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의 닥터 콘서트 - 힘 없는 환자가 아닌 똑똑한 의료 소비자 되기
홍혜걸 지음 / 조선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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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문가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일은 어쩌면 자신의 전공분야의 이야기를 일반인이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하기입니다. 특히 일반인들이 궁금한 점이 많은 의학의 경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특히 말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은데 글로 써내기는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벌써 몇 권의 책을 써내기는 했습니다만, 그때마다 원고를 읽는 아내로부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의사들이 일반 독자를 위해서 쓴 의학 관련 책들을 적지 않게 읽어보았습니다만, 대체적으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일반인들을 위하여 전문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는 의학상식을 정말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잘 설명한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홍혜걸의 닥터 콘서트>입니다. 저자이신 홍혜걸기자님은 저도 잘 아는 분입니다. 중앙일보에서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시다가 요즈음에는 TV조선에서 같은 이름의 토크쇼를 맡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케이블 채널을 별로 보지 않는 편이라서 저도 아직 시청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저와 같은 이를 위해서 방송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출간 반년 만에 예스24에 60개 가까운 리뷰가 올려 질 정도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독자 친화적으로 만들어진 책인가를 알 것 같습니다.

 

머리말에 요약한 책의 구성은 이렇습니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됩니다. 첫째 장에서는 기초가 되는 생활습관을 다루고, 둘째 장에서는 흔히 접하는 불편한 증세와 질병을 다루었습니다. 셋째 장은 심장병과 뇌졸중 등 성인병을, 넷째 장은 한국인의 최대 사망원인인 암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다섯째 장은 현대의학의 새로운 화두인 부교감신경과 면역, 피로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어디 하나 꼬집을 것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내용을 아주 쉬운 말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특히 평소에 기억해두어야 할 점은 마치 의과대학생이 요점을 정리하듯이 번호를 매겨서 나열하고 있어 시선이 닿는 곳에 붙여두고 싶을 정도입니다.

 

저자는 본인이 의사이면서도 의료계에서 듣기에는 불편할 수 있는 말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환자들은 경제적 사정을 말하고 값비싼 검사 대신 나에게 꼭 필요한 검사만 해달라고 요청할 권리가 있다. 나는 차제에 우리나라 병원들이 첨단기술과 장비만 자랑하지 말고 가격 효율성에도 신경을 써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가능하면 적은 비용으로 좋은 결과를 내놓는 병원이야말로 좋은 병원이다.(100쪽)” 중요한 점은 빠트리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달은 부분은 뇌졸중 발작이 일어났을 때 행동요령에 대한 구절입니다. 마침 저의 어머니께서 최근에 당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형님께서는 신경외과과장인 막내동생에게 병원에서 대기하라 연락을 하면서 당신 차로 병원에 모시고 갔다고 해서 동생에게 한 마디를 들었습니다. 이때는 무조건 119를 불러서 병원에 모셔야 한다. 119 앰뷸런스에는 응급구호사가 타고 있으며 응급구호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동안 필요한 응급조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뇌졸중편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적어도 뇌졸중에 관한 한 아무 것도 하려 하지 말고 주위 사람들 훈수는 모두 무시하자. 무조건 119 버튼부터 눌러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165쪽)” 그런데 뇌졸중으로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들의 절반 정도만 앰뷸런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점은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민들에게 알려 뇌졸중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점입니다.

 

책에 담은 모든 내용이 참 훌륭합니다만, 꼭 한 가지 저자가 빠트린 점이 있습니다. 바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생겼을 때 제대로 치료받는 길을 빠트렸다는 것입니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은 증상이 발생하였을 때 최단 시간에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생명을 구할 수 있고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모든 병원이 이런 질환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과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심근경색증과 뇌졸중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들의 시설이나 인력 진료수준을 평가하여 등급을 나누어 발표하고 있습니다. 평소 살고 계시거나 일하고 계신 곳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의 평가등급을 확인하고 계시거나 119에 부탁하면 좋은 평가를 받는 병원으로 안내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고민해볼 다양한 질병들을 쉽게 설명하고 있는 안내서입니다. 곁에 두고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이라던가, 혹은 질병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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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제민의 길
김형기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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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에 걸친 민주화운동이 결실을 맺어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내는 신기원을 이룬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진보적 성향을 가진 정권이었습니다. 국민들이 그와 같은 선택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생동하는 생명을 담아낼 힘이 없습니다. 어쩌면 국민들은 진보정권이 우리의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것을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진보 정권은 불과 두 차례 10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국민들은 선거를 통하여 다시 보수로 회귀하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5년 뒤에 국민은 진보적 정권의 복귀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진보세력들은 선거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마다 반대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하여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해도 모자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아쉬운 대목입니다.

