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홍신 세계문학 16
펄 벅 지음, 이강빈 옮김 / 홍신문화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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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의 <대지>를 읽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를 무대로 해도 전혀 낯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사를 지어 근근이 먹고 사는 왕 룽이라는 청년은 성안의 황 부자집 종 오란과 결혼하는 날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옛날부터 사람을 잘 들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만, 왕 룽과 오란은 열심히 농사를 지어 황부자네 논을 살 수 있었습니다. 비도 적당한 때에 내려주어 풍년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풍족한 삶을 내어주지는 않습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처럼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지면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의 사태에 이르면서 왕 룽은 남쪽에 있는 도시로 떠나기로 합니다. 작가가 이야기의 무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습니다만, 안후이(安徽) 성의 동쪽에 있는 장쑤(江蘇) 성으로 옮겨간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400리 길을 남쪽으로 갔다고 하니 안후이성의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장쑤성에 있는 난징이나 쑤저우 혹은 상하이까지 내려간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남쪽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는 동안 비럭질도 하고 인력거도 끌어 자선가가 베푸는 급식소에서 끼니를 이어가던 중에 일어난 난리 통에 사람들에 휩쓸려 들어간 부잣집에서 은과 패물을 얻는 횡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왕 룽 일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몰락한 황부집의 논을 사들여 지주가 되었습니다. 왕 룽이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은 오란을 부인으로 맞은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란은 세상의 온갖 쓴맛을 보면서 성장한 탓에 주관이 뚜렷한 여성이었지 싶습니다.


졸부가 되면 흥청망청하다가 다시 몰락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왕 룽 역시 찻집의 기녀 렌화를 들여 첩을 삼기도 합니다. 농한기가 문제인 것이지요. 하지만 왕 룽은 여느 졸부와는 달리 언제까지 첩에 빠져있지 않고 다시 땅으로 돌아갑니다. 땅에 대한 왕 룽의 생각은 어쩌면 우리네 농부와 닮았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두 아들이 아버지의 땅을 팔아 나누자는 의논을 하는 대목에서, “땅을 팔기 시작하면 집안은 마지막이야. 우리는 땅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땅을 갖고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땅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말도 있지요. 누구나 제가 할 몫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거리입니다. 큰 아들은 문약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잇속을 챙기는데 선수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아버지가 일군 땅을 이어받아 농사짓기를 거부하고 군인이 됩니다. 어쩌면 둘째 하나만 왕 룽이 생각한대로 커갔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자녀들이 반목하는 대목, 특히 첫째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는 노골적인 반목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오란이 없어 상황이 더 나빴을 수도 있습니다. 왕 룽은 농사짓는 일 이외에는 크게 관심을 쏟지 않는 듯합니다. 집안의 대소사도 혼자 생각에 따라 결정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메뚜기 떼가 날아들면 땅 위에 남아나는 것이 없다는 소식을 듣곤 합니다만, 메뚜기 떼의 침입에 맞서는 마을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대목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안후이 성은 양쯔(揚子)강의 하류에 있어 홍수 피해를 입는 대목이 이해되지만 가뭄에도 속수무책이라는 대목은 조금 이해되지 않습니다. 왕 룽이 사는 곳에도 마적이 출몰한다는 대목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북쪽 지방에서나 세를 떨쳤다고 생각한 마적이 중국 땅 어디에서도 활개를 쳤던 모양입니다.


오란이 중병에 들었을 때 부른 노의사가 맥을 짚고 진단을 내리는 대목입니다. “비장이 부었고, 간장도 나쁘오, 복부에 사람 머리만한 돌이 있소. 위장도 헐었소. 심장은 겨우 움직이는데 어쩌면 회충이 있는지도 모르겠소.” 요즈음 의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환자가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완쾌를 보증하는데 은전 천 닢을 요구했습니다. 당시에는 완쾌를 보증한 환자가 죽으면 의사가 처벌을 받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던가 봅니다.


땅에 모든 것을 맡겨야 했던 그 옛날의 풍경을 되새겨보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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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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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제가 오랫동안 쥐고 있는 화두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기억을 어떻게 이야기 거리로 삼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쓰려면 아무래도 줄거리 혹은 작가가 깔아둔 장치에 대하여 언급할 수밖에 없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분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에는 다른 분의 독후감을 피하는 편입니다.


