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가족 이야기 - 장수와 행복의 비결을 찾아서
대한의사협회.대한의사협회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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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8년 대한의사협회가 창립 100주년을 맞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한 사업으로 전개한 5대 가족 찾기 사업의 결과를 정리한 책입니다. 당시 전국에서 발굴된 5대 가족은 모두 26 가족이었습니다. 5대가족을 이루려면 각 세대가 20대 초반에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야 가능한데, 요즈음 같이 늦게 결혼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5대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26 가족의 사연들을 모아 분석한 결과 이들이 5대에 이르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돈독한 가족애와 건강한 생활습관 그리고 건전한 사고방식으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온 이들의 모습을 정리하여 우리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한 책이 바로 <5대 가족 이야기>입니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책에는 5대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게 된 비결,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특히 1대 어르신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그리고 그들에게서 배우는 백 년 삶의 지혜를 담았습니다. 몇 가지 특징을 보면 26가족의 1세대를 구성하는 어르신은 모두 여성으로 한국 여성 평균수명보다 12.3세를 더 장수하고 계셨다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한 분도 없었던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대간 평균 나이차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1~2세대의 차이는 20.8세, 2~3세대의 차이는 22.3세, 3~4세대의 차이는 22.7세 그리고 4~5세대의 차이는 26.5세로 결혼 적령기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반세기 전까지 만해도 20대 초반이면 결혼을 하였지만, 이제는 20대 후반으로 늦어지고 있어 이제는 5대 가족은 정말 가뭄에 콩나듯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평균기대여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치를 높일 수도 있겠습니다.

 

5대 가족에서 발견된 공통점은 1. 대화와 웃음이 많다, 2. 웃어른을 공경한다, 3. 항상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4. 1,2세대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5. 첫 자녀를 일찍 낳았다, 등입니다. 특이한 점은 5대 가족들은 가족 규모가 일반 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가족 간의 교류나 모임이 더욱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남다른 가족애가 중요한 요소라고 보이는 대목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26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이 한 집안의 그것처럼 닮았더라는 점입니다. 한 가족에서도 쉽지 않은 식단에서부터 잠자는 습관에 이르기까지 거의 같은 패턴을 보였다고 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1. 세끼는 꼬박꼬박 챙길 것, 2. 소식, 적게 먹는 것은 기본, 3. 식단은 소박한 채식 위주로, 4. 수면은 확실하고 충분하게, 5. 사고는 밝고 긍정적으로, 등입니다. 제3부에서는 특히 1세대의 어르신들이 건강을 유지한 비결을 따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역시 핵심은 먹거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살고 있는 곳에서 나는 식재료, 특히 야채를 주로 먹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습관이 중요한 요소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장수비결은 열 가지로 요약되었습니다. 1. 내 일은 내가 한다, 2. 웃음, 3. 소식, 4. 부지런함, 5. 늘 배우는 자세, 6. 느긋한 성품, 7. 관용, 8. 일찍 일어나기, 9. 잠 잘자기, 10. 나이를 초월한 말동무 만들기 등입니다.

 

5대 가족을 이루는 윗대 어르신들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과 같은 격동기를 어렵게 넘기신 분들입니다. 살아남는데 행운도 따랐던 것 같습니다. 이들 가족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1세대 어르신들을 구심점으로 하여 작은 교류를 나누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류를 통하여 아이들은 가족애는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르신들은 아랫세대의 보살핌을 받으면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즉, 건강과 장수는 가족 간의 관심과 애정, 보살핌과 상호협력에 달려 있다고 정리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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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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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뛰어난 기억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억이란 것이 완전하지 못해서 잘못 인식한 것을 기억하기도 하고 스스로 왜곡시키기도 한다고 합니다. 생소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집단기억’의 개념은 [북소리]에서 소개한 바 있는 제프리 K 올릭의 <기억의 지도; http://blog.joins.com/yang412/13386852>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집단기억’은 에밀 뒤르켕의 문하생 모리스 알브바슈가 1925년도에 발표한 <기억의 사회적 구성틀>에서 처음 제시되었다고 합니다. <기억의 지도>를 감수하신 김문조교수님은 ‘집단 기억’이란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인식적 가교로써 ‘삶에 보탬이 되는 지혜나 교훈의 교훈’이라는 온축적 가치를 넘어, 역사의 물줄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려는 집합적 열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을 빚는 집단들은 상대 집단의 집합적 열망을 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일 것입니다.

