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포드 - 고객을 발명한 사람
헨리 포드 지음, 공병호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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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국님은  미국의 오늘이 가능하게 한 20세기의 인사들 가운데 경제 분야의 23인을 요약한 <미국의 거장들; http://blog.joins.com/yang412/13492337>에서 헨리 포드의 공과를 논한 것을 읽었습니다. 미국이 포드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그가 신기술을 적용한 신제품을 소개한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관리방식을 창출하고, 새로운 경영철학을 제시한 것이야말로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비전과 역경을 뚫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추진력을 보여준 데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포디즘이라고 하는 자신의 경영이념에 따라 고임금의 원칙을 실천했는데, 그 결과로 거대한 중산층이 형성될 수 있었고, 이들의 구매능력이 확산됨에 따라 거대한 미국 경제력의 밑받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기여 이외에도 거액의 유산을 포드재산에 넘겨 사회 및 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일조를 하고 있는 셈이라 했습니다. 반면 고임금을 내걸고 노조를 탄압하거나 회유한 사실, 컨베이어 벨트 방식의 조립라인을 도입한 것이 인간성상실로 이어진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고 해석하였습니다. 나아가 서구식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 자체로서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휴머니즘, 그리고 각 나라나 민족 고유의 문화적 특성과 장점들이 스러지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객을 발명한 사람 헨리 포드>는 1923년에 출간된 포드의 철학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인데 뒤늦게 우리나라에 소개된 셈입니다. 깅홍국님이 지적한대로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 친나치적 경향이나 반유대적 성향 등 때문일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낡은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서 변화를 수용할 수 없게 된 사업가는 망한다.(9쪽)’라는 그의 생각은 1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유효하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그의 철학 가운데 오늘을 사는데 유용한 것들을 골라 읽는다면 삶에 도움이 될 것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옮긴이가 뽑은 다음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삶은 정주(定住)가 아니라 여행이다. 자신이 ‘정착했다’고 굳게 믿는 사람조차도 정착해 있지 않다. 아마도 하락하는 중일 것이다. 모든 것은 흐름 속에 있다. 삶은 흘러간다. 아무 데로도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서 살아도, 거기 사는 사람은 변하는 것이다.(9쪽)”

 

모두 19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요약하면 자조(自助)의 정신과 평등, 의타심에 대한 경계 등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객에 대한 개념을 창조한 것이라든가, 사업에 서비스정신을 창안한 것, 대량생산과 분업이라는 신개념의 작업방식, 고임금을 주어도 생산비용을 낮추어 수익을 유지하는 경영방식, 그리고 기업이 할 수 있는 자선정신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경영철학을 창안해낸 포드의 정신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놀라운 발상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 자동차 제조사들은 일단 차를 팔고 나면 끝이었다고 합니다. 고장이나도 주인이 감당할 몫이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부품을 비싸게 팔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차를 소유하는 사람은 대부분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자가 아닌 다수의 대중이 차를 소유하는 시대를 꿈꾸었습니다. 최고의 소재로 최고의 기술자가 차를 만들지만 단순한 설계로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인데, 그의 생각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무빙라인과 분업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입니다. 이는 시카고 도매업자들이 쇠고기를 포장하는 방식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고임금 원칙은 직원들의 걱정거리를 줄여 작업효율을 높일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비용절감에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임금을 깎을지 배당금을 폐지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언제고 배당금을 폐지하겠다.(230쪽)”라고 한데서 고임금에 대한 그의 원칙이 얼마나 확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선에 대하여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구절도 있습니다. “직업적인 자선은 차가울 뿐 아니라 도움보다는 상처를 준다. 수혜자의 품위를 깍아내리고 자존심을 마비시킨다. 이는 감상적인 이상주의에 가깝다. ‘자선’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이렇게 퍼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호의적인 ‘사회복지사업’의 수혜자가 되었다. 국민 전체가 서서히 어린애처럼 무력한 상태로 빠져들어 갔다. 자선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의 성장은 봉사하고 싶다는 갸륵한 욕망을 쏟아놓는 배출구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자립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고, 봉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을 바꾸지도 못했다.(288-289쪽)”

