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과 치 - 인생의 격을 높이고 현자의 치를 터득하다
민경조 지음 / 알키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을 쓰면서 동양의 고전을 인용하면 왠지 있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문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결국은 누군가 주석해놓은 책을 읽고 새기는 일도 벅차기만 합니다. 그래도 최근 들어 동양고전을 읽을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오롱건설의 대표사장을 거쳐 코오롱 그룹의 부회장을 지내신 민경조부회장님의 <격(格)과 치(治)>는 저자가 동양고전을 읽고 마음에 새긴 구절들을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정리한 책이라고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의 약력에 보면, ‘그는 지금까지 1,000회 이상 <논어>를 일독한 것 외에도 <맹자>, <한비자>, <사기> 등 수많은 고전을 거듭 읽으며 자기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사실 논어를 1,000회 이상 일독하다는 표현이 옳은지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해서 고전 읽기를 생활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목 <격(格)과 치(治)>는 ‘인생의 을 높이고, 현자의 를 터득하다’라는 생각에서 뽑은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성인들의 위대한 말씀과 역사의 결정적인 장면들이 담긴 고전이야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리더십의 모든 것이 담긴 보물상자라고 생각한다. 부디 이 책이 불확실한 내일을 항해하는 미래의 리더들에게 어제의 보석상자를 열어보는 기회를 제공했으면 한다.(7쪽)”라고 글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날마다 성장하는 삶',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 그리고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고전을 모아 나름대로의 해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의 독특한 해석이 돋보이는 부분은 조삼모사(朝三暮四)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열자> 황제편에 나오는 전국시대 송나라의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원숭이게 줄 먹이를 줄이려고 원숭이를 설득한 이야기입니다. 아침에는 도토리를 세 개, 저녁에는 네 개 준다는 말에 화를 내던 원숭이들이 아침에 도토리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는 말에 기뻐했다는 이 이야기는 흔히 저공의 지혜를 강조하거나 원숭이들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는 데 많이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합니다. “자금관리의 기준이 바뀐 요즘 시대에는 원숭이들의 지혜가 더 뛰어났던 것으로 해석해야 맞을 것 같다. 즉, 원숭이들은 자원을 미리 확보하여 불확실성을 예방한 셈으로 ‘화폐의 시간적 가치’를 일찌감치 터득했던 것(187쪽)”이라고 말입니다.

 

하나 더 인용해보면,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子曰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자왈 비여위산 미성일궤 지 오지야 비여평지 수복일궤 진 오왕야)”라는 구절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건대 흙을 쌓아 산을 만들어가다 한 삼태기가 모자라는 데서 멈추었다 해도 내가 멈춘 것이며, 비유하건대 흙을 퍼부어 움푹한 곳을 메워가려고 할 때 한 삼태기의 흙을 부어서 진전되었다면 나 자신이 발전한 것이다.(22쪽)”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일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일단 시작했다는 데 방점을 두어 스스로를 발전시켰다고 일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인가 봅니다. 그런데 저자는 탑을 공들여 쌓아가다가 완성 일보 직전에 그만둔다고 하면 지금껏 쏟은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것인데, 그래도 한 발작이라도 내딛는데 의미를 둘 수 있지만, 역시 용기를 내서 시작했으면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끝을 보아야 진정한 리더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심하고 인내심 없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 때까지 나가는 사람, 이런 추진력있는 사람이 아쉽다고 하였습니다.

 

