 맞추어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방식인데, 그만큼 위험요소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당연히 경향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자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료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디지털 피봇, AI라는 용어가 들어가는 자리에 과거에 거론되었던 새로운 방식을 집어넣어도 맥락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생산체계 등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개념이었을 것입니다. 코로나, 디지털, AI 등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주제어를 고루 담고 있지만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그리고 저자들이 주장하는 디지털 피봇의 개념 대부분은 AI기술 단계에 미치지 않는, 대규모자료(big data) 분석체계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공지능이란 대규모자료를 분석하여 의사결정까지 내리는 단계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반 기업 분야에서 대규모자료 분석을 통하여 성공한 사례나 기초단계의 인공지능을 적용하여 성공한 사례들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인공지능체계의 도입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의료계의 현황을 소개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덧붙여 IBM의 수퍼컴퓨터 왓슨(Watson)이 골치 덩이로 전락했다는 소식이 어제 나왔습니다. 특히 의료분야에서는 대량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진단이나 치료방향까지 결정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성과로 기대가 컸던 것인데, 실제로는 의료분야의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드러났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은 장래에 인공지능이 의료분야에서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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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발걸음 - 풍경, 정체성, 기억 사이를 흐르는 아일랜드 여행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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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정체성, 기억 사이를 흐르는 아일랜드 여행이라는 문구에 끌려 고른 책입니다. 제가 요즘 경관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추억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년 전의 아일랜드 여행도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저자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1986년에 아일랜드 국적을 취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아일랜드를 두 차례 여행하면서 얻은 기억과 정체성 사이의 상호작용, 몸의 움직임과 세상의 풍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해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통상적인 의미의 여행서가 아니라 여행을 계기로 구상되고 배열된 연작 에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모두 17꼭지의 수필은 모두 아일랜드 여행에서 얻은 작가의 느낌이 담겨있습니다. 1동굴에서는 작가가 아일랜드 여행에 나서게 된 동기나 여정 등을 요약해놓았는데, 내용을 보면 아일랜드 사람들의 기원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이 다루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는 정체성(기억, 내 한 몸, 내 가족이라는 동심원, 사회, 종족, 인종이라는 동심원, 거처, 국적, 언어, 문학이라는 동심원)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고, 그렇게 깔끔한 동심원을 깨뜨렸던, 그리고 지금도 깨뜨리고 있는 파도(외세 침입, 식민화, 해외 이민, 망명, 유람, 관광)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30)’라는 대목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침입의 서는 저자의 아일랜드 여행의 시작을 계기로, 아일랜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요약합니다. 글 속에서는 아일랜드 켈트족의 역사서 <침입의 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제임스 맬턴의 <더블린 풍경>,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이르기까지 영문학으로 분류되어 온 아일랜드 문학작품들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성 패트릭교회, 자연사 박물관 등을 비롯하여 더블린의 거리 등에서 아일랜드의 고대, 근대를 살펴 본 저자는 더블린을 출발하여 아일랜드의 남서쪽에 있는 코크로 향합니다. 코크를 출발점으로 하여 아일랜드의 서쪽 해안을 따라 걷거나 차로 이동하는 본격적인 여행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녀의 여행길은 인연이 닿은 분들을 찾아가는 경우를 비롯하여, 여행길에 동행한 여행자 혹은 여행길에서 만난 아일랜드 사람들의 도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들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도 서술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전에 준비하거나 혹은 여행을 다녀온 뒤에 조사한 내용을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과 잘 버무리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서해안을 따라가는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지역의 관광명소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아일랜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람들의 삶과 진실한 모습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일랜드의 시골은 지도처럼 잘 읽히는 풍경이 아니라 수천 년의 사건들이 몇 겹으로 적혀 있는 양피지인 것 같았다. 거의 모든 사건의 흔적은 쓸데없이 많은 돌이 새로운 형태로 쌓인 흔적, 또는 다시 허물어진 흔적이었다.(130)’이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 말미의 역자 후기에는 이 책의 구성이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리하지 못했습니다만, 책을 읽기 전에 역자 후기를 먼저 읽으면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가 아일랜드를 처음 여행한 것은 26살 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이 나온 것은 10년 뒤입니다.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행 뒤에서 찾아 보완할 수 있습니다만, 여행과정에서 겪은 일들은 그때그때 정리해두지 않으면 망각의 영역으로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우한폐렴 사태가 일어날 무렵이던 1년반 전에 다녀온 이집트 여행에 대한 정리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한폐렴으로 해외여행을 쉬고 있는 상황이라서 이어갈 이야기라고는 `30년 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돌아본 미국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별로 없지만, 여행하면서 남겨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볼까 생각합니다.


