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서재 - 길에서도 쉬지 않는 책읽기
이권우 지음 / 동녘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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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성격이 모호한 듯합니다. 제목을 보면 여행에세이인 듯하지만, 막상 읽다보면 여행기를 적은 책을 읽은 느낌을 적은 북칼럼집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행자의 서재’라는 제목이나 ‘길에서도 쉬지 않는 책읽기’라는 부제가 적절한가 싶습니다. ‘책을 따라 떠나는 여행기’ 정도가 안성맞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도 요즘 여행기 읽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 책 또한 그런 이유로 읽게 된 것입니다. 오래전 메모해두었던 북미 여행기록을 바탕으로 유기(遊記)를 써보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여행기에 탐닉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지금-이곳을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이 저를 여행기로 이끈 듯합니다. 짐 챙기는 사람이 그러하듯, 책장을 넘기며 저는 중력의 법칙에 묶여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상상하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24권의 여행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들을 네 개의 영역으로 분류했습니다. 그 영역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영역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1장 국경을 빠져나오자 여행이 시작됐다, 2장 걷는 길 위에 고독과 행복이 동시에 있다, 3장 사람들 속에서 내 청춘의 길을 찾다, 4장 장막을 걷어라, 창문을 열어라, 등입니다. 제목이 문학적이라고 해야 할지 현학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4권의 책 가운데 제가 읽어본 책은 3권에 불과해서 저자의 생각과 저의 느낌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은 아쉽습니다만, 좋은 책을 소개받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 셋>입니다. 기왕의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틀에 박힌 형식을 버리고, 여행의 본질이 무엇인지, 타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윤리 감각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지 끊임없이 사유할 거리들을 독자들에게 던지는 방식으로 적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자의 서재>의 저자는 윤여일이 <여행의 사고 셋>에서 적고 있는 번역에 관한 생각을 인용하면서, 번역을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한 여행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겪고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무엇인가를 언어로 옮기는 일은 상당히 지난하고 위험하다. 자칫 여행기가 감상의 범람으로 넘치고 마는 일이 벌어진다. 진짜 여행기는 ‘금욕’의 수사학이어야 한다. 함부로 말하지 않되, 그곳의 활력을 전하는 글은 쓰기 어렵다 더욱이 해석하는 대목에서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번역만큼 어려운 것이 여행기 쓰기란 말이다.(37쪽)” 이권우와 윤여일의 여행기에 대한 정의를 읽고 나서는 유기를 써보겠다는 생각을 크게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마다의 느낌이 다르고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도 다르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것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으면서 느낀 점입니다. 물론 읽으면서 동의하기 어려운 경우도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오소희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에 대한 글에서 저자는 어리다 못해 돌이나 지났을까 싶은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하는 외국인을 보면서 그들의 여행태도를 높이 평가했다는 누군가의 글을 인용하면서 어렸을 때 두루 보고 듣게 해주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아이가 살아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쓰려고 하는 유기에 등장하게 될 우리 아이들은 저와 함께 여행을 할 무렵에 초등학교 저학년, 그리고 네 살 정도 되었는데, 두 아이 모두 북미대륙을 종단하고, 횡단한 여행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소희는 세 살 박이와 단 둘이서 터키를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초등학교의 고학년은 되어야 보고 들은 것에 대한 기억을 분명하게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 더, “희한한 여행기다. 처음 가본 곳의 풍경이나 유물에 대한 넋두리는 절제되어 있다. 대신, 그곳에 가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와, 책을 읽어 머리 안 이야기와, 가서 들은 이야기로 범벅되었다.(180쪽)” 제가 최근에 읽은 김별의 <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 http://blog.joins.com/yang412/13465682>이 딱 이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페인 여행에 대한 정보가 아쉬웠던 까닭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 시리즈의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기왕의 여행서들은 단순 가이드북이거나 관광 명소를 좇으며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간략히 소개하고 지은이의 감상을 곁들이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나아가서 인문학 여행기라고 해보아도 작가의 인문학적 지식을 곁들이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저자의 특화된 책읽기와 여기에서 얻은 느낌을 정리하고 있는 점은 분명 무언가 제가 남기는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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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 바다의 정복자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53
