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서울대 교수 조국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 다산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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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진보 지식인 혹은 강남 좌파라고 불리는 조국 교수님이 자신의 인생과 학문의 역정을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써냈다고 합니다. 이석영교수님의 <초신성의 후예>를 읽은 다음이라서인지 책읽기도 흐름을 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학문’과 ‘참여’가 자신의 삶의 두 축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만, 과연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이 가능하겠나 싶습니다. 저 역시 대학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학문’에만 몰입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책에 대하여 몇 가지 짚어보려 합니다. 저자가 지었다고 하는데, 정리해준 분의 역할은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근래까지 살아온 이야기에 대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작가가 정리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것과 글로 써내는 것은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인데 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미모의 여성은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로마신화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디케(Dike)가 정의의 여신을 상징하였던 것이 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디케는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유스티티아는 여기에 형평을 지킨다는 의미로 저울이 더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정의의 여신은 맹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정의와 불의의 판정함 있어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사법연수원에 서 있는 디케는 눈을 띠로 가리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책의 표지에 나오는 여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모습이 섬찟하기까지 합니다.

 

책을 펼치고 저자께서 법을 공부하게 된 이유를 찾아보려 노력하였습니다만, 어디에서도 똑 떨어지게 설명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나름대로 추론해볼 수 있는 근거가 될만한 구절이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그 첫 번째는 호기심이 출발이었다는 다소 실망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할 무렵에 인기리에 방영되던 TV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서 논리적 토론을 벌이고 공부하는 것에 로망을 느낀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학습방법 자체가 다르다는 것은 모르셨나 봅니다. 결국 입학 뒤에는 법학보다는 사회과학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농활과 봉천동 혹은 구로동 등 사회의 밑바닥을 돌아보면서 세상 보는 눈을 넓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의 전위에 서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매 순간 갈등과 두려움과 흔들림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70년대 대학을 다닌 저 역시 교내 시위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벌어진 ‘서울의 봄’ 무렵 가두시위에 참여하겠다는 동아리 후배들을 말리는 입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의학공부는 정해진 시기에 해야 할 공부가 있는데 그것을 건너뛰게 되면 의사로서 갖추어야할 전문지식이 절름발이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위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의 완성된 의사가 되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후배들을 설득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치열하게 사회개혁에 나서지 못한 얼치기가 된 셈입니다.

 

북한체제에 관한 저자의 입장은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은 정치적으로 억압적이고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체제였고, 이는 우리가 바라는 대안사회가 아니었다.(107쪽)”라고 적고, “북한 체제의 온갖 문제점에 대해 목청을 높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남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117쪽)”라고 적었습니다. 북한 인민들의 인권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하고 남한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논하는 것을 연계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닐까요?

 

