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흔적을 찾아서
바바라 해거티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영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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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하는가? 신의 존재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목도 그렇습니다만, ‘생명의 DNA에서 죽음 이후까지, 뇌의 회로에서 우주의 과학까지 신의 존재를 찾아 나선 위대한 탐사’라는 카피에 끌려서 읽게 된 <신의 흔적을 찾아서>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현재까지의 과학적 방법론으로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다’입니다.

 

저자는 25년 경력의 탐사전문 작가인 바바라 해거티입니다. 과학과 종교의 해묵은 논쟁거리인 신의 존재증명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게 된 것은 저자의 영성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라는 기독교 교파의 가풍에서 자란 저자가 몸살에 걸렸을 때 타이레놀을 복용하여 증상이 호전되면서 종교를 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19세기 말경 미국의 에디 부인이 창립한 기독교의 분파로 죄, 병, 악은 모두 허망하다고 깨달음으로써 만병을 고칠 수 있다는 정신요법을 주장한다고 합니다. 이듬해 저자는 암에 걸려 있는 복음주의자를 인터뷰하면서 영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 몸보다 정신이 먼저 반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 어쩌면 위험이 닥쳤다는 신호가 느껴졌다. 나는 뒷덜미의 머리카락이 쭈볏해지는 걸 느꼈고 심장박동이 좀 빨라졌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지금처럼 말이다. (…) 나는 만질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어떤 존재에 조금씩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휩싸였다. 꼼짝할 수 없었다.(13쪽)” 이런 존재를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영적 경험을 한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이런 사람들에 대한 뇌과학적 연구결과를 뒤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유전자분석과 뇌화학적 분석 그리고 대뇌의 전기적 활동을 연구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임사체험이 등장하고,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를 정의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유전학적 연구로 영성이 높은 사람들에서는 VMAT2라는 유전자의 발현빈도가 높더라는 것인데, 이 유전자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라는 뇌활성 전달물질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고 있습니다.

 