 

대립하는 집단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치명적 사례로 제노사이드가 있습니다. 역시 [북소리]에서 소개한 허버트 허시교수의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 http://blog.joins.com/yang412/13180447>에서 인용한 글을 다시 인용해보면, 제노사이드는 ‘집단학살(集團虐殺)’이라 번역되고 “그리스어로 민족, 종족, 인종을 뜻하는 ‘geno’와 살인을 뜻하는 ‘cide’를 합친 말이며, 고의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는 범죄를 일컫는다.”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집단 학살의 정확한 정의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나, 법적인 집단 학살의 정의는 1948년 국제 연합 집단 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에서 나온다. 이 협정 2조를 보면 집단 학살을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한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집단의 일원을 살해하거나 심각한 육체적ㆍ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것, 고의적으로 육체적 파멸을 의도한 생활 조건을 강제하는 것, 집단 내 출생을 막는 것, 집단의 아동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 이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948년 유엔이 「집단 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을 마련하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집단이 저지른 것과 같은 대규모 학살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자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만, 세계대전 이후에 아프리카와 동유럽 등지에서 벌어진 이민족들 간의 전쟁에서 여전히 재현되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집단이 확대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집단과의 부딪히게 되고 필연적으로 전쟁이라는 치명적인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인류가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온 일이기도 합니다. 전쟁에서 사람이 죽고 도시가 무너지는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오월동주(吳越同舟)는 상황논리일 뿐, 정복당한 집단이 언젠가는 세력을 키워 복수에 나설 것을 걱정하기 때문에 정복한 집단을 아예 절멸시킨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정복자의 문화청소행위에 저항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애절한 감정을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민족을 말살하려면 먼저 그들에게서 기억을 제거하는 일부터 시작하지. 누군가는 그들 책과 문화와 역사를 파괴하지.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다른 책을 쓰고, 그들에게 다른 문화르 제공하고,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고. 그러고 나면 민족은 서서히 자신의 현재 모습과 과거 모습을 잊기 시작하지. 주변 세상은 그 민족을 더더욱 빨리 잊어 가고 말이야.(밀란 쿤데라 지음, 웃음과 망각의 책 297쪽, 민음사, 2011년; http://blog.joins.com/yang412/12898248)”

 

