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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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온몸이 공포로 휩싸이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저를 포함한 가족들 모습을 떠올리면서 저자가 책에 담은 내용과 관련된 일들이 있었나 되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존속살해를 포함하는 친족살해가 드물지 않은 주제로 등장하지만, 유교적 가치가 이어져 온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상상하는 것조차 피해야하는 금단의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금단의 영역이 언제까지 지켜지는 것은 아니라서, 최근에는 존속살해사건이 사회면을 장식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재찬 작가님의 <펀치>는 굳이 피하려 외면해온 존속살해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배경에는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남들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겠다는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 불러온 불행한 상황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고3병을 앓고 있는 여주인공 방인영은 어느 순간부터 부모를 살해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완전범죄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진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술에 취해 들어온 아버지가 친구와 통화하면서 “자식 농사는 좆도, 죽 쒔다. 하나밖에 없는데.....(101쪽)”라는 말을 뱉는 것을 듣고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방변호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데, 아이들은 보고 듣는 것을 놀랄 정도로 흡수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아버지의 잘못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엄마는 인영이 즐겨 듣는 에릭 클렙튼의 앨범을 보고서는 친구 와이프랑 바람이나 피운 쓰레기 같은 녀석의 음악을 듣고 있다고 타박을 해서 갈등을 고조시키는데, 인영은 이 장면에서 마음의 칼로 서로를 찌르려는 증오심을 감추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3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숙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최근에는 육체적으로는 성인과 다름없는 청소년들의 정신 수준은 오히려 퇴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우리의 주인공 인영은 무서울 정도로 성숙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상하는 것으로 그쳐야 할 부모살해라는 생각을 현실의 세계로 가져오기 위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갈등이 폭주하는 순간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범행이 아니라 완전범죄를 노리고 세밀한 부분까지 검토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운 아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엄마의 강요에 따라 나가는 교회에서 우연히 고양이를 살해하는 남자를 발견하고 이 남자에게 부모를 살해해달라고 부탁하게 되는데, 상사를 살해했다고 실토하는 그 남자는 “피로 죄를 씻게 하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부축인 인영 제안에 엮이게 되는 것은 설명력이 조금은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런 역설적인 말장난은 인영의 꿈에 나타난 낙타가 “니가 살인자라 부모를 죽인 걸까? 아니면, 부모가 널 살인자로 만든 걸까?(149쪽)”라는 역시 알쏭달쏭한 화두를 던집니다.

 

