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
박소정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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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작가적 상상을 무한하게 펼쳐낼 수 있는 공간이 역사 속에 널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한복을 입은 남자>에서도 작가는 측우기와 자격루와 같이 당대로서는 획기적인 발명품을 만들어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영실이 어느 시점부터는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데 착안해서 장영실이 정화함대에 동승하여 로마에까지 흘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자신의 과학적 업적을 이어가게 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있습니다.

 

젊고 감성이 넘치는 박소정 작가님은 약재를 관리하는 내의원과 궁궐의 의복을 제조하고 재물과 장신구를 관리하는 상의원에 향장(香匠)이라는 직책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들 중 누군가 조향사(調香士)를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소설로 엮어냈다고 합니다. 후각에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주인공 수연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병자호란을 거쳐 연경에 볼모로 잡혀가는 세자와 봉림대군의 일행에 포함되어 조향에 눈을 뜨게 될 뿐 아니라 봉림대군과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안배하고 있는 점도 돋보입니다.

 

하지만 작가적 상상력이 지나치다 싶은 점도 없지 않은데, 봉림대군과의 우연한 첫 만남이 나주의 어느 객주에서 이루어진다는 설정은 당시 대군이 지방까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수연이 동래에서 나주로 그리고 한성으로 사는 곳을 옮기고 있는데, 상민이 거처를 이토록 쉽게 옮길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 남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야기가 물 흐르듯 하도록 설정을 그리한 것이라면 그만이지만, 역사물의 경우 고증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궁안에서 죽은 후궁이나 군왕의 시신을 궐 밖으로 빼돌리는 일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 인조에서 효종에 이르는 시기이지만, 이야기 내용은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기생인 어머니를 두고 떠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밉다고 칭얼거리는 수연에게 어머니가 해준 말입니다. “사랑은 종잡을 수 없는 거야. 그러니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마음의 소리만을 듣거라(19쪽)” 어린 수연이 사랑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코는 안 막아?’라고 다시 물었다는 것입니다.

 