 

그가 노조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평가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나는 노동 조직에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를 위한 것이라면 어떤 종류의 조직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고용주든 노동자든 생산을 방해하는 조직이다.(346쪽)”

 

기업을 경영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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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해파랑길 - 걷는 자의 행복
이영철 지음 / 예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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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가까운 근교에 있는 걷기에 좋은 길을 찾아 걷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조선일보의 주말판에 나오는 <주말걷기 2.0>을 따라가다가,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 여행; http://blog.joins.com/yang412/11747933>을 발견하고는 책에서 소개하는 52개의 코스를 완주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처음 구입해서 전체 코스를 개략적으로 읽어보고 리뷰를 적기를 기대가 크다고 적은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코스를 모두 걷고 난 다음에 느낀 점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책내용과 달라지는 부분들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2825144). 온라인 정보가 아닌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스24에서 진행한 <동해안 해파랑길> 리뷰 이벤트에서 “아내와 함께 걸을만한 곳을 찾고 있던 중입니다.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는 해파랑길을 아내와 함께 걸으면 참 좋을 것 같아 신청합니다.”라고 사연을 달아 신청한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주말걷기를 다시 시작하려고 코스를 알아보던 참입니다. 제주 올레길, 강화도의 강화 나들이길, 그리고 연습이 충분히 되면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행작가 이영철님이 정리하신 <동해안 해파랑길>은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출발해서 고성군 통일전망대에 이르기까지 770km에 달하는 거리로, 산티아고 순례길(782km)에 버금가는 좋은 코스로 25~35일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연가를 내서 꾸준하게 걸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주말을 이용해서 이어걷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구간의 종점에서 서울로 오가는 교통편이 최대한 걸림돌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저자께서는 이런 점을 제대로 짚어서 출발지에 이르는 교통편과 구간의 종점 부근에서 묵을 수 있는 장소와 식당 등에 관한 정보를 세세하게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사실 동해안은 우리의 역사에서 재미있는 설화가 많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부산에서 고성까지 어디를 가더라도 널려 있는 이야깃거리들은 걷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인데, 저자 역시 그런 이야깃거리 역시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부산, 울산,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삼척․동해, 강릉, 양양․속초, 그리고 고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 개의 구간으로 나누었는데, 구간마다 3~6개의 세부코스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코스마다 구간의 거리가 다양한 이유는 아마도 지형에 따른 난이도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20km 내외의 코스가 이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걷기도 장단, 강약이 어우러져야 힘이 덜 들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산이나 울산, 그리고 강릉처럼 KTX가 닿거나 고속버스가 자주 있는 곳은 서울에서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구간은 차치하고라도 배차가 뜸하거나 중간에 갈아타야 하는 시외버스밖에 없는 구간의 경우에는 오가는데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아예 부산에서 출발해서 마지막 도착지까지 단숨에 끝낼 수 있도록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이라면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장애요인이 많은 코스를 골라서 답사를 떠나볼까 합니다. 서울에서 도착하기까지의 여정과 걸어야 하는 구간의 난이도, 코스의 표시는 제대로 되어서 길 찬는데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을지 등을 검토해서 완주를 목표로 하는 작전을 잘 짜보아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해파랑길을 안내하는 다양한 정보는 제대로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추가로 확인해야 할 정보가 있다면 서울에서 구간 종착점까지 가는 대중교통편의 배차시간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구간별 소요시간도 어쩌면 저자의 제안과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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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준비 - 최준식 교수의 삶과 죽음 이야기 Dr. Choi’s 최준식 교수의 죽음학 시리즈 2
최준식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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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게 죽기’라는 화두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나름대로는 마음을 다스려왔기 때문에 어머님께서 소천하시는 과정에서 결심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과정만큼은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뇌졸중으로 왼쪽에 장애가 오셨지만, 꾸준하게 재활치료를 받으시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완전 회복하실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도, 뇌의 뒤쪽으로 가는 혈관이 거의 막혀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굳이 외면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돌아가신 다음 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이 잘 못인 셈입니다. 선친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어머님께서 꼼꼼하게 챙겨서 절차를 진행하셨기 때문에 그저 따라가면서도 절차를 꼼꼼하게 챙겨서 기억해두지 못한 것도 잘 못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후 약방문이지만 최준식 교수님의 <임종준비>를 읽게 되었습니다. 한국죽음학회의 회장을 맡고 계신 최교수님은 건강할 때부터 임종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죽음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죽음을 준비해야 할 노인대학에서도 취미강좌나 체조와 같이 오락성이 높은 프로그램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문제일 것입니다.

