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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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빌미가 되어 시작한 고전읽기입니다. 안톤 체호프는 작가 이외에도 의사로서 그리고 사회활동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작품해설에서 소개된 것처럼, “전염병 방역과 빈민 구제 사업을 위해 분주하게 지역 사회를 돌아다니며 농민들의 실상을 접하게 된 체호프는 비참한 민중에 대한 연민과 무력한 지식인들에 대한 회의를 자신의 방식대로 그려냈다.(190쪽)”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죽음과 맞서 싸우는 환자들을 보면 생명에 대하여 많은 생각이 교차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유명작가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체호프 단편선>에 실린 ‘공포’나 ‘티푸스’에서 죽음에 대한 느낌이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연에서까지 말입니다. “강 위로 그리고 목초지 위로 안개가 피어올랐다. 우유처럼 희고 짙은 가느다란 안개 기둥이 물위에 비친 별빛을 덮는가 하면 버드나무 기지에 매달리기도 하면서 강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안개 기둥들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었다. 어떤 것들은 서로 껴안고 있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인사를 나누었고 어떤 것들은 수도사가 넓은 소맷자락에 감긴 손을 기도하듯 하늘로 치켜드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이 광경이 드미트리 페트로비치로 하여금 유령과 죽은 이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았다.(18쪽)” 이처럼 환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 유령이나 저승세계에서 소재를 취하는 이유를 작가는 ‘이해할 수 없으니까 무서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서운 것의 정체를 알고 나면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거울’과 ‘티푸스’에서는 급성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티푸스는 이에 의하여 전염되는 발진티푸스입니다. 당시만 해도 이를 옮기는 쥐를 잡고, 개인위생을 철저하게 하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손놓고 볼 수 없어 간병을 하다가 같이 감염되어 사망하는 불행한 일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티푸스환자를 돌보기 위하여 왕진을 다녀온 의사에게 왕진을 청하는 여인을 그리고 있는 ‘거울’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의 숙명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삼일 동안 전염병 지역에 있다 왔어요. 지쳤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병이 났어요.(128쪽)”라고 말하는 의사에게 그녀는 “하지만 선생님은 가야 돼요! 안 가곤 못 배길 거예요! 이건 이기주의라고요! 사람은 이웃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어야 돼요. 그런데도 선생님은… 선생님은 안 가시겠다는 겁니까! 선생님을 고발하겠어요.(129쪽)”라고 말합니다. 결국 따라나선 의사는 그녀의 집에 도착해서는 숨을 거두게 되고, 그녀는 다른 의사를 찾아나선다는 이야기입니다. 맞습니다. 그녀는 지독하게 이기주의적입니다. 환자를 돌볼 의사는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환자를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티푸스에 감염되어 앓는 동안 누이가 전염되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동물적인 기쁨이 우선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티푸스’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카차가 죽었다는) 무시무시한 뜻밖의 소식은 클리모프의 의식 속으로 온전하게 전달되었지만 그것이 아무리 무섭고 강력한 것일지라도 회복기의 중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동물적인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울며 웃었고, 이내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고 투정하기 시작했다.(158쪽)” 하지만 그의 동물적 감성은 이성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주일 쯤 지나 그는 심장이 찌그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잠시의 기쁨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책읽기에 대한 체호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내기’도 무척 인상적입니다. 사형과 종신형의 윤리성을 따지다가 15년간 외부로부터 유폐된 생활을 견디는데 200만 루블을 건 내기가 시작됩니다. 사형이 종신형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한 쪽에서 내건 돈입니다. 사형은 단번에 죽이지만 종신형은 천천히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내기에 나선 스물다섯의 젊은 변호사는 처음에는 가벼운 책읽기로 시작했다가 육년 반이 되었을 즈음부터 철학과 역사공부를 시작해서 4년동안 육백여권의 책을 읽어내고는 두껍지도 않은 복음서 한권을 들고 일년을 읽어내고서 다시 이년동안은 자연과학, 화학, 의학, 장편소설, 철학, 신학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섭렵하는 모습이 마치 “바다 위에 널린 난파선의 잔해들 속에서 헤엄치면서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무것에나 무턱대고 매달리는 한 인간을 연상시켰다.(140쪽)”라고 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15년을 채워서 내기에 이겼을까요? 체호프는 기막힌 반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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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6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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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존 스타인벡이 자신이 설계한 차로 4개월 동안 34개주를 돌아본 이야기를 정리한 <찰리와 함께 한 여행; http://blog.joins.com/yang412/13260454>을 읽었습니다. “미국에 관해서 글을 쓰는 미국 작가이지만 나는 실은 기억에만 의존해왔다. 그런데 기억이란 기껏해야 결점과 왜곡투성이의 밑천일 뿐이다. 참된 미국의 언어를 듣지 못하고 미국의 풀과 나무와 시궁창이 풍기는 진짜 냄새를 모르고, 그 산과 물, 또 일광의 빛깔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 그래서 나는 다시 내 눈으로 과연 이 거대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다시 발견해보리라 마음먹었다(13쪽).”라는 것이 미국일주여행에 나선 이유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을 여러 차례에 걸쳐 일주한 여행기록이 있습니다. 잭 케루악의 <길위에서>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샐 파라다이스는 운명적으로 딘 모리아티를 만나면서 길위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 내가 단순히 작가로서 새로운 경험이 필요했거나 교정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내 삶의 무기력함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딘을 더 알고 싶어진 것은 아니다. 얼마간의 성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20쪽) (…)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 여자, 미래, 그 모든 것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난 알고 있었다.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 내게 진주가 건네질 것이다.(22쪽)”

