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 르네상스 천재들의 치열한 각축전과 그들의 삶
로스 킹 지음, 신영화 옮김 / 도토리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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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서 시스티나 경당을 구경한 것이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바티칸 측은 천장화는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금하고 있습니다. 천장화가 그려진 예배당에 들어갔더니 걸음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 같이 목을 한껏 뒤로 꺾어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겨우 자리를 잡고 고개를 꺾어 천장화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천장화는 생각보다 작았고, 천장이 너무 높아서 그림의 세밀한 점을 구별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을 보지 않고서는, 한 사람의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상상할 수가 없다”라고 했던 괴테의 심중을 알 듯 말 듯합니다.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을 읽은 것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된 과정을 담았다고 해서였습니다. 스스로를 ‘르네상스 시대 덕후’라고 주장하는 김지윤 박사는 ‘천정화를 둘러싼 거대한 르네상스 시대의 대하드라마’라고 이 책의 성격을 정의합니다. 나아가 저자인 로스 킹의 작품들 가운데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은 ‘치밀한 고증을 거친 역사적 사실의 역동적인 배치는 이 작품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5쪽)’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바티칸은 14세기 중반부터 각종 미사와 의전을 마조레 경당에서 치렀는데, 15세기 들어 건물이 노후화되면서 212대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PP. IV; 재위 1471~1484년)는 마조레 성당을 헐고 새 경당을 지었다. 공사는 1473년에 시작하여 1483년 성모승천대축일에 축성되었다. 경당의 크기는 길이 40.23m 너비 13.41m로 구약성서에 기록된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의 치수에 따른 것이다. 이는 바티칸이 예루살렘을 대신하는 새로운 성전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새로 지은 경당은 교황의 이름을 따서 시스티나 경당(Capella Sistina)이라고 했습니다.

 

 