신경과학자 마이클 퍼싱어는 저자가 생각하는 영적 경험의 정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우주의 온전한 존재가 무엇이든 그것을 경험할 때 그건 뇌의 활동이라는 것입니다.(179쪽)” 역사적으로 과학이 성취해온 과정을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코페르니쿠스가 바로 잡았고, 우리가 특별한 창조물이라는 환상은 다윈이 깼고, 프로이트는 우리가 논리적인 동물이라는 개념을 무너뜨렸다고 할 수 있다’라고 요약하면서, 인간이 동물종으로서 극복해야 할 마지막 환상은 바로 ‘신’이 인간의 뇌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존재라는 환상, 즉 우리가 그 존재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신의 존재나 영적 체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겠다고 하면서도 과학적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사례들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열두 살 된 소년이 13센티미터의 작은 망원경으로 토성을 보았다는 기억입니다. 아이들을 위하여 천문대를 방문하였을 깨 꽤나 큰 망원경을 통하여 토성의 고리를 관찰했던 저의 기억과는 거리가 있는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시신경이 손상되어 볼 수 없었던 여성이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누워있는 여자가 자신의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영적체험이 일어났다는 증거, 지문을 남긴다는 걸 과학은 증명해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은 마이클 퍼싱어의 설명으로 충분히 기각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지만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부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믿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 저자가 토마스 쿤이 내놓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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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과 패턴 - 복잡한 세상을 읽는 단순한 규칙의 발견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시공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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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5개월 가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만,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은 더디기만 한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많은 생명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스러져간 이유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작은 문제들이 누적되어 쌓여가다가 어느 날 엄청난 사고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사회적 원자; http://blog.joins.com/yang412/11996671>를 통하여 ‘사회현상이 물리학적 원리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가설을 소개한 이론물리학자 마크 뷰캐넌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 역사, 자연재해, 생태계, 시장과 자본, 경제원칙, 인간의 행동에 대한 유사성을 찾아내 수식화하고, 컴퓨터를 통한 시뮬레이션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열다섯 개의 장을 통하여 1914년 6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던 사라예보에서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에서부터 1988년 미국 와이오밍주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엄청난 화재, ‘검은 월요일’이라고 부르는 1987년 10월 19일 월스트리트를 공황상태로 몰고 간 주가폭락사태, 그리고 자연재해 가운데 가장 예측이 어렵다는 지진에 이르기까지 사회현상에서부터 자연현상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명하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라고 한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인용하여, 이 책에서는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접근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격변을 설명하기 위하여 ‘복잡계 물리학’이라고 하는 비평형 물리학에서 그 해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비평형상태에서 사물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그물망에서 발전하는 자연스러운 패턴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소용돌이치는 대기에서 인간의 뇌까지 방대한 영역의 자연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39~40쪽)”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가까이는 1995년 1월 17일 일본 고베에서 일어난 대규모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지켜볼 수 있었고, 2004년 12월 26일 태국 푸켓에서는 지진에 따른 쓰나미가 덮쳐 무려 30만명의 인명피해를 냈고, 2011년 3월 29일 일본 후쿠오카 지역을 덮친 쓰나미는 2만명의 인명피해와 함께 원전사고로 이어져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지진의 피해가 이렇게 큰 이유는 아직까지 대책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수준의 정확한 예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큰 지진이 발생하는 기전과 예보체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지진이나 자본시장의 끔찍한 파탄, 혁명이나 파국적인 전쟁 등이 모두 프랙탈과 멱함수 법칙에 의하여 작동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특히 흥미로웠던 건은 1988년 150만 에이커의 면적을 불태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대형 산불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을 찾았던 것이 1992년이었는데 아직도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저자는 삼림의 생태계와 산불의 관계를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증명해보였는데, 결론을 이야기하면 미국 삼림청이 1890년 이후 단 한 건의 산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방어조처를 취하다 보니 숲이 노령화되는 의도치 않는 변화가 생긴 것이 대형산불로 진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즉 “숲이 임계 상태로 유지되는 데는 산불도 일정한 역할을 하는데, 산불을 인위적으로 억제했기 때문에 잘타는 물질이 모든 곳에 높은 밀도로 쌓여서 초임계상태가 된 것(157쪽)”이라고 합니다. 작은 산불은 불에 잘 타는 물질을 제거해서 큰불이 나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비교해보면 작은 충돌 오히려 커다란 분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응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의 <공룡; http://blog.joins.com/yang412/13462207>에서 공룡의 멸종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읽었습니다만, 소행성 충돌설 이외에도 몇 가지 다른 이유가 검토되고 있다는 설명을 <우발과 패턴>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복잡계 물리학으로 자연과 사회현상을 설명해온 저자가 정작 끝에 가서는 ‘결론을 대신하는 비과학적인 후기’라는 제목을 붙여서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른다. 다만 어떤 행위를 성취하기 위해 사람들이 일정한 결합을 형성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이것이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346쪽)”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있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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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사 살림지식총서 84
이창신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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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한 공부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살림지식총서 시리즈로 나온 <미국 여성사>는 미국의 여성사를 연구해 오신 이창신교수님께서 정리하신 책입니다. 미국여성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에 관하여 먼저 생각해봅니다.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유관순열사의 항일운동을 폄훼하여 국정교과서에서 누락시키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사에서 3.1운동이 차지하는 위치는 자못 크다고 합니다. 개항이후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선에 머물던 여성운동은 3.1운동을 계기로 사회적 정치적 활동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1운동이 전국 규모의 시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의 주목에서 벗어나 있던 여학생들을 주축으로 시위에 관련된 일들이 은밀하게 전파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해방 이후 주로 미국에서 들어온 외래사조를 타고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미국 여성사>에서 미국의 여성운동의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에서 저자는 미국에서 여성해방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것은 1960년대였다고 합니다. 여성사와 여성학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여성운동의 의미, 가치, 목표, 법칙 등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이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들은 유교적 전통에 짓눌려 살았다고 이야기합니다만, 미국의 일부 계층의 여성을 제외한 일반여성들의 사정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여성 사학자 러다 거너는 여성운동을 주도한 미국의 여성사가 발전한 과정을 4단계로 설명하였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보충사’로 유명한 여성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활동을 기록해놓은 수준에 머물던 시기이고, 두 번째 단계는 ‘공헌사’로 여성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나 주제 등을 정리하게 된 단계, 세 번째 단계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이미 연구된 여성들의 공헌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벗어나 재해석이 이루어진 단계, 마지막 단계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여성사학계가 ‘젠더’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역사분석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는 시기를 말한다고 합니다.

