止學 멈춤의 지혜
마수추안 지음, 김호림 옮김 / 김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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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아온 날이 많아지면서 가끔씩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날 열정에 넘칠 때는 세상의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될 것 같아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잠시 쉬거나, 아니면 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겠다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멈추거나 돌아가는 일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일찍 배울 수 있었더라면 싶기도 합니다.

 

마쉬추안이 엮은 <지학; 멈춤의 지혜>가 바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저자 마쉬추안은 “문학과 역사에 일가를 이룬 고적(古籍) 전문가로, 주로 고전에서 소재를 찾아 문학 서적을 집필했고, 역사서 및 옛 경전을 탐구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재조명, 현대적 감각에 맞게 풀어 쓰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멈춤’의 사상은 노자의 <도덕경>, 장주의 <장자>, 공자의 <논어>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수나라 유학자인 문중자(文中子) 왕통(王通)이 하나의 학문으로 집대성했다고 합니다. 왕통은 멈춤(止)과 멈추지 않음(不止) 사이가 성공과 실패의 분수령이자 큰일을 이루는 자와 용렬한 자의 경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나 옮긴이 모두 <지학; 멈춤의 지혜>의 체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모두 열 가지의 화두에 따라 다시 열 가지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100가지의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열 가지의 화두는 지혜, 권세, 이익, 언변, 명예, 감정, 고난, 화해, 마음 그리고 수신입니다. 각각의 삶의 지혜의 말씀은 먼저 경구와 그 해석, 그리고 경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고사를 인용하는 순서로 편제되어 있습니다.

 

멈춤의 지혜에 해당되는 말씀을 고난편에서 찾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고난’편의 다섯 번째 말씀은 躁生百端 困出妄念 非止寞阻害之蔓焉(조생백단 곤출망념 비지막조해지만언; 성급함은 온갖 우환을 낳고 곤경은 사악한 생각을 쉽게 낳으니, 이를 멈출 줄 모르면 해악이 만연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입니다. 이 말씀은 “옛말에 ‘사람이 가난하면 뜻도 짧다’고 했으니, 곤경에 처하면 쉽게 극단으로 치달아서 자기자신을 잃어버린다. 물론 그들 자신도 성급함의 해로움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이성을 잃은 행위가 정상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조용히 은인자중하지 않고 성급히 행동하는 것은 곤경을 벗어나는 좋은 방책이 아닐뿐더러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 된다.(287쪽)“라고 풀고, 북위 태무제 때, 중서박사 고윤이 이 말씀을 따라 목숨을 구한 사례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우환은 마음으로부터 생긴다. 만약 곤경을 즐거운 일로 볼 수만 있다면, 그 곤경은 더 이상 곤경이 아니다.(296쪽)”는 말씀과 같이 새기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중자의 경구를 마쉬추안이 해석하고 그에 맞는 고사를 이끌어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해봅니다만,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책의 체제와 관련하여 경구와 해설 그리고 고사 등이 각각 누구의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어떻든, 춘추오패의 한 분인 진(晉) 문공(文公) 중이(中耳)가 외국을 떠돌아다닐 때 보좌하던 개자추(介子推)는 허벅지살을 베어 중이에게 먹이는 등 헌신을 다하였지만, 중이가 왕위에 오른 뒤에 개자추의 헌신에 적절한 포상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친과 주변에서 문공을 만나 설명하라고 권유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자추는 “제가 분노를 공로를 스스로 드러낸다면 이 또한 부귀를 추구하는 것이니, 저의 말과도 또한 맞지 않습니다. 제가 분노를 드러내면 결과적으로 주공께서 난처해지실 테니, 그건 결코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더 이상 아무 말씀 마시고 저와 함께 산으로 들어가 은거하시지요.(177쪽)”라고 어머니를 설득하여 함께 면상산으로 들어가 세상을 등졌다고 합니다. 나아갈 바와 멈출 바를 잘 아는 현인이었던 것입니다. 물러날 때를 아지 못하고 연연하는 것처럼 추하게 보이는 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가까이 두면 살아가면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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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밀란 쿤데라 전집 13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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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밀란 쿤데라는 소설에 관한 성찰을 에세이형식으로 발표해왔습니다. 1986년 <소설의 기술>이 그 첫 번째 에세이집이고, 1993년에는 <배신당한 유언들>을, 2005년에는 <커튼> 그리고 2009에는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설의 기술>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출판사에서는 “밀란 쿤데라는 이 작품을 통해 소설이란 “아직도 인간이 삶과 부대낄 수 있게 해 주는 마지막 보루”라고 말하며, 이론가도 철학자도 아닌, 단지 한 소설가로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이라는 장르, 그리고 ‘소설 쓰기’라는 행위에 대한 쿤데라의 생각과 철학을 한 권에 담은 이 책은 그의 작품을 보다 새롭고 근본적으로 이해하게 해 주는 초석이 될 것이다.“라고 요약하였습니다.

