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여우들의 직장생활 다이어리 - 왜 별 볼 일 없는 그녀가 회사에선 잘나갈까?
한옥경.이미정 지음 / 알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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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에서 보내주신 <똑똑한 여우들의 직장생활 다이어리>를 받아들고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제 본명을 여성으로 착각하신 탓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해도 의과대학에 여학생이 많지 않을 때라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들을 남학생 나름대로는 하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보면 직장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직장은 말 그대로 사각의 정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적네트워크로 짜여서 긴밀하게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직장생활선배님들마다 하시는 말씀이고, 좋은 선배, 동료, 후배를 만나야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말은 이제 저도 해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 탓인지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한 다양한 참고서(?)들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도와드리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서적들은 직장인을 위한 일반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즉, 분명 차이가 있을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후지제록스 홍보팀 한옥경 팀장님과 이미정대리님은 바로 그런 점에 착안하셨던 모양입니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여성들을 위한, 뒤집어 말하면 직장선배로서 후배 길들이기 일 수도 있는 오밀조밀하고 시시콜콜하다 싶은 조언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낸 결정체가 바로 <똑똑한 여우들의 직장생활 다이어리>인 것 같습니다.

모두에서 제가 읽고 리뷰를 써서 출판사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싶었다는 솔직한 말씀을 먼저 적었습니다. 즉, 이번에는 출판사에서 번지수를 잘 못 짚으셨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모양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책을 읽어도 마음에 새겨둘 무언가를 적어도 하나는 낚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독서 소신인 탓인지 이 책에서도 여러 가지를 새길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말띠라서인지 직장편력이 만만치 않은 편입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새로 시작하는 직장에서나, 혹은 새로 들어오는 신참들의 정신세계는 제가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와는 천양지차이기 때문에 이해가 쉽지 않을뿐더러 세월이 바뀌다 보니 선배랍시고 한마디 하게 되면 강산이 바뀌는 시차가 과거 10년 단위에서 엄청 축소되어 이제는 년 단위로 세는 것이 불가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요즘에는 선배들도 후배들에 대하여 공부를 많이 해야 그나마 사무실 분위기를 화기애매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자조섞인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여직원들을 대함에 있어 조심해야 할 사항들은 예전과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의 전공 탓인지 제가 근무하는 부서는 저자의 말대로 여초(女超)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벌써 감을 잡으신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만, 여성들과 같이 근무하는 남성들이 더 조심스러울 뿐 아니라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져 당황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해한다면 <똑똑한 여우들의 직장생활 다이어리>는 직장생활을 새로 시작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도 귀중한 지침서가 될 뿐만 아니라 신참 여직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고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챙겨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 성을 구분할 것 없이 고참 선배들이 읽어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외계어처럼 들려 누군가 번역을 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요즘 신참들이 사용하는 직장언어를 과감하게 소개하고 있는 점도 거리감은 느끼지만 역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두 분의 저자가 나누어 쓰신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만 구분이 되지 않아 고참선배의 입장과 중참선배의 시각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건강과 관련한 조언을 덧붙이지면 촉촉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습기를 활용하라는 조언을 하고 계신데(224쪽), 최근 가습기 세척제가 호흡기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240쪽 도시락싸기를 권하는 대목에서 정말 옛 생각이 나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의국(병원에서 전공의들이 모여 일하는 곳을 의국이라고 합니다.)에서 같이 공부하던 멤버들이 도시락을 싸오기로 했습니다. 결혼하신 여선생님과 남선생님 그리고 미혼인 제가 그 멤버였는데,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날은 라면을 끓이곤 했는데, 결혼하신 여선생님께서 라면을 제일 많이 드셨던 것 같습니다.

정리해보면, 요점정리 잘 되어 있고, 삽화도 젊은이들 취향에 맞게 감각적이다 싶습니다. 다만 직장은 스트레스로 뭉쳐진 곳이라는 선입견이 생길 정도로 강조하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직장은 하루 깨어있는 시간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에 즐거운 곳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은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부서의 장을 맡고 있을 때 신조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달려 나가고 싶은 직장”을 만들자 였습니다.

