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7가지 언어 - SERI CEO 인기 스피치 강좌
김은성.김재원 지음 / 알키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구슬 하나하나도 보기에 참 좋지만 이것들을 꿰어 놓으면 그 아름다움이 더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앉아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아내로부터 받곤합니다. 아마도 제가 아이들하고 대화가 없다는 지적일 것 같습니다. 아마도 어렸을 적에 꼭 밥상머리에서 야단을 맞거나 하던 때 속으로 불편하였던 기억 때문에 만들어진 버릇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말로서 전달하지 않으면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말을 제대로 사용하고 계신 두 분께서 말하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조직의 리더의 위치에 있는 분들이라면 더우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였습니다. 바로 삼성경제연구소에서 CEO를 대상으로 하는 인기 스피치 강좌를 이끌고 있는 김은성 아나운서님이 동료 김재원 아나운서와 함께 만든 <리더의 7가지 언어>입니다.

 

누군가의 앞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부담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것도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요청을 받게 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리뷰를 쓰기 위해서 기억을 정리하다 보니 2004년엔가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의 연구소를 방문하였을 적에 열렸던 만찬회에서 갑작스럽게 만찬사를 요청받았던 때가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공식행사에서는 미리 준비한 A4용지 한 장분량의 축사를 6시간 정도 연습한 끝에 일본어로 읽어 내려갈 수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만찬사를 영어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대표하고 있던 기관과 방문기관 사이에 이어져온 긴밀한 관계가 앞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방문과정에서 보여준 환대에 감사한다는 내용으로 진심을 담아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구름위에 떠있는 기분으로 정신없이 어떻게 마무리를 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는데, 동행하셨던 황우석교수께서도 좋은 만찬사였다고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미리 준비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누구나 공통적으로 당면하는 일이지만 특히 리더라면 세상과 소통이 중요하고, 소통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크고 효과이면서도 위험요소가 많은 방법이 바로 언어, 즉 말입니다. 저자들은 동서고금을 살펴 성공한 리더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정리하여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콕 짚어주고 있습니다. 마치 족집게과외 하듯이 말입니다. 다양한 사례가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용되고 있고 그 사례를 다시 쉽게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정말 부러워하는 스타일입니다. 말도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쓰는...

 

저자는 리더들의 언어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일곱 가지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1. 자기철학의 언어, 2. 비전의 언어, 3. 명확성의 언어, 4. 공감의 언어, 5. 반응의 언어, 6. 균형의 언어, 7. 언행일치의 언어 등입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덕목이 없습니다만, 역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저자가 제일 앞에 둔 자기철학의 언어가 될 것 같습니다.

 

자기철학의 언어라함은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깨달은 것을 담은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연예 프로그램을 시청하다보면 출연자가 마치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작가가 써준 것이라는 티가 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작가로부터 건네받은 대본을 충분히 읽어 자신의 경험으로 소화하지 못하였거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꾸며내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일 것입니다. 듣는 사람이 느끼기에 남의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처럼 포장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저자는 자기철학의 언어를 설명하면서 중견기업의 대표로부터 윈스턴 처칠, 버락 오바마의 사례를 들어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듣는 이에게 어떠한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의 출발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자기 경험과 추억은 말을 하기 위한 최고의 재료이며 콘텐츠이다.(21쪽)”

 

