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 - 늘 청춘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대니얼 클라인 지음, 김유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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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노후를 보내려면 30대부터 대책을 마련하라는 조언을 들어왔습니다만, 당장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심각하게 고민을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막상 노후대책을 고민할 나이가 되니 막막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복지예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연금법을 바꾸고 세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장 효율적인 노후대책이란 힘이 닿는 데까지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겠다 싶습니다.

 

공자님은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서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반소사에 음수하고 곡굉이침지라도 낙역재기중의니 불의이부차귀는 어아여부운이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꿈치를 굽혀 베개를 삼아도 즐거움은 바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니, 의롭지 못하게 부유하고 귀한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 같은 것이다.”라고 새길 수 있습니다. 공자님처럼 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세상일이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니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라도 제대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된 탓에 끌렸던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은 미국에서 잘 알려진 대중철학 저술가 대니얼 클라인의 <Travels With Epicurus>을 우리말로 옮긴 책입니다. 혹시 에피쿠로스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원제목대로였다면 독자의 눈을 끌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 백과사전에 따르면, 에피쿠로스(BC 341 ~ BC 270)는 그리스의 사모스에서 태어난 철학자입니다. 그는 소아시아를 포함해서 여러 곳을 주유한 끝에 BC306년에 아테네로 돌아와 학원을 세웠는데, 철학을 정치와 공공생활에 적용하는 데 관심이 있는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던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과는 달리 정치활동과 공공생활을 피하라고 가르쳤으며, 일상의 안식과 평온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을 따르도록 했다고 합니다. 에피쿠로스의 학원에서는 하루 1/2파인트 분량의 포도주가 허용되었지만 평소 마시는 것은 물이었고, 보리빵이 주식이었다고 하는데, 피타고라스학파와 달리 공유재산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추구하는 삶이었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그리스의 이드라(hydra)섬에서 저술했다고 합니다. 75세가 된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철학서적을 한 보따리 챙겨들었다고 하는데, 에피쿠로스는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세네카 등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과 몽테뉴,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칸트, 헤겔, 니체, 사르트르, 버트런드 러셀, 윌리엄 제임스와 같은 근대 철학자는 물론, 카뮈와 셰익스피어, 윌리엄 브레이크와 같은 문학가, 심지어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존 레논 등 가수까지도 불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아내와 함께 읽었습니다.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바다와 하늘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파랗던 지중해를 내려다보면서 언젠가는 저 바다를 제대로 느껴보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지중해를 매개로 이 책과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책장을 열면서 만나는, “운이 좋은 사람은 젊은이가 아니라 일생을 잘 살아온 늙은이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는 신념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운수에 끌려 방황하지만, 늙은이는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느긋하게 행복을 즐긴다.”라는 에피쿠로스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끼는 것은 아직은 일에 매달리고 있지만 이제는 느긋한 삶을 즐길 나이를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즐겁게 살지 못하면 바르게도 살 수 없다.’로부터 시작되는 목차의 제목에서도 노년의 삶에 대한 저자의 분명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저자가 이드라섬으로 향한 까닭은 최근 노인들에게 불고 있는 ‘영원한 청춘’을 꿈꾸는 움직임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에 해답을 구하고자 함이었다고 합니다. 만족스럽게 지낸 인생의 절정기를 영원히 이어가기를 꿈꾸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러다 보면 진실하고 역시 만족스럽게 늙어가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그런데 노인다운 노인이 어떤 것인지, 노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정할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다음백과사전은 삶에 대한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피쿠로스는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맛있는 음식만 찾아다니는 식도락가이자 극도로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에피쿠로스주의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추구하는 감각적 쾌감이 아니라 정원에서 직접 키운 재료로 담백하게 조리한 음식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그의 정원에서 들었을 것이라는 ‘여태까지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는가? 이 정원은 그대의 식욕을 돋우지는 않지만, 식욕을 해소시켜줄 것이다.(24쪽)’라는 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버킷리스트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버킷리스트를 버리라고 충고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역사적 인물들을 증거로 삼은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의 시 「너무 늦은 것은 없다」를 인용하면서 ‘맹렬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휴식이라는 말이 없다’라고 성토합니다. 맹렬하게 살다가 장렬하게 죽음을 맞게 된다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차분하게 인생의 황혼기를 성찰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적극적인 노년의 삶을 주문한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http://blog.joins.com/yang412/3977182>는 이드라까지 들고 가지 않은 듯합니다.

