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슬러 민음사 모던 클래식 64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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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패스벤더, 페넬로페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 하비에르 바르뎀이 출연하는 리들리 스콧감독의 신작 <카운슬러>가 14일 개봉한다고 합니다. 홈페이지에서 요약하고 있는 줄거리를 보면, “젊고 유능한 변호사인 주인공(제목 ‘카운슬러’에는 상담역, 고문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변호사’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은 아름다운 약혼녀 로라에게 프로포즈하기 위해 최고급 다이아몬드 반지를 마련한다. 호화로운 삶에 빠진 타락한 사업가 라이너는 재정 위기에 몰린 카운슬러를 유혹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밀매 사업을 제안한다. 라이너가 소개한 미스터리한 마약 중개인 웨스트레이는 지독한 범죄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카운슬러에게 경고하고, 라이너의 치명적인 여자친구인 말키나는 그들 주변을 맴도는 가운데 운반 중이던 거액의 마약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는데…(영화 스토리를 스포일러 시비 때문에 시시콜콜 적기가 눈치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원작 시나리오를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던 클래식은 오르한 파묵의 작품들과 지난해 노벨상 수상작가 모옌의 <개구리>를 통해 만나보았는데, 그야말로 모던한 느낌이 드는 소설을 소개하는 기획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영화화된 작품의 원작소설을 읽은 적은 많습니다만, 시나리오 형태로 된 영화의 스토리를 만나게 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색다른 경험이 되었습니다.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대사가 당연히 중심이 되고 있는데,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리면서 읽어가야 한다는 점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를 먼저보고 시나리오를 읽으면 이미 본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등장인물의 대사에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변호사와 약혼녀 로라가 아침을 맞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리뷰를 쓰기 위해서 첫 장면을 다시 읽으면서 매미와 사마귀와 참새에 관한 고사가 생각났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젖은 옷을 입고 손에 활을 든 젊은이를 만나게 된 오나라 왕이 그 이유를 묻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일찍 뜰에 나갔더니 나뭇가지에서 매미가 한마리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매미의 뒤에서 사마귀 한마리가 살금살금 다가가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별안간 뒤에서 참새가 한 마리 날아와 사마귀를 물어가려고 했으나 사마귀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들고 있던 활로 그 새를 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웅덩이가 있는 줄을 모르고 그만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옷이 젖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왕은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곧 다가올 화를 몰랐구나.”라면서 웃었고, 젊은이는 “천하에는 이런 예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고 그 땅을 얻어 기뻐하였으나 우리 오나라의 공격을 받아 패한 것도 그런 경우입니다.”라고 진언을 했다고 합니다. 젊은이는 왕에게 외교정책에서 주의할 점을 에둘러 이야기한 것이고, 왕은 그점을 깨닫는 듯했지만, 결국은 새겨듣지 못하고 월나라의 공격을 받고 패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변호사는 예쁜 약혼녀와 결혼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데 팔려서 그 과정이 적절한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고, 결국은 그로 인하여 패가망신을 하고 말았다는 스토리인 것입니다.

 

다시 원작 시나리오로 돌아가서, 시나리오를 읽으면 영화를 보면서 기억하려 애를 쓰다가 결국은 잊어버리고 마는 좋은 대사를 확인할 수 있는 점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대목으로는, “여자들은 도덕적 딜레마와 역설의 냄새를 맡지.(33쪽)”라는 대목이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말키나가 성당을 찾아 고해성사를 하는 대목에서 “세상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없습니다.(73쪽)”라고 하는 신부의 대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시나리오로 보아서는 미국의 텍사스주의 엘파소와 가까운 멕시코의 후아레스가 주요 무대가 되고 있지만, 변호사가 약혼선물로 다이아몬드를 사는 네덜란드 등을 오가면서 무대가 현란하게 바뀌기 때문에 영화 역시 빠른 호흡으로 진행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마약밀매와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배신과 복수가 전체 이야기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어 긴박하고 보기에도 끔찍한 장면으로 등줄기가 시원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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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식탁 - 우리는 식탁 앞에서 하루 세 번 배신당한다
마이클 모스 지음, 최가영 옮김 / 명진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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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세계 인구는 70억 명을 돌파했으며, 2013년 10월 말 현재 71억 6천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2025년에는 80억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되며 2100년에는 109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유엔인구기금(UNFPA)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반면 독일의 도이체방크는 2055년 87억에 이르러 정점을 찍고는 감소추세로 돌아서 2100년에는 80억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다른 전망을 내놓고 있기도 합니다. 세계인구전망을 살펴보는 이유는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더스[Thomas R. Malthus(1766∼1834)]가 <인구론(人口論)>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식량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는다.’고 주장하면서 식량대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던 1798년에 8억 명이던 세계인구가 이제 70억 명을 넘어 조만간 열배가 되는 80억 명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새겨보기 위해서입니다.