결국 부모는 집에서 누군가에 의하여 살해된 채로 발견되고, 인영의 통곡 속에서 장례가 치러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영의 부모는 인영의 계획에 따라서 살해된 것이라는 충격적인 결말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 경찰의 끈질긴 수사를 따돌릴 수 있을까요? 한편 인영의 사주를 받고 인영의 부모를 살해한 남자-비밀유지를 위하여 ‘모래의 남자’라고 부르는-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수하겠다고 인영을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인영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어긋난 운명의 톱니바퀴가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하여 새로운 상황이 잇달아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우연히 던진 거짓말을 감추기 위하여 더 큰 거짓말이 이어지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식을 낳는 순간 부모는 희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201쪽)”이라는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나의 평화를 위해 엄마도 희생당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인영을 보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것이 최선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포클레스부터 도스토엡스키를 거쳐 김소진까지, 많은 작가가 이야기했으며 독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읽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은 이야기, 오랫동안 나를 가두었던 주제에서 벗어나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작가가 준비한 반전이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야기의 전편을 통해 흐르는 ‘존속살해’라는 화두가 지나치게 틀에 갇힌 이야기라고 보았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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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일만 할 것인가?
백만기 지음 / 이담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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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마치고 병원에서 일을 시작할 무렵에는 정년까지 전공분야에서 일을 한 다음에(여기에서 일은 한다는 의미는 월급을 받고 일을 한다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은퇴를 하게 되면 해외에서 전공을 살려 봉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만, IMF사태를 겪으면서 갑작스럽게 현직을 떠나야 했던 분들이 많아지면서 은퇴 후의 삶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인생학교의 백만기 교장님이 쓴 <언제까지 일만 할 것인가>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저 역시도 일찍부터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고는 했지만 구체적인 실행계획까지 만들어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은퇴란 직업을 바꾸는 일이다’라는 저자의 정의대로 한다면, 먹고 살기 위하여 해온 일을 그만두고 마음 속에 품어왔던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이 바로 은퇴라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자녀를 키우고 노후의 편안한 삶을 보내기 위하여 돈을 벌기 위하여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은퇴를 하는 순간부터는 인생을 즐기겠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평균 기대여명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은퇴를 하는 순간의 나이만큼을 더 살아야 하는 세월이 도래한 것입니다. 따라서 은퇴한 다음에 맞게 되는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의 반환점이라고 할 50살에는 하던 일을 접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즐기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언제까지 일만 할 것인가>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개인마다 특성이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해답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저 각자 최선이라 생각하는 은퇴설계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저자는 소외된 이웃들과 마음을 나누다 보면 삶의 진정한 가치는 내가 대접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나눔’에 있음을 깨닫게 되더라는 경험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은퇴 후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하는 질문을 받고 저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은퇴 준비를 하며 읽었던 책 속에서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지혜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제가 경험한 것들을 책으로 엮어 뒤를 좇아올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일만 할 것인가>가 바로 저자의 은퇴계획의 일부였다고 합니다. 사실 저 역시 40살이 될 무렵부터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짧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만, 2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해야 하는 범위가 점점 넓어져가면서 시나브로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언제까지 일만 할 것인가>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강 ‘언제까지 일만 할 것인가?’에서는 은퇴 시점을 어떻게 결정하고, 은퇴 이후의 삶을 유지시켜줄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등에 관한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2강 ‘나를 발견하는 시간’은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3강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서는 타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경우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강 ‘죽음, 삶의 가장 귀중한 경험’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각장의 끝에는 은퇴 이후의 삶을 구체화하는데 도움이 될 팁을 각각 세 꼭지씩 정리하여 붙여두었습니다.

 

저자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남성들만 이 책을 읽어야 할 독자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치며 앞만 보며 달려온 우리네 아버지들, (중략) 그렇게 수고한 가장들에게 남 몰래 간직해 온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해 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오랜 세월을 통하여 직장생활을 해온 여성 은퇴자 뿐 아니라 남편이 직장생활을 원만하게 할 수 있도록 내조해온 아내를 위한 은퇴 이후의 삶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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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박재영 지음 / 청년의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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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길 파리에서 짬을 내 찾은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의 미소’를 비롯해서 유명하다는 작품들을 두루 감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특별히 사람의 두개골이 소품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을 모아둔 전시실에서 오래 머문 기억이 있습니다. 그림에 대하여 아는 것이 많지 않은 탓에 생소한 화가의 작품 분위기로 보아 해부학과 관련된 그림이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7679738). 최근에서야 최경화님의 <스페인 미술관 산책; http://blog.joins.com/yang412/13205419>에서 “서양회화에서 해골이 등장하는 경우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너희도 곧 죽어서 이 해골처럼 될 테니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직업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개 눈에는 X만 보인다’는 옛말이 틀림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직업의식을 끄집어 낸 것은 보건의료전문지 <청년의사>의 박재영 편집주간님께서 최근에 내신 <개념의료>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제목도 그렇지만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라는 부제가 주는 느낌 때문에, 혹시 제가 모르는 병원 시스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 현실에 대한 생생한 문제의식이 페이지마다 피어올라 독자들을 감전시키는 책’이라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송호근교수님의 한줄 요약을 읽고서,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의료현장의 문제가 광범위할 뿐 아니라 심층적이기까지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최근 들어 ‘만성질환 관리제도’를 비롯하여 ‘포괄수가제도’, ‘선택진료제도’ 등등 보건복지부가 내놓는 정책마다 마찰을 빚는 의료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은 현실에서 정부와 의료계의 간격을 좁히는 좋은 묘안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어 아주 적절한 시기에 나온 책이라 하겠습니다.

