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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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특히 아직 읽어보지 못한 고전인 경우 꼭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책이었던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아주 인상적으로 인용한 책을 읽었기에 필독 도서목록의 위쪽에 올려 두었습니다.

 

오래 벼르던 <안나 카레니나>를 읽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조만간 새로 만들어진 영화 <안나 카레니나>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챙기는 것은 지난 해 뮤지컬 <레 미제라블;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72541>을 보면서 느낀 아쉬움 때문입니다.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제한된 시간으로 압축을 하다 보니 생략된 부분이 많은 탓에 등장인물의 성격, 심리상태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스토리 뒤쫓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영화로 만난 <레 미제라블;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39357>은 원작을 이미 읽은 다음이어서 배우들의 연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1873년 집필에 착수하여 1978년에 출간한 작품으로, ‘위선, 질투, 신념, 욕망, 사랑 등 인간의 감정과 결혼, 계급, 종교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구조에 대한 톨스토이의 모든 고민이 집약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연진희 번역본은 모두 8부로 구성된 이야기를 세권으로 나누고 있는데 막상 읽다보니 네 권으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각부의 분량이 서로 다른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8부 까지 이어지는 스토리 라인을 각각 두 개씩 묶어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었더라면 지나치게 두껍다는 느낌도 줄이고 스토리 전개를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물론 작품해설에서 밝힌 것처럼 8부에 등장하는 투르크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은 구상단계에서 미처 고려되지 않았던 사건이라서 안나의 죽음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다소 장황하게 바뀐 것일 수 있겠습니다. 요즘 잘나가는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연장방영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를 고리로 한 카레닌과 브론스키의 삼각관계가 이야기의 한축을 이끌고, 한때 브론스키를 동경했던 키티가 결국 레빈을 선택하고 그들의 사랑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의 다른 한축으로 하여 다른 색깔을 가진 두 개의 사랑을 대비시켜 신의 섭리에 의한 최고의 선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스무살 연상의 카레닌과의 사이에 아들을 두고 있는 안나가 브론스키와 만나면서 서로 한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들의 사랑은 한때의 들뜬 감정으로 정리되지 못하여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브론스키를 따라 집을 떠나게 됩니다. 안나를 둘러싼 이들의 운명과 같은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들지만, 브론스키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독점하려는 안나의 중독된 사랑은 브론스키와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은 열차에 몸을 던져 자신을 버리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결국 안나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불같은 사랑을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 키티와 레빈의 사랑은 브론스키에 눈이 팔려있던 키티가 레빈의 청혼을 거절하는 바람에 시작부터 중대한 위기를 맞지만, 키티와의 관계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던 브론스키가 안나를 선택하면서 키티를 버리는 바람에 키티는 실연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하지만 언니 돌리와 형부 스티바의 주선으로 레빈은 키티에게 다시 청혼을 하게 되고 두 사람은 결혼으로 맺어지는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레빈의 성격도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두 사람의 관계도 갈등을 빚곤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부딪히는 상황이 생기면 문제를 서로 공유하고 해결방안을 같이 찾으려 노력하는 점이 안나의 치명적 사랑과의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1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사랑이야기로 끝났다면 <안나 카레니나>가 명작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작품해설에서 보면, 2007년에 발표된 <톱 텐>이라는 책에는 영국, 미국, 호주의 유명작가 125명에게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문학작품 10권을 꼽아달라 해서 순위를 매겼는데 <안나 카레니나>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저의 눈을 끌었던 점을 몇 가지 정리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는 등장인물의 행동과 내면의 생각을 제3의 인물의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등장인물의 행동을 그 주변상황까지 포괄하는 넓은 시각에서 서술하고 그 사람의 내면의 생각으로 까지 접근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자신의 시각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등장인물이 자신의 정신마저도 자신의 의지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의식의 흐름’에 스스로를 내맡기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의식의 흐름’기법은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등 20세기 작가들에게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안나가 오빠 스티바의 외도로 갈등을 빚고 있는 올케 돌리를 달래기 위하여 모스크바를 찾았을 때, 정거장에서 처음 만난 브론스키와 심상치 않은 감정이 오가는 것을 느끼고 일정을 바꾸어 페테르부르그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생각하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모스크바에서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았다. 모든 것이 좋았고 유쾌했다. 그녀는 무도회를 떠올리고, 브론스키를 떠올리고, 사랑에 빠진 그의 순종적인 얼굴을 떠올리고, 그와의 모든 관계를 떠올렸다. 수치스러워할 만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바로 이 부분의 기억에서 수치심은 더욱 강해졌다. 그녀가 브론스키를 떠올린 순간, 마치 어떤 내면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따뜻해. 아주 따뜻해. 타는 듯이 뜨거워’. (…) ‘과연 나와 저 풋내기 장교 사이에 단순한 지인 관계를 뛰어넘은 어떤 다른 관계가 있다는 건가? 아니 그런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안나카레리나 1권 223쪽)”

