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초상
찰스 디킨스 지음, 김희정 옮김 / B612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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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탈리아의 초상>은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가 1844년 가족과 함께 1년 동안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여행한 기록을 담은 책입니다. 역자의 말대로 작가는 이 책에서 정확한 여행일정이라 각 지역의 음식, 숙소 등의 정보를 다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건물이나 유적, 예술 작품 등에 대하여도 설명을 곁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수년간 머릿속으로 그렸던 장소들에 대한 어렴풋한 감상을 엮은 것으로 물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한 기억이라고 비유했습니다. 흔히 여행에 관한 기록을 <OOO여행기>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는 달리 <이탈리아의 초상>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작가는 제노바에서 1년 동안 머물 예정으로 영국을 떠나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에 갔다고 하는데, 마차를 타고 가는 여정은 그의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서민적이었습니다. 마차 역시 전용마차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여정에 따라 마차와 마부를 수배하는 방식을 택했던가 봅니다. 프랑스 구간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마차를 닦는 법이 없는 나라에서 마차가 창피하게 여겨질 만한 것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제 마차에 묻는 진흙이 부끄러울 만큼 상쾌한 날이었다.(25)”


파리에서 리옹, 아비뇽을 거쳐 마르세유에서 배를 타고 제노바로 가는 여정이었던가 봅니다. 파리에서 르아브로로 갔다가 몽셀미셀, 루앙, 리모주, 툴루즈, 아를, 아비뇽, 엑상프로방스, 칸느, 니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나갔던 저의 여정과는 별로 겹치는 구간이 없습니다. 그래도 툴르즈를 지나는 가론강의 운하에서 본풍경은 디킨스가 론강에서 본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시속 20마일로 움직이는 증기선을 타고 화살처럼 빠르게 흐르는 론강을 따라 내려갔다. 배는 무척 지저분한데다 시장에 내다팔 물건들로 가득했고 동승한 사람은 서너 명 밖에 되지 않았다.(32)”


아비뇽에서는 교황청에 딸린 감옥을 직접 돌아보는 경험도 했다. 교황청과 관련된 일화는 사실일까 싶기까지 합니다. 1441년 교황특사인 피렐 드 뤼드에 관한 내용입니다. 조카가 아비뇽의 좋은 집안의 규수들을 욕보이다가 가족들에게 팔다리를 못 쓰게 될 정도로 치도곤을 당했다는데 교황특사는 앙심을 품고 때기 무르익기를 수 년 동안 기다린 끝에 조카를 다치게 한 가족들과 화해를 한다면서 교황청 부속건물에서 연회를 베풀고 폭발시키는 바람에 오백여명이 모조리 타죽고 말았다고 합니다.(47)


제노바에서 생활하면서 작가는 제노바가 하루하루 마음에 스며드는곳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언제든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노바의 경관이 뛰어나다는 점은 물론 식당 등 제노바 사람들의 삶을 흥미롭게 적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제노바에서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포도주를 사오는데 선장들은 포도주의 이름은 묻지 않고 사들인 다음에 샴페인과 마데이라라는 상표를 붙여 팔았다고 합니다. 포도주의 다양한 풍미와 품질, 산지, 재배연도는 무시하고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섬에서 나오는 포도주만이 마데이라 포도주라고 한다고 합니다.


베로나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작가는 이탈리아의 도시들 구경에 나섰나 봅니다. 파르마, 모데나, 볼로냐, 베로나, 만토바, 밀라노, 피사, 시에나, 로마, 나폴리,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파에스툼, 베수비오, 몬테 카시노, 피렌체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제가 가본 곳도 적지 않아서 180년 전 디킨스가 본 것들과 제가 본 것들의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베로나에서는 줄리엣의 집만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디킨스는 여관이 된 캐퓰릿 가문의 집에서 머물렀을 뿐더러 줄리엣의 무덤도 구경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줄리엣의 집으로 알려진 장소 역시 영화와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디킨스 시대에는 무슨 근거로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련된 장소가 존재했는지 의문입니다.


디킨스는 나폴리까지는 갔으면서 나폴리 앞에 있는 카프리 섬은 물론 시칠리아에도 가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역사적인 장소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던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디킨스의 이탈리아 기행은 제가 정리한 이탈리아 여행기를 풍성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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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 방 - 죽음 후에 열화당 영혼도서관
존 버거, 이브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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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벼르던 존 버거의 <아내의 빈방>을 읽었습니다. 스페인 여행기를 쓸 무렵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으로 처음 만난 존 버거는 <본다는 것의 의미>, <어떤 그림>, <풍경들>, <초상들> 등을 읽으면서 그의 글 솜씨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아내의 빈방>은 지난해 아내가 아팠을 때 어디선가 보고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던 책입니다. 읽을 책을 고르는 순서에서 밀리는 바람에 지금에서야 읽을 기회를 만든 것인데, 막상 읽어본 뒤에는 진즉 읽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빈방>은 사십년을 함께 한 아내 베벌리 벤크로프트 버거가 세상을 떠난 몇 달 뒤에 존 버거와 아들 이브 버거가 함께 그리고 쓴 책입니다. 불과 40쪽에 불과한 얇은 책이지만 아내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책은 아들 이브 버거가 첫 번째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브는 어머니가 계신 그곳은 삶이 절대 끝나지 않는 곳일 거예요. 우리 사랑처럼요, 엄마.”라고 적었습니다.


