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케어의 복지정치
김성수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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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반도 점령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간섭이 도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국가들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전임 부시대통령이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벌인 전쟁이 실패한 전쟁으로 규정되고 대통령선거에 즈음하여 본격화된 금융위기가 반사이익을 가져다주었다는 냉정한 평가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개혁안들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 그가 초선 상원의원이라는 초짜 정치인에다가 흑인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감상해보지 못했습니다만, 2008년 발표됨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감독은 의료기관들이 수익논리에 따라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민간 의료보험제도의 불합리성을 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혹은 영화라는 매체가 감독의 기획의도에 따라서 특정한 부분을 강조하는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시청자 혹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무어 감독이 <식코>를 제작할 정도로 많은 미국 국민들이나 전문가 역시 미국의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제도를 뜯어고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바마 이전의 민주당 대통령이었던 클린턴 역시 취임과 동시에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에 착수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보다 많은 미국 국민들이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변화를 실행에 옮기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정치외교학과 복지학을 전공하신 김성수교수님이 쓴 <오바마케어의 복지정치>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강보험개혁 과정과 제약요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체계의 핵심을 민간에 맡기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우리나라와 흡사하지만,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민간보험에 주로 의존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당수 국민들은 건강보험제도권 밖에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개혁의 필요성이 절실한 이유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되기는 했습니다만,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연수를 받던 시절 미국의 건강보험제도를 조금 맛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지도교수님께서는 연간 7,600달러 정도의 연수비용을 지원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셔서 걱정을 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액으로는 건강보험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시게 된 지도교수님께서 연봉을 12,500달러로 올려주신 덕분에 안심하고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두 아이들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도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험가입이 안된 이웃 가운데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시는 사고를 당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나중에 메디케이드의 지원을 받아 입원비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 유학생들이 출산을 하는 경우 역시 메디케이드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은 건강보험 정책결정의 이론적 배경과 분석틀, 미국 건강보장체계의 구조와 문제점, 오바마 행정부의 건보개혁 과정과 제약요인, 오바마 행정부의 건보개혁 이후 과제와 전망, 그리고 결론 및 제언의 순서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OECD 주요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국가주도의 전 국민 건강보험체제가 보편적일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미국만이 그런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복지정치사적 배경과 미국이라서 가능한 건보개혁의 방향과 한계를 연구하는데 있어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보려 한다.”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차이란 선행연구들이 대체적으로 ‘이익집단’을 건보개혁의 주된 변수로 주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의 ‘지배적 문화’가 ‘이익집단의 반발’ 못지않은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사회과학 연구방법 가운데 ‘질적 연구(해석적 연구)’를 채택하였고, 다양한 자료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이 연구의 이론적 배경으로 설정한 문화이론을 적용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고 합니다.

 

먼저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을 요약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먼저 이익집단이론입니다. 이익집단이란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어떤 주장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하는데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이익집단이 정책결정자와 국민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익집단이론은 “정책결정을 이익집단들 간 경쟁의 결과로 이해하고 한 시점에서 선택된 정책결정을 경쟁에서 이긴 이익집단의 전리품으로 이해한다.(34쪽)”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례로 보면, 2000년 시행된 의약분업제도를 시발로 하여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보건의료정책의 상당부분을 이익집단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90년대 말 급부상한 약계의 파워가 의사들이 주도하던 약품선택권을 가져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엘리트이론은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소수의 엘리트들이 정책결정을 주도한다는 이론인데, 최근 보건의료정책이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정부주도로 진행되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 하겠습니다. 수렴이론은 산업화이론이라고도 하는데,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들 간에는 의료서비스 조직과 재원조달 등 사회보장이나 정책의 내용까지도 점차 유사한 유형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뒤로는 OECD국가에서 시행되어 성과를 올린 정책을 도입하게 되는 경우를 설명하는 이론이라 하겠습니다. 최근 심평원이 확대하고 있는 ‘평가연계 수가제도(pay for performance; P4P)’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역사적 제도주의 이론은 행위를 형성하고 제약하는 맥락으로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맥락이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중시하는 이론입니다. 정책연구에서 역사적 시각과 거시 구조적 분석을 통합함으로써 국가들 간 정책의 상이점과 한 국가 내 정책패턴의 지속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합니다.

