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우르줄라 포츠난스키 지음, 안상임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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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 들어본 것 같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도 지오캐싱을 즐기는 분들이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면 선생님들께서 감추어 놓으신 물건들을 찾는 보물찾기를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눈치가 없었던 탓인지 대개는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오캐싱은 일종의 보물찾기 같은 것인가 봅니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지오캐싱(geocaching)은 GPS 수신기나 다른 항법 장치를 이용해서 ‘캐시(cache)’라고 불리는 용기를 숨기거나 찾는 야외 활동”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보통의 캐시는 작고 방수가 되는 상자 안에 지오캐싱을 즐기는 이들이 그것을 찾은 날짜를 기록하는 ‘로그북(logbook)’이 들어있고, 의미있는 물건을 감추기도 하는데, 캐셔들은 그 물건을 교환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캐시는 남극을 포함해서 현재 7개 대륙, 100여개의 나라에 위치해있고 500만명의 캐셔가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캐셔들은 캐시를 찾은 정보를 웹사이트에 업데이트를 하여 정보를 공유하는데, 현재 다양한 웹사이트에 130만여 개의 지오캐시가 등록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오캐싱을 소재로 이야기를 펼쳐가는 독특한 수사물을 읽었습니다. 독일 추리작가 우르줄라 포츠난스키가 처음 발표한 본격 성인물 추리소설 <파이브>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무대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뒤쫓는 베아트리체와 플로린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범인은 캐시를 통하여 사건을 추리할 단서를 제공하는 한편 다음 캐시가 숨겨져 있는 좌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타임슬립을 기조로 하여 딸의 유괴와 죽음을 막기 위한 처절한 모정을 그린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빠른 장면전환과 미스터리한 사건의 전개에 관심을 쏟게 만들었지만, 주인공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어들이는 곁가지가 많아 헷갈리는데다가 유괴사건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들을 무수하게 배치하여 등장인물 모두를 용의자로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바람에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즉 사건이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인데, <파이브>는 연쇄살인사건인 만큼 사건이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어지는 살인사건의 희생자들을 이어주는 연관성이 쉽게 드러나지 않아서 용의자가 누구인지 가늠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단서라도 드러나면 주의를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긴박감을 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희생자는 홍보회사에 다니는 여성 노라 파펜베르크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좌표에 대한 단서는 놀랍게도 죽은 노라의 필적으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곳곳에 사건과 관련된 힌트를 남기고 있었다는 것을 다 읽은 다음에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캐시에 담긴 쪽지에 남긴 지오캐시 용어도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면 TFTH는 ‘찾아 줘서 고마워’라고 해석하는 Thanks for the hunt를 줄인 지오캐시 용어라고 합니다. (독일작가인데 영어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런데 범인은 왜 ‘찾아줘서 고마워’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범인은 한번은 베아트리체와 만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베아트리체가 젊은 시절 겪었던 끔찍한 사건에 관한 일을 잘 알고 있는데,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베아트리체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노라의 사체에 남긴 좌표에서 발견한 것은 두 번째 희생자의 신체의 일부와 다음 좌표에 대한 정보인데, 다음 좌표에서도 역시 두 번째 희생자의 신체의 일부가 담겨져 있으며, 때로는 수사팀이 다음 희생자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기도 전에 살인이 벌어져 예고된 좌표에서 사체가 발견되기도 하는 등,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캐시에 담긴 쪽지에는 다음 희생자를 지목하는 정보가 담기기도 하는데 구체적이지 못하고 단편적이어서 대상자를 찾아내는 것만도 쉽지가 않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찾아낸 대상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희생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수사팀을 통해서 희생자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얻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보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체의 이야기는 베아트리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때로는 희생자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범인이 아주 짧게 화자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두 주 사이에 다섯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연쇄살인사건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줄만한 것인데도, 사회적 반향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범인은 현장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면 용의선상에 올려놓을만한 등장인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좌표찾기 때문인지 별로 주의를 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예고되었던 것처럼 베아트리체가 범인과 만나게 되면서 범행의 동기와 희생자들과 범인을 잇는 연결고리 등,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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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건축이다 - 인간이 만든 최고의 아름다움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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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하루 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 동안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한 해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새 집을 짓고,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해야 한다.”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라는 이야기는 차를 사라는 말로 바뀌기도 한다는데, 이 구절은 아마도 여행을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 달에는 여행사 상품을 이용해서 동남아를 다녀왔습니다. 한 달 간 행복했느냐구요?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행으로 생긴 일상과 업무의 공백을 메우느라고 시간에 쫓겼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여행에서 얻은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역시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는 여행을 꿈꾸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에는 스페인을 다녀올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꽃보다 할배>를 시청하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있어 정작 여행지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은 소홀하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언제부터인가 ‘산티아고 가는 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말을 이용해서 아내와 함께 걷기에 좋은 길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 무렵 읽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http://blog.joins.com/yang412/13056408>와 정진홍교수님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http://blog.joins.com/yang412/13050186>는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꿈을 부풀리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의 길)’를 직접 걸으면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 <순례자>는 코엘료를 세계적인 작가의 길로 안내했을 뿐만 아니라,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산티아고의 길을 걸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을 내는 일 같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40일이 넘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가을에 일단 스페인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최근에 다산북스의 북카페 ‘나나흰(백석의 시, ‘나와 니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딴 이름이라고 하는군요.)’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첫 번째 오프라인 만남에서 <스페인은 건축이다>를 쓰신 김희곤교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홍대 앞에 있는 카페 나나흰에 나갔습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동안(童顔)의 김교수님은 마흔 셋에 떠난 스페인 유학길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페인에 대한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바람에 정작 자신의 책에 관한 홍보(?)는 별로 하지 못하셨습니다. 수첩을 꺼내들고 강의내용을 열심히 적은 다른 참석자들과는 달리 핵심이 될 한 구절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저는 그저 열심히 듣기만 했습니다.