<마음의 발걸음>을 읽고 나서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걷기의 인문학>을 구했습니다. 어떤 느낌을 얻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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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 - 지혜로운 부모는 게임에서 아이의 미래를 본다
이장주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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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용 전산기에 놀이가 깔려있던 옛날에는 여유시간에 전산기에 깔려있는 놀이를 즐기곤 했습니다. 가끔은 놀이에 빠져 업무처리가 늦어지는(?) 일도 없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기분전환한다고 시작한 놀이에 빠져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던 것입니다. 이런 전력(?)이 있는 까닭에 아이들이 전산기나 똑똑 전화로 놀이를 하는 것을 지나치게 규제(?)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문화사회심리학을 전공하신 이장주 박사님의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읽으면서 전산기 놀이의 초기세대였던 저를 돌아보고, 제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전산기 놀이를 즐기던 시절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여가시간에 동무들하고 자치기나 구슬치기를 즐겼습니다. 이런 놀이를 하다가 보면 공부는 물론 밥 먹을 때를 놓치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전산놀이 역시 여가시간을 즐기는 혹은 긴장을 푸는 놀이로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장주 박사님의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읽다보면 전산기 놀이가 삶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으며, 사고와 삶의 방식을 바꾸어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먹고사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전산 놀이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전산놀이가 그저 놀이에 머물지 않고 다른 분야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혁신을 만들어내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산놀이에 깊숙하게 빠져들지 못한 부모세대이지만, 아이들만큼은 새로운 경향을 잘 파악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저자께서는 서문에 크게 4부로 된 이 책의 구성을 이렇게 설명해놓았습니다. 1부는 전산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설명해놓았습니다. 물론 전산놀이에 빠진 아이들과의 전쟁(?, 대부분의 부모들은 전산놀이에 빠진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을 승리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손자병법에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아이들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나서는 패배를 자인할 수도 있겠습니다.


2부는 전산놀이가 이제는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는 점을 설명합니다. 전산놀이를 잘 할 뿐만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는 회사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상의 대우가 보장이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먹고사는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3부는 아이들의 전산놀이를 우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전산놀이에 대한 부모세대의 우려가 편견의 소산임을 알게 해주니다. 4부는 전산놀이를 즐기는 아이를 둔 부모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를 소개합니다. 부모의 권위를 내세웠던 옛날 방식은 이미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속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아이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세태입니다.


저자는 사회심리학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얻은 연구 성과들을 전산놀이와 관련한 아이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금지를 통한 동기화에 주목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산놀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오른 것은 국토가 좁아 누리망을 촘촘하게 깔아놓은 구조적 요인에 더하여 대부분의 부모들이 전산놀이를 통제했던 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Try to remember’라는 주제가로 유명한 <판타스틱>이라는 가무극(musical)이 바로 금지를 통한 동기화를 잘 설명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이웃하여 살던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장성하자 부모들은 두 아이를 맺어주기 위하여 만나지 못하도록 막는 작전을 짜게 됩니다. 작전은 성공하여 두 아이들이 사랑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부모님들의 작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헤어져 세상을 떠돌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이 다시 진정한 사랑으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산놀이 세대의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그런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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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예찬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준미 옮김 / 하늘연못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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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책읽기 화두에는 여행도 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여행자 예찬>을 고른 이유입니다. 처음에는 수필집으로 알았습니다만, 제목 아래 있는 카프카 소설이라는 대목과 일러두기에 있는 이 책은 위르겐 보른이 편집한 카프라 소설집 <포세이돈 그리고 다른 짧은 이야기들>을 완역한 것입니다.’라는 대목에서 소설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넘겨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인지, 수필인지, 형식에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허구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보면 소설이 맞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쪽에 불과한 것들도 소설이 맞나 싶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폐간되었습니다만, 대학시절 월간으로 나오던 학보에 엽편소설이라는 형식의 짧은 소설이 실렸던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엽편소설(葉篇小說) 200자 원고지 20매 정도 분량으로 단편소설보다 짧은 소설입니다. 분량을 나뭇잎에 빗대 엽편소설이라고 합니다만, 손바닥에 비유해 장편소설(掌編小說)이라고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미니픽션(minifiction) 혹은, 똑똑전화에서 쉽게 볼 수 있다해서 스마트 소설이라고도 부르기 시작한 듯합니다. 분량으로 보면 프랑스어로는 콩트(conte)와 비슷하지만, 극적인 반전에 치중하려는 콩토보다는 문학적 깊이가 담긴다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축약하면서도 촌철살인의 기지를 담으려면 심오한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인지 카프카의 <여행자 예찬>은 의외로 어려웠습니다. 작가 자신은 나의 글은 조잡하기 짝이 없으며 동시에 무의미하다라고 겸양을 떨었습니다만, 작가가 글에 담은 생각을 읽어내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마도 카프카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자 예찬>의 이야기들은 엽편소설의 범주와 단편소설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섞여 있습니다. 모두 44편의 이야기들이 여덟 무리로 나뉘어 있습니다. 무리별로 어떤 특성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글 제목 가운데는 작가가 아니라 편집자들이 단 것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번역서의 표제작이기도 한 여행자 예찬은 한쪽 분량에 불과합니다. 열차 여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한쪽 분량의 이야기가 한 문장으로 구성된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지만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 열차가 출발할 때 몸이 잡아채어진 느낌이 기억난다는 이야기,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간절하게 대한다는 이야기, 창문을 통해 보는 매력적인 풍경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면서도, 여행이 아주 가볍게 생겨나고 출발한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잊고 있었고, 더 심한 것은 자신들이 잊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마무리입니다.