상사는 곰보다 여우를 좋아한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지만, 상사도 상사 나름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네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지나치게 여우짓하면, 이 여우가 무슨 재주를 부리려는 모양이라는 경계심이 드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뒷통수라도 한번 맞고 나면 여우보다는 곰이 낫더라는 고정관념이 생기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우가 되었던 늑대가 되었던 직장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무엇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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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 드는 법 46 멋지게 나이 드는 법
도티 빌링턴 지음, 윤경미 옮김 / 작은씨앗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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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티 빌링턴의 <멋지게 나이 드는 법 46>을 읽게 된 것은 역시 제목에 낚였기 때문입니다. 역시 제목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원제목이 “Life is an attitude: How to grow forever better”이니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 더 나은 삶으로 키우기’ 정도의 뜻을 담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인생에서 늘 성장하고, 보다 충실한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자료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에게 일어난 변화는 40살이 되던 해에 시작되었다고 해서인지 멋지게 나이드는 법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만, 딱히나 나이든 독자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보는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경험이나 깨달음을 놓치지 않고 정리해서 읽을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자의 시어머니인 헬렌의 삶에서 많은 힌트를 얻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좋은 멘토로 부터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헬렌은 어렸을 적에 소아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했고, 남편을 잃고 제한된 수입에 의지해서 홀로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생은 아주 멋지고 즐거움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헬렌의 행복의 비결은 “행복해지기로 결심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즉 인생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보다 나은 삶을 만들게 하는 팁을 46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주변인물로부터 이야기 거리를 시작해 팁을 이끌어내고, 요점을 정리하기도 하고, 또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팁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뭐 다 알고 있는 이야기네! 새로울 것도 없구먼.”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열여섯번째 꼭지 “마음 깊이 너그러워져라”의 경우 나이가 들어가면 아무래도 마음이 둥글게 무뎌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특히 동양의 선(禪)사상으로부터 많은 팁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개별 팁에 할애한 글의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볍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동양철학에 담긴 깊은 그 무엇을 새겨서 느끼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떤 글이라도 읽으면 마음에 남는 무엇이 있게 마련입니다. 저자의 책읽기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에 크게 공감한 바가 있어 소개합니다. “내가 맨 처음 대학원 과제를 할 때, 나는 전공 분야의 전문가가 쓴 책을 읽고 이렇게 생각했다. ‘정말 형편없는 글이군. 도대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그 책에 나오는 개념에 대해 이해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 책을 붙들고 앉아 어떻게든 읽어내려고 끙끙댔다. 마침내 그 책을 이해하게 되자, 내가 허튼소리라고만 생각했던 것은 그 책이 내 이해 범위를 넘어서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며 있는 힘껏 노력해야만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188쪽)”

네 감으셨겠지만, 제가 그동안 예스24의 난쏘공 리뷰어에 참여하면서 깨닫게 된 바입니다. 처음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서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하는 메시지의 극히 일부분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달 부여받는 과제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꾸준히 참여하면서 조금씩 이해의 폭이 넓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난쏘공의 과제 이외에도 인문학서적을 따로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무리를 해보면 제목을 통하여 얻게 될 것으로 기대했던 바에는 많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놀랐던 점은 겉장을 펼치면서 만나게 되는 유명 남자배우의 사진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독자로서의 느낌은 책내용과 무관한 광고로 보여지는데, 내용에 비하여 비싸다 싶은 값을 내고 구입한 책에서 광고를 만나는 초유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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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필리아 - 우리 유전자에는 생명 사랑의 본능이 새겨져 있다 자연과 인간 1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안소연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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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위대한 생물학자이면서 생물학이 지향할 새로운 목표를 끊임없이 제시해온 에드워드 윌슨교수님을 <통섭; http://blog.joinsmsn.com/yang412/4895225, http://blog.yes24.com/document/4851897>을 통하여 처음 만났습니다. 학문이 발전하면서 세분화가 가속화되면서 이젠 학자들도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의 테두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지적하고, 세분화된 학문이 이룩한 성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면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학문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음을 그러한 경향을 통섭(統攝, consilience)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558쪽이라는 두께가 큰 부담이었지만,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을 퉁겨내는 윌슨교수님의 예리한 분석과 예시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섭>은 두께만큼이나 딱딱한 내용이었다는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바이오필리아>를 통하여 윌슨교수님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역시 ‘통섭’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통섭>이 학문의 영역을 교집합으로 가져가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학술적 접근으로 설명하고 있다면 <바이오필리아>는 생물학 연구의 현장으로부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서 자연과학에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접목시켜 이야기를 완성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이오필리아>를 말랑말랑하게 풀어서 쓴 <통섭>이라고 본 것입니다.

