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 논어 1 - 옛글을 읽으며 새로이 태어난다 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1
심경호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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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위주로 짜여 지는 요즈음의 교육과는 다소 차이가 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을 공부할 기회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게다가 이과반을 거쳐서 입학한 대학의 교양과정에서 철학과 종교철학 과목을 어떻게 받았던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철학의 윤곽도 잡아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한문교육의 틈새를 묘하게 빠져나온 세대인지라 한문도 귀동냥으로 배웠기 때문에 동양 고전을 읽을 기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언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기회가 되지 않던 터에 심경호교수님의 <논어>를 읽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왜 『논어』를 읽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나를 세우고 남을 열어 주며 세상을 밝힌다”라고 답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먼저 일러두기를 챙겨 읽어봅니다. 심경호교수님의 <논어>는 20편 498장 가운데 현대에도 특별히 의미가 있는 장을 선별하여 3권으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1권은 ‘옛글을 읽으며 새로이 태어난다’라는 부제로 <논어>의 학이(學而), 위정(爲政), 팔일(八佾), 이인(理仁), 공야장(公冶長), 옹야(雍也), 술이(述而), 태백(泰伯편)을 수록하였고, 2권에는 ‘사랑한다면 깨우쳐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부제로 자한(子罕), 향당(鄕黨), 선진(先進), 안연(顔淵), 자로(子路), 헌문(憲問)편을 수록하였으며, 3권에는 ‘물살처럼 도도히 흘러가는 세상속에서’라는 부제로, 위령공(衛靈公), 계씨(季氏), 양화(陽貨), 미자(微子), 자장(子張), 요왈(堯曰)편을 수록하였습니다. 각 글은 ‘번역 및 해설’과 ‘원문 및 주석’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번역 및 주석과 해설은 주희의 신주(新注), 즉 <논어집주>와 한나라․당나라 때 이루어진 주소(注疏), 즉 <논어주소> 그리고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와 현대학자들의 연구를 근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제1강은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면 기쁘지 아니한가!’로 해(解)하는 학이편의 제1장 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아)입니다. 이 구절은 학교에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익히 알고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논어의 주요 구절은 일상에서 흔히 들어서 뜻을 익히고 있어 읽어가면서 반갑다는 느낌이 들곤합니다만, 역시 익숙하지 않는 구절들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뜻을 새기다보면 책읽는 호흡이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과 연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2008년에 제2차 광우병파동을 겪으면서 일부 전문가들이 보여준 이상한 행태와 연관시켜 이해한 앎에 관한 구절들입니다. 먼저 위정편의 17장입니다.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회여지지호인저, 지지위지지부지위부지시지야니라)이며, “유야! 너에게 앎에 대해 가르쳐 주겠노라.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80쪽)”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술이편의 27장입니다. 多聞 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다문하여 택기선자이종지하며 다견이지지지지차야니라)이며, “많이 듣고서 그 가운데 좋은 것을 가려서 따르고 많이 보고서 기억해 둔다면 완전한 지식의 버금은 될 것이다.(254쪽)”라고 해석합니다. 전자에 대하여 저자는 주희의 풀이를 인용하였습니다. “안다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면, 비록 앎이 완전하지는 않다 해도 스스로를 기만하는 폐단은 없을 것이므로 앎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모르는 것에 대한 자각으로 앎을 추구한다면 앞으로 알아 나갈 방도가 생길 것이다.(80쪽)” 후자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조선 인조 때 장유(張維)는 당시의 옹졸한 지식인들이 자기 소견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일체를 거짓으로 여기며 무시한다고 비판했다.”고 소개하면서 “다문다견을 통해 학문의 고착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두 개의 구절을 연관지어보면, 다양한 주장들을 서로 비교 검토함으로써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하여 아예 검토대상에서 빼버린다면 그 앎은 완전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밖에도 요즈음의 저 자신을 생각해본다면 자한 12장에서 “나는 제값 주고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39쪽)”라고 하신 공자님 말씀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겠습니다. 저자는 해제를 통하여 공자는 이상주의자였지만, 당시 세상이 몹시 어지러워 이상을 펼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는데, 요즈음 세상 역시 몹시 어지러운 지경이고 보면 <논어>의 사상을 오늘에 맞게 해석하여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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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생각법
하노 벡 지음, 배명자 옮김 / 갤리온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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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교수님은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富而可求也雖執鞭之士吾亦爲之如不可求從吾所好(부이가구야인댄 수집편지사라도 오역위지어니와 여불가구인댄 종오소호하리라)는 말씀을 “부라는 것이 구해서 얻을 수 것이라면 비록 채찍 휘둘러 앞길 트는 마부의 미천한 일이라 해도 나는 할 것이다. 만약 구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겠다.(심경호 지음, 논어1, 238쪽, 민음사)”고 해(解)하고 부유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지만 부를 추구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설명하였습니다.