그밖에도 저자들은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여기에 모두 요약한다는 것은 제가 좋아하는 리뷰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어떻든 제가 맡고 있는 리더로서의 역할에 도움이 될 믾은 것들을 이 책을 통하여 얻을 수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등대로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숙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의 리뷰를 쓰기 전에 박인희씨의 <목마와 숙녀>를 찾아 듣습니다. 젊었을 적 가을이 되면 음악다방에서 참 많이 듣던 곡입니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등대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을에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이야기가 안타까워서 였던가? 아니 어쩌면 바람에 쓰러진 술병에 별이 떨어지고 가을바람소리가 쓰러진 술병속에서 목메여 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박인희씨의 노래로 익숙한 버지나아 울프의 <등대로>를 읽게 된 것은 조나 레러의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02521>에서 자아의 인식과 의식의 흐름을 화두로 삼아 신경학적 논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버지니아 울프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플 때 사람이 어떻게 여러 다른 인물로 쪼개지는가는 신기한 일이다.(조나 레러,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298쪽)”라고 술회할 정도로 자신의 병 덕분에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렇게 인식한 사람 마음의 변덕스러움과 다중성을 우리가 알고 있는 ‘의식의 흐름의 기법’이라는 문학적 기법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3부로 이루어진 <등대로>에서 작가는 19세기 말 근대사회가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영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런던에 사는 램지가 사람들이 스코틀랜드 서쪽에 있는 헤브리스제도의 한 섬에 있는 별장에서 초대한 손님들과 머무는 동안, 등장인물들이 하는 생각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부는 램지씨의 별장에서 건너다보이는 등대를 방문할 계획에 들뜬 자녀들에게 날씨가 악화될 것이므로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램지씨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램지부인의 비중이 가장 많은데 2부에서는 특별한 설명이 없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10년 동안 사회적 변화와 램지가에 일어난 사건 그리고 별장이 변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시 3부에서는 남아 있는 가족들 가운데 별장에 모인 램지씨와 제임스 그리고 캔이 등대를 찾아가고 1부에서 등장했던 화가 릴리가 다시 손님으로 찾아와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쓰고 있는 철학백과사전의 Q항목에 묶여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램지씨와 그런 남편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과 평소 엄격한 가부장적 태도를 보이는 남편에 대한 증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세심한 배려를 보이는 램지부인의 복잡한 성품이 드러나는 그녀의 생각들이, 마치 등대에서 오는 빛이 집안을 훑고 지나가듯 교차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1부에서 램지부인이 아이들과 함께 등대로 가려는 계획을 들은 램지씨가 날씨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하는데 장면과 3부에서 드디어 램지씨와 등대로 가는 배 안에서도 막내아들 제임스가 아버지 램지씨에 대한 살해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별도 설명은 없었습니다만, 버지이나 울프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시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시사한다 생각합니다만, 결국은 램지씨가 제임스가 등대로 가는 배를 잘 조종하였음을 칭찬하면서 갈등이 해소되고 있는 것을 보면 램지씨의 엄격한 자녀훈육관의 면모로 자녀들이 아버지로부터 인정(認定)받기에 목말라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얼마 전에 읽은 <에고 트릭;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73764>에서 줄리언 바지니는 자아의 본질을 정리하면서, 자아는 항상 변화하며, 여러 요소들의 묶음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만, 버지니아 울프는 당시에 벌써 우리의 자아가 영속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한순간 지속될 뿐이며 ‘파도 위의 구름처럼’ 지나가는 것임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작가에게 ‘등대는 무슨 의미였을까?’를 붙들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읽어갔습니다만, 정작 등대에 갈 계획을 세웠던 램지부인은 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고 램지씨와 제임스 그리고 캔이 3부에서 등대에 이르게 되고 이들의 의식 속에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있던 의식의 숙제가 풀리게 됩니다. 한편 이들이 등대로 향하는 동안 역시 자신의 그림에 대하여, “인간이란 기계는 그림을 그리거나 감정을 느끼기엔 정말 비참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기계(279쪽)”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민을 하던 릴리 역시 마지막 순간에 그림을 완성하면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그녀는 캔버스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흐릿해 보였다. 마치 두 번째로 그것을 분명히 본 듯 그녀는 거기 중앙에, 갑자기 온 힘을 다해 선을 하나 그었다. 그림이 완성되었다.(30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고 트릭 - ‘나’라는 환상, 혹은 속임수를 꿰뚫는 12가지 철학적 질문
줄리언 바지니 지음, 강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살다보면 갑자기 ‘내가 누구인가?’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질문은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라고들 합니다만, 정체성(正體性)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 또는 그 특성을 가진 존재.(다음 사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정체성(正體性)’이란 사람이 ‘환경이나 사정이 변해도 자기가 어떠한 변하지 않는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 또는 ‘그렇게 깨달아진 변하지 않고 독립적인 자신의 존재’라고도 하지만, 대상이 개인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사회집단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정체성이란 다른 의미에서 자신을 타인과 구분하는 특성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특성을 형성하는 주체, 즉 자아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확대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에서 말하는 자아(自我)란 “사고, 감정, 의지, 체험, 행위 등의 여러 작용을 주관하며 통일하는 주체.(다음 사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편 심리학에서 자아(ego, 自我)란 “기억·평가·계획하고 여러 방식으로 주변의 물리적·사회적 세계에 반응하며 그 속에서 행동하는 부분이다.(다음 브리태니커 사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발달된 자아는 특히 위협·질병 및 생활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전생애에 걸쳐 변화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변하지 않는 특성이라고 한 정체성의 정의와 다소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에고 트릭>은 영국의 대중철학자 줄리언 바지니가 ‘나는 왜 나인가?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자아의 핵심이 존재하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하여 철학뿐 아니라, 심리학, 신경과학, 종교, 사회학 등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사유한 결과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면 사랑하는 가족이 치매 혹은 중증의 신경질환을 앓아 기억이나 인식능력 등과 같은 개인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 퇴화되어 버린 경우에 현재 질병으로 변한 모습의 이 사람이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했던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런 분들이 당면하고 있는 의문에 정해진 답은 아닐 수 있지만, 가까운 답을 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를 통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자아가 무엇인지를 찾고 있습니다. 자아와 육체와의 관계, 뇌의 구조와 기능을 살펴 자아와의 관계를 따지고 있으며, 나아가 기억과 자아와의 관계, 실재여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영혼과 자아의 관계를 따져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중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문제를 고려하여 다중적 자아라는 개념과 소속된 사회와 자신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자아에 대하여도 논의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올바른 자아관, 즉 ‘자아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사람의 본질을 담고 있는 어떤 것 혹은 특정 부분은 없다. 사람의 육체, 뇌, 기억은 모두 우리 정체성에 중요하지만 이 중 어떤 것도 사람의 정체성이 머무는 자아의 핵심, 즉 진주가 아니다. 둘째, 사람은 비물질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이는 다른 모든 생물체의 구성요소와 동일한 종류의 것이다. 셋째, 진주 관점을 부인하는 것은 자아의식이 하나의 구조물임에 분명하다는 의미다. 우리를 현재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단일한 무엇이 없다면, 결국 우리는 서로 공조하는 몇몇 부분 혹은 사물들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스스로를 동일한 사람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어주는 자아의 통일성은 어떤 점에서는 취약하고 한편으로는 강건하다. (…) 우리의 자아의식은 분명 사회적 환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의식 자체는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것이지 외부에 뿌리를 두고 있지는 않다.(160쪽)”

