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안는 것
오야마 준코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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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무래도 나쓰메 소세키 탓인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을 맡기는 보관가게2>로 만났던 오야마 준코의 <고양이는 안는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작가는 43살에 연속극 극본 작가로 등단하여 극본상을 수상하였지만 극본의뢰를 받지 못하자 연속극 또는 영화의 원작이 될 소설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년에 열편의 장편소설을 완성한 끝에 <고양이 변호사>가 원작소설 대상을 받으면서 소설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안는다는 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고양이가 화자가 되어 고양이들 사이의 관계를 비롯하여 인간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고양이들 사이에, 그리고 고양이와 인간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이야기를 “ ‘고양이힐링을 환상적으로 결합, 외로운 고양이와 인간이 서로 애정을 주고받으며 저마다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간결하지만 여운이 오래가는 문장들로 아름답게 풀어낸다.”라고 정리했습니다.


이야기는 도쿄의 변두리를 흐르는 아오메(靑目) 강에 걸린 네코스테(猫捨) 다리입니다. 다리 주변에는 도매상이나 상점 주인이 세운 흙벽으로 된 창고가 많았는데 쥐가 들끓게 되자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자 벌이가 좋은 상인은 흙벽을 허물고 서양식 창고를 짓게 되면서 쥐가 사라지게 되었고 고양이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네코스테(猫捨)라는 말은 장사가 잘 된다는 의미를 담은 은어가 되었다고 합니다. 배로 물류를 운반하던 창고주인들은 공동출자하여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사업의 번창을 기원하며 네코스테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 네코스테 다리에서는 한밤에 가끔씩 다리 주변에서 살고 있는 길고양이를 비롯하여 집고양이까지 모여들어 집회를 연다고 합니다.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등장하는 주인공 고양이는 요시오와 키이로, 등장인물은 사오리와 고흐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있던 고양이 요시오와 도오쿠에서 올라온 사오리가 주인공입니다. 사오리는 매사가 오빠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골에서 자신이 설 자리가 없자 도쿄로 올라왔던 참입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던 사오리는 애완동물가게에서 눈에 띈 러시안블루 수컷 고양이를 전재산인 3만엔을 들여 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직원 기숙사에 들여 키울 수가 없어 창고에서 남몰래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오리와 함께 살던 요시오는 함께 밤을 보내고 싶다는 사오리를 찾아 벽을 오르다가 강에 떨어져 네코스테 다리로 흘러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리 주변의 고양이를 돌보는 요시오씨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고 다시 사오리를 만나게 됩니다. 고양이 요시오를 매개로 하여 고양이를 돌보는 요시오씨와 사오리가 좋은 사이로 발전하게 되는 것을 보면 작가가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하여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삼색털 고양이 키이로는 암컷이라서 버림을 받게 되고, 고흐라는 화가의 눈에 띄어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대인관계가 별로였던 고흐에게는 가타오카라는 수다쟁이 친구와 가끔 찾아오는 조카 호노가 있습니다. 고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인물화, 정물화 등을 그리는데 문제는 모든 작품들이 미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조카 호노가 고흐에게 삼색 고양이 키이로는 왜 그리지 않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때 고흐가 호노에게 말합니다. “고양이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안는 것말입니다.


고흐가 키이로를 좋아하는 것을 질투한 호노는 키이로를 네코스테에 버렸지만 고흐가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가타오카가 데려온 여자를 그리기 시작하여 완성에 이릅니다. 하지만 고흐의 화방을 이해하지 못한 가타오카와 호노의 실수가 겹쳐서 불이 나는 바람에 고흐가 죽고 그의 작품들도 모두 불에 타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부터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주인공 고양이와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인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인물이 별다른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채 시나브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그런 의문이 전혀 남지 않도록 마무리를 잘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들 가운데 전혀 의도하지 않은 누군가의 행동으로 죽음을 맞는 사람도 있고, 돈이 되지 않는 고양이를 버리는 사람도 등장하지만 착한 행동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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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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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함께 나는 기억한다, 과거를 과거에 묶어두기 위해라는 광고 문안에 끌려 읽게 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입니다. 불가리아 작가 책으로는 처음인 듯합니다.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인 <타임 셸터>2023년 인터네셔널 부문의 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제목이기도 한 타임 셸터(time shelter)에 대한 조작적 정의가 분명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우스틴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 기억을 잃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발적으로 과거로 돌아가 숨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과거를 시간대피소라고 할 수 있을 거란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억을 잃는 사람들은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치매 등 어떤 이유에서든 기억 쇠퇴를 겪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시간대피소를 마련해주는 요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환자들의 내면의 시간과 일치하는 공간을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단순히 작은 공간일 수도 있고 그 공간을 확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우스틴은 과거요법이라고 하는 진료소를 열게 되었습니다. 처음 마련한 과거요법은 1965년의 소환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가우스틴의 첫 번째 진료소는 스위스에서 문을 열었는데, 이는 토마스만의 <마의 산>을 기리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치매환자를 위한 비약물요법 가운데 회상요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환자의 지나온 삶과 관련된 것(과거 사진을 대표적으로 사용합니다)을 이용하여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치료법입니다.


