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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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스완네 집 쪽으로’의 2권에서는 프루스트가 경험한 당시 파리 사교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파리의 사교계는 유력한 집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하거나 작은 음악회를 열거나 혹은 대화를 하는 살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살롱끼리 드러내놓고 경쟁하는 분위기였던 모양입니다. 첫장면에 등장하는 베르뒤랭의 ‘작은 패거리’라고 하는 살롱은 베르뒤랭 부인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가입이 가능하며 눈 밖에 나면 초청받지 못해 강제 탈퇴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사교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른 살롱에 눈길을 주는 경우도 신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추방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사이비교단의 교주처럼 신도들을 좌지우지하려 들었다고 하는데, 신도인 코타르 의사가 급한 환자 때문에 일어나려 할 때, “오늘 저녁 환자를 방해하러 가지 않는 게 환자를 위해 더 좋을지 누가 알아요? 선생님 없이도 오늘 밤 잘 지낼 거예요. 내일 아침 일찍 가 보면 병이 다 나을 거예요.(12쪽)”라고 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베르뒤랭 부인의 살롱이 주무대가 된 것은 1권에서 등장했던 스완씨가 부인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화자가 스완씨의 딸 질베르트를 사랑하게 될 뿐만 아니라 헤어진 다음에도 후반부에서는 절친한 친구 생 루와 결혼하기 때문에 관계가 이어지는 주요 등장인물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즉 1편의 2부 ‘스완의 사랑’에 등장하는 스완씨는 아버지의 연배에 해당되기 때문에 나이가 어린 화자가 삼자를 통하여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마치 본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의 흐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는 점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분위기상 1편 스완네 집 쪽으로는 분위기로 보아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연령일 때의 이야기라고 보았습니다.

 

다시 살롱이야기로 돌아가서 당시 살롱에서는 남녀가 만나 관계를 맺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관계가 적절하거나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즉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결혼에 골인하거나 배우자가 있는 남녀가 만나는 장소도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살롱의 주인이 남녀를 엮어주기고 하고 갈라놓기도 했다는 것인데, 바로 베르뒤랭부인이 스완씨가 부인 오데트와 엮이게 되는 기회를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스완씨가 탐탁하지 않자 갈라놓으려 든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한편 스완씨의 아내가 되는 오데트는 화류계 출신으로 베르뒤랭부인의 살롱을 통하여 스완씨의 마음을 낚아 결혼에 성공한 이래 몇 차례의 결혼을 통하여 귀족의 칭호를 갖게 되는 대변신을 하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1편 2부의 스완의 사랑에서는 “그는 오데뜨가 자신이 욕망하던 여인이 아니라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렸다.(71쪽)”고 할 정도로, 오데뜨가 처음 만났을 때 덤덤했던 스완씨의 마음을 낚아채고 자신에게 매달리게 만든 다음에 자신의 화류계 생활에 대한 풍문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성공하게 되는 과정을 구구절절하게 풀어놓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스완씨에게 오데트가 수많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정부였으며 자주 사창가에도 드나들었다는 제보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288쪽)

 

그럼에도 그녀에게 넘어간 결정적 한마디를 소개해 드린다면, 자기 집에 왔다 간 스완씨에게 다음날 “왜 당신 마음은 두고 가지 않으셨나요. 마음이라면 돌려드리지 않았을텐데.(168쪽)”라는 편지를 보내는 사례라거나, 포르슈빌씨를 경쟁자로 내세워 질투심을 유발하게 하는 전략-여기에는 베르뒤렝부인의 결정적 도움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을 구사하는 등입니다. 한 남자가 속절없이 한 여자에게 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순진한 남자들이 여성을 사귈 때 조심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가늠해보는 기회도 될 것 같습니다.

 