 

그리스가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국가부도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에피쿠로스가 살아 있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소개하는 일화를 읽으면서 그리스 사람들 고유의 삶을 버린 결과는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혀 손질을 하지 않은 올리브 밭에 앉아 전통술 우조를 홀짝거리며 석양을 지켜보는 그리스 노인에게 미국인 부자가 밭을 잘 가꾸면 큰돈을 벌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 무엇을 할건지 묻는 그리스 노인에게 미국 부자는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대답하는데, 그리스 노인은 이렇게 물어봅니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앉아서 우조를 홀짝거리며 석양을 바라보는 것 말이요?(44쪽)’ 삶에 대한 눈높이를 어디에 두는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 보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나라에 따라 다른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저자는 이드라섬, 카미니(Kamini)마을에 있는 아담한 식당에 모이는 네 명의 친구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판사로 일하다가 고향마을로 돌아온 타소는 어부, 교사 그리고 웨이터로 일하다 은퇴한 세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그의 경력은 이들과 어울리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듯 합니다. 고향친구들은 굳이 다른 사람은 절대로 수단으로 삼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임마누엘 칸트의 충고가 필요 없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면 그 역시 나에게 똑같이 대할 것입니다. ‘일상사와 정치’를 등지고 사는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을 지닌 동료입니다. 하지만 “공직에 있든 사업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영원한 청춘’을 꿈꾸며 여전히 직업전선에서 허우적대는 노인들은 이런 값진 선물을 얻을 기회가 거의 없다.(53쪽)”라고 저자는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물러날 때를 잘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20년 이상 동거한 부부가 이혼하는 소위 ‘황혼이혼’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해 황혼이혼은 3만2433건으로 전체 이혼의 약 28%에 달했다고 합니다(중앙일보 2014년 11월 13일자 기사. “‘힘 빠지니 무시’ 황혼이혼 하자는 남편들”; http://blog.joins.com/yang412/13546708). 남녀관계는 간단하지만은 않아서 누구의 말이 옳은지 가리기가 쉽지만은 않은 노릇입니다. 그래서 결혼할 상대를 고르는데 신중해야 합니다. 놀랍게도 프리드리히 니체는 결혼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결혼 할 때에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라. ‘나는 노년기에도 이 사람과 대화를 잘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가?’ 결혼 생활에서 그 이외의 나머지는 모두 덧없는 것이다.(166쪽)” 허무주의자로 알고 있는 니체가 이런 말을 했으리라고는 저 역시 상상도 못했습니다.

 

여행길에서 책을 읽다가 다음 구절을 아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비교적 늦게 결혼했지만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오래 지속된 부부관계가 노년에 가장 큰 위안이 된다는 점에 동감한다. 부부관계가 오래 지속될수록 부부가 공유하는 추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166쪽)” 그리고 생각해보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을 오래했다고 해서 공유하는 특별한 추억거리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아내와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둘이 함께 하는 여행입니다. 같은 것을 보고 들은 것을 공유하게 되면 이야깃거리가 늘어나게 될 것 같습니다. 늙어감에 대한 저자의 고민에 대하여, “진짜 노년을 제대로 보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탐구하면서 돌아다니는 건 영원한 청춘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친구들과 다를 것이 없어. 그런 친구들이나 자네나 언제라도 닥칠 것을 부인하고 살아가기는 마찬가지네(218쪽)”라는 친구의 핀잔까지도 고백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점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종교에 의지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노인들이 종교에 의탁하는 이유는 죽음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231쪽)”이라고 하면서도 ‘종교는 우리의 소원이 만들어낸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종교를 배격한 프로이트와 대체적으로 과학적이고 논리실증주의적 사고를 하는 현대인들이 유독 신과 종교문제만큼은 비논리적이고 비실증주의적인 사고에 깊이 빠진다는 샘 해리스와 리처드 도킨스를 인용합니다. 또한 힌두교에서 나누는 인생의 4단계 - 제1단계 브라마카리(Brahmacari)는 학생단계, 제2단계 그리하스타(Grihastha)는 가장 단계, 제3단계 바나프라스타(Vanaprastha)는 반은퇴 상태의 은둔자 단계 그리고 제4단계는 산냐시(Sannayasi)는 세상을 버리는 고행자 단계-를 인생을 준비하는 기간, 생산 기간, 봉사 기간 그리고 명상 기간으로 나눈다고 설명하면서, 72세 이후에 시작되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종교까지도 버려야 할 우선순위가 높다는 사실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힌두교도는 힌두교 경전인 베다를 불에 태우는 의식으로 산냐시기간을 시작하는데, 일생을 바쳐 배우고 실천하던 신앙까지도 모두 버린다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철두철미하게 내려놓은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타소의 가족이 초청한 부활절 저녁의 가족 파티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노년기의 이상적인 모습을 발견하였다고 적었습니다. 평화로운 가운데 같이 어울리는 것, 그것 이상 더 좋은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타소에게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이 큰 영광입니다. 사실 살아있다는 것도 큰 영광이지요.’라고 인사말을 건넵니다. 영원한 청춘이란 파랑새와 같아서 세상을 주유해도 찾을 수 없더니 바로 집에 살고 있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영원>을 인용하였습니다. “한 가지 기쁨에 집착하면 / 훨훨 날아다니듯 자유로운 삶이 파괴되지만, / 날아다니는 기쁨에 입을 맞추면 / 영원히 아침을 맞이하며 살리라.(253쪽)”

 