 

과학수필가 문종명씨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지는 제한돼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공장에 모여 집단으로 공산품을 만들기는 했으나 상하수도시설이 없어 대도시는 전체가 쓰레기로 오염된 빈민촌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광경을 본 맬더스는 세계인구 증가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한다 해도 20억 이상은 살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화학비료의 개발을 비롯한 과학적 방법을 통한 식량증산의 성공이 맬더스가 걱정하던 식량대란을 피할 수 있도록 한 요인이었다고 했습니다. 더하여 국토면적은 중국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중국과 맞먹는 인도의 국민 대부분이 채식주의자로 가축을 키우기 위한 육식동물을 키우기 위한 사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간과되었다면서, 전 세계 인구가 인도처럼 채식위주로 산다면 200억 명까지도 살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주간한국 2009년 12월 25일자, “맬더스 인구론 - ‘인구급증→식량난’ 예측 왜 빗나갔나”)

 

지금도 지구상에서 식량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만, 역시 적지 않은 나라에서 비만이 건강을 위협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마이클 모스의 <배신의 식탁>을 통하여, 이런 역설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이클 모스는 2010년에 해설보도 부문에서 퓰리처 상(Pulitzer Prize)을 수상하는 등, 많은 상을 수상한 「뉴욕 타임스」의 스타기자입니다. 그는 가공식품을 비만의 핵심원인으로 지목하고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몸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경고하고, 가공식품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이 우리의 입맛을 어떻게 길들여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워왔는지, 그 과정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모스 기자는 <배신의 식탁>을 쓰기 위하여 가공식품 대기업의 내부 고발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기밀 서류를 입수하고, 수십 년 전의 기록부터 책이 출간되기 직전까지 해당 기업들의 생생한 정보를 압축했고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 매달려야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식탁을 점령하고 있는 가공식품은 비만뿐 아니라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저자는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설탕, 소금, 그리고 지방이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핵심요소라고 보았습니다. 누구나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전통음식을 좋아하지만, 사서 먹기에는 비용이 문제가 되며 직접 요리해 먹기에도 만드는 과정이 복잡한 불편함이 따른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상이 복잡해질수록 가공식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즉, 맛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면 가공식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공식품 제조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맛을 어느 정도 살리면서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전통식품을 상품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특히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하여 맛과 식감은 자극적이면서도 혀끝에서 금방 잊혀서 아쉬움을 남겨 반복적으로 그 맛에 끌리도록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가공식품업체는 연구소를 차려 소비자가 좋아할만한 맛을 찾아내려고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 연구소에서 진행되는 연구는 소비자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식품보다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식품을 개발하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공식품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핵심요소는 바로 소금, 설탕, 지방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야말로 사람들의 입맛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이라는 사실을 일찍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요소들을 적당히 변화시켜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바꿀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야 경쟁업체를 누르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랜 추적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게 된 저자는 가공식품 기업의 핵심 재료를 주제로 ‘설탕으로 배신하다’ ‘지방으로 배신하다’ ‘소금으로 배신하다’라는 세 개의 장으로 나눈 글에서 이미 우리의 식탁을 점령하고 있는 가공식품들이 어떻게 조작된 것인지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필스버리 본사는 미국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 다운타운에 있는데, 저도 그곳에 가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는 큰 폭포는 아마도 미네하하폭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미네하하폭포는 이 지역에 살던 다코타족 인디언말로 ‘떨어지는 물’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오논다다족의 전설적인 추장을 노래한 롱펠로우의 시 히아와타의 노래(Song of Hiawata)에 등장해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제가 갔을 때는 수량이 많지 않아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동부와 서부 사이에서 제일 큰 도시인 미니애폴리스는 아이오와주나 위스컨신주 등 중부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농축산물을 가공하는 산업이 발전해 왔습니다. <배신의 식탁>에서 미니애폴리스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만,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아침에 열리는 세미나에 가면 따듯한 커피와 함께 혀끝이 짜릿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설탕이 범벅이 된 도우넛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마다 열리는 약품회사의 제품홍보행사에 빠지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그들이 나누어주는 볼펜 같은 선물보다는 그곳에서 먹을 수 있는 도우넛에 중독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우리 몸은 애당초 단것에 끌리도록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단것을 좋아하는 것은 동물적 충동 때문입니다. 