국제사회의 감시를 의식하여 인종청소행위를 대규모로 저지르지는 못하는 대신 이를 대체할 수단이 자행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로버트 베번의 <집단기억의 파괴>는 제노사이드에 병행하여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집단기억의 말살행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바로 건축물의 파괴와 같은 문화청소행위입니다. 저자는 영국의 건축잡지 <빌딩 다자인>의 전임 편집인을 지낸 건축저널리스트이자 저술가입니다.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유럽의 건축유산의 자료화면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는 저자는 인도에서 보스니아까지 무수한 파괴의 현장을 직접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정복자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 한 집단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그들의 정신이 담긴 건축물을 파괴해왔으며 또 지금도 파괴하고 있는지를 알아낸 것입니다. 전쟁에서 건물이 무너지고 도시가 파괴되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불가피하게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도서관이나 미술관 혹은 종교건물과 같이 집단의 현전(現前, presence)의 상징은 특히 의도적으로 선택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답니다. 이들 건축물들은 역사적 기억의 저장고이자 특정 집단의 현재를 과거 그리고 미래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건축물이 파괴되는 것은 전쟁의 부수적인 피해가 아니라, “건축물과 장소에 깃든 기억과 역사와 정체성의 말살, 즉 망각의 강요 그 자체가 목적인 분쟁에서 일어나는 특정 건축양식이나 전통에 대한 적극적이면서도 조직적인 파괴다.(9쪽)”라고 저자는 잘라 말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집단학살과 인종청소의 과정에서 건축물이 맞는 숙명을 살펴보고, 건물을 표적으로 한 테러 활동과 정복 활동, 사람들을 분산시키거나 결집시키기 위해 구조물을 세우거나 철거하는 행위, 과거의 잔해 위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혁명적인 새 질서로 파괴된 건물들을 짚어가고 있습니다. 1938년 크리스탈나흐트(Kristallnacht; 수정의 밤, 1938년 11월 19일부터 10일까지 나치의 선동을 받은 독일인들이 유대인의 집과 사업장, 시너고그 등을 습격한 사건)로부터 시작된 나치 독일의 광범위한 유럽문화 말살행위는 물론, 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의 배려로 독립 국가를 이루게 된 이스라엘이 선주민 팔레스타인 사람과 문화를 말살하려는 행위들도 빠트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코소보 내전 기간 동안 세르비아 강경주의자들에 의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무슬림 문화의 파괴 실태,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신구교의 충돌, 중국 정부가 티베트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하여 저지른 문화파괴 행위 그리고 문화혁명기간 동안 저지른 중국의 권력층이 저지른 자기문화 파괴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뒤쫓고 있습니다. 다만 지리적 혹은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사건중심으로 서술하지 않고 문화파괴의 형태에 따라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어 사건들이 중복하여 인용되다보니 맥락이 매끄럽지 못한 느낌도 남습니다. 저자가 골라낸 주제어는 문화청소, 사기와 선전전으로 포장된 테러, 정복과 혁명, 갈등을 일으키는 분할, 그리고 재건 등입니다.

 

집단 간의 충돌은 대체적으로 종교적 이념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문화파괴행위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실용을 강조했던 시기에조차 라이벌의 종교적인 건축 유산을 파괴하는 쪽이었다. 반면 이슬람교는 비록 일관적이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믿음이 없는 자’들의 교회를 다루는데서 좀 더 유연했으며 파괴하기 보다는 모스크로 개조하는 쪽을 택했다.(27쪽)” 이슬람의 이런 관념은 바로 스페인의 코르도바 메스키타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785년 건축이 시작된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로마인과 서고트인들이 세웠던 교회에 지은 이슬람 사원인데, 메카의 사원양식을 고집하지 않고 교회의 주춧돌과 기둥, 건축양식까지 고스란히 이용하여 전형적인 교회 평면구조의 회교사원인 새로운 칼리프양식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김희곤 지음, 스페인은 건축이다 138-146쪽, 다산북스, 2014년; http://blog.joins.com/yang412/13381380).

 