 

공자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 같지만 부를 얻는 옳은 길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독일 포르츠하임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하노 벡교수는 주식투자에서 크게 실패한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돈을 벌고 싶다면 새로운 시각으로 자본 시장을 봐야 한다.(13쪽)”고 최근에 쓴 <부자들의 생각법>에서 조언하였습니다. 사실 남들이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해볼걸’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은 큰돈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하길 잘했네’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식이나 부동산시장에서 돈을 버는 방법을 안내하는 실용서적을 읽을 때는 금방 무언가 이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책을 덮을 무렵이면 여전히 2%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제가 새가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하노 벡 교수는 “어떤 주식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언제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무엇보다 결정적 순간마다 발목을 잡는 인간의 심리를 알아야 한다.(13쪽)”라고 하면서, 자본시장의 진실과 인간의 심리에 관한 내용을 담은 <부자들의 생각법>을 통해서 ‘당신이 얼마를 벌든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돈을 버는 방법과 번 돈을 지키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는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떼돈을 벌거나 매년 높은 수익을 해는 훌륭한 투자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이없는 판단 착오로 큰 손해를 보거나 그럴듯한 말에 혹해서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사실일까요? 하지만 ‘부자들은 1%의 행운도 바라지 않는다’,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 사람들의 비밀’, ‘돈이 저절로 모이는 부자들의 생각법’이라는 제목들을 보면 부자들은 확실히 다른 무엇을 가지고 있구나 싶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를 낭비로 이끄는 생각의 오류들’. ‘금융 회사는 당신의 심리를 이렇게 이용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제목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돈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읽어가다 보면 마치 제 경우처럼 느껴지는 구절도 많습니다. 결정이론을 바탕으로 한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는데 왜 내 집 장만은 여전히 어려운 걸까?’라는 글에서는 집을 팔았을 때 꼭 손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남는 경우가 많지만,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집을 살 때 가격과 집을 팔 때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꼭 한 번 집을 팔아본 적이 있는데, 처음 집을 내놓았을 때는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르는 시기였기 때문에 목표금액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표금액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급락하기 시작해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바람에 결국 집을 팔지 못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집값이 오르는 분위기에서 다시 내놓았을 때는 목표금액보다는 팔아야 되는 시기를 미리 정하고 팔았고, 집을 판 다음에도 집값이 꾸준하게 올랐지만, 집을 산 분도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위로하기로 했던 적이 있습니다. '금융회사가 당신의 심리를 이용하는 법‘에서도 제 경험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종합보험과 운전자 보험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어느 해 걸려온 전화에서 보험가입을 권유하는 상담원의 말에 홀려 운전자 보험을 가입했지만, 일상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운전은 특별한 경우에만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필요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계약이 만료되었을 때는 연장을 하지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지막 편은 책내용을 종합하여 ‘재산을 지키기 위해 꼭 알아야 할 18가지 투자 원칙’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눈길을 끄는 구절을 몇 개 들어보면, ‘본전 생각을 버려라’, ‘푼돈의 무서움을 기억하라’, ‘늘 처음을 생각하라’, ‘돈을 벌었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금융위기는 생각보다 자주 온다’ 등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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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 혁명 - 안전한 식수를 향한 인간의 권리와 투쟁
제임스 샐즈먼 지음, 김정로 외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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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고 있는데, 몸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세포와 세포 사이를 채우는 기질의 주요 성분일 뿐 아니라 세포가 필요로 하는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거나 노폐물과 이산화탄소를 운반하는 혈액을 비롯한 림프액 및 조직액의 주요 구성요소입니다. 대사활동을 통하여 소변과 대변, 호흡 그리고 땀 등을 통하여 우리 몸을 빠져나가는 물을 채워주어야 합니다. 우리 몸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물의 양은 체중 1kg당 30ml라고 합니다. 우리 몸은 수분의 부족에 민감한데 적정 수분량에서 1~3%가 부족하면 심한 갈증과 피로감을 느끼고, 5%가 부족하면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며, 10%이상 부족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물이 소중한 존재입니다만, 우리 옛말에 ‘OO을 물쓰듯 한다.’는 말도 있듯이 물의 소중함을 실감하지 못해온 것 같습니다.

