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인 척 호랑이
버드폴더 글.그림 / 놀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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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는 동화책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장성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결혼 전이라서 동화책을 읽고 들려줄 아동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동화책을 리뷰한 적이 없어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트위터에서 인기몰이를 했다면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공감하는 무엇이 있겠다 싶어 트위터를 찾아보았습니다.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주워온 고양이가 실은 호랑이인데, 할머니가 놀랄까봐 고양이인 척하는 이야기’로 시작 짧은 글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호랑이는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피노키오>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왜곡된 방송 때문에 고통을 받던 어머니가 작은 아들과 바다에 투신을 하지만, 그 아이는 바닷가로 밀려가서 마을 노인이 구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바다에서 실종된 큰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고, 구조된 아이도 그런 노인의 심정과 자신의 처지를 헤아려 노인의 큰 아들로 행세한다는 상황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호랑이는 왜 그랬을까? 호랑이는 생명이 바람 앞의 등불인 상황에서 할머니 덕분에 목숨을 구했던 것을 잊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을 고양이로 생각하는 할머니를 놀래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점점 커지는 송곳니와 발톱을 숨기고 목소리도 작게, 그리고 채식을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주위에서는 모두 호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오직 할머니만 고양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착한 호랑이....

 

고양이인 척하는 호랑이만 등장했더라면 당근 이야기거리가 될 수 없겠죠? 그렇습니다. 호랑이인 척 하는 고양이가 나와줘야죠. 고양이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요? 얘는 고양이치고는 무늬가 진하고 덩치도 컸답니다. 그래서 자신이 호랑이라고 착각한 것이지요. 그래도 주변에서는 아무도 호랑이라고 믿어주지 않았답니다.

 