 

그 밖에도 보건의료정책을 설명하는데 있어 권력자원이론, 생산레짐이론, 권력중심적 행동이론, 세력균형이론 등이 나름대로의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하지만, 한 나라의 건보개혁에 대한 정치과정과 결정요인을 설명하는데 있어 핵심요인들을 단편적으로 설명하는데 그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화이론은 복지제도 자체가 해당 국가의 고유한 문화나 가치에 의하여 시기가 결정될 수 있으며, 한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왔던 신념이나 가치, 태도 등이 자원분배의 과정을 제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건강보장체계는 의사와 환자만의 관계로 국한하여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의학적 지식만으로 구성될 수 없으며, 의료에 간여하는 다양한 영역이 참여하는 복합적 건강보장체계의 구축이 필수적이며, 관련된 정책은 국가차원에서 수립되고 시행된다는 점에서 해당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영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문화이론에 따르면 미국이 유럽사회와는 달리 복지정책의 발달이 지체된 것은 미국 특유의 강한 자유방임주의 가치, 개인주의, 그리고 자조정신이라고 하는 문화적 요인이 배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건강보험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15년이었으니, 100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지 않고 있는 것은 국가주도의 건강보험 정책은 개인주의적이며 독립적인 정신을 강조하는 미국인의 문화적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은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와 작은 정부의 선호, 개인의 선택 등 미국인을 지배하는 가치관이 건강보장 부문에서도 민간주도로 발전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유럽사회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계층에 대한 인식이 그 맥을 이어져왔지만, 이러한 유럽사회를 등지고 떠난 사람들이 정착해서 만든 미국은 계층에 대한 인식이 엷을 수밖에 없고 특히 서부개척시대를 지나면서 스스로의 노력에 의하여 미래가 결정된다는 인식이 굳어져왔다고 합니다.

 

