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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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무는 책읽기였습니다.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얼마 전에 읽은 이희인의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에서 다룬 책입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여행하면서 읽을 만한 책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동유럽 여행길에서 이 책을 읽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가물거립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일종의 추억여행입니다. 저는 옛 추억을 되살리는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만, 이 책의 작가는 잊고 지냈던 친구들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추억여행을 하고 그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작가는 열 살 때부터 열네 살 때까지 프라하에 있는 소비에트 학교를 다녔습니다.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는 소련 외교부가 직접 운영하였는데, 외국 공산당 간부들의 자녀들만 수학할 수 있었고, 50여국 출신의 학생들이 다녔다고 합니다.


작가는 프라하에 있던 각국 공산당의 이론 정보지인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에 일본 공산당을 대표하여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프라하에 갔다고 합니다. 작가는 러시아어로 하는 수업을 듣게 되면 훗날 러시아어를 전공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아 소비에트 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결국 러시아어 동시통역가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닦은 셈입니다.


아버지가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함에 따라 일본에 돌아온 뒤로는 소비에트의 친구들과 연락도 잦아들면서 종국에는 소식이 끊어졌던 모양입니다. 1980년대 후반 동유럽의 공산 정권들이 차례로 무너지고 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되는 상황이 되면서 옛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고 합니다만, 그들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에서는 소비에트 학교 시절 특히 친했던 그리스인 리차, 루마니아인 아냐, 유고슬라비아인 야스나를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소비에트 학교에서 동무를 만나 친하게 지내던 기억으로부터 그 동무를 찾아가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유고슬라비아의 친구 야스나를 찾아 나선 시기는 1991년 시작하여 2001년에 종료된 유고내전이 한창일 때라서 위험했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세 동무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를 비롯한 네 명의 동무들이 함께 어울렸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여러 나라에서 모이다보니 작은 무리를 이루기보다는 개별적으로 친소관계가 만들어졌던 모양입니다.


표지를 보면 이데올로기에 휩쓸린 소녀들을 통해 동유럽 현대사를 그렸다라고 요약했습니다만, 책을 읽다보면 십대 소녀들이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살았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소비에트 학교를 다니면서도 소련의 압제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커져갔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레닌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보여주었을 때, 그리스에서 온 리차는 마리, 레닌은 꽤나 잘 살았나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노동자 농민의 해방을 역설한 레닌이 평생 동안 노동을 해본 적이 없고, 지주로서 소작료를 받아 살았다는 사실도 작가는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연예인이 될 것 같던 리차는 의사가 되어 독일에서 개업을 하고 있고, 열혈 애국주의자였던 아냐는 영국으로 유학하여 영국의 귀족출신 남자와 결혼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동무 야스나는 아버지 라이프 디즈다레비치가 내전이 한창이던 유고연방의 마지막 대통령을 맡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스나는 유고내전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보스니아 출신이었던 것입니다. 어수선하기만 했던 베오그라드까지 찾아가 야스나를 만났던 작가입니다만, 1999년 나토군이 베오그라드를 폭격한 뒤의 야스나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추억을 소환하고, 그 추억이 담긴 장소와 사람들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추억여행을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책 어디에도 이데올로기의 냄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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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판다 - 수출기업을 위한 글로벌 마케팅 필살기
강대훈 지음 / 스틱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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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블로그 이웃이신 아자아자님의 추천으로 읽은 책입니다. <살아야 판다>라는 제목을 보면 우한폐렴으로 질곡을 헤매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수출기업을 위한 글로벌 마케팅 필살기라는 부제를 보면 성격이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제조업 분야의 회사를 경영하다가 ICT, 바이오, 화학, 플랜트 등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제품을 해외에 파는 수출 마케터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한국무역협회의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7만 회원사의 해외무역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살아야 판다>는 저자가 해외무역의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바를 정리하여 사업 대상을 국내에서 해외로 확장하는데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참고서를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수출에서 영업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먹고사는 것도 힘든 시기를 벗어내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수출입국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전회장이 조선소를 건립하기 위한 자금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과연 한국의 조선소에서 대형 상선을 제작할 수 있겠냐고 거절하는 상대방에서 500원 지폐에 그려진 지폐를 보여주면서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주었다는 거북선 신화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사라진 율산그룹이 중동수출의 암초였던 항구의 체선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갑판에 불을 지르거나 상륙정과 헬기를 동원하여 하역을 했다는 일화는 우리나라의 무역 역사에 신화로 남아있습니다.


