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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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다시 읽었습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것이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가 봅니다. 여름방학이 되면서 집에 있던 헤밍웨이 전집을 독파하는 것으로 피서를 삼겠다고 작정하고 읽은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품의 무대가 되는 스페인의 내전의 성격은 전혀 아는 바 없이 그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국인 로버트 조던이 좋은 편이고 조던이 상대로 싸우는 파시스트가 나쁜 편이라는 이분법을 적용하여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당시 스페인 내전의 성격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다시 읽게 된 것은 스페인여행기를 쓰면서 참고할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스페인 내전(스페인어: Guerra Civil Española)은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벌어진 내전입니다. 1936년 7월 17일 프랑코 장군이 모로코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시작되었으며,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측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는데, 소비에트 연방을 비롯하여 각국에서 모여든 의용군으로 구성된 국제여단이 집권 공화국의 인민전선을 지원하고, 반란을 일으킨 프랑코를 파시스트 진영인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 그리고 살라자르가 집권하고 있던 포르투갈이 지원한 것입니다.

 

내전이 일어난 사회적 배경은 1936년 2월 총선 결과 승리하여 의회를 장악한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 좌파 공화파, 스페인 공산당 등으로 구성된 인민 전선은 토지개혁을 포함한 개혁 정책들을 시행하였고, 스페인의 지주·자본가·로마 가톨릭 교회의 불만은 고조되었던 것이 계기였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노동자 농민들은 시민군을 조직하여 공화파를 지원하였지만, 공화파는 시민군의 세력이 커지는 것에 불안을 느껴 방관하는 바람에 반란군의 점령지역이 확산되는 결과를 낳고, 오히려 시민군이 게릴라활동을 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937년 5월의 마지막 주에 미국 몬태나 출신의 로버트 조던이 게릴라 민병대의 도움을 받아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성공하기까지의 3박4일에 걸친 과정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조던은 라그랑하를 거쳐 세고비야를 점령하려는 작전을 세운 골츠장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마드리드와 세고비아 사이에 위치한 과다라마 산맥에 위치한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현지에서 조던을 지원하기로 한 민병대를 지휘하는 파블로는 다리를 폭파한 다음에 자신들의 안위가 더 걱정인 것 같습니다. 조던과 협조하는 척하다가 습격당일 아침 폭약과 뇌관을 가지고 사라졌다가 결국은 다시 돌아와 습격에 참여하는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작가는 3박4일의 긴박한 시간 속에서 다리 폭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작가는 조던이 죽음을 맞는 결말을 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파블로의 집시아내인 필라르의 점술을 통하여 조던의 운명을 내비치는 것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변주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조던의 경우는 현장에 도착해서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깨닫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옮긴이는 조던의 이런 면을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이나 안녕을 포기한 채 오직 공동선을 이룩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조국과는 무관한 스페인의 내전에서 조던이 이루고 싶었던 공동선은 목숨을 다할 가치가 있었을까요? 조던이 죽음을 앞두고 만난 마리아와 사랑을 탐닉하는 모습은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지면서 허무한 느낌마저 드는 것 같습니다.

 