당연히 충동을 제어할 수 있는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가공식품업계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생애주기에 따는 미각 발달 경로를 추적하는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가 미각적으로 어른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는데, 아이들은 어른이 좋아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달고 짠맛을 좋아하고, 어른이 그럭저럭 참고 먹는 쓴맛은 완강하게 거부한다고 합니다.(53쪽) 따라서 가공식품업계는 어린이가 주 고객인 식품일수록 더 달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하게 마련이라고 하니 우리 아이들을 가공식품으로부터 떼어놓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설탕은 먹으면 먹을수록 포만감이 드는 것이 아니라 허기지게 만든다는 실험결과로, 설탕이 비만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설탕이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상황을 맞게 된 가공식품업계는 업계에 도움이 되는 연구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하여 많은 연구비를 지원하기도 하고, 설탕의 함량을 줄이는 대신 소금이나 지방의 함량을 늘려 입맛을 사로잡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합니다. 문제를 인식한 소비자단체가 캠페인이라도 벌일라 치면 다른 전문가들을 내세워 문제의 핵심을 희석시키는 짓도 한다는데,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이해하기보다는 그 양심불량에 더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 같습니다. 가공식품업계의 이런 전략에는 전문가뿐 아니라 소비자단체 혹은 언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가공식품의 편의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인스턴트, 즉석요리, 데워서 담아내면 끝’과 같은 슬로건 아래 급부상한 ‘편의성’ 혹은 가공식품은 미국인의 식습관을 개혁하고 미국가정의 주방에 마법을 부렸다.(124쪽)”라는 기사를 쓰는 기자는 가공식품의 편의성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문제를 과연 제대로 보았을까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미국인의 아침식탁에서 빠지지 않은 메뉴인 시리얼에 숨겨진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미각의 지도가 틀린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도 새롭고, 기본 미각이라고 알고 있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에 더하여 최근에는 우리말로 감칠맛이라고 할 수 있는 우마미(旨味)가 일본어 그대로 공용어로 자리 잡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떫은맛이 더 분명한 맛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지방의 문제점을 정리하는 글에서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드레브노프스키가 지적했듯이 지방은 홀로 있을 때보다 설탕과 공존할 때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지방이 설탕과 함께 있으면 우리의 뇌는 지방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게다가 우리가 지방을 꼭꼭 숨겨 만든 식품을 먹으면 과식을 막는 인체의 제동장치가 완전히 무력화되고 만다. 그런데 진짜 마법은 세 번째 핵심 성분, 즉 소금이 더해졌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297쪽)” 지금까지 가공식품이 건강상 문제가 된다고 지적할 때는 흔히 특정성분을 타깃으로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가공식품업계에서는 문제가 제기된 성분의 함량을 줄이는 대신 지적받지 않은 성분의 함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맛을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사실까지는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주제가 되고 있는 소금은 모든 생물에게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어쩌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이 바다에서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소금의 구성요소인 나트륨이 바로 생명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실제로 실험용 쥐에게 나트륨 섭취를 제한하였더니 뼈와 근육의 성장이 부진하고 뇌가 평균보다 작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결과는 아주 작은 양의 나트륨으로도 개선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앞서 단맛과 짠맛을 본능적으로 좋아한다고 했습니다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단맛을 좋아하는 것과는 달리 생후 6개월까지는 짠맛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과일과 채소 위주로 된 이유식과 짭짤한 이유식을 먹인 아이들에서 소금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더니 생후 6개월부터는 두 그룹 간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해서 커가면서 그 차이가 벌어지더라는 연구결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즉 짠맛을 즐기는 소금중독은 어렸을 적부터의 학습에 따른 결과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근무하던 기관에서 업무와 관련된 경구를 문 앞에 달아두기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분이 내걸었던 경구입니다. 마태복음에 있는 말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소금이 비만, 흡연, 당뇨병과 함께 고혈압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보건당국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짜게 먹는 습관을 개선하기 위하여 음식에서 소금을 줄이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권고수준에 그치지 말고 실효성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어린이용 가공식품에는 소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핀란드 정부의 정책도 검토해볼만 합니다. 1970년대 후반만 해도 핀란드 국민들은 엄청난 양의 소금을 섭취하고 있었는데, 그에 따라 고혈압환자가 넘쳐났고, 그 합병증으로 심장마비와 뇌졸중 발생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핀란드 정부가 채택한 정책은 소금이 많이 들어가는 모든 식품에 ‘고염 식품’이라는 표시를 커다랗게 하도록 의무화했고, 국민들에게 소금을 줄이라는 켐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친 결과 2007년에는 1인당 소금섭취량이 과거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내려갔고 뇌중중과 심장질환 사망자 수도 80퍼센트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가공식품업계가 소비자들을 현혹하기 위하여 은밀하게 펼치고 있는 각종 속임수를 까발려 소비자들이 스스로의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이 소금, 설탕, 지방을 교묘하게 조합하여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 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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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매장 이대로 죽을 순 없다 - 온라인 쇼핑시대에 대항하는 오프라인 매장의 반격!