이브 코아 지음 / 시공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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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알렉산드리아를 갔을 때 우연히 방문한 박물관에서 바이킹의 유적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바이킹 박물관으로 기억합니다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Runestone Museum인 것 같기도 합니다(http://www.roadsideamerica.com/story/2607)] 1898년 스웨덴에서 이주한 농부에 의하여 발견된 이 바위에는 1362년에 8명의 고트족 사람과 22명의 노르웨이 사람이 이 지역을 탐험했다고 룬문자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룬문자가 조각된 바윗돌의 진위 여부를 분명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때 박물관에서는 허드슨만에 상륙한 바이킹들이 캐나다를 종단해서 알렉산드리아 지역까지 진출했다고 설명했던 것 같습니다. 박물관 앞에 서 있던 거대한 바이킹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네아폴리스에 근거를 둔 아메리칸풋볼팀의 이름이 바이킹스입니다. 바이킹과의 인연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바이킹이 북아메리카에 상륙하였을까요?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로 나온 이브 코아의 <바이킹: 바다의 정복자들>은 그런 의문을 풀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이킹의 뿌리를 찾아들어가면서 이들이 유럽 제국을 넘어 아시아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까지 진출한 흔적을 뒤쫓고 있습니다. 바이킹의 선조들은 기원전 6,000년부터 원시적인 작은 배를 타고 스칸디나비아 주변의 바다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바이킹들이 살던 곳은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고 덴마크입니다. 로마제국이 붕괴되면서 바이킹들은 북유럽국가를 시작으로 침략을 시작하였는데, 9세기에 이르러 바이킹은 서유럽 전역을 강타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300년 이상 바이킹은 끊임없이 이웃나라를 침공하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었고, 스웨덴인, 덴마크인(데인인) 그리고 노르웨이인으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스웨덴인은 동쪽으로 데인인과 노르웨이인은 서쪽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노르웨이인은 아일랜드를 침공하여 바이킹부족국가를 세우기에 이르렀고, 대서양을 건너 그린란드에도 거주한 바 있으며, 북아메리카 인디언과 교역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콜럼버스보다 5세기나 앞선 992년의 일로서 붉은 털 에리크의 아들 레이프는 35명의 바이킹들을 이끌고 그린란드를 거쳐 래브라도반도에 상륙하여 빈란드라고 이름짓고 그곳에서 겨울을 났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탐험에서는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주우하여 대결을 벌이기도 했으며, 세 번째 방문에서는 600명의 남녀 바이킹족들이 아메리카대륙으로 떠났지만 결국은 정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그린란드로 물러났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바이킹이 자신들의 삶의 근거지를 벗어나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조선술과 항해술에 기반하고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이킹들은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등을 침공하여 그곳에 거주하기도 했으며, 러시아를 경유하여 내륙의 강을 거슬러 비잔틴세계에 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전략 등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생활상과 종교 등에 대하여도 설명하였습니다.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의 특징인 권말부록 성격의 기록과 증언에는 바이킹족들이 남긴 서사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이킹족은 1,000년 무렵 라틴문자가 전해지기까지는 다뉴브강 중류지방의 게르만인이 처음 사용하여 덴마크로 전해졌다는 룬문자를 사용하여 비석 등에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바이킹문명의 대표적 문학작품으로 <에다>에 실려 있는 시들이 있는데, 구전되어 오던 이 시들은 스칸디나비아의 신화를 노래한 것들로 13세기들어 스너리 스투를루손이 집대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에다의 시들은 입으로 읊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글을 쓰거나 읽으면 그것이 지닌 본래의 맛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 시들은 두운법(頭韻法)의 기교와 악센트로 묘미를 살리는 시의 연, 온갖 수사적인 장치로 자익된 시로서 영웅적 행위와 영광스러운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139쪽)