이어서 존 버거의 글이 이어집니다. 아내가 죽은 4주 후 꿈에서 아내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없어진 자리에 당신의 존재감이 들어왔다고 할까?’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내용에 대하여 우리는 당신에게 바칠 비가(悲歌)를 쓰고 있는 거요.(10라고 적었습니다. 또한 아내에 관하여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이라고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내에게 쓴 글을 결혼 전 하계봉사활동에 갔을 때와 혼자서 미국에 백일 동안 연수를 받으러갔을 때 몇 통의 편지를 쓴 것 말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해 말에 출간한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이 아내에게 바치는 첫 번째 책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인용한 팔레스타인의 국민작가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글귀를 읽다가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 그리고 당신이 내게 말했지, 내가 당신보다 먼저 죽으면, 판에 박힌 말과 죽은 날짜 같은 것으로 나를 가두지 말고, 내가 잠든 곳의 흙을 한 줌 떠주세요. 그럼 아마도 한 줄기 풀잎이 당신에세 죽음은 무엇인가를 또 하나 심는 것에 불과함을 알려 줄테니 ()(12)”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그 세월 동안 내가 쓴 거의 모든 글들을 당신에게 가장 먼저 보여 줬소. 당신은 즉시 반응을 보이며 이런저런 제안을 했고, 타자기로 옮겨 친 다음, 그 글들을 외부로 보내고, 번역이나 계약 같은 것을 진행했지.(17)” 저 역시 제가 쓴 모든 글을 아내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내는 베벌리처럼 이런저런 제안을 하기 보다는 오류를 지적하는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그래도 책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침대에 누운 당신이 온몸을 꿰뚫는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할 때, 그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르핀이나 코르티손 주사를 한 대 더 놓아주거나 몸을 받치는 베개들을 다시 맞추어 주는 일밖에 없었을 때, () 당신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소. 그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은 당신의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었지. () 당신의 용기는 부질없이 두려움을 극복하려 애쓰기 보다는, 그 두려움을 손님처럼 맞이해 주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당신의 용기가 마지막까지 당신과 함께한 거요. 그리고 시간을 물리친 그 용기가 우리와 함께 남아, 침묵을 채우고 있는거요.(23-24)”하는 대목은 새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말입니다.


존 버거는 아내가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함께 한다는 의미의 글도 남겼습니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거요.(31)”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시 이브 버거가 마무리했습니다. “어디에 계세요. 엄마? 죽은 이들이 진짜로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그런데 그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그런 곳을 말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 뭔지 모르니까요.(32)” 그리고 엄마가 어디에 계신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몸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요. 잠시 후면 우리가 고른 돌멩이가 엄마 무덤 위에 놓이겠죠. 흙과 풀 사이에 놓을 텐데, 그러면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요.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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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 이 세상의 냄새를 상상하는 시간들
심혁주 지음 / 궁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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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선가 인용된 것을 읽고 읽어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후각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오감을 통해서 얻은 느낌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오감 중에서 후각이 가장 기억을 잘 만들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는 바로 후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리를 주제로 한 전작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에 이어 냄새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후속작으로 쓰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대만국립정치대학교에서 티베트학 박사 학위를 받은 티베트 전문가라고 합니다. 대만에서 공부하였기에 화자가 대만에서 만난 친구 리우저안이 삶의 의미를 찾아 티베트로 구도의 길을 떠나고 친구의 부모로부터 친구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화자가 티베트로 친구를 찾아가는 여정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해보이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처음부터 쉽지가 않았습니다. 오랜 옛날 하늘에서 악마를 땅에 내려 보냈습니다. 왜 악마를 내려 보냈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땅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를 알게 되면 다시 하늘로 올라올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악마를 사람들의 왕으로 삼았다고 하니 이상한 하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악마는 티베트에 내려 왔던 모양입니다. 조장을 치루는 것을 본 악마는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배고픈 새와 물고기에게 아낌없이 줍니다. 전 이걸 **이라고 합니다.”라고 하늘에 알렸고 무지개가 내려와 하늘로 다시 올라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 **이 무엇인지 책에서 답을 찾아보라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이야기의 구성이 화자의 설명 사이에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섞여 들면서 읽는 흐름이 끊어지는 듯하여 집중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화자와 저안이를 처음 만난 것은 티베트어 수업시간이었는데, 앞자리에 앉은 학생에게 무작정 말을 붙인 것을 보면 화자는 꽤나 사교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어떻거나 선..쪼우.라고 하는 화자는 리우.저안.과 말을 건넸고, 저안이 점심 같이 먹을래?하고 답하면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좋은 부모가 있는 저안이지만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저안이 어느 날 새벽 화자를 찾아옵니다. 순치황제가 지었다는 출가시를 가지고서 말입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안의 부모가 화자를 찾아오게 됩니다. 아들의 소식을 들은 것이 있느냐구요.