김숙희 지음 / 이담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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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학번인 제가 다니던 대학이 종로구 경운동에 있었습니다. 그래서만은 아닙니다만 종로2가에서 주로 친구들을 만나기 마련이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시간이 남으면 종로서적에 들러 책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종로서적은 잘 나갔습니다만, 1981년 광화문에 교보문고가 문을 열고, 이어서 영풍문고가 문을 열면서 지리적으로나 매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이 대한민국 대표서점의 자리를 내주게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1997년 책값할인을 앞세운 인터넷 서점들이 가세하면서 경영이 악화되면서 결국은 2002년 최종 부도처리되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종로서적이 종로에 문을 열었던 것이 1907년이었다고 하니 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게 된 것도 안타까운데, 온라인 매장과 경쟁을 해야 하는 오프라인 매장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꼭 인용되는 대표적 사례가 되곤 해서 종로서적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인터넷 공간이 무한대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매장은 거의 빈사상태에 빠질 지경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둑을 두는 사람들 사이에 대마불사라는 말이 금과옥조처럼 내려오듯이 빈사상태에 빠진 오프라인 매장이 살아날 길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리테일전문가(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저는 아직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만) 김숙희님의 <오프라인 매장 이대로 죽을 순 없다>가 바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 운영자에게는 복음과 같은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시장을 지키기 위한 오프라인 매장의 전략은 적진의 무기였던 온라인 채널을 오프라인 매장에 접목하여 매장을 스마트 스토어로 진화시키고 마케팅 역시 스마트 시스템을 도입하여, 매장운영자의 관점이 아니라 매장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옴니채널 리테일링’이라는 개념으로 무장하게 된 것입니다. <오프라인 매장 이대로 죽을 순 없다>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을 스마트화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Part 1에서는 옴니채널 리테일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하여, 옴니채널 서비스를 위해 매장과 온라인을 결합하고, IT와 물류 그리고 사내 조직에 혁신을 꾀하는 얼리어댑터 리테일러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Part 2에서는 쇼핑 고객이 겪을 수 있는 불편함을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한 이들의 기발한 전략을 살피고, Part 3에서는 영업을 극대화하기 위한 리테일러들의 라인 매니지먼트 노하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Part 4에서는 오프라인매장에서 물건을 비교하고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쇼루밍족을 공략하는 리테일러의 프로모션 사례들을 예시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전략이 ‘솔로모’ 모바일 앱입니다. 솔로모(SoLoMo)는 ‘소셜(Social) ’과 ‘로케이션(Location)’ 그리고 ‘모바일(Mobile)’을 합성한 신조어라고 합니다. Part 5에서는 온라인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오프라인 매장만의 매력을 살펴보았다. 바로 돈으로 구매하는 ‘제품’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을 ‘덤’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Part 6에서는 흥미로운 마케팅 캠페인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존닷컴이 온라인 매장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고객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하여 ‘편리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도전과 혁신을 멈추지 않은 데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아마존닷컴이 오프라인 매장을 개설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온라인 매장 역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많은 사진자료들을 인용하고 있어 눈으로 실감하면서 나름대로의 영감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매 장을 마무리하면서 관련 분야에서 성공을 일군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코너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고 한다면 이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문용어들을 따로 설명하지 않고 원어의 음가대로 적고 있어 이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라면 쉽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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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품격 - 북경대 인문 수업에서 배우는 인생 수양법 Art of Lving_인생의 기술 2
장샤오헝.한쿤 지음, 김락준 옮김 / 글담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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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니스벳교수는 <생각의 지도; http://blog.joins.com/yang412/13258160>에서 현대의 동양인과 서양인이 지각하고, 사고하고, 추론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차이들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서양인과 비교대상이 된 동양인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인과 일본인, 즉 동아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니스벳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서양사상의 원류로, 공자를 동양사상의 원류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니스벳교수는 서양인과 동양인은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동양인들은 작은 부분보다는 큰 그림을 보기 때문에 사물과 전체 맥락을 연결시켜 지각하는 경향이 있고, (중략) 서양인들은 사물에 초점을 두고 주변 맥락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즉 동양인은 통합적 사고를 그리고 서양인은 분석적 사고를 하는데 익숙해 있다는 것입니다.