사실 이 책은 기억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책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제목은 <판도라의 상자(LA BOITE DE PANDORE)>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더 이야기와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르네 톨레다노선생은 과학을 가르키는 동료여교사 엘로디와 함께 유람선 판도라의 상자에서 열린 최면서 오팔의 공연을 보러갔다가 오팔의 최면술의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시작됩니다. “당신이라고 믿는 게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13)” (출판사에서는 최면술사의 상투적인 꼬임말에서 이 책의 제목을 가져온 것은 아닐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전생을 만나는 최면이기 때문에 잊힌 기억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지금도 재방송이 나오면 열심히 보는 연속극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 나오는 저승사자는 사자를 저승에 보낼 때 차를 내놓습니다. 이승의 기억을 모두 지워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팔은 르네에게 최면을 걸어 기억의 심연에 잠겨있다는 전생들을 만나도록 해줍니다. 르네는 112번째 생을 살고 있습니다. 첫 번째 만난 전생의 비참한 최후에 놀라 공연장을 뛰쳐나온 르네는 살인을 저지르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오팔을 다시 찾아가 자신의 전생을 뒤져보기로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르네는 첫 번째 전생, 12천 년 전에 아틀란티스에서 살았던 게브를 만나게 됩니다. 대서양에 있는 아틀란티스 섬에 살고 있는 게브는 인간보다 열일곱 배나 큰 거인이었습니다. 전해지기는 아틀란티스는 대서양에 있던 대륙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섬으로 이야기됩니다. 물론 화산의 폭발로 섬이 송두리째 사라진다는 것은 전해지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사라진 전설의 아틀란티스 문명이 실재했다고 생각한 르네는 전멸 위기에 있는 아틀란티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그들이 실재했다는 증거를 남기도록 하고, 그것을 발견해내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르네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쫓기는 신세가 됐고, 르네의 망상을 걱정한 엘로디는 르네를 정신병원이 입원시켜 살인사건의 용의점을 해명하려는 기획을 했지만 오히려 정신병원에서 전기충격치료를 받게 됩니다. 치료결과 기억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르네는 전생의 도움을 얻어 정신병원을 탈출하고, 오팔을 만나 함께 이집트로 도망칩니다. 아틀란티스의 게브를 이집트로 이주시켜 그곳에서 만나려는 의도입니다.

이집트에 도착한 르네는 게브가 남긴 아틀란티스의 유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증거물을 세상에 알려 고고학계의 공인을 받는 과정은 수월치 않았습니다. 결국 엘로디의 도움을 청하게 되고, 엘로디는 대학시절 친구인 고티에와 함께 르네가 발견한 아틀란티스의 유물을 생방송으로 세상에 알리기로 합니다.


하지만 생방송 중계진이 현장에서 발견한 것은 어지럽게 찍한 발자국 말고는 파피루스 기록도 아틀란티스 거인의 유해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집트 경찰이 몰려와 일행은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고 말았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점은 현장이 누군가에 의하여 파손되었다면 게브와 다시 연결하여 유물을 남기는 장소를 변경하는 등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도 설명되지 않았구요.


작가는 세상에 알려진 전설과 신화를 꿰어 맞췄지만 조금은 거친 느낌이 남았습니다. 최면을 통하여 전생을 만나고, 그들의 능력을 빌어서 현생에서 써먹는 것도 너무 소설적이라서 쫌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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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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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탐사보도를 해온 일본의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씨의 다양한 글 가운데 여행에 얽힌 글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기행문이라기보다는 여행을 하면서 가졌던 다양한 생각을 기록한 글들이기에 사색 기행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합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중국 북경에 가서 뭔가를 도모한 아버지 덕분에 한 살 때부터 여행을 그것도 해외여행을 떠났다니 작가도 대단한 역마살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작가는 어느 정도 큰 나라의 대부분은 가보았다고 하는데, 여행한 거리가 지구를  바퀴 돌 정도라고 하니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젊어서는 배우기 위한 목적의 여행이었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취재여행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세계 인식은 여행에서 시작된다’라는 제목의 서론에서는 자신의 여행에 얽힌 사연들을 개괄하였습니다. 특히 40년생인 작가가 대학에 다닐 무렵에는 일본 역시 허가를 받아야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반핵운동을 기획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반핵운동가들과 연대를 꾀하는 진취적인 면모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대양주를 제외한 5개 대륙을 여행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1부 무인도의 사색, 2부 ‘가르강튀아 풍’의 폭음폭식여행, 3부 기독교 예술 여행, 4부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 5부 팔레스타인 보고, 6부 뉴욕연구 등으로 구분된 모두 14꼭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특히 2부에서는 포도주와 치즈의 본고장 유럽을 여행하면서 포도주와 치즈에 관한 고급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를 공부하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글입니다.