 

두 번째 눈에 띄는 점은 <안나 카레니나>는 1873년 집필을 시작하여 1878 출간한 작품으로 당시 러시아 귀족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당시 귀족들이 모이는 사교계가 무대가 되고 있음에도 사교계의 분위기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파리를 비롯하여 지방의 사교계 모임의 분위기를 세밀하게 묘사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다만 오페라 혹은 사냥 등과 같이 러시아 귀족들의 취미의 범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러시아귀족회의의 회장을 선거하는 과정이라거나 귀족들의 수입을 결정하는 직장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 당시 러시아 사회의 혼탁한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지에서의 레빈의 생활을 통하여 당시 러시아 농부들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는 점은 새겨 읽을 만합니다. 포크로프스코에 있는 영지에서 직접 풀베기를 하고 양봉을 하는 레빈의 모습은 톨스토이가 야스나야 폴랴나에 있는 자신의 영지에서의 생활하는 모습 그대로라고 합니다. 당시 러시아는 농노를 써서 운영하는 장원체계가 무너지는 단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출을 늘릴 수 있는 농기계의 활용과 같은 새로운 영농기술의 도입에 미지근하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얻게 됩니다. “농부들은 자기들에게 어떤 새로운 농사방법이나 새로운 농기구의 사용도 강요하지 않을 것을 모든 계약의 으뜸가는 절대조건으로 내세웠다.(안나 카레니나 2권 225쪽)” 시골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귀족들 역시 옛날식으로 집사에게 영지운영을 맡기고 자신은 주로 모스크바와 같은 대도시에서 무계획하게 지내다가 돈이 떨어지면 영지를 팔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현지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바람에 손해를 입어도 알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럽의 변방에 위치하다보니 뒤늦게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1부에서부터 죽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안나와 브론스키가 조우하는 기차역에서 경비원이 선로를 바꾸는 기차에 치여 죽는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아, 정말 끔찍해! 아, 안나, 네가 그 모습을 봤더라면! 아, 소름끼쳐!”라고 탄식하는 오빠 스티바의 이야기를 듣게 된 안나는 입술을 떨고 가까스로 눈물을 참는 모습으로 “불길한 징조예요.(안나 카레니나 1권 145쪽)”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앞날을 예견했던 것일까요? 슬픈 엔딩의 전조로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사이에 가진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산욕열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이릅니다. 당시만 해도 산욕열에 걸리면 백명 가운데 아흔 아홉 명은 죽는 치명적 부작용이었습니다. 안나가 투병하는 동안 카레닌은 증오를 접고 브론스키와 안나를 용서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 카레닌의 마음이 통했을까요? 안나는 산욕열을 이겨내게 되는데, 이번에는 브론스키가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하게 되고 남편에게 기울던 안나의 마음이 다시 브론스키에게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5부에서는 특별한 죽음을 만나게 됩니다. 1부에서 8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239개의 장으로 구성된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 가운에 유일하게 5부의 제20장은 ‘죽음’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레빈의 친형 니콜라이가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집에서 기다리라는 레빈의 말에 따르지 않고 동행한 키티가 니콜라이를 간병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레빈은 진한 감동과 사랑을 확인하게 됩니다. 니콜라이가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현대과학의 영향으로 신앙을 부정하게 된 레빈은 ‘당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 남자를 낫게 해주십시오. 그럼 당신은 그와 나를 구원할 것입니다.(안나 카레니나 2권 553쪽)“라고 기원하지만 니콜라이는 결국 죽음을 맞게 됩니다. 니콜라이의 죽음은 레빈을 사로잡았던 불가해함에 대한 공포, 즉 죽음의 접근과 불가피함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게 되지만 키티의 존재가 레빈을 절망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7부의 마지막에 만나는 안나의 죽음입니다. 남편 카레닌과 결별을 하고 브론스키와 같이 떠난 안나는 남편이 이혼을 허락하지 않아서 브론스키와 재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리고 사교계에서도 추방당하는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안나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브론스키마저 자신에게 집착하는 듯한 안나를 달래지 않고 외면하면서 안나는 죽음이 유혹에 강하게 이끌리게 됩니다. 결국 브론스키를 만나기 위하여 기차여행을 하는 안나는 기차역에서 받은 브론스키의 쪽지를 읽고 그녀의 마음을 가냘프게 지탱하던 믿음의 끈을 놓고 죽음을 선택하게 됩니다. 산욕열을 앓을 무렵 ‘왜 나는 죽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 안나는 그녀의 영혼 속에 있는 무엇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 죽는거야…!’ 하지만 막상 기차에 끌려가면서 그녀는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라고 독백을 합니다.