 

<경세제민의 길>은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및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지방분권국민운동 초대 의장으로서 지방분권 운동을 일으킨 김형기교수님의 에세이들을 모은 책입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부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치경제학과 노동경제학을 가르쳐 왔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연구해온 대안적 발전모델이 우리나라에서 꽃피우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10년간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발표한 칼럼과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 그리고 최근 미국 UC 버클리대학과 하버드대학의 방문학자로 체류하는 동안 쓴 에세이들을 모아 엮은 것이라고 합니다. 모두 71꼭지의 글들이 크게는 제목에 담긴 ‘경세제민’을 화두로 하면서 글 내용에 따라서 제1부 ‘새로운 진보의 길’, 제2부 ‘한국경제 제3의 길’ 그리고 제3부 ‘지방분권국가의 길’로 나뉘어있습니다.

 

경제분야에 대한 앎의 깊이가 얕은 탓에 이해가 쉽지 않은 점도 많았습니다만, 그저 읽어가면서 공감하는 부분이나 미심쩍은 부분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저자는 글머리를 ‘진보는 끝났는가’라는 제목으로 열고 있습니다. 어쩌면 진보정권을 창출해내지 못한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지난 대선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돌발적인 발언으로 끝난 것이었고, 이어 터진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진보에 대한 결정적 타격이었다고 진단하였습니다. 저자는 수구보수세력들이 정치적 반대자를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책략을 써왔다고 합니다만, 국민들 정서의 바닥에는 민족상잔의 끔찍한 전쟁이 남아 있고, 전쟁과 무관한 세대 역시 이후 산발적으로 이어진 북의 도발이 전쟁의 기억을 이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종북의 의심을 받는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진보는 국민적 지지의 발판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 역시 그와 같은 사태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대선 불복과 대통령 사퇴까지 주장하는 일부 진보세력의 행태 역시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체제를 인정하고 헌법질서를 존중하는 건전한 진보는 살려야 한다.(16쪽)”는 보수인사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신뢰하는 새로운 진보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이 책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애국주의와 진보주의가 결합한 애국적 진보주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합니다. 과거의 칼럼들은 어쩌면 당시의 시대상을 담은 저자의 생각을 적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민심을 잃은 이유도 있습니다. 바로 서민을 위한 개혁을 한다면서 서민을 고통에 빠트렸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국민의 생각은 무시하고 집권자 혼자의 생각대로 국정을 끌고 갔기 때문에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보수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쓴 글들은 진보세력이 나아갈 길에 대한 모색을 담고 있습니다. 저 역시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면서 서로를 견제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처럼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대안을 추구하는 진보세력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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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전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
위앤커 지음, 전인초.김선자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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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myth, 神話)라 하면 주로 우주의 시원이나 고대 국가의 시원에 관하여 전승되어 온 이야기를 말 합니다. 신화에서는 인간과 연관이 있는 신이나 초인들의 특정한 사건·조건·행위 들을 설명하지만 인간의 일상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반면 전설(legend, 傳說)은 특정한 장소나 인물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데, 때로는 초자연적 혹은 신화적 요소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동양사회의 신화도 궁금해집니다.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락국의 건국과 관련된 신화들이 전해 내려오지만 개벽에 관한 신화를 들어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국의 사서에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가 기록되어 있음을 보면, 중국의 신화와 전설을 담은 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은 어쩌면 우리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도 있음직합니다. 구전으로 전해오던 그리스 신화가 기원 8세기 초 처음 문자로 기록된 이래 연극과 문학 등을 통하여 다양하게 해석되어 온 것과는 달리 동양의 신화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중국신화전설>을 우리말로 옮긴이 들이 작품해설에 정리한 내용을 보면, 뤼쉰은 중국에서 신화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로 중국인들의 주된 활동무대였던 황허유역이 자주 범람하는 바람에 자연재해를 피하여 생존하는 일이 급선무가 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환상보다는 실제 삶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공자 이래 중국인들의 삶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유가사상은 괴력난신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별에서 온 그대> 역시 중국당국이 정해놓은 괴력난신의 범주에 해당되기 때문에 정규채널을 통하여 방송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위앤커는 1950년대 시작부터 중국의 신화를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고, 특히 문화대혁명의 시기를 지나 1980년대 들어 신화연구가 붐을 이루는데 많은 기여를 한 작가라고 합니다. <중국의 신화전설>에서는 지구 상의 타지역의 신화와 흡사한 세계의 시작과 홍수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복희와 여와, 신농과 후직, 황제․요․순․우․곤․예 은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 관한 신화와 주나라 이후의 역사시대의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각 지방에서 전해오는 전설을 담고 있습니다. 삼황오제는 인간을 위해 불을 발견했고 그물을 엮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으며, 오곡의 씨앗을 가져다가 농사짓는 법을 알려주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문자를 만들었고 다양한 기술의 발전시킨 백성의 삶의 수준을 끌어올린 영웅들이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고대 중국 신화에서 황제와 오랜 전쟁을 치룬 못된 신으로 치부되는 치우(蚩尤)를 우리는 국가대표 서포터스 붉은 악마의 상징으로 삼을 만큼 동이족의 영웅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고구려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삼족오(三足烏)에 대한 기록이 중국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이 중국의 본토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습니다.