박정은작가는 <스페인 소도시 여행; http://blog.joins.com/yang412/13552146>에서 헤밍웨이가 안달루시아의 론다에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했다고 전하면서 론다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인용되어 있다고 소개하였습니다. 바로 민병대가 점령한 절벽 위의 작은 마을에서 파시스트를 처형하여 절벽 아래로 떨어트리는 장면이입니다. 그리고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황소와 겨루는 필라르의 옛남편의 모습을 통하여 투우사의 고민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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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이야기 - 그들은 어떻게 부의 역사를 만들었는가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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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스페인-모로코-포르쿠갈을 다녀와서 <메디칼 타임즈>라는 인터넷보건의료신문에서 ‘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http://www.medicaltimes.com/Users4/News/NewsList.html?nSection=32)’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여행지에 관하여 궁금한 점을 인터넷을 찾거나 혹은 책을 읽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했던 무슬림들이 유대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고대 그리스문명을 현대에 전하는 가교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가나안 지방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한 이베리아반도에서 활약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졌습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른 책이 홍익희님의 <유대인 이야기>입니다. 홍익희님은 KOTRA에 입사해서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 뉴욕, 파나마, 멕시코, 마드리드 등지에서 근무하다 2010년 밀라노 무역관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했는데, 해외근무를 하면서 특히 세계를 움직이는 곳에는 유대인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유대인들의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거슬러 추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의 많은 부분들은 드러나지 않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고 했습니다만, 오늘날 그들이 쥐고 있는 막강한 힘 때문인지 유대인에 관한 저서들은 적지 않게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성서시대로부터 유대인들이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되는 과정, 로마제국의 노림수에 따라서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집단으로 몰려 가톨릭의 박해를 받게 되는 과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지역에서 힘이 모여드는 곳에는 유대인이 있었고, 그들이 떠나면 힘이 스러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로마제국-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으로 이어지는 힘의 움직임의 배후에는 그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중세 무렵까지는 동아시아 문명은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슬람문명에 이은 페르시야 문명시기에는 중동이 각광을 받았고, 이슬람시기의 이베리아반도, 그 뒤를 이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제국을 이루었으며, 이어서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힘의 중심이 이동해갔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다시 동아시아의 무게가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힘의 움직임이 순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그 뒤에 유대인들이 숨어있었다는 것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기원전 가나안 지역에 자리잡은 유대인들이 왕국을 이루었을 때는 그 세력을 따라서 유럽과 아프리카지역으로 퍼져 살게 되었고, 로마제국에 저항하던 유대왕국이 멸망하면서 유대인들은 유럽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슬람세력이 이베리아반도에 자리를 틀 무렵에는 유대인들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쳐 서로 상부상조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이 이베리아반도로 이주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유대인들이 뛰어난 활약을 벌일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교육에 있었다고 합니다. 바빌로니아왕국에 의하여 이스라엘왕국이 멸망한 뒤에, 유대민족들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을 때, 유대교 성전이 파괴되고 성직자들이 모두 죽은 다음에는 종교를 지키기 위하여 시나고그를 중심으로 구약성서를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유대교도라면 누구나 열세상에 성인식을 치르면 성경을 읽어야했다고 합니다. 하스모니안왕조의 살로메 알렉산드라여왕 시절에는 세 살부터 히브리어를 배워 구약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인데,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이었지만, 유대인들은 모두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것입니다. 또한 로마의 침략이후 각지에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들은 지역별로 단단한 결속력을 보였을 뿐 아니라 지역을 뛰어넘어 상부상조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체계가 면면히 이어져왔다는 것입니다. 일찍 학문에 눈을 뜨고, 뛰어난 결속력을 가진 민족적 특성이 오늘날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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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부의 시대 - 21-22세기 미래 예측 보고서
로버트 J. 실러 외 지음, 이경남 옮김, 이그나시오 팔라시오스-후에르타 기획 / 알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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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곤 했습니다. 한 해의 운수를 미리 알아본다는 것인데, 맞을 거라는 생각보다 재미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운을 기대하기보다는 조심하라는 대목에 무게를 두고 몸가짐을 다스려 재앙을 피하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역술인들이 금년 한 해 생길 것이라는 사건들을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그만큼 미래를 예측한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이겠지요.

 

미래를 예측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일기예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가끔은 ‘기상청 공무원들이 수퍼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모양’이라고 농담을 합니다만, 한나절 뒤 기상상황도 틀리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과학적 예측이라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렇듯 한 나절 뒤의 기상을 맞추는 일도 쉽지가 않은데 100년 뒤의 세상을 미리 예측해보는 책이 나왔습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의 이그나시오 팔라시오-후에르타교수가 기획한 <새로운 부의 시대>입니다. 1930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00년 후 세계를 예측한 짤막한 에세이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1930년이면 전 세계가 대공황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때였을 것입니다. 당연히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케인즈는 이런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무너뜨리며 ‘100년 후에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라지고 잘사는 법을 터득하는 시대가 들어설 것이며, 특히 생활수준이 네 배에서 여덟 배가량 좋아질 것이라 예측했고, 또한 사람들의 주당 근무 시간이 약 15시간으로 줄어들 것’이라고도 내다보았다고 합니다.(7쪽) ‘경제 문제는 인류의 영원한 문젯거리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도 2015년에 바라보는 2030년에 주당 근무시간이 15시간으로 줄어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케인즈의 에세이를 읽은 팔라시오-후에르타교수는 케인즈의 예측은 그렇다고 치고, ‘지금 시대의 석학들은 100년 뒤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드림팀을 구성하였다고 했습니다. ‘100년 뒤의 세상에 대한 의문은 어렵지만 흥미로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경제․사회학자들에게 100년 뒤의 세상을 예측해달라는 제안서를 보냈는데, 우려와는 달리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앨빈 로스교수는 ‘거절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이라면서, 케네스 애로교수는 ‘확인할 수 없는 예측을,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예측하라는 제의는 단호히 거부해야 할 유혹’이라면서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나의 견해를 사람들과 공개적으로 나눌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혹은 ‘자신은 과거를 이해하려는 편이지 미래를 예측하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한 분들도 계셨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모두 열 분의 석학들이 참여하여 쓴 미래의 예측서를 각각의 장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책 내용을 보면 원고의 분량에 제한을 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어마어마한 제도적 차이에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부국과 빈국으로 나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일반 이론의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면서 남북한을 예로 들어 ‘왜 그토록 여러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는지’ 더 나아가 오늘날 ‘번영과 빈곤, 세계 불평등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지’를 간단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설명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http://blog.joins.com/yang412/12937488>를 쓴 MIT 경제학과의 대런 애쓰모글루교수의 예측을 필두로 하여,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과의 앵거스 디턴교수와 애비너시 K. 딕시트교수,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의 에드워드 L. 글레이저교수와 앨빈 E. 로스교수 그리고 마틴 L. 와이츠먼교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폼페우파브라대학교 경제학과의 안드레우 마스-콜레이교수, 예일대학교 정치경제학과의 존 E. 로머교수와 로버트 J. 실러교수, MIT 경제학과의 로버트 M. 솔로교수 등이 필진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시각에 따라서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한된 지면이라서 열 분의 예측을 모두 정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일부만 소개하려 합니다. 제 입맛에 맞는 예측만 고를 것 같습니다.