 

<배신당한 유언들; http://blog.joins.com/yang412/13108823>에서 쿤데라는 라블레를 시작으로 세르반테스, 발자크, 프루스트, 카프카 그리고 헤밍웨이 등의 작품에 담긴 의미를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작가의 사유는 문학의 범위를 넘어 작곡, 음악, 번역, 지휘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서로 연관을 짓고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쿤데라는 카프카와 그의 작품에 대한 내용을 적지 않게 담고 있는데 다음 구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카프카의 소설들을 이해하는 방법은 단 하나, 그것들을 소설 읽듯이 읽는 것뿐이다. K라는 등장인물에게서 저자의 초상을 찾는다거나 K의 말들에서 암호화된 신비한 메시지를 찾으려 들 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행동거지, 그들의 말, 그들의 생각을 주의 깊게 좇으면서 눈앞에서 상상해 보는 것 말이다.(배신당한 유언들, 311쪽)”

 

저자는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에세이집 <커튼>에서 “객관적인 미적 가치의 가정만이 예술의 역사적 진화에 의미를 부여한다.(14쪽)”라는 구조주의 미학자 양 루카로프스키의 말을 인용하면서 “미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술의 역사는 그 연대기적 연속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거대한 작품 창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톰 존스>를 쓴 헨리 필딩을 소설의 시학을 생각해낸 최초의 소설가들 중 하나로 지목하여 소설의 미적 가치에 관한 역사적 흐름을 <커튼>의 1부 ‘연속성의 의식’에서 논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세계문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계문학의 커다란 흐름은 문학적 성과가 축적되어 온 커다란 국가들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문학적 성과가 세계문학계에 활발하게 소개되지 못하는 관계로 소외되고 있는 작은 국가들이 세계문학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쿤데라는 보헤미아라고 부르는 중부유럽의 문화적 전통을 강조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 역시 세계문학의 외곽을 떠돌고 있는 우리문학계를 고려한다면 관심이 끌리는 것 같습니다.

 

3부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기’에서 저자는 소설은 모름지기 사물의 핵심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소설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발견한 인상적인 구절입니다. “소설가는 역사가의 하인이 아니다.(97쪽)” 흔히 소설가 역시 역사의 흐름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저의 생각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쿤데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소설가를 매혹하는 역사란, 인간 실존 주위를 돌며 빛을 비추는 탐조등, 역사가 움직이지 않는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실현되지 않고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을 뜻밖의 가능성들에 빛을 던지는 탐조등으로서의 역사다.(97쪽)”

 

4부의 제목은 ‘소설가란 무엇인가?’입니다만, 저자가 생각하는 소설가의 정의를 한 줄로 요약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브로흐, 플로베르, 프루스트, 세르반테스 등을 빌어 소설가를 에둘러 설명하고 있습니다. 5부 ‘미학과 삶’에서는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서 불꽃 튀는 대결을 보여주는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손에 잡힐 듯해서 시간을 두고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주인공은 서로 대립한다. 각각은 부분적이고 상대적이지만 그 자체로만 보면 전적으로 옳은 진리에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지만, 진리의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편을 완전히 파괴해야만 한다. 이처럼 두 주인공 모두 정의로우면서 동시에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161쪽)”

 