 

근대 이전 시기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찬란한 유서가 깊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왔습니다. 다만 근세 들어 급속한 과학의 발전을 이룬 유럽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하여 심지어는 전통을 부정해가며 서구의 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일본이 가장 먼저였고, 중국 역시 뒤따랐지만, 우리나라가 가장 늦었던 것 같습니다. 근대 이전 유교는 국가를 통치하는 핵심 사상이었지만, 근대화를 가로막는 봉건적 유물로 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큰 줄기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만,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변화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기 위하여 공자의 권위를 되살리고 유교를 권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정부가 주도한 바도 있지만,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무너져 내린 개인의 가치를 회복하자는 주장이 대두된 바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선도한 사람들이 바로 중국의 최고지성이 모이는 북경대학의 인문학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이 분들은 산업화가 초래한 문제에 대하여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서구적 가치관보다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문화유산에서 해답을 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북경대학의 그러한 움직임을 담은 책이 ‘북경대 인문 수업에서 배우는 인생 수양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인생의 품격>입니다. 중국과 대만에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장샤오형과 국학연구자 한쿤은 <인생의 품격>에서 세계 최고의 지성, 북경대 인문학자들의 명언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풀이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의 요약을 인용하면, “5장 67강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루쉰(노신), 린위탕(임어당), 지셴린(계선림), 펑요란(풍우란) 등 스무 명 남짓한 인문학자와 100여 권이 넘는 고전, 수 백여 명의 역사 속 인물이 등장한다. 인문학자들의 주옥같은 명언은 공자와 노자, 장자의 가르침, 〈사기〉, 〈한서〉를 비롯한 역사서들과 씨줄과 날줄이 되어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인문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내면을 성찰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저자들이 책에 담은 내용을 보면,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나 자신에서 출발해서 타인과 삶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마음을 관리하는 방법을 깨달은 다음에 비로소 리더로서의 품격을 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첫 번째 강의를 북경대학교수였던 루쉰의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센다이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루쉰은 교수들의 편향된 시각으로 고통을 받다가 종국에는 의학을 공부하여 중국 사람들의 신체의 병을 고치는 것보다는 정신을 깨워 희망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라’는 제목의 글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현대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저자들의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루쉰과 같이 작가적 역량을 가진 사람의 경우가 아니라면 의학을 공부하여 사람들의 신체의 병을 고쳐주는 일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모두 마음공부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좋은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포부와 기개가 부족하면 그저 ‘털’만 더듬어 만지고 ‘역린’을 건드리지 못한다. 지도자는 이렇게 소심하고 허약하면 안된다.(111쪽)” 라는 구절은 역린을 건드려 화를 부르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과는 다른 해석이라서 놀랐습니다.

