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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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승리라는 부제가 달린 <로마인 이야기14>은 서기 337년부터 397년까지의 기간을 다루었습니다. 1부에서는 콘스탄티우스 황제(서기337-361)의 치세를, 2부에서는 율리아누스 황제(서기 361-363)의 치세를 다루었고, 3부에서는 암브로시우스 주교(서기374-397)의 행적을 다루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13>3부에서 콘스탄티누스와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로마제국에서 기독교의 부침을 다룬데 이어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장악하여 중세유럽사회를 통제하게 되는 바탕을 세워가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기독교를 공인한 덕에 후세에서는 그를 대제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죽기 2년 전에 자신의 아들 셋과 이복형제의 두 아들까지 카이사르에 임명하여 제국의 방위와 통치를 분담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콘스탄티우스 황제 사후에 이들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벌어져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가 주도하여 어린 갈루스와 율리아누스를 제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복형제의 아들 달마티우스와 한니발리우스 등 육친들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은 갈리아의 로마군 총사령관 마그넨티우스를 자극하여 황제를 칭하는 등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3년에 걸쳐 내전을 수습할 수 있었지만, 막상 제국을 나누어 통치할만한 인물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콘스탄티우스 황제의 행적을 보면 그릇이 황제의 그릇이 아니었음을 알겠습니다. 부제로 발탁한 갈루스 조차도 숙청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혈육이라 할 율리아누스가 갈리아에서 병사들로부터 황제로 추대받자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동하던 중에 병을 얻어 죽고 말았습니다.


콘스탄티우스는 선제의 유지를 이어 기독교에 호의적이었습니다. 특히 아리우스파를 옹호했던 콘스탄티우스는 이교도 박해법을 제정하여 전통을 이어오던 그리스-로마신전을 파괴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리우스 반대파 역시 박해하고 추방했습니다. 콘스탄티우스는 로마의 황궁을 장악하고 있던 환관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환관들은 콘스탄티우스의 경쟁상대가 될 만한 사람에게는 측근들을 붙여 감시하다가 이상행동이 감지되면 황제의 이름을 빌어 살해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렇듯 흘러가는 제국의 동향을 지켜본 율리아누스는 그리스 철학에 심취하며 콘스탄티우스의 시야에 들지 않도록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불러 쓸 육친이 없던 콘스탄티우스가 율리아누스를 부제에 임명하여 갈리아에서 야만족을 평정하도록 했습니다. 전투경험이 전혀 없었던 율리아누스였지만 부제가 되어 치른 게르만족과의 네 차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푸르2세와의 일전을 준비하던 콘스탄티우스가 율리아누스의 병력을 차출하여 동쪽으로 보내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율리아누스 예하의 로마군단이 이에 반발하여 율리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게 되었고, 이를 징벌하고자 병력을 이동하던 중에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죽음에 임박한 콘스탄티우스는 율리아누스의 제위를 인정했다고 합니다.


율리아누스는 집권하면서 콘스탄티우스 치세에 벌어진 악정을 모두 버렸다. 황궁의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환관들을 모두 몰라냈습니다. 황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모범삼아 철학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포고령을 발표하여 기독교 이외의 이교도를 박해하던 정책을 버리고 로마의 종교적 관용정신을 되찾게 하였습니다. 율리아누스 황제의 강박적인 기독교 견제정책은 결국 반작용을 가져와 샤푸르2세와의 전투에 나선 길에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율리아누스를 배교자로 폄훼하게 되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고대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포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종교는 기독교가 유일했다고 합니다.


율리아누스 황제 사후에 짧은 기간 황제 위에 있었던 요비아누스에 이어 황제가 된 발렌티니아누스는 기독교에 의하여 대제라고 불릴만큼 기독교에 우호적이었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중요한 여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로마의 몰락 이후에 유럽의 중세를 기독교가 장악하는데 결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사람으로 꼽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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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 지음, 임지호 옮김 / 경당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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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선가 보고 읽게 된 책인데 자기계발서인줄 알았더라면 읽지 않았을 책입니다. 이제는 자기계발서를 읽을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읽었으니 느낌을 적어보기로 합니다. 저자는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아내였던 줄리아 카멜론입니다. 스콜세지의 대표작 <택시 드라이버>, <뉴욕 뉴욕> 등의 대본을 공동집필했지만, 대본작가로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기 정체성으로 고민하던 그녀는 이혼 후에 글을 쓰지 못하던 상황에 몰렸다고 합니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자기계발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고 합니다.


