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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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현 선생님이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https://blog.naver.com/neuro412/222597548161>에서 추천한 책읽기의 두 번째 책으로 플라톤의 <국가>를 골랐습니다.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에서 다소 실망한 까닭에 고민을 했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더 읽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계속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소크라테스와 맞상대를 하는 토론상대를 볼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피스트 트라쉬마코스가 대표적인데 자기는 가르치려 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남들한테 배우되 고마워할 줄 모르는 것,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지혜라는 것이지.(49)”라는 독설도 서슴치 않습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역시 소크라테스가 토론을 이끌어가고, 늙은 무기제조공 케팔로스와 그의 아들들인 폴레마르코스, 뤼시아스, 에우티데모스, 아리스톤의 아들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 아리스토니모스의 아들 클레이토폰, 니키아스의 아들 니케라토스, 파이아니아 사람 카르만티데스 그리고 칼케돈의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가 토론에 참가하였습니다. 버트란드 러셀는 <서양철학사>에서 10권으로 나뉘어 있는 이 책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1권부터 5권까지는 올바름에 대하여 정의하고 이상사회, 즉 유토피아를 설명합니다. 6권과 7권에서는 이상사회의 지도자로는 철학자가 적절하다는 전제로 철학자의 자질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나옵니다. 8권부터 10권에서는 국가의 지도체제의 예를 들어 각각의 장단점을 논의합니다.


정의를 정의하면서 의술을 예로 들고 있어 관심을 두고 읽었습니다. 특히 누가 환자를 치료하면서 돈을 번다면 의술을 품삯 획득술(65)”이라고 할 거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시인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면 저승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일들을 믿는다면 죽음을 겁내게 될 것이고, 그런 사람이 용감해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신들이나 영웅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노래하는 것도 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들은 악의 근원이라고, 영웅들은 사람들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다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설득하려 해서는 안된다.(154)”라고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수호자, 즉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의 자질에 관한 논의에 관심이 갔습니다. 논자들은 수호자가 되려면 시가(詩歌)를 공부하고, 체력을 단련하고, 절제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도 수호자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남자와 마찬가지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기본적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논의하기도 합니다.


평등과 어긋나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장 훌륭한 남자들은 가장 훌륭한 여자들과 맺어서야 하고, 열등한 남자들은 열등한 여자들과 맺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치자들만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더스 헉슬리의<멋진 신세계>의 주제가 여기에서부터 나온 것 같습니다.


논자들은 이상적인 국가의 정부형태에 대하여 논의하는데, 모두 다섯 종류의 정부형태를 두고 장단점을 따져봅니다. 명예정치(Timocracy), 과두정치(Oligarchy), 민주정치(Democracy), 참주정치(Tyranny)등의 방향으로 나쁜 정부형태라는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명예정치보다 우위에 있는 정부형태로 철인정치(Aristocracy)를 꼽았습니다.

이들이 가상으로 만든 국가는 크게 생산자 계층을 기반으로 하여, 이들을 보호하는 군인 계층을 위에 두고 최상층에는 수호자라고 하는 지배계층을 두었습니다. 각 계층은 각자 맡은 임무에 종사하는 것인데, 각자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지혜, 용기, 절제의 덕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상국가 혹은 사회가 정의롭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상적인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논의하고 있어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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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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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폐렴이 오기 전에 작정했던 대로 이란을 여행하면서 페르시아 문명의 발자취를 찾아보았어야 한다고 후회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태가 풀리는 대로 가보려는 생각에 읽어보게 된 <길가메시 서사시>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보다 1,500년 앞서 기록된 인류 최초의 영웅서사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길가메시는 기원전 28세기경에 우르크를 126년 동안 지배한 왕입니다. 신화에 따르면 3분의 1은 인간이고 3분의 2는 신인 존재입니다.


백성을 노역에 동원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특히 결혼하는 처녀와 첫날밤을 보내는 초야권을 행사하는 폭군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면서 천신 아누는 창조의 여신 아루루에게 길가메시의 상대로 엔키두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엔키두는 길가메시와 친구가 되어 엘림산을 지키는 훔바바를 처치하고 삼나무를 가져옵니다. 그런가 하면 사랑과 풍요의 여신 이슈타르의 구애를 거절하였고, 화가 난 여신이 천신 아누에게 부탁하여 지상으로 가져온 하늘의 황소 죽여 백성들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신들의 회의가 열렸지, 반신반인인 길가메시를 죽일 수 없었고, 대신 엔키두가 죽음을 맞게 됩니다. 길가메시는 엔키두를 살리고 불사의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불사의 존재인 우트나피쉬를 찾아 나섰습니다. 바닷가 주막의 주인 시두리는 "그런 허무한 생각은 버리고, 차라리 궁궐로 돌아가 노는 게 낫다. 신들은 불로불사지만 그런 즐거움은 누리지 못한다"라고 충고를 합니다. 사두리의 충고에도 길가메시는 바다를 건너 우트나피쉬를 만났습니다. 그는 홍수에서 살아남아 영생을 얻은 존재입니다.