시스티나 경당 내부의 프레스코 벽화는 1480년, 교황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으로 라파엘로의 스승 페루지노, 미켈란젤로를 가르쳤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산드로 보티첼리, 루카 시뇨렐리 등 로렌초 데 메디치가 후원하던 피렌체 화가들을 보내 그렸다. 모세와 예수의 생애에서 공통된 부분을 골라 남쪽과 북쪽 벽에 각각 6개, 동쪽과 서쪽에 각각 1개씩 도합 14개의 성화를 그렸다. 다만 서쪽 벽에 그려진 ‘강에서 발견된 모세’와 ‘그리스도의 탄생’은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그리기 위하여 지워졌습니다.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비롯하여 카펠라 파파리스(Capella papalis), ‘교황의 제식에 참여하는 단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예배 장소인데, 미사에는 교황을 비롯하여 추기경, 구죠 등 200여명의 고위 성직자들이라고 합니다.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을 읽어보면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된 배경부터 모종의 음모가 개입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때까지 프레스코화를 그려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216대 교황 율리우스2세(Iulius PP. II, 재위 1503~1513년)는 미켈란젤로에게 자신의 영묘를 건설하는 일을 맡겼다가 중간에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그리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란 참 미묘한 힘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 시스티나 경당의 천정에는 파랑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금빛별을 그려 넣었던 것인데, 1504년 건물 구조에 문제가 생겨 천정에 금이 갔고, 보수작업을 하던 중에 천장화에 손상이 가해졌다. 교황은 이참에 천장화를 새로 그리기로 하고 미켈란젤로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교황은 12사도를 그려달라고 주문했지만, 창세기, 예수의 조상, 예언자와 시빌라, 이뉴디와 메달리온 등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내용을 반영하겠다는 미켈란젤로의 구상을 승인하여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사이에 율리우스2세 교황은 교황청이 권한을 강화하기 위하여 베네티아 공화국, 프랑스 등과의 전쟁에 나서는 등 우여곡절이 이어졌고, 건강상의 문제까지 겹쳐 천장화 작업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율리우스2세가 죽음을 맞기 전인 1512년 완성하여 교황의 축하미사 뒤에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의 상세한 설명은 나무위키의 <시스티나 경당; 시스티나 경당 - 나무위키 (namu.wiki)>을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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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넘브라의 24시 서점
로빈 슬로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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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희귀본 살인사건>과 닮은 듯 사뭇 다른 이야기입니다. 누리망 서점도 아닌 일반 서점이 24시간 문을 여는 사연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페넘브라의 24시 서점>의 주인공도 실직하는 바람에 새로이 직장을 구한 재넌이라는 청년입니다. <희귀본 살인사건>의 무대가 되는 갈라진 책등(The cracked spine)’에서는 일반서적도 취급하면서 희귀본을 구해서 인연이 닿는 사람들에게 연결해주는 서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싼 희귀본을 둘러싸고 일어난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페넘브라 24시 서점의 경우는 그야말로 비밀스러운 데가 많은 서점입니다. 물론 일반서적도 취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보다도 뒷방의 서가에 꽂혀있는 뒤쪽 목록과 찾는 사람들이 바로 비밀스러운 존재입니다. 특히나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이 뒤쪽 목록의 책을 살펴보거나 열어보면 안된다는 근무수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뒤쪽 목록과 그 책들을 읽는 사람들의 비밀을 이 서점에 취직한 재넌이 밝혀낸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줄거리입니다. 알고 보니 이런 서점이 샌프란시스코 외에도 세계 곳곳에 있을뿐더러 그 뿌리가 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저도 찾아가본 적이 있는 베네치아에 뿌리를 둔 이야기인 것입니다. 15세기 말 베네치아의 알두스 마누티우스는 출판업을 혁신한 인물로 꼽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많이 사용하지 않는 이탤릭체를 개발하는 등 인쇄, 출판과 관련한 혁신적인 일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재넌은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구글출신 사장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디자인 일을 시작하였지만, 불황을 맞으면서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경력도 쌓지 못하고 실업자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찾은 직장이 바로 페넘브라 24시 서점입니다. 주인공이 가진 다양한 인맥을 비롯하여 구글의 지원을 이끌어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이야기가 왜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사회적 분위기를 암시하는 서사구조는 15세기 베네치아에서 시작된 일을 미국 동부의 뉴욕에 있는 회사 페스티나 렌테가 이어받은 것은 전통을 고수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과제로 내려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신의 기법을 반영할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진 페넘브라씨가 샌프란시스코 서점을 책임진 것도 변화를 주도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했을 것입니다.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의미의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생문장인 “FESTINA LENTE! Cras ingens iterabimus aequor!(천천히 서둘러라! 그리하면, 내일은 큰 파도를 타리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궁금했던 점은 페스티라 렌테의 상징인 부러지지 않은 책등은 어떤 단어였을까 입니다. <희귀본 살인사건>의 무대인 ‘The cracked spine’이 갈라진 책등이라는 의미였던 것을 보면 ‘Uncacked spine’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페스티나 렌테에 속한 회원들의 고유번호, 예를 들면 6HV8SQ, 6WNJHY 등은 도서관에서 책을 분류하는 기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요약을 해보면 베네치아의 출판업자 알두스 마누티우스가 남긴 암호책을 해독하여 영생을 얻기 위하여, 500년의 이어온 고전적인 방식을 고수하려는 코르비나씨와 구글 등 새로운 문제해결방식을 적용하려는 페넘브라씨의 철학이 대결하는 양상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구글의 문제해결방식이나 부록처럼 등장하는 박물관의 유물관리 체계, 그리고 재넌이 해결했다는 알두스 마누티우스의 비밀이 완벽학 이해되지 않은 채 남아있어 조금을 깨름칙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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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심리학 실험실 - 집에서도 할 수 있는 50가지 초간단 심리실험
마이클 A. 브릿 지음, 류초롱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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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심리학 분야가 주목받고 있는 듯합니다. 일상의 긴장으로 인하여 오는 심신의 문제를 심리상담을 통하여 해결하려는 경향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인간의 심리의 본질을 살펴보려는 다양한 실험들이 있습니다. 이런 실험들은 일정한 조건을 갖춘 장소에서 심리학 전문가들에 의하여 주도되고, 그 결과는 전문적인 학술지에 발표되곤 합니다.

 

<방구석 심리학 실험실>은 기술과 학습의 접목을 고민하는 심리학박사 마이클 A 브릿이 쓴 책입니다. 저자는 뉴욕주립대학에서 심리학박사를 마치고 마리스트대학에서 심리학 종신교수로 일했다고 합니다. 실험수업과 학습과정에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관한 앱을 다수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방구석 심리학 실험실>에서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심리학 실험 50가지를 소개합니다. 집에서 하는 실험이라서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많이 부족한 점이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통제집단이나 공정한 관찰자가 없을 수밖에 없고, 변수가 분명치 않거나 측정되지 않으며, 따라서 통계적으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실험과정을) 주의 깊게 관찰함으로써 ‘왜’에 대한 질문에 좀 더 확신을 갖고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실험에 대하여 설명하기에 앞서 심리학 실험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설명합니다. 이 책에서도 일부는 소개되어 있는 이상한 연구, 놀라운 연구, 기발한 연구, 중대한 연구의 사례들을 먼저 소개합니다. 이어서 인지부조화, 사회적 역할, 학습된 무기력, 로르샤흐 그림검사, 거짓말 탐지기, 행동수정 등, 심리학 실험의 개념들을 설명합니다. 이어서 사전동의서, 철회의 자유, 사후설명과 후속조치 등 참가자를 존중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조항들을 설명합니다. 실험으로 인하여 겪을 수 있는 위험과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고려하여 실험이 윤리적인가를 따져봐야 하고, 심리학 실험의 윤리적 딜레마를 설명합니다.