 

우리나라 건축가들 가운데는 처음으로 스페인 건축을 공부하러 가셨다는 김교수님은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건축대학교에서 복원 및 재생건축을 전공하셨다고 합니다. “스페인 건축은 나에게 인생의 집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영혼의 집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 것인지 알려주었다”라고 유학의 결과를 요약하시는데, 이날은 스페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생각들이 자신을 사로잡더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시각에서 생각해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 끝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에서 온 마흔 셋이라는 늙은 이방인이 서먹하기만 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은 저자를 그들의 생활에 끼어주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스페인 사람들은 분명 틀에 박히지 않고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진 넉넉한 사람들이다 싶었습니다.

 

13년 전에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바미안 석불을 폭파시켜 인류의 공분(公憤)을 산 적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인류가 남긴 찬란한 문화유적이 무상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스러지기도 했지만 전쟁의 와중에서 파괴된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지난달에 찾았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에 새겨진 조각들이 곳곳에서 파괴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침략자들이 앙코르제국을 건설한 강력한 크메르종족의 정신적 지주를 없애기 위하여 저지른 짓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족의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혹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행되어온 이러한 파괴행위는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되고만 탈레반 정권의 만행을 인용하는 것은 이베리아 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정신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4월 1일 태안에서 진도 5.1의 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만, 지진은 상부맨틀 위에 얹혀 있는 암석권의 판들이 서로 충돌하여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슬람문화와 기독교 문화는 곳곳에서 충돌을 빚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문화로 대표되는 유럽문명과 서아시아에서 시작해서 아프리카로 퍼진 이슬람문명은 오랜 세월에 걸쳐 보스포러스 해협과 지브롤터 해협이라는 미묘한 지정학적 접점을 통하여 만나왔던 것입니다. 접점의 양편에 있는 세력들의 힘의 크기에 따라서 반응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한쪽의 힘이 강대하다면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마련이겠고, 양쪽의 힘이 팽팽하다면 강한 스파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로마의 멸망 이후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세력이 8세기동안에 걸쳐 지배하게 되었고, 이들을 축출하기 위한 스페인 기독교도들의 끈질긴 투쟁이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종족간의 접촉은 물리적 투쟁의 기록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화학적 작용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 있는 건축양식의 특징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8세기에 이르는 긴 시간동안 스페인을 지배한 이슬람은 스페인만의 고유한 무데하르양식을 선물하였다. 이슬람의 지문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 깊이 배인 매혹적인 건축공간은 빛과 바람과 물과 기하학적인 조각이 어우러진 이슬람 건축의 진수다. 왕국이 시대의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스페인 건축은 다양한 문화의 향기로 더 깊게 숙성되었다. 전기 로마네스크양식에서 이슬람 왕국 아래 기독교도들이 발전시킨 모바사베양식과 기독교 왕국 아래 이슬람 건축을 계승 발전시킨 무데하르양식은 스페인만의 독창적인 건축문화를 형성하였다.(7쪽)”