3부 ‘고장의 이름’ 편에서는 스완씨의 딸 질베르트와의 만남이 시작되는 과정을 소개하여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의 상권에서 다루는 질베르트와의 사랑이야기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는 쉽게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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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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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읽고 싶은 책 목록, 그러니까 독서부문의 버킷리스트에서 제일 첫머리에 아주 오랫동안 놓여 있었습니다. 기억나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일독을 권유받아왔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방대한 작품의 분량때문에 선뜻 시작하지 못한 것인데, 사정이 저와 같은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에 ‘새끼가 새끼를 치는 책읽기’라고 해도 좋을 계기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였습니다. 시작은 박완서 선생님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 ; http://blog.joinsmsn.com/yang412/12798700>였습니다. 선생님은 이 책에 일상의 삶에서 느낀 점, 책을 읽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그리고 먼저 가신 분에 대한 애달픈 마음 등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선생님은 조나 레러의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02521>를 읽으시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게 되셨다고 했습니다. “신경과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기도 전에 이미 뛰어난 작가, 화가, 작곡가, 요리사, 등 일급의 예술가들이 알아낸 진실들을, 신경과학을 전공한 저자가 그게 과학적으로 옳았다고 재확인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빛나고 멋있어 보였다.(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 227쪽)” 책을 읽으신 느낌을 어쩌면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나도 읽어봐야 하겠다는 충동이 일게 쓰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조나 레러의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를 읽었고, 내친 김에 박완서선생님처럼 국일미디어판으로 나온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를 읽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민음사판으로 나온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를 다시 읽으면서 라포르시안 [북소리] 독자 여러분과 함께 느낌을 나누고자 합니다. 민음사판은 파리3대학에서 프루스트를 전공한 김희영교수님께서 옮기셨다고 합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6800673). 1998년에 초판이 나온 국일미디어판과 비교해서 민음사판에서는 당연히 14년의 시차가 말하듯, 번역의 흐름이나 단어 등에서 세월의 흐름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사소할 수 있습니다만, 첫 권의 모두에 등장인물의 성격을 요약해둔 점이나 풍부한 각주를 덧붙여 당시 프랑스 문화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책읽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일미디어판은 이미 전권이 출판되어 있습니다만, 민음사판은 1부 ‘스완네 집 쪽으로’가 나와 있습니다. 예전에 박경리선생님의 <토지>를 읽을 때처럼 다음 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따라 읽다보면 지루하다는 느낌없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돌아가서,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던 프루스트가 제목에 담은 뜻은 ‘시간이 멈추는 감추어진 공간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답니다. 천식이라는 고질병이 심해지면서 외출을 삼가게 된 프루스트는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던 화려한 시절에 대한 기억이 바로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 집필동기였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편 ‘되찾은 시간’에서는 주인공이 노년에 이른 시점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퇴장하고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고 있는 사교계를 그리고 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과거의 사실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면서, “얼마간이라도 나에게 작품을 완성시킬 만한 오랜 시간(longtemps)이 남아 있다면, 우선 거기에 공간 속에 한정된 자리가 아니라, 아주 큰 자리, 그와 반대로 한량없이 연장된 자리 ‘시간(temps)' 안에 차지하는 인간을 그려보련다.(국일미디어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되찾은 시간, 499쪽)”라고 적은 부분에서도 집필동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프루스트의 시간과 기억과의 관계는 노벨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의 <순수박물관2;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33484>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지금’이라는 하나하나의 순간들과 ‘시간’을 구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자처럼, 이 하나하나의 순간은 나뉠 수 없고 쪼개질 수 없다. 시간은 이런 나뉠 수 없는 순간들을 합친 선이다.(순수박물관, 35쪽)”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이 쌓여진 시간을 바로 기억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동물의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고 심지어는 유전자에 담겨서 후손에 전달되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상당부분이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입니다. 기억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교수는 연구에 쏟은 자신의 삶을 적은 책 <기억을 찾아서; http://blog.joinsmsn.com/yang412/10991633>에서 사이박사와 같이 진행한 연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프리온이라고 하는 세포막단백질이 기억이 저장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프리온단백의 점변이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인으로 삼차원적 구조가 변하게 되고 그 결과 뇌가 스펀지처럼 변하는 광우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끔찍한 광우병의 발병과 관련이 있는 프리온이 정작 기억이 저장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나가다 보면 쉽게 지나쳐버리기 쉬운 사물이나 상황을 프루스트는 얼마나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솔길에는 산사나무향기가 짙게 풍기고 있었다. 울타리는 임시 제단 위에 쌓아 놓은 산더미 같은 산사 꽃들로 칸막이가 보이지 않는, 쭉 늘어서 있는 노천 제단 같은 모습이었다. 그 제단 밑으로 햇빛은 방금 채색 유리를 통과한 듯, 바둑판무늬 빛을 땅바닥에 그렸다. 산사 꽃향기는 마치 내가 성모마리아 제단 앞에 서 있기라도 한 듯이, 그 형태 안에 뚜렷이 드러나며 촉촉하게 내 주위를 감돌았고, 장식된 꽃들 역시 마치 성당의 붉은 복도 난간이나 채색 유리창살 대에 투조 세공을 한 딸기 꽃의 하얀 살로 피어난 꽃들처럼, 저마다 방심한 표정으로 섬세하고도 눈부시게 빛나는 불꽃 양식 잎맥 무늬 수술다발을 들고 있었다. 이에 비하면 몇 주 후에 작은 바람의 숨결에도 날아가 버릴 단색 붉은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햇빛 아래서 이 시골길을 기어 올라갈 들장미는 얼마나 순진한 농부 아가씨 같아 보일까!(244쪽)”