 

중국은 땅덩이가 크고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므로, 지역과 민족마다의 전설들을 작가가 수집하여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우임금이 다녔던 이상한 나라들에 등장하는 소인국이나 대인국의 경우는 그럴 수도 있다 쳐도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한 생물이나, 팔이 긴 장비국 사람, 성성이 닮은 사람 등을 비롯하여 제 9장 산천의 기이한 동식물들편에 나오는 진기한 모습의 동물이나 식물들은 행여 존재했을까 싶으면서도 어디인게 화석으로 남아 있다면 대박이겠다 싶기도 합니다.

 

앞서도 그리스 신화가 서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중국의 신화나 전설은 이제 새롭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20장에 담은 ‘만리장성과 맹강녀’는 중국의 4대 민간설화(‘견우직녀’ ‘백사전’ ‘맹강녀’ ‘양산박과 축영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맹강녀에 관한 이야기인데, 중국 작가 쑤퉁이 이를 바탕으로 <눈물; http://blog.joins.com/yang412/12350751>이라는 이름의 장편소설을 구성하였습니다. 여인의 통곡이 바위성을 무너뜨린다는 발상이 참신하다 싶었는데, 위앤커는 진시황까지 등장시켜 맹강녀의 곧은 절개까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땅이 넓으니 기기묘묘한 이야기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역시 우리나라에도 지역별로 구전되어 오는 다양한 전설들을 토대로 다양한 문학적 해석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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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살림지식총서 118
김헌 지음 / 살림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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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http://blog.joins.com/yang412/13243912>을 읽고서 시의 기원(起源)에 대한 다음과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빠트릴 정도로 비극에 무게를 두었던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시는 사람의 본성에 뿌리박은 두 가지 원인에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사람은 어릴 적부터 모방적 행동성향을 타고난다. 사람은 극히 모방적이며 모방을 통하여 그의 지식의 첫걸음을 내딛는다느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 둘째, 모든 사람이 모방적 사물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시학 22쪽, 문학과 지성사, 2005년)”

 

고대 그리스 신화는 시인들의 작품을 통하여 전해왔는데, 아직까지도 산발적으로 읽고 있어 전체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김헌교수님의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을 읽게 된 것도 그리스 시인들을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파르메니데스, 아르킬로코스, 사포, 핀다로스 등 여섯 시인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 비극을 읽으면서 신의 횡포(?)에 대한 불만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만, “이 책에서 소개하려고 하는 그리스의 시인들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신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려 있다기보다는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3쪽)”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의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이런 견해는 그리스의 신은 종교적 절대자로서의 신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능력 안에 포착되지 않는 신비한 현상을 설명하려는 인식론적인, 다시 말하면 형이상학적인 술어로 여겼던 것으로 본다는 설명입니다.

 