 

150쪽 밖에 되지 않는 얇은 분량이지만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를 담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고려해야 할 점을 정리한 “내가 갑자기 곧 죽는다는 선고를 받는다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임종을 전후하여 부딪치는 문제들 그리고 장례 절차, 그리고 장례 이후에 남은 사람들에게 닥치는 문제들을 정리한 “사별의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의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생각해보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막상 상을 당하고 보니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장례식장이나 장례절차를 도와주시는 스님도 오셨지만 전체의 절차가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결국은 상황에 맞추어 우왕좌왕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상식을 올리는 것이나, 납골당에 유골을 봉안하는 절차도 격에 맞게 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말았다는 아쉬움 같은 것 말입니다. 예전 같으면 동네 어르신들이 나서서 장례절차를 챙겨주셨을 것입니다만, 이제는 그런 관행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실 어머님께서 뇌경색이 재발해서 비교적 광범위하고 생명유지에 치명적인 부위가 손상을 입게 되면서 소생할 가능성이 없어지면서 연명치료를 계속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형제들끼리 의논을 하게 되었을 때, 저는 먼저 연명치료 자체가 어머님께 고통을 드리는 일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고, 편하게 생을 마감하시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럴 수가 있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결국은 인공호흡기가 아닌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으시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죽음을 맞으시고, 장례를 모시고 49재까지는 이제 일주일 정도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선친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남겨두신 유고를 정리해서 49재를 올리는 날 책으로 묶어내기도 했습니다만, 어머님 돌아가시고는 회사 일을 비롯해서 이러저런 일이 넘쳐나고 있어 정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여행하던 이야기도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만 책 한권의 분량을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할 듯해서 1주기 때까지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저자께서는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슬픔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하는 문제에도 무게를 두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첫 번째 단계로는 충격과 좌절 단계를 겪게 된다고 합니다. 제 경우는 어쩌면 처음 뇌졸중이 생기셨을 때 주말마다 병원을 찾아 같이 시간을 보낸 것이 충격을 완충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고독과 우울에 빠지는 데, 가장 긴 시간을 지나야 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사별의 슬픔을 극복하는 단계라고 하는데, 슬픔에 빠져만 있는 것이 결코 고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정리해보면 자신을 포함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입니다. 그 비극을 슬기롭게 극복하려면 평소에 마음의 준비를 잘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간략하면서도 잘 정리된 죽음 준비서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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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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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초상화의 비밀’전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태조 어진」과「윤두서 자화상」을 비롯하여 이명기, 김홍도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국보급 초상화는 물론 중국과 일본, 멀리는 유럽에서 온 루벤스의「안또니오 꼬레아」로 불리는 한복 입은 조선 남자의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200여점에 달하는 초상화 작품을 볼 수 있었던 대규모 전시회였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작품에 담긴 깊은 의미를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 역시 아는 만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아쉬움을 채워줄 기회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북소리]에서 소개했던 이진숙님의 <위대한 미술책; http://blog.joins.com/yang412/13494632>에서 독립된 장으로 구분한 ‘한국미술사’편에서 오주석의 옛 그림 감상법을 담은 책들을 소개받게 된 것입니다. ‘선인의 눈과 마음으로 느끼는 옛 그림의 깊은 맛’이라는 제목으로 옛 그림 감상법을 요약한 이진숙님은 오주석님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과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를 읽어볼 것을 권하였습니다. 저자 오주석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더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고, 간송미술관 연구 위원 및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조선시대의 그림, 특히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한 21세기의 미술사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생전에 그는 우리 옛 그림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법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토록 원대한 꿈을 품었던 그가 백혈병을 얻어 불과 49살의 나이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생을 마감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백혈병 치료는 세계가 알아주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지 싶습니다.