 

거울의 이미지처럼 안나의 대칭점에 서있는 레빈 역시 여러 차례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생사문제를 고민하게 된 레빈이 “죽음보다 오히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것이 무언인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생명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497쪽)”고 작가는 적고 있습니다. 레빈은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종속을 끊는 방법은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키티의 출산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에게 기도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내면서 그리스도교가 준 영적 행복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리스도교를 넘어 불교, 혹은 마호메트교로도 확대하여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특히 8부에서 전개되는 투르크와 러시아 사이에 일어난 일종의 종교전쟁이 작가의 이런 생각에 기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작가는 신의 존재와 신의 섭리에 의한 최고의 선의 의미를 독자들이 깨닫기를 희망하였다고 정리해봅니다.

 

1796쪽이나 되는 대작이다 보니 리뷰가 길어졌습니다. 영화는 원작의 의미를 어떻게 살리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안나 카레니나(전 3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1권 520쪽, 2권 668쪽, 3권 608쪽

2009년 9월 4일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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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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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에 담기는 6부, 7부, 8부는 등장인물 사이에 고조되어온 갈등이 반전을 거치면서 파국으로 치닫거나 혹은 수습되어 성숙한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나아갑니다. 작가가 <안나 카레니나>를 통하여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극명하게 하기 위하여 안나와 브론스키 그리고 키티와 레빈 두 커플의 관계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안나와 브론스키 커플은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하여 화르르 타오르는 바짝 마른 나뭇가지처럼 파경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키티와 레빈은 시작이 어긋나면서 삐걱거리다가 극적으로 결혼에 성공하지만 레빈이 아내 주변에 등장하는 남성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갈등을 일으키지만 키티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레빈의 형 니콜라이의 죽음을 겪으면서 레빈의 사유의 폭이 넓어지면서 원만한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3권은 레빈과 결혼한 키티가 레빈의 영지인 포크로프스코로 가서 살게 됩니다. 키티와 레빈이 살고 있는 곳에 다양한 인물들이 방문하면서 키티와 레빈의 관계가 시험에 들게 됩니다. 3권의 시작은 키티의 언니 돌리와 그녀의 아이들 그리고 키티의 부모, 그리고 키티가 브론스키로 부터 버림을 받아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친교를 맺은 바렌카와 레빈의 형 세르게이까지 찾아와 많은 등장인물들이 북적이게 되면서 서로 엮이고 부딪히는 사이에 다양한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돌리의 남편 스티바와 같이 온 바센카 베슬로프스키가 키티에게 베푸는 호의와 이에 대한 키티의 대접에 레빈의 오해를 불러 일으켜 결국 레빈은 바센카에게 퇴거를 요구하게 되는 사교계에서 보면 극히 이례적인 상황까지도 일으키게 됩니다. 만삭인 아내에게 호의를 베푸는 방문객에게 질투하는 주인을 보면서 지나친 설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이해가 될 듯하기도 합니다.