 

이처럼 세밀한 묘사는 프루스트 자신이 오감을 통하여 얻은 경험에 바탕하고 있음일 터인데, 아마도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특별한 경험을 적고 있습니다. 프루스트의 이런 관념적 기술은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기억을 끄집어내는 독특한 장치로 프루스트는 후각과 미각을 들고 있습니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 내가 찾는 진실은 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차가 내 속에 있는 진실을 일깨웠지만, (…) 생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차의 첫 모금을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가본다. (…) 분명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팔딱거리는 것은 그 맛과 연결되어 맛의 뒤를 따라 내게로까지 올라오려고 애쓰는 이미지, 시각적인 추억임에 틀림없다. (…) 그러다가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85~89쪽)”

 

프루스트는 이어서 미각과 후각이 깊이 잠겨 있는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게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90쪽)”

 

큰 아이가 어렸을 적에 부드럽고 달콤한 마들렌을 특별하게 좋아하기 때문에 퇴근길에는 동네 빵집에 들러 마들렌 몇 개를 사들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옮긴이는 조가비처럼 생긴 프티트 마들렌이라고 하는 기억회상장치에 대하여 조가비처럼 생긴 마들렌의 접힌 주름이 펼쳐진다는 상상에서 기억에 숨어있는 과거의 부활을 감추었다고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청각 역시 기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는 점 역시 소홀하게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는 프랑스의 살롱에서는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고, 그 음악에서 특별한 기억을 되살리기도 합니다. 프루스트는 음악을 넘어서 일상에서 듣는 소리를 음악으로 격상시키고 이 소리가 기억을 되살리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다음 장면입니다. “화창한 날씨에 태어나 화창한 날씨와 더불어서만 다시 태어나는 이 음악은, 그런 나날의 본질을 함유하면서 우리 기억 속에 그 이미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그런 나날이 돌아왔다는 것을, 실제로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음을 확인해 준다.(151쪽)”

 

음악이 기억을 되살리는 장치라는 사실은 개인적 경험으로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조건반사와 같은 것입니다만, 제 경우는 ‘Song for Anna’라는 제목의 연주곡이 그런 장치입니다. 그 옛날 다방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나온 이 노래를 듣던 여자 친구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고 지나가듯 말한 것이 조건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 것이지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 노래를 듣게 되면 그때 좋아했던 친구가 생각나곤 합니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서 오감, 특히 후각과 미각이 기억이라고 하는 뇌의 기능과 연관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음에도 당시의 정신의학자들은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었다고 조나 레러박사는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브라운 대학의 심리학자 레이첼 허츠박사의 ‘프루스트적 가설을 시험하기’라는 연구에서 우리의 후각과 미각이 특히 센티멘털하다는 주장을 인용하면서, “그것은 후각과 미각만이 뇌의 장기 기억 센터인 해마조직과 직접 연관되는 감각들이기 때문이다. 해마 조직에 새겨진 후각과 미각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다른 모든 감각들(시각, 촉각, 청각)은 먼저 언어의 원천이자 의식의 관문인 시상에 의해 가공된다. 그 결과 이런 감각들은 우리의 과거를 불러오는 데는 훨씬 덜 효과적.(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148쪽)”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억에 대한 프루스트의 직관력이 뛰어났음을 강조한 조나 레러박사가 책의 제목까지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라고 정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기억을 되살리는 장치에 대하여 지루할 정도로 자세히 설명한 프루스트는 기억의 허구성도 짚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억의 부정확성을 증명하는 실험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만, 프루스트는 기억이 현실을 직접 재현하지 않는 대신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불완전한 복사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은 하버드대학의 ‘찰스 엘리엇 노턴’ 강연에서 “나는 세계의 본질을 알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지고, 내 정신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꿈속에 잠긴 기분으로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소설을 읽곤 했습니다.(소설과 소설가, 11쪽;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35937)”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책읽기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는데, 프루스트 역시 소설읽기를 통하여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합니다. “내가 독서를 하는 동안, 안에서 밖으로 진리발견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중심적인 믿음 다음에 오는 것은, 바로 내가 참여하는 행동들이 주는 감동이었다. (…) 소설가가 쓴 책은 꿈과 같은 방식으로, 그러나 우리가 자면서 꾸는 꿈보다 선명하고 더 오래 기억되는 꿈으로 우리를 뒤흔들 것이다.(153~155쪽)” 그 이유는 짧은 시간을 통하여 소설을 읽어 얻는 경험을 실제 삶에서라면 일부를 아는데도 몇 년이 걸릴 것이고 우리 기억에 갈무리되는 과정이 너무 느리게 진행되어 우리 지각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근래 들어 책읽기를 소홀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으면 싶은 좋은 경구라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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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2 (보급판) - 반지원정대 2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외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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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어를 떠난 호빗 프로도와 그 친구들은 도중에 마법사 간달프의 배려로 성큼걸이와 합류하여 급박하게 뒤쫓는 암흑의 기사를 뿌리치고 엘론드가 다스리는 요정의 나라 깊은골에 극적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깊은골에는 암흑의 세력의 확장을 우려하는 난장이, 요정, 인간, 그리고 호빗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속속 모여들어 암흑의 세력이 다시 힘을 모야 모든 이들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를 의논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과거의 전쟁으로부터 절대반지가 등장하게 되는 과정 등이 소상하게 밝혀지게 됩니다.