“나는 법과 법학이 우리 현실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법학자로서 나 자신의 역할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160쪽)”라고 적은 구절이 혹시 저자가 법을 공부하는 이유가 아닐까 추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연관이 있는 부분이라서 적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선망하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사(士)’자 들어간 직종에 관한 이야기(69쪽)입니다. 의사(醫師)는 당연히 ‘사(士)’자 들어가는 직종이 아니라 교사(敎師), 목사(牧師) 등과 함께 ‘사(師)’자 들어간 직종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여건이 과거 잘 나가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첨병이라는 자만심(?)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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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뒤집어보기 살림지식총서 8
장석정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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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연수하는 동안 구경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려다 보니 겉으로 보이는 미국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마침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에 미국에 관하여 요약해놓은 책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읽어서 참고해볼 생각입니다. 그 첫 번째가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계신 장석정교수님의 <미국 뒤집어보기>입니다. 사실 무엇이든 겉만 보아서는 제대로 안다 할 수 없기 때문에 속살을 들여다 볼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국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정서는 복합적인 것 같습니다. 6.25동란으로 한반도가 공산화될 위기를 막아준데 대하여 감사하는 생각이 있는가 하면, 저자의 말대로, “일찍이 일본의 한국 병탄을 눈감아 주었고, 한국전쟁을 일으켜 반도를 두 동강 내더니만(무엇에 근거한 주장인지 모르겠습니다.) 군사독재를 도와 한국의 민주화를 저해해왔고, 최근에는 일방적인 패권주의로 일관하면서 세계화, 신자유주의라는 간판 뒤에 숨어 미국화의 속셈을 펼치고 있다.(4쪽)”라는 생각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미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저자는 이와 같이 상충되는 생각들이 부딪히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우리가 미국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현실과 미래의 큰 부분이 미국과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몰이해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먼저 내놓고 있습니다. 결국은 친미, 반미를 논하기 전에 용미(用美)를, 그보다 전에 지미(知美)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9.11사태가 일어난 다음에 테러조직을 뒤쫓는다는 명분으로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 미군을 투입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랑과 존중, 이해와 동정을 바탕으로 하여 자유와 정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미국이라는 ‘가치’와 ‘이상’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와 이상을 성취하기 위하여 미국이 선택한 방법론에 대한 세계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내부의 갈등을 봉합해온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이어서 미국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의 의미를 새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다룬 <노후,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 http://blog.joins.com/yang412/13431662>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한 이유를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자유시장경제는 다른 나라와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즉, 정부가 은행을 중심으로 자본을 통제하고 있는 일본이나 독일을 자유시장경제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경제의 큰 틀을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말할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미국의 교육제도, 언론 그리고 문화와 스포츠부문의 특성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체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만, 학습장애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미국의 교육제도는 분명 보이지 않는 힘이 들어있다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소위 엘리트 체육으로 글로벌 스포츠계에서 급부상해온 우리나라는 최근 문화 부문에서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적용한 엘리트주의로 한류를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만, 과연 이런 현상이 지속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겠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처음부터 이민을 받아들여 출발하였고 지금도 세계 각국으로부터 이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다인종 국가일 수밖에 없는 미국을 일컬어 용광로, 샐러드 그릇, 모자이크, 무지개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다고 하고, 뉴욕 같은 대도시를 마치 인종박람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국새화 주화에는 'E Pluribus Unum'라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는 ‘One Out Of Many’, 즉 ‘다수로부터 하나를 이룬다’는 의미로서 저자가 ‘아흔 아홉 개의 얼굴을 가진 나라, 미국’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처럼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다양성과 복잡성이 바로 미국의 힘이라는 설명입니다. 단일민족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거꾸로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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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북 : 유럽 건축을 만나다
유성지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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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로운 책을 만났습니다. 책을 받아들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유성지님의 <화이트 북 유럽 건축을 만나다>입니다. 일단 제목을 보면 유럽에서 주목할만한 건축물들을 소개하는 책인가 보다 싶습니다. 책을 받아 가볍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건축물의 외관과 내부를 담은 사진으로 이어지고 있어 사진첩처럼 보입니다.

 

우선 놀라운 점, 저자와 편집자는 제목과 저자의 이름만 검은 색으로 박은 채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하얀 표지를 내세웠을까요? 서문을 읽어보면, “내게 책이란 텍스트와 이미지를 전달하는 수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디자인 오브제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현란하여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단순하되 기품이 있어 오랫동안 시선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 놀라운 점, 건축물이 주제라면 ‘저자는 건축학도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의외로 경영학을 공부한 저자는 디자인을 통하여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에 흩어져 있는 모두 48개의 건축물에 담긴 의미를 새기면서 각각의 건물에 디자인적인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 파리에 대하여 ‘파리는 내게 가장 로맨틱한 도시다’라는 통합적 이미지를 매기고, 첫 번째 건축물인 에펠탑에는 ‘디자인은 사랑이다’라는 메시지를 붙였습니다. 다양한 방향에서 다양한 시점에 찍은 여덟 장의 에펠탑의 사진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사진들을 직접 찍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책의 말미에 보면 이 책에 실린 책들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3.0에 의거해서 사용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 번째 놀라운 점, 그럼 저자는 유럽 건축 디자인 여행을 언제 떠났느냐 하는 점입니다. 군을 제대하고서 3일 만에 짐을 싸고 128일에 걸쳐 유럽 20개국 62개 도시를 돌았다고 하는데, 결국은 3년에 걸쳐 일본, 미국, 중국 등을 추가하면서 이 책을 집필하는 3년 동안 30여 개국을 여행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약관 20세에 달랑 500달러만 가지고 요코하마를 출발 러시아의 나홋카를 경유하여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레닌그라드, 핀란드를 거쳐서 파리에까지 여행하면서 서양 건축을 구경하면서 ‘건축이란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는 장을 만드는 행위 그 자체(안도 다다오 지음, 안도 다다오 일을 만들다, 62쪽; http://blog.joins.com/yang412/13384160)’임을 실감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이 좀처럼 해뢰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한탄하였습니다. 동남아 혹은 유럽의 관광지를 가보면 많은 한국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저자처럼 나름대로의 목표를 세우고 해외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젊었을 때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저자는 단순하게 건축물을 둘러보는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을 찾았을 때, “오랑주리 미술관은 왜 인공 빛이 아닌 자연 빛을 썼을까?”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자연 빛을 통해서 ‘수련’을 보게 되면서 한평생 빛을 그려냈던 모네를 생각하게 되고, 또 빛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 자연의 빛은 연속적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한다. 이러한 자연의 빛을 그대로 살린 채 모네 필생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수련을 감상하는 건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57쪽)”