정리를 하면, <배신당한 유언들>에 이어 플로베르, 발자크, 도스토엡스키, 프루스트로 성찰의 폭을 넓혀 유럽 소설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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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 -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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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신이치교수가 쓴 <생물과 무생물 사이; http://blog.joins.com/yang412/10012343>에서 적지 않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인용한 에르빈 슈뢰딩거교수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http://blog.joins.com/yang412/12962410>를 읽고 긴 리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짧은 탓에 수박 겉핥기가 되고 말았습니다만 생명현상에 대한 슈뢰딩거교수의 탁월한 설명에 감동했습니다. 신이치교수의 책을 즐겨 읽게 되는 것은 어렵기만 한 생명과학 이야기를 일상에서 만나는 현상과 잘 버무려서 쉽게 설명하는 특유의 글쓰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연이 닿아서였을까요? 또 다른 경로를 통해서 슈뢰딩거교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교수가 쓴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어떤 독자께서는 고양이에 관한 책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고 적기도 했습니다만,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꾼다’는 부제를 보면 내용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셔교수는 ‘케플러의 난제’를 들고 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서 신이치교수님의 글쓰기를 예로 든 것처럼, 자신의 전문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일은, 그 분야를 연구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고들 이야기합니다. 태양계의 행성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많은 관측의 결과를 바탕으로 어렵게 계산해낸 결과로 “행성의 궤도는 타원형이다.”라는 케플러의 제1법칙을 정리해냈지만, 그 내용을 간결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는데서 ‘케플러의 난제’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즉, ‘케플러의 난제’란 대중에게 과학을 소개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의 경구입니다. 저 역시 2008년의 제2차 광우병파동을 겪으면서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이려고 고안한 실험이라고 합니다. 실험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고양이가 상자 속에 갇혀 있다. 이 상자에는 방사성 핵이 들어있는 기계와 독가스가 들어있는 통이 연결되어 있다. 실험을 시작할 때 한 시간 안에 핵이 붕괴할 확률을 50%가 되도록 조정한다. 만약 핵이 붕괴하면 독가스가 방출되어 고양이가 죽는다.(12쪽)” 슈뢰딩거는 이 상황에서 파동함수의 표현이 고양이가 살아 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의 결합으로 나타내는 것을 비판하며, ‘죽었으며 동시에 살아 있는 고양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며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물리학에서 관찰하는 현상을 생명과학과 연결하여 증명하려는 시도가 적절한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을 설명하기 위한 가상의 실험으로 설명을 듣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과학사를 전공하고 있는 피셔교수는 과학계에서 전해지는 다양한 아포리즘들을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리학 분야의 아포리즘은 생물학분야에 비하여 여전히 이해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아무래도 물리학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탓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거나 과학계의 뒷이야기도 흥밋거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유전의 기본 원리에 대한 멘델의 실험이 오랫동안 묻혀있던 이유는 당시 과학계의 변방에 속했던 독일어로 논문을 썼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사실은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라는 평범한 제목이 붙은 그의 논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멘델이 유전학의 시조로 알려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자연과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이 멘델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멘델이 독일어로 애매하게 표현된 내용을 모두 명료한 언어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역시 번역은 창작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깨닫게 되는 대목입니다.

 

막스 프랑크가 착안한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생각을 바꾸게 만든다고 해서 곧바로 관철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대자들이 서서히 모두 소멸하고 처음부터 그 진리에 익숙한 나중 세대가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서 가능하다.(304쪽”는 프랑크의 원리를 발견한 것도 이 책을 읽은 소득이라고 하겠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는 수많은 과학의 아포리즘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답을 구하지 못한 문제가 있으시다면 이 책에서 답을 구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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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남자를 살린다 - 가슴으로 울고 있는 중년을 위한 마음 처방전
이홍식 지음 / 다산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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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게 되는 동기도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눈물은 남자를 살린다>는 같이 근무하시는 분이 읽어보았느냐고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특히 ‘눈물’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끌어당겼던 것 같습니다. 남자도 눈물을 흘려야 할 때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이야기는 합니다만,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은 우리 사회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합니다. 대체적인 상황이 그러한데, ‘남자가 눈물을 흘려도 좋다.’는 정도를 넘어서 ‘눈물이 남자를 살린다.’고 부추기는 느낌을 담고 있는 제목을 단 책이니 관심이 커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세브란스병원에서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오랫동안 치료하며 명성을 쌓으신 이홍식교수님께서 진료경험을 담아내신 것이라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약물치료 중심의 정신과치료에 감성치료법을 도입하여 삶에서 오는 정신적 갈등을 근원적으로 치료해오셨다고 합니다. <눈물은 남자를 살린다>는 특히 고달프로 거친 삶의 현장에서 투쟁하듯 살아온 중년의 남성들에게 들려주는 치유의 메시지를 담아내셨다고 하겠습니다. 저자께서 이들에게 관심을 두게 된 이유의 한 대목입니다. “오늘날 중년들은 압축성장의 산업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당연시해온 결과로 주위와 가족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세대이다. 아니 어쩌면 자회구조가 돌아보지 못하게 만든 첫 희생양인지도 모르겠다.(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이들이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을 위로하는, 아니 자신을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고 토로하고, 이 책을 통해 이 시대 아버지들이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기를 진정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저자는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의 호소하는 정신건강상의 문제를 풀어낸 방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첫 번째 화두는 ‘울고 싶을 땐 울어라’입니다. 울고 싶을 정도로 응어리진 마음을 울어서 풀지 않으면 병이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적은 것처럼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일터에 집중하다보면 가족을 돌보는 일이 뒷전으로 밀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아내가 화를 내는 이유를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질곡의 세월을 건너다보니 집안에서 설 자리가 없어져가고 있다는 냉혹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혼신을 다했던 직장에서도 퇴물취급을 받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을 만든 것도 자신일 터인데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 탓으로 돌리는 남성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특히 중년에 이르면 매사가 젊었을 때처럼 빠르게 처리되지 않는 것은 사실 신체의 노화로 인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여성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갱년기가 남성들에게도 나타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남성들은 자신에게 갱년기가 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젊었을 때와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흡연과 음주를 피하고, 주기적인 운동과 휴식을 취하는 규칙적인 생활습관만으로도 남성 갱년기를 가볍게 지나가게 할 수 있다.(48쪽)”고 저자는 권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몇 년전부터 바꾸고 있는 생활습관입니다만, 해보니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화두는 ‘피로사회의 덫, 벗어나야 산다.’입니다. 첫 번째 글은 회사는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절대공감하는 바입니다. 내가 사라지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 하던 일이라도 그 사람이 없어도 돌아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결론으로 말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언제든 놓을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열정과 힘이 남아 있을 때, 자신을 원하는 곳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원하는 곳이 없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마지막 화두는 ‘이 삶이 다하도록 사랑해야 산다.’입니다. 역시 사랑이 모든 갈등과 어려움의 해결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감싸는 가족이야말로 좋은 치유사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군요. 이야기들 사이에 넣은 사진들은 저자가 직접 찍은 풍경들인 듯한데,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절로 가라앉는 느낌이 듭니다. 삶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있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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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 신화 속에서 건져올리는 삶의 지혜 50가지
송정림 지음 / 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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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제작에 참여했던 작품들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장 아누이가 다시 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입니다. 70년대라는 특별한 사회적 배경도 작용을 했겠습니다만, 당시 제작진의 분위기는 안티고네 편에 섰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과연 클레온의 결정이 틀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신화는 어쩌면 그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사조(思潮)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안티고네>의 원전이라고 할 그리스 신화로 거슬러 가면, 오늘날 우리의 삶과는 괴리가 느껴지는 면도 있고,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그 인물들이 저지르는 행동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신화속의 인물이 하는 행동이 정답이 아닐 수 있는 것이라서, 오히려 그들이 밟은 길과는 다른 결정을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신화의 재해석이 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오이디푸스왕>과 <안티고네>를 재해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225533).