책읽기도 묘한 인연이 엮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마침 오늘 마무리해야 하는 글에 인용하면 안성맞춤이 될 구절을 발견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와도 관련이 있겠습니다만, <논어> 팔일 편에 나오는 “獲罪於天 無所禱也(획죄어천 무소도야)”라는 구절로서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조차 없게 된다(28쪽)”라고 풀이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각종 사건사고와 관련된 사람들이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이 빛나는 밤에 - 천체물리학부터 최신 뇌 과학까지, 우주의 역사부터 과학의 역사까지
이준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의 시원으로부터 태양계가 생기고, 지구에 생물이 생겨서 지금에 인간에 이르기까지의 장구한 역사를 하나로 정리된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혼자서의 힘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일단은 천체물리학으로부터 지구과학, 고생물학, 생물학, 사회과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전문지식을 갖추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137억 년이라는 긴 역사를 요즈음에는 <빅 히스토리>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빅히스토리를 개괄한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하고 있고, 다만 지금까지 읽어본 책들 중에 칼 세이건과 얀 드루얀의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http://blog.joins.com/yang412/12597810>가 제가 원하는 바에 근접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문학 혹은 우주과학을 전공한 칼 세이건이 공저자임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시원에 관한 부분에는 전체 21개 장 가운데 첫 번째 장만을 할애한 점이 아쉬웠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저자가 쓴 <과학이 빛나는 밤에>란 책이 빅히스토리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습니다. 같은 이름의 팟캐스트 방송에서 다룬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단 팟캐스트 방송이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으려면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쉽게 정리해서 이해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의 팟캐스트 방송은 대단한 시청자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여는글을 통하여 “우주의 시작부터 원소와 별의 형성을 거쳐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고, 그렇게 진화한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켜 자신의 근원인 우주를 들여다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열한 개의 단원에 걸쳐 이야기했다.(10쪽)”라고 적었습니다. 내용을 보면 ‘천체물리학부터 최신 뇌과학까지’라는 부제보다는 ‘우주의 역사부터 과학의 역사까지’라는 부제가 더 적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이신 김희준교수님께서 추천사를 통하여 “저자의 재치있는 비유와 설명을 읽으며 과학 상식을 쌓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이 우주와 자연에 대해 보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5쪽)”라고 하셨는데, 책내용을 잘 나타내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교수님의 말씀대로, 이 책의 처음 두 단원에서는 138억년 우주의 역사에서 90억년을 차지하는 별과 은하의 진화를 거쳐, 태양계의 형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주의 시원에 관한 빅뱅이론은 물론 최근에 제시되어 주목받고 있는 초끈이론에 이르기까지 최신지견을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생명, 동물과 식물, 인류의 진화까지 생명에 대한 부분을 세 단원에 걸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단원에 걸쳐 과학 발전의 전개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서양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물리학의 발전과정을 주로 다루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저자가 정리하고 있는 대부분의 설명들이 공감되고 잘 요약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만, 일부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서양에서 발전하게 된 근대과학이 유일교 신앙에서 싹텄다는 설명 같은 부분입니다. “종교가 과학의 발전을 훼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이 발전하는 원동력을 제공한 겁니다. 과학자들이 유대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신을 계승한 기독교를 믿었으니 추상적인 유일신 개념을 똑같습니다.(251쪽)”라는 저자의 주장은 불교 혹은 유교가 중심이 된 아시아나, 여러신을 믿은 인도에서 과학이 발전할 수 없었다는 식으로 이해되어서 혹여 저자가 특정종교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업생산량이 늘어나 생기는 잉여생산물을 팔기 위한 시장이 중세 유럽에서 발전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잉여생산물 유통의 역사는 이미 기원전 3000년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에 이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 거래내용을 기록한 문서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에 관한 설명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모형에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갑자기 “마치 달이 지구 주위를 돌면서 태양 주위를 간접적으로 도는 것처럼(270쪽)” 설명한 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를 인용하여 천문학의 혁명을 설명하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네이피어 등이 산책을 통하여 문제해결을 했다는 것을 뭔가 넣으면 뭔가 나오는 자판기에 비유하면서 자신도 자판기를 이용해 글을 쓰면서 신기할 따름이라고 비유한 것(276쪽)이 맞는 비유인지도 헷갈립니다.