 

일 때문에 유럽의 몇 곳을 가본 것에 불과하지만 저자의 관찰대상이 된 48개의 건축물 가운데 파리의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런던아이 등 세 곳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만, 저는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본 데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저와 같은 독자를 배려한 위로의 구절을 에필로그에 담아두었습니다. “이 책은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관심을 만드는데 있다.”고 전제하고, ‘내가 갔을 때 전혀 이런 느낌은 안 받았는데’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유럽에 갈 계획이 있는 독자가 ‘이 건축은 한번 볼까?’하고 생각하거나, 이미 갔다고 온 유럽이지만 ‘다음번에는 여길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하겠다고 합니다.

 

저는 저자의 생각대로, 여기 소개된 건축물 가운데 유럽에 가는 기회에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실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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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 - 지금 당장 실천 할 수 있는 노후 준비법
백정선.김의수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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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직은 현직에서 일하고 있지만, 은퇴를 앞두고 있는 형편에서 진즉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예스24에 다시 감사할 일이 생겼다. 지난 해의 북켄드 활동의 선물로 <노후,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를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의 최성환소장님은 추천사를 통하여 빨라서 좋은 세 가지로 짜장면 배달, LTE속도 그리고 노후준비를 들고, ‘이 책은 나의 은퇴를 준비된 은퇴, 즉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행복한 노후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최소장님은 은퇴소장을 맡은 다음에 ‘은퇴 준비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고 있으며, 그럴 때마다 ‘은퇴하지 마십시오’라는 대답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젊어서는 적당한 나이에 일을 놓고 노후를 즐기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은퇴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있습니다. 역시 건강이 허락한다면 일을 하는 모습이 훨씬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최소장님은 이 책에 담긴 핵심내용 두 가지를 이렇게 짧게 정리했습니다. “자식을 버려라!”, “퇴직 후 창업, 웬만하면 하지 마라.” 자식과의 관계에 분명한 선을 그으라는 충고는 우리네 정서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점이겠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서도 보면 자식을 챙기다가 정작 부모가 곤경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모두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에서는 IMF 사태 이후 정년퇴직이 앞당겨지게 되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기대여명이 길어진 것이 노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적인 큰 틀을 이해하고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면 본인의 상황에 맞는 노후 준비를 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제2부에서는 노후자금 마련의 가장 큰 적이 자식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식에게 투자하면 노후가 편해진다고들 하였지만, 과연 우리들의 자식들도 그리 생각할까요? 저자는 자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도 높은 주장을 내놓았지만, 사실은 자식을 버리면 부모가 살고, 부모가 준비된 노후를 보내면 결국은 자식도 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3부는 창업에 관한 내용입니다. 노후를 위한 모험으로 창업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실제로는 많은 분들이 창업에 실패하고 노후자금을 탕진하는 바람에 곤경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4부와 5부에서는 본격적이 노후준비를 위하여 생각할 것들을 설명하였는데, 국민연금과 보험사의 개인연금, 노후의 마지막 선택 주택연금을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노후준비를 시작하는 연령에 따른 차별화된 전략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6부에서는 노후준비에서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점들을 종합하고 있습니다. 특히 행복한 노후를 위한 5단계 플랜은 평범한 듯하지만 실행하려면 커다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노후준비에 관한 저자의 실무적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은 참으로 적절하고도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힘든 상황에 몰리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오로지 신자유주의의 도입때문이라고 진단하는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예를 들면, “대기업의 몸집 부풀리기는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전,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 정경유착으로 인한 대기업 특혜 주기의 관행은 신자유주의에서 대기업의 독식을 국가가 도와주고 눈감아주는 양상으로 이어진다.(67쪽)”라고 진단하였습니다. 하지만 제3공화국 이후로 우리는 보수정권에서 진보정권으로 그리고 다시 보수정권으로 회귀되는 정치의 민주화를 이미 이룬 바 있습니다. 진보정권에서는 기업활동을 범죄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기업의 투자활동을 얼어붙게 만들어 결국은 서민들이 먹고사는데 어려움을 겪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에서 모든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는 결국은 왕성한 기업활동을 통하여 사회적 부를 거두어들여야만 해결이 가능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원인에 대한 진단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각론에 들어가 적절한 노후준비를 위한 대책은 크게 공감이 간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 자식들과의 관계설정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역시 은퇴를 최대한 미루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상의 노후대책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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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 사회를 넘어서 - 서울대 송호근 교수의
송호근 지음 / 다산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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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실시된 지방선거 결과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아홉 곳의 광역단체장을, 집권 새누리당이 여덟 곳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키는 절묘한(?) 결과를 얻어 무승부를 이루었다는 총평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하던 야당의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결과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해운사나 사고 수습은 뒷전에 두고 탈출한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보다 갈팡질팡한 정부나 여당의 책임을 물고 늘어져 선거정국으로 이끌고 간 야당의 전략이 돋보였으며, 뻔히 보이는 야당의 전술에도 속수무책이었던 여당의 답답함 역시 돋보였다고 하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양분화 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 같습니다. 