 

저자는 1951년 4월 2일에서부터 22일까지 벤제드린에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36미터에 달하는 길게 말려 있는 전신타자용지에 12만 5천 단어를 구두점도 없어 타자해 내려갔다고 합니다. 5부로 나누어진 이야기 가운데 1부에서 4부까지는 네 차례에 걸쳐 덴버, 샌프란시스코, 텍사스, 멕시코시티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미 대륙을 때로는 고물자동차를 운전해서, 혹은 버스로, 돈이 없으면 히치하이크로 종횡무진하는 흥미로운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부는 길위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모두 4편의 해제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평단의 주목을 받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읽다보면 즉흥적이다 못해 충동적이고, 여행에 나서는 이유도 뚜렷하지 않은 이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오리무중을 헤매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켜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젊어서 해보고 싶었지만 결코 실행에 옮기지 못한 향수같은 것 때문일까요? 히치하이크로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생각을 듣고, 딘과 만나면서 그의 친구들과 친해지는 과정을 보면 젊다는 것, 생각이 자유롭다는 것이 부럽기는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읽을 수 없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과, 약물, 복잡한 여자관계 등등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권할만한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 역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저처럼 생각하는 미국독자들도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자는 <길위에서>가 “내가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인데, 실제로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서 캘리포니아까지 히치하이킹을 하다가 길 위에서 방향을 잃고 다른 무언가를 희망하며 그 길을 쭉 되돌아오는 두 녀석에 관한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번역하신 이만식교수님께서 작품해설을 통하여 “<길위에서>는 미국인의 내면에 있는 선(善)을 발견하려는 여행의 기록”이라고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다음 구절이 저자가 읽는 이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을까요? “‘그래, 그래, 그래.’라고 말하며, 당장 그의 안에 굉장한 계시가 찾아올 듯해서, 나는 이제 곧 뭔가 터지리라 확신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이 찾아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다. 그는 ‘비트’ 그 자체였다.-비트적인 것의 뿌리이자 영혼이었다.(2권 34쪽)”

 