국가 위기를 맞은 그리스에서는 적지 않은 연금생활자들이 도시를 떠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부로부터 연금을 지급받지 못하기 때문인데, 돌아온 시골에서는 한 주일 동안 단 1유로도 쓰지 않고 생활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들을 직접 기르거나 이웃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해법은 예전에 살던 방식에 있었던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능력 밖의 것을 내려놓는 일이 멋진 인생을 사는 길이라는 점을 깨닫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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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
자크 아탈리 지음, 이재룡 옮김 / 사월의책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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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꼬르도바에 들렀을 때 조형진 가이드는 메키스타 회교사원을 설명한 다음에 유대인마을로 일행을 안내하면서 꼬르도바의 현인 마이모니데스의 좌상을 소개하였습니다. 인터넷에서 마이모니데스를 검색했을 때 발견한 책이 바로 자크 아탈리의 장편소설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입니다. 소설의 무대가 꼬르도바와 톨레도는 물론 프랑스 서부에서 모로코의 패스에 이르기까지 이슬람과 가톨릭이 긴박하게 세를 겨루던 장소가 무대가 될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를 주석한 아베로에스와 마이모니데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철학서를 뒤쫓는다는 얼개에 관심이 끌렸습니다. 이미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http://blog.joins.com/yang412/12860768>을 통해서 만나본 바 있습니다.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 http://blog.joins.com/yang412/12891200>처럼 시대를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소설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대단히 믿기 어려울 테지만 여기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등장인물들은 실존인물들이며 생각과 행동 방식은 이 시대의 이념에 충실하다’라고 전제하여 책을 읽는 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일단 등장인물이 친숙하고 이들의 활동무대가 되고 있는 꼬르도바, 톨레도 그리고 페스 등을 돌아본 경험이 책에 쉽게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시대적 가톨릭과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모두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데, 같은 지역에서 세력을 다투면서 살다보니 서로를 존중하던 시절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1100년을 전후로 약 20년 동안, “역사상 딱 한 번, 딱 한 곳(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고 찬양하며 서로에게서 자양분을 섭취하는 길을 택했다‘라고 전합니다. 이 시기에 꼬르도바를 수도로 한 알모라비데왕조가 포르투갈의 알폰소1세왕의 침략을 받아 위기에 처하자 회교도인 알모아데족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알모아데족은 오히려 알모라비데왕조를 내쫓고 꼬르도바를 차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가톨릭교도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유대의 숨은 현인 엘리파르는 랍비 마이문에게 시집간 누이의 아들 모세에게 그리스의 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설명하곤 했는데, 새로 들어선 이슬람 왕조의 탄압으로 죽음에 몰리면서 조카에게 톨레도로 가서 제라르도라는 사람을 찾아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의 사본을 받으라고 부탁합니다. 한편 꼬르도바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는 펑소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진리의 원천이며, 코란은 과학적 논고가 아니라 단지 과학에 존재하는 진리에 접근하는 방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서 이슬람교도들의 비난을 받게 되는데, 결국은 칼리프의 소환을 받아 수도인 모로코의 마라케시로 호송됩니다. 이곳에서 칼리프의 최측근인 이븐 투파일의 지시에 따라서 똘레도로 가서 제라르도라는 사람을 만나 역시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의 사본을 받아오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모세와 이븐 루시드는 동시에 제라르도를 만나게 되고, 제라르도는 두 사람에게 각각 다른 길을 안내하게 됩니다만. 결국 두 사람은 모로코의 패스로 향하게 됩니다. 패스에서 두 사람은 원하는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두 사람의 행로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고 있어, 이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뒤쫓은 두 사람을 위협하는 무리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슬람이 배경이 되는 책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거창하게 길어서 서로 헷갈리는 바람에 자꾸 되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작가가 촘촘하게 짜놓은 틀은 어긋나거나 어색한 점도 없이 매끈하게 마무리에 이르게 됩니다. 다만 이븐 루시드와 모세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책을 손에 넣게 되는지는 독자의 몫이 되고 만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븐 루시드, 즉 아베로에스는 앞서 소개드린 것처럼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과 이 책의 두 주인공이 뒤쫓고 있는 <절대적 영원에 대한 논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결정적 논고>를 저술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1100년을 전후한 이베리아반도와 모로코 지역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좋은 책읽기였습니다. 또한 세 가지 종교의 유사점과 차이점도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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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인간의 출현 - 게임이론으로 푸는 인간 본성 진화의 수수께끼
