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 다람쥐 율리시스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K.G. 캠벨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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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서울에서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어벤져스2>를 촬영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미 초능력을 가진 영화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헐크, 호크아이, 블랙 위도우 등의 슈퍼히어로들이 S.H.I.E.L.D.의 국장 닉 퓨리의 주도 하에 팀으로 뭉쳐 로키와 치타우리 종족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2012년 주목받았던 <어벤져스>의 후속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이런 슈퍼히어로는 우연한 사고를 통해서 혹은 선천적으로 초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그러한 초능력을 타인의 행복을 위하여 사용한다는 점에서 악당들과 차별되고,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에 소품으로 등장하여 주목을 받았던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http://blog.joins.com/yang412/13321642>의 작가 케이트 디카밀로의 신작동화 <초능력 다람쥐 율리시스>는 바로 사고로 초능력을 얻게 된 다람쥐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벌이는 특별한 활동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초능력을 가진 다람쥐가 주인공인 셈입니다.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플로라는 로맨스 소설을 쓰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만, 오히려 이혼한 아버지와 의기투합하는 냉소적인 소녀입니다. 플로라의 이웃에는 틱햄씨네가 살고 있는데,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날 마침 투티부인의 종손자 알프레드 슬리퍼가 집에 와 있어 이야기에 끼어들게 됩니다. 알프레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재혼한 어머니와 불화를 일으켜 종조할머니집에 와있는 것이었는데, 일시적인 충격으로 인하여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플로라네 집과 틱햄씨네 집 그리고 아빠와 함께 갔던 도우넛 가게에서 소란이 생기는 바람에 찾아가게 되는 블런더미이센 출신의 미이스챔박사의 집이 주요 무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건은 틱햄씨가 아내의 생일날 선물한 강력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간 다람쥐가 그만 죽고 말았는데, 플로라의 심폐소생술로 살아나면서 청소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시를 쓰는 초능력을 얻게 됩니다. 평소 엄마가 질색하는 ‘놀라운 인캔데스토의 번뜩이는 모험’이나 ‘당신에게도 터질 수 있는 끔찍한 일들!’과 같은 만화에 심취해 있는 플로라에게는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플로라는 초능력을 얻게 된 다람쥐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데, 마침 딸을 만나러 온 남편에게 다람쥐를 죽여서 땅에 묻어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슈퍼히어로 이야기에 없어서는 안될 악당역을 엄마가 하게 되는 셈입니다.

 

다람쥐를 데리고 아빠를 따라나선 플로라와 알프레드 그리고 아빠는 일단 도넛을 먹기로 하는데, 도넛가게의 여종업원이 다람쥐를 발견하면서 소란을 빚게 되고 결국은 미이스챔박사의 상담을 받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야기의 얼개를 뜯어보면 플로라의 가족이나 알프레드의 가족은 가족 구성원들이 갈등을 빚고 있어 누군가의 중재가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들 가족이 안고 있는 문제가 조금씩 정체가 드러나고, 율리시스와 미이스챔박사의 적절한 중재로 문제를 해결할 고리를 찾아내게 된다는 해피앤딩으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플로라의 어머니는 “나는 평범했으면 좋겠어. 나는 명랑한 딸을 갖고 싶어. 친구들을 사귀는건 좋은데 다람쥐를 친구로 두는건 싫어. 나는 내 딸이 사랑받지도 못하고 체상의 외톨이가 되어 버리는 거 싫어.(235쪽)”라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플로라는 좋은 쪽으로 별난 아이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잔소리가 많아지고 그런 딸을 두둔하는 남편과도 사이가 점점 벌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지나친 사랑은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시 저 자신도 그런 점은 없는 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플로라가 좋아하는 만화와 재미있는 삽화가 눈길을 붙드는 바람에 잠시 쉬어가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책읽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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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양심을 밝히는 길 살림지식총서 453
윤홍식 지음 / 살림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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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논어; http://blog.joins.com/yang412/3310591>를 읽었습니다. 그때 저자이신 심경호교수님께서 “우리는 왜 『논어』를 읽는가?”라는 질문에 “나를 세우고 남을 열어 주며 세상을 밝힌다”라고 답하신 것을 보고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남습니다. 동양고전은 해석하시는 분의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논어를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윤홍식선생님의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저자는 지금의 시대를 한 마디로 평가해서 ‘양심이 땅에 떨어진 시대’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물질문명을 추구하게 되면서, 양심과 도덕성을 근간으로 하는 정신문명에 대한 관심이 엷어진 탓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 처방으로는 인간이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양심의 계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 시점에서 우리가 <논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항 추읍에서 태어난 공자의 이름은 구(丘)인데, 공자의 조상은 은나라 황실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나는 본래 은나라 사람이다.”라고 하셨다는데, 은나라는 고조선과 모두 같은 조상을 둔 동이족의 나라라고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구이에 살고자 하셨다는데, 후한시대 학자 허신(30-124)은 『설문해자(說文解字 』 이렇게 적었다고 했습니다. “東夷從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故公子曰導不行 吾欲之君子不死之國九夷 乘桴  浮于海 有以也[‘동이’는 ‘大(대)’자를 따랐으니 ‘大’는 ‘사람’을 뜻한다. 동이의 풍속은 인자하다. 인자한 사람은 오래 사는 법이니, ‘군자들이 죽지 않는 나라’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중국에서)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인 구이에 가고 싶다.’라 하시고,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려고 하셨으니 참으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15쪽)] 공자께서 추구하신 인(仁)은 고조선의 핵심 사상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고 합니다.