참고로 그 옛날에는 히치하이크하면 쉽게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는 범죄에 엮일 수도 있고,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있어 태워주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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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밀란 쿤데라 전집 14
밀란 쿤데라 지음, 한용택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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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전작 읽기의 마지막 작품은 에세이집입니다. <만남>을 번역하신 한영택교수님은 “몽테뉴 이래로 에세이라는 장르는 무엇보다도 자유로움과 가소성을 특징으로 한다. 다양한 재료를 버무려 하나의 작품을 빚어내는 에세이에서 영원히 발기 중인 우산과 제복을 만드는 제봉틀이 한 해부대 위에서 조우한다 한들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박성창외, 밀란 쿤데라 읽기, 174쪽)”고 적었습니다. 쿤데라가 “내 성찰가의, 내 추억과의, (실존적이고 미학적인) 내 오랜 주제와의, 내 오랜 사랑(라블레, 야나체크, 펠리니, 말라파르테…)과의 만남…”이라고 헌사에 적었듯이 <만남>은 주로 소설론을 중심으로 한 전작 에세이집 <소설의 기술>, <배신당한 유언들>, <커튼>들과는 달리 음악, 미술, 소설, 시, 영화, 오페라, 역사와 개인, 추방과 망명, 향수, 아이러니, 망각, 공포, 사랑, 키치, 참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화가의 난폭한 몸짓에서 작가는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과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와의 만남을 다루고 있습니다. “베이컨의 초상화는 ’자아‘의 한계에 대한 질문이다.(19쪽)”라고 정의한 작가는, 베이컨이 “회화에서는 언제나 관습적인 것들을 지나치게 많이 남기고 결코 충분히 제거하지 않지만, 베케트의 작품에서는 너무 많은 것들을 제거하려고 한 나머지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는 인상, 그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음이 공허한 울림을 일으킨다는 인상을 자주 받습니다.(20~21쪽)”라고 분명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컨이 베케트와 가깝다고 본다고 합니다.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그 점이 예술가의 판단이 흥미로운 이유다.(21쪽)”라는 것입니다.

 

쿤데라는 사람들이 베이컨의 그림에서 ‘공포’라는 단어를 떠올린다고 하지만, 자신은 두렵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베이컨의 어떤 그림에서도 아름다움이 결핍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들뢰즈 역시 “외양은 구상에만 해당될 따름이다. 벌써 형상은 죽지 않고 아직 살아남아 있는 구상의 관점에서만 괴물처럼 보인다. 우리가 이것을 ‘형상적으로’ 보자마자 괴물적이 되기를 멈춘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형상들은 그들이 채우고 있는 일상적인 업무에 따라, 그리고 그들이 직면한 순간적인 힘의 기능에 따라 가장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질 들뢰즈 지음, 감각의 논리, 173쪽; http://blog.joins.com/yang412/13157096)”라고 베이컨의 그림을 이해하고 있어 쿤데라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독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을 시작하지만, 이어서 도스토엡스키의 <백치>,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성(城)에서 성(城)으로>, 필립 로스의 <욕망의 교수>, 구드베르구르 베르스송의 <백조의 날개>, 마레크 비엔치크의 <트보르키>, 후안 고이티솔로의 <그리고 막이 내릴 때>, 그리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등에서 뽑아낸 나름대로의 독특한 주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백치>에서는 ‘희극성의 희극적 부재’가 꼬투리가 되는 웃음인데, 이 유머없는 웃음의 세계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트보르키>에서는 한쪽에서 일상성에서 재발견되고 가치가 회복되고 노래로 변한 순정적인 사랑을 발견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목을 맨 아가씨가 있는 이중성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만남>의 표지 그림에 관한 생각입니다. 민음사판 밀란 쿤데라 전집은 르네 마르리트의 작품을 표지그림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만남>의 표지는「아르곤의 전투」(The Battle of Argonne)를 쓰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에세이 ‘복합적인 만남처럼 아름다운’에서는 마침 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브를뢰르의 모든 그림에서 달은 초승달이고, 수평으로 놓였으며, 뾰족한 두 끝은 위를 향한다. 마치 밤의 물결 위에 떠 있는 곤돌라 같다. 화가의 상상력이 아니라, 마르티니크의 달이 실제 그렇다. 유럽에서는 초승달이 서 있다. 호전적이며 웅크리고 앉아 튀어 오를 준비가 된 사나운 작은 동물 같거나 아니면 완벽하게 날이 선 낫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유럽의 달, 그것은 전쟁의 달이다. 마르티니크에서는 달이 평화적이다.(149쪽)” 그런데 마그리트의 「아르곤의 전투」에 그려진 달은 그믐달입니다.