최정규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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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타성을 설명하려는 생물학자들의 다양한 이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매트 리들리는 <이타적 유전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47182>에서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최근까지 쌓아올린 연구성과를 토대로 이타성이 인간사회의 벌전에 어떻게 기여하게 되었는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타성이 가져다 줄 이점을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명한 이론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하신 최정규교수님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인간에서 이타성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한 설명을 <이타적 인간의 출현>에 담았습니다. 게임이론은 간단하게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조건을 달리하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변형된 게임이론이 꼬리를 물고 나오기 마련이라고합니다. 저자는 박사과정에서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서 지금도 죄수의 딜레마 연구를 계속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진화적 게임이론인데, 이 이론은 경제학과 생물학이 만나 탄생한 이론으로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그리고 사회심리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응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1부에서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이론을 통해서 인간의 이기성과 이타성이 가져다 줄 미래의 이익을 분석하고 왜 인간이 당장 눈앞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이기성을 버리고 이타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이타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제시된 다양한 이론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혈연선택 가설입니다. 동족의 유전자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을 감수한다는 내용인데, 문제는 혈연관계가 없음에도 이타적 행동을 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호혜성 가설입니다. 즉 미래의 얻을 반대급부를 기대하면서 먼저 이타적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발전시킨 이론에서는 상대의 대응을 따라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전력을 구사하는 경우에 가장 큰 이득을 얻게 된다는 실험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이 가설의 전제는 게임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반복되지 않는 게임에서는 통하지 않는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론은 유유상종 가설입니다. 무작위로 섞여 있는 집단 내에서는 이기적 행동을 하는 무리와 이타적 행동을 하는 무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즉 끼리끼리 논다는 것인데 이질적 집단이 섞임으로서 기대되는 다양성의 이득을 얻을 수 없다는 제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값비싼 신호보내기 가설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상대에게 신뢰를 얻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파라과이의 아체 부족의 식량공유관습을 설명하기에 적절하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는 의사소통 가설입니다. 먼저 상대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사전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의사소통 과정이 전제된다면 이기적 행동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밖에도 이타적 인간이 사회의 경쟁력이라는 집단선택 가설, 유유상종 가설을 확대한 공간구조 효과 등이 제시되어왔다고 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이론들이 인간의 이타적 속성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요약합니다. 첫째는 이타적 속성의 진화에 집단선택이 적지 않는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국지화된 상호작용이나 국지화된 지식전수과정 역시 이타적 속성의 진화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셋째, 아직 정립되지는 않았으나 의사소통 역시 이타적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데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제2부에서는 호혜적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어떤 경우에 호혜성이 강하게 발현되는지, 그리고 호혜적 인간의 존재가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제가 지난 주 부서내 강의에서도 인용했던 최후통첩게임을 인용하고 있었는데, 제 강의에서 이 게임이론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인간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이타성은 분명 진화의 산물일 것이나,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해온 것이라서 기존의 경제이론만으로 설명하는데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과, 앞으로는 신경과학이나 사회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성과와 융합하면 더욱 정교한 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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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소도시 여행 - 예술가들이 사랑한 마을을 걷다