물론 탈레반이 저지른 바미안석불의 파괴행위와 같이 완벽할 정도로 실효적이지는 못하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그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고 보존하여 후손에 물려주도록 하자는 진화된 문화유산의 보호개념은 계몽주의 시대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기념물이나 건축물은 쓸모를 잃으면 파괴되거나 대체 또는 개조되었던 것인데, 특히 자신의 전통이 아닌 문화유산까지도 존중해야 한다는 관념은 거의 계몽주의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건축물이 파괴되거나 무시되고, 내가 사랑할 수 없는 건축물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는 존 러스킨은 ‘건축은 성스러운 기억의 요체이자 수호자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건축이 역사가 되도록 하고,지나간 시대의 건축을 가장 귀중한 유산으로 보존할 의무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존 러스킨 지음, 건축의 일곱 등불 231쪽, 마로니에북스 펴냄, 2012년 http://blog.joins.com/yang412/13284036) 앞서 유엔의 「집단 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한 것은 탈레반이 예고하고 실행에 옮긴 바미안석불의 파괴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응방안이 마련되지 못ㅎ라고 결국은 석불이 파괴되고 말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미안석불의 사례처럼 국제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세르비아 반군에 의한 두브로브니크 포격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서구 언론은 세르비아 반군의 두브로보니크 포격을 세계의 집단 건축유산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고 포격을 멈추라고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얻었던 것입니다. 다만 두브로브니크에 들어서 있는 후기 르네상스건축물들이 서구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같은 기간 동안 벌어진 발칸반도 일원에서 벌어진 이슬람유산의 파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미온적인 반응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응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서구인들의 뿌리 깊은 문화적 근시안 또는 적대감 탓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파괴된 문화유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 역시 뜨겁습니다. 저자는 “재건은 그 재건을 가져온 파괴만큼이나 상징적이다. 건설은 파괴된 건축 환경을 이어 붙이거나 예전 삶의 결을 하나로 엮는 데 사용된다. 집단기억에는 새로운 시금석이 놓인다. 한때 비인도적인 기념물, 곧 일상의 예배 장소와 도서관과 분수였던 것은 재건을 통해 파괴를 야기한 사건을 떠올리는 의도적인 기념물이 된다. 역사는 어깨 너머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간다.(309쪽)”라고 재건의 의미를 새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질문화를 파괴해 망각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재건은 특히나 의심스럽다.’라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러스킨은 “복원은 건물에 가해질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파괴를 의미한다. 어떤 잔여물도 거두어들일 수 없는 파괴다. 더불어 파괴된 작품에 대해서 거짓된 묘사를 하는 것과 같다.(존 러스킨 지음, 건축의 일곱 등불 249쪽)”라고 하여, 파괴된 건축물의 재건에 대하여 부정적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진실을 표방하는 역사가 유산에 자리를 빼앗기는 사례가 너무 잦다’라고 지적한 역사학자 데이비드 로웬덜역시, 유산은 ‘이미 지나간 신념에 바치는 맹세이며 과거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자부심은 유산의 부작용이 아닌 근본인 목표’라고 하여 건축의 재건을 이용하거나 남용하는 이들을 경계하기도 합니다(315-316쪽). 저자 역시 “재건을 통해 건축물을 구조하는 임무에는 파괴 이후의 관습과 공식적으로 인정된 역사에 부합하는 거짓 기억을 이식할 위험이 존재한다. 재건된 역사는 그것이 위조된 것일때도 과거의 진본 기록으로 읽힐 수 있다.(324쪽)”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이 여전히 당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을 정리한 저자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세운 사람은 사라지고 없다 해도 죽은 건물은 사어(死語)처럼 슬픈 웅변이 될 수 있다. 파괴된 건물은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조각된 석조 칸막이와 목재 파편에 뒤섞여 포차 공동묘지에 묻힌 보스니아 무슬림의 고통을 대변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의 유산에서 발전한 공동의 세계유산이라는 관념은 물론이거니와 평등과 정의와 이성이라는 계몽주의의 가치와 객관적인 역에 대한 열망까지 위험에 처했다. 분쟁의 한복판에서 보호에 대한 약속이 헌신짝처럼 버려진 20세기의 역사가 21세기에 또다시 되풀이될지 아닐지는 다음 몇 년 안에 판가름이 날 것이다.(369쪽)”

 

저자가 핵심적으로 인용한 사례들은 주로 현재진행형인 것들이지만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문화청소행위에 대한 기록들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저지른 문화말살 정책을 저자에게 설명할 기회를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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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길을 가라
로랑 구넬 지음, 박명숙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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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리 사회에는 ‘한 우물을 파라’는 것을 일생의 금과옥조로 받들어왔습니다. 심지어는 잘 못 선택한 길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을 가면 삶을 망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괴로움을 감내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생각 때문에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은 상황이라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전환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첫 번 결정이 어렵지 두 번째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보지 못한 길이 정말 아름다운지는 가보아야 알 수 있는 노릇입니다.

