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열두 명의 현자
윌리엄 글래드스톤 지음, 이영래 옮김 / 황소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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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말론은 묘하게도 사람들을 혹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가 봅니다. 개신교 일부에서 선택받은 자들이 하늘로 들려올라간다는 휴거가 각각 19921028일에 그리고 2011521일에 있을 것이라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열두 명의 현자>는 마야문명에 나오는 지구의 종말을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마야력이 가르키는 20121221일은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어떠한 일을 하지 않으면 지구의 종말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무슨 일을 맡은 위대한 인물 맥스 도프는 1949312일 미국 뉴욕주의 테리타운에서 배태되었습니다. 맥스 도프의 부모 허버트와 제인은 특별한 밤을 맞아 맥스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19491212일에 맥스 도프는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1965219일 심한 감기로 병원을 찾았던 맥스가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주인공이 죽는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죽음이 바로 맥스가 해야 할 일을 예고하는 장치였던 것입니다. 주치의 그레이박사가 적절한 시점에 맥스를 회생시켰던 것입니다. 임사체험을 하는 동안 맥스는 사랑으로 가득한 빛의 존재 열두 명을 만났는데, 마지막 한 사람, 달리는 곰(Running Bear)의 이름만 기억에 남았습니다.


맥스는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에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출판사에서 일을 하던 중에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조지 하디로부터 <고대의 우주인을 찾아서>라는 책에 언급된 장소를 찾아가는 기록영화를 제작하는 작업에서 일정을 조정하는 일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게 됩니다. 페루의 트루히요를 찾아간 맥스는 마리아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임사체험에서 본 열두 개의 이름 가운데 첫 번째 이름이었습니다. 깨어났을 때는 기억도 하지 못했던 이름이 그녀로부터 명함을 받았을 때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는 것도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든 소설이니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마리아를 시작으로 맥스는 살아가는 동안 임사체험에서 보았던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게 됩니다. 19736월에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유츠키 하스포(2), 7월에는 인도의 델리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브라마 마하르스(3), 8월에는 일본에서 미야코 미쓰이(4)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1996년까지는 놀이동산에서 청룡열차를 타듯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내를 따라간 명상강습에서 만난 네팔의 수도자 린포체 구아트마 치바(5)를 만나면서 맥스의 현인 찾기가 재개됩니다. 1999~2001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베이징을 방문한 맥스는 초선팍(6, Cho Sun Pak)을 만납니다.(이 책에서는 중국인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한국인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1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앨런 테일러(7) 박사를, 2004년에는 이스탄불에서 에롤 레수(8), 20125월에는 후안 곤잘레스 아코스타(8)와 칠 캠피스터(10), 그리고 베트남 여성 멜로디 존스(11)를 만납니다. 그리고 12번째 달리는 곰, 조엘 시츠를 20126월에 만나게 됩니다.(사실 영어로 달리는 곰이라고 옮겼지만, 북미 원주민인 경우는 부족마다 그들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부족의 이름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달리는 곰의 주장에 따라서 2012811일에 멕시코 최남단 치아파스에서 멀지 않은 고대 도시 이자파에 열두 명의 현인이 모이기로 합니다. 그 사이에 고인이 된 브라마 마하르스를 대신하여 손자인 C.D.가 참석하게 됩니다. 이들은 열두개 인종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해뜨기 전에 타우물코 화산의 기슭에 도착한 이들이 정오에 이를 무렵까지 정진을 한 끝에 열세번째 사도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열세번째 사도는 열두 사도에게 숙제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과연 1221일까지 무슨 일을 해야 하고, 그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마야력의 신비함에 기대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까지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왜 조선족은 없었을까 의문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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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일생 - 책 파는 일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에 관하여
야마시타 겐지 지음, 김승복 옮김 / 유유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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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문을 닫는 대형 서점까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줄 알았더니 국민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동네서점들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규모가 작은 서점들이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참 다양한 책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쓴 책들도 많다고 합니다. 록 밴드 활동을 하다가 책방을 낸 하야카와 요시오가 쓴 <나는 책방 아저씨>가 대표적인데, ‘조그만 동네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고단함, 한심함, 출판업계에 대한 불만과 분노 그리고 때때로 작은 기쁨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고백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서점의 일생>은 서점 주인이 쓴 책방 경영이론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을 쓴 야마시타 겐지는 교토에서 가케쇼보라는 작은 책방을 열어 11년이 넘게 운영하다가 호호호좌라는 새로운 형태의 서점으로 옮겨가기까지의 과정, , 서점을 경영하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서점을 경영하시는 분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어렸을 적부터 서점에서 책읽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대학입시에 실패하자 집을 나와 가와사키에 도착해서 일용 잡급직을 전전하다가 결혼도 하고, 헌책방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큰 딸이 태어나면서 고향인 교토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고향에서도 서점에 취직하여 일을 하던 중에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보험금을 물려받게 되면서 자신의 서점을 열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서점을 열기까지 서점 주인이 살아온 이야기였다면, 여기부터는 제목대로 서점의 일생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서점을 새로 열 때 책을 공급받는 방법에서부터 서점을 경영하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사항들도 꼼꼼하게 안내합니다. 서점의 내부와 외부의 장식은 물론 책과 함께 음반도 판매하기로 합니다. 직원들을 뽑아 가게 운영에 대한 의견을 조율하면서 서점운영이 궤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신간에 이어 헌책도 판매하기 시작하고, 서점에서 공연을 열기도 합니다.