 

절대반지에는 절대반지가 가진 힘이 적혀 있습니다.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모든 반지를 발견하는 것은 절대반지. 모든 반지를 불러 모아 암흑에 가두는 것은 절대반지.(87쪽)” 암흑의 군주 사우론이 힘을 추스르자마자 절대반지를 뒤쫓는 이유를 알만합니다. 절대반지는 사우론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의 것으로 이미 스스로 위대한 힘을 소유한 자만이 반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지가 가진 사악한 힘 가운데 하나는 소유한 사람의 마음을 타락하게 만드는 ‘반지에 대한 욕망’입니다.

 

절대반지 이외에도 아홉, 일곱, 그리고 세 개의 반지가 존재하는데, 그것들은 전쟁이나 정복을 위한 무기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복은 그 반지들의 목적이 아니고, 반지를 만든 이들은 힘과 지배와 부의 축적을 바란 것이 아니라 이해의 생성, 치유, 순수의 보존을 희망한 것인데, 절대반지가 이들 반지들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반지가 만들어진 곳에 던져 넣어 파괴하는 방법이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하여 모두 아홉 명으로 구성되는 반지원정대가 구성이 되는데, 반지가 선택한 호빗 프로도와 그 하인 그리고 간달프, 그리고 이 세계의 자유민의 대표들, 즉 요정을 대표한 레골라스, 난쟁이를 대표한 글로인의 아들 김리, 인간을 대표한 성큼걸이 아라고른, 여기에 보로미르와 프로도의 친구들, 메리와 피핀이 합류하여, 암흑의 아홉 기사에 대응하는 모두 아홉 명의 반지원정대가 구성이 된 것입니다. 공동의 적이라고 할 악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서로 흩어져 있던 자유민들이 힘을 합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는 장면입니다.

 