 

유엔 평가에 따르면 2030년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물이 부족한 곳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물부족 국가에 포함될 것이라고 하니 미리 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여름철에 집중되는 비를 충분히 저장할 수 있는 수리시설을 갖추어야 할 것인데, 그러다보니 강물의 흐름이 줄어 오염이 심화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강의 수심을 깊게 유지하여 수량을 확보하고 홍수를 예방하는 다목적의 개발사업은 타당성이 충분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관리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듀크대학교의 제임스 샐즈먼교수의 <식수혁명>은 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안전한 식수를 향한 인간의 권리와 투쟁’이라는 부제가 시사하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특히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지 그 역사적 흐름을 정리하고,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문제 현상을 짚고 있습니다. 1부 ‘인간, 물을 찾아나서다’에서는 좋은 물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했는데, 청춘을 돌려준다거나 치유의 효능이 있다는 샘에 관한 이야기라서 마실 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노력의 역사를 제대로 짚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낍니다. 옛날 한양에서는 아침마다 물을 길어다 파는 북청 물장수가 유명했다고 합니다만, 기원전 312년에 첫 번째 도수관 아피아를 건설한 이래 5세기에 걸쳐 모두 열 개의 도수관을 추가로 건설하여 매일 1억리터의 물을 공급한 로마의 먹는 물 공급체계는 정말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오로지 중력에 의지하여 도시의 각 가정으로 흘러들도록 설계가 되었고, 그 절반 정도는 개인용도로 판매가 되었다고 합니다.

 

2부 ‘누가 마시는 물을 위협하는가’에서는 먹는 물의 안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먹는 물을 안전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수원을 발견하고, 수원을 보호하고, 정수처리 해서 최종소비자에게 공급하는 4단계로 나누어 접근해야 합니다. 필요한 만큼의 물을 공급할 정도로 풍부한 수원확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물을 소비하는 사람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생물학적, 화학적 위험요인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문제가 다음 단계에 검토되어야 합니다. 먹는 물을 정수하는 장치는 람세스 2세의 무덤에 새겨진 비문에도 기록될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본적인 과정이 되었습니다만, 수돗물에 염소를 투입하여 소독하는 법은 1908년에 처음 적용하였다고 합니다. 최근에 북미에서 셰일가스를 채취하기 위하여 개발된 프래킹공법이 지하수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도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3부 ‘물, 시장에서 문화까지 점령하다’에서는 청량음료시장보다 훌쩍 커진 생수시장이 만들어진 과정과 생수를 담은 용기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다루고 앞으로 예상되는 물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식수공급을 늘리기 위하여 폐수를 재활용하는 문제로부터 심지어는 우주공간에서 물을 채굴하는 기상천외한 방법도 설명합니다. 상수도 공급체계를 민영화했을 때 예상되는 문제점도 짚고 있습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오대호 근처에서 살았던 탓인지 오대호의 물을 6억 리터를 탱커에 담아 물이 부족한 아시아시장에 내다 팔겠다고 승인요청했다는 캐나다의 노바그룹의 사업계획에 비판이 쏟아졌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흥미롭고 다양한 사례를 인용하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당면문제이기도 한 때문인지 단숨에 읽어내게 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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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전집 3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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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두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프라하의 봄’ 무렵 집필을 시작해서 1968년 소련군의 체코 침공 이후에 마쳤고, 1973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소련군의 침공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상이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삶은 다른 곳에>는 한 시인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일생을 7부로 나누어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2부는 주인공 야로밀이 만들어낸 상상의 인물, 자비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어 그의 정체를 두고 다소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주인공이 현실에서 해보고 싶어 상상했던 일들을 자비에를 통하여 그려내는 일종의 소설 속의 소설 형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자비에는 마지막 7부에서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6부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40대 남자는 주인공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주인공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누구나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우연히 만난 갈색머리의 우아한 아가씨를 뒤쫓다가 만난 빨간 머리 아가씨의 유혹으로 사랑이 시작된 것입니다. 빨간 머리는 야로밀이 그때까지 꿈속에서만 그려왔던 이성과의 관계를 현실화한 첫 번째 사랑인 셈입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사랑이다 보니 사랑의 기술이 정교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어느날 그녀는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나타났고, 야로밀은 왜 늦었는지 추궁하기 시작합니다. 빨간 머리 역시 그때까지도 야로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 남자친구와 헤어진 친구를 위로하다보니 늦었다고 둘러대는데, 여기서 야로밀은 빨간 머리에게 나를 사랑하기는 하냐고 몰아붙이기 시작합니다. 친구를 챙기다 자신과의 약속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자존심이 상한 것이지요. 사실은 약속시간에 15분 정도 늦은 정도는 양해가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빨간 머리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야로밀을 달래려드는 빨간 머리를 밀쳐내자, 빨간 머리는 사실은 오빠를 만나러 갔던 것이라고 말을 바꾸게 됩니다. 오빠가 몰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가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나중에 드러나는데, 이 거짓말은 최악의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야로밀은 당시 불길처럼 일어나던 사회주의 공화국 운동의 신봉자였던 것입니다. “난 너 없이는 살 수 없을 것(416쪽)”이라고 말한 야로밀은 “나도 네가 없다면 엄청나게 슬플 것”이라는 빨강 머리의 대답에 실망합니다. 야로밀은 그녀가 엄청 나게 슬퍼도 살 수는 있을 것이란 말로 해석한 것입니다. 빨강 머리는 재차 확인하는 야로밀의 의중을 읽지 못한 셈입니다.