 

한편 2권에서 카레닌과 헤어지고 브론스키와 함께 외국으로 떠돌다가 잠시 이탈리아에 머물던 안나는 브론스키의 영지인 보즈드비젠스코예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곳은 레빈의 영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을 곳입니다. 브론스키는 이곳에서 병원을 건축하는 등 활동을 통하여 사람들과의 관계를 확대해나갑니다. 한편 브론스키의 이런 활동은 안나에게 조금씩 불안감이 싹트게 되는데, 브론스키를 독점하려는 안나의 성격과, 법적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카레닌이 이혼을 해주지 않으면서 아들 세료자와의 만남을 금하고 있는 것도 안나의 정서를 황폐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귀족회의 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브론스키와 안나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여기에는 카레닌과의 관계가 유연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브론스키를 독점하려는 안나의 욕심이 때로는 브론스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문제인 듯 합니다. 그리고 카레닌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 세료자를 볼 수 없다는 안나의 조바심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결국은 7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브론스키를 만나러 기차를 탔던 안나가 열차에 몸을 던져 죽음을 맞는 것으로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마치 안나와 브론스키가 처음 만나던 기차역에서 누군가 열차에 치여 죽음을 맞았던 것에서 이러한 비극적 결말이 예측되었던 처럼 말입니다.

 