 

저자께서는 의료계나 정책담당자 모두에게 약이 될 만한 내용을 담았다고 생각했는지 서론에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이 책의 독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보건의료와 관련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공직자들, 보건의료와 관련된 수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 특히 동료 선후배 의사들과 의대생들, ‘보건’ 혹은 ‘의료’가 들어가는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는 전공자들과 학자들, 보건의료 분야를 담당하는 법조인들이나 언론인들 등이 그 대상이다.(13쪽)” 저도 그 대상이 된다고 보면 <개념의료>를 이 코너에서 소개하는 이유 역시 저자의 바람에 크게 공감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415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 담은 의료계의 문제들이 어느 하나 소홀하게 다룰 것들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읽는 분들에게는 송구한 노릇입니다만 저자께서 머리말에서 요약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겠습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한국의료의 오늘을 들여다보았다.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고유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한국의료의 현주소는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속으로 곪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을 지적했고, 의료비 지불제도의 개편을 비롯한 몇 가지 주요 현안들을 분석했다. 의료개혁이 왜 어려운 지, 의사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지도 기술했다. 2부에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료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왔는지를 기술했다. 한국의료의 독특한 장점과 단점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비롯됐다. 의료대란이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발생했는지, 왜 그렇게 격렬한 양상으로 나타났는지도 이 과정에서 ‘저절로’ 설명될 것이다. 3부에서는 보건의료의 패러다임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미래의 보건의료가 어떻게 달라질지,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를 기술했다. 점점 더 질관리가 중요해지는 이유, 과학기술이 바꿔놓을 의학의 미래, 의료분쟁의 새로운 해결 방식, 한정된 자원의 합리적 분배 등 지금보다 미래에 훨씬 더 중요해질 주제들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했다.(12쪽)” 책을 읽은 소감을 먼저 정리하면, 한국의료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그 근원에 이르기까지 파헤치고 해결방안의 도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길을 안내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저자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보건의료 분야의 언론계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삶을 오롯이 녹여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의료에 대한 저자의 번뜩이는 감각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저자는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한국의료의 현재를 이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학문으로서의 의학은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의료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는 문화적 배경이 많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의학자 혹은 의료인들이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백년이 넘는 우리나라의 현대의학의 역사를 통하여 한국의료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기대여명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수준을 나타내는 각종의 지표들이 선진국 수준을 뛰어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성장을 이룩하는데 투입된 비용은 매우 적게 들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비용을 적게 들이고 이루어낸 엄청난 성과는 매력적인 면이라 할 수 있겠지만, 비용이 적게 든 만큼 본인부담률이 높고 보장성이 낮은 점은 그늘에 해당하는 어두운 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의료비의 본인부담률이 높은 것은 의료에 소요되는 재원 가운데 공공에 의하여 조달되는 비중이 낮은 것이 주요 원인이며, 건강보험이 중증질환보다 경증질환에 대한 보장에 치중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원가에 못 미치는 건강보험수가구조도 빠트리지 않고 있는데, 이로 인하여 병원들은 부대사업을 통하여 얻는 수익으로 수지균형을 맞추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국민들의 불만을 “국민들은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난다.”고 하였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을 타개하기 위하여 조성된 국민들의 의료불신 분위기가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 의료인들은 방어진료를 강화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굿닥터>에서도 영리병원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영리병원의 개념을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다루어서 시청자들은 영리병원이 무조건 나쁜 체제라고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진보단체에서는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추진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공공 의료기관의 비중이 낮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보면 의료는 오래 전부터 민영 의료기관이 담당해오고 있다는 점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공 의료기관처럼 영리를 외면하는 민영 의료기관이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영리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영리법인 병원의 문제라고 좁혀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법인이 설립한 의료기관은 비영리기관으로서 발생한 수익을 전액 의료업에 재투자해야 한다고 현행 의료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을 풀어서 투자이익을 챙기는 주식회사 형태의 의료기관이 가능하게 하는 ‘영리법인 병원’제도의 도입을 검토해 온 것입니다. 저자는 영리법인 병원제도의 도입을 두고 찬방양론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알아두어야 할 점들을 짚고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유지되고 국민건강보험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될 경우,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이 허용되더라도 그 자체로는 우리 의료 시스템에 특별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73쪽)”고 진단하였습니다.