 

저자의 글을 길게 인용한 것은 저자의 유려한 글솜씨를 독자들과 같이 느껴보기 위해서입니다. 전문가의 글을 읽다보면 딱딱한 문체에 전문 용어가 곳곳에서 튀어나와 읽는 흐름이 깨지기 일쑤입니다만, <스페인은 건축이다>에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단숨에 읽어낼 수 있습니다. 마드리드의 부엔 레티로공원을 설명하는 부분을 더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광장이 끝나면 마사토 흙길이 아래로 허리를 누이며 아련하게 숲속의 터널을 연출한다. 레티로의 매력은 기하학으로 물든 디자인의 선형을 지워버리는 자연의 생명력에 있다. 좌측에 유리궁전을 끼고 조금 더 남쪽으로 숲길을 헤쳐 내려가면 장미정원이 반갑게 인사한다. 자연과 인공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장미정원은 지조와 품격으로 다져진 어머니의 미소가 번지는 곳이다.(41쪽)”

 

저자의 매력적인 글솜씨를 전하려다 보니 꼭 전해야 할 메시지를 건너뛰고 말았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더하여, 그러한 결과물들이 오늘날에도 볼 수 있도록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열려있는 마음과 넉넉한 마음씀씀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는 점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이슬람과 가톨릭의 혼합되어 있는 코르도바 메스키타에 대한 설명에서 느낀 생각입니다. 785년 건축이 시작된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로마인과 서고트인들이 세웠던 교회에 지은 이슬람 사원인데, 메카의 사원양식을 고집하지 않고 교회의 주춧돌과 기둥, 건축양식까지 고스란히 이용하여 전형적인 교회 평면구조의 회교사원인 새로운 칼리프양식을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1236년 코르도바가 다시 기독교도들의 지배에 들어간 뒤로, 1523년에 이르러 메스키타의 한가운데 기둥 4줄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대성당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 지붕 아래 두 종교가 동거하는 건물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한 카롤로스 국왕은 대주교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대가 만든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그대가 파손한 것은 이곳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다.(143쪽)”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가 파괴되지 않고 온전하게 남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건축의 등불; http://blog.joins.com/yang412/13284036>에서 존 러스킨이 강조한 것처럼, 건축은 기억의 요체이자 수호자로 진지하게 생각되어야 할 것이므로 ‘오늘날의 건축이 역사가 되도록 하는 것’과 ‘지나간 시대의 건축을 가장 귀중한 유산으로서 보존하는 것’이라는 의무를 인류는 잘 인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건축가는 필요한 기능에 맞추어 공간을 설계하고 외피를 장식하는 기능인이 아니다. 건축가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와 그 시대의 트렌드를 이해하고 과거, 현재, 미래로 성장하는 살아 있는 공간을 제안하는 발명가다.(49쪽)”라고 한 저자의 말씀과 러스킨이 말하고 있는 건축가의 의무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이 집을 만들고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집이 사람을 키우고 살찌우는 것이다.(45쪽)”라고 저자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를 키우고 살찌우는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선조들은 이것저것을 따져가며 집터를 잡았다고 하는데, 막상 저는 살고 있는 집을 고를 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톨레도를 보지 않았다면 스페인을 본 것이 아니라는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스페인에 가면 꼭 톨레도에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탁월한 조각품이며 길과 언덕과 강과 성벽과 집과 성당이 조화를 이룬 공간으로, 누구라도 톨레도의 거리를 걷는 순간 대지와 영혼의 일체감으로 도시의 일부가 되어버린다.(70쪽)”라고 하신 저자의 말씀을 제대로 느껴보아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스페인의 미술관들을 소개하는 최경화님의 <스페인 미술관 산책; http://blog.joins.com/yang412/13205419>편에서는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바르셀로나에 흩어져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바르셀로나에서만 나타난 모데르니스모 사조(思潮)를 반영한 건축물들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사진이 곁들여진 이들 건축물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스페인은 건축이다>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 건축물들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건축물이 도시 전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도 지면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숲을 보되 나무를 보지 못하거나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건축물로 가득 찬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선 그 도시에서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축제를 즐겨봐야 한다. 마드리드의 펄떡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축제밖에 없다. 마드리드의 모든 축제는 마요르 광장에서 시작된다.(32쪽)”라는 구절을 읽다보면, 저자의 생각이 건축물을 넘어 그 지역의 문화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숭례문의 복원과 관련한 불협화음이 이어지는 탓인지 “복원은 건물에 가해질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파괴를 의미한다. (…) 건축에서 언젠가 위대하고 아름다웠던 것을 복구하는 것은 마치 죽은 자를 깨우는 것처럼, 불가능하다.”