 

결국 야로밀은 경찰인 학교친구를 찾아가 빨강 머리의 오빠가 몰래 국경을 넘을 작정이라는 사실을 고발하고, 경찰은 빨강 머리를 체포하게 됩니다. 그 현장을 목격하게 된 야로밀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오직 혁명적 과업을 수행했다는 만족감을 담은 시(詩)를 짓지만, 그의 시에 열광하던 주위사람들의 실망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결국 싸늘해진 주변의 시선 밖에서 돌던 야로밀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게 되는데, 총망받던 시인의 예기치 못한 죽음은 우연으로 엮인 빨강머리가 4이름도 모를 40대 남자와 야로밀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쳤던 것이 빚어낸 거짓말이 화근이었음으로 밝혀지는 허무한 결말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방미경교수님은 체코의 특정한 역사적 상황과 그 시대 한 시인의 삶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소설 같은 인생의 함정에 빠져 고군분투하다가 삶의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은 한 인간의 삶을 냉철하게 조명한 것이라고 요약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야로밀의 아버지로부터 아이를 원한 적이 없었다는 말을 듣고서 우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그들은 나란히 누워 있었고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잠시 울음을 터뜨렸고, 밤새 흐느껴 울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건드리지도 않았고, 눈물의 파도 맨 끝자락에조차 스며들 수 없는 몇 마디 진정시키는 말을 겨우 내뱉었을 따름이다.(41쪽)” 야로밀을 가졌기 때문에 결혼하게 된 아버지였지만,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고, 그러기에 어머니는 야로밀에게 집착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 아들의 관심에 흘리는 눈물은 이런 의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그녀에게서는 여러 종류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버림받았으므로, 슬픔의 눈물, 아들이 자신을 소홀히 했으므로, 질책의 눈물, (새 시들의 선율적 구절들을 보면) 마침내 아들이 자기에게 돌아오려 하는 것 같으므로, 희망의 눈물, 그가 그냥 어정쩡하게 서서는 머리카락이라도 좀 쓰다듬어 주지도 않고 있으므로, 노여움의 눈물, 마음이 약하지게 만들어 자기 곁에 그를 붙잡아두려는 책략의 눈물.(311쪽)” 정말 여성의 눈물을 이렇듯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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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와 베르사유 궁정
생시몽 지음, 이영림 편역 / 나남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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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생시몽의 <회고록>의 경우는 콩브레의 이웃 스완이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중략) 오늘 아침 저는 생시몽의 글에서 어르신께서 재미있게 생각하실 구절을 읽었습니다. 생시몽이 스페인 대사로 재직했을 때의 일들을 기록한 것인데, 그가 쓴 것 중에 가장 훌륭하진 않지만, 그것도 일기에 불과합니다만, 그래도 아주 경탄할 만큼 잘 쓴 일기입니다. 그 점이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읽어야만 하는 저 지루한 일기들인 신문들과는 첫 번째로 다른 점일 겁니다.(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1), 54쪽, 민음사)”라고 평하면서, 그 가운데 ‘나는 그것이 무지(無知)인지 또는 덫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우리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려고 했을 때 재빨리 눈치를 채고는 막았다.’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할아버지는 ‘무지(無知)인지 또는 덫인지’라는 표현에 감탄하셨다고 적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모할머니 옥타브 부인과 하녀 프랑수와즈의 관계를 묘사하면서도 생시몽이 <회고록>에서 적고 있는 루이14세와 그의 신하들 사이의 묘한 관계를 이끌어오기도 합니다.