 

저자는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후보가 내세운 ‘4대 중증질환 100%보장과 소득수준별 본인부담 상한제’와, 문재인후보가 내세운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와 ‘비급여 항목의 대폭적인 급여화’라는 보건의료분야의 핵심공약이 “모두 ‘환상’에 가까웠다.”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재원마련이 분명하지 않다면 이들 정책은 국민이 낸 돈보다 더 많은 혜택을 국가가 국민에게 돌려줄 것이라는 착각을 유도하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의료정책이 정치적 이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도 의사들이 변화에 둔감한 것과 더불어 의료개혁이 쉽지 않은 이유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을 잘 살펴야 하는 법입니다. 1부에서 저자가 살펴본 한국의료가 처한 상황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2부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을 ‘기특하고도 안타까운 한국의료의 발전과정’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 모양새입니다만, 읽고 나면 저자의 속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2부에서는 건강보험이 출범하게 된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살피고 있습니다. 1977년 7월 1일 지금의 건강보험의 전신인 의료보험이 출범하게 된 배경에는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경쟁논리와 막 분출되기 시작한 근로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는 박정희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사회적 여건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면 된다’는 개발논리를 앞세우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결국 ‘가능한 사람들부터 우선 시작하고, 차차 가입률을 끌어올리면 되겠다!’는 돌파구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도의 정착에 30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였지만, 불과 12년 만인 1989년 7월 1일 도시지역 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전국민 의료보험시대가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근 의약품 리베이트 근절이 화두가 되면서 적지 않은 의사들이 처벌을 받게 되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건의 두 가지 핵심배경이라 할 의료보험의 도입과 정착과 함께 2000년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의약분업파동을 살피고 있는 것 역시 시의적절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전공이 의약품 사용과는 무관한데다가 의약분업이 시작되어 사회적 파장이 예고되던 2000년 7월 1일에는 일신상의 문제까지 겹쳐 당시 상황에 집중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2005년 대한의사협회에서 근무하면서야 제대로 된 배경과 사태의 진전과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의약분업제도는 당시 국민의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개혁’의 대표적 타깃으로 지목된 의료계를 대상으로 한 ‘의료개혁을 위한 출발점’으로 ‘선택’되었다고 했습니다. 즉, “의약분업 자체가 중요했다기보다는 의약분업의 실시라는 커다란 변화를 지렛대로 삼아서, 해묵은 보건의료 분야의 수많은 불합리와 부조리를 한꺼번에 해소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던 것(210쪽)”이라고 합니다.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처럼 의약분업 역시 당연히 해야 하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역사적 배경으로 미루어져 왔던 것일 뿐이고, 그걸 실시한다고 해서 국민건강 측면에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만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의약분업제도를 재평가하자는 의료계의 오랜 요구에 대하여 의약분업제도는 도입 명분이나 도입에 따른 성과가 분명하다는 정부당국의 설명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3부는 앞으로 한국의료가 맞닥뜨리게 될 미래의 모습과 나아가 더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하여 위리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할 점들을 다루었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의사들은 아주 보수적인 집단으로 분류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직업이 갖는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즉 검증을 거쳐서 확인된 시술만을 환자에게 제공해야 혹여 발생할지 모르는 위해로부터 환자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반응도 늦기 마련입니다. 의료는 문화라고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개별 국가의 의료문화에 따라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작금의 글로벌 변화를 보면 의료의 기본 패러다임이 달라질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의료서비스의 변화된 모습을 따라가려면 결국은 정부의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정부의 보건의료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하여 “개념 있는 의사들이 많아져야 하고, 개념 있는 시민들이 많아져야 하고, 그런 국민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개념 있는 의료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415쪽)”고 저자는 마무리하였습니다. 