 

100년 뒤의 미래를 예측하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자인 애쓰모글루교수를 건너 뛰면 섭섭해 할 것 같습니다. 애쓰모글루교수는 ‘사회학의 지난 예측 실적을 따져보면, 100년 뒤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우리의 능력에 별다른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미래를 예측하다 보면, 앞에 놓인 도전 과제가 구체적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습니다(19쪽). 따라서 예측은 우리의 시대상을 규정하는 트렌드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100년 뒤를 예측하기 위하여 애쓰모글루교수는 지난 100년간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삶을 규정했던 중요한 트렌드를 먼저 정리했습니다. 1. 권리혁명, 2. 테크놀로지의 질주, 3. 거침없는 성장, 4. 고르지 않는 성장, 5. 노동과 임금의 변형, 6. 보건혁명, 7. 국경없는 기술, 8. 평화의 세기, 전쟁의 세기, 9. 정치에서의 반계몽주의, 10. 인구폭발과 자원 그리고 환경 등입니다. 이것들은 지난 100년간의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애쓰모글루교수는 열 가지 트렌드를 견인하는 핵심을 권리혁명으로 보았습니다. 착취적제도에서 포용적제도로 향하는 움직임, 즉 권리혁명이 지난 수세기 동안 이어져 왔지만 여전히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힘을 축적하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의 전반적 트렌드는 보다 포용적인 제도를 향해 나아갔고, 그것은 권리혁명과 행보를 같이 했다.(44쪽)”라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분석된 과거 100년간의 트렌드가 다음 100년에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인류의 미래가 권리혁명의 향배에 달려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야 하는 여러 트렌드들을 생각할 때, 지구의 건강한 미래를 바라는 우리의 희망은 다시 권리혁명의 지속과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73쪽)”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디턴교수는 현 시점이 케인즈의 시대만큼 불확실하고 암울한 상황임을 지적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낙관적인 전망을 견지하는 것 같습니다. 부정적 주장은 너무 강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틀리기도 했으며, 범위가 좁고 근거도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건강과 부의 측면에서 미래를 바라본다면, 1. 성장은 계속 될 것이며, 2. 인류는 더 건강해질 것이고, 3. 기타 사항으로, 폭력이 줄고, 민주주의는 더욱 확산될 것이며, 교육수준은 더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다만 ‘인류가 기후변화를 적절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낙관이 어렵지만, ‘임박한 위험에 맞서는 집단적 조치와 진보의 힘은 강력하기 때문에 기후문제에 있어서도 인류는 해답을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고 했습니다. 로스교수 역시 의학과 정보 분야의 발전을 바탕으로 하여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비교적 낙관적인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글레이저교수는 인간의 도덕적 특성에 주목합니다. 좀 더 풍족한 미래에는 탐욕과 물질주의가 수그러들 것이라는 케인즈의 예측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케인즈교수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선행을 베풀며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들과, 사물에서 직접적인 기쁨을 찾아낼 줄 아는,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132쪽)”라고 예측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레이저교수는 우리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엇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여전히 같은 유형의 피조물인 까닭에 “전통적인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부유해진다고 해서 탐욕, 시기, 나태, 폭음, 폭식, 정욕, 분노, 자만심 등 일곱 가지 대죄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133쪽)”라고 하였습니다.