결국 화자는 저안을 찾아 나섰습니다. 새벽에 찾아왔던 저안이 화자의 냉장고에 붙여놓은 쪽지에 적힌 티베트어 단어가 사원의 이름 같다는 단서를 가지고서 말입니다. 결국 화자는 저안을 찾게 됩니다. 그의 냄새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냄새에는 그와의 시간, 추억, 경험, 감정, 기억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먼지와 때가 뒤덮여 있는데도 그의 냄새를 구별해낼 수 있었다고 하니 화자의 능력도 대단합니다.


저안은 티베트에 와서 스승을 만났는데 왜왔느냐면서 불교의 목적이 무엇이냐물었다고 합니다.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깨닫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스승은 대중은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고통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불교에서는 지혜를 이용하여 벗어난다고 하면서 그 지혜는 무명(無明)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고통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명을 없애고 아기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불교의 두 가지 목표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또한 지금 그 생각을 멈춰라는 숙제를 내주면서 동굴에서 면벽수행을 3년 동안 하라했습니다. 면벽 수행을 시작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시로 적어 스승께 보냈더니 1년 뒤에 찾아와는 세 차례 !”라고 외치고는 돌아가서는 너를 내 제자로 받아줄 수 없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라고 외칠 때마다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숙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수행을 해온 셈입니다. 그럼에도 저안은 티베트에 남기로 합니다.


과연 앞서 나왔던 **의 답은 무엇이었을까요? 작가가 귀띔에 따라 나름대로는 답이 될 만한 것을 찾아보았지만, 정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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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사람 -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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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라는 부제를 단 <내가 알던 사람>은 책의 뒷장에 적힌 알츠하이머 간병 7, 유머와 비탄의 회고록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어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심장내과의사입니다. 어렸을 때 농업분야의 유전자를 연구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형, 누이동생과 함께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형과 함께 의사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파고에 정착하고 노스다코타 주립대학 연구활동을 하다가 정년을 맞게 되었는데 은퇴식에 참석했던 저자는 우리는 시련을 마주하되 피하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강해졌다.(16)’라는 글귀가 벽에 걸린 아버지의 서재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은퇴 후 치매를 늦추거나 피하는 방법이라는 CNN 기사의 인쇄본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억력이 떨어져 있다는 아버지가 신경과 고든선생의 진료를 받았을 때 간이정신상태검사에서 30점 만점에23~25점을 받아서 경도인지장애가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억력은 빠르게 감퇴되면서 치매의 초기단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자와 형 그리고 누이는 치매가 시작된 아버지와 파킨슨병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두고 의논을 한 끝에 저자와 형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롱아일랜드로 이사를 하기로 합니다.


<내가 알던 사람>은 파킨슨병을 앓던 어머니와 알츠하이머 병을 발견한 아버지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부모를 돌보던 세 자녀의 분투기록을 정리한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간병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이 비교적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노스다코타의 파고에서 멀지 않은 미니애폴리스에서 살고 있는 누이는 전화로, 혹은 비행기를 타고 와서 함께 의논을 하는 등 세 자녀는 부모님을 간병하는데 있어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오랫동안 겪어야 하는 치매환자의 간병은 자칫 가족들의 충돌이 발생하거나 주 간병인이 병을 얻을 수도 있는데 저자와 형은 병원에서의 진료를 하면서 부모님의 간병에 소홀함이 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나이든 부모는 자녀가 돌본다는 인도전통의 인식이 미국에 와서도 어느 정도는 남아있어 고집스러운 아버지를 모시는 일이 수월치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알츠하이머환자의 특징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기준의 자료이기는 합니다만, 저자가 치매의 본질과 치매환자의 간병에 관한 정보를 세세하게 찾아보았다는 점도 이 책에서 발견한 소득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입니다. “2014년의 그 여름, 형과 여동생과 나는 적절한 보수도 (교육도) 받지 않은 채 노년층을 돌보는 이 나라의 약 1500만 가족 간병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치매 가족을 돌보는데 할애하는 시간은 평균 주장 30시간으로 무보수로 일하는 이들의 노력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4천억 달러가 넘는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 한 가족 간병인은 그렇게 힘든 무보수직은 난생 처음이었다.(46)”라고 댓글을 달았더랍니다.


