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 여행자 - 그는 왜 미친 듯이 세상을 돌아다녔는가?
이언 해킹 지음, 최보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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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미친 듯이 세상을 돌아다녔는가?’라는 부제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며 서낭당이 있을 법한 커다란 나무아래를 무심히 지나는 여행자의 모습을 담은 표지그림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옮긴이는 저도 잘 아는 선배님이라서 더욱 끌렸는지도 모릅니다.


캐나다의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이 쓴 <미치광이 여행자>시대적 정신질환의 실재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부제를 달았다고 합니다. 옮긴이는 “‘한 때’ ‘한 지역을 풍미했던 한 정신질환이 과연 질병으로서 실체가 있었는지, 더 나아가 현재 논란이 되는 여러 정신질환의 실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독자에게 넌지시 물음을 덜지는 책이다(7-8)”라고 소개합니다.


정신과 영역은 의과대학시절 수업시간도 많지 않았던 탓에 아는 바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둔주(遁走)라는 병명이 생소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해리성 둔주(解離性遁走, dissociative fugue)는 자신의 과거나 정체감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여 가정과 직장을 떠나 방황하거나 예정 없는 여행을 하는 장애이다. 세상 지식에 대한 기억은 보존된다.”라고 합니다. 상병의 조작적 정의를 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이 상병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 병으로 진단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흔히 다중인격이라고 알고 있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비롯하여 해리성 기억상실, 그리고 해리성 둔주를 포괄하는 해리성 장애로 진단되는 사람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 2,804명이었다고 합니다. 노숙자로 살아가는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해리성 둔주로 진단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분들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기고 합니다.


정신질환으로서 둔주(遁走)1887년 프랑스 정신과의사 티씨에가 <미치광이 여행자>라는 제목의 학위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 1909년 낭트 총회에서 주요한 질환이라는 언급이 마지막으로 언급될 때까지 약 22년간 정신의학계의 화두였다고 합니다. 그마저도 프랑스를 중심으로 독일, 이탈리아 등 주변국가에서 관심을 끌었을 뿐,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질병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미치광이 여행자>에서 둔주라는 평범하지 않은 행동이 정신질환으로 주목을 받았다가 스러지는 과정을 뒤쫓았습니다. 저자가 머리말에 요약해둔 이 책의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이 첫째 부분은 다시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2,3장은 당시 사건을 자세하게 서술한 것이고, 4장은 그 사건에 대한 의문들과 시대적 정신질환의 실재성을 숙고해본 것이다. () 서플먼트1,2,3은 이 책의 주제와 연관된 내용이다. 끝으로 우리의 스타 환자와 스타 의사에 관련된 몇 가지 기록을 번역하여 수록하였다.(18-19)”


우리는 몇 년째 우한폐렴이라는 감염질환이 대유행하는 시기를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둔주를 유행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유럽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22년이라는 일정 기간 동안 발생, 확산, 감소, 소멸의 단계를 거쳤기에 유행병의 조건을 갖추었다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유럽에서 둔주가 유행병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나폴레옹 전쟁과 보불전쟁 등 전란이 이어졌던 19세기 말의 어수선한 유럽대륙의 분위기가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둔주 환자 대부분이 남성이고, 군대와 연관이 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탈영병이 처벌을 피하기 위하여 둔주라는 정신질환으로 면피하려는 의도에 정신과의사들이 동조해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생태학적 틈새라는 은유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둔주라는 정신질환은 정신과 의사 필리프 티씨에가 보르도에 있는 생탕드레병원의 알베르 피트르 병동에서 가스회사의 임시직원이던 26살의 알베르를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알베르는 가족도, 일도, 일상조차도 내동댕이치고 여행길에 올라 프랑스 국내는 물론 알제리, 콘스탄티노플, 모스코바 등 유럽대륙을 주하다가 부랑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거나 프랑스로 송환되곤 했다는 것입니다. 알베르의 삶을 읽다보면 정말 가능한 일이었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둔주가 질병으로 성립하는 과정을 읽을 때는 책을 읽는 흐름이 느려지곤 합니다.


유행을 돌고 돈다고 하니 둔주 질환이 다시 유행처럼 번질 수도, 아니 이미 번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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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한 남자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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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추리소설작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이머스 데커 연작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미식축구 선수였던 에이머스는 경기 중에 일어난 충돌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회복하면서 기억과잉증후군을 앓게 됩니다. 축구를 그만두고 선택한 직업이 형사입니다만, 아내와 딸이 누군가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은 뒤에 폐인이 되었다가 회복할 무렵 정체를 드러낸 범인과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그 과정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연방수사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데커는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업무를 맡게 됩니다.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연방수사국에서 일을 시작하고 두 번째 사건입니다. 출근길 연방수사국 앞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에 얽힌 비밀을 뒤쫓아 갑니다.