 

쿤데라가 에세이에서 다룬 작품들 대부분이 아직 읽지 못한 것들이라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들 작품을 읽은 다음에 다시 읽어보면 느낌이 다를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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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력서 - 오만불손한 지배자들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이정모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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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을 졸업하고 군경력까지 계산한다고 하면,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 아홉 번째 직장인 셈이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력서를 제출했다고 하더라도 아홉 번인데, 그 사이에 적지 않은 곳에 응모하느라 제출한 이력서가 적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력서를 보완하여 새롭게 작성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경력은 물론, 학회에서 발표한 초록목록, 논문 그리고 저서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추가할 일들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공식적인 기록은 초등학교 입학부터 정리하기 시작하기도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생물종 가운데 인간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력서에 담는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요? 가능하기는 할까요? 일단은 출생부터 적어야 하겠지요? 그래도 문자를 만들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고부터는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는 있겠다 싶지만, 그 이전의 시기는 아무래도 고고학에 의존하여 추정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대단한 일에 도전한 분이 독일언론인 볼프 슈나이더입니다. 그는 200만년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이력을 <인간이력서>라는 한권의 책으로 요약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저자는 지구에 남긴 최초의 가족사진이라 할 수 있는 세렝게티 변두리의 발자국 화석에서부터 불의 발견, 농업의 발명, 세계 최초의 도시 건설과 제국주의 시대, 산업혁명과 세계 대전을 거쳐 오늘날의 소비문화 확대에 이르기까지의 200만 년의 여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전쟁, 평화, 문명, 진화, 인권, 홀로코스트, 환경오염 등등 우리 ‘인간’에 대한 거의 모든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인간에 의해 쓰인 ‘인간 역사에 대한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요약하였습니다. 저자가 인간의 이력을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배경은 “혹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할 때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한 진단은 대부분 우울하다. 게다가 인간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성취하려 한다는 말은 결정타로 들린다.(12쪽)”라는 부분에서 읽히는데, 우울하게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한 인류가 유럽대륙으로 진출하여 자리를 잡게 되고, 산업혁명을 거쳐서 유럽의 제국주의가 신대륙으로 아시아로 그 세력을 확대해나가는 과정이나 철도, 비행기, 우주선 등 새로운 문명을 일구어나가는 과정을 유럽의 시각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럽문명에 영향을 미친 아시아문명은 그저 근대에 유럽의 침략을 받아 무너지는 모습만 보았다면 진정한 인류의 이력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저자는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이 알려지지 않은 지구를 돌아다니게 한 추동력은 무엇인가? 500년에 걸친 유럽의 세계지배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164쪽)’ 라는 의문을 던지고 ‘그것은 골드러시로 요약되는 원자재와 시장의 확보에다가 선교 강요 및 인종 우월주의’였다고 정리하고 있지만 그것을 비판하는 분위기는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력서는 냉정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5장까지는 인류의 출현에서부터 지금까지 발전해온 과정을 다루고 있다면, 6장과 7장은 과거를 비추어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량과 수자원 그리고 에너지 자원을 지금처럼 물쓰듯 쓰다가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석유자원의 미래와 관련하여 저자는 “지구자원은 남김없이 고갈될 것이다. 전쟁이 임박했고, 우리는 후손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바보들의 배에 함께 타고 있다.(317쪽)”고 적고 있습니다. 저자는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의 종말을 예방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우주적 재앙이나, 이성을 잃은 지도자에 의한 핵의 위험, 그리고 바이러스와 같은 생물학적 재앙을 막을 힘은 없다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저자처럼 인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한쪽의 견해에 몰입하다 보면 자칫 중심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매트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 http://blog.joins.com/yang412/11893963>를 읽어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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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쓴 후성유전학 - 21세기를 바꿀 새로운 유전학을 만나다
리처드 C. 프랜시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시공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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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어르신께서 암으로 진단받고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하나도 아니고 폐암과 위암이 같이 발견되었습니다. 게다가 폐암은 전이까지 되는 바람에 수술도 받지 못하고 항암치료만 받고 있습니다. 항암치료 초반에는 암이 줄어드는 듯 하더니 치료에 더 반응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처음 진단 받았을 때는 1년을 넘기실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만, 벌써 진단을 받으신 지가 1년하고도 4개월 정도 되었는데 여전히 건강하신 편입니다. 암들과 평화로운 동거가 이어지거나 시나브로 나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곤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리처드 C 프랜시스 박사의 <쉽게 쓴 후성유전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위키백과사전을 보면,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 epigenetics) 또는 후생유전학(後生遺傳學)은 DNA의 염기서열이 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유전자 발현의 조절인 후생유전적 유전자 발현 조절을 연구하는 유전학의 하위 학문이다. 이를 매개하는 분자적 수준의 이해는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CpG 염기서열 가운데 시토신 염기에 특이적으로 일어나는 DNA 메틸화와 히스톤의 변형에 의해 조절되는 크로마틴 구조의 변화에 두 가지의 기전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자수준에서 일어나는 유전현상을 연구하는 새로운 분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전문용어도 그렇고, 어려울 수 있는 주제임에도, 프랜시스박사는 제목 그대로 독자들이 ‘후성유전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토니브룩 대학에서 신경생물학과 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UC 버클리와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를 한 저자는 신경과학, 진화, 과학철학을 다루는 논문들을 발표해왔다고 하는데, 읽다보면 탄탄한 인문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씀드린 암과 관련하여, 후성유전학이 암치료에 혁명을 일으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서문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암세포에서는 많은 유전자가 정상적인 메틸 부착물을 잃어버린다. 달리 말해, 탈메틸화(demethylation)된다. 탈메틸화는 갖가지 비정상적인 유전자 활동을 일으키는데, 그중 하나는 세포의 마구잡이 증식이다. 어느 하나의 특정한 돌연변이가 아닐라 이런 전체적인 탈메틸화야말로 암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돌연변이와는 달리 후성유전적 변화는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8~9쪽)”