향기가 중요한 주제가 되기 때문이겠지만, 다양한 화초를 비롯하여 향을 내는 물건들에 대하여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사실을 많이 깨닫게 된 것은 책읽기의 부수입이 되었습니다. 궁중이 무대가 되는 역사물에서는 권력싸움과 사랑이 복잡하게 엮여야 재미가 더한 것처럼 젊은 시절을 마음을 주었던 단과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되는 봉림대군-나중에는 왕위에 오르게 되고, 효종으로 추존되는 정연 그리고 단을 마음에 두게 된 서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수연이 죽음을 맞게 되고, 정연과 단 그리고 서향의 도움으로 죽음을 가장하여 궐을 빠져나가게 되고 나중에는 정연까지도 궐을 버린다는 설정입니다. 사실 삶의 목표를 북벌에 두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종기 때문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고 있는 효종께서 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린다는 설정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는 말씀도 빠트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수연만을 뒤쫓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영화를 보듯 등장인물에 따라서 장면을 수시로 바꾸고 있는데, 상황의 변화를 속속들이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이어지는 상황을 단속적으로 설명하기도 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도 합니다. 사약의 부작용으로 실명한 수연이 조향을 위하여 들꽃을 꺽는 순간, 그녀를 끌어안는 누군가가 입은 측백향을 맡으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보니 서양에서는 향수를 뿌린다고 하지 않고 입는다고 표현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조선의 역사에서 향장(香匠)이라는 색다른 직업군을 발굴하여 이야기를 엮어낸 작가의 독특한 시각이 놀랍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고증의 문제는 잠시 미루어둔다면 재미있게 읽히는 한 편의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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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캘리그라피 - 모슬렘 아이덴티티와 아름다움
이희숙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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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이베리아 반도와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이슬람 건축물을 포함한 다양한 문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세밀하면서도 정교하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지만, 이슬람 문화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어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없었습니다. 아랍문자 역시 전혀 해독할 수 없으니 기묘하다는 느낌 정도만 남았을 뿐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아랍문화에 대한 자료를 검토하면서 이희숙박사님의 <이슬람 캘리그라피>를 만나게 된 것은 참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위키백과에서 “캘리그래피(영어: calligraphy, 그리스어: κάλλος kallos ‘아름다움’ + 그리스어: γραφή graphẽ ‘쓰기’)는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을 뜻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캘리그래피는 14~16세기 북부 이탈리아의 서풍을 이어받아 처음 시작했고, 영국의 에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이 이를 부흥시켰고, 기욤 아뽈리네르가 캘리그래피라는 용어을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중국에는 왕휘지 필체가 유명하고, 우리에게는 추사체가 유명하듯 문자를 아름답게 꾸며 써는 기술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즈음에는 워드를 사용하려다 보면 다양한 필체를 쉽게 적용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필체를 특별하게 고안하는 것도 쉽지 않았겠지만, 이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여 익혀야 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슬람 캘리그라피>에서 이슬람세계와 아랍문화, 그리고 이슬람 캘리그라피의 역사적 흐름을 정리하고, 이어서 현대에서는 이슬람 캘리그라피를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쿠웨이트에서 진행한 연구자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함마드에 의하여 창시된 이슬람은 알라를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로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전한 알라의 말씀을 기록한 코란과 예언자의 말인 하디스를 사리아, 즉 거룩한 법으로 삼아 모슬렘-이슬람을 믿는 사람들 - 개인과 공공의 실제 생활을 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의 한 입구에는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신앙고백을 의미하는 샤하다, 기도를 의미하는 살라트, 순례를 의미하는 하지, 금식을 의미하는 소움 그리고 자선 헌금을 의미하는 자카트가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라고 합니다. 코란이 이슬람 캘리그라피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코란을 책으로 발간하고, 새로운 문체와 장식으로 발전시켜 모스크의 미나레와 아치 등에 새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기 이슬람 문서에 나타난 캘리그라피는 체계적이며 모뉴멘탈하고 기하학적인 쿠픽문자와 평시 사용되는 흘림 글씨나 속기에 사용되는 곡선적인 나식문자가 있다고 합니다. 9세기 후 20여개 이상의 초서 문체가 있었지만 부침을 거듭하여 다양한 모양의 초서체가 남아 전해내려왔다고 하는데, 저자는 대표적 초서체의 발전과정과 그 모양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씨이면서도 예술적 향기가 넘치는 그래픽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슬람에서 캘리그라피의 중요성은 코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장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17쪽)’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코란의 68장은 ‘펜으로 그들이 쓴 것...(33쪽)’이라는 문구로 시작되며 96장에는 ‘하나님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을 펜으로 가르치신 분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캘리그라피는 이슬람 건축에서 중요한 장식 요소로 발전하게 되는데,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에도 아름다운 쿠픽과 여러 문체의 캘리그라피가 아라베스크와 기하학적 모티브가 얽힌 밴드렐리프로 모자이크에 새겨졌다고 합니다. 특히 알람브라의 모든 벽에는 ‘하나님이 없이는 승리도 없다’라는 문장이 새겨졌다고 합니다. 캘리그라피는 기하와 아라베스크와 함께 이슬람 오너먼트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동지중해지역에 자라는 아칸투스와 바인 스코롤에 기원을 두는 아라베스크의 기본 특징은 계속된 한 줄기에서 갈라지는 대신, 한 특수 식물이 어떤 방향으로 서로 성장하는 기하학적 패턴이라고 합니다. 기하는 틀짜기, 채우기 그리고 연결하기라는 세 가지 기능으로 구성되어(125쪽), 미적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노린다고 합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이슬람 예술에 대한 나스르의 다음과 같은 표현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 예술은.... 신성한 책, 코란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현시키는 캘리그라피의 형태에 결합하고, 기하와 꽃패턴을 이용해서 물질을 고상하게 만드는 한 방법이다.(126쪽)”

 