(존 러스킨 지음, 건축의 일곱 등불, 249쪽)라는 건축물의 복원에 대한 존 러스킨의 부정적인 견해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원을 전공하신 김교수님은 “복원은 말 그대로 원래 건축물의 구조와 재로와 마감을 있는 그대로 현대적인 기술과 공법으로 그림자처럼 살려내는 것이다.(105쪽)”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러스킨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점에 관하여 설명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페인에 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는 김희곤교수님의 <스페인은 건축이다>와 최경화님의 <스페인 미술관 산책>에서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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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일주일 심리학 3부작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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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 동안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한 달, 한 해, 그리고 평생 행복하려면 어떻게 하라는 말로 이어지는데, 상황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평생을 행복하려면 정직하라거나, 채소밭을 일구라거나, 정원사가 되라는 등의 답을 내놓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평생을 행복하기 위한 부분을 제외하면 행복의 유효기간을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평생 행복하려면 일주일 마다 결혼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평생을 행복하기 위해서는 정직한 삶이 답이 되는 것 같습니다만, 그것은 삶의 원칙을 이르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사람의 삶이 그저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적은 책을 읽었습니다. 지난 해 <눈치 보는 나, 착각하는 너; http://blog.joins.com/yang412/13048319>를 통하여 다양한 사회심리학 연구들을 종합하여 ‘너와 내가 만나 좋은 우리가 되는 비결’을 소개했던 박진영님의 신작 <심리학 일주일>입니다. 저자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갈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심한 현대인의 삶 가운데에서(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감정의 기복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삶을 일주일 단위로 쪼개본 것입니다.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일정한 사이클의 삶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물론 하루 단위로 더 잘게 쪼갤 수도 있겠고, 한 달 단위로 길게 쪼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평생을 행복하기 위하여 정직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본 결과 많은 직장인의 삶이 일주일 단위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심리학적 연구들을 소개하여 일주일을 보내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 것인지 정리해보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들 가운데 틀린 것들도 있다는 점도 새겨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월요일은 새로운 한 주일이 시작되는 날, 주말 휴식으로 풀어놓았던 긴장의 끈을 다시 당겨야 하는 심리적 부담이 가장 큰 하루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화요일에는 폭증하는 스트레스로 정신이 혼미해질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몰리다 보면 수요일에는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목요일에는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당연히 금요일에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주말을 맞게 되는 것인데, 토요일에는 행복을 찾는 여행이 되고, 일요일에는 그렇게 찾은 행복을 구체적으로 다지는 하루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는 글에서 저자는 평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앞에 제가 요약해본 일주일의 사이클을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월요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충분한 휴식과 당 보충이 필요하다. 느슨해진 정신줄을 꽉 붙드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 편견, 스트레스처럼 내 정신력을 흩뜨리는 요소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화요일에는 본격적으로 일을 잘해내기 위해 에너지 소모가 적고 효과적인 자기통제 방법들과 간단한 동기부여방법들을 이야기했다. 수요일에는 높디높은 목표와 무조건적인 긍정적 사고 등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라온 지침들이 정말 바람직한지, 그리고 좋은 목표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목요일에는 불현듯 우리를 찾아오는 슬럼프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삶의 의미 다지기)과, 삶의 의미와 행복은 별개가 아님을 알아보았다. 금요일에는 자존감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며 자존감을 추구하는 방법이 건강한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건강한 자존감을 갖기 위해 엄청남 스펙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285쪽)”