 

정리해보면 저자는 물리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물리학을 대표선수로 하여 근대과학이 발전해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고, 생물학이나 화학 등 다른 과학분야는 다루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신의 뇌과학까지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극히 피상적인 일부만을 다루고 있을 뿐 생명과학 부문 역시 제대로 다루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물리학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젠틀맨 & 플레이어
조안 해리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두툼한 두께에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변화에 이르기까지 읽어내는데 집중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과 이들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몇 차례의 반전 때문에 리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제목에 이야기의 시발점과 사건의 동기가 충분히 담겨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젠틀맬 & 플레이어>는 영국과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켓경기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영국 정상급 크리켓 경기에서는 선수들을 ‘젠틀맨’과 ‘플레이어’로 구분했다고 하는데, ‘젠틀맨’은 보수 없이 경기에 참가하는 유한계급의 아마추어 선수를, 플레이어는 보수를 받고 뛰는 직업 선수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은 제목에 담긴 의미처럼 부와 명예와 전통의 상징인 영국의 한 유서 깊은 사립학교를 동경하던 아이가 결국 그 학교를 파멸시키는 일에 도전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무대는 영국의 유서 깊은 남자 사립학교인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입니다. 참고로 영국의 중등교육은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문법학교와 졸업 후 취직을 목표로 하는 기술학교, 그리고 두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하위권학생들을 위한 의무교육을 시행하는 현대학교로 나뉘어 있다가, 1975년 정부의 교육평등정책에 따라 종합학교로 일원화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은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의 가을학기가 시작하는 9월 6일 월요일부터입니다. 처음 일주일동안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매일 적다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는 일이 많아서인지 주목할 사건을 중심으로 건너뛰기 시작해서 사건이 마무리되는 11월 4일까지 이어집니다.

 

처음 책을 읽어가다가 갑자가 화자를 헷갈리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즉 이 이야기의 화자는 두 사람입니다. 그리고 보면 사건의 전개에 따른 구분은 체스게임의 용어에서 따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서문에 해당하는 폰(Pawn)에 등장하는 ‘나’는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의 수위로 일하게 된 아버지와 함께 사택에서 살고 있으면서 이 학교가 아닌 서니뱅크파크 종합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체스에 사용되는 말 중 하나인 폰(Pawn)은 장기의 졸에 해당하고 양측이 각각 8개씩 가지고 있습니다. 폰은 장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약한 말인 것처럼 세인트오즈월드는 언감생심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킹(King)에 등장하는 ‘나’는 33년째 이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라틴어 교사 로이 스트레이틀리입니다.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만큼 교장을 비롯한 학교 행정가들과는 부딪히는 경우가 많지만, 학생들로부터는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학생들의 심리를 제대로 꿰뚫고 있으며 뛰어난 기억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이는 세인트오즈월드의 상징이고 킹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왕과 졸이 대결하게 된다는 이야기일까요?

 