치매에 걸린 가족을 돌보는 간병인의 입장에 관한 형의 말도 인상적입니다. “사랑으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의무감으로 하는 사람도 있는 거야. 나는 의무감으로 하는 쪽이고.(112)” 사랑이건 의무감이건 가족을 돌보는 일을 외면하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하겠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세월이 흐른 뒤에 어머님께서도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이제 고아가 되었네라고 형제들과 함께 자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양친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절대로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150)”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모님이 살아가시는 동안에는 우리를 아이로 여기는 사람이 항상 존재한다는 뜻인데, 바꾸어 말하면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의지할 생각을 하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내가 알던 사람>은 지금까지 읽었던 치매에 관한 책 가운데 여러 가지 의미로 중요한 책읽기였습니다. 지금까지 몇 차례 개정작업을 해왔던 치매에 관한 책을 다시 개정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는 이 책을 중요한 참고서로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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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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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을 이끌어 주신 로쟈 이현우 교수님께서 필자가 쓰고 있는 여행기를 격려해주시면서 추천해주신 <나의 미국 인문기행>을 읽었습니다. 책을 쓴 서경식 교수는 <소년의 눈물>로 이미 만나본 적이 있지만 인문기행을 담은 책으로는 처음 읽어보았습니다. 제목은 인문기행이라 하였으나 주로 미술과 음악 등 예술분야의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서 예술기행이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문기행의 연작으로는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에 이은 책으로 여는 글을 읽어보면 미완성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7장의 원고를 탈고하고는 3년여의 공백기간이 지난 뒤에 맺음말 원고를 보낸 다음날 작고했다고 합니다. 원고의 분량이 충분하지 않았던 탓인지 264쪽 분량의 책의 왼쪽면은 자료를 수록하거나 비어있었고, 오른쪽 면에는 글을 담았습니다.


저자가 미국기행의 연재를 힘겨워했던 것은 코로나19의 유행이라는 세계사적 위기라는 외적 요소와 정년퇴임에 따른 어수선함과 건강악화와 같은 개인적 요소가 겹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책에 담겨진 내용은 서너 차례의 미국 방문의 경험을 담아냈는데, 처음 방문은 한국에 수감되어있던 두 형의 석방과 지원활동을 위하여 미국의 인권단체와 국무부를 방문했던 1980년대 중반과 후반, 2016년에 마지막으로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담긴 내용 가운데 2019~2020년의 이야기는 아마도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는 친구나 지인도 있고 좋은 미술관도 있으며 훌륭한 가극 공연장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미국으로의 발길이 뜸했던 것은 미국사회가 반지성적이고 오만한 자기중심주의가 만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반감이 두드러졌다고 합니다. 저자의 지적에 특별하게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북한이나 러시아의 사정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고 있는 점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관한 글을 쓸때는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인지 2016년에 코스타리카 대학에서 행한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이베리아반도의 기독교국가 들이 그라나다를 함락하면서 국토재정복이 완성되었고, 그해 유대인들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쫓겨나 흩어지게 되었다고 하는 설명에는 우선순위와 시차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이 있는 듯합니다. 그라나다가 함락된 것은 149212일이었고, 콜럼버스는 그해 83일 스페인을 떠나 1012일에 바하마제도의 산살바도로 섬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슬람왕국의 종교적 관용주의를 누리던 유대인들은 그해 331일 조인된 알람브라 칙령에 따라 731일부로 추방되었다고 합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북부로 흩어졌는데 이베리아반도에서 상권을 쥐고 있던 유대인들이 네덜란드로 옮겨감에 따라 네덜란드가 부를 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실 홀로코스트의 대상이 된 유대인들은 근원적으로 서기 132년 로마제국에 대한 반란이 진압되면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저도 여행을 하면서 미술관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디트로이트에서 하루 묵었던 적이 있습니다만, 헨리 포드 박물관을 방문했으면서도 디트로이트 미술관을 건너 뛴 것은 여행사에서 받은 정보가 충분히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옛날 디트로이트 미술관 부근이 치안이 좋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 역시 뉴욕 시내에서 하루 묵었던 것을 이틀로 하고서라도 가보았어야 한다고 뒤늦게 후회를 합니다. 시카고 미술관에서는 한나절을 머물면서 그림을 감상했으면서도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스를 본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것도 이상합니다. 누구말대로 미술관에서도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달리듯 구경한 것 같습니다.


책읽기를 마칠 무렵 로쟈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서경식 교수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도 읽어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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