작가는 안나가 죽음을 결심하기에 앞서 자살을 시사하는 장면을 두고 있습니다. “그녀는 출산 후 병을 앓던 무렵과 그 때 그녀를 떠니지 않던 감정을 기억해 냈다. ‘왜 나는 죽지 않았을까?’ 그때의 말과 그때의 감정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그 순간 문득 그녀는 그녀의 영혼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래, 그것은 오직 한 가지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 ‘그래, 죽는거야…!’(408쪽)” 하지만 막상 기차바퀴에 몸을 던지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한 짓에 몸서리를 치면서 ‘내가 어디에 있는거지? 내가 뭘 하고 있는거야? 무엇 때문에?’하고 생각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기차에 끌려가면서 그녀는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라고 독백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레빈 역시 여러 차례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생사문제를 고민하게 된 레빈은 “죽음보다 오히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것이 무언인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생명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497쪽)”고 작가는 적고 있습니다. 그런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종속을 끊어야 하며 그 방법은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키티의 출산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에게 기도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내고 그리스도교가 준 영적 행복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리스도교에 국한하지 않는 불교, 혹은 마호메트교로도 확대하여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특히 8부에 들어 전개된 투르크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이 일종의 종교전쟁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안나 카레니나의 대단원은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리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560쪽)”라는 레빈의 독백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저는 작가가 신의 존재와 신의 섭리에 의한 최고의 선을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한 것이라고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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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내가 지킨다 - 정부도 병원도 의사도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
최명기 지음 / 허원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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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부도, 병원도, 의사도 내 몸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부제가 달린 최명기 원장님의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일반인이 제목만 보면 정말 아프면 큰일나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현행 체계 안에서 병원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은지에 대하여 이웃집 아저씨가 설명하듯이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전공분야에서 최고하는 전문가들이 제일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전공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일반인에세 쉽게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주 쉽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가 꼼꼼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우선 눈에 띈 것은 문장이 짧다는 것입니다. 반 페이지 정도나 되는 여는 글의 첫 번째 문단은 모두 열 줄인데, 여덟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전문가는 한 문단을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하기도 합니다. 마주 앉아서 조곤조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부는 ‘국가는 내 몸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보건의료 정책 현안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 해 총선과 대선과정에서 뜨거운 이슈였던 보건의료정책들입니다. 한미 FTA의 보건의료부문,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 의료민영화, 의약품 수퍼판매 등입니다. 이렇듯 민감한 이슈들은 찬성과 반대 가운데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을 담기 마련입니다만, 저자는 중립적인 시각에서 양쪽의 주장에서 취할 점을 가려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자가 의사이면서도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특이한 경력에서 나온 열린 시각이라고 보입니다. 대표적인 주장을 정리해볼까요? 부자세를 늘린다고 내 세금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주장을 보면, 정부는 부자들로부터 걷은 세금으로 중산층이 아닌 저소득층을 위해서 주로 쓰이게 되는데, 부자들로부터 걷는 세금이라는 것이 부자들의 소득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기 마련이고 중산층으로부터 걷는 세금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결국 정부는 부자들과 중산층으로부터 세금을 많이 걷으려하고, 가난한 이들로부터는 적은 세금이라고는 하지만 세금을 쥐어짜서라도 걷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세금은 공무원을 먹여살리는데 쓰이게 되는 부분이 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의료민영화로 국민이 얻을 이득은 거의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즉, 영리법인이 의료서비스를 향상시킬 가능성은 크지 않은데 정부가 영리법인의 도입을 꾀하는 진짜 이유는 부자들의 현금성 투자를 이끌어서 영세한 규모에 머물고 있는 병원산업을 키워야 하겠다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지난 해 약사회의 극렬한 반대로 지루하게 끌었던 의약품 수퍼판매 건에서도 저자는 재미있는 해석을 달았습니다. 의사, 약사, 제약회사, 정부 등 누구도 이익이 되지 않는 이 제도는 국민들에게도 꼭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대의학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책이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백혈병환자가 쓴 <대한민국 병원사용설명법; http://blog.joinsmsn.com/yang412/9154961>가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리뷰의 제목을 ‘왜곡된 시각으로 의료기관 비판하기’라고 달았겠습니까? <대한민국 병원사용설명서>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병원을 제대로 활용하는 팁을 최명기원장님은 독자들에게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병의원 사용법’이라는 제목으로 된 2부에는 약 잘 먹는 요령,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 의사와 유익하게 대화하는 방법, 입원치료 요령, 입원비 등등 기억하면 병원에 갔을 때 유용한 내용들입니다. 수술 잘하는 병원 고르는 7가지 원칙을 예로 들어보면, 1. 많이 수술하는 의사가 잘하게 마련이다. 2. 수술은 의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3. 마취과 의사가 상주하는지 확인하자. 4. 광고 많이 한다고 좋은 병원은 아니다. 5. 수술실만큼 중요한 것이 중환자실이다. 6. 수술을 해야 할지 확신이 안 서면 대학병원에 가서 확인하라. 7. 비싸고 새로운 수술방법이라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등입니다. 제 입장에서 꼭 소개드릴 정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수술과 관련된 평가결과를 활용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건강의 재발견, 우선순위가 중요하다’는 제목의 3부에서는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건강정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저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라서 인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정책에 관심을 두고 계신분들이나 병원에 가실 일이 있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는 내용이 참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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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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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는 모두 8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었고, 2권은 3부에서 5부까지 그리고 3권은 6부에서 8부까지로 되어 있습니다. 각부의 분량이 서로 다른 어려움 때문에 3권으로 묶은 것 같습니다만, 8부 까지 이어지는 스토리 라인을 각각 두 개씩 묶어서 기-승-전-결의 구조의 4권으로 묶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권에 묶은 1부와 2부는 주요등장인물들을 서술하여 이들의 관계가 독자의 머릿속에 정리되도록 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면, 2권에 들어있는 3부, 4부는 1부에서 풀어놓은 관계들이 서로 얽히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단계, 2권의 5부와 3권의 6부는 갈등이 반전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작품해설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이 작품은 안나를 중심으로 하여 그녀의 남편 카레닌 그리고 그녀의 애인 브론스키가 서로 엮여 만들어내는 격정적인 사랑과 배신의 불협화음이 한 축이라고 한다면 다른 한축은 한때 브론스키라는 콩깍지에 쓰인 키티와 키티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레빈이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결국은 브론스키가 유부녀 안나와의 위험한 사랑을 선택하면서 상처를 입게 된 키티가 레빈의 순수한 사랑을 재발견하면서 결혼에 이르게 되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면서 원만한 결혼생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게 만듭니다. 특히 레빈과 함께 이복형 니콜라이의 죽음을 간병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헌신적인 모습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시각에 따라서 카레닌-안나-브론스키의 이야기와 레빈-키티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전개되는 구조라고 이해되기도 하는데, 특히 2권에서는 그런 경향이 뚜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마장에서 브론스키가 낙마하는 사고를 당하면서 안나와 브론스키의 위태로운 사랑이 그녀의 남편 카레닌의 눈에 포착이 되고 사고로 인하여 황망한 정신에 안나는 브론스키와 사랑하는 관계이며 그의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1권이 마무리되었습니다. 2권은 키티에게 퇴짜를 맞은 레빈이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일에 파묻혀 실연의 상처를 다스리는 과정이 지루하게(?) 이어집니다. 작가는 농노제도의 폐지에 따른 당시 러시아 농촌사회의 혼란상을 그리고 있는데, 새로운 농사기술에 적응하지 못하고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시골농부들 때문에 답답해하는 레닌의 모습에서 순수함을 느끼게 됩니다.