 

인류번영을 위협하는 요소로는 ‘갈등’과 ‘자연재해’를 들었습니다. 강대국의 갈등으로 인한 대형 전쟁의 위험은 크게 감소하였지만 국지전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고, 불량국가나 테러리스트 집단을 이끄는 파괴주의자들의 위협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자연재해에 대한 글레이저교수의 예측에는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태풍, 지진,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는 국지적으로는 막대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지만, 그 영향은 오래 가지 않지만, 전염병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세 유럽을 공포에 빠트렸던 페스트와 20세기 초반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냈던 인플루엔자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아프리카에서 발생하고 있는 에볼라의 경우처럼 현대의학의 수준이나 국제적 공중보건공조체계 역시 중세는 물론 20세기와도 수준이 달라졌습니다. 따라서 저의 개인적 견해로는 과거와 같은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할 전염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만 자연재해의 경우는 심각할 수도 있는 몇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지구의 지배자 공룡을 전멸시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소행성의 충돌, 혹은 지구적 환경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대형화산의 폭발과 같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로머교수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면 지구적 위기상황이 초래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화석에너지의 지나친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문제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임에도 미국과 중국 같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국가들이 이를 외면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그의 미래예측은 미국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반면 와이츠먼교수는 화석에너지 뿐 아니라 온실효과로 인하여 대기의 온도가 상승하였을 때 일어날 것으로 예사되는 문제로까지 확대하였습니다. 바다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나 툰드라지대에 얼은 상태로 붙잡혀 있는 메탄가스가 풀려나서 대기로 유입되는 악성순환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도 있다고 전망합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지구공학자들이 내놓은 방안에 우려도 표시합니다. 심지어는 영국왕립학회가 지구공학을 “인류가 야기한 기후 변화를 중화시키기 위해 지구 환경에 가하는 대규모의 고의적 조작(301쪽)”이라고 극단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실러교수의 미래예측을 살펴보겠습니다. 제목이 ‘다음 세기의 위험과 그 관리법’입니다. 미래에 예측가능한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위험(危險)이란 일반적으로 손해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위험으로부터 입을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위험관리라는 기법입니다. 위험을 관리하는 네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 위험 요소를 인식하고(risk identification), 위험한 정도를 평가하여(risk assessment), 위험요소를 관리하고(risk management), 그 결과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risk communication)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위험관리는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위험관리를 통하여 상응하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한 사항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하며, 전체의 과정이 투명해야 하는 것 등입니다. 실러교수는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다양한 위험관리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고 장기적 계약에 따라 이행하게 되면 인간의 복지에 미치는 재앙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열 분의 필자들은 조심스럽지만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미래예측을 내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0년 뒤의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누구에게나 궁금한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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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역사 중남미지역원 학술총서 13
김영철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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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를 공부하기 위한 책읽기입니다. 부산외대의 중남미지역원에서 주도하고 있는 기획으로 나온 책입니다. 남아메리카를 보면 대부분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는데, 유독 브라질만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요즈음 스페인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콜럼버스가 스페인보다 먼저 포르투갈의 국왕을 만나 대서양을 건너 인도로 가는 항해를 지원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유럽국가들 중에 포르투갈이 제일 먼저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콜럼버스의 제안이 있기 전에 포르투갈은 이미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내려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고 있었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제안은 중복 투자인데다가 성공이 불확실한 문제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컬럼버스가 서인도제도에 도착하자 대양의 항해권, 아니 식민지의 권리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은 교황에게 이 점을 요청했고, 알렉산드 6세와 협의를 통하여 아프리카 서해안에 가까이 있는 카부 베르지에서 서쪽으로 370레구아 안에서 발견되는 땅은 포르투갈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 밖에서 발견되는 땅은 스페인의 권리로 한다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1500년 아프리카 항로를 따라서 인도로 출항한 포르투갈의 페드르 알바르스 카브랄 함대가 무역풍을 피하기 위하여 항로를 변경했다가 브라질 땅에 도달하게 되었고, 이곳을 포르투 세구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결국 브라질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의거하여 포르투갈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된 거입니다. 그리고 보면 유럽사람들은 참 얼굴이 두꺼웠던 모양입니다. 그곳은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이 있어 주인이 있는 땅이었음에도 자기 땅이라고 주장했느니 말입니다.