보건의료정책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선입관을 가지기 마련입니다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를 쓰는 훈련이 되어 있는 언론계에 오래 몸담아온 저자의 맛깔나는 글솜씨로 한국의료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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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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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여행이라는 독특한 여행 프로그램을 다룬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 나름대로 자료를 모아 여행계획을 세워 가족들과 같이 여행을 해본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 여행을 위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고, 여행사에서 기획한 여행상품을 이용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여행은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윤고은 작가님이 <밤의 여행자들>을 위하여 마련한 재난여행이라는 상품은 전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들이 다양해질 것임을 내다보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재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씽크홀 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미리 알 수 없는 자연재해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와 직접 관련이 있는 재난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만, 일본정부가 공허한 목소리로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물질의 누출을 유발시킨 쓰나미가 우선 떠오르고, 적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던 동남아 쓰나미 등이 떠오릅니다.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제가 일하던 대한의사협회에서 응급구호팀을 신속하게 현지에 파견하여 응급의료활동을 펼쳤던 적도 있습니다만, <밤의 여행자들>에서 다루는 재난여행은 재난이 발생한 지역을 구경하거나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여행상품이 아니라 재난현장을 돌아보면서 과거에 있었던 재난으로부터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는 현장학습의 기회라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내 삶에 대한 감사→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고 정리하고 재난 여행을 통하여 사람들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밤의 여행자들>은 재난여행을 기획하는 여자 주인공이 기획능력이 한계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는, 일종의 삶의 과정에서 발생한 재난을 수습하기 위하여 회사에서 판매중인 재난여행상품에 참가하여 여행상품으로서 유지 여부를 평가하는 마지막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재난여행상품을 파는 여행사가 ‘정글’이란 이름을 가진 것도 어쩌면 평범한 회사원이 동료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만 살아남는 정글과 같다는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난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 재난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름대로의 느낌을 얻게 되는 여행이지만, 일단은 여행이 안전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와 인솔자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주인공이 철두철미하다면 이야기가 밋밋하게 흘러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장치하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주인공이 보여주는 대응과 타협과정을 읽는 사람이 기대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고요나과장은 남자 작가와 남자 대학생 그리고 여자 교사와 그녀의 딸 등 다섯 명으로 구성된 재난여행팀으로 베트남 해변에 있는 싱크홀 재난지 무이섬을 찾게 됩니다. 무이섬에 살던 운다족과 카누족의 거주지를 두고 끔찍한 살육이 있은 다음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그 결과 사막에 생긴 싱크홀이 재난여행의 주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일주일로 예정된 일정을 경험하면서 무언가 짜여진 각본에 따라서 돌아간다는 느낌이 남지만 일행들은 여행을 모두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작품이 다루는 재난여행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부각시키기 위하여 고요나과장의 귀국길에 시간의 틈새를 만들어 일행으로부터 이탈하도록 만들고 결국은 무이섬으로 되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되돌아간 무이섬은 상품으로 여행하던 시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재난 여행지로서의 무이 역시 한계에 이르고 있는 상황, 이런 재난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무이섬을 소유하게 된 폴의 숨겨진 계획이 등장하면서 고요나과장은 새로운 재난여행상품을 설계하는 작업에 참여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상품을 기획하기 위하여 현지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무이섬에 사는 사람들의 아픈 과거와 무력한 현재가 안타까움으로 다가옵니다.