 

사실 1990년대 초반에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처음 접하게 된 ‘젠더’라는 단어가 그저 성별을 의미하는 sex를 대치하는 단어라고 이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젠더(gender)는 일반적으로 생물학적인 성의 개념인 성(sex)과 구분지어 사용되는 개념으로 특정 사회나 문화에 따라 형성된 성적 차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관념의 차이에 불과한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는 단어를 대치하는 새로운 단어를 도입하는 사례가 많은 것을 보면 필요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미국의 여성운동은 크게 1기와 2기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19세기 중엽부터 참정권을 획득한 1920년까지를 제1기라고 하는데, 참정권을 획득한 다음에는 여성운동의 동력이 사라지면서 침체기에 빠졌다가 베티 프리단이 <여성의 신비>를 출판한 1963년대부터는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했던 1기와는 달리 남성과는 다른 차원의 여성성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즉 성에 대한 생물학, 심리학, 문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한편, 여성문제, 여성운동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까지 관심을 확대하고 증진시켜나간 시기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60년대 들어 미국 시회의 현재와 과거 속에 나타나고 있는 듯한 안정, 조화, 풍요의 이면에는 불안, 갈등, 폭력이 깊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한 신좌파 사가들의 등장과 맞물려 일어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신과파 사가들은 그때까지 미국의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집단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에서 3.1운동이 여성운동의 전환점이 된 것처럼 미국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6백만 명의 여성이 노동현장에 투입되면서 여성의 경제 참여가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여성사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이를 통하여 여성을 하나의 독립된 정체성으로 범주화시킨 것을 토대로 여성들의 역사를 일반역사 속에 편입시킬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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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함께하는 교감여행 - 태교에서 첫돌까지
김인혜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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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하는 순간도 사(邪)한 기운이 들지 않아야 한다고 믿을 정도로 아기가 출생하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가리는 것이 많았던 선조들입니다. 특히 아기가 태내에 있을 때 바른 심성을 갖도록 하기 위한 태교는 고려 시대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져 조선시대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 허주당 이씨가 쓴 <태교신기>에 그 내용이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핵심은 태교 십계명의 첫 번째인 師敎十年 未若母十月之育(사교십년 미약모시월지육), 즉 ‘뱃속 열 달이 출생 후 10년의 가르침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구절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모든 것을 삼가고 조용하게 거처하면서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이 바뀌면서 태교에 관한 내용도 바뀌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태중의 아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태담태교,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태교, 임산부가 적절한 운동을 함으로써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운동태교, 심지어는 태아가 오감을 느낄 수 있다 해서 오감을 자극하는 오감태교도 소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장성해서 혼인을 할 나이에 들어선 까닭인지 이런 이야기들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 같습니다.

 

김인혜님의 <아기와 함께 하는 교감여행>은 여행을 좋아하는 여성이 임신기간 동안 여행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출산 직후에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 가능할까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여행을 주제로 하고 있어서 특히 젊은 여성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지방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말이면 근무지를 중심으로 명승지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답답한 집안을 떠나 자연으로 나가면 마음이 열리는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둘째 아이가 더 활동적인 듯합니다.

 

<아기와 함께 하는 교감여행>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은 임신기간 중의 여행인데, 첫 번째는 12주째 1박2일의 호텔 스테이와, 20주째 3박4일의 도쿄 여행 그리고 26주째 6박 8일의 하와이 여행입니다. 뒷부분은 출생 100일 된 아이와 함께 한 2주 동안의 도쿄여행, 생후 200일 2박3일의 규슈여행 그리고 생후 300일에 7박9일의 방콕여행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2년이 안되는 기간 중에 다섯 차례의 해외여행을 다녀온 셈입니다. 아기를 갖지 않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해외여행이 잦은 편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육아휴직 기간을 활용해서 해외여행을 즐길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여전히 아이와 함께 하는 해외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해외여행 마니아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임신과 육아과정에서 궁금한 것이 생겨도 속 시원한 답을 구하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특히 불가피하게 해외여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여행준비에서부터 의학적으로 주의해야 할 점 등에 관하여 잘 정리된 자료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태교여행을 앞세우지 않아도 관심을 가질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기와 함께 하는 교감여행>은 산부인과와 소아과선생님께서 해외여행을 해야 하는 임산부 혹은 젖먹이들이 조심해야 할 의학적 조언을 곁들이고 있어 신뢰가 간다고 하겠습니다.