 

<가고 싶은 길을 가라>는 바로 삶이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분에게 좋은 울림이 될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신경언어학 프로그래밍과 코칭 전문가로서 정신적 자기계발을 연구하는 저자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답을 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고 싶은 길을 가라>는 인도의 발리에서 만난 현자로부터 얻은 조언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라는 것으로 정리될 것 같습니다. ‘내면의 나와’, ‘(나의) 꿈과’, ‘두려움과’, ‘선택과’ 그리고 ‘(나의) 행복과’ 마주서 고민해보라는 것입니다. 각각을 주제로 삼은 이유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나에 대해 가장 무지한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에 내면의 나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꿈을 이루면, 난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되므로’ 꿈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패달을 계속 밟고 있는 한 넘어지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하여 두려움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선택한 일들이 우리 삶의 내용이므로’ 선택과 마주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디스 무엇을 하든 행복하기 위하여’ 행복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편을 잡고 있는 프랑스인 줄리앙은 여름휴가를 즐기려 찾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현자라고 불리는 치료사 샴탕를 소개받게 된 것 같습니다. 특별히 아픈 적도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는데 왜 치료사가 등장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찾아간 샴탕선생의 진찰을 받으면서 왼쪽 새끼발가락에서 격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치료사는 줄리앙에게 ‘당신은 불행한 사람입니다.(20쪽)’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문제가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고 지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치료사와의 면담을 이어가게 됩니다. 치료사는 줄리앙에게 숙제를 내주고, 그 숙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픈 곳을 치료하는 치료사로부터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줄리앙은 헷갈리게 되지만, 질병에 대한 서양과 동양의 인식에 차이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서 이해가 되는 듯 합니다. 즉, ‘서양에서는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요. 하지만 우리 동양에서는 두 가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일관성 있는 하나의 실체를 이룬다고 믿습니다.(43쪽)’ 사실 우리나라의 전통의학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만 실제적으로는 약제나 침술과 같은 침습적 치료행위를 주로 제공하는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줄리앙은 샴탕선생과의 만남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에게는 몸 전체에서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에너지와 자신만의 특별한 아우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치료사는 ‘믿음’에 큰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믿으면, 그 믿음이 행동할 때 선택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은 다른 이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믿음이 더 강화되는 결과를 낳습니다.(70쪽)” 즉 믿음이 선순환을 촉발해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치료사는 다양한 과학적 자료들을 귀띔해주는데, 심지어는 약제의 효능시험에 나오는 플라시보 효과가 심리적 믿음의 효과로 삼십퍼센트에 달하는 치유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는 사실도 일깨우고 있습니다.

 

옮긴이는 이 책을 읽은 분들이 각자 내 마음의 주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곧, 어떤 ‘선택’을 하는 주체가 나 자신이라는 의미이며, 그런 나 자신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232쪽)”라고 적었습니다. 스스로를 믿는 사람은 남의 탓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조언을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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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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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에 스페인을 다녀올 계획입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여행지가 인기를 끈다고 합니다만, 꼭 예능프로그램 때문에 스페인을 고른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가 보려는 계획이 있어 스페인에 관한 책에 관심을 두다보니 자연스럽게 찾아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행사 상품을 고르다 보니 돈키호테의 무대가 된 지역도 포함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침 시공사에서 처음으로 스페인어판을 저본으로 한 완역판이 나왔다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돈키호테하면 주막을 성(城)으로 오해하고 창을 들고 풍차로 뛰어드는 등 해프닝을 벌이는 얼척 없는 장면만 인식되어 있어 그야말로 엉뚱한 사람의 표본이 되어왔습니다.