 

현재 중국학계는 요하 지역에 위치한 홍산문화(紅山文化)를 중국문화의 원형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하는데, 기원전 4,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홍산문화의 주체는 동이족이라는 것입니다. 동이족이 꽃피운 홍산문화의 한 갈래가 요순을 거쳐 은나라로 이어지며 중국으로 퍼졌다는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我學不厭 而敎不倦也[나는 다만 진리를 배움에 싫증내지 않고, 진리를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았을 뿐이다. 『맹자』「공손추(상)」]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고생해서 얻은 진리를 남과 공유할수록 가치가 커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즉 서로 얻어낸 정보를 나누는 사회야말로 공자가 꿈꾸는 이상사회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정보화사회의 롤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양심계발과 관련하여 저자는 사랑(仁), 정의(義), 예절(禮), 지혜(智), 성실(信)을 양심계발의 다섯 가지 덕목으로 꼽고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맹자는 양심의 덕목으로 1. 남에 대한 공감능력[측은지심(惻隱之心), 2. 부당한 일을 보면 혐오하며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정의감(수오지심(羞惡之心), 3. 나를 낮추어 남과 조화를 이루는 겸손함(사양지심(辭讓之心), 그리고 4. 옳고 그름을 구별할줄 아는 판단능력(시비지심(是非之心)]을 꼽고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웠고, 30세에 학문이 확립되었으며, 40세이는 학문에 의혹이 없게 되었고, 50세에는 하늘의 명령을 알게 되었으며, 60세에는 하늘에 명령을 잘 듣고 따르게 되었고, 70세에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양심발달의 단계를 이르는 것으로 40세까지 양심이 깊어져가는 학문의 발달단계이며, 50세부터는 양심의 근원이라고 할 천명과 통하는 단계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공자께서 말씀하신 양심의 다섯 가지 덕목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더하고 있어 읽는 이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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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킨트
니콜라이 그로츠니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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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유행하던 무협소설에 보면 무술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고난이도의 무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들 수 있다는 경고를 만나게 됩니다. 주화입마란, “(수련과정에서 운기조식할 때 외부에서 충격을 받거나, 심마 같은 마음의 큰 동요가 있을 때, 혹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과하게 영약을 복용했을 때 몸 안에 도는 기를 통제하지 못하여 내공이 역류하거나 폭주하는 현상을 일컫는다.”라고 엔하위키 미러 백과사전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수의 경지에는 진입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이겠지요.

 