 

작가는 “(레빈) 자신이 민중과 함께 살고 있고 그의 모든 이해관계가 민중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를 민중의 일부라고 생각하여 자신과 민중 안에서 어떤 특별한 성질이나 단점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자신을 민중과 대립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2권 13쪽)”라고 레빈의 성품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 러시아 민중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안나의 고백을 듣게 된 카레닌은 공직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고려하여 안나-브론스키의 스캔들을 덮어두려 하지만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노골화되면서 결국은 이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불륜으로 인하여 이혼을 당하게 되는 경우 원인제공자는 재혼을 할 수 없도록 법에 정해져 있어 카레닌이 이혼을 제기하면 안나의 처지는 몰락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혼을 결심한 카레닌이 모스크바에 도착하였을 때 공교롭게도 스티바를 만나게 되고, 레빈 역시 모스크바에 와 있는 상황입니다. 스티바의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그의 특장을 활용하여 이들을 카레닌과 레빈 그리고 키티까지 모조리 집으로 초대하여 이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던 갈등구조를 걷어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레빈과 키티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카레닌 역시 이혼하려는 마음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 안나를 용서하게 되는데, 작가는 안나의 치명적인 사랑을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결국은 법적으로 이혼은 아니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러시아를 떠나 외국을 떠돌다가 다시 페테르부르그로 돌아오지만 이곳 사교계는 특히 안나에게 적대적으로 변해있습니다. 사교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하여 프랑스 사교계의 모습을 시시콜콜하게 그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톨스토이는 러시아 사교계의 모습은 대충 뭉뚱그리고 있어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2권에서 재미있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카레닌이 모스크바에서 처남 스티바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원전에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스티바는 카레닌에게 ‘하게’조로 말하는 반면 카레닌은 스티바에게 공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안돼, 이미 약속했잖아. 그래서 우리 모두 자네가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단 말이야.(스티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사이의 친척 관계가 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 집에 갈 수 없다는 겁니다.(카레닌)”(302쪽) 안나가 스티바의 여동생이지만 1권에서 스티바의 아내 돌리를 달래는 장면에서 안나와 돌리가 서로 공대를 하는 것을 보면 연배가 비슷한 것으로 추측하게 됩니다. 그런데 카레닌은 안나와 나이 차이가 20살이 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아내보다 나이가 많은 손위 처남에게 나이 많은 제낭이 공대를 하는 것이 러시아식이었을까요?

 

안나와 카레닌 그리고 레빈과 키티의 두 커플은 브론스키의 관심의 향배에 따라서 희비가 엇갈리는 기묘한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톨스토이 시대에 유럽은 사랑과 배신 불륜이 유행병처럼 퍼지고 있었던 모양인데 작가가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마지막 3권을 읽어보아야 손에 잡힐까요? 아직도 오리무중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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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흔들리되 부러지지는 않기를 - 인문학 카페에서 읽는 16통의 편지
노진서 지음 / 이담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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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불혹(不惑)이라고 부르는 나이입니다.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에 이르렀으므로 부질없이 엉뚱한 것에 마음이 갈팡질팡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요약해서 들려준 <논어> ‘위정편’에 있는 글에서 유래한 것이라 합니다.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삶의 기초를 이루고 마흔이 되어 남의 의견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쉰에 하늘의 뜻을 헤아리고 예순이 되어 남의 의견을 다 들을 수 있게 되고 일흔에 하고 싶은 바를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고 풀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마흔이 될 무렵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으니 부질없이 마음이 갈팡질팡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편부당하다는 생각을 접고 현실과 타협하지 못했던 것이었다는 변명거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흔’에는 흔들리되 부러지지는 않아야 한다는 노진서교수님의 생각과는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저는 세태에 따라 이리저리 마음을 바꾸느니 차라리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초지일관(初志一貫)하는 것이 옳다고 배웠던 것 같습니다만 세상이 변하다 보니 새로운 해석도 나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마흔, 흔들리되 부러지지는 않기를>에서 저자는 마흔을 “두 얼굴의 야누스처럼 과거와 동시에 미래를 바라보는 나이”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랑의 열병을 앓던 베르테르는 로렌스의 금지된 사랑을 훔쳐볼 수도 있다거나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처럼 힘겨운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다가도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기약없이 온다는 누구를 기다리며 그저 살아가는 것이라고 체념하는 나이일 수도 있다는 저자의 해석에 반대할 수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만화에 빠지던 제 아이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이 생각나 그 만화책을 넘겨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책보다는 만화형식으로 담은 메시지를 쉽게 이해한다고 해서 항생제에 대한 지식을 담은 <만화항생제; http://blog.joinsmsn.com/yang412/10731223>가 젊은 의학도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느닷없이 만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런던에서 애니메이션작업을 하시는 엘로의 만화가 이 책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프롤로그에 이어 나오는 만화가의 프롤로그는 지하철에 몸을 실은 소시민이 만나게 될 환상여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좋은 점이 참 많습니다. 책을 읽어도 좋고, 이 책의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잠시 꿈나라로의 여행을 통하여 심신을 정화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지하철을 이용해서 퇴근하던 주인공이 어느 순간 꿈에서 깨어나, 혹은 꿈속에서 만나는 누군가의 안내로 환상의 세계로 여행을 하게 되는데, 저자는 이 여행을 통하여 일상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기회를 붙잡으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저 매일 매일이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책에서 나오는 열여섯 정거장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도심에서는 지하철 역 사이의 거리가 짧은 편이라서 금방 다음 역에 도착하게 됩니다만 부도심에서 시외로 빠지는 노선에서는 한 장면의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헤아려 보았습니다. 사당역에서 열여섯 번째가 되는 한대앞 정거장까지는 43분 걸리는 것으로 나옵니다.