당연히 고양이인 척하는 호랑이와 호랑이인 척하는 고양이가 만나야 되겠죠? 그래야 이야기가 되니까요. 만났습니다. 고양이가 무서운 친구들에게 위협을 받을 때 호랑이가 나타나 점잖게 ‘어흥’하고 소리를 친 것입니다. 둘이는 서로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게 되었습니다. 호랑이는 고양이에게 ‘맛있는 파이 만드는 법’을, 그리고 고양이는 호랑이에게 ‘물고기 여러 마리 한 번에 잡는 법’을 알려 준 것입니다. 둘이서 알콩달콘 살면 또 이야기가 안되는거 맞죠?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지요. 마을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서커스 주인이 들었습니다. 이야기가 될려고 고양이가 서커스단에 들어갔고, 호랑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고양이는 더 이상 호랑이인 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서커스단을 떠나야 했습니다. 한편 고양이를 찾아나선 호랑이가 서커스단을 기웃거리다가 결국은 서커스단에 들어가게 된답니다. 하지만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불쇼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호랑이는 불을 무서워하거든요. 서커스공연장이 불더미에 휩싸이자 서커스단의 사람들은 제일 먼저 도망가고 동물들은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호랑이인 척하는 고양이가 동물들을 구하게 됩니다. 어떻게 구했냐구요? 설명하기가 참 어렵네요. 아무래도 책을 읽어보셔야 할 것 같군요. 고양이와 호랑이는 할머니와 재미있게 지내다가 할머니가 그만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도 고양이와 호랑이는 서로를 도와가며 잘 지내고 있다고 하네요. 호랑이는 고양이인 척하고, 고양이는 호랑이인 척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누가 고양이고 누가 호랑이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고기잡이 삵(fishing cat)을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멸종위기종인 야생 고양이로 수영이나 잠수가 능해서 주로 물고기를 사냥하는데, 생긴 것은 귀엽지만 성질은 난폭하다고 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호랑이와 고양이는 ‘척’하는 이유는 각각 다릅니다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어느 편이 옳은지를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을 보면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모습이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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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
박웅현.TBWA 주니어보드와 망치.TBWA 0팀 지음 / 열린책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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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광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을 즐겨 본 적이 있습니다. 정작 광고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합니다만, 적어도 광고라는 작업이 참 힘든 작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에는 의료 역시 광고 혹은 홍보에 민감해지는 것 같아 격세지감이 들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의학에서도 창의력을 요구합니다만, 그 보다는 엄청난 자료를 바탕으로 수수께기를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광고는 그야말로 창의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인 것 같습니다. 창의력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창의력이 꽃을 피우도록 키우는 일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는 창의력을 주제로 한 아주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광고회사 TBWA KOREA가 만든 프로젝트팀 TRWA 주니어보드는 광고인을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광고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고 창의력을 키워나가도록 지원하는 일종의 사회공헌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대표께서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개월 단위로 15명을 선발하고 있는데,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는 이 팀에서 하고 있는 대중강연프로젝트 ‘망치’를 준비하여 발표하기까지의 과정을 요약한 내용을 담았다고 합니다. 21기 주니어보드 14명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대학생들에게 들을만한 이야기가 있겠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자, 창의성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창의성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는지, 다시 말해 창의력 실험에 대한 보고(25쪽)”라고 했습니다. 발표를 준비하는 멘티에게는 개별적으로 멘토를 붙여 프로젝트가 제 방향으로 가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발표자들의 발표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라 그 최종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중간 중간에는 상황별로 짚어야 할 내용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하여 발표하는 기회가 아주 많은 편입니다만, 대부분 발표를 의뢰받을 때 주제가 정해지기 때문에 제가 잘 할 수 있는 내용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주제조차도 스스로 발굴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발표할 주제를 여럿 발굴해야 하고, 일단 틀을 만든 다음에 개요를 정리해보고 대중의 반응은 어떨지 추정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멘토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이 모여서인지 읽어가면서 처음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고흐가 화폭에 즐겨 담았던 사이프러스 나무가 죽음의 나무라 여겨 아무도 화제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외고에 다닌 어떤 친구는 “여러분, 바라던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을 얻으면, 그래서 좋은 배우자와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 다음에 뭐할 건데요(93쪽)”라는 학원선생의 질문을 받고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역시 어른은 말 한 마디를 해도 신중하게 해야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바닥을 헤매는데는 저런 어른들이 널려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카메라 없이 유럽배낭여행을 간 덕분에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한 채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되었다는 젊은이의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알람브라궁전의 헤네랄리페 별궁을 구경하면서(http://www.medicaltimes.com/Users4/News/newsView.html?ID=1094440) 저도 느꼈던 점이었습니다. 저는 객체에 머물것인가 아니면 주체가 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드렸던 것입니다만, 이 젊은이는 여행과 사진찍기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분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았을 때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더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조금은 의아해졌습니다. 제가 모나리자를 보러 갔을 때는 모나리자는 촬영금지 대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발표자는 전체 내용을 치밀하게 구성한대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고 했습니다만, 제 경우는 발표자료를 준비하면서 전체적인 상황의 얼개를 만들지만 별도로 발표연습을 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일단 발표를 시작하면서 청중의 반응을 보아가면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감하는 편이 쉽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리해보면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나름대로 정리해가는 과정을 직접해보면서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더욱 발전해서 좋은 인재들을 키워내는 성과를 거두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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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 살아남은 동물들의 비밀
최형선 지음 / 부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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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기를 쓰면서 읽은 책들, 특히 북부 아프리카를 무대로 하는 책에서는 낙타에 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른 책입니다. 생태학을 전공하신 최형선교수님은 대안주막학교 ‘알트루사 재미있는 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 활동하는 등, ‘땅과 생명을 살리는 생명정의운동, 다양한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선한 사회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살아남은 동물들의 비밀’이라는 부제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불평등한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치타, 기러기, 낙타, 원숭이, 박쥐, 캥거루, 코끼리 그리고 고래 등 여덟 종의 동물이 오랜 세월을 거쳐 진화해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상 동물을 고르는데 있어 지역과 생태공간 까지 세심하게 안배하였다고 합니다.

 