 

이 책에서는 “남이 뭐라고 하던 자신의 길을 가라.”는 단테의 말(131쪽)과 기독교가 중세 유럽을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통치자가 기독교의 교의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들었다는 말(210쪽)을 제외하고는 모든 금언과 사례들을 중국의 고전에서 취하고 있는 점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열풍이 불고 있는 인문학 공부의 재료를 서양에서 구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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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초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7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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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 http://blog.joins.com/yang412/12935937>에서 소설을 그림과 비유한 프루스트와 비유할만한 작가로 헨리 제임스를 소개한 것을 읽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http://blog.joins.com/yang412/13259819>을 먼저 읽었는데, 주목할 점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번역하신 최경도교수님께서 작품해설에서 설명하신 성적욕구의 투사라고 하는 정신분석학적 해석까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가정교사로 생활하면서 만나게 되는 유령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일체 접촉을 끊고 있는 고용주를 만날 구실을 찾고 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길지 않은 작품 속에 많은 복선을 깔아 서로 연결되도록 장치하고 있어 읽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상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여인의 초상>은 <나사의 회전>보다 17년 먼저 발표된 비교적 초기 작품입니다. 번역을 하신 최경도교수님은 작품해설을 통하여 “중심인물 이사벨 아처에 대한 묘사와 그녀의 내면 심리 전개는 소설가들로부터 인물 묘사의 전범으로 거론된다. 오늘날 미국 문학에서 이 소설은 호손의 <주홍글자>와 멜빌의 <모비 딕>과 더불어 19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소설의 반열에 올라있다.(474쪽)”고 소개하셨습니다.

 

쉽지 않겠습니다만 997쪽이나 되는 방대한 줄거리를 요약해보면,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언니 집에 얹혀살고 있는 이사벨 아처에게 영국에서 사는 이모 터쳇부인이 찾아와 영국에서 같이 지낼 것을 제안하게 됩니다. 런던에서도 떨어진 시골에 있는 터쳇가에 도착한 이사벨과 같이 지내게 된 터쳇부인의 아들 랠프는 설레는 감정이 일지만 폐결핵으로 투병하고 있는 입장을 고려하여 그녀가 품고 있는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선택으로 즐거움을 채우기로 합니다. 아버지를 설득하여 이사벨이 꿈을 이루기에 충분한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랠프의 이러한 배려는 새로운 지식에 대한 이사벨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힘이 되었던 반면, 그녀에게 다가서는 구혼자들을 가려내는데 오히려 악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사벨에게는 모두 세 사람의 구혼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먼저 터쳇가에서 만난 워버튼경입니다. 워버튼경은 재력과 영국 귀족이라는 상징적인 지위를 겸비한 최상의 남편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사벨은 워버튼 경은 유럽 전통의 귀족이라는 틀에 박힌 존재로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데 제한이 많을 것으로 판단하고 청혼을 거절하게 됩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구혼자는 미국인 사업가 캐스파 굿우드씨입니다. 굿우드는 물질적이고 남성적인 기질이 강한 타입으로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한 독립성이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아 역시 거절하고 맙니다. 마지막으로 마담 멀이 추천한 길버트 오스먼드입니다. 미국에서 와서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오스먼드는 가난하지만 예술품을 수집하는 고상한 취미와 이사벨의 꿈을 이해하는 태도로 접근하여 이사벨의 마음을 사게 됩니다. 좋은 결혼상대가 아니라는 터쳇부인이나 랠프의 조언은 오히려 오스먼드에게로 마음이 기울게 만들었는데, 역시 착한 여자가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모양입니다. 마담 멀이 이사벨에게 오스먼드와의 결혼을 강력하게 추진한 배경은 이야기를 마무리할 즈음에서야 드러나게 되는데, 당시로서는 놀랄만한 반전이 아닐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오스먼드는 오히려 자신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 이사벨을 집어넣어 예속시키고, 그녀를 무시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사벨은 오스먼드에게 가졌던 자신의 환상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스먼드의 독선의 압권은 이사벨을 배려해준 랠프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임종을 보러 가겠다는 이사벨에게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위협하는 장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랠프의 임종을 지켜보러 가는 이사벨은 지금까지 자신이 즐겨온 부가 사실은 랠프가 선친으로부터 받아야 할 유산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랠프의 임종 무렵 워버튼경과 굿우드씨로부터 새롭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비추던 작가는 의외로 이사벨이 오스먼드에게 돌아가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이런 결정은 과거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도로 읽히는 부분인데, 평생 살아온 부부가 황혼 무렵 이혼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는 요즈음의 세태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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