 

‘전통 미술 전반에 대한 좋은 입문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오주석의 한국미 특강>은 저자가 공무원교육원에서 가졌던 강연녹취를 책으로 꾸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옛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총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반면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은 대표적인 옛 그림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각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강을 시작하면서 저자는  “옛 그림을 보여드리기 전에 우선 옛 그림 감상의 원칙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선인들의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첫째,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둘째,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오주석의 한국미 특강; http://blog.joins.com/yang412/13488647 17쪽, 솔, 2003년)”라고 옛 그림을 감상하는 원칙을 요약합니다. 이어서 옛 그림 감상법 설명에 들어가는데, 우선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기 좋은 거리는 그림의 대각선 길이를 기준으로 1~1.5배 정도가 좋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우리의 옛 그림은 옛 글씨를 쓰는 원칙대로 우상좌하(右上左下)의 법칙에 따라 읽어야 하는데, 과거에는 서화일률(書畵一律)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글쓰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가로쓰기로 하고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는 세로쓰기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옛 그림을 읽을 때는 옛 사람들 방식대로 오른쪽 위로부터 왼쪽 아랫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림은 가능한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주마간산 식으로 휙 하니 지나가면서 중요한 점을 제대로 붙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본 원칙을 설명한 다음에는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실려 있는 「씨름」이라는 소품을 놓고 옛 그림 감상법을 꼼꼼하게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전체를 개괄하고 이어서 그림의 세부적 요소를 따로 들어내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물두명의 등장인물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분석하여 그의 출신성분과 성격까지도 유추하는데, 필요에 따라 세부를 확대한 여덟 장의 도판을 별도로 실어 읽는 사람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이진숙님은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이렇게 작품을 뜯어보고, 이리저리 굴려보고, 엮어 보는 재미가 꿀맛이다(이진숙, 위대한 미술책 270쪽, 민음사, 2014년)”. 이처럼 오주석님은 그림의 미학적 요소 뿐 아니라 그림을 통하여 그 시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까지도 유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등장인물의 모습에서 씨름의 승패까지고 예견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그림을 꼼꼼하게 읽었으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옛 그림 읽기의 각론에 해당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자가 생전에 출간한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http://blog.joins.com/yang412/13502373>에서는 김명국의 「달마상」,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김정희의 「세한도」, 김시의 「동자견려도」,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이인상의 「설송도」, 정선의 「인왕제색도」등 열두 점의 그림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그림과 관련된 수많은 일화 그리고 저자가 그림을 해석하기 위하여 다양한 고사와 시문을 언급하고, 나아가 이 그림들이 화가의 삶이나 당대의 정치와 사회상황, 그리고 선, 불교, 주역, 유학 등 조선시대의 철학사상과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에 곁들여, ‘옛 그림의 색체’, ‘옛 그림의 원근법’, ‘옛 그림의 여백’, ‘옛 그림 읽기’, ‘옛 그림 보는 법’, ‘옛 그림에 깃든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글들은 옛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익히는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주옥같은 작품 설명을 하나라도 건너뛰면 안 될 것 같지만 지면관계상 한 작품만을 고른다면 서양화와 우리의 산수화의 중요한 차이점을 깨우칠 수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어느 여름날 밤의 꿈속에서 노닐었던 도원을 그린 그림입니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비롯된 무릉도원은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라고 묘사한 것처럼 선비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안평대군은 당대의 화가 안견에게 꿈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고, 작품을 제작하게 된 연유를 손수 적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일본 천리대학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몽유도원도」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순간 우리는 대뜸 펼쳐진 황홀한 무릉도원의 전경(全景)에 압도된다.(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62쪽, 솔, 2005년)’라고 했습니다. 한편의 장대한 교향시와 같은 그림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오른편 위쪽에서 왼편 아래쪽으로 가로지르는 대각선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특히 「몽유도원도」에는 우리 옛 그림의 원근법이 갖는 장점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옛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원근법으로는 “첫째 깍아지른 높은 산을 아래서 위로 치켜다본 시각[고원법(高原法)], 둘째 엇비슷한 높이에서 뒷산을 깊게 비껴본 시각[심원법(深遠法)], 셋째 높은 곳에서 아래쪽을 폭 넓게 조망한 시각[(평원법(平遠法)]이 있어, 이를 통틀어 옛 그림의 삼원법(三遠法)이라 하는데(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77쪽, 솔, 2005년)”,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풍경화는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면서 풍경 밖의 한 곳에서 전체를 조감하는 원근법을 적용하고 있어, 풍경을 보고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산수화는 풍경 자체를 주인공으로 하고, 주인공을 치켜보고, 내려다보고, 비껴보고, 휘둘러봄으로써 산수의 다양한 실제 모습을 담아내려고 한 것(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79~81쪽, 솔, 2005년)이라고 합니다. 이진숙님에 따르면 오랫동안 원근법에 익숙해온 서구인들은 세잔에 이르러 비로소 원근법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는데, 데이비드 특히 데이비드 호크니는 ‘원근법을 절대시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서구의 특정 관념을 맹신하는 폭력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호크니의 설명에 따르면 “오랫동안 서양미술을 지배해온 ‘선원근법은 인간의 눈의 법칙이 아니라 렌즈 사용에 근거한 광학의 법칙일 뿐’이라는 것입니다(이진숙 지음, 위대한 미술책 405쪽, 민음사, 2014년).” 그리하여 사람은 사물을 카메라처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본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바로 동양회화가 표현하는 원근법이기도 합니다.