“원래 생태계는 불평등하다. 풍요로운 곳이 있는 반면 물조차 구하기 힘든 열악한 환경도 있다. (…) 강자에 눌리고 일어설 힘마저 모자라 솟아날 구멍이 없어 보여도, 서서히 힘을 응축하여 갈라진 틈을 헤집고 소중한 꿈을 키우는 생물들이 대자연과 세상을 향해 희망을 던진다. 묵묵히 제 몫을 하고 있다는 걸, 자신을 도울 뿐 아니라 남까지 도울 힘이 있다는 걸, 실패자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7쪽)” 저자는 이들 동물의 모습을 통하여 대자연과 공존하는 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연이 주는 사랑을 깨닫고, 자연을 아름답게 지키려는 마음이 우러나기를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무지 때문에 사라져 가고 있는 생물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이 책을 읽도록 만든 주인공 낙타에 대하여 정리해보겠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햇빛이 작열하고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며,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 속에서 생명이 숨 쉬고 있을까 싶은 사막에도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막 생물은 몸집이 작아 우리의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낙타는 예외입니다. 사막에 살고 있어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던 낙타는 기원전 4000년 경에 가축으로 길러졌다고 합니다. 특히 대상들이 짐을 싣고 다녔기 때문에 ‘사막의 배’로 불리게 된 낙타는 수천년 이상 사막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낙타를 운반수단으로 이용하며, 살아서는 젖을 그리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을 얻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변까지도 땔감으로 씁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구 상에 낙타가 처음 등장한 곳은 북아메리카라고 합니다. 지금은 북 아메리카에서는 낙타가 살지 않습니다만 화석자료를 보면 4500만년 전 에오세 시기에 북아메리카에 등장한 낙타의 선조는 200만 년 전까지는 북아메리카에서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빙하기가 시작될 무렵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사이의 베링해협을 연결하는 베링육교를 통하여 서쪽으로 이동했고,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는 북아메리카에서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낙타의 선조 가운데 일부는 남쪽으로도 이동하여 지금의 알파카, 과나코, 라마, 비쿠냐와 같은 네 종류의 낙타과로 분화하여 남아메리카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서쪽으로 향한 낙타의 선조는 아시아의 초원에 머문 것들은 쌍봉낙타로 진화했고,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에 정착한 것들은 단봉낙타로 진화하였습니다.

 

낙타의 선조가 이주를 결심한 이유는 물어볼 수 없으니 알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북아메리카의 초원을 주름잡는 아메리카들소나 빙하기 직전에 역시 베링육교를 넘어 아시아에서 이주해온 거대한 마스토돈에 밀려난 것이 아닐까 짐작하기도 합니다만 혹시 낙타의 신체구조가 추위를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하지만 북아메리카를 떠난 낙타가 몸집이 있는 동물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사막언저리였던 것을 보면 다른 동물과 피나는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일 것이라는 설명이 제일 타당해보입니다. 다른 동물을 위하여 희생하는 마음의 표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저자는 어려운 생태환경에서 살아남은 여덟 종류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역시나 험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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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 누구나 생애 한 번은 그 길에 선다
윌리엄 폴 영 지음, 이진 옮김 / 세계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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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생명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사건이며, 아직까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왕래한 인간은 없습니다. 물론 임사체험이라고 해서 심장박동이나 뇌활동이 멈추었다가 회생한 사람들의 경험을 두고 사후세계를 보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역시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윌리엄 폴 영의 <갈림길>은 일종의 임사체험을 주제로 한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판타지소설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예수님이나 하느님이 등장해서 주인공 앤서니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영성을 다룬 종교문학으로 보아도 될 듯합니다. 아마 저처럼 종교적 배경이 없는 의사라면 임사체험이나, 사후세계, 영적 존재가 등장하는 분위기에 쉽게 빠져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른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면을 생각한다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단 주인공 앤서니 스펜서는 성공한 사업가로 많은 재산을 일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입니다. 부모님, 마더 테레사,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그리고 예수입니다. 그리고 보니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듯합니다. 어머니는 예수를 믿었지만 그는 믿지 않았습니다. “신이 있다고 쳐도, 끔찍하고 잔혹하고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일거라고, 좋게 봐줘야 냉혹하고 어둡고 비인간적이며 무심한 존재이고, 최악의 경우 어린아이의 마음을 유린하며 쾌감을 느끼는 괴물일거라고.(26쪽)” 생각합니다. 더하여 그는 살아있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전혀 알 수 없는 비밀의 장소를 만들어 놓고, 수시로 유언장을 바꾸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앤서니가 이렇게 변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 때문입니다. 열한 살이 되던 해, 어느 소년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어머니가 죽고 어렵게 자란 환경 탓인 듯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5살 된 아들, 가브리엘의 죽음이었던 모양입니다. “애원들, 약속들, 기도들은 모두 하늘에 닿지 못하고 공허함으로 돌아와 그의 무능함을 비웃었다. 가브리엘의 숨이 잦아들 때, 무엇으로도, 정말 그 어떤 것으로도 아이의 죽음을 돌이킬 수 없었다.(37쪽)”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믿음을 뒤집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분노가 전이되기도 합니다. 앤서니의 경우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십대시절의 첫사랑이자 두 번이나 그의 아내가 되었던 로리, 어쩌면 자신만큼 앤서니를 증오할 딸 앤젤라, 그리고 제이크.... 제이크는 앤서니의 동생입니다. 그런데 왜 ‘정말 미안하다’라고 하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습니다.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앤서니가 변하게 되는 것은 발작적으로 일어난 두통으로 쓰러지면서 머리를 자동차 트렁크에 부딪혔다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머리가 깨지는 사고를 당하고 병원으로 옮겨진 뒤입니다.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유체이탈이 된 영혼이 임사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다시 떠오르고 있었고 저 멀리 가느다란 불빛이 보였다. 불빛이 다가올수록, 혹은 그가 다가갈수록 점점 더 선명해졌다. 이게 죽음인가?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죽은 사람들이 불빛을 보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고 그는 그것이 신경회로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믿고 있었다.(38쪽)”