저자는 미국의 건강보장체계의 구조와 문제점을 다루면서 미국의 GDP 대비 의료비가 16.0%, 1인당 의료비가 7,538달러에 달하면서도, 공공부분의 의료비부담이 46.5%에 불과한 상태로(2010년 기준) 여타 OECD국가들과 비교해서 고비용임에도 평균수명, 영아사망률, 비만율 등은 여타 국가들과 열세로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 자료를 인용하지 않은 점은 물론,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나은 국가들의 자료만 골라 인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또한 미국의 건강보장체제는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메디케어, 저소득층 및 장애인을 위한 메디케이드, 군인관련 건강보험, 아동건강보험프로그램, 주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 등이 30.6%의 미국인을 커버하고 민간보험이 63.7%를 커버하고 있어 전체 인구의 16.7%의 미국인은 무보험자로 건강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문제는 최근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직장을 통한 건강보장기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0년 63.6%에 이르던 직장보험 가입자는 2004년에는 59.8%로 그리고 2009년에는 55.8%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의학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그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비용은 매우 높은 반면, 의료서비스의 경쟁력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미국의학이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건강보장체제를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능성만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고, 정부도 마찬가지로 의학의 발전을 위하여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과감한 투자의 성과로 얻어진 연구결과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산학연계체제 또한 미국의 의학수준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한 것입니다. 반면 국가의 통제 아래 모든 것이 결정되는 유럽의 경우 지난 세기까지 주도해오던 신약개발을 비롯한 보건의료 분야가 기술성과면에서 미국에 밀리게 된 것을 보면, 미국의 건강보건체계를 유럽 국가들의 그것과 단순하게 비교하는 작업이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외교정책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핵심과제로 추진해오던 100년 숙원의 건보개혁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의회를 통과하여 2010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발효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약 1조 달러를 투입하여 전체 미국인의 약 95%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미국의 정신과는 배치되는 점이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결단의 소산이었던 탓에 향후 전망을 불투명하다고들 합니다. 실제로 공화당이 미국 하원을 장악한 2011년 1월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개혁조치 중 하나인 건보개혁법을 폐지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되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실효적이지 못한 결정이지만, 건보개혁법의 험난한 앞날이 예견되는 대목입니다. 처음 기획되었던 것보다는 아주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건보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하여 실행에 옮겨진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들은 문화이론으로 미국의 건보체제를 검토한다고 하였지만, 미국적 시각이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배경이 다른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의 발전방향을 구하면서 외국의 제도를 그저 베끼는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장성강화에는 부담이 뒤따른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정부 주도로 오랜 기간에 걸쳐 시행되어 온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 역시 한계에 이른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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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 - 시간과 사람과 풍경이 수놓는 아름다운 우리 강 문화 에세이
한승원 지음, 권태균 사진 / 김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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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살던 곳에는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엇하지만 개울보다는 큰 강이 흘렀습니다. 동네사람들은 댓똘이라고 불렀습니다. 동네청년들이 미역을 감기도 했지만 물을 무서워하는 저는 무릎보다 깊이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이 강이 어디로 흐르는지 무척 궁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강을 만나게 되면 이 물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입니다. 미국에서도 미시시피강의 상류에 해당되는 미네소타의 트윈시티에 살았는데, 그때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다는 미시시피강의 시원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여기 살고 있는 곳 근처를 흐르는 강에 대하여 시시콜콜한 것까지 뒤져내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한승원 작가님이신데, 고향땅 장흥 가까이 흐르는 영산강 유역을 샅샅이 다니면서 알아낸 내용을 <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에 담았습니다. 일종의 영산강 지리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강은 태초로부터, 고즈넉한 밤, 달과 별과 은밀한 사랑을 나누며 굽이굽이 전설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들려주는, 여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작가는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강 앞에 서면 사람들도 하나하나의 풍경이 되고, 역사도 강바닥을 디디고 선 갈대숲이나 수양버들이나 개개비나 두루미나 황새나 해오라기나 청동오리 처럼 한 자락 또 한 자락의 풍경이 된다(9쪽)”라고 했습니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도 한 방울의 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담양 북편 산기슭까지 시원을 찾아갔습니다. 가는 길에는 반가운 사람들을 불러내 동행하면서 자연을 같이 즐기는 여유로운 여행이었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영산강의 시원이 담양 용추봉 아래 가마골에 있는 용소에서 시작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읽다보니 용소에 상류로부터 흘러드는 폭포가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용소가 시원이 아니라 그 폭포물이 시작되는 곳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야 맞을 것 같습니다. 용소로부터 영산강이 흘러드는 바다까지 따라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산강으로 합쳐지는 지류들도 뒤쫓고 있어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영산강 유역에 흩어져 있는 동리에서 배출한 걸출한 인사들은 물론이고 영산강 주변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모아두었기 때문에 흥미진진한 읽을거리가 되었습니다. 남원에 살면서 구경 다녔던 소쇄원이나, 송강정 등등 익숙한 이름들이 나오면 더 반갑고 잊어버리거나 그때는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되는 재미도 있습니다. 저자는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지천까지 살피기 위하여 2만 5천분의 1지도에서 영산강 줄기가 마치 겨울철의 나목이 된 거대한 노거수의 모양새와 같다는 것을 발견해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는 전라남도의 서남 서북권인 무안, 함평, 영암, 나주, 장성, 화순, 광주, 담양을 적시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고사도 인용하고, 이곳 출신 문인들의 시 혹은 문학작품들을 인용하여 그 의미를 짚어보고 있어 그야말로 영상강 의 인문학적 지리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관동별곡과 사미인곡으로 잘 알고 있는 송강 정철이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취조하면서 무려 1천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호남을 역모의 땅으로 인식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학적 성품은 그의 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재 너머 성권농 집에 술 익는단 말 어제 듣고 /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 아헤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 왔다 일러라(49쪽)”

 