우트나피쉬는 7일 동안 잠에 들지 않는다면 영생의 비법을 알려줄 수 있다고 하였지만, 길가메시는 곧 잠들어 7일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길가메시는 우트나피쉬 아내의 호의로 불로초를 얻을 수 있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연못에서 목욕을 하는 사이에 뱀이 다가와 먹어치우고 말았습니다. 빈손으로 돌아온 길가메시는 결국 죽고, 죽은 뒤에 저승의 왕이 되었습니다.


앤드류 조지가 편역한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중동지방에서 발굴되는 다양한 점토판에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전체 틀을 완성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아카드어로 기록된 바빌로니아 길가메시 표준판본과 수메르어 길가메시 시들을 집대성하고 있습니다. 1부는 기원전 10세기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표준어였던 아카드어로 된 73매의 <심연을 본 사람(He who saw the Deep)>의 표준 판본을 소개합니다. 2부는 수메르어로 된 길가메시 관련 시 다섯 편을, 3부는 아카드어로 된 것으로 1부의 표준판본보다 더 오래된 자료의 번역본입니다. 3부에 나오지 않는 기원전 20세기 아카드어로 기록된 점토판의 자료를 번역한 것입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구전되던 것을 채록한 것이기 때문에 반복되는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을 놓칠 수도 있는데, 각 태블릿의 번역문 앞에 해당 태블릿의 줄거리를 요약해두었습니다. 구전 이야기는 구술자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표준 판본에서는 길가메시에 대항하기 위하여 신이 만들었다는 엔키두가 길가메시의 친구가 되고, 그를 대신하여 죽음을 맞는다고 되어있습니다만, 뒤에 나오는 다른 판본에서는 엔키두가 길가메시의 하인으로 등장하기도 해서 헷갈리는 점이 있습니다.