먼저 세상의 정황을 파악하는 동안 두어 달을 깊은골에서 기다리던 반지원정대는 카라드라스고개를 넘어가기로 하지만 카라드라스가 눈폭풍으로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난쟁이들이 건설한 모리아 동굴을 통과하기로 진로를 수정하는데 원정대 일부에서는 어떠한 위험이 존재할 지 모르며 길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도 없다면서 반발하지만 결국은 간달프의 선도로 모리아 동굴에 들어서게 됩니다. 하지만 동굴의 끝에 대기하고 있던 악의 세력으로부터 대대적인 공격을 막아내던 간달프가 절벽아래로 추락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간달프를 잃은 원정대는 성큼걸이의 인도로 요정의 땅 로스로리엔에 들어서게 됩니다. 로스로리엔에서는 요정왕 켈레보른과 왕비 갈라드리온의 도움으로 원정을 떠날 준비를 다시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숨어서 뒤따르던 골룸의 정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동안 조금씩 엿볼 수 있었던 절대반지의 사악한 힘이 점차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데 로스로리엔을 떠나면서 보로미르가 반지에 대한 욕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게 됩니다. 하지만 프로도는 흔들리지 않는데, 아마도 반지의 사자로서 정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프로도에게서 우리는 반지를 맡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부담을 지고 있으면서도 반지를 소유하려는 욕심을 내지 않는 순수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반지를 달라는 보로미르의 요구에 대하여 프로도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경고를 전합니다. “지연시키지 말라. 쉬운 길을 택하지 말라. 내게 지워진 짐을 거부하지 말라”는 경고를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지원정대편이 끝나면서 보로미르의 욕심이 화가 되어 원정대가 흩어지면서 프로도와 샘이 남아 마지막 여행을 하게 되기에 이릅니다. 반지의 사악한 힘이 작용을 했다고 하더라도 인간과 반인간으로 구성된 연합세력이 끝까지 힘을 모으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고 만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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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각처럼 대화가 되지 않을까? - 인간관계의 갈등과 오해를 없애주는 소통의 기술
앤드류 뉴버그 & 마크 로버트 월드먼 지음, 권오열 옮김 / 알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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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시즌입니다. 지난 5년간을 돌이켜 보면 이번 정부만큼 ‘소통’이 화두가 되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소통을 잘 할 것 같은 후보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 같습니다. 원활한 소통을 염두에 두면서도 막상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분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나름대로는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대화의 상대가 상처받을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었구요.

 

<왜 생각처럼 대화가 되지 않을까?>는 바로 저 같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뇌의 기능과 생리학을 연구하는 앤드류 뉴버그교수와 의사소통을 전공하는 마크 로버트 월드먼교수가 공동연구를 통해 만들어낸 원활한 소통을 극대화시키는 새로운 전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변역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연민소통’이라고 이름붙인 적절하고도 원활한 소통을 위한 열두 가지 전략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그 전략은 “1. 긴장을 푼다, 2. 현재에 머문다, 3. 내면의 침묵을 강화한다, 4. 긍정성을 높인다, 5.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숙고한다, 6. 즐거운 기억에 접속한다, 7. 비언어적 신호를 관찰한다, 8. 감사를 표현한다, 9. 따뜻하게 말한다, 10. 천천히 말한다, 11. 간단히 말한다, 12. 깊이 듣는다.(12쪽)”입니다. 우선은 우리말로 옮겨진 용어들이 쉽기는 하지만 간혹 핵심내용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쉽게 정리되지 않는 것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가다 보면 금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읽어가면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상대와 대화를 나누기 전에 “나는 지금 만나려는 사람의 어떤 점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을 통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대화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별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제8장 ‘의식, 협력, 신뢰를 강화시키는 12단계’에서 설명하고 있고, 제9장 ‘사회적 뇌를 재훈련하라’에서는 8장에서 설명한 전략들을 몸에 익힐 수 있도록 훈련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그리고 둘이서 같이 훈련하는 방법인데 읽어나가다 보니 공연히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들은 “대화 중에 연민소통 전략을 사용하면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바로 두 사람의 뇌가 서로 공조하기 시작한다. 이 특별한 유대와 공조가 이른바 ‘신경공명’이라는 현상이며, 이 고조된 상호 조화상태에서 두 사람은 함께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다.(13쪽)”고 적고 있는데, 이론적 근거는 연민소통법이 대뇌에 있는 거울세포를 활성화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고도 소중한 대화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직장과 가정에서 연민소통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하는 사례를 제3장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소통기술’편에서 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사이에서,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자녀들과 대화할 때 연민소통법을 적용한 사례가 되겠습니다.

 

저 역시 최근 아이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습득한 소통전략을 제대로 사용해볼 생각입니다. “부모들이 연민소통의 원칙을 가정에 적용하면 자녀의 공격적인 행동이 줄어들고 현제들과도 더 사이좋게 지낸다. 또 부모들이 깊이 듣는법을 배우면 파괴적 성향이 있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222쪽)”고 적고 있어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아내에게도 소개하여 연민소통법을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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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2012년 노벨문학상은 또다시 우리나라를 비켜 이웃나라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소문에는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접전 끝에 중국의 모옌으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모옌은 198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던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이자 각본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고들 합니다. <붉은 수수밭은>모옌의 중편 <홍까오량 가족>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장예모감독과 주연을 맡은 공리가 이 영화를 계기로 세계적 스타로 떠오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작가 모옌 역시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만들어주었으니 한편의 영화가 가지는 문화적 파워의 영향력을 짐작케 합니다.