<살아야 판다>는 모두 139꼭지의 글을 14개의 장으로 구분해놓았습니다. 서문을 보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기업과 종사자들을 위해 쓴 일기라고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모험인 상황이라서인지 해외영업 오디세이라고 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썼다는 서사시입니다.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1년의 이야기를 다룬 <일리아스>에 이어, 트로인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귀향길 10년에 겪은 모험담을 담았습니다.


앞부분에서는 국내기업이 웬만하면 해외기업에 나서야 하는 이유를 담았습니다. 영업 현장의 어려움도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해외영업의 달인이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요즘도 누리망과 정부기관 등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해외영업에 나선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지의 사정을 직접 체감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지 사정을 직접 살펴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두는 것이 해외영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디세이라고 이름붙인 매 꼭지의 글들이 길지 않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아도 쉽게 읽히고 공감을 하게 됩니다. 해외영업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학계에서 활동하다보면 외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과 인연을 맺고 교류하는 과정과 흡사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인구가 1억 명이 넘어야 내국인들 대상으로 하는 사업들이 어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시동을 걸었던 1967년에 3013만명이던 인구가 1980년대 들어 성장세가 꺾이면서 2017년에 5136만명으로 겨우 절반을 넘겼습니다. 2020년 인구성장률이 0.14%, 5년 뒤에는 0.02%를 기록하고는 음의 성장률를 보이면서 2067년에는 인구가 3929만명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런 동향을 보면 다시 수출에 매달려야 나라가 유지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산업기반을 강화하기보다는 그동안 벌어놓은 것을 까먹는 재미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리고 미래 세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들이 누려야 할 것들을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생태계에서는 강한 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된다는 저자의 주장을 곱씹어봅니다. 강한 자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강하다는 것이 힘에 세다는 것 말고도 끈기라던가 임기응변이 뛰어난 것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야 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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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
유제프 차프스키 지음, 류재화 옮김 / 밤의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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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읽었습니다. 국일미디어판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은 아내가 결혼할 때 가져온 것입니다. 11권이나 되는 무게감에 눌려 읽기 시작하는 것조차 망설여졌던 것 같습니다. 무려 28년 동안 쌓여온 먼지를 털어가면서 완독하기까지 무려 6개월이 걸렸습니다. 모두 11편의 독후감을 적었습니다만, 그저 읽어낸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012년 민음사에서 새롭게 번역해서 내놓기 시작할 때부터 다시 읽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 10권째가 나왔고, 이제는 마지막 되찾은 시간을 남겨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음사판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기까지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음사판을 읽어갈 때는 국일미디어판을 처음 읽을 때와는 달리 손에 잡히는 무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소개된 책들이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관한 글들을 모아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궁금해졌기 때문인 듯합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도 그런 배경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은 저자가 소련의 포로수용소에 갇혀있을 때 했던 강의록을 책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폴란드의 화가이자 작가인 유제프 차프스키는 19399월 독일군이 침공하자 폴란드군 장교로 동원되었다가 소련군에 포로로 잡혔습니다. 스타로벨스크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폴란드 장교들은 지적 노동이라도 해야겠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전시에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군인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육체적으로도 쇠약해지다가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자가 수용되어있던 스타로벨스크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4천명의 수감자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79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폴란드 장교들 가운데 일부가 군사학 역사, 문학 등을 강의하는 모임을 꾸렸던 것인데, 수용소 당국이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는 기획한 사람들을 어디론가 보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은 은밀하게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듬해 봄에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대부분의 인원은 북쪽으로 이동하였고, 400여명만이 인근의 그랴보베츠 수용소에 남았다고 합니다.