엔키두의 대한 소문이 우르크에 알려졌을 때 이슈타르 신전의 여사제 샴하트가 찾아가 67일 동안 동침하면서 그의 야수성을 벗겨내는데, 그 과정에서 빵과 맥주를 먹고 마시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맥주는 3천 년 전에 우르크 지방에서 만들어먹었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참고할 점은 우리나라의 관북지방(마천령 이북지방)에 내려오는 바리데기 설화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리데기 설화에서는 바리데기가 저승을 찾아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수를 얻어와 부모를 살리는 행복한 결론을 맺는데 반해서 길가메시 서사에서는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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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5 - 테아이테토스 / 필레보스 / 티마이오스 / 크리티아스 / 파르메니데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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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현 선생님이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https://blog.naver.com/neuro412/222597548161>에서 추천한 철학자들의 책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테아이테토스, 필레보스,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파르메니데스 등 다섯 편을 묶은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입니다. 플라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 귀족집안에서 출생하여 정치에 뜻을 두었지만,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을 알고 철학을 통해 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집트, 남이탈리아 , 시칠리아 등지를 여행하고 기원전 4세기 초 아테나이로 돌아온 플라톤은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열었습니다. 스승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여 철학적 대화를 이끌어가는 25편의 대화편을 집필하였습니다. 저자인 천병희교수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우리말로 옮겨 전집을 구성하였는데,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에 실린 다섯 대화편 가운데 테아이테토스는 중기에, 그리고 나머지는 후기에 집필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등장인물은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들로서 대화의 주제는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테아이테토스편은 지식’, 필레보스는 즐거움’, 티마이오스는 이성’, 크리티아스는 아테나이와 아틀란티스’, 파르메니아스는 형상을 주제로 한 대화입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주제를 철학적 대화로 풀어가고 있어 집중을 해서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지만, 어찌 보면 논리적이지 못해 궤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화편이라고 하면서도 대화의 상대와 서로 토론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대화의 주도권을 잡은 분이 일방적으로 설명을 하고 상대는 적절하게 변죽을 올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그리스 철학계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특히 티마이오스의 이성부분에서는 우주와 지구상의 생명체의 창조에 관한 대화가 전개됩니다. 천체물리학을 비롯하여 진화론 등 과학에 근거한 천지창조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 탓인지 티마이오스가 전개하는 창조론에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자연현상을 사유에 의한 가정을 바탕으로 설명하려다보니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만, 뭔가 아쉬운 점이 남습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합니다. 필레보스편을 보면, “프로타고라스, 우리는 우주라고 불리는 이 만유(萬有)가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힘과 우발적인 것의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할까, 아니면 그와 반대로 우리 선조들이 말했듯이 지성과 놀라온 지혜에 의하여 정돈되고 조정된다고 주장할까?(212)”라고 합니다. 물론 딱 떨어지는 답을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 역시 그런 점이 있었던가 봅니다. 필레보스에 나오는 프로타르코스 역시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 가운데 어떤 것들은 좀 알 것 같지만, 어떤 것들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요.(186)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소크라테스 선생님께서는 이상하게 빙빙 돌리시더니 우리가 어려운 질문에 말려들게 하셨네.(191)“라는 대목도 있습니다. 제가 가장 헷갈렸던 것은 논리를 전개하기 위하여 가져온 비유가 논의 중인 사안에 적절한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으면서 든 생각입니다만, 고대의 철학공부는 대화를 통하여 스스로 배우도록 하는 수업이 중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이 서양의 대표적 철학교육 방식이었다면 동양에서는 공자의 <논어>가 같은 방식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주입식 교육이 주종을 이루다고 서양의 토론방식이 도입되어 성과를 올리고 있는 듯합니다. 저야 물론 주입식 교육을 받던 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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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쓰고도 단 술, 소주 소소 1
남원상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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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가 한 바퀴 도는 세월을 술과 함께 보냈지 싶습니다. 그야말로 다양한 술을 마셨지만 역시 가장 많이 마신 술은 소주일 듯합니다. 제 나이쯤인 분들은 대체로 막걸리를 처음 마셔보게 될 듯합니다. 저도 그랬던 것 같구요. 소주는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마셔보았던 것 같습니다. 막걸리나 약주보다 훨씬 늦게 마시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주로 마시는 술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역사를 챙겨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소주의 역사를 자세히 정리한 책은 처음 만났습니다. 언론인을 거쳐 지금은 홍보관련 일을 하시는 남원상 소장님은 집에서 주류도매업을 하는 인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막걸리와 약주를 만드는 양조장 사택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막걸리와 약주는 도수가 약해서 비교적 일찍 마실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소주는 독하고 쓰기까지 해서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요즘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30도까지 소주가 유통되던 시절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쓰고도 단 술 소주>에서는 소주의 기원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를 비롯하여 소주에 얽힌 선조들의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다루었고,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주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춰냈습니다.


소주 역시 중동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8-9세기 아랍의 연금술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 고도의 증류장치를 개발하면서 와인을 증류하여 만든 포도소주를 약으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아랍에서 개발된 포도소주의 이름은 땀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라크(araq)라고 불렀습니다. 이 증류기술은 세계각지로 전해지면서 원료에 따라서 소주, 고량주, 보드카, 위스키, 브랜디, 럼과 같은 증류주들이 탄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소주는 포도소주의 증류기술을 전해받은 원나라에서 말젖으로 만든 아르히(arcki) 제조기술이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지봉유설>에는 소주는 원나라 때 생긴 술인데, 이것은 오직 약으로만 쓰고 함부로 마시지는 않았다라고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몽고군이 주둔하던 개성, 안동, 제주 등지에서 전통 소주가 만들어졌고, 개성지방에서는 소주를 아락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서민의 애환을 달래는 술이지만 과거에는 부자나 권세가들이나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제의 침탈이 시작되면서 일본인이 들어와 소주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서민들이 즐기던 막걸리 약주 등 가양주에 막대한 세금을 물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집에서 술을 담가마시기 보다는 소주를 사마시는 것이 쉽게 만들었습니다. 소주는 원래 燒酒라고 적던 것을 燒酎로 적게 되었던 것입니다.