 

3부는 기독교와 관련된 글인데 그리스의 아토스반도와 남아메리카의 이구아수폭포를 찾았을 때 가졌던 기독교에 대한 생각들을 적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짧은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4부는 대학에 다닐 적에 유럽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핵의 위험을 알린 것은 일본이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을 맞아 피해를 입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피폭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 해서 유럽사람들에게 반핵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성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아마도 작가 개인의 삶에서 커다란 변곡점이 되는 여행이었을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는 생각보다 뉴욕이 안전한 도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1987년의 뉴육에서 에이즈에 관한 이야기를 별도의 장으로 구성했는데, 에이즈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잘 기록하였습니다. 에이즈라는 질병이 확인된지 얼마되지 않은 때이고,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는 약제가 개발되기 전으로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충분히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의 글을 읽고서 크게 느낀 점은 첫째 편견을 가지고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정부의 초청으로 이스라엘을 여행했으면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취재하여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한 주제에 관한 자료를 심도 깊게 조사하여 글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글로 남기기 않은 여행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느 여행이나 마음잡고 쓰려고 들면 글로 쏟아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매듭짓지 못할 것이 분명하므로 애초에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다녀온 여행은 모두 글로 정리한다는 저의 기본 원칙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직접 그 공간에 몸을 두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62쪽)”라는 대목에는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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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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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렸을 적 살던 동네에 선술집이라는 데가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들러 막걸리 한 대접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는 장소로 기억합니다. 가수 이연실이 1981년에 목로주점을 발표했을 때는 그런 술집도 있나 싶었습니다. 목로주점이란 술집의 대명사는 선술집에서 술잔을 놓기 위하여 쓰는,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이라는 목로를 가져다 붙인 것이니 선술집에 다름이 아니겠습니다.


이연실의 <목로주점>은 흙바람 벽에 30촉 백열등이 흔들리는 허름한 술집에서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아 커다란 술잔을 부딪히면서 산에 오르고 사막에 갈 꿈을 이야기하는 풍경을 노래하는 낭만이 담겼습니다. 에밀졸라의 <목로주점>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낭만적인 목로주점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였습니다.


책의 말미에 붙은 해설을 보면 이 책의 원제는 <아쏘무아르(L’Assommoir)>입니다.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돌발적인 사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쏘무아르는 당시 파리의 벨빌에 있던 선술집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싸구려 독주를 파는 주점이라는 의미로 통했다고 합니다. <목로주점>에 나오는 콜롱보(비둘기라는 의미) 영감의 선술집이 바로 아쏘무아르의 전형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서 목로주점이라는 낭만적인 제목을 붙인 것은 이 이야기의 치명적인 비극성과 모순을 낭만적인 느낌으로 역설적인 대비해보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목로주점>은 에밀 졸라가 1870년부터 1893년 사이에 펴낸 스무권의 루공 마카르 총서의 하나입니다. 스물두 살에 남편을 따라 시골에서 파리로 올라온 제르베르의 20여년에 걸친 삶을 기록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유산으로 받은 700프랑을 쥐고 파리로 온 남편 랑티에는 정착해서 살아갈 궁리보다는 흥청망청 돈을 써대다가 나중에는 가져온 것들을 저당 잡히면서도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과 놀아나다가 결국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함석공 쿠포에 결혼한 제르베르는 세탁부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자신의 세탁소를 차리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사이에 대장장이 구제와의 순수한 사랑도 위안거리가 됩니다.