이 서점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가케쇼보는 기본적으로 일반 손님이나 단골, 스태프, 뮤지션, 친구 등의 목소리나 행동을 반영시켜 진화해온 가게다.(169)”입니다. 기타를 놓아두고 자유롭게 치세요라고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던 일본 사람들이 변한 것도 똑똑전화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똑똑전화기를 들여다보느라 책 읽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가케쇼보에서 한 특별한 행사는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유명가수 오자와 겐지씨와 스카이프로 연결하는 대담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40여명이 서점에 모여 대담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우리 일상에 숨어있는 유해물질>을 출간한 뒤에 강남에 있는 서점에서 저자강연을 했는데, 열 명도 모이지 않았던 것과는 비교되는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거나 가케쇼보 서점이 10년째 들어서면서 운영의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 들면서 문을 닫을 결심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점원들을 비롯하여 지인들이 갑작스러운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1년을 더 하면서 일종의 서점을 재건하기 위한 과정에 돌입합니다. 그 결과가 호호호좌라는 새로운 형태의 서점으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카페 형식의 서점인데, 카페를 취재하여 호호호좌라는 이름의 책을 출판하였다고 합니다. 그 책의 후기를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씨가 썼다고도 했습니다. 저도 그녀의 단편집인 <막다른 골목의 추억>, <키친>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새롭게 문을 연 호호호좌는 책뿐만 아니라 센스있는 다양한 상품들을 팔고 있습니다. ‘책만 파는, 책에만 기대지 않는 가게를 연 것입니다. 동네서점을 운영하면서 한계를 느끼는 서점 주인장들이 참고할 만한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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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 서점은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한밤의 별빛이다
김언호 지음 / 한길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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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의 책읽기 화두는 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점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서점의 일생>, 서점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다룬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 있는 특별한 서점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까지 말입니다.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은 출판사인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가 구경한 여러 나라의 서점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진 23개의 서점을 직접 찾아가서 서점 관계자와의 만남을 통하여 서점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유럽의 7개 서점, 미국의 4개의 서점, 중국의 6, 대만의 1, 일본의 2개 그리고 국내의 3개 서점 혹은 서점집단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은 작가의 전작인 <세계서점기행>에서 다루었던 서점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보완한 것으로 보입니다. 책의 두께로 보아 유럽과 미국의 서점들, 동아시아 국가들의 서점들로 각각 묶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저자가 찾아간 서점들의 공통점은 따로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몇몇 서점의 경우는 다양한 서구매체에서 추천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23개의 서점들 가운데 제가 가본 서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서점에 들어가 분위기에 빠져보기도 합니다. 미국의 마이애미에서는 작은 동네서점인 북스앤북스서점을 구경했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힌다는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 서점을 구경했습니다.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는 성니콜라스 교회 아래 있는 라마투드라는 이름의 고서점도 찾았고,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의 명물 아틀란티스 서점을 보았습니다. 제가 찾아갔던 서점들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 그런 장소였다는 생각입니다.