불가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소설가 니콜라이 그로츠니의 장편소설 <분더킨트(Wunderkind)>를 읽으면서 ‘주화입마’라는 무술계 용어가 생각난 것은 재능을 가진 사람일수록 넘어야 할 험한 산이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렸을 적 일찍 재능을 보여 신동이라고 주목받던 이가 정작 평범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꾸준한 훈련을 통하여 재능을 꽃피우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신동(神童)이라고 옮기는 독일어를 그대로 제목으로 한 <분더킨트> 음악에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선발하여 훈련시키는 불가리아의 소피아 음악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영재들, 특히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 콘스탄틴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는 콘스탄틴의 삶에서 특별한 날에 생긴 일을 연대기(年代記)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곡으로 그 제목을 삼고 있는데 아마도 그날의 사건분위기 혹은 그날 주인공의 기분을 잘 나타내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가 자신의 전공을 잘 살려낸 얼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5개의 에피소드에는 피아노곡의 제목을 달아두었는데, 어쩌면 에피소드의 분위기 혹은 그때 상황에서 콘스탄틴의 느낌을 잘 표현하는 곡으로 고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문에서도 곡의 느낌을 자세하게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제3장의 ‘소팽, 에튀드 C장조, op.10,no.1’에서는 이런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쇼팽을 연주할 때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음악만이, 음악의 환영만이, 음악의 환영이라는 환영만이, 기억된 소리와 주제와 과거를 떠다니다가 다른 주제와 다른 화음으로 모습을 바꾸는 음조의 붓놀림들로 이루어진 흐름만이 있을 뿐이었다. (…) 에튀드의 반복 부분은 항상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 그 부분에서 타오르는 과정된 불꽃, 의기양양한 절망, 맨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우레 소리 같은 도 음정, 내 육체를 태운 불꽃을 태워버리고 모든 원자와 기억과 예견된 미래의 모든 순간을 절멸하는 그 도 음정, … (75~76쪽)” 피아노곡을 잘 알면 작가가 전하려는 의미를 제대로 붙들 수 있을텐데 안타깝게도 제가 피아노곡에는 전혀 문외한이라서 아쉬움이 더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1987년 11월 3일 시작되어, 89년 1월 23일까지는 한 달에 서너 번도 적었다가 두세 달을 건너뛰기도 하다가 마지막 두 개의 에피소드는 9달 가까이 건너뛰기도 합니다. 꼭 한번 열일곱 번째 에피소드는 7년 전으로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음악학교의 저학년 때 이탈리아의 살레르노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경험을 회상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어쩌면 작가 자신의 경험을 적고 있는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앞서 주화입마의 사례를 들었습니다만, 소피아 음악학교의 학생들 특히 특정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동들의 경우 튀는 행동을 해서 학교운영진을 곤란에 빠트리곤 하는데, 그 정도가 심하면 결국은 퇴교조치까지도 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조심해야 할 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회적 제약을 깨트리는 짓을 서슴치 않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신동의 재능을 완성하는데 제약이 되는 주화입마에 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은 절친 바딤과 이리나에 이어 콘스탄틴까지도 퇴교조치를 당하게 되고, 특히 이리나의 경우 교장의 죽음을 암시하는 행동을 하였다고 해서 정신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아서 읽으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공개되어 있습니다. 퇴교당한 콘스탄틴이 다시 음악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소피아 음악학교의 교육시스템에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서 우리네 아이들은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운지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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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멈추는 시간 -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 때, 나를 위로하는 성서
이나미 지음 / 민음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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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순간순간들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 무게에 따라서는 금새 사그러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갈수록 무게가 더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들을 지혜롭게 풀어내지 못하면 마음의 병이 되거나 나아가서는 몸의 병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특별한 분에게 이런 문제를 두고 의논을 하기도 하고, 혹은 종교에서 해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톨릭계통의 학교를 다녔지만 종교에 마음을 의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저로서는 그만큼 선택지가 좁은 셈입니다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 때, 나를 위로하는 성서’라는 부제에 끌리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서에서 얻을 수 있는 도움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입니다. 이나미박사님의 <슬픔이 멈추는 시간>은 “깊은 슬픔과 절망감으로 주저앉고 싶은 순간 성서에서 다시 힘을 얻습니다.”라는 카피처럼 성경말씀을 이끌어와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의학과를 전공한 전문의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뉴욕의 융 연구원에서 분석심리과정을 공부한 다음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종교심리학 석사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을 종교와 결합하는 공부를 하신 셈입니다. 신학하면 기독교 혹은 가톨릭의 교리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신학에 매어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부처님과 공자님의 말씀은 물론, 마호메트와 힌두의 신들을 두루 믿는’ 그런 사람이라는 말씀을 서슴없이 하시면서 ‘위대한 종교의 위대한 가르침은 다 믿는다’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종교에 관한 달관의 경지에 오른 듯합니다.

 