연방수사국 앞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은 이렇습니다. 외부 인사들의 출입구를 향하던 60대 남자 월터 대브니가 앞에서 오던 50대 여자 앤 버크셔와 엇갈리는 순간 그녀의 뒤통수에 베레타 권총을 대고 쏘았습니다. 총알을 얼굴을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총격사건을 목격한 데커는 대브니를 향하여 총을 버리라고 외쳤지만, 다음 순간 대브니는 총구를 자기 턱 아래 대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강력사건은 통상 경찰이 수사를 하기 마련이지만, 연방수사국 앞에서, 그것도 수사요원인 데커 눈 앞에서 벌이진 사건인 만큼 데커와 동료들이 사건을 수사합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사건을 담당했던 기자출신의 알렉스 재미슨과 연방수사국의 로스 보거트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대브니와 버크셔는 전혀 접점이 없는 관계로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대브니는 왜 버크셔를 살해했을까요? 사건은 출발부터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대브니와 버크셔 주변을 탐색하는 데커에게 국방정보국 요원 하퍼 브라운이 등장해서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합니다. 결국은 연방수사국과 국방정보국이 합동으로 사건해결에 나서는 것을 보면, 오리무중의 총격사건에 엄청난 배경이 뒤얽혀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장면입니다.


사실 추리소설은 사건해결에 단초가 되는 밑밥을 미리 깔아놓으면 읽는 이도 어찌된 사건인지 생각해가면서 읽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그런 친절을 베풀지는 않는 편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순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사건이 전개되고 등장인물들이 생각지도 못한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불사의 존재라는 일종의 규칙은 잘 지켜지는 것 같습니다.


저의 관심사는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가 하는 문제보다도 과잉기억증후군이 생긴 데커에 관한 사실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옛날 기억이 흐려지는 저로서는 부러운 일입니다만,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어 보입니다. 다음과 같은 대목입니다. 미식축구 선수시절 있었던 엄청난 충격으로 뇌손상을 겪은 후 생긴 공감각 덕분에 그는 과잉기억증후군, 그러니까 완벽한 기억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 사건은 그의 인격도 바꾸어놓았다. 사교적이고 유머를 사랑하던 그가 냉담하고, 보통 사람들이 당연하게 인지하는 사회적 신호들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처음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자폐증 증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16)”


무언가 능력이 생기면 다른 능력이 희생되는 기전인 듯합니다. 또한 완벽한 기억은 잊고 싶은 것들을 잊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해악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에 낯선 사람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잉기억중후군인 사람은 보통 단편적 사실들은 잘 기억하지만 그 기억들을 꿰어 추론하는 능력은 그리 좋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아들인 엄청난 사실들을 바탕으로 사건의 흐름을 꿰맞추어 낸 것을 보면, 데커는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기억과잉증후군에 대한 설명이 더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만, 다른 이야기도 읽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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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일반판)
올리버 색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알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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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타계한 미국의 신경과의사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수필집 <고맙습니다>를 늦게서야 읽어보았습니다. 올리버 색스가 뉴욕의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만났던 파킨슨병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깨어남>으로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역시 고인이 된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영화(우리나라에는 <사랑의 기적>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의 감동이 원작을 읽을 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올리버 색스의 글을 <오악사카 저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사나이> 등으로 이어졌습니다만, 아직도 읽지 못한 책들이 적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는 생애의 마지막 2년 동안에 쓴 네 편의 수필을 묶은 책입니다. 물론 2년 동안에 네 편의 수필만을 쓴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 수필 수은20137월 여든 살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쓴 글입니다. 그리고 18개월 뒤에는 8년 전에 진단받고 치료했던 안구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되어 재발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나의 생애를 썼다고 합니다. 임종을 두어 달 앞둔 시점에는 건강상태가 그리 나쁘지는 않아서 일상을 즐길 수 있었는데, 이 무렵 쓴 수필 가운데 하나가 나의 주기율표입니다. 그리고 임종을 2주일 앞두고 쓴 수필이 안식일입니다.