뉴기니에서 흰색장식풍조를 만난 이야기로부터 자연과학자들이 사물에 접근해가는 경로를 요약해보겠습니다. 과학은 자연을 훼손하고, 과학에는 예술적 감수성이 없으며, 과학자들은 잉카시대의 황금을 녹인 정복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인문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과학은 분석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종합적이기도 하다. 종합단계에서 과학은 예술 같은 직관과 비유적인 묘사를 이용한다. 초기 분석 단계에서는 각 행동을 유전자와 신경 감각 세포수준으로 분석할 것이나, (…) 종합단계에서는 이 생물단위의 가장 기본적인 행동조차 복잡하고 난해한 사회 생물학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90쪽)”고 자연과학자를 위한 변명(?)을 내놓고 있습니다. 윌슨 교수님은 “과학 문화의 최종 목표와 척도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다. (…) 과학자는 알기 위해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기 위해 안다. (…) 인문학자들은 지식인 부족의 무당으로서 지식을 해석하고 민속학, 의식, 경전을 전달하는 현인이다.(95쪽)”라고 설파하여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맡은 역할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수리남의 베른하르츠도르프의 숲에 사는 개미의 생태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앞서 인용한 흰색장식풍조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 젊은 시절 뱀을 관심을 두었던 뱀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생물학 분야의 연구로부터 생물사회학적 해석을 거쳐 신화를 비롯한 인문학적 자료를 이끌어 마지막으로는 인간의 본성에는 자연과 다른 생명체에 대한 사랑이 내재되어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환경 보전이라는 거대한 담론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통섭>에서 처럼 윌슨교수는 이번에도 Biophilia라는 새로운 단어를 내놓고 있습니다. 최재천교수님이 추천사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바이오필리아는 ‘생명’이라고 번역한 Bio-와 좋아함 혹은 호성(好性)이라고 번역하는 philia를 조합한 단어입니다. 번역자는 Biophilia를 ‘생명사랑’이라 번역했으니 좋은 번역어라 생각합니다. 윌슨교수님이 ‘인간의 생명사랑을 조정하는 유전자가 염색체17번에 있다.’고 주장하셨다는 글을 읽고 ‘정말?’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윌슨교수님은 다른 생물과 친밀하게 지내려는 인간의 욕구는 상당히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는 못한 형편이므로 앞으로 탐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생명사랑은 궁극적으로는 인류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있는 자연파괴의 중단과 생물다양성의 보존이라는 목표를 두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세계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따라 자연상태로 보존되고 있는 지역이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고, 이에 따라 멸종을 맞는 생물종의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현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천연의 공간을 얼마의 크기로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윌슨교수님이 인용한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섬 사례를 생각해봅니다(114쪽). 크라카토아섬은 1883년 8월 27일 화산폭발로 생명체가 몰살하였는데, 1년 뒤에 첫 번째 식물이 돋아났으며, 1920년에는 울창한 숲으로 뒤덮이고 많은 동물 종이 섬으로 이주했다는 것입니다. 즉 원상을 회복하는데 40년이 채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 사례를 매머드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한 유성충돌사건으로 연결해서 다시 생각해보면 유성충돌로 매머드만 사라졌겠느냐는 추론이 쉽게 성립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생명체가 멸종을 맞게 되었을 것입니다. 크라카토아 섬의 경우는 화산의 피해를 입지 않은 인근지역에 살고 있는 생명체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유입됨으로써 원상에 가깝게 회복이 가능했을 터이나 유성충돌과 같은 지구적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 것인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지구 생태계가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지구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근본적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경쟁하는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멸종을 맞게 되는 생명체도 있다고 본다면, 인류가 환경의 보존과 생물다양성의 유지에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면 지구 생태계의 파국적 종말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인간의 본능에 담긴 다른 생명체에 대한 사랑, 생명사랑(Biophilia)은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을 잘 안다는 사실이 생명의 참된 의리를 고양하기 때문에 인간이 고귀할 수 있다는 윌슨교수의 주장은 참으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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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말하다
남주헌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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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무상급식에 관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사퇴하게 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2010년 서울이 디자인 수도로 선정되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 근처도 보도블록으로부터 시작해서 거리모습이 일신되어 산뜻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아온 디자인이란 주로 산업디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세훈시장 덕분에 도시도 디자인을 한다는 개념에 눈이 뜨게 되었지만, 도시디자인의 실체는 남주헌박사의 <디자인을 말하다>를 통해서 보다 명확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도시 디자인은 단순하게 건물을 비롯한 시설물의 디자인만이 아니라 환경까지 아우르게 되는데, “시민들의 문화와 복지를 바탕으로 도시의 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도시 전체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디자인 업무를 수행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38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 시카고를 ‘건축의 도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카고 전체도시가 화재로 소실되는 대사건을 계기로 하여 이를 복구하면서 건물의 다양성을 요구하면서 같은 건물을 건축하지 않은 것이 시발점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미국에서 살 때 같은 아파트에 사시던 분이 시카고로 옮기셨는데, 이 분이 건축을 전공하셨던 것 같습니다. 시카고에 오면 건축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건물들을 안내해주시겠다고 하셨지만, 끝내 찾아가지 못해 지금도 안타깝습니다. 시카고의 건물들은 건축학의 역사를 나타낼만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냥갑 모양의 네모반듯한 건물, 심지어는 크기도 비슷한 건물들이 도심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지난 해 가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 특이한 모습을 한 건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귀국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그에 못지않게 튀는 건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월드컵경기장 맞은편에 서있는 마포구청 건물입니다.