 

“결혼을 하니 참 좋고, 아기를 낳으니 더 좋다”라는 저자의 말씀이 아직 미혼인 여성들의 귀에 쏙 들어오는 조언이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제가 미국을 여행할 때 큰 아이가 여덟살 작은 아이는 네 살이었습니다. 큰 아이는 여행하면서 구경했던 것을 조금씩 기억한다고 합니다만 작은 아이는 전혀 기억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네 살이 안 된 아이들에게 여행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힘든 육아과정에서도 얼마든지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하겠습니다.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이 꼭 젊은 여성들의 자기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읽기였습니다. 풍부한 사진과 필요한 정보들을 눈에 띄게 배치한 기획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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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술책 - 곰브리치에서 에코까지 세상을 바꾼 미술 명저 62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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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늬 분야처럼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분야도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역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겠는데, 마음만 있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들어 재미를 붙이고 있는 책읽기의 관심분야를 확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술 분야의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발적으로 읽는 책을 통하여 잠시 관심이 쏠리기는 하지만 체계적이지 못해 금방 잊어버리게 됩니다. 아내의 추천 덕분에 이런 아쉬움을 풀어줄만한 책을 만났습니다. 미술사를 강의하시는 이진숙님의 <위대한 미술책>입니다. 저자가 머리말에 적은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일은 세상과 만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듣고 더듬고 느낄수록 그만큼 더욱 풍요로워진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공부하는 일 역시 세상과 더 많이 감응해 나가는 과정이다.(5쪽)”라는 말씀에 공감하는 것은 세상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이해하는 법을 깨치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작품을 만든 분의 설명을 듣는 것이 제일 좋을 것입니다만,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폭넓은 시각을 갖춘 평론가의 해설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회를 자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책을 통해 스스로의 이해를 높이는 것이 차선의 길입니다. 이진숙님은 좋은 책을 고르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팁도 알려주셨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책은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영육의 조화를 이룬 책을 사랑한다. 책의 영혼이야 다들 알겠지만, 책의 육체라고 하니 좀 낯설 수도 있겠다. (…) 책은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지식의 깊이만큼 중요한 것이 책의 육체가 되는 언어의 유려함이다.(7쪽)” 책의 영혼에 해당하는 내용과 함께 육체에 해당하는 ‘언어의 유려함’ 즉, ‘독자의 호흡을 배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였는가?’를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위대한 미술책>이 미술에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공부가 많이 부족한 제게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저자가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작가, 미술사가, 비평가, 이론가, 컬렉터와 미술시장 관계자, 창작 행위, 미술이론, 미술관과 미술시장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미술 생태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62권의 미술을 주제로 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과, 저자가 고른 62권의 책은 독자들이 미술을 통해 미감을 발전시키고, 지식을 습득함에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한국미술을 별도의 장으로 독립시키고 있는 것은 우리의 미술 교육과 미술시장 전반이 서양미술에 치우쳐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라고 합니다.

 

독서가들이 책을 읽은 느낌을 묶어 내놓은 책들이 일반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미술책>은 단순한 서평에 머물지 않습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위대한 미술책>은 구체적인 서적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책 밖의 치열한 미술 현장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저자의 깊은 성찰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그 성찰은 서양미술에 경도되어 있는 우리의 미술이 전통적인 한국미술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가 인정하는 독보적인 모습으로 재탄생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62권의 미술책을 작가 이야기, 서양미술사, 한국미술, 미술이론과 비평 그리고 미술시장과 컬렉터 등 다섯 부로 나누었습니다. ‘곰브리치에서 에코까지 세상을 바꾼 미술명저 62’라는 부제를 달아놓은 것처럼 미술에 관한 숱한 책들 가운데 62권을 뽑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저자 덕분에 읽은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 http://blog.joins.com/yang412/13493806>는 그리스시대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문학과 예술에 등장하는 목록과 열거의 예를 발췌하고 그 성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선별한 사례들을 모두 21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원전을 소개하고, 주제에 해당하는 미술작품들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에코는 방대한 자료 가운데 <궁극의 리스트>로 올리기에 적절치 못한 자료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선별했다고 합니다.