 

그의 영혼은 예수를 만나고, 그의 선조인 인디언 할머니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살면서 만들어낸 자신의 허상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소년의 몸을 잠시 빌리게 되는 앤서니는 키스를 통하여 다른 사람의 몸으로 옮겨 다니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삶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갑니다. 이런 그에게 하느님은 단 한명의 생명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을 선물해줍니다. 생사의 기로에 있는 자신의 생명을 되돌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앤서니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리고 살아오면서 오해한 주변 사람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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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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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천편 째 독후감을 썼습니다. 천여 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그 책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년 전에 집을 고치면서 작지 않은 규모의 책장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사무실에도 꽤나 규모가 되는 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책장에 넣지 못한 책들이 곳곳에 쌓여가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읽은 책들이고, 글을 쓰면서 들춰보기도 합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바람에 쌓여있는 책들을 온통 뒤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을 때면 오카사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을 읽을 책 목록의 위쪽으로 진입시키기도 합니다.

 

이사를 갈 때는 책을 싸고 푸는 일이 큰일이기도 합니다. 아내의 불만이 한계에 이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책들을 정리한 적도 서너 차례는 됩니다. 우리 상고사를 열심히 공부하다가 결국은 수십권의 책을 근무하던 부대의 도서실에 기증한 것이 그 첫 번째였고, 먼지가 쌓여가던 기백권의 전공서적들을 내다버리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관심분야가 아닌 책들을 사무실에 만든 ‘병아리도서실’에 기증하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같이 근무하시는 분들이 자유롭게 읽거나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지난 해 다녀온 스페인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이슬람문명의 역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무함마드 이후 성립한 우마이야왕조와 이를 이은 아바스왕조는 동으로는 인도북부까지, 서로는 아프리카 북부를 지나 이베리아반도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게 되면서 이집트, 페르시아, 비잔틴, 인도, 그리고 그리스 등 다양한 문명들이 이슬람문명에 녹아들게 되었습니다. 이슬람 왕조가 이들 문명이 이룬 업적을 수집하고 번역하는 작업을 왕성하게 추진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아바스왕조의 칼리파 알 마문은 국립번역기관인 ‘지혜의 전당’을 설립해 번역을 적극적으로 장려했고, 후기 우마이야왕조의 수도였던 스페인의 코르도바에는 70여개의 도서관과 수많은 서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코르도바의 도서관은 44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프랑스의 전체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보다 많았다는 것입니다.(윤용수 등, 지중해 문명의 다중성 11-47쪽, 이담북스 2010년; http://blog.joins.com/yang412/13570031) 이렇게 수집한 책을 읽고 연구한 이슬람문명은 오늘날 인류문명이 꽃을 피우는데 크게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일찍이 금속활자를 발명하는 등 인쇄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우리의 선조들은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조선 지식인들의 서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박철상님의 <서재에 살다>를 통해서 비록 실학파라고 분류되는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에 서책이 어떻게 유통되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재라 하면 요즈음으로 말하면 개인의 장서를 모아두는 장소라고 제한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나아가 교유하는 벗들과 공유할 수도 있었을 터이니 사설도서관이라고 확대하여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 지식인의 서재로 제한을 둔 탓인지 조선조의 공공도서관에 관한 사항들은 언급되어 있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조임금의 서재 역시 개인의 서재로 규정한 것 같습니다.