사실 자기계발서에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법을 내세우기 마련입니다.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창조성을 개발해내는 방법으로 모닝페이퍼와 아티스트 데이트를 내세웠습니다. 원작에서 내세운 핵심단어는 Creativity’인데 이를 창조성이라고 옮긴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창의성이라고 옮기는 것이 좋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창의성을 계발하는 방식으로는 먼저 모닝페이퍼, 그러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 떠오르는 생각을 3쪽 정도 쓰기를 반드시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쓴 생각들을 봉해 두고 8주 동안 읽지 말라는 것입니다. 3쪽의 글을 써내려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하지만 두서가 없더라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써내려가다 보면 3쪽을 채울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뒤에 읽어보면 어처구니가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써놓은 글들을 다듬어 꿰면 창의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창의적인 사고를 키우는 두 번째 도구는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방법인데 마음가는대로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기본개념을 설명한 뒤에 저자는 창의성을 발전시키는 10가지 기본원칙을 내세웠습니다. 열 개의 원칙은 스스로에게 암시를 주는 그런 내용인 것 같습니다. 이런 준비과정이 끝난 뒤에 12주에 걸친 실행과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순서는 이렇습니다. 1주 안정감을 되살린다, 2주 자기 정체성을 회복한다, 3주 내안의 힘을 되살린다, 4주 자기 신뢰를 회복한다, 5주 가능성을 되살린다, 6주 창조적 풍성함을 되살린다, 7주 연대감을 되살린다, 8주 자기 강점을 회복한다, 9주 동정심을 되살린다, 10주 자기 보호감각을 회복한다, 11주 자율성을 되살린다, 12주 신념을 되살린다. 등입니다.


사실 책에 있는 내용을 읽어가다 보면 이 방식에 따라 좋은 성과를 냈다는 사례들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개발한 자기계발의 방식들이 구체적으로 검증되었다는 점은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예술가에게 창의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창의성 역시 후천적으로 계발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문학이나 예술 등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에 뜻을 두고 계신 분이라면 이 책을 읽어 도움을 얻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읽어가는 중간에 당신이 삶이나 혹은 하고 있는 일에서 좌절하고 있다면, 일주일 동안의 독서 중지보다 더 효과적인 탈출수단은 없다(157)”라는 대목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에게 언어는 일종의 신경안정제와 같은 효과를 준다고 하면서 책이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오락거리라는 설명이 과연 그럴까 싶었습니다.


어쩌면 책을 읽기보다는 사유를 하다보면 번득이는 영감이 떠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인 듯하지만, 다양한 책읽기를 통하여 막혀있던 생각을 뚫어내는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책읽기를 TV시청이나 일상의 잡담과 같은 수준의 오염물질이라고 치부한 것이 과연 옳은지 의문입니다.


물론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쩌면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이는 모닝페이지보다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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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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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지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을 붙드는 방법을 존 러스킨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소개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277)”라는 것입니다.


러스킨은 또한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는 것에 더하여 아름다움에 대한 인상을 굳히려면 말로 그려야한다고 했습니다. 즉 글로 써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러스킨이 말하는 말 그림은 어떤 장소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심리학적 언어로 그 장소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합니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이야말로 러스킨의 말로 그리기의 전형을 보게 되는 책읽기였습니다. 존 버거는 자신이 직접으로 만났거나, 아니면 사진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이 Photocopies(사진복사)인 것은 피사체를 사진찍듯이 복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원제를 글로 쓴 사진이라는 절묘한 우리말로 옮겨놓은 편집자의 재치도 대단합니다.