 

저자의 이와 같은 주장은 ‘1. 자아의 통일성은 심리적 속임수가 만든 결과물이다. 2. 우리는 물질에 불과하지만 단순한 물질 이상이다. 3. 속성 자체가 변하기에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세 가지 명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자아를 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나를 나로 만드는 변함없는 핵심이 존재한다는 ‘진주 관점’이라고 하는 일반적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자아는 항상 변화하며,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묶음에 가깝다는 ‘묶음이론’이라 불리는 관점입니다. 저자는 ‘진주 관점’의 허점들을 제시하면서 ‘묶음이론’이야말로 자아를 보는 올바른 관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미래의 자아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논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환생이 즉 자아의 생존을 의미하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은 육체의 지속을 의미하는지 논하고 있으며 기술의 진화가 자아를 다시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장수사회에서 야기될 자아의 문제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아’라고 하는 무거운 철학적 주제를 다양한 학문적 영역에서 실제 사례를 인용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신 보건의료법정책 세미나 1 리걸플러스 62
송기민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민들의 사회참여의식이 고조되면서 국가정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특히 보건 복지 분야의 정책방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책을 주관하는 정부당국이나 정책의 영향을 받게 되는 보건의료계 역시 여론의 향배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을 왜곡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시각은 여전합니다.