 

또한 부록에서 소개하고 있는 뉴펀들랜드 북서 해안 근처의 랑소메드에서 빈란드의 유적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일찍 북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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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언의 땅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73
필리프 자캥 지음 / 시공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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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여행하면서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만난 곳은 글레시아 국립공원 가는 길에서 만난 플레인 인디언들이 사는 지역이었고, 러쉬모어 지역에 조성하고 있는 크레이지 호스 유적, 그리고 아리조나주에 남아 있는 인디언 마을 유적, 그리고 콜로라도 메사버데에 남아 있는 인디언 유적 등입니다. 그 옛날 광활한 대륙을 무대로 거침없이 살아왔던 이들의 삶은 유적으로 남아 있거나 인디어 보호구역으로 제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부터 줄지어 영화관에 가서 단체로 서부영화라도 볼라치면 멋진 기병대를 공격하는 인디언들을 무찌르고 승리하면 손뼉을 치고 기뻐하던 생각이 납니다. 마치 제가 영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착각하고는 습격해오는 인디언들을 무찌르는 기병대가 된 것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알고 보면 기병대가 침입자이고 인디언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려는 지난한 싸움을 한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유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던 인디언들의 땅을 컬럼버스에게 들킨 것이 비극의 시작이 된 셈입니다. 그렇게 등장한 유럽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제 발등을 찍는 일이 된 셈이기도 합니다.

 

넓은 땅에 흩어져 살아온 인디언들은 규모가 작은 부족 단위로 독립적으로 살면서 때로는 부족 간에 전투도 불사하는 등 부족들 간에 긴밀하게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던 것이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집단에게 끊임없이 밀려나게 되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오랫동안 외부세계와 교류없이 살아온 까닭에 외부세계에서는 이미 집단면역이 형성되어 있던 전염성질환에 속수무책인 것도 문제였다고 합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미합중국의 인디언정책은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류사회와 격리하고 생활을 지원하는 정책을 폈는데, 그것이 결국은 이들의 생존능력을 빼앗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디언들을 보호구역으로 이주시킨 이면에는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기 위한 속셈이 있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땅>에서 저자는 유럽에서 물밀듯이 건너온 이주민들에 의하여, 이 땅의 원래 주인이라고 할 북미 인디언들이 어떻게 소멸되어 갔는지 그 비극적 삶의 궤적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러쉬모어 지역에 거대한 조각상으로 새겨지고 있는 수족의 오글랄라 인디언 추장이었던 크레이지 호스가 남긴 말을 새겨둘 만합니다. “아무도 당신들 보고 이곳에 오라고 하지 않았소. 위대한 정령께서는 우리가 살도록 이 땅을 주신 것이오. 당신들은 당신들의 땅이 있소. 당신네들을 괴롭힐 마음은 추호도 없소. 위대한 정령께서는 우리들이 살 수 있도록 광활한 대지와 들소, 사슴, 영양 등 사냥감들을 마련해 주셨으니 말이오. 그런데 당신들이 이곳에 와서 우리의 땅을 강탈한 것이오. 당신들은 우리 사냥감을 죽이고 있소. 그래서 우리는 살기 어려워졌소. 지금 당신들은 우리더러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소. 하지만 위대한 정령께서는 우리를 노동이나 하라고 만드신 것이 아니라 사냥을 하라고 만드신 것이오. 그렇게 원한다면 당신네 백인들이나 노동을 하면 되지 않소. 왜 우리에게 문명을 멀리 하냐고 묻는 거요? 우리는 당신네들의 문명을 원치 않소! 우리의 아버지처럼. 그 이전의 아버지들이 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살아갈 것이오.(146쪽)”

 

저자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땅>에서 인디언들이 이주민족들에 밀려 쇠락해간 과정에 국한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인디언들의 고유한 삶과 문화에 관한 부분은 소략한 점이 아쉽습니다. 그들의 전통문화를 복원하여 전승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미합중국을 세운 선조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진정한 화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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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
김별 지음 / 세상의모든길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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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 가을에는 스페인에 가보겠다고 작정을 한 것은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때문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어볼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최근 들어 유난히 스페인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게 된 것이 막연한 동경을 넘어 가보자고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아프리카를 건너온 아랍문명이 유럽문명과 만난 독특한 모습을 창조해냈다는 곳을 꼭 보고 싶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정하고 있는 스페인여행을 통하여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를 정하기 위한 책읽기였는데, <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은 그런 목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일단은 우리나라의 여행사 프로그램을 이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스페인이라고 하는 미지의 나라에 눈을 뜨게 된다면 저자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고 그러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일 듯 싶습니다.