수은이나 주기율표에서는 색스의 독특한 인생관을 볼 수 있습니다. 매해 생일에 나이에 맞는 원소를 챙기는 것인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꼬마 때부터 상실에-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에-대처하기 위해서 비인간적인 것으로 시선을 돌리는 법을 익혔다.(36)” 80세 생일을 맞아 쓴 수은은 안구흑색종을 치료받은 뒤였던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든의 생일을 맞을 수 있는 놀라움을 적었습니다. “내가 여든 살이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가끔은 인생이 이제야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이내 사실을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깨달음이 뒤따른다.(16)”


삶을 달관한 사람의 경지가 느껴집니다. 그가 진료한 환자들 가운데는 아흔 살, 백 살을 넘긴 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는 충만한 삶을 살았으니 이제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18)”라고 고별을 전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자들을 만나다보면 인생을 관조할 여유가 생기게 되나 봅니다.


여든 살이 되면 쇠퇴의 징후가 너무나 뚜렷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예순을 넘기고서부터 그런 징후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관절 여기저기가 아프고, 근육도 밭아지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것도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쉬이 느껴지던 피로감이 걷기운동을 강화하고부터는 많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쇠퇴의 징후가 느껴지면서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한다는 색스의 말에는 공감하면서도 운동은 건강을 유지하는 보완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몸이 전하는 이상신호에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 몸은 정상궤도에서 벗어날 때 다양한 신호를 내보냅니다. 그 신호를 잘 잡아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의학이 많이 발전해서 내버려두면 심각한 상황으로 될 질병도 초기에 발견하면 정상 상태로 쉽게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간이나 췌장과 같이 변화에 무뎌서 심각한 지경이 되어서야 이상신호를 내보내는 장기의 경우는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연히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영양섭취나 운동을 꾸준하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작가로서의 색스의 명성이 대단했다는 점을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안구흑색종이 재발된 뒤에 쓴 나의 생애를 뉴욕타임스에 보냈더니 바로 이튿날 신문에 실렸다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가 아니더라도 유수의 일간신문들은 유명인사의 글이라고 해도 순번이 정해져 있을 법한데, 원고를 받자마자 바로 신문에 실렸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색스의 위상이 그랬다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글들을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어낸 것을 보면서 선친께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쓰셨던 글 제목을 사세(辭世)’라고 하셨던 뜻을 되새겨보았습니다. 삶을 같이 한 사람들과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글에 담으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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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탐심 - 라디오에서 찾은 시대의 흔적들
김형호 지음 / 틈새책방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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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 가운데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남아있던 기억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조금 급해졌던가 봅니다. 드디어 지난해 여름 <경관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시작을 했습니다만, 책쓰기에 몰입하느라 6개월째 이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았던 집들 가운데 기억에 남은 최초의 집에 얽혀있는 기억 가운데 하나는 라디오입니다. FM은 없고 AM만 잡히던 1950년대 후반의 기억입니다.


그 라디오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강원도에 있는 지역방송사에서 근무하는 김형호 기자님의 <라디오 탐심>입니다. TV방송국에서 일하면서도 라디오에 대한 열정을 간직해오던 김기자님은 10여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라디오를 수집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1,000개의 라디오를 소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라디오를 1,000개 이상 소장하고 있는 수집가들은 무려 100명이 넘고, 3분은 라디오 박물관까지 열었다고 합니다. 특정한 물품을 모아서 박물관까지 열 정도면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소장한 라디오가 박물관을 열 수준은 아니지만, 라디오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내게 되었으니 이는 라디오 수집과 같은 맥락에서의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 역시 어렸을 적부터 학창시절에 이르기까지 라디오 애청자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연속극을 즐겨듣고, 연속극 주제가를 따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라디오를 끼고 살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적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고른 책읽기였습니다. 선친께서 TV를 사셨던 것이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으니, 그 전에는 당연히 라디오 청취는 저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무렵 학생들 대부분은 심야방송을 즐겨 들었던 것인데, 저는 한술 더 떠서 연속극에 빠져있었습니다.


<라디오 탐심>에서는 제가 쓰던 라디오에 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새소식은 물론 연속극과 노래를 듣던 라디오는 제 기억으로 금성사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라디오 탐심>“‘번안 라디오의 아이러니에서 소개하는 골드스타A-501 제품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생산된 라디오였다고 합니다. 일본 산요사의 라디오를 베꼈다고 합니다. 그래도 부품의 국산화비율이 60%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만의 첫 번째 라디오는 릴 테이프를 장착하는 녹음기에 붙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연속극을 들을 수 없는 날에는 할머님께 녹음을 부탁드려 듣기도 했습니다. 예약녹음 혹은 예약녹화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입니다.