 

보건의료정책은 해당분야의 종사자도 집행된 다음에서야 문제점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는 방법론 등을 비롯하여 여러 영역에서 아직도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정책당국이나 전문가단체 그리고 시민단체 등이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여 합의에 이르는 성숙된 과정을 통하여 정책이 실행되기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어떻게 보면 정책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같이 고민하는 절차가 생략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관련 자료 역시 학계가 주도하는 전문서적 수준에 머물고 있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마저도 미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공유할 수 있는 대중서가 없다고 해도 관심주제를 같이 논의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명윤리에 관한 학술서에 가까운 <가족의 치료중단요구와 의사의 생명보호의무;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66052>를 북소리를 통해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최신보건의료법정책 세미나 I>도 유사한 경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이번에도 마침 같은 송기민교수님의 책입니다.

 

송기민교수는 보건의료정책은 법, 행정, 보건, 의료, 복지 정책 등 다양한 학제의 접근이 필요한 분야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최근 우리사회를 달구고 있는 ‘복지’논쟁의 쟁점 가운데 사회보장제도가 있고, 그 핵심에는 보건의료제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보건의료정책이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한 분야라는 주장에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건이 복지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의료계인사들이 적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 때문에 대한의사협회는 보건행정과 복지행정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의 기능을 나누어 인간의 건강에 관한 정책을 다루는 보건분야를 환경분야와 같이 묶고, 복지부문은 노동 여성 가족 등과 같이 묶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보건과 복지는 분명히 다른 영역이라 생각하는 보건의료계인사들과는 달리 복지전문가들은 보건을 복지의 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인식의 차이는 보건복지행정이 보건전문가로부터 복지전문가로 교체되면서 더욱 심화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자가 본서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의약분업정책, 보건의료기술발전과 임상시험, 건강증진과 담배사업규제정책,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 사회보험의 권리구제정책, 보건의료인력의 수급정책, 응급의료미수금대물정책 그리고 저출산·고령사회 대응정책 등입니다. 제시한 대부분의 주제는 보건의료역역이라 생각됩니다만, 저출산과 고령사회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이 보건의료계의 몫인지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WHO가 주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담배규제기본협약에 관한 주제를 보건의료정책의 범위에서 논하는 것 역시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제시된 주제를 개별적으로 논하기에는 북소리의 지면으로도 부담스럽다는 생각에서 민감하다 싶은 몇 가지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의약분업제도입니다. 의약분업의 효과와 타당성, 선진화된 의약관리체계의 구축, 의약분업의 발전방향 등을 제목으로 하여 논하고 있는데, 그 흐름이 주로 정부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관련 이해당사자라 할 의료계, 약계, 시민사회의 견해는 배제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특히 2000년 우리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기면서 시작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실시배경이나 정책도입과정을 살펴보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책의 재평가와 보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일을 담당할 주체를 보건복지부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저자의 제안에 대하여 의약분업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한 부서가 바로 보건복지부였다는 점을 고려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는 1. 의료기관 이용증가, 2. 건강보험재정지출 증가, 3. 항생제 사용감소, 4. 방문당 투약일수 증가, 5. 의약분업 실시 이후 국민불편 증가, 6. 알권리의 신장 등을 의약분업의 효과로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섯 가지 효과 가운데 항생제 사용감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시작한 의약품사용평가의 효과가 결정적이라는 주장이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의약분업의 효과라고 내놓을 형편은 아니다 싶습니다. 그리고 처방전 발행을 통해서 국민의 알권리가 신장되었다는 주장은 환자가 최종적으로 복용하게 되는 약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조제내역서 발급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서 내세우기가 민망한 노릇이라는 의료계의 주장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모든 제도가 국민의 입장에서 편의성을 따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제도는 국민의 편의성이 외면된 정책이었다는 지적은 국민만족도 조사 등의 결과로 드러나 있습니다. 즉 실효성없는 국민의 알권리를 표면적으로 내세워서 처방전 발행을 의무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대만처럼 병원에 원내약국을 개설하여 환자로 하여금 원내약국 혹은 외부약국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의 선택권이 보장되는 기회를 원천봉쇄한 것은 정책에 큰 하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동차사고를 당했을 때 적용되는 건강보험급여제한에 관하여 두 개의 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기과실에 의한 자기신체피해 교통사고의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이 모두 사회보험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자동차보험의 책임보험은 건강보험과 같이 의무가입해야 한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서 쟁점은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의 수가체계가 독립되어 있고 자기부담부분 역시 두 보험체계가 상이하다는 점도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일단 건강보험은 전국민이 의무가입해야 하는 반면 자동차보험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운전하는 사람만이 가입하고 있는 보험이라는 점이 중요하겠습니다. 따라서 자동차를 운전함으로써 발생하는 자기상해에 대하여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조성된 재원으로 운용되는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것은 기회균등과 형평성을 고려하였을 때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는 사람들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일단 자동차를 운전함으로써 발생하는 사고의 위험가능성에서 운전을 하는 사람과 운전을 하지 않는 건강보험가입자 사이에 당연히 차이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그만큼의 위험을 고려한 별도의 보험료를 추가로 부과하여 재정부담에서의 형평성이 전제되지 않은 채 자동차운전자의 자기과실에 의한 상해에 건강보험적용을 논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납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하기 위한 여명작전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선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응급의학체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여명작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주대학교 이국종교수가 중심이 되어 우리나라 응급의학체계를 정립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나 시간이 경과되면서 용두사미가 되어가는 것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응급의료영역에서 해결되어야 할 또 다른 과제가 바로 응급의료비 미수금대불제도입니다.