 

저자는 스페인을 여행하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만, 내용을 읽어보면 결국은 탑덱(Topdeck)이라는 버스를 이용한 단체여행과 카우치서핑과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결정한 숙소를 거점으로 하는 자유여행입니다. 해외여행을 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그곳에만 있는 특별한 무엇, 그것이 유적이 될 수도 있고, 박물관 혹은 미술관, 색다른 볼거리를 보기위한 여행이고, 두 번째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독특한 삶, 문화 등을 체험하기 위한 여행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분류에서 본다면 저자는 후자를 위한 여행을 세 차례나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저자의 초등학교 친구 덕분에 즐길 수 있었다는 산 세바스티안에의 미식가 클럽 소시에닷에서 스페인 사람들의 독특한 음식을 즐길 수 있었던 경험은 단체여행에서 즐길 수 없는 좋은 경험으로 부럽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제가 하려고 하는 여행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탑덱을 이용한 첫 번째 여행을 2012년 5월에 다녀왔는데, 그 여행이 남긴 진한 느낌은 곧바로 9월말에 열흘간의 일정의 자유여행으로 다시 스페인으로 향하도록 했고, 그도 부족했음인지 이듬해 1월 다시 스페인으로 향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녀온 스페인에서 저자가 얻은 것들은 굳이 그곳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탑덱여행에 같이 한 33명의 참가자들과 어떻게 어울리고 그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자신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예를 들면 마드리드에서의 어느 날 저녁 저녁을 먹을 때 만난 제이콥이 니콜라스라는 친구에게 끌려 다니면서 기념사진 찍어준 것이 전부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외국 아이들도 다른 사람 때문에 원치 않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합리적인 줄 알았던 서양에도 이런 친구도 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참 비싼 수업료를 치렀구나 싶었습니다. 젊어서일까요?

 

첫 번째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저자는 자신이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했고, 가까운 사람에게 한없이 의지하려했고, 무리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 바둥거렸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교적이 되어보기 위하여 혼자서 자유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사교적인 삶을 배울 기회를 찾아보는 것이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요? 여전히 누군가의 시선이 불편했기 때문에 스페인이라고 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곳을 찾았던 것은 아닐까요? 결국 저자는 한국이 아닌 곳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것이 굳이 스페인일 필요는 없었던 것이고, 저자가 추천하는 여행방법은 꼭 스페인을 위한 맞춤여행방식일까? 하는 의문만 남긴 책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그저 <틀에 박힌 일상을 떠나 외국을 여행하는 방법> 정도의 제목이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참 그리고 보니 저자가 스페인으로 향하게 된 계기가 회사의 파트너가 프로모션이 소셜을 활용해보자는 느닷없는 제의가 발단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 차례의 스페인여행을 마치고도 ‘소셜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만족한 답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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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이 답이다 -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떻게 현명한 판단을 내릴까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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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가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았다는 뉴스가 전해질 무렵, [양기화의 북소리]를 통해서 소개해드렸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http://blog.joins.com/yang412/13240282>의 저자인 게르트 기거랜처 막스플랑크 인간개발연구소 소장의 신간, <지금 생각이 답이다>를 읽었습니다. 전작에서 유방암 검진, 에이즈, 폭력, 재판, DNA 지문,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 등에 관하여 꼼꼼하게 분석한 통계자료를 제대로 해석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어 의학을 전공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만큼, 적지 않은 기대를 했던 책입니다.