박정은 글 사진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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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한다는 김별님은 SNS을 마케팅에 활용하자는 사내방침에 따라 트위터 계정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되어 소셜을 화두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것이 스페인을 세 차례 찾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나온 책이 <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 >입니다. 내용을 보면 영국여행사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가이드와 함께 전용버스로 움직이는 단체여행이 있고, 카우치서핑과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자유여행,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공정여행이라는 생소한 방식입니다.

 

단체여행과 자유여행은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행사 상품으로 단체로 여행하는 경우에는 잘 짜여진 일정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입장권이 필요한 곳에서 기다랗게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도착하면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빡빡하게 짜인 일정 때문에 원하는 장소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점이 단점입니다. 자유여행의 경우는 그 반대가 되겠지요. 얼마 전에 다녀온 스페인 여행이 그랬습니다. 12박 13일 동안 19곳을 방문하다 보니 정신이 없는 가운데 방문지에 대하여 미리 공부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동하는 중간에 조형진 가이드의 해박하고 잘 요약된 설명을 들으면서 볼거리를 미리 챙겨볼 수 있었지만, 때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는 책을 만났습니다. 스페인 여행기를 준비하면서 찾게 된 여행작가 박정은님의 <스페인 소도시 여행>입니다. 프롤로그를 보면 출판사의 기획으로 책을 쓰기 위한 목적의 여행이었던 만큼 방문지에 대한 자료를 모아 정리하고 여행에서 느낀 점을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내용이 쉽게 읽히고 이해되는 것을 보면 출판사에서 여행을 의뢰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번 여행을 통하여 스페인의 크고 작은 마을 서른한 곳을 다녀왔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스물한 곳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스물한 곳이 스페인 전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모두 돌아보는 것이 가능할까 싶기도 해서, 기획하신 분이나 저자의 의욕이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 책에 담긴 곳들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 그리고 대도시라 할지라도 그곳을 찾았을 때 막상 놓치게 되는 예술가나 작품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사실 여행사 상품은 다양한 장소를 엮고 있지만, 볼거리가 많은 대도시의 경우라도 대표적인 장소 한 두 곳만을 찍고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여행정보는 말할 것도 없고, 책을 읽는 내내 방문한 도시에서 꼭 보아야 할 곳들을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감상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그라나다, 론다, 세비야, 톨레도, 마드리드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어 제가 준비하고 있는 스페인여행기에서 인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해외여행에 나서겠습니다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맛집에 꽂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지에서 유명한 음식을 먹어보는 것은 당연히 여행에서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저자 역시 방문지에서 빠트리면 아쉬울 관광명소에 대한 느낌에 이어 음식문화를 두 번째 포인트로 둔 것 같습니다. 풍부한 사진을 곁들여 관광지와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일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유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여행 메모란에는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는 방법, 주요 관광자원, 식당 그리고 숙소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스크 지방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빌바오까지 찾아간 것은 대단한 열정이 아니고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의 스페인 여정에서는 스페인의 북부지방은 완전히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었는데, 나중에 산티아고 가는 길을 따라 걸어볼 요량을 하고 있어 그때 방문해보려고 합니다. 