 

실제 삶에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정보를 적지 않게 담고 있는데, 최근 입원하고 계신 어머니께 도움이 될 내용이 눈을 끌었습니다. “극단적인 케이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건사고가 우리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보통 두 달을 넘기지 않는다. 심지어 큰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된 사람들도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사고를 당하지 않은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의 행복도를 회복한다.(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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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 당당한 나를 위한 관계의 심리학
크리스토프 앙드레 & 파트릭 레제롱 지음, 유정애 옮김 / 민음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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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국제학회에 참석해서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온 연자가 발표하는 새로운 검사법을 듣다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 질문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다 보니 질문할 시간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라도 찾아서 물어보았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질문내용이 빨리 영어로 정리되지 못한 점하고, 질문하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손을 들고 질문을 하려니 공연히 심장이 쿵쾅거리는 바람에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도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만, 처음 학회에서 데뷔를 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를 하는 바람에 지켜보던 의국원들이 가슴을 졸였다고 했습니다. 요즈음에도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쉽지 많은 않습니다만, 이젠 듣는 사람들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배짱이 생겨서인지 여유를 부리는 편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고민을 해 본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정신과의사이면서 심리치료를 전공하는 크리스토프 앙드레가 이런 고민을 하시는 분들을 위한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를 새롭게 개정해서 내놓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열 여덟권의 책을 저술한 저자의 첫 번째 책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서 “사회 불안의 원인과 구조를 설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모든 개인이 타인과 잘 어울리고 잘 살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로 가득 찬 곳에 혼자서 들어서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앉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려야 하는 순간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서고 싶은 심정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시선이 불편한 상황을 심리학에서는 사회불안이라고 부르는데, 대체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 범주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1.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무완수하기, 2. 비공식적이고 피상적인 대화하기, 3. 의견을 제시하고 자신의 관점을 관철하기, 4. 일상적인 행동이 관찰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등입니다. 이들 상황을 빈도에 따라서 서열을 정해보면 4번으로 갈수록 빈도가 높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불편한 상황에 처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불안한 느낌이 들면 사람들은 우선 몸이 반응을 한다고 합니다. 두근거림이나 복부장애처럼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반응도 있지만, 목이 메거나, 떨리거나, 식은땀을 흘리거나 얼굴이 빨게 지기도 합니다. 이런 반응들은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그리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지기 마련입니다.

 