11번째 이야기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남자에서는 사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사진은 적확한 순간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 손가락을 누르는 일일 뿐이에요.(62)” 화자는 하나의 사진을 찍는 순간, 당신의 이른 바 결정적 순간은 계산될 수도, 예고될 수도, 사고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란 쉽게 사라지는 것 아닌가요?(64)” 이야기 끝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사진은 끝없는 응시로부터 나오는 무의식적인 영감이다. 사진은 순간과 영원을 붙든다.(68)” 이 대목을 읽고 보니 제가 찍는 사진은 아무 생각 없이 순식간에 찍는 것이라서 영혼이 없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존 버거가 글로 쓴 피사체로 삼은 인물들은 멕시코 사바티스타의 마르코스 부사령관,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철학자 시몬 베유 등처럼 유명한 인물도 있지만, 명성에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그리기에만 몰두하는 무명 화가, 런던의 어느 광장에서 병든 비둘기를 돌보는 노숙자 여인, 아일랜드의 시골 버스에서 만난 수다스런 소녀, 라이플총을 빗겨 맨 열세 살의 인도 소년, 소련의 강제수용소를 백스물네 번이나 옮겨 다닌 남자처럼 무명인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존 버거는 피사체가 놓인 환경은 물론 그 사람의 내면까지 면밀하게 관찰하여 글로 그려냈습니다. 그가 그려낸 피사체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 가운데 테이블에 던져진 주사위처럼 계획 없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마을들이 있다. 하지만 좀 더 분명한 이유를 지니고 이루어진 마을도 있다.(19)”처럼 풍경에 대하여도 사유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아마도 마을은 실제보다 더욱 행복해 보인다. 교회이 첨탑은 아름답다. 묘지는 마치 그 위에 자리한 발코니처럼 보인다.”는 대목이 이어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13번째 이야기 시편 139: “당신은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니에서는 막 일어나고 있는 듯 엉거주춤한 자세의 사람이 그려지고 여백에는 글씨로 가득 채워진 그림 한 장만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어쩌면 말보다 그림으로 전하고 싶은 무언가를 담아낸 듯합니다만, 저자가 이 그림을 통해서 전하려고 한 자신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여백에 쓰인 글씨는 작거나 흘려 써서 내용을 식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존 버거의 글쓰기는 사물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느낀 마르셀 프루스트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물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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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당부 - 마지막까지 삶의 주인이기를 바라는 어느 치매 환자의 고백
웬디 미첼 지음, 조진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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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진단받은 뒤 더 적극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내가 알던 사람>의 저자 웬디 미첼이 세 번째 내놓은 책입니다. 두 번째 책은 사람들이 치매에 대하여 알았으면 하는 소박한 생각을 담은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이었습니다. 치매 진단을 받고서 9년이 지난 시점에 내놓은 책은 <생의 마지막 당부>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의 주인이고자 하는 심경을 담아냈습니다.