그리고 보니 도심에서도 다양한 모양을 한 건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건물마다 개성이 살아 숨쉰다고나 할까요?

모양만 튄다고 해서 좋은 도시 디자인은 아니라고 합니다. ‘좋은 도시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헬싱키예술디자인대학 히보넨 학장은 “시민을 배려하는게 디자인이다. 패션이나 미에 국한돼 있던 디자인 개념을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도시디자인’이다.(80쪽)”고 말하고 있답니다.

서비스에도 디자인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는 남주헌박사의 사례소개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간호사들이 환자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환자정보를 인수․인계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 환자 서비스를 개선한 사례를 ‘서비스를 디자인’ 한다고 소개하였습니다. 일종의 서비스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입니다만, 이 역시 생각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미 디자인시대가 열린 만큼 디자인을 배우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말하다>를 통하여 독자들이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 저자는 먼저 디자인을 생각의 중심축에 놓을 것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디자인을 적용할 환경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고 하는데, 발상의 전환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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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전상국 지음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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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http://blog.joinsmsn.com/yang412/10365703>을 읽고서이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전상국선생님의 소설집입니다. 소설집에는 중편 ‘남이섬’과 ‘지뢰밭’ 그리고 단편 ‘꾀꼬리편지’, ‘춘심이 발동하여’와 ‘드라마게임’을 담았습니다. 다섯편 가운데 ‘남이섬’, ‘지뢰밭’ 그리고 ‘드라마게임’은 6.25동란의 지워지지 상처를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비극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었는지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는 작가의 응어리가 느껴집니다. 전쟁이 끝난 지 반백년이 가까워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고 있으니 전쟁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 않으신 것도 있고, 아무래도 기억에 남기기 싫어 억지로 잊으려하시는 것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의 기억에 아픔을 각인시켜 다시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소망하고 계신거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쟁이라고 해서 서로 죽이는 일만 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고지전>에서도 다루었습니다만, 막상 부딪혔을 때 살수(殺手)를 펼쳐내기란 그리 쉽지가 않았던 모양이고, 무언가 마음에 걸려 살려주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인데, 작가는 <지뢰밭>에서 그런 경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그때의 기억이 단단한 옹이처럼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언젠가 풀려날 기회만 기다리며 살아온 셈인데, 그것이 쉽게 풀려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남이섬>의 주제는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 김덕만씨와 이상호씨 만이 기억하는 여자 ‘나미’의 흔적을 뒤쫓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전쟁 당시의 