최근에 읽은 스가 아쓰코의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의 배경이 되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대성당 근처에 있는 코르시아 서점, 야마시타 겐지라는 분이 일본 교토에서 서점을 경영한 이야기를 담은 <서점의 일생>에 나오는 가케쇼보, 호호호좌 등의 서점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점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누리망의 활성화되면서 출판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집에서 편하게 받아볼 수 있다는 편리성 등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점에 관하여 인류의 종이책에 대한 편애는 유전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인터넷이 비록 위세를 떨치고 있기는 하지만 종이에 인쇄하는 전통적인 책의 존재양태는 인간의 심미적 욕구와 일치된다.(237)”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누리망에서 서지사항을 찾아보는 것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동네책방에 나가서 나와있는 책들을 죽 훑어보고 일부를 직접 읽어볼 수 있는 장점은 누리망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대형서점들이 문을 닫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급변하는 세태를 어떻게 따라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교토의 가케쇼보의 주인 야마시타 겐지씨는 <서점의 일생>에서 경영의 한계를 타개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점이 기왕에 해왔던 기능을 온라인으로 확장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민영 오프라인 서점은 몰락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살아남은 서점은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예컨대 카페와 문화상품으로 영역을 넓히는 것입니다.(275)”라는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실 저 역시 서점에 나가서 책을 사본 것이 꽤 오래되었습니다. 동네서점이 조금 멀기도 했지만 대형서점 역시 출퇴근 동선에서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버릇입니다. 예전에는 집에 가는 길에 들어 신간도 구경하고 관심분야의 책도 눈에 띄면 자연스럽게 구매하기도 했던 습관이 사라진 것입니다. 누리망 서점을 통하면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었던 것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다시 동네서점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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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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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죽는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어 죽는 일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죽음이기에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은지 가늠이 서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혹은 멋진 죽음을 맞기 위한 준비에 적극적인 사람도 그리 흔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아주 편안한 죽음>을 고른 것은 죽음에 대한 공부의 일환입니다. 1963년 작가의 어머니가 욕실에서 넘어져 대퇴골 목 부분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말기 암이 발견되었고, 그로 인해 장폐색증이 생겨 죽음에 이르는 동안 환자, 가족, 의료진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섬세하고도 담담한 필치로 적어내려 갔습니다. 성장과정에서 부모님과 자매 사이의 관계도 돌이켜보았는데, 아마도 임종에 즈음하여 어머니와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이 아주 편안한 죽음이었다고 작가는 술회했습니다만, 19세기 중반의 프랑스의 병원 풍경과 21세기 초반의 그것은 사뭇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의료진은 물론 가족들 모두 말기암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자에게 감추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는 재수 없게 넘어져 고생하고 있고, 조만간 퇴원하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또 그래야 한다는 집념을 보였습니다.


병원 근무자들은 환자의 존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진료의 편의성만을 중시했던 것 같습니다. “물리 치료사가 침대로 다가와 이불을 걷어 올리고는 엄마의 왼쪽 다리를 붙잡았다. 그러자 잠옷이 벌어지면서 얼떨결에 쭈글쭈글하고 잔주름이 진 복부와 한 오라기의 털도 없는 음부가 드러났다. ‘이제 내가 부끄러워할 건 아무 것도 없잖니.’ 엄마는 당황한 듯 말했다.(25)”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 오래 입원하셨는데, 간병하는 분에게 속살을 보여야 하는 상황을 아주 치욕적으로 생각하셨습니다. 환자중심진료를 내세우고 있는 요즘에는 환자의 존엄성을 지켜드리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관하고 있는 환자경험평가가 시작되면서 그런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환자에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감춘 것도 그렇고, 개복수술을 하는 과정에서도 환자에게는 복막염을 치료하기 위해서 수술한다고 속인 것입니다.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병명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가 역시 종양으로 소장이 막혔다고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환자에게 행하는 시술의 목적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지 않은 듯합니다. 작가는 주치의인 듯한 N박사에게 왜 관을 삽입하는 겁니까?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면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머니를 괴롭히는 거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겁니다.’ 그는 문을 밀치면서 들어가 버렸다. () ‘새벽까지만 해도 어머니께서 고작해야 네 시간 정도 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제가 다시 살려 드린 겁니다.’(36-37)”