 

윤고은 작가님의 <밤의 여행자들>을 저는 미스터리물로 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펼쳐놓은 다양한 장치가 담긴 이야기를 구구절절 소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위기상황과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려는 주인공의 필사적인 노력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문학평론가 강유정님이 작품해설을 통하여 정글의 질서에서 이탈한 주인공 요나가 무이에서 만난 럭을 통하여 감수성을 회복하고 숭고한 세계를 완성했다고 보았습니다만, 정글이라는 일상에서 살아남는 것, 즉 질서에 순응하는 것 역시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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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함께한 여행 - 존 스타인벡의 아메리카를 찾아서
존 스타인벡 지음, 이정우 옮김 / 궁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김영주의 <태양, 바람 그리고 사막; http://blog.joins.com/yang412/13242002>를 읽으면서 건조해질 수 있는 여행기에 다양한 읽을거리를 인용하여 심심할 겨를이 없도록 한 점이 특별하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영주님이 미국의 남서부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오래 전 읽었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였다고 해서 저도 그 책을 읽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르던 개 찰리와 함께 미국을 동서남북으로 돌아본 존 스타인벡이 <찰리와 함께 한 여행>이란 기록을 남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존 스타인벡은 자신이 직접 주거가 가능하게 설계한 차 ‘로시난테’에 애완견 ‘찰리’를 태우고 4개월에 걸쳐 34개주에 달하는 미국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보고 느낀 미국과 미국인의 모습을 <찰리와 함께 한 여행>에 담아냈습니다. 그가 이 여행을 한 것은 58세가 되던 해였으니 1960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의 미국의 모습이 지금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타인벡이 미국일주여행을 꿈꾸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내가 내 나라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 관해서 글을 쓰는 미국 작가이지만 나는 실은 기억에만 의존해왔다. 그런데 기억이란 기껏해야 결점과 왜곡투성이의 밑천일 뿐이다. 참된 미국의 언어를 듣지 못하고 미국의 풀과 나무와 시궁창이 풍기는 진짜 냄새를 모르고, 그 산과 물, 또 일광의 빛깔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 간단히 말해서 알지도 못하는 것을 써왔던 셈이다. 이른바 작가라면 이것은 범죄에 해당될 일이다. (…) 그래서 나는 다시 내 눈으로 과연 이 거대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다시 발견해보리라 마음먹었다(13쪽).”

 

책을 펴면 먼저 저자의 여행경로를 표시한 미국지도를 만나게 됩니다. 저자가 롱아일랜드에 있는 자신의 별장이 있는 새그항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메인주를 빙돌아 미국의 북쪽에 위치한 주들을 지나 서해안의 시애틀에 도착한 다음, 남하해서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서 고향인 설리너스에 머물렀다가 모하비사막-프래그스태프를 거쳐 텍사스에서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이 부딪히는 현장을 지켜보고는 뉴욕으로 돌아오는 여행을 한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정에 관한 저자의 생각입니다. “세상에는 지도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자기 주위에 펼쳐지는 다채로운 자연 풍경보다는 채색된 지도에 더 많은 주의를 쏟는 것이 기쁨이다. (…) 또 다른 유형의 여행가들도 있다. 그들은 노상 지도상으로 자기네가 어떤 지점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든다. (…)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원래 길 잃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구원받는다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 물론 저자처럼 발 가는대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부럽기만 한 것도 사실이지만, 시간적, 재정적 고려가 불가피한 대부분의 여행가로서는 효율적으로 여정을 짤 수밖에 없다는 변명도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명소를 돌아보는 일반 여행가와는 달리 스타인벡 스스로가 밝힌 것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을 재발견하기 위한 탐험여행이었기에 우연히 보통의 미국인을 만날 수 있도록 일부러 큰 도로를 피해 덜컹대는 시골길을 따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평범한 미국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생각과 감정, 고민을 발견하고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여러 가지 관습, 태도, 신화, 방향, 변화가 있으며, 이것들 하나하나가 미국이라는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이 되어 있는 성싶다. 나는 이런 것들을 처음 나의 주의 속에 들어왔던 그대로 논하고자 한다.(83쪽)”

 

제가 참 좋아하던 장소, 배드랜드에 대한 스타인벡의 느낌을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승 같은 그 고장을 벗어나려고 나는 줄행랑을 쳤다. 그러자 늦은 오후가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해가 기울어짐에 따라 가파른 산과 협곡, 벼랑과 풍화된 언덕 그리고 작은 골짜기들이 불에 탄 듯한 그 무시무시한 모습 대신 노란 빛과 짙은 갈색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또한 붉은 은회색이 끊없는 변화를 보이며 그 사이사이 새까만 줄무늬가 스며들었다.(219쪽)” 각각 다른 시간과 날씨에 세 차례 방문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었던 곳, 배드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조만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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