릴 테이프가 늘어나서 녹음이 어려워졌을 무렵 외항선을 타던 형님께서 집에 오시면서 가져왔던 소니 카세트 녹음기를 쓸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소개한 소니 CF-580 모형입니다. 성능이 정말 끝내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이 모형이 저의 라디오 시대를 마무리한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라디오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소 아쉬운 대목도 없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온 분들이 계셨는데, 어렸을 적에 이 집에서 살던 분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가 살고 있는 집의 옆집은 바로 부인되시는 분이 어렸을 적에 살던 집이라고 했습니다. 부인되시는 분이 찾아오신 분들을 알아보셨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지지 않은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는 붐 박스를 야전 전축이라고 하셨는데, 턴테이블이 있어 LP판을 올려놓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휴대용 야외전축을 야전이라고 줄여불렀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 때문에 야전전축은 역전 앞이 되는 셈입니다.


이러한 소소한 점을 빼고는 라디오에 관한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물론 관련된 인문학 자료까지도 소개하는 참 좋은 책읽기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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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라 불린 남자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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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읽었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https://blog.naver.com/neuro412/222626673569>의 에이머스 데커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작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전작에서는 아내와 딸 그리고 처남이 끔찍하게 살해된 사건이 미궁에 빠지면서 폐인이 되었던 데커에게 도전해온 범인을 밝혀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또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함께 했던 연방정보부의 특수요원 로스 보거트는 데커와 알렉산드라 제미슨에게 함께 일할 것을 제의합니다. 미제사건을 들춰내 해결하는 별동조직을 만든 것입니다.


지금까지 생활해온 오하이오주를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버지니아주 콴티코 기지로 가는 길에 데커는 라디오에서 극적으로 형의 집행이 정지된 사형수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멜빈 마스라고 하는 사형수는 데커가 대학시절 미식축구 경기에서 손쓸 수 없이 패배하게 만든 선수였습니다. 하이즈만 트로피의 유력한 수상후보였던 마스는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되었던 것인데 무슨 영문인지 형집행 예정일에 그 사건의 진범이 사건에 대하여 자백하는 바람에 집행이 정지된 것입니다.


데커가 마스에 대한 소식을 접한 것은 데커 자신에게나 마스에게나 운명적인 순간이었던 모양입니다. 데커가 콴티코에 도착하면서 보거트의 별동대의 대원들이 모두 모이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 사람에 더하여 임상심리학자 리사 대븐포트 그리고 현장요원인 토드 밀리건 등 다섯 사람입니다. 이들이 모여 첫 번째 수사에 착수할 사건을 골랐는데, 데커는 마스의 사건을 제안하고, 그렇게 결정되었습니다.


이야기 초반에는 마스가 수감되어 있던 텍사스의 교도소 분위기를 소개합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수감자들의 인권은 고려되지 않는 끔찍한 분위기였습니다.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음식에 대하여, “여기에서 식사랍시고 주는 쓰레기를 매일 먹는데도 그랬다. 거대한 공장에서 가공되는, 콘크리트에서 카펫까지 온갖 것을 만드는 데 쓰이는 화학물질과 지방과 나트륨을 들이부은 그런 쓰레기를 먹고도.(8)” 그리고 미국의 사법제도의 허점도 있습니다. 무고한데 사형을 당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미국에서도 남부지역은 사형집행 건수가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사형수들은 전기의자 혹은 독극물 주사 가운데 형 집행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스 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한 찰스 몽고메리는 독극물 주사를 선택하는 다른 사형수들과 달리 전기의자를 선택하였습니다. 특이하게도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을 사형수의 가족들과 피해자 유족들이 참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상세하게 소개되는 형 집행과정은 떠올리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데커가 마스의 사건을 첫 번째 수사대상으로 제안한 것은 아마도 자신의 사건과 닮은 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모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언도받은 마스가 형 집행을 앞두고 범인이 스스로 자백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데커가 아는 마스는 부모를 살해할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판단도 더해졌을 것입니다. 미식축구라는 운동을 고리로 통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은 텍사스, 앨라배마, 미시시피 주 등 미국 남부의 광대한 지역을 넘나들면서 진행됩니다. 마스의 부모가 살해된 사건은 20년 전의 일이라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치매 등으로 사건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얻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데커의 뛰어난 기억력과 현장 파악 능력 등으로 사건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게 됩니다. 하퍼 리의 대표작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서 만날 수 있었던 미국 남부지역의 인종차별주의 정황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스의 어머니가 교모세포종 4기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교모세포종은 대부분 어린이에서 생기는 종양이라서 설정이 적절치가 않아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소해 보이는 밑밥들을 적소에 배치하고 이 밑밥들이 사건해결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작가의 글 솜씨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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