소주는 원래 쌀이나 잡곡 등 곡물을 쪄서 누룩과 혼합하여 발효시킨 뒤에 소줏고리에서 증류하여 제조하는데, 3공화국 출범 직후에 쌀 생산이 줄어들면서 곡물을 소주의 원료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사탕수수의 찌꺼기인 당밀로 주정을 만들다가 그것마저도 고구마로 대체하여 만든 주정을 희석하여 소주를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저도 그 과정을 기억합니다. 주정회사로부터 배정받은 주정을 희석하여 제조한 소주가 드럼통에 담겨서 배달되어 오면 1되짜리 유리병에 나누어 담고 세무서에서 찍어온 인지를 붙여서 출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지역별로 소주제조업체가 난립하여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군산에서는 임옥소주를 주로 마셨는데, 70년대 들어 시도별로 통폐합되면서 보배소주에 흡수되었습니다. 시도별로 팔리는 소주 이름은 진로(서울,경기), 보해(광주,전남), 금복주(대구,경북), 무학(경남), 대선(부산), 보배(전북), 경월(강원), 선양(대전,충남), 한일(제주), 충북(충북), 삼원(광주전남) 등이었습니다. 대부분은 마셔본 듯합니다만, 지방에서 팔리는 상표보다는 전국적으로 팔리는 진로를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이 다시 바뀌어 소주시장은 진로와 처음처럼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만, 취향도 세월 따라 바뀌는 것 같습니다. 내역을 알고 마시는 것이 좋을 듯하여 읽은 책읽이였습니다만, 흥미로운 점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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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징비록 - 지옥 같은 7년 전쟁, 그 참회의 기록
조정우 지음 / 세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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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은 서애 유성룡이 선조25(1592)부터 선조31(1598)7년 사이에 벌어진 왜란과 관련한 정황을 기록한 책입니다. 임진년 전란이 발발하면서 영의정에 올랐지만 평양으로 향하는 선조를 호종하였지만 탄핵 후 면직되었습니다.


징비란 <시경>소비편(小毖篇)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後患)”라는 대목에서 따온 것입니다. 7년의 전란으로 백성들이 겪은 참혹한 삶을 돌아보고, 조정이 행한 실책들을 짚어 같은 전란을 겪지 않기 위해 남긴 반성의 기록입니다.

1591년에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황윤길과 김성일이 일본의 상황을 엇갈리게 복명하였는데, 안이한 쪽으로 해석하여 대비하지 않은 것을 비롯하여 왜군이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기록하였습니다. 지원군으로 나온 명나라 장수들이 일본군과 내통하여 전력을 다하지 않은 정황도 있습니다.


<소설 징비록>은 육지에서 왜군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하여 활약한 정기룡, 곽재우, 김시민, 김덕룡 장군의 행적을 기록한 소설입니다. 왜군이 난을 일으키기 전에 간자들을 파견하여 조선 팔도의 정보를 수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보를 수집했다고 해도 전장의 형편을 잘 아는 수비군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소설 징비록>에서 다룬 정기룡, 곽재우, 김시민, 김덕룡 장군들은 지리는 물론 기후 등 제반사정을 꿰고 있어 왜군을 유인하여 함정에 빠트리거나,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하여 비교할 수 없는 전력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왜가 일으킨 전란이 채 마무리되지 않은 15967월 서출 왕족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이몽학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도록 한 조정은 무얼 했는지 의문입니다. 전란의 와중에서도 당파싸움은 여전해서 잘 싸우고 있는 장수들을 파직시키고, 심지어는 사형에 처하는 일도 있었다니, 아마도 선조는 조선 임금 가운데 가장 무능한 임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수백 명의 군졸을 이끌던 조경장군이 1만이 넘는 왜군에 포위되어 있을 때 8명의 기병을 이끌고 왜군을 헤치고 들어가 조경장군을 구해 나왔다는 무용담은 사실일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리 기마술이 신출귀몰하다고 해도 말입니다. 난을 일으키기 전에 조선의 정황을 염탐할 정도로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했다는 왜가 조선에 기병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보병으로 기병을 제압할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요?


전란 당시 능력이 있는 장군들은 비교도 되지 않은 병력으로 왜군을 맞아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분전이 있어 왜군의 진군을 저지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을 만들었지만, 정작 관군은 적절치 않은 전술로 연전연패하여 밀려 올라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산에서 평양으로 보급선이 길어진 왜군 역시 전쟁을 지속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서 왜군에 넘어가 협력한 조선인이 적지 않았던가 봅니다. 아마도 조정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거나 전란에서 왜군이 승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까닭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반한 민심을 그나마 긁어모을 수 있었던 것도 향리에 머물던 명망가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전란으로 위기감을 가진 백성들을 규합하여 왜군에 대항하는 의병대를 조직하여 왜군을 괴롭혔습니다. 정규군이 아니면서도 게릴라전을 펼친 것이 상당한 효과를 보였던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는 뒷날 관직에 오른 분도 있지만, 모함을 받아 하옥되었다가 모진 고문으로 숨을 거두거나 전장에서 숨진 경우도 있으니, 선조의 조정은 전쟁에서 이겨야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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