저자는 영산강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오랫동안 꿈꾸어왔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는 자료조사와 현지답사를 통하여 확인작업을 해왔던 것인데, 그 범위에는 외래 민족의 침탈, 이 땅 관리들의 착취, 수탈, 그로 인한 토착 서민들의 저항의 역사, 노령산맥 이남의 굽이굽이에서 태어난 고귀한 인물들의 삶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장엄한 교향곡, 한 편의 위대한 서사시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강 앞에 서면 작가라는 사람도, 그 강위를 흘러갔거나 지금 흐르고 있는 역사도 하나하나의 풍경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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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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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님이 <위대한 미술책; http://blog.joins.com/yang412/13494632>에서 읽어보기를 권한 책입니다. 저자 오주석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더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고, 간송미술관 연구 위원 및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조선시대의 그림, 특히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한 21세기의 미술사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생전에 그는 우리 옛그림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법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책 역시 그와 같은 노력의 일환일 것입니다.

 

이미 읽은 <오주석의 한국미 특강; http://blog.joins.com/yang412/13488647>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와 중복되는 것이 많은 것은 제목처럼 공무원연수원에서 가졌던 특별강연에서 발표한 내용을 편집하여 책으로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은 책으로 엮기 위하여 따로 쓴 원고이기 때문에 읽는 문장에서도 구어체와 문어체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인용문 역시 구체적이고 보다 풍부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차이점으로 강좌에서는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 ‘옛 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 ‘옛 그림으로 살펴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자료를 인용해서 주제를 설명해나가는 방식입니다만, 이 책에서는 작품을 중심으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씨름> 그리고 <무동>은 특강을 통해서 들은 내용과 중복된다는 느낌이 들지만, 다른 작품들에서는 새로운 내용을 배울 수 있어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특히 서양화와 우리의 산수화의 중요한 차이점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서양의 풍경화는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면서 풍경 밖의 한 곳에서 전체를 조감하는 원근법을 적용하고 있어, 풍경을 보고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산수화는 풍경 자체를 주인공으로 하고, 주인공을 치켜보고, 내려다보고, 비껴보고, 휘둘러 봄으로써 산수의 다양한 실제 모습을 담아내려고 한 것(79~81쪽)이라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안견의 <몽유도원도>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단순히 옛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작품과 관련된 고사뿐 아니라 화가를 둘러싼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 오고 있어 책을 읽는 느낌이 전혀 단조롭지 않은 것도 특기할만합니다.

 

작가가 살아계셨더라면 꼭 알려드리고 싶은 내용도 있습니다. 윤두서의 <자화상>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인용한 그의 편지내용입니다. “대개 서울에 있을 적부터 이 일을 포기한 지 벌써 오래되었는데 남쪽으로 돌아온 후로는 더더욱 적막하게 지내면서 눈의 시력 또한 흐리고 뿌예졌습니다.(101쪽)” 작가의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눈 둘레에서 안경에 눌린 자국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윤두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긴 노안으로 안경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흐리고 뿌옇게 변했다고 한다면 렌즈에 혼탁이 생기는 노인성 백내장이 생긴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같으면 렌즈를 교체하는 수술을 받아 밝은 시야를 되찾을 수 있었을 터이지만 당시의 의술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김시의 <동자견려도>를 설명하면서 저자가 인용한 왕희지의 ‘문득 쓰고 싶어 쓴 글씨(偶然欲書)’라는 고사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왕희지가 삼월 삼짓날 벗들과 난정(蘭亭)에 모여 늦은 봄풍광을 즐기며 무심하게 글씨를 썼는데 자연의 신비로운 기운이 스며들어 스스로 보아도 천하의 걸작이 탄생하게 되었더랍니다. 나중에 이처럼 써보려고 정좌를 하고 여러 차례 시도를 해보았지만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우연욕서(偶然欲書)라는 고사는 “예술이란 자신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펼쳐질 때만 최상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대표적인 옛 그림작품을 설명하는 사이에, ‘옛 그림의 색채’, ‘옛 그림의 원근법’, ‘옛 그림의 여백’, ‘옛 그림 읽기’, ‘옛 그림 보는 법’, ‘옛 그림에 깃든 마음’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하여 옛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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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창업가 바이블 - 전 세계 창업가들의 27가지 감동 스토리
다니엘 아이젠버그 & 캐런 딜론 지음, 유정식 옮김 / 다산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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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벤처기업 돌풍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의 주변에서도 벤처기업을 일구느라 젊음을 바친 친구도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벤처기업들 가운데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벤처기업이 성공할 확률은 2%에 불과하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습니다만, 실제로도 미국의 벤처캐피털이 벤처기업에 투자한 4건 중 3건이 실패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안철수 의원은 카이스트교수시절, “벤처창업의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좋은 사람들로 팀을 만들고, 좋은 제품과 서비스로 경쟁하고, 점진적인 플랜을 세워서 실행하라”라고 조언하였다고 합니다.