 

연구에 따르면 암세포의 유전자들은 메틸화 감소를 포함하여 메틸화 패턴이 독특하게 바뀌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로 정상상태에서 억제되던 유전자들이 활성화되는데, 종양억제 유전자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혈액암의 일종인 백혈병 세포에 후성유전적으로 개입하여 정상 백혈구처럼 행동하도록 한 연구로 뒷받침되는데, 주목할 점은 백혈병세포가 정상화된 다음에도 염색체 재배열 상태는 되돌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후성염색체의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발암물질들을 염색체의 이상을 일으키는 발암물질과 후성유전적 변화를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재분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후성유전적 변화는 가역적이기 때문입니다.

 

암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론은 암의 미세환경에 주목한 ‘조직기반 암이론’입니다. 이 이론에서는 암은 정상적인 세포간 상호작용이 망가진 결과, 즉 소통의 실패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소통은 거시(巨視)사회나 미시(微視)사회 모두에서 참으로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이 이론으로 탈메틸화처럼 암의 시작단계에서 발생하는 최초의 후성유전학적 변형이 일어나는 기전을 설명할 수 있으며, 암의 진행단계에서 발생하는 유전적, 후성유전학적 변형도 설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후성유전학적 개입을 통하여 악성 흑생종이나 유방암 세포들을 정상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어 암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후성유전학의 효과를 두고 저자는 성인(聖人) 다미앵신부의 기적을 재평가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벨기에 출신의 다미앵신부(1840-1889)는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하여 생을 바친 선교사로, 가반 도우즈의 <문둥이 성자 다미안; http://blog.joins.com/yang412/7569694>을 통해서 그의 삶을 읽고 감동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다미앵신부가 성인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감동적인 선교활동에 더하여 전이암을 앓던 오드리 토구치라는 하와이 여성이 그의 무덤에 가서 암을 치료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암이 싹 나았다는 기적 같은 일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암의 후성유전학적 관점, 특히 미세환경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다미앵신부를 성인으로 인정할 근거가 약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환자의 면역체계가 알맞은 순간에 환자의 구조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인데, 그렇다면 환자의 지극한 소망을 담은 기도가 그녀의 암세포를 둘러싼 미세환경을 바꾸어놓은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모든 암환자의 기도가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 터이니 말입니다.

 