<슬픔이 멈추는 시간>은 가톨릭계열의 월간 <생활 성서>에 연재하신 글들을 묶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성경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강요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기본 텍스트로 삼고는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불경이나 유교의 말씀도 인용하고 있는데, 종교에 대한 저자의 열린 마음은 융의 심리분석학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들어가며’에 적은 이 책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은 이렇습니다. “고민이 생기면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불교 신자들은 불경을 펼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어떤 곳을 읽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성경의 어디를 봐야 할지 알려 주는 가이드북처럼 읽어 부셔도 좋을 듯합니다.(8쪽)” 말씀처럼 저자는 성경말씀 이외에도 다른 종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좋은 말씀을 끌어와 사례에 맞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성경말씀의 경우는 원전을 적어주고 있지만 다른 자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심리상담을 통하여 만나온 분들의 심리적 고통의 예를 들면서, 이런 상황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조곤조곤 설명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겪어보았을 것들이기도 합니다만, 자식을 먼저 보내거나, 사랑을 잃은 깊은 슬픔으로 마음이 무너진 분들을 위한 위로의 말씀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족들 혹은 가깝다고 생각한 주위 분들로 인하여 생각지도 않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경우, 배신과 질투로 생긴 분노와 미움으로 마음이 병들어갈 때, 회의와 허무감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마음을 다독이는 방법을 안내하기도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인간을 괴롭히는 온갖 고통이 세상에 튀어나왔을 때 ‘희망’이라는 치유를 준비했다고 신화는 이야기하기도합니다만, 제 생각에 만약 신이 있어 인간에게 선물을 주었다면, 그 선물들 가운데 ‘망각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마음을 흔드는 충격의 유효기간은 불과 몇 주일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잠시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더라도 이내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아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성경에서 자신과 부합하는 상황을 찾아 어떻게 풀어갔는지를 이해하다보면 쉽게 고통을 덜어내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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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 - 최고의 국가건설을 위한 현실주의 살림지식총서 456
신창호 지음 / 살림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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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管子)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관중(管仲)을 말합니다. 이름은 이오(夷吳)이며 춘추시대에 지금의 안휘성 북부지역인 영상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주나라 장왕(壯王) 12년부터 제환공의 재상으로 활약하다가 주나라 양왕(襄王) 7년에 죽었다고 하여 기원전 725년에서 기원전 645년경까지 생존한 인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자나 노자보다도 100년을 앞섰으니, 춘추전국시대를 풍미한 제자백가들의 선두주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는 주나라가 중심이 되던 봉건체계가 무너지며 춘추시대, 즉 난세가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제나라환공은 주나라 천자를 대신하여 제후국들을 통제하던 패업을 이루게 되니 춘추5패의 선두주자가 됩니다. 제나라는 지금의 산동반도에 위치하여 중원과의 거리가 멀고 강대국들과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관중은 부국강병을 꾀하면서도 도덕적 교화를 통한 법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덕과 법을 병행하는 덕치를 펼치도록 이끌었다고 합니다. 관중은 늘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를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데, ‘국민을 존중하라’라는 존민(尊民), ‘국민을 따르라’라는 순민(順民), ‘국민을 두려워하라’라는 외면(畏民), ‘국민을 활용하라’라는 용민(用民)을 핵심 주장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토지를 경제적 측면에서 명확하게 파악하려 노력하였다고 하는데, 요즈음 말로 하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이루고 복지를 챙기는 실물경제에 정통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관중을 사상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테크노크라트, 즉 기술관료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의 저술은 후대에 정리된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만, 정치, 경제, 법률, 군사, 철학, 교육, 자연과학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선현의 고사를 두루 섭렵하여 인문학적 조예가 깊어 당시의 시대상황에 맞는 정책의 도출이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앞서도 관자가 백성에 대하여 잘 파악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저자는 『관자』의 「목민」편에서 언급하고 있는 국민의 네 가지 욕망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편하게 즐기는 삶인 안락(安樂), 둘째는 부유하고 귀하게 사는 부귀(富貴), 셋째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안락하기를 바라는 존안(存案) 그리고 넷째는 삶의 건전한 성숙을 추구하는 생육(生育)입니다.(22쪽)” 그리고 네 가지 증오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근심과 피곤을 상징하는 우로(憂勞), 가난과 천대를 의미하는 빈천(貧賤), 위험과 추락을 말하는 위추(危墜), 제거되거나 끊어지는 삶인 멸절(滅絶)”입니다. 늘 백성을 염두에 두었던 관자의 현실정치감각은 오늘날에도 틀림없이 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관자』의 「입정구패해(立政九敗解」편에서 설명하고 있는 지도자들이 실패하는 원인 아홉 가지는 정치에 꿈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겨두어야 할 것입니다. “1. 국가의 안보를 소홀히 한다, 2.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3. 보신주의, 그리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는다, 4. 지나치게 개인적 의견을 내세운다, 5. 부당한 거래를 한다, 6. 패거리를 만들어 어울린다, 7. 지나친 음주가무를 즐긴다, 8. 인사청탁과 뇌물을 받는다, 9. 아첨을 묵인한다.(32~39쪽)”

 

관중에 대하여 공자는 엇갈리는 평가를 내렸다고 합니다. 위엄과 힘을 쓰지 않고도 많은 국민을 먹여 살리고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여 은택을 베푼 공적은 어진 사람에 버금간다 하겠으나, 춘추시대에 부국강병의 패도를 이루기는 했지만 유가가 추구하는 왕도를 실현하지 못한 까닭에 ‘그릇이 작다’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관중이 성현이 추구하는 큰 배움의 도를 알지 못하여 왕도와 패도의 개념을 뒤섞어 한 길로 생각하는 우를 범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맹자나 사마천은 군주가 스승으로 삼을만한 인품을 지닌 참모로 꼽고 있기도 합니다.

 

<관자, 최고의 국가건설을 위한 현실주의>는 100쪽이 조금 넘는, 일견해서 가벼워 보이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중시하는 관중의 철학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그렇지 않은 분이라고 해도 읽어서 삶의 지혜로 삼을 만하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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