 

창업을 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나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하는 불운을 맛본 분들이라면 실패한 창업과정을 복기하여 재기를 꿈꾸기도 하겠습니다만, 실패를 겪지 않고 성공에 이르는 길이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창업가정신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는 다니엘 아이젠버그교수의 <하버드 창업가 바이블>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업에 필요한 것은 오직 창업가 자신의 고된 노력, 야망, 지략, 파격적인 사고방식, 영업 능력, 리더십 등인데, 정작 창업에 성공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이미 서가를 채우고도 넘치는 창업 매뉴얼이 아니라 창업가의 통찰의 깊이, 즉 기존의 가치를 깨고, 비틀고, 도약하는 창업가정신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창업은 누구나 열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창업 자체보다 ‘가치창조’와 ‘가치획득’의 관점에서 창업가정신에 대한 개념을 분명하게 하는데 두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눈에 띄지 않고 무시당하고, 하찮게 여겨지거나 폄하된 곳에서 기회를 발견하여 비범한 가치를 창조하고 획득한, 바로 그런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24쪽).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1부는 창업가가 새로운 모험에 뛰어들 만큼 수준 높은 전문성을 지닌 ‘혁신적인 젊은이’라고 간주하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2부에서는 대중의 기대를 거스르는 것이 창업가정신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내재되어 있는 이유를 살펴본다. 3부는 창업가가 직면하는 다양한 종류의 역경을 알라보고, 어떤 역경이 창업가정신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또 어떤 역경이 그와 반대로 되는지 보여줄 것이다. 4부와 결론에서는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발판으로 창업가정신의 의미가 비범한 가치를 인식하고, 창조하며, 획득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것이다.(27쪽)”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저의 눈길을 끈 아이템은 캡슐 내시경을 개발한 가비 머론의 이야기입니다. 캡슐내시경은 우리나라에서도 금년 9월 1일부터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어 130만원이나 들던 비용이 11만원으로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내시경으로 관찰할 수 없는 소장을 관찰하는데 유용한 점이 있습니다. 길이가 7미터나 되는 소장은 대장보다 가늘고 대장의 안쪽으로 여러 차례 접혀져 있기 때문에 내시경으로 소장 전체를 보는 것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창업가정신이란 비범한 기회를 인식하고, 창조하고, 획득하는 세 가지 요소로 정의되는데, 이러한 창업가정신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창업가정신이라는 것 자체가 조금은 이론적인데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많은 사례에서 이와 같은 요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공부문의 리더들은 예외적이고 불연속적 특성이 있다는 창업가정신의 속성을 이해하고, 적절한 정책의 방향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창업 전에 다른 사람 밑에서 10년 이상 현업의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으며, ‘엄청난 금전적 리스크를 기꺼이 견딜 수 있습니까?’를 비롯한 열 가지 체크리스트를 통하여 자가진단해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저자 역시 성공한 창업가가 설립한 벤처기업에 투자했다가 투자금을 몽땅 날리는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창업과 투자는 또 다른 과정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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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정
조정우 지음 / 청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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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맞붙던 조선 숙종 시절, 내명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권력싸움의 이면사인 만큼 희빈 장씨의 삶은 소설, 드라마 그리고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곤 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다양하다 보니 누구를 주인공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이야기를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전개해나갈 