이야기는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시작합니다만, 아버지를 따라 사택에서 살면서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를 휘젓고 다닌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회상의 형식으로 곳곳에 섞여 들기 때문에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사건들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하기 위하여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그 어린아이가 장성해서 세인트오즈월드의 신참교사로 부임하게 됐는데, 과연 컴퓨터 교사 미크, 지리 교사 이지, 외국어 교사 미스 데어, 영어 교사 킨, 체육 교사 라이트 등, 다섯 명의 신참교사 가운데 누가 나인지 분명하지 않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화자의 하나인 로이가 킹인 이유, 폰에 해당하는 또 다른 화자인 과거 수위의 아이이자 신참교사가 도대체 어떻게 엮이게 된 것인지는 이야기의 결말부분에 가서야 드러나게 됩니다만, 일단 폰이 이곳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일들은 또래의 아이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소소한 일인데, 그런 일상이 지나가다가도 생각지 못한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그 사고에 관련된 사람들의 인생의 축을 크게 흔들어 놓기 마련입니다. 폰의 어린 시절은 세인트오즈월드 탐험과정에서 우연히 조우한 5학년생 리언과의 관계가 전부였다고 하겠습니다. 그 관계가 어떻게 발전했고 어떻게 끝났는지가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폰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만큼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 세인트오즈월드로 입성을 꿈꾸게 된 것이고, 이곳을 33년이나 지켜온 로이에게는 전통을 지키는 방어자의 역할을 부여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9년 전 일어났던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세인트오즈월드에 복수심을 품고 들어온 폰이 복수를 위하여 살인을 하고, 소문을 조작하여 선생님들을 궁지에 몰아 학생들이 떠나게 하는 등 학교가 공중분해 되기 직전까지 몰아가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살인까지도 불사한 폰의 정체와 사건의 결말은 의외의 상황으로 정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완전범죄가 되고 만 것입니다. 세상에 완전범죄는 절대로 없다는 믿음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살림지식총서 136
강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음백과사전에서 ‘금기(禁忌)’란 민간신앙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일상생활이나 종교적 의례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접촉이나 언행을 제한하는 관습”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기는 사회적으로 전승되면서 그 사회 속에 깊이 뿌리내려 일종의 속신(俗信)으로 자리 잡았다. 금기가 끈질기게 전승되는 이유는 금기를 범하면 해당 신령의 노여움을 사 벌을 받거나 재앙을 받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금기란 단어의 용례가 확대되면서 어떤 집단에서 기피하는 말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는데, 이 경우는 그 집단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이 재앙을 내리는 신령의 역할을 대신하여 금기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집단이나 금기가 있는 것처럼 학계 역시 금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는데,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먼저 나서서 금기를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에서 방울을 달겠다고 나선 저자 역시 학계에 속한 분이 아니라 학계의 소식을 다루는 기자입니다. 결국 금기를 공론화하지는 않지만 끼리끼리는 주고받는 무엇이 있었던 것이고, 저자 자신은 단지 이것들을 묶어서 책으로 엮어냈다는 설명입니다. 다른 영역은 차치하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학계의 금기는 학계의 ‘구조적인 한계’와 ‘무의식’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 학문이 미세하게 쪼개지고 전문화되고 있어 학계 나름대로의 독특한 금기를 모두 수집해서 다룰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총론에 해당하는 몇 가지와 아마 저자에게 친숙한 각론에 해당하는 몇 가지의 사례를 들어 학계의 금기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승 비판이나 전공불가침의 법칙, 혹은 학문의 주제와 같은 총론적인 문제제기 같은 경우는 쉽지 않은 일이나 생각에 따라서는 옳지 않은 점에 눈을 감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것이며,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공감할 수 있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논문의 형식이나 생태학계의 비생태성과 같은 주제는 각론에 해당하지만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라서 공감 여부를 표시하기가 어려워 다만 참고할 따름입니다.

 

문화비평에 ‘문화’와 ‘비평’이 없다는 글에서는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분야라서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글쓰기에는 ‘문화비평’만큼 그 정체성이 흙탕물인 분야도 드물다. 글 좀 쓴다는 이들이 모두 문화비평을 쓰고 있다.(71쪽)”라는 글머리에 이어지는 “이 많은 문화 비평가들이 쏟아내는 글들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비평으로서의 정체성을 전혀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비평이라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전문성’이 ‘제로’에 가까운 글들이 많으며, 약간의 새로운 시각과 글맛을 내는 에세이들이 대부분이다.(72쪽)” 는 공감하기에 충분합니다. 간혹 새롭다는 느낌이 드는 글을 읽다가도 느닷없이 논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념적 주장을 섞어넣는 바람에 글쓴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 논객의 하나라고 하는 분에 대한 날세운 비판도 읽을 수 있습니다. “진중권은 글쓰기를 이원화시키고 있다. 겉으로는 문화 비평과 정치 비평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미학적 글쓰기와 정치 비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정치 비평이 문화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급진 좌파적 당파성을 띤 상대방에 대한 논리적 공격이 주조를 이룬다. 그는 과연 문화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일까?(74쪽)”

 