 

모옌은 1987년 프랑스로 망명한 다음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가오싱젠이나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류샤오보의 경우와는 달리 중국당국으로부터는 환영을 중국정부에 비판적인 그룹으로부터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민해방군 출신 작가이며 중국 당국의 검열읕 염두에 두고 쓴 작품에서 작가정신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구심때문이라고 보입니다만, 조선일보의 김태훈 차장은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검열에 짓눌려 형편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검열의 칼날을 교묘히 피해가며 중국의 원형적 가치를 훼손한 인민공화국을 비판하는 모옌의 솜씨를 볼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조선일보 2012년 10월 23일자. [조선데스크] ‘중국 노벨 문학상’ 흉보기) 아마도 모옌이 한국어판 서문에서 “소설을 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을 쓰는 것이며, 나는 ‘사람을 똑바로 보고 쓰기’로 했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인성을 중요시하는 그의 창작철학을 고려한다면 그에 대한 비판자의 시각이 다소 편협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모옌의 최신작 <개구리>를 보면 이런 지적이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국은 남아선호사상이 우리나라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한 가정 한 자녀’를 강제하는 ‘계획생육’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엄청난 반발과 부작용이 있었을 것이란 점을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과거 ‘죽의 장막’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였던 중국의 국내사정이 외국에 알려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 실상은 감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옌은 <개구리>를 통하여 ‘계획생육’ 정책이 추진되는 동안 중국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설적화법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른 탓에 중국정부의 검열이 느슨해진 것인지 아니면 <개구리>를 통해서 계획생육정책의 절박함 역시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1949년 당시 5억 4천만명이던 중국인구가 1969년 8억을 넘어서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민을 먹여 살리는 일이 결국은 국가운영의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수립된 정책이 계획생육이라고 합니다. 점진적으로 추진되었던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정책과는 비교되는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1950년대 베이비붐을 맞으면서 인구정책의 필요성을 느낀 우리나라는 1961년 사단법인 가족계획협회을 창설하고 60년대 3자녀 운동을 1970년대에는 다시 2자녀로 목표를 수정해서 국가시책으로 추진하다가 1980년대 들어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어 이제는 다자녀를 권장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지만, 젊은층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합니다.

 

서신체라는 독특한 소설구조에 연극의 극본을 결합한 복합적인 체계를 가진 <개구리>는 노먼 벳순과 함께 팔로군 군의관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고모는 산부인과를 전공하여 잘 나가다가 약혼자가 대만으로 탈출하는 바람에 졸지에 입장이 난처해졌는데, 이 무렵 정부에서 계획생육제도를 추진하면서 인공임신중절과 정관수술을 맡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민들의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은 정부의 감시를 벗어나 사내아이를 가지려 별별 수단을 다 쓰지만 정부 역시 주민들을 이간시키고 폭력도 불사하는 극약처방으로 대응하게 되고 화자의 고모가 가장 일선에서 일을 떠맡게 됩니다. 화자인 커더우 아내 런메이 역시 딸을 낳게 되지 고모의 눈을 피해 둘째를 임신한 다음 몸을 숨기는데, 고모는 집요한 추적 끝에 중절수술대에 올리지만 수술도중 출혈로 런메이가 사망하게 됩니다. 사실 임신말기의 중절수술은 산모가 죽음에 이를 위험이 아주 높기 때문에 시술의사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젊어서는 정부의 앞잡이가 되어 인공중절수술을 도맡아하고 때로는 임신부를 추적하다가 혹은 임신중절수술 도중에 임산부가 사망하는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던 고모가 은퇴하고서 자신의 손으로 지운 아이들과 자신의 무모함 때문에 세상을 떠난 여인들에 대한 연민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커더우는 이런 고모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중국 정부의 계획생육제도의 비참했던 실상을 고발하겠다는 마음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는 내용이 줄거리가 되는데, 화자인 커더우는 작가 모옌의 대리인이라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듯 계획생육으로 출산을 통제하던 중국에서 이제는 불법이기는 하지만 대리모를 통해서 아들을 낳아주는 사업까지 벌이고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에서 고모를 중심으로 벌였던 계획생육제도 아래 일어났던 불행한 사건들의 전말을 빠뜨림 없이 기록하고 고모의 삶이 변하는 모습을 그리다보니 이야기가 다소 방만하게 흘러간 점이 없지 않은 듯 합니다. 또한 자신의 행적에 대한 고모의 심리적 갈등을 극본의 형식으로 담고 있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읽는 호흡이 갑자기 바뀌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는 말씀을 사족으로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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