 

생시몽(1675~1755)은 루이 14세의 치하에 생존했던 인물로 당시 프랑스 궁정에서 겪은 일들을 <회고록>이란 이름으로 정리하였는데, 그 분량은 56줄짜리 2절판 공책 총 173권 분량의 방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발췌본과 선집이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국내에는 다니엘 데세르가 1994년에 쓴 <루이와 그 궁정>을 우리말로 옮긴 <루이 14세와 베르사유 궁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옮긴이가 데세르의 책을 옮기게 된 것은 원문을 요약하거나 수정을 가한 다른 축약본과는 달리 원문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았고, 루이 14세의 성격과 그의 궁정운영방식을 드러내는 부분이 중점적으로 발췌되었다는 점을 고려하였다고 합니다. 생시몽의 <회고록>의 일부를 발췌하였음에도 <루이 14세와 베르사유 궁정> 역시 75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옮긴이는 서문에서 “생시몽의 문체는 아카데미의 통제를 받는 당시 문인들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문인들이 엄격한 형식에 묶인 반면 생시몽의 글은 세련되거나 규격적이지 않다. 대신 끝없는 수사로 이어지는가 하면 짧고 명쾌한 격언구와 대화투의 문장이 자유롭게 등장하는 생시몽의 <회고록>은 생생하며 신랄하다.(7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편저자인 데세르는 소위 회고록이라고 하는 저작물들이 기술하고 있는 연대기의 신빙성이 의심받고 스스로의 멋진 역할을 부각시키고, 자신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많은 학자들이 생시몽의 <회고록>의 편파성과 오류, 누락을 지적하면서 증거물로서의 가치를 문제 삼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하지만 생시몽 자신은 위대한 왕의 궁정에서 보고들은 것을 가장 ‘실증주의적’ 방식으로 기술했다고 믿었고 스스로를 공정한 관찰자로 규정하였었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즉, 선입관, 과장, 날조된 인과관계에도 불구하고 생시몽은 믿을 만한 증인임이 확실하다고 하였는데, 생시몽이 호사스럽고 전지전능하며 화려한 연극무대 같은 베르사유에서 고립상태에 빠져 있던 왕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왕에 대하여 분명했던 통찰력을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베르사유궁전을 짓고 태양과 같은 절대권력을 휘둘러 후대에 태양왕이라 불린 루이14세가 사실은 군사와 행정 주도력의 결함뿐 아니라 전통적이고 경박한 신앙심으로, 제한된 능력의 소유자였던 루이14세는 결코 진정한 의미의 절대군주가 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루이 14세와 베르사유 궁정>을 읽다보면 이래 가지고 패권을 두고 수시로 갈등을 붙던 유럽대륙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인 것 같습니다.

 

왕과 왕족을 둘러싼 귀족들과 대신들의 암투 그리고 사랑노름들이 1부와 2부로 나뉘어 서술되고 있는 가운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할머니의 우상인 세비녜부인(1626~1696)이나, 역시 마르셀이 관심을 쏟던 연극과 관련하여 인용하곤 하는 희곡작가 라신(1639~1699)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생시몽은 세비녜부인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편안하고 선천적으로 우아하며 재치를 겸비한 그 여인은 대화를 통해 재치를 지니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치를 나누어주었다. 게다가 그녀는 매우 친절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결코 아는 척하는 법이 없었다.(86ㄸ쪽)” 한편 라신에 대하여는 “그보다 더 심오한 정신세계를 지난 사람도 더 정교하게 다듬어진 글을 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그는 전혀 시인답지 않았으며 예의바르고 겸손했다.(116쪽)”라고 적었습니다.

 

방대한 분량인데다가 루이14세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어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적어도 17세기 프랑스 궁정의 모습을 가늠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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