가우스틴의 과거요법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됨에 따라 다양한 시기의 공간을 마련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도 같은 성격의 진료소들이 설치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덴마크의 항구도시 오르후스에는 옛날식 주택으로 이루어진 민속마을을 조성하여 여행객들에게 과거의 삶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특정 시간대에는 기억상실 환자들이 입장하여 과거를 회상할 수 있게 합니다.


시간대피소에서 주목하는 감각은 후각입니다. “나는 기억의 텅 빈 굴에서 마지막으로 떠나가는 것은 향기의 기억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후각이 일찍 형성되는 감각이기 때문일 테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것은 맨 마지막에, 머리를 땅에 처박고 냄새를 킁킁거리는 작은 동물처럼 떠나간다.(121)”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작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오디세이아>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이아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을 이야기합니다. 포세이돈과 엮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험난해지는데, 신들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빠져나오기도 하고 요정 칼립소에 붙들려 행복하게 보내는 시절도 있습니다. 자신과 함께 하면 불멸의 삶을 주겠다는 칼립소의 제안을 뿌리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로 한 결정은 일종의 시간대피소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고향에 돌아간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와 보낸 시간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생산하고 있다.(172)’는 명제를 내놓으면서 유럽사회에서는 과거로의 회귀하기 위한 국민투표가 진행됩니다. 나라마서 국민들이 선호하는 과거의 시점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라마다 국민들의 성향이 다른 탓에 그 시기가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화자가 불가리아 국민인 까닭에 불가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불가리아 항공은 공항에 도착하면 파샤 흐리스토비가 부르는 <불가리아 장미 한 송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이야기와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한 다음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리고 불가리아 전통의 축제의 현장도 묘사하고 있어 지난해 다녀온 불가리아 여행에 관한 추억이 소환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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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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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와세다 대학의 무라키미 하루키 도서관을 찾아가는 일정에서 누군가 추천을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무려 768쪽이나 되는 이 책은 43년만에 완성된 책이라고 합니다. 하루키는 등단 이후 다양한 매체에 글을 발표했는데 대부분 책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1980년 문예지 문학계에 중편소설로 발표되었지만 유일하게 책으로 발표되지 않은 채였습니다. 하루키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하여 사람들 사이에 벽이 세워질 무렵 이 작품을 새로 다듬기 시작하여 2024년에 책으로 내놓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하루키가 43년간 견고히 구축해온 세계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겼다.’라고 했습니다.


그로서는 드물다고 할 작가후기에서 하루키는 앞뒤 사정이 있었지만, 덜 익은 채로 세상에 내놓고 ㅁㄹ았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등단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데 매우 중요한 무엇을 담아내려 했지만 필력이 충분하지 못했었다고도 했습니다. 1982년 무렵 처음의 중편소설의 줄거리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덧붙여 동시에 진행하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교대로 진행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로 합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이야기는 1, 2,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를 완성해서 묵혀두는 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2부와 3부를 이어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1부에서 화자는 열입곱 살이 되던 해에 그 도시(뒤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라고 나옵니다)에서 온 열여섯 살 소녀와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그 도시에 가려면 그냥 원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시간적 여유와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다가 결국은 그녀가 살고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가게 됩니다. 도시의 성문에 서자 문지기는 그림자를 떼어내야 도시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도시는 그와 그녀가 만들어낸 상상의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도시에 들어가게 된 그는 도서관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가 하는 일은 오래된 꿈을 읽는 일이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서 도서관에서 일하는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그와 만났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림자가 한 일을 몸통이 알 수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녀와 함께 일하는 사이 그가 성문 앞에서 떼어놓은 그림자를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그는 그림자와 함께 성을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남쪽 언덕 너머에 있는 웅덩이가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웅덩이로 가늘 길에 벽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너희는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설령 하나를 통과하더라고 그 너머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다. 무슨 짓을 하든 결과는 똑같아.(206)”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벽은 그들을 막지 못합니다. 그림자와 함께 웅덩이까지 오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그림자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도시에 남겠다고 합니다.