이들의 지적노동은 그랴조베츠 수용소에서도 이어졌는데, 당국의 감시 아래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강의록을 사전에 제출하여 감수받아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프랑스와 폴란드의 회화 그리고 프랑스의 문학을 맡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폴란드군에 동원되기 전에 읽었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관한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1924년 파리에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922년 프루스트가 사망한 다음에 파리에 도착해서 그의 작품들을 읽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단순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내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머물지 않고,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의 프랑스 사회적 분위는 물론 문학, 철학, 예술 사조까지 상당히 깊숙하게 다루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프루스트의 삶은 물론 가족들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도 다루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작가의 삶을 되짚어 본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긴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소설의 구성상 빼놓은 이야기도, 추가한 이야기도 있을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작품과 작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바가 도출해냅니다. ‘독자로 하여금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사유와 감정능력을 일깨우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의 작가가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는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듣는 이들에게 전하려는 뜻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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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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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서 <남아있는 나날>을 빌리는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2015년에 소개된 <파묻힌 거인>으로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노벨문학상 수상에 기여했다는 작품을 꼭 읽어보고 싶었던 것인데, 늘상 대출 중이었습니다.


<남아있는 나날>을 읽고서 영국인의 진면목을 참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이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떠나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최고를 지향하기 위하여 사사로운 감정을 접어야 했던 주인공 스티븐슨의 생각을 요즈음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제임스 스티븐슨은 영국의 귀족이자 유럽 외교계의 핵심인물이던 달링턴 경의 저택의 집사장입니다. 이야기의 시점은 19567월 달링턴 경의 저택이 미국의 부호인 페러데이에게 팔린 직후부터입니다. 집사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하인들이 떠나고 새로운 하인들이 들어오지만, 한때 28명을 하인을 거느렸던 스티븐슨의 입장에서는 4명으로 저택을 관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달링턴 경이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1930년대에 함께 일했던 총무 샐리 캔턴의 편지를 받게 된 스티븐슨은 그녀를 만나러 콘월까지 여행을 하게 됩니다.


패러데이씨가 미국에 일을 보러간 사이 내준 자동차를 운전하여 콘월까지 여행하는 5일 동안 달링턴 경을 모시던 때 저택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하는 내용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달링턴 경의 주선으로 유럽과 미국의 주요 인사가 저택에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회의가 자주 열렸던 것인데, 중도적이며 선의적 성향의 달링턴 경이 나치의 히틀러에게 속임수에 넘어가 독일의 속셈을 간과하여 전쟁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전쟁이 끝난 뒤에 달링턴 경은 사회적 지탄 속에 폐인이 되어 죽음을 맞고, 200년 전통의 저택마저도 미국인에게 팔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집사장 스티븐슨은 역시 집사장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대저택의 집사로 출발하여 달링턴 경 저택의 집사장에 이르게 됩니다. 주인의 명예를 지키고, 주인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언행을 단도리하는 스티븐슨 부자의 행적을 보면서 영국 명망가의 집사장이라는 직업도 극한직업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집안일을 돕는 많은 하인들을 제대로 통솔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입장을 고려하기 보다는 직업적 임무를 우선한다거나, 총무 일을 맡고 있는 캔턴 양이 내비치는 호의를 무시하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이 흐른 뒤에 그녀를 만나러 콘월까지 여행해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패러데이씨는 스티븐슨의 콘월 여행이 캔턴 양과의 재회를 통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게 발전해가기를 바라는 심정이었을까요? 미국식의 거침없는 농담이 영국식 사고로 굳어진 스티븐슨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진정한 의미의 집사가 존재하는 곳은 영국밖에 없으며 그 외의 나라들에는, 실제로 사용되는 칭호가 무엇이든, 오직 하인들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이따금 듣게 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편이다. 대륙 사람들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혈통들이기 때문에 집사가 될 수 없다.(58)”라는 대목을 보면 스티븐슨의 직업관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콘월로 가는 여행의 여섯째 날에 스티븐슨은 세월이 흘러 벤 부인이 된 캔튼양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를 통하여 옛날의 감정을 되살리지나 않을까 하는 통속적인 기대가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스티븐슨이 캔턴양의 편지에 적은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290)”라는 대목을 끄집어내 그녀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느낌을 전하지만, 그녀는 이를 부정하고, 스티븐슨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캔턴양이 스티븐슨과 함께 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한 적도 많았다는 고백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스티븐슨이 5일 동안 차를 몰고 콘월까지 간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요?