남이섬 분위기를 알았더라면 몇 년 전 가을에 남이섬을 찾았을 적에 그녀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전쟁 당시 작은 시골마을 안에서도 이념이 다른(이념이 서로 달랐었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사람들이 대립하여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김덕만씨와 이상호씨로 대립되는 두 세력을 남한강의 동쪽과 서북쪽으로 나누고 그 강안에 떠있는 섬은 두 세력이 얽히는 묘한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는 여자 나미는 어느 한편의 손만 들어준 것은 아닌 셈이니 두 세력의 대립자체가 과연 이념의 대립이었는지 회의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꾀꼬리편지>에 마음이 많이 가는 것 같습니다. 길이의 여유때문인지 중장편에서는 대체적으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느슨하게 풀려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단편은 짧은 길이만큼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압축해내지 못하면 다 읽고나서도 미진한 무엇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꾀꼬리편지>는 잘 엮여진 이야기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초헌과 우목 그리고 화자(話者) 사이에서 엮이는 묘한 감정을 실타래가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한 치 흐트러짐 없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목의 물오름과 같은 속수무책의 관능으로 온몸이 뜨겁던 나이에 초헌을 만난 화자가 복사골에 정착하게 되면서 뜨겁던 몸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초헌과 우목으로부터 자연을 배우게 되면서라는 것을 은연중에 전하면서, 우리 또한 자연으로 돌아갈 운명이라는 메시지를 수목장을 통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초헌을 만나 농익은 육신의 갈증을 몰아의 황홀경으로 이끌어갔던 화자로서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만사가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은 초헌의 변화에 마음의 길을 잃고 말지만, 우목을 만나면서 그 갈증을 자연을 찾아 풀어내게 되지만 두 사람의 현실적인 거리는 결코 가까워진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화자(話者)처럼 저 역시 “상수리나무 잎 하나를 새끼손가락 두 마디쯤의 크기로 정교하게 접어놓은(26쪽)” 꾀꼬리편지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꾀꼬리가 편지를 접다니 참 신기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지 작가는 꾀꼬리편지는 거위벌레 암컷이 낳은 알을 잘 건사하기 위해서 만드는 안식처라는 설명에 그 안식처를 만드는 모습까지도 빼놓지 않는 정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꾀꼬리는 다만 이를 세상에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는 셈이라는 것까지도 말입니다.

꾀꼬리편지를 통해서 작가는 “세상의 온갖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인데 그것이 자연보다 낫다는 자신이 없으면 아예 손을 대지 말 일.(26쪽)”이라고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

우목의 유골을 생전에 소망하던 복사골 백합나무에 뿌리면서 화자(話者)가 얻는 깨달음은... “드디어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늙음과 죽음이 모두 없어졌다는 생각조차 없다는 절간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관통하여 하나되기, 그 없음이 바로 죽음이 아니겠는가. 화실이 시위를 벗어나 과녁에 맞는 순간까지가 인생일 터. 화덕을 거쳐 기계공이로 빻은 뼛가루가 이렇게 산 사람의 손가락을 통해 술술 빠져나가 바람으로 물로 사라지는 이 투명한 비움.(37쪽)”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관조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란 생각이 들어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연에 스며드는 삶이 주는 묵직함을 언젠가 느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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