과연 N박사는 죽어가는 사람을 되살린 것이 맞았을까요?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이 책의 제목대로 작가의 어머니는 아주 편안한 죽음을 맞은 것일까요? 대퇴골 목 부분의 골절을 입어 입원한 병원에서 뒤늦게 발견된 암으로 인한 소장폐색을 꼭 수술해야 했을까요? 수술 후에 수술부위가 아물지 않아서 고통을 받다가 임종을 맞은 것을 보면, 수술 없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통증관리나 수액요법 등으로 편하게 해드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환자가 비겁하게 나도 모르게 수술을 하다니!(67)’라고 화를 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수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환자 혹은 환자 가족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 수술을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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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 - 열정적인 합리주의자의 이성 예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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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과학적 논증을 통하여 증명한 과학자입니다. 아마도 그 논증을 기대하면서 고른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은 리처드 도킨스의 두 번째 수필집으로, 30여년 간에 걸쳐 강연회, 행사 개막식, 각종 매체, 심지어는 장례식과 추모회 등에서 이야기한 내용 등에서 고른 41편의 짧고 긴 글들을 8개의 묶음으로 나누어 실었습니다. 내용은 복잡한 진화론에서부터 과학자의 가치관, 종교, 미래 예측, 개인적인 삶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의 원제목은 <영혼 안의 과학(Science in the Soul)>입니다. 이 제목은 마이클 셔머의 책 <과학의 영혼(The Soul of Science)>에서 과학에 영혼을 불어넣은 리처드 도킨스에게 바친다는 헌사를 달았던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책을 옮긴이는 이 책에 묶인 글들은 집필 시점이 30년에 걸쳐 있는 과거의 글들이지만 전혀 낡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을 적대시하는 비이성적 사고가 팽배한 탈진실 시대, 새로운 유행병과 기후변화 같은 긴급한 과제에 대처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는 도킨스 같은 이성의 변호인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 않을까?(629)”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발표한 글들 가운데 일부만을 골라서 책으로 엮어내는 경우에는 읽는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각각의 글을 개별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겠지만, 책읽기를 산만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느낌은 편집자가 편집자 서문의 마지막 부분에 적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듯하여 아쉽습니다. 바로 이 대목입니다. “이 책에 실린 어느 에세이에 조화를 이루는 부분들은 서로가 존재할 때 번성하고, 여기서 조화로운 전체라는 환상이 생겨난다라고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는 상태를 이 책이 구현한다면, 이 책의 또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31)”


편집을 맡은 질리언 소머즈케일즈는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의 편집을 맡았던 인연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런 인연으로 편집자 서문을 적고, 각장의 앞부분에는 해당 장에 실린 글들의 성격을 요약하는 글을 붙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1과학의 가치관()’에 묶인 글들은 이것은 과학을 위한 선언문이자 그 대의명분을 위해 무장하라는 명령이다라고 요약합니다. 상당히 긴 과학의 가치관과 가치관의 과학은 일견해서는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개념의 차이를 분명하게 정리해놓았습니다. , 과학의 가치관에는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가치관이라는 약한 의미와 과학 지식이 마치 성서라도 되는 양 거기서 직접적으로 어떤 가치관을 유도한다는 강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가치관의 과학은 우리의 가치관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2무자비의 극치에서는 진화론과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도킨스가 어떤 글에서 진화는 무자비의 극치인 자연선택에 의하여 일어난다라고 언급한 데서 가져온 제목으로 보입니다. “그 이론(진화론)이 두 과학자(다윈과 월리스)의 보기 드문 신사적 행동으로 시작되었는지, 그 이론이 어떻게 작동하고 그 힘과 타당성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발전했고 어떻게 오해되고 있는지 보여준다(166)”라고 요약하였습니다. 진화론의 개념은 다윈과 월리스가 독자적으로 설계했지만, 완성단계에서 월리스가 다윈에게 이론에 대한 자문을 요청하였고, 다윈은 진화론을 두 사람의 공동의 업적으로 하는 신사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미적분의 개념을 누가 처음 완성했는가를 두고 영국이 뉴턴과 독일의 라이프니츠가 오랫동안 시비를 가렸던 것과 대조적이라 하겠습니다. 3부에서 7부까지의 글들은 종교와 신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신의 존재에 관한 과학적 논증이 많이 아쉬웠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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