하지만 불행은 예정된 과정을 밟아가는 모양입니다. 쿠포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을 지경에서 살아남으면서 술에 의지하기 시작하고, 랑티에 마저 돌아와 쿠포와 한 통속이 되면서 제르베르의 리즈시설이 끝나게 됩니다. 리즈 역시 열심히 살아가려는 노력보다는 가진 것을 까먹는 재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가 예정된 운명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결국 쿠포와 제르베르는 목로주점의 싸구려 독주에 의지하게 되고 결국은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쿠포는 먼저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제르베르와 형제들이 장례를 치렀지만, 제르베르의 경우는 곤궁한 은신처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제르베르가 랑티에에게 반하여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어린 나이에 세상물정을 모른 탓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쿠포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한 뒤에 열심히 돈을 모아 세탁소를 열고, 세탁소가 동네 사랑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올곧은 그녀의 성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정점에서 절제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더구나 랑티에를 받아들여 한 집에서 살게 한 것은 정말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전남편을 집에 들일 수 있을까요?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말로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점도 이 책을 읽을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제르베르의 경우도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도로 알코올 의존증의 증세를 보였습니다만 쿠포의 경우는 더욱 심한 지경으로 난폭함, 기억력 감퇴, 환각 등 치매의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술도 절제하지 않으면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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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철학논고 / 철학탐구 / 반철학적 단장 동서문화사 월드북 92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김양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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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느 책을 읽다가 찜해두었던 것 같은데, 오래된 탓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읽어본 적지 않은 책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책읽기였습니다. 심지어는 말미에 붙은 해설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책은 아마도, 여기에 표현된 사상 내지는 그와 비슷한 사상을 스스로 이미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것이다.(31)”라는 구절로 머리말을 열었습니다. 버트란드 러셀이 쓴 이 책에 대한 해설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지부터 깨달아야 한다.(11)”라고 적혀있습니다. 설마 했던 것이지만, 저는 이 책에 담긴 주제를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모두에 적은 세계는 성립되어 있는 사항들의 총체이다. 세계는 사실의 총체이지, 사물의 총체가 아니다. 세계는 사실을 통해, 그리고 그것이 사실 전부라는 점을 통해 규정된다. 왜냐하면 사실의 총체는 무엇이 성립되어 있는지를 규정하고, 또 무엇이 성립되지 않았는지도 규정하기 때문이다. 논리공간 안에 있는 사실이 곧 세계이다. 세계는 사실로 분해된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성립되거나 성립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은 그래도 있을 수 있다.(33)”라는 구절이 저자가 논리철학논고에서 입증하려는 바였나 봅니다.


책읽기를 시작하자 이내 곤혹스러운 상태에 빠진 이유는 명제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 전개되다가 기호와 함수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는 함수가 아닌 정의가 분명치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논리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계산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명제가 논리학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그 상징의 논리학적 특성을 계산함으로써 알 수 있다.(103)”면서 말입니다. 다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논리철학논고을 마무리하면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114)”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저자는 글을 간략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다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읽어가다 보면 전후 맥락의 연결이 모호한 부분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아마도 철학이나 논리학에 대한 저의 앎이 태부족이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철학탐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탐구에서는 제가 오래전에 수필에서 적었던 견월망지에 관하여 생각할 때 참고할만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35항의 물론 모양을 가리키기 위한 특정적인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한다.”(145)로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누리방에서 찾은 능엄경과 능가경에 나오는 견월망지에 대한 자료를 비롯하여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달을 볼 수 있다.”는 잠언도 기억할만합니다.


세 번째 반철학적 단장(反哲學的 斷章)은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유고 가운데 철학적 문장을 골라 엮은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책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야 좋은가를 잘 모르는 것은 아직 명석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로서는 철학 관계의 문장에서, 쓰고 말한 문장에서, 이른바 갖가지 서책을 가지고 시작했으면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여기에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는 어려움을 만난다. 그리되면 이러한 어려움에서 비로서 시작해야 할는지 모른다.(466)”


앞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이 책의 말미에 붙인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사상은 누구의 글인지 밝히지 않아서 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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