 

완역본으로 732쪽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단숨에 이야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아직 이유를 파악하지는 못하였습니다만, 4개로 구분된 52개의 이야기는 마치 천일야화를 읽는 느낌입니다. 돈키호테의 활약을 기록하면서 단조로울 것을 우려한 듯 등장인물이 겪은 일을 돈키호테가 듣는 형식으로 모두 일곱 개의 이야기를 엮어 넣고 있는데 이를 삽입소설이라고 한답니다. 이야기가 방대한 만큼 등장인물도 만만치 않아서 총 65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가운데 여자는 52명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세르반테스 시대의 스페인, 아니 유럽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 역시 다양해서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이나 신부와 같이 상류층도 나오지만 건달, 매춘부, 깡패, 심지어는 이민족까지 등장시키고 있어 당시의 스페인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주인공 돈키호테의 우상인 둘시네아 공주(?)는 이름은 자주 등장하지만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편력기사로 활동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난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처음 들른 주막을 성(城)으로 착각하고 성주(?)인 주막주인에게 기사임명을 요청하는 해프닝이 시작되는데, 주막주인은 그저 그날 저녁의 웃음거리로 즐길 요량으로 돈키호테를 기사로 임명하는 것이 장대한 서사시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살짝 맛이 간 돈키호테의 편력기사 흉내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 가는 모티브가 될 뿐이고, 실제로는 엇갈리는 운명의 길에서 헤매는 남녀가 우여곡절을 겪고 난 다음에 진실한 사랑을 찾아가는 해피 엔딩을 시사한다는 것입니다. 옮긴이는 <돈키호테>의 큰 줄거리를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에 의해 상징되는 평행선은 바로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겪는 끊임없는 갈등과 화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돈키호테와의 대립은 우리가 인생에서 부딪히게 되는 현실과 이상의 대립을 의미하고 있다.(723쪽)”

 

요즈음에도 약물, 도박, 게임 등 다양한 것들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만, 우리의 돈키호테 역시 당시 유행하던 기사소설에 빠져들다가 결국은 이성을 잃는 지경에 이르러 이토록 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즉,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편력기사가 되어 무기를 들고 말 등에 올라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 속 편력기사의 모험들을 직접 실천에 옮겨 자신의 이름과 명성을 길이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41쪽)” 그리고 보니 젊었을 때 유행하던 무협소설에 빠져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탈리아 프로렌스에 사는 기사가 절친을 동원하여 아름답고 현숙한 아내를 시험하는 장면을 읽다보면 사랑하는 이를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라는 경계로 삼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시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여자는 유리로 만들어졌다. / 그러니 시험하면 안된다, / 깨지는지 안깨지는지. / 모두 깨지고 말 테니. / 깨지기는 쉽고 / 다시 붙일 수는 없으니 / 깨질 위험이 있는 곳에 두는 것은 / 사려 깊지 못한 일 / 모두들 이렇게 생각하고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 다나에가 세상에 있다면 /황금의 비도 또한 있을 것이다.(454쪽)”

 

저자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당시의 문학 혹은 공연계에 대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문제가 지금 상영되고 있는 연극에 대한 저의 원한을 불러일으키는군요. 그것은 기사도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툴리우스에 따르면 연극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의 거울이며 관습의 표본이며 진실의 상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상연되고 있는 것들은 엉터리의 거울이고 우둔함의 표본이며 방탕함의 상입니다.(668쪽)” 즉 지나친 상업주의를 경계하고 순수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아, 요즈음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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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2014-09-27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뜻이 담겨 있었네요. 꼭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처음처럼 2014-09-28 06:58   좋아요 1 | URL
요즘 이벤트기간이라서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답니다. ㅎ
 