이성이 자리할 여유가 없이 오직 이념적으로 내 편이 아니면 네 편으로 분류하다 보니, 중립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 역시 어느 편이든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편을 굴복시키기 위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념으로 무장한 거대한 두 세력이 좁디좁은 반도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형국인데, 그러다 보면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든 지구촌에서 살아남기 위한 힘을 모으는 일 자체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여 사회적 혼란이 악순환하고 있는 남미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구 선진국을 통하여 건강한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견제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을 보아왔습니다. 물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때로는 피를 흘리면서까지 이루어낸 성과일 것입니다. 20세기 후반 압축성장이라고 표현되는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낸 우리 사회는 이어서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주화과정에서는 압축성장하지 못하고 이념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길어지는 암초를 만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우리사회의 미래가 점점 짙어지는 안개 속으로 매몰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송호근교수님의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는 좌우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미래를 보지 못하는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뜨게 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일할 무렵 만나본 적이 있는 송호근교수님은 정치와 경제, 사회를 넘나드는 넓은 안목과 정교한 분석으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사회학자입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0년대 성장위주의 국가정책이 빚어낸 노동문제와 불평등의 한국적 결합구조를 ‘시장기제적 통제’로 이론화하여 주목 받았으며, 유럽사민주의와 비교한 한국의 민주주의와 복지의 발현메커니즘에 관한 탁월한 업적으로 ‘제도주의적 정책사회학’의 선두주자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이런 학문적 배경을 가진 그는 우파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스스로는 이념적으로 중도우파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수렴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반발한 의료계가 총파업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를 지켜본 그는 2001년에 한국의 의료문제를 분석한 내용을 담은 책 <의사들도 할 말 있었다>를 낸 바도 있어 의료계의 속사정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송교수님도 좌우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헤매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매일 터지는 사건과 쏟아지는 사회적 쟁점들 속에서 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라는 한탄으로 서문을 열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변하고 있는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대응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이분법적 대응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개발을 앞세운 독재가 통하던 1970~80년대에는 독재에 대항한 반독재는 정의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설입니다. 당시에는 독재와 민주의 간단한 이분법이 가치관과 행동수칙을 제공했는데, 정의 개념이 명료했고 일말의 회의도 없었다고 저자는 그때의 사회적 분위기를 요약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분법적으로 싸웠고 이분법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독재의 시대가 가고 민주의 시대가 왔습니다. 다양한 학문, 예술, 사상 등의 영역에서 각기 자기의 주장을 펴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이분법의 시대가 가고 다분법의 시대로 진화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중대한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이념이 충돌하는 경계선에서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이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고 절충하여 타협을 이루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훈련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서로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못하니 각자의 주장을 관철하는데 매몰될 수밖에 없고, 때로는 후퇴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단순한 전술도 잊었던 것입니다. 진영논리에 매몰되다 보니, 승패를 가리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승부가 결정되면 패자는 승자를 축하하고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앞서 저자는 스스로를 중도우파로 평가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속내가 배경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40대 초반 이후, 좌파정권 10년, 우파 정권 5년을 겪었습니다. 좌우파 모두 공과(功過)가 있습니다만 모두 ‘선머슴 같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좌파는 우파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았고, 우파는 좌파를 위험한 사람들로 낙인찍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나, 거꾸로 얘기해도 틀리지 않습니다.(10쪽)”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저 역시 깊이 공감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좌파와 우파가 공감하는 시세와 처지에 대한 공통 인식, 즉 좌우파의 공동구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방정식’을 세워 이념에 집착하는 정치인들이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짓을 극복하자고 제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대책을 요구하는 분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모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요즘에는 촛불을 드는 경우가 참 많아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시민들이 소통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소통에 대한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데, 정작 소통에 나서야 하는 쪽은 대응이 시원치 않은 것입니다. 시민들이 충족되지 않는 소통에 대한 욕구를 거리로 나서 풀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라고 합니다. 약자를 대변한다는 대통령이기에 소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증했는데, 정작 자신의 입장이 강한 대통령은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힘을 쏟았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불통정권’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이 미리 말로 쏟아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듣기’에는 너무 미숙했고, ‘말하기’에도 너무나 서툴렀기 때문에 ‘불통정권’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만,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재개와 관련하여 촛불집회가 시작되고 결국에는 가두시위로 번지는 상황에서 ‘폭설이 쏟아질 때는 눈을 치워도 소용없다.’라는 이유로 광화문에 컨테이너를 쌓아 시위대를 차단하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우를 범한 것입니다. 촛불집회가 시작할 무렵 정부합동기자회견을 열어 끝장토론을 했던 것처럼 시민들을 상대로 협상과정과 광우병위험에 대한 과학적 진실을 낱낱이 밝혀 괴담이 확산되지 않도록 했어야 합니다.