 

첫 번째 정거장은 ‘어린 날의 풍경’입니다. 조용필씨의 노래 ‘못 찾겠다 꾀꼬리’를 모티프로 해서 어린 시절 흔히 하던 술래잡기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더듬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별로 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술래잡기를 하던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요즈음 어린이들이 노는 법을 모르고 노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큰일이라고 글머리를 열어 어린 시절을 잃고 사는 어른들의 현실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읽는 이가 어린 시절에는 숨은 친구를 찾는 술래였다면 지금은 잃어버린 꿈을 찾는 술래가 되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술래잡기를 할 때 꽁꽁 숨은 친구를 찾지 못한 술래가 친구찾기를 포기할 때, ‘못 찾겠다. 꾀꼬리’라고 소리치는 이유를 아십니까? 꾀꼬리는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서 울기 때문에 쉽게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디 숨어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으니 그만 나오라고 포기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 더, 저자는 시인 앤 머로 린드버그의 <어른과 아이>라는 시를 인용하여 어른이 되면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아이의 동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혹시 린드버그 시인의 아픔을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앤 머로 린드버그 시인은, 1927년 5월 21일 비행기 ‘세인트루이스의 정신’호를 몰고 뉴욕에서 파리까지 무착륙횡단비행에 처음 성공하여 세계적 영웅으로 떠오른 찰스 린드버그의 부인입니다. 1932년 3월 1일 14개월 된 린드버그 2세가 뉴저지주 호프웰에서 유괴되어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 세기적인 유괴사건으로 린드버그 부부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됩니다. 린드버그 시인은 어른과 어린이를 대비하면서 잃어버린 린드버그 2세를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미네소타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미네소타주의 리틀 폴스에 있는 린드버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을 방문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열여섯 꼭지의 이야기 가운데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다섯 꼭지나 되는 것을 보면 역시 옛날을 추억하는데 있어 사랑은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모양입니다. 사랑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 ‘사랑, 아름답고 잔혹한 본능’으로 이끄는 만화에서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낸 엽서를 모아놓은 남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엽서를 받은 여자는 답장을 보내지 않은 대신 우표를 주고 갔다는데, 우표에 담긴 비밀은 무엇이었을까요? 환상여생을 안내하는 어린 시절의 주인공이 참지 못하고 누어버린 소변에 떨어진 우표의 뒷면에 그녀의 마음이 나타나게 되었더라는 것이지요.

 