저자는 역사적 유물에 남아있는 캘리그라피는 물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캘리그라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 생소한 이슬람 캘리그라피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생소한 이슬람문화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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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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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퓨전 사극 <비밀의 문>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역사는 불변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새롭게 발굴되는 자료가 기존의 정설을 뒤엎기도 하고, 기존의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해석의 범위가 지나쳐 역사를 왜곡한다는 우려를 낳기도 합니다. 특히나 역사학의 범주가 아니라 흥미본위의 드라마 혹은 영화의 경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KBS에서 PD로 활동하면서 숱한 히트 프로그램을 연출하였고, 영화에서도 히트작을 냈을 뿐 아니라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한 이상훈 작가님의 <한복 입은 남자>는 중세 역사를 새롭게 써야 할 가능성을 던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충분한 근거가 뒷받침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세종시대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과, 중국 명나라 시절에 대항해시대를 연 정화, 그리고 이탈리아의 천재적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론의 시작은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였고, 다빈치의 비행기와 다연발 로케트의 스케치가 조선의 비차와 신기전과 흡사하다는 내용이나, 세종실록에서 홀연히 사라지는 장영실에 대한 기록, 명나라 정화의 마지막 대항해에 대한 미스터리 등을 기본 조각으로 하고, 그 사이에 빠져 있는 그림들을 채울 퍼즐조각은 혹시 존재할 수도 있는 가상의 기록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실의 이야기는 미스터리한 면이 강하다는 느낌이 들고 과거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다큐PD를 중심으로 현존하는 퍼즐조각과 가상의 기록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다룬 현재의 이야기와 재구성된 자료를 토대로 한 과거의 주인공들, 즉 장영실, 정화 그리고 다빈치가 연결되는 과정을 다른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책읽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작가는 장장 10여년에 걸쳐 역사적 자료를 빈틈없이 준비하고 충분한 고증을 거쳤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직은 추론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장영실이 세계의 르네상스에 영감을 불어넣었을 위대한 천재 과학자였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절대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허구가 아닌 것이다. 500여 년의 시공간을 뛰어 넘어 역사 저 건너편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쳤을 뿐이다.(520쪽)”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로마 교황청이 중심이 되어 신을 모시는 일이 우선인 유럽과 신으로부터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받아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이 우선인 동양의 철학적 차이를 장영실을 통해서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너는 나에게 배운 지식을 더욱 발전시켜서 과학과 기술이 세계를 지배하도록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신을 위한 세상이 아닌 사람을 위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본주의다. 과학과 기술이 인본, 즉 사람이 중심이 되어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보낸 조선의 임금의 뜻이자 또한 나의 뜻이다.(438쪽)” 그리고 보니 세종의 통치철학은 르네상스시대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 역사에 남아 있는 정화의 대항해는 아프리카까지 진출하고서 7차로 중단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정화가 로마에 나타났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정화의 선단이 로마에 가는 길에 장영실이 동행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놓고 있는 것이며, 유럽보다 먼저 제작된 정화의 세계지도가 유럽의 항해가들에게 전해서 지중해를 벗어나 먼 바다로 나서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정화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포르투갈의 왕이 바스코 다 가마를 내보내 정화의 항로를 거슬러 올라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하기에 이르렀고, 정화의 세계지도는 컬럼버스와 미젤란으로 하여 대서양을 건너 동양에 닿을 수 있고, 세계일주가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부피는 만만치 않습니다만, 방송과 영화를 통하여 이야기를 재미있게 버무려온 작가의 날렵한 솜씨 덕분에 단숨에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저 측우기와 자격루를 발명했다고만 알고 있는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다시 조명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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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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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윤복 소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단체로 관람하는 내내 다른 친구들 몰래 눈물을 감추느라 꺽꺽 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 몰린 주인공이 그래도 살아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모습이 내내 안쓰러웠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상상도 해보면서 그렇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깜찍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성장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의 대구가 배경이 된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현대의 미국 어느 지방도시가 배경이 되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시대와 문화가 다르고 주인공이 남자 어린이와 여자 어린이로 각각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어느 날 아빠가 25센트짜리 동전꾸러미 세 개와 1달러짜리 지폐만 가득한 마요네즈 통만 남기고 사라지는 바람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 고물차에서 잠을 자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열한 살짜리 소녀가 당신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어린 아들과 딸을 재울 방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서 투 잡을 뛰어가며 정신없이 일하는 엄마가 아빠처럼 도망가지 않고 지켜주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조지아는 몇 일째 샤워를 못해서 떡진 머리와 몸에서 나는 냄새를 친구들이 눈치 채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이런 상황을 만든 아빠와 엄마를 원망하면서 해결하라고 졸라대는 철부지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엄마가 졸지에 직장에서 해고되자 자신이 나서서 집세를 마련할 길을 모색하는 깜찍한 면도 있습니다. 