 

윤두서의 <자화상>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인용한 편지에 “대개 서울에 있을 적부터 이 일을 포기한 지 벌써 오래되었는데 남쪽으로 돌아온 후로는 더더욱 적막하게 지내면서 눈의 시력 또한 흐리고 뿌예졌습니다.(101쪽)”라는 대목을 보면 윤두서가 백내장을 앓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눈 둘레에서 안경에 눌린 자국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윤두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긴 노안으로 안경을 사용했음을 의미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흐리고 뿌옇게 변했다고 한다면 렌즈에 혼탁이 생기는 노인성 백내장으로 인한 증세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같으면 렌즈를 교체하는 수술을 받아 밝은 시야를 되찾을 수 있었겠지만 당시의 의술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는 저자 생전에 마무리를 하지 못한 유고를 정리하여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1권과 같은 형식으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김홍도의「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그리고 작가 미상의 「이채 초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옛 그림의 표구’, ‘문인화, 옛 선비의 그림의 아정한 세계’ 그리고 ‘조선과 이조’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글은 옛 그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너도 나도 금강산 관광을 나서는 것이 왜 못마땅했던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금강산을 구경해보지 못하고 여전히 <그리운 금강산>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어서 정선의 「금강전도」가 반갑기도 합니다만,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에서는 역시 김홍도의 「마상청앵도」의 해설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옛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의 의미를 깨닫게 되어서 일 것입니다. 봄날 나들이에 나선 선비가 문득 들려오는 꾀꼬리 우는 소리에 말을 멈추고 꾀꼬리를 뒤쫓는 모습을 넉넉한 여백을 곁들여 담백하게 그려낸 「마상청앵도」는 문인화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는 저자는 선비의 뒤쪽에 아무 것도 그려 넣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둔 것은 ‘꾀꼬리 소리에 정신을 빼앗겨서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아득한 심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어서 문인화의 정신과 본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1. 문인화는 선비의 그림이다. 2. 문인화에서는 작가를, 그리고 한 인간을 본다. 3. 문인화에서는 미태가 떠도는 점을 꺼린다. 4. 문인화에서는 형상을 극소화하고 상상은 극대화함으로써 감상 행위가 살아 숨 쉬게 한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서문에 “문화,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보람, 특히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우리인 까닭, 바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는 빼어난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문화인․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습니다.”라고 적을 만큼 저자는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모양입니다. 우리 문화의 우수함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려면 먼저 우리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인데, 그 꿈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그가 남긴 책들은 분명 ‘조상들이 이룩해낸 문화와 예술이 참으로 훌륭하고 격조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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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역사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이진숙님은 <위대한 미술책; http://blog.joins.com/yang412/13494632>에서 ‘현대미술작품들은 미(美)라는 글자를 떼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엽기적이고 흉악하며 추하다(위대한 미술책, 169쪽)’라고 전제하고, ‘이제 추는 미의 부정이 아니고 미의 다른 얼굴이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와 추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시기마다 혹은 문화에 따라 상대적이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미학에서의 미와 추의 개념이 잘 정리된 텍스트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 <추의 역사> 그리고 <궁극의 리스트>를 추천하였습니다. 