 

<위대한 미술책>에서 인용한 책들은 공저로 된 것도 있고, 한 사람이 쓴 여러 종류의 책이 선정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58명이 쓴 62권의 책들 가운데 이 책 이전에 읽은 책으로는 오직 질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동안 무얼 했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말고 여기에 언급된 책들을 꼭 읽어 보기 바란다.(12쪽)”라는 저자의 권고에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인용한 책을 바탕으로 저자의 생각을 풀어가고 있어 원전의 내용을 읽어 저자의 생각과 비교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감각의 논리; http://blog.joins.com/yang412/13157096>를 읽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들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라고 느낌을 정리한 바 있습니다. 이진숙님 역시 ‘<감각의 논리>는 들뢰즈가 베이컨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론을 설파한 것’이라는 철학자들의 지적에 공감은 하지만 철학적 해석보다는 회화적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즉, ‘모든 화가는 각자의 방식대로 회화의 역사를 요약한다.’라고 한 것처럼 들뢰즈는 “자기 방식으로 새로운 미술사의 계보를 만들어냈다.(98쪽)”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저자가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를 뽑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추상화가 되지 않으면서 구상화를 넘어서기’라는 어려운 과제를 설정한 들뢰즈로부터 ‘닮도록 하여라. 단 우발적이고 닮지 않은 방법을 통해서’라는 멋진 테제를 읽고, “이 말은 시각예술이 처해 있는 본질적 모순을 정확히 보여준다.”라고 짚었습니다. 이어진 구절에서는 앞서 말씀드렸던 책의 육체에 해당하는 언어의 유려함은 여기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야 되는 모순, 돈오돈수(頓悟旽修)처럼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모순 같은 것 말이다.” 저자는 들뢰즈가 내세운 ‘감각’에 대하여 말초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되는 교차점이며, 따라서 보다 본질적으로 세계와 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저자가 고른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을 다시 읽어볼 이유인 것입니다.

 

이 책의 1부 ‘작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예술가는 반 고흐, 고갱, 세잔, 피카소, 샤갈, 뒤샹, 베이컨, 백남준 그리고 뱅크시 등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작가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고, 별들이 위성을 거느리듯 작가에 대한 전기들이 넘쳐나는데, “이들은 누구나 알만한 19세기 말, 20세기의 작가들이고, 이 시기의 작가들의 작품과 삶은 지금, 21세기의 미술 생태계를 설명하는 데도 여전히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고른 것이라고 합니다. 작가별로 선정한 이유도 요약하고 있는데, 백남준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백남준의 꿈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25~26쪽)” 굳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을 끌어올 이유는 없다고 하겠습니다만, 저자가 고른 62권의 책 가운데 우리 저자가 쓴 책이 26권에 달하고 있는 점도 같이 짚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미술이 한 꼭지로 다루어지고는 있다고 해도 다소 많다 싶은 느낌이 들지만, 한국어로 쓰인 ‘읽을 수 있는 책’만 선별한다는 원칙을 적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용은 훌륭하지만 문체가 조악하여 읽는 이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책들은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특히 번역이 중요한 외국서적에서 문제가 된 경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일반 독자가 번역의 문제를 제기한 책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번역문제 역시 쉽지는 않은 부분인 것 같습니다.