파리 걷기여행 - On Foot Guides 걷기여행 시리즈
피오나 던컨.레오니 글래스 지음, 정현진 옮김 / 터치아트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당장 파리에 갈 계획도 없으면서 <파리 걷기여행>은 생뚱맞다 싶은 리뷰가 될 것 같습니다. 여행 안내서는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것이 많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손에 넣게 된 것은 책이라는 것이 절판이 되면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더라는 경험의 산물입니다. 이런 생각에 더해서 예전에 파리에 갔을 때 마땅한 여행 안내서를 챙겨가지 못한 관계로 오르세 미술관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 때문입니다. 그때는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 숙소를 정했기 때문에 이틀에 걸쳐 루부르 박물관을 구경할 수 있었고, 한나절 걸려서 노트르담성당이 있는 시테섬에서 에펠탑까지 세느강을 따라 걸어갔다고 다시 숙소로 돌아보았습니다만, 호텔 로비에 있는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걸었던 것이라서 구경을 제대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7700271). 물론 출장길에 잠시 여유를 부렸던 것이라서 구경에 목맬 상황도 아니기는 했습니다. 어떻든 에펠탑까지 걸어갔으면서도 올라가보지 않은 것은 나중에 아내와 함께 올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일종은 척후병인 셈 쳤다고나 할까요?(http://blog.joins.com/yang412/7639864). 그래서 <파리 걷기여행>이 반가웠던 것 같습니다. 파리에서 시내를 돌아볼 수 있는 자동차 투어도 있었지만, 굳이 세느강을 따라 걸었던 것은 온통 볼거리가 가득차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투어버스를 타면 아무래도 주마간산 식이 되어 기억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걷다보면 하나를 보더라도 찬찬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걸어서 파리 탐험하기’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이용법에서 저자는 책에 실린 지도가 450미터 상공의 헬리콥터에서 45 각도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럴게 만든 지도에 “파리의 거리와 공원, 광장, 심지어 개별 건물까지 그대로 옮겨 놓았으며, 관련 정보와 흥밋거리르 번호로 연결해 안내하고 있어 파리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초행자라도 파리걷기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을 것(11쪽)”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좋은 안내서입니다. 물론 코스를 따라가는 일이 앞만 보고 걷는 것이 아니라 코스에 흩어져 있는 볼거리들을 빠트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거리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전체 코스와 저자가 추천하는 소요시간 등에 대한 정보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납습니다.

 

파리 시내는 16개의 메트로 노선이 거미줄처럼 연결되고 있어 걷기코스로 이동하는데 메트로와 버스를 연계하면 된다고 합니다. 저자는 몽마르트를 시작으로 루브르에서 개선문까지, 그리고 생루이섬과 시테섬을 연결하는 코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13개의 걷기에 좋은 코스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코스를 연결해서 걷는 방법, 코스의 특성에 따라서 계절에 따라 걷기에 좋은 코스, 주말 혹은 주중에 따른 코스의 분위기 등 세심한 부분까지 짚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여행객을 위한 각종 정보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저고도 항공사진은 큰 건축물의 전체 모습이나 거리를 채우고 있는 건물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조감할 수 있고, 여기에 더하여 걸으면서 꼭 챙겨야 할 볼거리를 담은 사진들도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걷기 코스를 표시하고 있는 지도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해당 코스를 먼저 보여주고, 걸으면서 주목할 건물에 번호를 매겨서 따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를 다시 몇 개의 세부 구간으로 나누어 놓아서 걷다가 길을 놓칠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코스 ‘생 제르맹데프레에서 오르세까지’ 가운데 오르세미술관 부분을 뽑아보면, “1986년 개장한 오르세 미술관은 1929년까지 프랑스의 남서쪽 지방으로 열차를 운행하던 거대한 종착역이었다. (…) 오르세 미술관의 정수라 할 수 있으니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경우 곧장 꼭대기 층으로 향할 것을 추천한다. (…)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일이며 오전 9시30분부터 저녁6시까지, 목요일은 저녁 9시45분까지 개방한다.

 

최근 들어 프랑스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게 되는데, 특히 파리를 무대로 한 작품에서는 배경이 되는 지역을 떠올릴 수 있다면 책읽는 재미가 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래도 걸어서 파리를 돌아본 다음에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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