 

응급환자 본인 또는 가족이 진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경우, 응급의료기관에 응급진료비 및 이송처치료를 대신 부담하고 나중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돌려받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응급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응급의료가 경제적 사유로 지연되거나 거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입니다. 이 제도의 기본취지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활용도가 떨어지고 있는 점이나 이 제도를 통하여 지급된 응급의료비가 제대로 환수되지 않고 있는 문제점들을 제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저출산·고령화사회 대응정책에 관한 주제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수준이 향상되고 여기에 저출산 문제가 중복되면서 우리사회는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령사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보건정책 혹은 복지정책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조차 이해되지 않습니다. 보건의료와 관련된 현상이기는 하지만 인구동태에 관한 사항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의 인식변화와 사회구조의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고 한다면 보건복지부가 아닌 행정안전부의 소관업무라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고령자가 늘어나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나라의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평균수명이 연장된 결과이며, 저출산의 문제는 육아 및 교육 등의 부담에 대하여 출산연령에 있는 젊은이들의 인식변화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습니다. 현재 가임연령에 있는 젊은이들은 우리사회가 핵가족화되던 시기에 출생하여 부모들의 과보호 아래 자랐던 세대로 자기중심적인 성향으로 키워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저출산 역시 자기중심적 사고의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구구성을 보면 경제적 활동인구가 되는 청장년층이 노인층을 지원하고 다음세대를 키우는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완만한 기울기의 산형이 적절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항아리형을 지나 뒤집힌 호리병형모양 노인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상황으로 사회의 퇴화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양할 노인층이 두터워지면 청장년층의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는 노인이 되는 세대가 자녀를 적게 낳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사회구조를 만든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갈 이유가 있습니다.

 

사회의 부담을 나누지 않은 사람이 사회의 과실을 동등하게 나누는 것에 대하여 대립되는 의견이 있습니다. <발칙한 경제학;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72223>에서 사회적 이슈를 엄격한 비용-편익의 관점에서 바라본 스티븐 랜즈버그는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 사람이므로 당연히 그들 모두가 동등한 대접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과 우리에게는 우선 번식을 할 도덕적 의무가 없고, 우리가 생명을 줄 의무가 없다면 그들에게 부를 주어야 할 의무도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령화사회에서 노인복지를 논하는 과정에서 자녀수에 따라서 차등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복지에 형평성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회적 부담을 나눈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같은 틀에서 복지의 과일을 나누는 것은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글머리에서 잠깐 언급하였습니다만, 보건의료와 복지문제에 일반인의 관심이 많은데 반하여 공유할만한 자료가 많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쉽게 쓰인 보건의료정책관련 도서가 보다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저자가 제시한 주제에 관하여 같이 논의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에 소개합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처럼 2012-07-30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SNS를 통한 댓글 이벤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소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6926
 