 

저자는 소통이란 상대적인 점을 들어 불통의 책임을 정부 혹은 권력에만 두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교양시민이 많지 않은 것 또한 불통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교양시민이란 전문지식과 학식, 품위와 윤리를 갖춘데 더하여 공익에 대한 긴장을 내면화한 시민이라고 규정한다면, 교양시민층이 과연 얼마나 두터운가하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우리사회에서 교양시민의 축적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커밍스가 냉소적으로 표현한 ‘이념의 정화(ideological purification)’가 공론장의 자율적 정화작용이 아니라 해방후 좌우세력이 격돌하는 가운데 극악한 폭력과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여 이루어졌던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생적으로 뿌리를 내려가던 시민단체들이 정치권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들을 정치적 호위세력으로 끌어들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시민단체들은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사람들로 넘쳐나면서 보수와 진보의 격돌과 정치투쟁을 조정하고 걸러줄 진정한 의미의 시민운동은 방향을 잃어버리고 정치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독립한 국가들 가운데 선거를 통하여 민주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뀐 정권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자 다시 정권을 바꾸기까지 하였습니다. 즉, 오랜 세월을 거쳐 선거에 의한 민주주의가 정착된 서구와는 달리 경제성장과 마찬가지로 민주화도 압축성장의 가도에 들어선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민주화는 정치민주화, 사회민주화 그리고 경제민주화의 세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저자는 각 단계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치민주화의 핵심은 정치 영역에서 ‘경쟁과 참여’촉진이고, 사회민주화의 핵심은 ‘기회균등’의 촉진과 ‘소득 불평등’축소이며,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거대 자본의 과잉권력통제’ 또는 ‘파행적 시장지배금지’이다.(153쪽)”

 

첫 번째 정권교체가 가능하게 한 김영삼정부와 김대중정부 시절 정치민주화의 기틀을 다졌다고 하면 두 번째 정권교체가 일어난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사회민주화라는 과제를 맡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주류의 주류화’를 겨냥했던 노무현 정부는 과격한 ‘말의 정치’ 때문에 좌절했고, 이명박 정부는 ‘무(無)정치’ 속에서 증발했다고 진단합니다. 정권연장에 실패한 세력이 선거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새 정부를 끊임없이 흔들었는데, 새 정부의 대응능력이 시원치 않았던 것이 사회민주화의 기간이 길어진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박근혜정부는 사회민주화와 경제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된 것입니다.

 

사회민주화에 이은 경제민주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지난 대선 때 화두가 되었던 무상복지에 대하여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진실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복지는 사회적 권리로서 누구나 태어나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혜택입니다. 중요한 점은 무상복지를 논하는 과정에서 ‘복지=기업 경쟁력 강화=일자리 지키기’라는 등식을 간과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시절 기업을 노동자에게 돌아갈 이익을 빼돌리는 집단으로 몰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은 기업은 생산활동이 위축되었고, 생산시설을 3국으로 이전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시장은 그만큼 위축되는 결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때 만들어진 반기업 정서는 이명박 정부의 기업프렌들리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기업활동의 위축에 더하여 기득권자의 방어벽이 함께 작동하여 새로이 노동시장에 들어서야 할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일고 있는 복지논쟁의 이면에는 성장과 분배를 각각 강조하는 진영의 이념이 대립하는 구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이분법적 사회가 배태하고 있는 문제점인데, 저자는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독일의 사례를 참고할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 규모의 통일비용, 실업난, 높은 수준의 복지, 기업 경쟁력 하락까지 겹쳐 위기상황에 몰렸던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로 수렴되는 공공철학의 힘을 바탕으로 유럽경제의 사령탑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몫을 줄여서 일자리를 창출해낸 독일인들의 공동체 우선 정신을 우리에 맞게 보완한 새로운 사회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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