2부에서는 어떤 영문인지 성에서 현실세계로 나온 화자가 시골에 있는 도서관의 관장으로 일하기 시작하는데, 전임관장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죽은 전임관장이 등장하여 화자와 도서관 직원 소에다씨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M**라는 초능력을 가진 소년이 등장하여 결국은 그림자 없는 성으로 들어가 화자의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3부는 그림자 없는 성에 들어갔던 화자가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순간에서 마무리가 됩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 벽이야. 누구도 이 벽을 넘을 수 없어. 누구도 이 벽을 부술 수 없고.(45)”라고 문지기가 이야기했던 것과는 달리 화자나 M**가 벽을 통과할 수 있었던 점도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듯합니다.


이 소설에서 특이했던 점은 그림자 없는 성에서 에도 성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림자 없는 성의 벽은 잉카문명이 남긴 성벽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했던 인물들과의 관계가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마무리된 탓인지, ‘그래서?’라는 의문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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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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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산방을 둘러보는 일정도 있었습니다. 도쿄대학의 교정에서 산시로 연못을 돌아보는 일정이 있어 소세키의 <산시로(1908)>를 미리 읽었는데, <그 후(1909)><(1910)> 등 세 작품이 소세키 초기의 3부작이라고 했습니다. 3부작이라고 해서 산시로의 주인공의 삶을 시기별로 조명한 것인가 보다 싶었는데, 먼저 읽은 <>의 주인공은 물론 이야기의 줄거리도 전혀 달랐습니다. 세 작품을 모두 읽고 보니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유별났다는 생각입니다.


남녀 사이의 사랑이야기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어 왔으므로 일본의 근대문학에서도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나 봅니다. <산시로>의 경우는 대학에 갓 입학한 젊은이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다루었습니다. 마음에 두었던 여인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그 후>에서는 주인공 다이스케와 친구 히라오카는 또 다른 친구 스가누마의 여동생 미치요를 연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라오카가 먼저 다이스케에게 고백을 하면서 미치요는 히라오카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다이스케가 두 사람의 결혼을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혼했던 히라오카는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신문사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미치요에게 소홀하게 됩니다. 미치요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된 다이스케는 미치요와 결혼을 하기로 합니다. 친구인 히라오카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집에서 강요하는 결혼 상대를 거절해야 했습니다.


다이스케는 미치요와의 관계를 되돌리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의 뜻에 따르려면 인간의 법도를 어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다이스케가 히라오카에게 미치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고백하였고, 결국 히라오카가 물러나기로 합니다. 다만 병중에 있는 미치요가 건강을 회복한 뒤에 정리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이스케의 아버지에게 상황을 알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주선한 결혼을 거절한데가가 친구의 아내와 결혼하겠다고 나선 다이스케에게 절연하고 말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다이스케는 일자리 구하기에 나섰습니다.


다이스케의 노동관은 독특합니다. 교토-오사카 지역에 있는 은행의 지점에서 근무하던 히라오카가 도쿄로 전근하면서 다이스케를 찾아왔을 때, 부유한 아버지 덕에 직업도 없이 유유자적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히라오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하는 것도 좋지만, 만일 이을 한다면 단지 생활만을 위한 일이어서야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신성한 일이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빵과는 무관한 법(107)”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먹고사는 것이 목적이고 일하는 것이 방편이라면, 먹고살기 쉽게 일하는 방법을 맞추어갈 것이 뻔하므로 성실하게 일에 매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미치요와 함께 하려면 일을 해야 하는 다이스케는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나가게 될까요? <그 후>라는 이야기의 제목은 연모하던 미치요가 어려운 지경에 빠지자 미치요의 삶을 되돌려 놓아야 하겠다고 나서는 다이스케의 모습을 그렸다고 할까요? 그보다는 지금부터 다이스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이야기할 속편에 붙여야 할 제목이 아닐까요?