 

저자는 한국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매해서 위험을 다룰 만한 능력이 없고 교육도 소용없다’라는 일부 사회과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였습니다. 실제로 2008년의 제2차 광우병파동을 지켜본 저는 이들의 주장이 틀린 것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이 다르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매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현명한 어림셈법과 간단한 통계적 사고, 예리한 직관을 이용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교육을 통해 위험에 숙달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John K. Galbraith)는 1977년에 발표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생각이나 설명의 틀로는 더 이상 설명하거나 예측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다만, 아무리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현안을 진지하게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기회주의에 굴복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오늘날은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로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지금 생각이 답이다>의 주제는 불확실성입니다. 왜 우리는 잘못된 결정을 반복하는지를 불확실성의 심리학으로 설명하고, 이어서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떻게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를 불확실성 다루기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더 안전하고 투명한 세상은 가능한지, 즉 불확실성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복잡성이 증가하다 보니 어떤 분야라고 해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엄청난 분량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결론부분만 요약해서 파악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과연 전문가들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뼈아픈 경험으로 얻은 교훈은 전문가의 조언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나 투자 상담사, 기타 위험 전문가도 위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도 많고, 소송을 걱정해서 클라이언트에게 자신의 가족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도록 조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내 운명은 내가 책임질 수밖에(18쪽)” 그래서 저자는 정보를 바탕으로 생활하는 민주시민의 핵심역량으로 문자해독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처럼 위험해독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비올 확률 맞히기, 경구피임약의 부작용 공포, 9․11테러의 역설 등의 사례를 들어 통계학의 맹점을 설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정확한 위험을 계산해 최적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직관에 의한 판단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09년 1월 뉴욕 라가디아 공항을 이륙한 US 에어웨이 1549편 항공기가 캐나다기러기와 충돌하여 좌우엔진이 모두 정지하는 위기상황에서 기장과 부기장은 라가디아공항으로 회항하는 선택보다는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하는 선택을 하였고, 그 결과는 모든 승객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 사건을 팀워크, 체크리스트, 현명한 어림셈법이 환상의 조합을 이룬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어림셈법은 직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1. 의식에 재빨리 나타난다, 2. 근본 이유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3. 행동하도록 할 만큼 강력하다, 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복잡해도 해법은 단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작에서도 인용한 셈법입니다만, HIV검사가 도입된 초기에 미국의 플로리다주에서는 ELISA검사에서 HIV 양성결과가 나와 통보받은 22명의 환자들 가운데 7명은 검사결과가 맞는지 틀린지도 모른 채 자살했다고 했습니다. 저자 HIV검사 양성의 의미를 유병율과 검사가 안고 있는 거짓양성 비율에 달려있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평소 HIV 위험이 없는 생활을 하였다면 겁먹지 말고 재검사를 받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전작에서처럼 저자는 의료영역에서의 다양한 문제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부딪힌 문제와 관련된 내용도 있습니다. 바로 중심정맥관의 삽입으로 발생하는 혈류감염의 사례입니다. 미국 병원의 중환자실에서는 연간 최대 2만8천명이 이로 인하여 사망하며, 이로 인한 비용이 23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요? 감염치료약이나 치료기술의 개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답은 오류를 개선하는 일이었습니다. 2001년 존스홉킨스병원의 중환자 진료전문의 피터 프로노보스트박사가 개발한 다섯 가지 체크리스트를 적용하여 중심정맥관 삽입에 의한 혈류감염률을 11퍼센트에서 0퍼센트로 떨어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88쪽) 제가 근무하는 심평원에서는 금년에 중환자실에 대한 진료행태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적정성평가를 시작할 예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심정맥관 삽입에 따른 혈류감염의 발생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설정한 평가지표가 현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적용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을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저자의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류 공개에 대한 무관용은 더 많은 오류를 낳고, 환자의 안전은 더욱 위협받는다.(92쪽)”

 