저자는 연대순에 따라 인용한 여섯 시인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화려한 영웅들의 시야기를 치밀한 구성으로 엮어놓은 호메로스(기원전 8세기 초), 정의와 질서를 갈구하며 신들과 인간의 역사를 상상력으로 구성했던 헤시오도스(기원전 8세기 무렵), 존재의 비밀을 웅장한 영웅시의 운율에 담은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기원전 6세기)에 이르기까지 신비롭고 장엄한 서사시의 전통이 이어졌다면, 자신을 시 안에 드러내며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고 했던 아르킬로코스(기원전 7세기)와 사랑의 감정과 사건을 솔직하고 감미로운 언어 안에 담아 읊던 사포(기원전 7세기)의 서정시의 시대로 이어졌으며, 마지막으로 전설과 신화 속에 동시대의 살아있는 영웅을 그려내어 죽음으로 한계 지워진 인간을 영원의 지속 안에 남기려 했던 핀다로스(기원전 6세기)에 이르기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구전으로 이어지던 그리스의 신화, 전설은 기원전 8세기 초 즈음에 문자로 기록되었으리라 추정되는데, 글을 이용해서 이 전설을 웅장한 서사시로 만든 사람을 흔히 눈이 멀어 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호메로스라고 합니다. 호메로스도 그렇지만 헤시오도스 역시 뮤즈 여신에게 전설을 이야기 해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첫머리를 보면,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 파괴적인 분노를……”라고 시작하는 것처럼 <오뒷세이아> 역시 “그 사나이를 나에게 말해주소서, 뮤즈여, 재주 많던 그 사나이를 ……”라고 시작합니다. 헤시오도스 역시 <일과 날>의 첫머리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뮤즈 여신들이여, 피에리에로부터 노래로 영광을 드러내는 여신들이여, / 오셔서 제우스를 말씀하소서, 당신들의 아버지를 찬양하면서……” 왜 뮤즈인가? 앞서 말씀드렸던 신화와 전설의 시원을 따라 아버지의 아버지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종국에는 뮤즈여신들에 이르게 되는데, 후대 로마인들은 아홉 뮤즈들에게 음악과 시가, 학문의 여러 장르를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홉 뮤즈들은 신들의 왕 제우스와 기억을 관장하는 신 므네모쉬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여섯 시인들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유리피데스 등 비극작가들과, 아리스토파네스와 메난드로스 등의 희극작가들의 작품에 그리스 시의 맥이 이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서사시로부터는 줄거리의 구조와 전통을 받아들였고, 서정시로부터는 음악적인 다양성과 운율을 계승하여 종합화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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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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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는 것과 연극의 바탕이 되는 희곡을 읽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연극이 연출에 의하여 해석되고 배우들에 의하여 표현되는 것을 오감을 통하여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면, 희곡은 모든 연극적 요소들이 읽는 이의 머릿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등장인물에 대하여 성격을 부여하고, 무대장치와 대, 소도구들이 안배된 무대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면서 배우들이 주고받을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올려진 공연을 본 다음에 희곡을 읽게 되면 쉽게 빠져들 수 있지만 공연을 미리 보지 못한 희곡 작품을 읽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막상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를 읽으려고 보니, 무대에서 이 작품을 만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업극단이나 대학극단에서도 자주 올리던 레파토리인데도 저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외젠 이오네스코는 ‘부조리극의 기수’라고 불릴 만큼 부조리극을 써낸 대표적인 희곡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백과사전에는 ‘실존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카프카 등의 영향을 받아 195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극’이라고 부조리극을 설명하고 있고,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http://blog.joins.com/yang412/13393269>가 효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머리 여가수>를 우리말로 옮김 오세곤교수님은 작품해설을 통하여 부조리극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부조리극은 비록 관객들이 현실로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부조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그러니까 달리 말해 기존의 연극이 ‘사실임 직한 비사실’을 추구하는 데 반해, 부조리극은 ‘비사실임 직하지만 엄연한 사실’의 제시를 목적으로 한다.(186쪽)”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에서 소개하고 있는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집 <대머리 여가수>에는 표제인 「대머리 여가수」와 함께 「수업」 그리고 「의자들」 등 세편의 희곡을 싣고 있습니다. 옮긴이는 세 작품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대머리 여가수」는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함을 강조하고, 「수업」은 교수와 학생이 불합리한 의사소통에 의해 결국 살인까지 이르는 언어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의자들」은 언어의 허구성과 공허함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189쪽)”

 

사실 무대를 설명하는 지문이 온통 ‘영국식~’으로 시작하는 「대머리 여가수」는 무언가 비비꼬일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속에서 읽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내 등장인물들이 뱉어내는 대사들이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묘하게도 말꼬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인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스미스씨의 엉뚱한 대사 가운데 가슴 저미는 장면이 있어 꼭 소개해야 하겠습니다. “같이 회복되지 못하면 환자랑 같이 죽어야죠. 양심적인 의사라면. 선장은 파도 속에서 배하고 같이 죽잖아요. 혼자 안 살아남고.(13쪽)” 영국의 뱃사람들은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은 분명 지나친 일이기는 하지만 승객들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의사와 비교해서 환자를 고치지 못하면 의사가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수업」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수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치통을 호소하는 학생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시간에 예정된 교과를 강행하는 교수의 모습에서 오늘날 경직되어 있는 사회제도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학생의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교수 역시 교수능력이 떨어지는 것인지도 헷갈리게 만드는데, 정작 문제는 교수가 매일 살해한 학생이 마흔 명 째에 이르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동안 교수나 교수댁 하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조치를 취했다는 정황은 전혀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 안전망의 구조적 문제점이 연상되었다고 하면 지나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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