 

조선왕조의 출판문화의 형편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본격적인 출판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한 송나라 때 아미 수많은 민간 출판사들이 출현했다. 이를 토대로 다양하고 수준 높은 목판본들이 출판을 거듭했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21쪽)” 서적의 수요층이 한계가 있어 민간출판이 발달한 틈새가 없었고, 태종 시절 금속활자를 만들면서 관이 중심이 된 활자본 간행이 주류를 이루면서 국가정책에 맞는 서적을 중심으로 출판되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임진왜란 이전에는 중국에서 간행된 책들이 곧바로 조선에서 간행되어 유통되었지만, 문화적으로 낮추어 보던 청나라 시절에는 이마저도 사라졌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에는 금속활자를 주조하는 등 활발했던 도서출판이 세월이 흐르면서 침체되었다가 정조시대에 들어 활기를 되찾았다고 합니다. 조선조의 출판현황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서명응의 <규장자서기>의 한 대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세종 시대에 만든 활자가 아마 대대로 나라의 보물이 되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옥처럼 모양이 고르고 반듯하여 그것으로 인쇄한 책이 몇 백만 권인지도 모른다. (…) 그러나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지키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보관하지 못해 없어진 것이 십중팔구나 된다. 우리 임금께서는 세손 시절부터 이를 안타깝게 여기셨다. (…) 이렇게 내각과 외각에서 전후로 주조한 활자가 모두 30만여 자였다.(23쪽)”

 

세종 이래 간행된 서책의 규모는 수백만 권이나 될까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정조 시절에 간행된 도서의 숫자가 153종에 3991권에 이를 만큼 ‘방대’하였다는 <군서표기>의 기록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1772년 정조는 은자 2150냥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청나라에서 간행된 백과사전인 5,002책이나 되는 거질의 <고금도서집성>을 사들였다고 했습니다. 정조임금의 서재인 ‘홍재(弘齋)’가 수장한 책자의 규모가 방대할 것임을 짐작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서명응이 지은 홍재기(弘齋記)에서 왕세손 시설 정조가 “인을 체득한다는 것은 증자께서 말씀하신 ‘뜻을 크게 하라’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던 것을 기억하고는 “마침내 ‘홍(弘)’라를 공부하는 곳에 편액으로 걸었다.(17쪽)”라고 적은 부분을 인용하여 정조의 뜻을 새기고 있습니다. 정조는 서재를 그저 책을 모아두는데 그치지 않은 듯, 100책이나 되는 <홍재전서>를 남겼다고 합니다.

 

정조 무렵 서울에 생활의 터전을 두고 대대로 살아가던 양반 가운데 정치적으로 요직에 나갈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최상류층을 경화세족(京華世族)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들은 특히 청나라문물에 경도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특히 청나라에서 간행된 책자들을 앞 다투어 수입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조선에서 간행된 서책만으로는 만권의 장서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심상규가 4만권, 조병귀와 윤치정이 3,4만권의 장서를 보유하는 등, 서울 오래된 집들 가운데 천 권, 만 권의 책이 있는 사람은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정조가 규장각을 만들어놓고 유능한 중서층(中庶層) 인재들을 등용해 문화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경화세족 역시 비슷한 서재나 서고를 만들고 유능한 중서층 인물들을 겸인으로 부리거나 그들과 깊은 유대를 나누며 시대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에 서려고 했다.(181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여항문화(閭巷文化)로 치부하면서도 민간의 문화를 흥기하는데 일정부분 기여한 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설 도서관은 주인과 가까운 사람들만이 접근이 가능할 수밖에 없는 제한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규모가 되는 공공도서관을 확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조선의 지배층의 좁은 시야가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4만권의 장서를 자랑했다는 심상규의 가성각(嘉聲閣)은 심상규가 죽자 건물이 헐리고 장서의 행방도 묘연해졌다고 하니 서책의 수집도 어려울뿐더러 보관은 더욱 어렵더라는 점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차라리 그 책들을 나라에 헌납했더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합니다.