 

송정림 작가의 <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는 그리스 신화를 재해석하는 공부로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신화는 어느 나라에나 다 있지만, 그리스신화만큼 상상력이 넘치는 신화도 드물다고 생각하고, 그리스 신화를 중심으로 작가가 느끼는 삶의 단상을 붙여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신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읽고 참고했다고 합니다. 읽어보니, 희망, 사랑, 욕망, 감성, 그리고 긍정을 키워드에 각각 10꼭지의 이야기를 배분하여 모두 50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신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참고했다고 하셨는데, 역시 제 생각과는 차이가 있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판도라의 상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호기심 많은 판도라가 결국은 제우스가 준 상자를 열었을 때, 인간들의 삶을 피폐케 할 온갖 나쁜 것들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놀라서 상자를 닫는 바람에 희망이 상자 속에 남게 된 것까지는 모든 이야기에서 같은데, 작가가 선택한 결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판도라가 급히 상자를 닫는 바람에 빠져나가지 못한 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그때부터 인간은 전에는 겪지 않아도 되었던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했지만, 희망만은 간직하게 되었다.(22쪽)” 사실 희망이 상자 속에 갇혀있어서는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죠. 따라서 누군가 상자를 다시 열어서 희망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구절은 꼭 눈에 띄는 지 모르겠습니다맘,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잘츠부르크에 관한 스탕달의 이야기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는 땅속에서 나는 소금으로 유명하다. 그 소금은 숲의 지각 변화에 의해 땅에 묻혔다가 오랜 세월 동안 썩어서 마침내 유익하고 아름다운 결정체인 소금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땅속에서 오래오래 묻히고 완전히 썩고 나서야 아름답게 승화되는 잘츠부르크의 암염, 그것이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스탕달은 강조했다.(106쪽)”

 

소금하면 우리는 보통 바닷물을 끌어들여 만드는 천일염을 생각합니다만, 세계적으로는 암염의 형태인 소금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땅속에 엄청난 양이 소금이 묻히게 된 것은 지각활동 덕분입니다. 옛날 바다였던 곳이 융기하면서 만든 분지에 고인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남은 소금이 굳어진 것이 바로 암염입니다. 숲이 지각변화로 땅메 묻히고 썩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아마도 스탕달이 잘못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오만해진 인간이 신에 도전하는 경우는 잔인할 정도로 신의 복수를 당하게 됩니다. 페가수스를 타고 올림포스에 오르려했던 코린토스의 왕자 벨레로폰이나, 열 두 아이를 가진 것을 자랑하기 위하여 힘들게 두 아이를 얻은 레토여신을 비방한 니베아가 당한 끔찍한 일은 어렵지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도시가 불타는 꿈을 꾸면서 출산했다는 이유로 버려진 파리스가 결국은 트로이의 전쟁의 빌미가 되었다는 정도는 그래도 약과라 하겠습니다만, 특히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할 운명이라는 신탁을 내리는 바람에 생긴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보면 신은 무슨 이유로 그런 신탁을 내린 것인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심심풀이로 연못에 던진 돌에 연못에 사는 개구리가 맞아죽어도 된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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