의절하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러 온 형이 돌아가자 다이스케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오겠다.(349)”며 집을 나와 폭염으로 들끓는 거리로 나선 다이스케가 타들어 간다. 타들어 가.”라고 중얼거리며 전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움직이는 느낌으로 머리도 어지럽게 돌기 시작합니다. 온통 새빨개진 세상이 그의 머릿속을 중심으로 뱅글뱅글 불길을 내뿜으며 회전합니다. 그리고 다이스케는 머릿속에 다 타버릴 때까지 계속 전차를 타고 가겠노라고 결심했다.(350)’라고 이야기의 끝을 맺었습니다. 이번에 읽고 있는 일본근대문학 작품들의 특징은 끝이 분명치 않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열려있는 마무리인 것이지요. 후속편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속편을 예고한 것이라기보다는 열린 결말로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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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밀 이삭처럼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 열다
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황종민 옮김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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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라는 부제가 달린 제목이 눈길을 끌어 읽게 된 책입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자 고흐가 쓴 편지 가운데 골라낸 글들을 짜깁기 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들을 묶고 있는 제목들, ‘1. 열정과 희망의 밀알을 품다, 2. 미술과 자연의 밀 이삭을 틔우다, 3. 사랑과 죽음의 밀밭에 서다를 보면 그림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된 계기에서부터 실행에 옮기는 과정 그리고 그림을 그리면서 느끼는 감정을 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림그리기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림을 어떻게 팔아야 할 것인가 등 현실적인 고민도 다루고 있어서 그와 같은 대목이 주제와 어떻게 부합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고흐의 편지들을 묶어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https://blog.naver.com/neuro412/221891524633><반 고흐, 영혼의 편지2;  https://blog.naver.com/neuro412/221893112125>를 이미 읽었기 때문에 <싱싱한 밀 이삭처럼>에 나오는 글들이 익숙할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옮긴이가 <고흐의 편지를 우리말로 옮길 기회를 마련해주어 출판사대표에게 감사하다고 언급하였기 때문에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만, 어떠한 원전을 우리말로 옮겼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옮긴이가 독일어를 전공했다고 해서입니다. 누리망의 자료를 찾아보면, 반 고흐는 1886년까지 거의 모든 편지를 네덜란드어로 썼고, 그 이후부터는 거의 항상 프랑스어로 썼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의 비율은 대략 2:1이었습니다.


편지 역시 쓴 이의 주관에 따라 쓰여지기 때문에 편지의 내용이 사실일 것이라는 믿음도 편견일 수 있습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고흐를 치료한 가셰 박사에 관해서도 고흐 역시 초기에는 가셰 박사는 절대 믿어서는 안될 것 같다. 첫눈에 박사는 나보다 더 아파 보인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준비된 친구이자 새 형제 같은 존재라고 호의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심지어 가셰 박사는 고흐이 병을 잘못 진단하고 그림을 선물로 달라고 부탁하여 고흐를 착취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으로 이끈 위선자라는 연구결과도 소개합니다.


옮긴이가 뽑은 대목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을 꼽아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어서 다행이다.(109)”이라는 글에 이어 화판을 놓고 풍경을 바라보면 자연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자연이 내게 이야기한 내용을 내가 속기로 받아썼음을 깨닫는다고 했습니다. 자연을 보고 느낀 바를 붓가는대로 그려냈다는 설명입니다. 고흐가 기존의 화법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창조해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그림이었기 때문에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세월이 흐른 뒤에 새로운 사조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오랫동안 열심히 관찰한 뒤에야 비로서 확신이 생긴다. 위대한 거장이 더없이 감동적으로 그린 걸작은 삶과 현실 자체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신념이다. 삶과 현실을 깊이 파고들어 탐색해야만 영원히 사실로 존재하는 확실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112)”는 설명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평온하고 규칙적인 삶이 반드시 필요하다.(126)’라는 대목이 있고, ‘화가는 색뿐만 아니라, 희생과 극기와 비애로 그림을 그린다.(137)’라는 대목도 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끌던 일본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본 화가들에게서 부러운 점은 이들의 작품에서는 모든 것이 매우 선명하다는 것이다. 칙칙하거나 서둘러 그린 듯한 작품이 전혀 없다. 이들의 작업은 호흡처럼 단순하다. 조끼의 단추를 끼우듯 손쉽게 몇 번 쓱쓱 붓을 놀려 인물을 그린다.(178)’라고 했는데, 처음 보는 사조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죽는 것은 사는 것만큼 어렵지 않을 것이다.(254)’라는 대목은 그의 말년에 정신적 혼란 속에서 적은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고 느꼈는지 공감이 가면서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네 속담을 기억했어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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