사회불안을 그 정도와 지속시간에 따라서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무대공포증과 일시적인 불안은 정상적인 사회불안의 형태이며, 수줍음은 일반화된 형태로서 병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존재 방식으로 뒤로 물러나 있는 내면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공포증은 존재를 마비시키는 진정한 정신질환으로 심각한 고통과 불편을 야기하며, 회피성 인격장애는 타인의 시선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가진 잘못된 삶의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병적상태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입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사회불안이 생기는 원인을 분석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들을 분석하여 적절하게 대응하게 되는데, 사회공포증 환자들은 대체적으로 불확실한 사회적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부정적인 사회적 상황을 파국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177-8쪽) 특히 자의식이 강하여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서 흔히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 근본적으로는 다양한 영역에 흩어져 있는 요인들이 작용한다고 합니다. 흔히 유전적 소인이라고도 하는 생물학적 요인들이나, 개인이 살아온 경험이 바탕이 되는 정신역학적 요인들이나,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사회적 요인들이 서로 복잡하게 작용하여 증상의 정도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치료에 관하여, 저자는 ‘치료가 필요할까?’라는 생각보다도 ‘언제부터 도와야 할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는데, 첫 번째 단계에서는 개인적으로 몇 가지 문제를 없애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다양한 치료법 가운데 대상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며, 세 번째 단계에서는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치료법들은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것들이라고 하니 사회불안 증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면 큰 도움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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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처럼 자유롭다
최인호 글.사진 / 프라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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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님의 릴레이 이벤트에서 최갑수님의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 http://blog.joins.com/yang412/13378542>와 함께 받은 여행 에세이입니다. 그리고 보니 두 작가분이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배낭여행가라는 점, 그리고 여행지를 고르는데 있어 특별한 이유나 목표가 있어서 고르지 않은 것 같다는 점, 그리고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점 등입니다. 그런 점에서 닮은 두 분의 책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최갑수님의 작품들은 사진이 많고, 어떤 작품에서는 사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이 특징인데, 최인호님의 경우는 사진은 그야말로 면피할 정도에 그치는 대신, 여행지에서 겪는 에피소드들 가운데 저자의 느낌과 인상을 시, 소설, 전기, 노래, 영화,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읽을거리에서 뽑인 구절들을 버무려 인문학적 코드로 풀어내고 있어 차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저자들이 모두 읽는 사람들에게 여행을 강권(?)하고 있다는 점도 꼭 같습니다. “떠나라. 당신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권태와 우울함에 저항할 수 있는 ‘여행자’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빠르게 늙어갈 것이다. 지독하게 부패할 것이다. 그리고 소리 없이 죽어갈 것이다. 우울함 속에서, 권태로움 속에서, 뒤늦은 후회 속에서.(9쪽)”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단지 여행을 꿈꿀 뿐 떠나지 못하더라도 그저 살아내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 역시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자랑(?)하고 있군요. 여행준비는 이틀을 넘기지 않는데, 여행이 지식을 쌓는 철학적 모험이 아니고 고흐의 그림이나 고대 건축양식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도 아니라, 일상과 다른 것, 그것이 무엇이든 낯섦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과의 짜릿한 만남을 즐기고 헤어짐의 아쉬움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저자와 같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20년간 40여개국을 바람처럼 떠돌았다고 합니다. 그 여행지들 가운데 떠나고, 보고, 머물고, 만나고, 이동하고, 먹고, 돌아오는 것을 주제로 하여, 스페인의 바로셀로나와 빰쁠로나, 인도의 델리, 타지마할, 바라나시 그리고 자이쁘르 행 기차, 프랑스의 파리와 리옹외곽,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페루의 마추픽추, 이집트의 사막과 티베트 히말라야, 스위스의 인터라켄 그리고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등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적고 있습니다.

 

누구나 여행을 떠날 때는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저자의 무의식적 충동에 의한 출발은 살면서 수많은 관계의 끈에 묶여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관계의 끈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여행이란 대안을 마련한 것으로 보면, 저자 역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하여 여행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사가 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면으로 부딪혀 승부를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 역시 이점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일탈을 꿈꾸면서도 잠시 외면했던 현실이 돌아온 자신을 변함없이 반겨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떠났던 것 같습니다만,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놀랍게도 저자 역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해서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자거나 배고프면 닭요리를 실컷 해먹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고백을 읽으면서 이래도 되는 것인지 헷갈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다페스트의 차분하게 가라앉은 도시의 분위기와 한눈이라도 팔면 굴러 떨어질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이라도 만나러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숙소를 어디에 정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와인과 맥주 그리고 과자부스러기를 들고 겔레르트 언덕으로 마시러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또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길거리를 걸으며 술을 마신다는 것은 일상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역시 외국에서도 상상에 그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진을 감상하는 것과는 다른 여행과 관련된 아니면 삶과 관련된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저자의 사유를 읽으면서 공감할 점을 찾는 읽기가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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