김별님은 스페인으로 가면서도 ‘왜 스페인이냐고 묻는다면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그냥 가보고 싶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굳이 ’꽃보다 할배‘가 아니었더라도 스페인은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다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그냥 그곳 사람들이 따뜻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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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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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작가님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 할 만합니다. 소설을 그리 자주 만나는 편이 아닌 저도 <혁명>을 비롯해서 읽어본 그의 작품만 해도 몇 가지나 됩니다. 이번에 나온 <읽어보겠다>의 서문에서 저자는 라디오에 관한 추억을 한 자락 펼쳐놓고 있습니다. 저 역시 라디오를 끼고 살았던 세대입니다만, <쌍뻬의 어린 시절>에서 “라디오와 더불어 나는 멀리 도망칠 수도, 꿈을 꿀 수도, 다른 것을 생각할 수도, 몇몇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었습니다. 라디오가 나를 구원해주었다고 생각했으니까요.(6쪽)”라는 대목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김작가님 역시 그랬던 모양입니다. 저도 라디오 대담프로에 몇 년을 나가보았습니다만,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방송시간에 맞추어 대본을 모두 써가지고 가야 마음이 놓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김작가님은 대본도 없어 15분 동안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무려 5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15분이 아주 짧을 것 같습니다만, 혼자서 이야기를 한다면 만만한 시간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처럼 방송에서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놓은 책이 바로 <읽어보겠다>라고 합니다. 젊음에 잘 어울릴 것 같은 23편의 소설을 마치 방송에서 다루듯이 깊이 천착해보겠다는 것이 이 책의 기획의도라고 합니다. 이 소설들의 특징은 ‘열망’과 ‘덧없음’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기 위한 책읽기가 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것들까지 포함해도 여섯 편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는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밑천이 들통나는 것도 잠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작가님께서 좋은 작품들을 소개해주셨구나, 또 제가 읽은 작품들은 어떻게 보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책읽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마치 청취자들에게 작품의 중요한 논점을 조곤조곤 들려주듯이 글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읽힐 뿐 아니라 느낌이 잘 맺어지는 것 같습니다. 소설의 한 대목을 직접 인용해서 들려준 다음 그 대목에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정리하고 있는데, 물론 간혹 읽기를 멈추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저자의 설명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읽으면서 영화 <살아한다면 이들처럼>에서 뜨거운 사랑의 절정에서 여자 주인공이 갑자기 자살하는 대목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행복의 정점에서 생을 마감함으로서 사랑이 깨졌을 때 당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결정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은 정리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공감하는 분위기로 느꼈습니다. 저는 <미 비포 유>를 떠올렸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락사를 선택하는 남자 주인공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에 죽음을 선택한다는 주장을 대하게 되면 그들은 정말 사랑한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고 누구에겐가 보여주기 위한 사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존 버거의 소설집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책읽기를 멈추었습니다. 이 작품에 실린 「리스본」에서 존 버거는 엄마를 리스본에서 만났다고 했습니다. “왜 하필 리스본에서 나를 기다렸냐”라고 묻는 존 버거에게 엄마는 “리스본에는 전차가 다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했습니다. 정말 리스본에는 100년 된 전차가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고색창연한 나무로 된 전차도 있었구요. 그리고 존 버거는 전차의 위층 맨 앞자리에 않고 싶어했다고 하는데, 모퉁이를 돌 때 불꽃이 날리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리스본의 전체가 2층으로 되어있었던 것 같지는 않구요. 맨 앞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불꽃이 날리는 것을 볼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23편이 작품들 모두 주옥같다고 하겠습니다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 가운에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만큼은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작가가 치매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삶을 관조하듯 써내려갔다고 해서 말입니다. 어머니의 임종 직후에 관하여 ”그 주 내내 아무 데서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벌어졌다. 잠에서 깨어나다가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곤 했다.(99쪽)“ 그렇습니다. 평소에 퇴근길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리곤 했기 때문에 지금도 퇴근하다가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드는 제 버릇이 바로 이 책을 꼭 읽어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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