수 있어, 볼 때 마다 흥미를 돋우곤 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작품으로는 드라마 <동이>에서는 궁인에서 19대 숙종의 후궁에 오르고 그의 아들 연잉군을 21대 영조로 등극하게 만든 숙빈 최씨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그동안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의 갈등을 주요테마로 했던 전작들과는 다른 맛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이순신 불멸의 신화; http://blog.joins.com/yang412/13475791>에서 이순신 장군이 23차례의 해전을 승리로 이끈 전략에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전개로 주목을 끌었던 조정우 작가의 <장옥정>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미모를 바탕으로 자신의 야심채우기에만 급급하던 요부의 이미지가 강했던 장옥정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요부의 이미지가 강조되던 장옥정과는 다른 인간 장옥정의 모습을 그려냈다고 할까요? 그리고 요즘 막바지에 이른 드라마 <유혹>에서 여자라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아진그룹의 사장처럼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 그리고 영빈 김씨와 숙빈 최씨 등 적지 않은 여인네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줏대없는 숙종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희빈 장씨의 삶은 천인출신 궁인에서 숙의 희빈을 거쳐 중전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숙종의 왕위를 물려받게 되는 경종을 출산하기에 이르렀지만, 남자를 독점하고자 하는 욕심이 과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사약을 받고 스러지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요약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옥정은 역관으로 날리던 아버지 장경이 죽고 사촌형 장현에 의탁하고 있었던 것인데 장현이 역모에 휘말리고, 역시 역모에 휘말려 노비로 몰락했던 어머니 윤씨의 신분 때문에 천인으로 굴러 떨어진 신세가 된 것입니다. 역경에 굽히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경지로 나가는 법입니다. 양반의 첩실로 가느니 중인의 정실이 되고자 했던 옥정은 신분제도가 바뀌는 바람에 천인이 된 자신의 처지를 바꾸기 위하여 궁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토록 천대받고 사느니 차라리 궁인이 되자! 내 반드시 임금의 총애를 얻어 마음의 한을 풀고 가문의 누명을 벗기고야 말리라!(47쪽)” 그야말로 목적의식이 뚜렷한 신여성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옥정은 궁에 들어가자마자 중전 인경왕후의 죽음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숙종의 승은을 입기에 이르지만, 백부의 역모사건의 배후인 대비의 농간으로 궁에서 퇴출되고 맙니다. 서인과 남인의 힘겨루기가 진행되면서 옥정의 환궁이 불투명하지만 남자 숙종의 마음은 여전히 옥정에게 머물고 있습니다. 대비가 고른 민유중의 여식 인현왕후가 나이도 옥정보다 어리고 현숙하고 더 아름다워 숙종의 마음이 기울고 있음에도 옥정을 잊지 못하는 것은 작가가 따로 드러내지 못한 무언가 비술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숙종이 부탁하는 거문고연주만으로는 숙종의 마음을 훔쳐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재주를 작가는 “(옥정이) 사내의 마음을 홀리는 재주가 탁월하다.”라고 표현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은 지나친 생략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옥정의 재치는 탁월한 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궁에서 쫓겨나 숭선군의 집에 의탁하고 있을 때 찾아온 숙종의 편지를 읽다가 왕이 지금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는 대목입니다. “옥정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서찰에 떨어졌다.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던 옥정은 문득 서찰의 글씨가 눈물에 많이 번진 것이 쓴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46쪽)” 이런 장면은 옥정의 재치가 뛰어났다는 사실을 제대로 표현한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좋을 듯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작가의 의욕이 너무 앞선 것 아닌가 싶은 대목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과정입니다. 사약을 마시고 숨이 끊어져가는 옥정을 껴안고 울부짖는 장면이나 옥정의 사후 십수년이 지난 다음에 인장리에 있다는 옥정의 무덤을 찾아 옥정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신의 처분을 후회하는 장면이야말로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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