 

피카소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은 제가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미술관 산책; http://blog.joins.com/yang412/13205419>의 저자 최경화님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찾았을 때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적었습니다. 그것은 “이름이 ‘게르니카’일 뿐, 전쟁으로 고통받는 어떤 도시, 어떤 장소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진숙님은 <게르니카>는 물론 6.25남침을 주제로 한 <한반도에서의 학살>에서도 ‘현대에 일어난 학살’의 구체적인 의미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보다 그림을 먼저 배운 신동 피카소가 ‘10대 시절 아카데미 수준을 뛰어넘는 그림을 그린 천재였다’라고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천재 신화’가 피카소 성공의 핵심이자 실패의 원인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피카소가 열다섯 살에 완성한 작품으로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과학과 자선>을 보면 그의 입체주의 혹은 초현실주의 작품과는 달리 금세 무언가 와 닿는 느낌이 듭니다. 

 

서양미술사를 다룬 2부에서는 미술사를 이미지의 역사로 대체한 레지스 드브레의 <이미지의 삶과 죽음>이 인용했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언급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프루스트가 창조한 문인 베르고트가 얀 페르메이르의 <델프트의 전경>을 감상하다가 “내가 이런 것을 써야 했는데!”라고 하면서 죽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을 인용한 드브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의 말없는 영원성에 압도당한 것으로 표현하고, 소설의 이 대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의 감각적 상태’를 전하는 데 문인보다 화가가 유리하다는 예증으로 인용한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해석이 지나친 점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에서 베르고트가 <델프트의 전경>을 감상하는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푸른 작은 인물이 몇몇 있는 것, 모래가 장미색인 것을 주목하고, 드디어, 황색인 작은 벽면의 값진 마티에르를 발견했다. (…) ‘나도 이처럼 글을 썼어야 옳았지 (…) 내 최근 작품은 모조리 무미건조하단 말야. 이 황색의 작은 벽면처럼 채색감을 거듭 덧칠해서 문장 자체를 값진 것으로 했어야 옳아.’(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갇힌 여인, 245쪽, 국일미디어 펴냄; http://blog.joins.com/yang412/12923536)” 그러면서 그는 하늘의 저울 한쪽 쟁반에 자신의 목숨을 다른 한쪽에는 황색 벽면이 올려진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이 무모하게도 작은 벽면 때문에 목숨을 희생했구나’라고 후회하기에 이릅니다. 유예진교수님은 이 장면을 같은 화가의 <진주를 저울질하는 여자>로 연결하여 해석했습니다.(유예진 지음, 프루스트의 화가들, 256-275쪽, 현암사 펴냄; http://blog.joins.com/yang412/13484901) “고작 페르 메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을 뿐인 한 화가가 학식과 세련된 솜씨를 다해 황색의 작은 벽면을 그려 냈듯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한 가지를 그려야 한다는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고 느낄 아무런 이유도 없다.(246쪽)”라고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프루스트는 베르고트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하여 작품 활동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달리 생각하면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한국미술사를 다루는 제3부일 것 같습니다. 미술을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한국미술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역사적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 과거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한국미술의 뿌리에 대한 공부 없이 현대적 작가들의 작품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공허한 일이라는 생각에서 한국미술의 원형을 그려보고 한국 현대 작가와 비교해 보는 작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저자가 고른 여러 가지 책들 가운데 우선 <오주석의 한국 미 특강; http://blog.joins.com/yang412/13488647>을 읽었는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만방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면 먼저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할 것이라는 오주석님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선인들의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첫째,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둘째,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할 것이라는 ‘옛 그림 감상의 원칙’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하나 더, 이상현님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 http://blog.joins.com/yang412/13005057>에서 “한옥에는 음악처럼 높낮이가 있어 끊임없이 리듬을 만들어 낸다. 지붕 선이 리듬을 타고 추녀 끝에 걸리면 벽면을 채운 재료들이 질감의 변화를 이끌며 흥을 돋운다. 한옥에서 시작한 율동감은 자연스럽게 마을로 이어진다.”라고 적은 것처럼 우리나라 건축물에 담긴 심오한 철학과 문화사적 흐름을 깨치려면 <김봉렬의 한국 건축 이야기>를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라는 이진숙님의 권고를 챙기려 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이 책의 부제 ‘곰브리치에서 에코까지 세상을 바꾼 미술 명저 62’를 저자는 ‘위대한 미술책’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만, 바로 저자의 이 책이야말로 ‘위대한 책’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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