이 책의 원래 제목은 <The remains of the day>입니다. 이를 <남아 있는 나날>로 옮긴 것에 대하여 이야기가 있는 듯합니다. 사반세기 전의 일을 회상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고하고, 콘월로 여행하는 것까지도 사반세기 전에 떠나갔던 여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서 <그 날의 흔적>이 적절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는 듯합니다만, 그날의 흔적을 남긴 캔턴양이 언급한 남은 내 인생’, 즉 두 사람의 남은 나날들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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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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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서점에 관한 책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수필작가 스가 아쓰코의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을 읽은 것도 그런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작가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가 밀라노에 있는 코르시아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고, 서점의 운영 주체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주세페 리카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서점의 본래 이름은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입니다. 서점이 있는 세르비 수도원 앞의 대로라는 옛 거리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19세기 문호 알레산르로 만초니의 역사소설 <약혼자들>에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 거리는 저도 두 번이나 가본 적이 있는 밀라노 대성당 뒤쪽에서 약간 꺾여 동북쪽으로 뻗어나가는 길인데, 지금은 비토리오 이마누엘레 2세 거리(Corso Vittorio Emanuele II)로 바뀌었습니다. 세르비 수도원 역시 지금은 산 카를로 알 코르소 성당으로 바뀌었습니다. 서점은 산 카를로 성당의 귀퉁이를 빌어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점을 시작한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은 가톨릭 좌파라고 했습니다. 유럽사회에서 가톨릭 좌파의 뿌리는 13세기, 계급적인 중세 교회제도를 쇄신하려 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에 닿는다고 합니다. 가톨릭 좌파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최전성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등장한 모든 사회제도에 등을 돌리고 완고한 정신주의에 머물려고 한 가톨릭 교회를 현대사회에 편입시키려는 운동이 확산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1950년대 중반, 공업이 특히 발달한 이탈리아 북부의 몇몇 도시와 로마/바티칸에 대항의식이 강한 피렌체 등에서 소규모 출판물과 강연회를 중심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점이 출범하는데 중심역할을 한 사람은 이탈리아에서는 시인으로도 이름이 꽤 알려진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 신부였습니다. 2차대전 말기 독일군에 점령된 밀라노에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지하조직 운동을 펼쳤고, 종전 후에는 친구 카밀로 데 피아츠 등 동료와 함께 서점을 열었습니다. 서점은 새로운 신학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책들로 채워졌습니다. ‘오후 여섯시가 지나면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차례차례 서점을 찾아왔다. 작가, 시인, 신문기자, 변호사, 대학교수, 고등학교 선생, 성직자 등. 그중에는 가톨릭 세제도, 왈도파 프로테스탄트 목사도, 유대교 랍비도 있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젊은이가 있었다.(41)’


서점에 모여든 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정치논쟁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나날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교회 당국의 시각에서는 거슬리는 존재가 되었고, 다비드가 밀라노를 떠나도록 하는 조치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결국은 서점을 옮겨야 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하면서 이들과의 만남을 하나의 목표로 삼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에서는 작가의 진보적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기보다는 서점을 중심으로 하여 작가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 뿐 아니라 동유럽,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밀라노에 와서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덤으로 얻은 지식으로는 두루 살펴보지 못해 느끼는 못했던 밀라노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거리 풍경입니다. 대성당을 등지고 왼쪽 거리는 일상적이고 시민적이라면 오른쪽 거리는 귀족적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갈라테아와 스카라 극장 등 오른쪽 거리만 구경했던 것 같습니다. 왼쪽 거리에는 일상용품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비롯하여 생선가게, 채소가게 등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에 갈 기회가 있으면 찬찬히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정작 작가의 남편에 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뒤라서인지 남편을 비롯하여 다비드 신부 등 세상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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