 

첫 번째 실험은 이반 파블로프가 처음 해본 고전적 조건형성을 살펴보았습니다. 큰 상자 안에 제목이 있고, 그 아래에는 저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붙여놓았습니다. 그리고 상자 아래에는 심리실험의 개념, 연구의 이름, 이 실험을 처음 완성한 과학자 혹은 연구자의 이름을 적어놓았습니다. 본문의 첫 부분은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심리실험에 뽑은 배경을 요약해두었습니다. 그리고 원래실험의 개요를 정리해놓았습니다. 이어서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실험의 개요를 설명합니다. 준비물, 실험방법을 설명하였는데,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실험을 하여 비교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당연히 실험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를 적었고, 실험의 의미로 마무리합니다.

 

두 번째 실험인 댄 애리얼 리가 설계한 일관된 우연이라는 실험으로 앵커링 효과를 활용한 “예상보다 돈을 많이 쓰게 되는 이유”와 같은 심리실험은 집에 온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해보면 재미있을 내용입니다. 하지만 20명 가까운 참가자가 필요하고 ‘너 진짜 멍청하다’라는 부제가 달린 것처럼 실험의 결과에 따라 참가자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만한 실험을 집에서 간단하게 하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억과 관련된 심리실험은 저도 집이나 직장에서 해보려 합니다. 예를 들면, 네 번째 실험인 ‘당신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좋다’거나 다섯 번째 실험 ‘목격의 재구성’, 여섯 번째 실험 ‘문턱을 넘으면 까먹기 일쑤’ 등입니다.

조너선 D 스펜서가 쓴 <마테오 리치의 기억의 궁전>과 같은 기억에 관한 책이나 기억력 시합 등의 참가자들이 이야기하는 장소 기억법에 관한 실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장소 기억법을 훈련하는 방법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보니 기억력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써보려 하는 기억에 관한 책에서도 다루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심리학 실험에 관심을 가진 분들도 읽어보시고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실험을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실험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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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라이프
윌리 블로틴 지음, 신선해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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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30년이나 지났습니다만, 미국에서 공부할 때 차를 몰고 가족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 여행을 오려면 비용이 많이 들 터이니,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선생님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풍족하지 않은 생활이었기 때문에 경비도 빠듯하게 써야했습니다. 식사는 쌀과 반찬을 준비해서 직접 해먹었습니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여행에서 추가로 드는 비용은 기름 값과 숙소비용입니다. 기름 값도 거의 고정비용이라서 숙소의 비용이 가변적인 것이었습니다. 좋은 숙소에 들면 좋지만 비싸고, 허름한 숙소는 묵는데 불편하고 위험할 수도 있어서 적당한 수준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시세로 40불 내외의 숙소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시골의 한적한 곳에 있는 모텔들은 방 앞에 바로 차를 댈 수가 있어서 짐을 옮기기도 수월합니다.


시골에 있는 모텔을 이용하다보면 한국 사람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 미국 사람들이었는데,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1시간 내외로 모텔에 드는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모텔 라이프>를 고른 것은 그때의 궁금증을 푸는데 도움이 될까 싶었던 까닭입니다. 책의 뒷장에 적힌 모텔을 전전하는 비루한 청춘, 하지만 어딘가 빛은 있다라는 구절이 와 닿았던 것입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앞부분은 공감이 가지만 뒷부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모텔 라이프>는 일종의 거리의 인생을 다룬 영화(road movie)의 소설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부류를 모노미스(monomyth)라고 한다는데, 딱 맞는 우리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나 호머가 남긴 오디세이아와 같은 영웅신화에서 나온 단어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텔 라이프>에 등장하는 인물을 영웅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 싶습니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에 담긴 서사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텔 라이프>의 주인공 프랭크와 형 제리 리는 결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가출하고, 어머니는 두 아들을 키우다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있었지만, 두 아이를 거둘 형편이 안됐고, 입양기관의 위탁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정도의 도움만 얻었을 뿐입니다. 결국 두 아이는 어머니가 남긴 약간의 유산으로 모텔을 전전하면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마약까지는 손을 대지 않았던 것 같지만, 술에 의지하여 버티는 인생이 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미국에서 살아나온 것이 천행이다 싶습니다. 주인공 형제는 물론 등장인물 상당수가 일상적으로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리 리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자전거를 타는 소년을 치어 숨지게 만들었습니다. 소년을 구호하지 않고 차에 태우고 다니다가 유기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는 동생과 함께 도피에 나섰지만 두 사람은 숨어 살 곳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제리 리는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다리를 쏘고 말았습니다. 자살을 결행할 용기도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입원치료를 받다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프랭크와 함께 병원을 탈출하여 모텔을 전전하다가 결국은 상처가 덧나서 죽음에 이르기는 합니다.