문제는 부잣집 개를 훔쳤다가 돌려주고 사례금을 받는 별로 권장하지 못할 방법을 생각해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순진한 남동생을 범행에 끌어들이는, 사회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할 언니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짓까지 저지르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개를 훔치는 전체 과정을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단계별로 처리해야 할 상황을 목록으로 만들어 검토하는 것을 보면 조지아는 꽤나 주도면밀한 성격인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남동생까지도 범행에 끌어들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그리고보면 우리의 아이들은 때로 부모가 생각하지 못하는 면모를 보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장기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은 반발심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조지아의 범행모의가 잠시 생각에 그치는 정도였다거나, 아니면 산뜻하게 성공했더라면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여러 가지 장치를 해두었습니다. 우선은 거리 하나를 소유한 부자로 생각했던 개주인이 사례금조차 마련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훔친 개를 숨겨둔 장소에 낯선 이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나쁜 길로 빠져드는 것을 원치 않은 작가께서 구원투수를 투입한 셈입니다. 구원투수는 경찰이나 개주인에게 조지아의 범행사실을 알리기보다는, 조지아가 저지른 일이 좋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우회적으로 교훈을 주기까지 합니다. 사회의 어른으로서 본받을만한 점이 많은 현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의 전개와 마무리는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하여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번역의 차이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옮긴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266쪽)”라는 <안나 까레리나>의 첫구절을 소개했는데, 연진희님이 옮긴 민음사판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고 옮기고 있습니다. 어떤 번역이 더 실감이 나는지는 읽는 분들마다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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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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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윤복 소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단체로 관람하는 내내 다른 친구들 몰래 눈물을 감추느라 꺽꺽 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 몰린 주인공이 그래도 살아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모습이 내내 안쓰러웠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상상도 해보면서 그렇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깜찍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성장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의 대구가 배경이 된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현대의 미국 어느 지방도시가 배경이 되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시대와 문화가 다르고 주인공이 남자 어린이와 여자 어린이로 각각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어느 날 아빠가 25센트짜리 동전꾸러미 세 개와 1달러짜리 지폐만 가득한 마요네즈 통만 남기고 사라지는 바람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 고물차에서 잠을 자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열한 살짜리 소녀가 당신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어린 아들과 딸을 재울 방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서 투 잡을 뛰어가며 정신없이 일하는 엄마가 아빠처럼 도망가지 않고 지켜주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조지아는 몇 일째 샤워를 못해서 떡진 머리와 몸에서 나는 냄새를 친구들이 눈치 채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이런 상황을 만든 아빠와 엄마를 원망하면서 해결하라고 졸라대는 철부지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엄마가 졸지에 직장에서 해고되자 자신이 나서서 집세를 마련할 길을 모색하는 깜찍한 면도 있습니다. 문제는 부잣집 개를 훔쳤다가 돌려주고 사례금을 받는 별로 권장하지 못할 방법을 생각해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순진한 남동생을 범행에 끌어들이는, 사회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할 언니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짓까지 저지르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개를 훔치는 전체 과정을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단계별로 처리해야 할 상황을 목록으로 만들어 검토하는 것을 보면 조지아는 꽤나 주도면밀한 성격인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남동생까지도 범행에 끌어들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그리고보면 우리의 아이들은 때로 부모가 생각하지 못하는 면모를 보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장기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은 반발심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조지아의 범행모의가 잠시 생각에 그치는 정도였다거나, 아니면 산뜻하게 성공했더라면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여러 가지 장치를 해두었습니다. 우선은 거리 하나를 소유한 부자로 생각했던 개주인이 사례금조차 마련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훔친 개를 숨겨둔 장소에 낯선 이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나쁜 길로 빠져드는 것을 원치 않은 작가께서 구원투수를 투입한 셈입니다. 구원투수는 경찰이나 개주인에게 조지아의 범행사실을 알리기보다는, 조지아가 저지른 일이 좋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우회적으로 교훈을 주기까지 합니다. 사회의 어른으로서 본받을만한 점이 많은 현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의 전개와 마무리는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하여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번역의 차이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옮긴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266쪽)”라는 <안나 까레리나>의 첫구절을 소개했는데, 연진희님이 옮긴 민음사판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고 옮기고 있습니다. 어떤 번역이 더 실감이 나는지는 읽는 분들마다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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