지나친 전문주의와 엘리트주의는 삶과 학문을 결별시켜 별개의 것으로 만들어왔다고 전제한 저자는 대중적 글쓰기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저의 전공분야를 쉽게 풀어 일반에게 소개하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낙담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도 “대중적 글쓰기란 어려운 전문 용어와 한자, 논리의 구조물을 해체해서 우리말 속에 생각이 잘 용해된 쉬운 글, 독특한 예시와 문체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글쓰기를 의미한다.(79쪽)”라는 정의에 따라서 쉬운 우리말을 더 많이 발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농행복 - 귀농실천에서 현명한 자녀교육까지
송인하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에 은퇴를 앞두고 공로연수 중인 분을 만났습니다. 최근에는 주말농장에 나가 농사를 짓는 재미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꿈도 꾸어보지 못한 은퇴 후 생활이 될 것 같습니다. 귀농을 주제로 한 리얼다큐멘터리 방송까지 있었던 것을 보면 귀농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결심을 하지 못하는 것은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데다가 준비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은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변현단님의 <자립인간; http://blog.joins.com/yang412/13352911>의 경우는 ‘낮에는 농사를 짓는 농부, 밤에는 글을 짓는 작가. 얽매이지 않고 생각하면 바로 실천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며, 사람이든 생활이든 틀에 박힌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개인의 자립’을 우선순위에 두고, 곡성 산골로 터를 옮겨 특별한 작위적 공동체가 아닌 ‘자립적 개인의 협력’으로 꾸려나가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농촌사회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귀농을 꿈꾸는 분들 역시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을 터라서 어느 한 분의 사례가 모범답안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송인하 선생님의 <귀농행복>은 다소 딱딱한 학술서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귀농에 관한 알파에서 오메가를 망라하는 책입니다. 모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은퇴후 노후생활을 즐기려는 귀촌인은 별도로 하고, 저자는 귀농을 꿈꾸는 분들을 ‘생태가치 귀농인’과 ‘경제 목적 귀농인’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목표에 맞는 귀농설계가 가능하도록 내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서문에 적은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1장에서는 서양과 우리나라에서의 귀농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2장에서는 읽는 이가 귀농을 생각한다면 어떤 타입일지 평가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3장에서는 귀농준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를, 4장은 각자에 맞는 귀농지역을 고르는 방법을, 5장에서는 귀농후 적응하는 방법을, 6장에서는 어떻든 농촌에서는 영농활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7장에서는 도시의 소비자와의 연결망이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하였고, 8장은 귀농인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는 논하였습니다.

 

저자는 전형적인 농촌사회인 전북 남원군과 전북 진안군에 정착한 열여덟 명의 귀농인 가족을 대상으로 귀농의 이유와 과정, 정착 후의 생활 등에 걸쳐 광범위한 인터뷰를 통하여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을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모두 열 명의 생태가치 귀농인들은 도시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귀농을 결정한 경우를 말합니다. 도시문명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겪은 경우가 많아서 생태계를 지키는 귀농활동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부류입니다. 경제 목적의 귀농인은 기존의 농사방식과는 다른 농촌경제활동을 통하여 고소득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은퇴후 귀농인은 대체적으로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을 지속해야 하는 경우로서 농촌이 도시보다 유리한 점이 많을 수 있다는 정도로 설명을 약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귀농인들이 농촌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하여 고려해야 할 점들을 콕콕 짚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제가 보기에는....) 예를 들면, 귀농인이 농촌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하여 누구와 어떤 일을 도모하며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하는 등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농사일을 쉽게 생각하고 오는 귀농인의 경우는 귀농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농촌을 떠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귀농의 이유에 따라 차이가 나는 생활방식에 대하여 주위사람들의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생태가치를 추구하는 귀농인의 경우에는 ‘영농기술에 익숙하지 못하고 농산물의 소출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하고, 반면에 경제목적의 귀농인을 ‘농촌에서 돈을 버는 기계’라고 단정하고 그럴 바에야 도시에서 돈을 벌면 도 좋지 않겠느냐고 못마땅해하는 생태가치 추구 귀농인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각자의 철학에 따라서 선택한 삶이기 때문에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점은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귀농인의 행태가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지역사회에서 부대끼며 살 것이라면 서로를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인데 대부분의 경우는 이주민의 노력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귀농행복>은 귀농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나 귀농 초기의 분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주민이 줄어 고민하고 있는 농촌지역의 지자체에서는 귀농을 꿈꾸는 분들을 유치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의 들어 일독을 권해도 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