사실은 세 권의 책은 치매진단을 받은 웬디 미첼를 도와 아나 와튼이 함께 쓴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 당부>2014년 치매진단을 받고서 9년이 지난 2023년에 내놓았습니다. 최초의 진단이 그리 늦은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9년의 투병이라면 아직은 병증의 진행은 아직 심각한 단계에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어쩌면 웬디는 네 번째 책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매로 인하여 정신이 맑지 않은 상태를 먹구름이 내려온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마도 기억해내야 할 것이 쉽게 떠오르지 않거나 집중이 되지 않은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병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치매환자가 말기에 보이게 될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 책에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죽음이라는 단어로 책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암 등 다른 질환과는 다른 과정을 밟아 죽음을 맞게 되기 때문에 치매를 안고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을 이해하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았습니다.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세서는 죽음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데, 이유는 죽음을 이해해야 죽음이 편해진다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임종 돌봄, 치료거부, 조력사망에 대한 이야기들을 거쳐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는데, 삶에 대한 집착을 놓으면 남은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누리사랑방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왔습니다. 그와 같은 만남을 통해서 알게 된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많이 소개합니다. 물론 저자가 읽은 책이나 논문 등에서 얻은 것들도 소개하고 있어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관하여 연구한 영국의 정신과의사 존 힌튼 교수가 <죽어가는 사람들>에 적은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죽음을 앞에 둔 살마들 다수는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친절해지고 정신적으로 고귀해진다. 그들은 뒤에 남겨져서 상실감을 견뎌야 하는 이들의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최손을 다하며, 눈에 띄게 그리고 은근하게 애정을 드러내 보인다.(23)”라고 했습니다. 이러저런 이유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도스타우닝(döstädning)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죽음 청소라고 옮길 수 있다고 합니다. 죽기 전에 소지품 등 주변을 정리해서 자신의 죽음 이후에 남아있게 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줄여주는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대체로 65세가 되면 이 일에 착수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 유투브를 통해서 모녀 사이에 있었던 슬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평소에 어머니가 자주 전화를 걸고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을 귀찮아하던 딸이 그다지 바쁘지도 않은데 보고 싶다고 하는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따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가슴을 치고 후회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주 찾아뵙는 것이 이렇듯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생의 마지막 당부>에서는 임종 돌봄, 치료거부, 조력사망 등에 관한 영국 정부의 정책이나 민간단체의 활동 등을 소개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치매환자를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데 참고할 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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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세트 - 전2권 - 개정판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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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어디선가 열독율 1위라는 기사를 접했는데 도서관마다 대출 중이어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광고 문구를 쓰다가 소설을 쓰게 된 보니 가머스인데 무려 64살에 이 작품으로 등단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이고 무대는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에 있는 커먼스의 헤이스팅스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는 1950년 캘리포니아 대학 LA분교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중에 지도교수의 성폭력을 당하던 중에 연필로 배를 찔러 중상을 입힌 사건으로 쫓겨나 헤이스팅스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950년 무렵의 미국사회는 여전히 남성중심의 사고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던 남자들이 사회에 복구하면서 전쟁 중에 남자들을 대체했던 여성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압력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가정을 지켜야 할 여성은 남성의 영역이라 할 연구소에서의 역할이 무시되기 일쑤였습니다. 아무리 획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연구를 해도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어렵게 만들어낸 성과도 남성들이 가로채기 일쑤였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분위기에 저항하여 힘들게 좌충우돌하는 상황이었고, 그런 와중에 연구소에서 잘 나가는 괴짜 캘빈 에번스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연구소의 괴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으니 운명적인 사랑이라 하겠지만, 그 운명에 숨어있는 함정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원칙을 지켜야한다는 조트의 신념 때문에 캘빈이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캘빈의 죽음으로 엘리자베스는 연구소의 왕따 신세가 되고 결국은 쫓겨나게 되었지만, 엘리자베스는 쥐고 있던 주제 화학적 진화의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부엌에 실험실을 차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TV 연출가 월터 파인과 연결되어 <6시의 저녁식사>라는 요리 편성의 진행을 맡게 됩니다. ‘요리란 엄연한 과학이고, 따지고 보면 화학이라는 엘리자베스의 철학에 따라서 요리에 과학, 특히 화학적 지식을 접목하여 설명해나가는 엘리자베스에 시청자들은 열광합니다. 심지어는 당시 린든 존슨 부통령도 이 요리편성의 열렬한 애청자였다는 것입니다. 캘빈의 죽음으로 홀로 서야 했던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진심을 이해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결국은 헤이스팅스로 돌아간다는 결말입니다. 아기자기하고 긴박하게 돌아가던 이야기가 마무리단계에서는 긴장의 고삐가 풀린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표식을 붙여놓았던 부분을 꼽아보겠습니다. 캘빈이나 엘리자베스가 독특한 성격을 가졌다고 했습니다만, 두 사람이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정신적 압박감으로 인하여 형성된 것으로, 아이들의 성장하는데 있어 정상적인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결혼과 아이를 원하는 캘빈과는 달리 엘리자베스는 사랑은 하되 결혼이나 아니는 안된다는 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사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캘빈이 죽기 전에 엘리자베스가 임신을 하고 매들린 조트라는 딸을 낳게 됩니다. 캘빈은 죽은 뒤에서 엘리자베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피스타치오는 지방함량이 높아서 조건에 따라 천연인화물질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1952년의 미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외간 남자와 같이 사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연구소에서 쫓겨난 엘리자베스가 쪼들리는 생활을 하던 중에 매들린을 낳게 되었는데 산후 통증관리를 위해 진통제조차 맞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는 저는 과학자거든요. 이 과정을 멀쩡한 의힉으로 겪고 싶습니다.”라고 주치의에게 의연하게 말하는 모습이 강해 보이려는 엘리자베스가 측은하게 느껴졌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딸에게 붙여준 매들린 이라는 이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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