저자가 지적하는 잘못된 의료계의 관행 가운데는 의사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적 진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최선의 진료를 받은 것이 환자의 행운이라는 말은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일선 의사들의 상당수는 환자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불필요한 검사나 약물 투여, 수술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환자들이 의사가 질병을 진단하지 못했거나 적극적으로 진료하지 않았다고 고소할까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특히 변호사가 많아 소송에 대한 공포가 큰 미국에서 뚜렷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것입니다만, 어느 사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거론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방어적 진료의 행태는 1. 의학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많은 검사(영상진단 등) 실시, 2. 의학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많은 약물(항생제 등) 처방, 3. 불필요한 상황에서 다른 전문의에게 환자를 소개한다, 4. 확진을 위한 침습적 절차(조직검사 등) 제안 등입니다. 일종의 적극적 방어진료행위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적지 않은 의사들이 고위험 수술과 분만, 고위험 환자의 진료를 회피한다는데, 이는 소극적 방어진료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난과 비판, 소송에 대한 우려는 차선책을 취하게 만들고, 차선의 치료결정을 내리며, 방어적 의료행위를 하는 동기가 되기 마련인데, 결과적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이와 같은 부정적인 의료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불확실성 다루기를 설명하는 제2부에서 아무래도 저의 관심은 의료분야에서의 불확실성을 다룬 제9장과 제10장에 쏠립니다. 의료정보의 통계적 의미를 다룬 제9장의 내용은 어쩌면 의학을 전공하신 분들도 잘 읽어보셔야 할 부분입니다. 다양한 사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산전 진찰에서 다운증후군으로 진단받은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산전 진찰에서 다운증후군이 의심된다고 하면 대부분 임신중절을 권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산전 진찰에서 다운중후군 양성판정으로 받은 6~7명 가운데 1명의 태아만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즉 다운증후군 검사 양성으로 판정받은 태아 가운데 대다수는 정상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산모의 나이는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며, 다운증후군 아기를 낳을 확률도 커지고 있다. 산전 진단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자원이 투자되지만, 의사와 환자들에게 이런 검사를 해독하는 능력을 갖춰주기 위한 투자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256쪽)” 즉, 의사들의 검사해독능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에이미 쿠에엘벡 기자는 임신 20주에 받은 초음파검사에서 태중의 아이가 좌심실형성부전이라는 선천성기형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중절수술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출산과정과 태어난 아이를 지극히 돌보는 과정을 <가브리엘; http://blog.joins.com/yang412/6958744>이라는 제목의 책에 담았습니다. 쿠에엘벡기자가 임신중절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수긍이 갈만한 이유 없이 낙태로 가브리엘의 자연스러운 삶이 단축되었으리라는 점이다. 가브리엘은 아무런 고통 없이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었고, 임신은 나에게도 신체적으로 정상적인 일이었다. 아이를 분만예정일까지 품고 있는 일은 내게 별다른 위험이 아니었다.” 마음에 울리는 무엇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다시 <지금 생각이 답이다>으로 돌아가서, 저자는 의사들이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검사와 진료를 환자에게 권하는 관행을 환자들이 눈치채기 전에 행동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방어적 의료행위는 의사들의 동기에 대한 신뢰를 위협하지만, 이로써 의사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의과대학 커리큘럼에 통계적 사고를 가르치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이해가 충돌하는 사안이 될 수도 있다고 보여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파악하고 있는 의료계가 안고 있는 시한폭탄은 1. 방어적 의료행위실시(자기방어), 2. 의료통계 이해력 부족(계산맹), 3. 가치보다 이익추구(이해 상충)입니다.

 

마지막 제3부 더 안전하고 투명한 세상이 가능할 것인가를 짚어보는 ‘불확실성 넘어서기’에서 제가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과장된 위험몰이’라는 작은 제목의 글입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공황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위험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광우병 공포’입니다. 1990년대 말, 영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변종 CJD환자가 발생하면서 대중을 공포로 몰아넣었는데, 그 결과는 유럽에서 약 150명의 환자가 사망한 것에 불과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우병확산을 저지하기 위하여 유럽 국가는 약 380억 유로를 부담해야 했습니다. 어떻든 유럽의 광우병은 소멸단계에 들었다고 EU가 공식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2010년 7월 19일자 AFP 기사; “EU, 유럽에서 광우병 박멸 임박”; http://blog.joins.com/yang412/11709030).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2008년 우리사회를 뒤흔들었던 제2차 광우병파동의 이야기는 아예 언급할 가치조차 없을 것 같습니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이 또한 헛발질하는 전문가의 선동으로 확산된 과장된 위험몰이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과장된 위험몰이의 두 번째 사례를 신종플루 광풍을 들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타미플루 사재기와 같이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설명을 요약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자칫 부화뇌동하기 쉬운 디지털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위험해독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디지털 세상에 맞는 사실과 심리원칙을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위험과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능력은 학습에 의하여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공부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판적 사고는 지식의 기반에서만 가능하고, 이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며, 이 용기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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