 

정조의 홍재에 이어 저자는 홍대용의 서재, 담헌(湛軒)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19세기 조선을 북학(北學)의 시대로 인도한 공을 기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를 통하여 공론화된 북학은 담헌 홍대용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홍대용은 35살이 되던 1765년에 동지사 서장관이 된 숙부 홍억을 따라 연행에 나섰다고 합니다. 친구로 사귈만한 청나라 지식인을 찾아 헤매던 홍대용은 부장 이기성의 소개로 엄성과 반정균, 육비 등을 만나 사귀게 되었고, 귀국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멀리 떨어져 있던 조선과 중국 사이에도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경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엄성이 죽었다는 반정균의 부고에 홍대용은 애사(哀辭)를 짓고 향과 폐백을 갖추어 부쳤고, 마침 엄성의 대상을 치르던 날 도착하여 엄성의 가족은 물론 친지들이 감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반정균은 홍대용의 서재 담헌에 기문(記文)을 썼는데, “군자의 도는 마음에 잡됨이 없고 사물에 대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몸은 청명(淸明)하고 그 집은 허백(虛白)하니 아마 ‘담(湛)’자의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홍군은 매번 나와 성리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말이 아주 순정하였다. ‘담(湛)’자의 뜻을 체득한 사람일 것이다. 내가 비록 문장력은 없지만 군자의 도에 힘을 써서 좋은 친구에게 지지 않도록 하겠다. 아울러 홍군의 문장과 덕행을 중국의 친구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인데 어찌 감히 별 볼 일 없는 솜씨라고 사양하겠는가?(45쪽)” 서재의 기문은 써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 모두 자신의 문집에 실어 널리 알리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연행에 따라나선 홍대용의 진정성이 청나라 지식인들을 감복시켰고, 이들의 우정은 두 나라 지식인들을 감복시키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처럼 홍대용의 진정성으로 시작된 조선과 청나라 지식인들의 교류는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조선의 19세기를 북학의 시대로 만든 첫 걸음이었던 것입니다.

 

북학의 시대를 여는데 홍대용의 담헌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 만큼, 박지원의 서재, 연암산방을 뒤에 두었다고 해서 연암이 섭섭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암을 논하면서 <열하일기; http://blog.joins.com/yang412/13129725>를 우선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터입니다. 열하일기를 읽다 보면 연암이 명나라와의 관계에 매이지 않고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봉황성에서는 벽돌을 구워 집과 성을 쌓은 모습을 보고서 돌로 쌓은 우리나라의 성과 비교하여 장단점을 논했다거나, 성문의 누각을 세우는 공사에서 사용하는 거중기가 신기한데 창졸간에 이를 배울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는 장면 등입니다.

 

저는 번역본을 읽어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당대에 이미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던 <열하일기>에 대하여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박남수 같은 이는 “선생의 문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소설 나부랭이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 순수한 고문(古文)은 사라져버릴 것입니다.(49쪽)”라면서 연암의 <열하일기>를 불태우려 들었다는 것입니다. 선비가 써야 하는 글은 이런 글이 아니라 순정한 고문인데 이런 글을 우리가 배워 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정조 역시 당대의 선비들의 문체가 예스럽지 못한 것을 두고, 그 책임을 연암에게 물어 순정한 글을 한 편 지어 올려 <열하일기>의 죄를 속죄토록 하라고 영을 내렸다고 합니다. 연암은 정조의 명에 따라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금의 서재, 기하실(幾何室)에 대한 내용도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4만권의 장서를 자랑한 심상규의 가성각(嘉聲閣)은 다양한 영역의 서책들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금의 서재는 천문과 역서에 관한 책들로 채워졌고, 주인 또한 육예(六藝)는 도(道)의 끄트머리이고 수학은 육예 중에서도 끄트머리라는 벗의 지적에도 부끄러워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유금의 서재이름은 마테오 리치가 구술한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을 서광계가 한문으로 기록한 <기하원본(幾何原本)>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선비들이 성리학 이외의 학문에 관심이 없을 때였음에도 유금은 자신이 연구하는 학문에 대해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청나라를 통하여 쏟아져 들어오던 새로운 학문에 관심을 가졌던 조선의 선비들의 학문세계를 서재를 매개로 하여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아직 이름을 붙일만한 장서를 갖추지 못했지만 저의 관심을 나타낼 수 있는 서재의 이름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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