미술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지만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분석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미도 추도 아닌 것들을 묶어서 <궁극의 리스트; http://blog.joins.com/yang412/13493806>에 담은 것이라고 이진숙님은 말씀하였지만, 궁극의 리스트를 읽으면서 인내심을 시험하는 책읽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미의 역사> 역시 동일한 구조로 만들어진 책이라는 점에서 역시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미의 역사>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예술의 특정 영역이 발전해온 과정을 요약한 것이 아니라 미에 대한 관념이 발전해온 역사를 담고자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미와 예술의 관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역시 이진숙님의 생각처럼 에코 역시 “아름다움이란 절대 완전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미의 역사, 14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시대에 따른(물론 유럽을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만) 변화를 비교하는 표를 먼저 제시합니다. 누드의 여성과 남성, 옷을 입은 남성과 여성, 성모, 예수, 왕과 여왕 등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을 소개합니다.

 

이어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중세, 르네상스시대를 거쳐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미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기를 분명하게 나누고 있지는 않으며, 같은 시기에서도 주제별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는 ‘이상적인 미’, ‘아폴론적인 것과 디어니소스적인 것’, ‘비례와 조화’를 주제어로 선택하였지만, 이어진 중세에서는 ‘빛과 세계’, ‘괴물들의 미’를 주제어로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추의 역사>를 별도의 책으로 묶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코는 <미의 역사>에서 추에 관한 이야기를 시대별로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제어에 속하는 보다 세부적인 사항으로 화제를 나누고 있는 것도 특징인데, 그러다 보니 시대적인 흐름의 연관성이 흩어지는 아쉬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저자가 택한 세부적인 사항이 가지는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양치기 소녀에서 천사 같은 여인으로”라는 주제어 아래 적고 있는 ‘성스러운 사랑과 세속적인 사랑’, ‘귀부인과 음유시인’, ‘귀부인과 기사’, ‘시인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이 저자의 관심을 끌게 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붙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궁극의 리스트>에서는 적절한 자료를 인용하여 주제어를 설명하고 인용한 자료의 해당부분을 병치하여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미의 역사> 역시 같은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미에 대한 개념의 역사적 변천을 설명하는 본문 가까이에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미학적 개념을 담고 있는 인용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개념을 담고 있는 인용문을 소개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어, 독자의 입장에서는 해당 개념에 대한 저자의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 이해를 높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남는 것 같습니다. <궁극의 리스트>에서도 언급을 했던 것 같습니다만, 본문의 내용을 뒷받침할만한 예술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해당 작품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생략되어 있고 제작자와 작품 이름 그리고 소장자에 대한 정보만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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