“난 두려워 우리 사랑한 뒤에 멀어진다면, 다시 볼 수 없는 건 견딜 수 없기에 우정이라 말하고 그대 곁에 있지만 너무나 깊은 사랑인 걸 어떻게 하나.” 떠나간 그녀는 이 청년을 너무 사랑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떠난 그녀가 우표에 남긴 마지막 글 “P.S. I LOVE YOU”에서 이 책의 저자는 ‘운명적인 만남으로 시작되는 사랑...’이라는 박정현의 <P.S. I LOVE YOU>를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동명의 비틀즈 노래를 떠올립니다. 젊었을 적에 다방에 가면 꼭 신청해서 듣던.... 그리고 사족입니다. 주인공은 오줌에 젖은 우표의 뒷면에서 나타난 글씨들이 산성성분에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상인 뇨의 산도는 4.4~8.0으로 중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그대 안에 갇힌 사랑’은 시인과 촌장 그리고 조성모씨가 부른 감성적인 노래 <가시나무 새>가 모티프가 되고 있습니다. 저도 노래방에 가면 가끔 부르는 노래입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네...’라고 당신을 편하게 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안타까워하는 노랫말과는 달리 가시나무새의 전설에서는 가시나무새가 가시나무에 날아들어 아름다운 목소리를 노래를 부르다가 크고 날카로운 가시에 가슴을 찌르고 죽음을 맞는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치명적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지요. 저자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을 그린 장 자크 루소의 <신 엘로이즈>,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통하여 운명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드가 앨런 포의 슬프고도 지고한 사랑을 노래한 <애너벨 리>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께서 따로 프린트해서 나누어준 <애너벨 리>를 읽어주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만 감미로웠더라면 더 빠져들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 속에서도 슬픈 사랑에 몸을 떨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누구나 지울 수 없는 옛사랑의 그림자를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세월이 흘러 이미 희미해졌어도 결코 지워지지는 않는 그런 그림자 말입니다. 이런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지 싶습니다. 그런데도 저자는 ‘흰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라는 가삿말이 있는 이영훈의 노래 ‘옛사랑’에 끌려 자신의 지워지지 않는 옛사랑의 한 자락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라면 블루벨즈가 불러 사랑을 받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모티프로 하여 떠나간 옛사랑의 기억이 자꾸 흐려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정리해보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푸른 달빛은 호숫가에 지는데 멀리 떠난 그님의 소식 꿈같이 아득하여라”로 시작하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1960년대에 멕시코출신 트리오 로스 트레스 디아멘테스가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루나 예나(Luna Llena)라는 라틴음악의 고전을 원곡으로 하는 쓸쓸함이 물씬 묻어나는 노래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빠트릴 수 없습니다. 작고하신 코미디언 서영춘씨의 조카 서지숙씨가 노래한 소월시인의 시 <부모>라는 노래를 들으면 부모님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 겨울의 기나긴 밤. /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 옛 이야기 들어라. /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 이 이야기 듣는가? /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 내가 부모가 되어서 알아보리라” 만화에서는 부모의 존재가 마치 물과 같아서 옆에 계실 때는 고마움을 잊고 살다가 안 계실 때에서야 부모님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고 설명하고, 작가는 그런 부모의 존재가 흔들리고 있는 세태를 꼬집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애가 모성애를 범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는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는 것도 자기애가 모성애를 앞서고 있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족, 함께하는 우리의 이름’에서도 가정은 구성원들의 존재가 인정받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인용하여 가족관계가 변질될 수도 있음이 이미 예견되었지만 우리가 최고의 축복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은 ‘우리’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삶이 지쳐 주저앉을 때 그들은 어느 새 내 곁을 지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 주제에서 인용하고 있는 이문세의 노래 <그대와 영원히>는 세상살이에 지친 나에게 힘을 주는 동반자와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 해도 끝까지 함께 할 것을 노래하는 내용이라고 보여서 가족애를 논하는 주제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유재하 작사 작곡의 <그대와 영원히>는 저의 십팔번이기도 합니다.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문학편지의 마지막 주제는 피할 수 없는 외길, 즉 나이 듦과 죽음입니다. 사람마다 다른 삶이 있듯이 늙어감에도 꼭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콕 짚을 모범답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나날들과 생각에 맞추어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만, 저자는 1930년대 초 대공황의 여파로 어수선하던 시기에 뉴욕을 떠나 버몬트의 시골에 자리를 잡고 노년을 시작한 니어링부부의 조화로운 삶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제시하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 온 부부는 남편 스콧 니어링이 100세가 되는 생일을 앞두고 스스로 살만큼 살았다고 판단하고, 단식을 통하여 삶을 마무리하기까지 서로 돕고 의지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부부가 삶을 같이 하는 것으로 넘어가서 죽음이라는 주제로 이어집니다. 사실 죽음이라는 주제만으로도 여러 권 분량의 책이 될 터이기에 아쉽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어린 시절로부터 나이 들어 죽음을 맞을 때까지의 인생항로를 따라가면서 만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짚어 시와 책 등 다양한 인문학적 자료들을 인용하여 그 의미를 정리하고 있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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