저는 작가가 장삼이사들의 삶을 열차 여행에 비유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출생의 충격을 기억해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습니다만, 삶이 어느 날 툭 떨어진 것처럼 생각한다거나 별 의미를 두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꼬집은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원저의 제목에 들어가 있는 작품 포세이돈도 이해가 쉽지 않았습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수많은 보조원을 데리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바다와 하천과 호수를 관리하는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직무를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직무를 불만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멸망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젊은이의 불행한 사건과 관련하여 상인이라는 이야기에 담긴 내용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상인이 집에 도착해서 승강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지금 갑자기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승강기 유리창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다가 날아가 버려라. 나는 결코 본 적이 없었던 너희의 날개가 너희를 서골의 골짜기로, 아니면 파리로 데려다 줄지도 물라, 너희가 거기까지 갈 수만 있다면.’(10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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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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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내려오는 3대 거짓말이 있습니다. 1. 노인이 죽어야지!’하는 말, 2. 처녀가 시집 안간다!’라고 하는 말, 3.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실 초연하게 죽음을 맞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아닙니다만, 잡아놓은 죽을 날을 초연하게 기다리는 사람의 생각을 읽었습니다. 일본 작가 사노 요코씨입니다.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하여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그려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70살이 되던 해에 두개골로 전이된 상태로 재발을 했습니다. 주치의는 여명이 2년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리하여 사노씨는 남아있는 2년의 기간에 맞추어 삶을 정리하기로 했답니다. 문제는 2년이 되어도 죽음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장 생활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죽는 게 뭐라고>는 유방암이 재발된 다음의 삶을 정리한 것입니다. 투병과정이라기보다는 죽음을 맞는 과정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죽는 게 뭐라고>3부로 구성되었습니다. 먼저 죽음에 대한 요코씨의 생각을 담은 죽는 게 뭐라고입니다. 이어서 방사선종양학을 전공하는 히라이 다쓰오 박사와의 대담을 담은 내가 죽고 내 세계가 죽어도 소란을 피우지 말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을 담은 내가 몰랐던 것들입니다.


요코씨는 어렸을 적에 여동생과 오빠의 죽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도. 일찍이 죽음을 마주한 까닭에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초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유방암이 재발했을 때 여명이 2년 정도 될 것이라는 주치의의 말에 따라서 삶의 시계바늘을 2년으로 맞추로 살았던 것인데, 2년이 지나도록 죽음이 다가올 기척이 보이지 않아 당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유자금이 바닥나가고 있었던 것도 어려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에게 여명을 알려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코씨는 주치의를 비롯한 의사들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관한 감상에도 1인칭, 2인칭, 3인칭이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낌이 있었습니다. ‘, 그녀(3인칭)의 죽음은 아, 죽었구나 정도로 별로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2인칭인 당신의 죽음(부모, 자식, 형제 등)’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답니다. 그래도 그건 자신의 죽음은 아니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1인칭의 죽음, 나의 죽음은 아무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인 데다 남들한테 물을 수도 없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결국 나의 죽음은 혼자서 결정하고 겪어야 할 일인 셈입니다.


그런데 의사에게 환자의 죽음을 어떨까요? 3인칭으로 볼 수도 없고, 2인칭으로 볼 수도 없으니, 2.5인칭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하였습니다자신을 치료하는 주치의가 정말 열과 성을 다해 병을 치료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의사의 웃는 얼굴을 위해서 건강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는 요코씨는 의사는 성직자다라고 믿는 분입니다. 한편으로는 교사도 성직자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일교조가 등장하면서 이본의 교육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한다고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참교육을 내세웠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이 바꾸고자 했던 선배들의 행태를 넘어서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의 교육도 전교조가 등장하면서 점점 이상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죽음을 초연하게 맞을 수 있다는 요코씨의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세부사항에서는 다소 생각이 다른 점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죽음은 1인칭의 사안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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