요즘도 우리 주변에서 보면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암치료법을 비싼 값으로 파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에서는 암이 완치되었다고 주장하는 환자의 경험담을 입증자료로 내놓고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완치된 환자의 경험이 틀렸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몇 건의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치료효과를 나타냈는지 몰라도, 누구에게나 치료효과를 나타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치료법을 파는 것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완치된 사례는 후성유전학적 관점에서 오비이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 책에서 발견한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는 유전법칙을 발견한 멘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http://blog.joins.com/yang412/13275612>에서 오늘날 멘델이 유전학의 시조로 알려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자연과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의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베이트슨이 멘델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멘델이 독일어로 애매하게 표현된 내용을 모두 명료한 언어로 바꾸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습니다만, 멘델이 교배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통계값을 일부 조정했다는 의혹을 읽은 기억도 있습니다. 프랜시스 박사는 과학실험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극단값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꽤나 다른 변이는 진지하게 고려했지만, 살짝 다른 변이는 오차범위 안이라고 간주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라이트는 설명되지 않는 변이를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유전자와 유전자 작용에 관한 그의 견해는 고전 유전학의 주류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다.(131쪽)” 슈얼 라이트박사는 유전자의 효과와 발생과정에서 무작위적 사건들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 것인데, 그의 독특한 발상이 후성유전학의 기틀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만에 관한 이야기를 마지막 화제로 올려보겠습니다. 요즈음은 다소 뚱뚱한 편인 저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만 해도 말라깽이였습니다. 아무래도 먹는 것보다는 활동량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살이 찌게 된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리면서도, 두 아이들은 저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말랐던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궁금증을 설명하는 연구가 바로 네덜란드의 기근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환경이 유전자에 영향을 어떻게 미치는가 하는 문제를 논하기 위하여 저자가 인용한 사례는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독일군의 통제작전으로 식량공급이 끊겨 2만 2천 명이 사망한 네덜란드 서부의 끔찍한 기아사태입니다. 네덜란드의 기근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시작된 날짜와 끝난 날짜가 정확하게 밝혀져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 기간 동안 모든 시민들의 건강기록을 꼼꼼하게 작성하여 보관해두었다는 점에서 비만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이 비극적 기근이 산모의 영양이 태아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근 중에 태어난 아이들은 기근 전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몸무게가 상당히 덜 나갔는데, 놀랍게도 임신 중기와 후기에 기근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은 기근 전이나 후에 태어난 사람들에 비해 청년기에 비만율이 무려 2배에 달했고, 정신분열증이나 우울증과 같은 정동장애의 발병률도 더 높았다고 합니다. 바로 외부 환경이 우리의 유전자 활동을 조정함으로써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유전자활동을 조사해본다면 영양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들의 활성에 변화가 생긴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렇다면 비만을 치료하는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덜란드 기근의 ‘할머니 효과’가 후성 유전적 유전 여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아닌가 봅니다만, 저와 제 아이들의 경우를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임스 바커가 주장한 절약 표현형 가설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절약 표현형 가설이란 태아가 태반을 통해서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태내에서 절약 표현형을 갖도록 프로그램밍된다는 것인데 출생 후가 출생 전에 비하여 식량이 풍족하게 되면 절약표현형이 비만을 유발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그에 따른 여파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유명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외부환경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우선 뇌의 시상하부에서 시작하는 호르몬분비의 연쇄가 이어지면서 우리 몸은 회피할 것인지 싸울 것인지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식은 개인적인 편차가 크다고 합니다. 저자는 스트레스에 대한 개인적 편차를 설명하기 위하여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디어헌터>의 줄거리를 비교적 상세하게 요약하고, 등장인물 세 명의 반응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된 두어 해가 지난 다음에 개념이 정리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roder; PTSD)는 심각한 외상을 보거나 직접 겪은 후에 나타나는 불안장애를 의미하는데, 영화 <디어헌터>에서처럼 베트남 전쟁 참전군인의 30%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PTSD는 비만처럼 어머니의 경험이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여성이나 세계무역센터 붕괴를 직접 경험한 여성들의 자녀에서 특히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즉 이런 사건을 겪은 여성들 가운데 많은 수가 PTSD를 경험했는데, 당시 임신한 상태였던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은 고양된 스트레스 반응과 과다 반응성 스트레스축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어머니가 PTSD를 겪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여 앞으로 불안증, 우울증, 심지어는 PTSD에 더 취약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우선 독자들에게 후성유전학이라는 새롭고 흥분되는 과학분야를 쉽게 소개하기 위하여 우선 중요한 포인트를 중심으로 요약하였다고 하는데, 첫째, 후성유전적 과정의 속성에 관한 것, 둘째, 우리 환경이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우리 유전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셋째, 후성유전적 과정에도 무작위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후성유적 유전자 행동 변화 중에는 개체의 수명을 넘어서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는 앞선 네 가지 주제를 통합하는 메타주제로서 단백질 합성에서 세포 분화, 암까지 다양한 생물학적 과정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유전자의 역할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 등입니다.

 

유전학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학문을 소개하려다 보니 아무래도 용어나 개념에서 다소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다양한 소재를 인용하여 쉽게 설명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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