발칙한 경제학 -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 관한 불편한 진실
스티븐 랜즈버그 지음, 이무열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이벤트를 통해서 <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18853>를 읽고서 저자 스티븐 랜즈버그에 매혹되어 읽게 된 것이니 책읽기에도 우연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섹스를 많이 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라고 표지에 쓰여 있는 유혹적인 문귀('More sex is safer sex'라는 원제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일 뿐입니다)에 오히려 가볍게 버릴 수도 있었는데,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부제가 강하게 마음을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에서도 예감한 것처럼 <발칙한 경제학>에서는 저자의 자유롭고, 대담하며, 발칙하기도 한 사유의 무한도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제가 쥐고 있던 화두들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제안을 받아두고 망설이던 칼럼연재를 수락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을 다음처럼 시작하고 있습니다. “상식은 이렇게 말한다. 문란한 성생활이 에이즈를 확산시키고, 인구증가는 번영의 적이며, 구두쇠가 사이 나쁜 이웃들을 만든다고. 나는 당신의 상식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6쪽)” 견고하게 굳어있는 상식을 깨부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잘 알 터인데 어떻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의 무기는 증거와 논리, 특히 경제학 논리다. 논리가 우리들로 하여금 세계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도록 자극하며 도전할 때 논리는 가장 계몽적이다. 그리고 분명 재미있다.”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 열여섯 꼭지의 글을 성격에 따라서 네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1부의 제목은 공공하천의 원리입니다. 개인의 행동이 그 개인이 속하는 사회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화제가 바로 제목이기도 한 섹스를 더 많이 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주제인데, 도덕적인 젊은이가 섹스를 기피하는 경우 그 사회에서 에이즈가 확산될 위험이 더 많아진다는 역설(?)을 통계수치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쉽게 이해하면 사회의 에이즈확산 위험은 저감되나 개인의 에이즈 감염위험은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주제인 출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저출산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고민을 해결할 결정적 한 방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사회가 지금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게 되면 한 세기 이내에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우울한 예언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 결혼을 기피하는 남녀들로 국제결혼이 보편화되고 있는 우리사회는 이미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출산문제의 핵심은 육아와 교육이 어려운 현실이라는 당사자들의 주장이 핑계일 뿐이며 자신들이 즐겨야 할 몫을 늘리려는 이기적 사고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 출산연령에 있는 세대들이 우리사회가 핵가족화되던 시기에 태어나서 부모의 과보호 아래서 부족한 것 없이 누리며 성장해온 세대라는 점입니다. 사실 한 사회는 허리가 되는 청장년들의 왕성한 생산력으로 바탕으로 그들을 키워낸 노인세대를 지원하고 자라나서 신세를 질 어린 세대를 키워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출산을 기피하고 있는 지금의 청장년들이 노인세대가 되면 그들이 낳은 많지 않은 청장년들이 만들어낸 재화로 그들을 부양해야 하는 만큼 그때의 청장년들은 허리가 휘게 되겠지요.

 

복지가 화두가 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노인층이 두터워지면서 노인복지 또한 관심을 끌게 됩니다. 복지라고 하면 형평성을 따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만, 평생 사회에 부담을 둔 사람과 사회를 위하여 봉사한 사람이 같은 복지서비스를 받는 것은 분명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이 흘린 피땀을 공짜로 즐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노인복지는 그 사람이 사회에 기여한 바에 따라 최소한 자녀의 숫자에 따라서 즐길 수 있는 복지의 수준을 결정한다면 육아와 교육의 어려움을 잘못된 사회라는 핑계로 기피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구요? 저자가 제2부에서 논하고 있는 인센티브의 효과는 대단한 무기가 될 수 있거든요.

 

저자의 거침없는 논리전개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다이어트에 관한 저자의 재미있는 주장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