<모텔 라이프>에서 딱 하나 새겨둘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프랭크가 일하던 중고차 업체 사장 얼 헐 리가 프랭크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자네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자네가 원하는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라네.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 자네가 살고 싶은 곳을 상상해보게. 목장? 해변의 집? 전망이 끝내주는 건물 꼭대기의 고급 주택? 그게 어디든 상관은 없지만 자네가 완벽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이라야 해.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면 그곳에 가는 거지. 그럴싸한 곳을 찾았는데 나중엔 위로가 안된다? 그럼 그냥 바꿔. 상황에 따라, 자네 기분에 따라 바꾸는 거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행운이 저절로 들어올 걸세. 근사한 장소, 자네에게 힘을 주는 곳,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곳을 마련하게. 그러면 모두가 자넬 엿 먹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떠나지 않을 때마다, 거기에 가면 돼.(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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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법을 잊었다
오치아이 게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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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의 김언호 대표가 쓴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을 읽다가 눈에 띈 <우는 법을 잊었다>를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오치아이 게이코 씨는 작가이자 어린이 책 전문서점 크레용 하우스와 여성책 전문서점 미즈 크레용 하우스를 운영하는 분입니다. 이분이 여성운동가인 것보다는 치매로 진단된 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간병했다고 해서 읽게 된 것입니다. 작가가 발표한 작품목록을 보니 <어머니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나의 간병 일지>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우는 법을 잊었다>에는 작가의 어머니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운영하는 서점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사이에 연인을 만나고 사별한 일이 짧게 소개됩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집에서 간병한다는 그녀에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머니 간병을 집에서 하다니, 페미니스트인 네가 왜? 성별 분업을 노인 간병에 적용하는 거야? 네가 줄곧 반대하던 일이잖아. () 집에서 부모님 수발드는 건 페미니즘에 반한다고 생각해, 나는(46-47)”


옛날에는 치매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치매 환자를 집에서 모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게이코 씨처럼 직업을 가진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다행히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퇴근해서는 자신이 어머니를 돌보는 방식으로 간병을 했고, 주치의가 정기적으로 왕진을 와주는 일본식 치매환자 간병체계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왕진을 나온 의사도 집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는 게이코 씨의 입장에 찬성하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사실 게이코 씨가 어머니 간병에 나선 것은 모녀에 얽힌 특별한 사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게이코 씨는 어머니가 22살 때 미혼모로 낳았던 것입니다. 외할머니 역시 서른 살 즈음에 사별하고 어렵게 네 딸을 키워왔던 것인데 맏이가 미혼모로 딸을 낳았으니, 모녀 삼대의 삶은 신산하기만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에서 이런 대목도 썼을 것 같습니다. “이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남자는 모른다. 남자가 만들어놓은 틀을 믿고, 그 안에서 충실하게 사는 여자들 또는 외면하는 억압.. 그래서 딸인 나는 어머니가 내면에 쌓아놓았던 피로를 밖으로 표출하는 데 열중했는지도 모른다.(41)”


세상의 시선이 냉냉할수록 모녀 사이는 긴밀해져갔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어머니보다 먼저 죽으면 안된다 생각했던 게이코 씨지만,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면서부터는 다른 이유로 살아야 하만 했습니다.


그렇게 모시던 어머니가 숨을 거두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유로워졌다. 이제 고통을 겪을 일도 없다. 죽음이 어머니를 자유롭게 했다. 어머니는 삶을 내려놓고 자유를 얻었다.(176)” 게이코 씨가 우는 법을 잊었다고 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데서 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어머니 생전에 동거했던 남자가 오토바이 사고로 갑자기 죽음을 맞은 데서 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고가 있을 무렵 게이코 씨는 광장이라는 서점을 확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울 여유도 없었다고 합니다. 직원들에게 슬픔을 보일 수는 없었다는데, 직원들 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었다는 심경이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어렸을 적 겪었던 동무와 장성했을 때 사랑하는 남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나이가 들어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게이코 씨는 죽음을 애도할 여유나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서점을 중견 직원에게 맡기고 나서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제 울어도 돼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게이코 씨는 우는 법을 잊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울기를 참아온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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