 

<브라질의 역사>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브라질에 도착하기 이전의 역사를 소략하게 정리한 다음, 포르투갈 사람들이 온 다음 벌어진 일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브라질에 도착할 무렵 브라질에는 850만명에 이르는 원주민들이 수백의 부족으로 흩어져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당시 포르투갈 본국 사람들에 맞먹는 숫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인구규모가 크지 않았던 포르투갈을 본격적으로 브라질을 식민지배할 상황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브라질에서 특화된 작물을 재배하여 유럽으로 가져오는 방식을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1500-1550년간에는 브라질 염료나무를 채취하던 시기이고, 2530-1650년간에는 사탕수수를 경작하여 설탕을 생산하던 시기이며, 1690-1750년간에는 금광과 다이아몬드광산을 개발하던 시기, 1820-1920년간에는 커피산업이 호황을누리던 시기였으며, 수입대체산업화 시기라고 합니다.

 

브라질의 해안이 긴 탓에 포르투갈 이외의 유럽국가들,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이 호시탐탐 침입할 기회를 엿보았다고 하는데, 대체적으로 원주민 부족들을 이용하여 밀고 당기는 식으로 진퇴가 있었다고 하고, 스페인왕실에서 포르투갈왕이 나오면서 두 나라가 병합되면서부터는 경계가 모호해진 시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던 중남미국가들이 여러 나라들로 분할되어 독립을 한 것과는 달리 브라질이 커다란 국토를 유지한 단일국가로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포르투갈의 식민통치기간 동안에 한 사람의 총독을 임명하여 중앙집권방식으로 관리를 했고, 둘째, 정치 엘리트들의 이권경쟁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으로 독립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포르투갈 왕실이 리스본을 떠나 리우로 천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왕정이 도입된 것도 기여한 바 크다고 합니다. 포르투갈은 브라질에서 농장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인력을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끌어다 투입하였고, 그 결과 원주민, 흑인, 그리고 백인의 피가 서로 섞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저자는 포르투갈이 브라질에 도착한 이래 유럽인들이 각축을 벌이던 과정, 그리고 유럽세가 자연스럽게 물러나고 브라질 사람들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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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반디 펜벗에서 정한 이달의 주제는 ‘오늘의 편지’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메일이 아닌 편지를 써본 것이 언제였나 싶습니다. 십대 무렵 인근도시로 진학한 친구와 일주일이면 두 세통씩 편지를 주고 받았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할 때 편지를 보내주셨던 선친께서는 잡념을 버리고 공부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시는 내용을 빠트리지 않았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들을 담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정조 재위시설 중용되어 수원 화성건축에 기여하는 등 활약을 하였다. 정조 사후에 일어난 신유교란에 연루되어 시작한 유배생활이 무려 18년간 이어지게 되고, 이 기간 중에 학문에 몰두하여 당시 관심을 모으던 실학을 집대성하여 500여권에 달하는 서적을 집필하였습니다. 유배생활이 힘든 가운데서도 다산은 아들들이 학문을 등한시할까 노심초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의 마음을 다독이거나 채찍질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곤 했던 모양입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는 다산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둘째 형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편지 등을 나누어 담았습니다. 30여 성상을 다산연구에 바친 박석무교수가 몇 차례에 걸쳐 다듬기를 거듭하여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옮겼습니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전체의 절반이 넘도록 구성한 것은 아들을 걱정하는 다산의 마음이 바로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교훈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다산은 가문이 폐족이 되었음을 자인하고 “폐족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하랴(11쪽)”하며 학문에 정진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리하여 책을 읽고, 책을 쓰는 방법은 물론, 어떤 책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 까지 구체적으로 주문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들들을 유배지로 불러 같이 공부하기도 했던 것을 보면 당시의 유배라는 것이 일상생활까지 규제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다산이 아들들이 학문에 정진하기를 바랐던 것은 앞서 적은 것처럼 폐족이라고 해도 정신줄까지 놓지 말고 자존을 지키라는 의미가 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희들이 끝끝내 배우지 아니하고 스스로를 포기해버린다면 내가 해놓은 저술과 간추려놓은 것들을 앞으로 누가 모아서 책으로 엮고 교정하며 정리하겠느냐?(41쪽)”라고 한 것을 보면, 자신의 학문적 성과들이 묻히게 될 것을 우려한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후세 사람들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오래 전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겼던 글들을 묶어 <소운집(嘯雲集)>이라는 제목의 문집을 만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친께서 네 아들을 걱정하시는 마음을 담은 글을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책으로 묶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학문에 정진하는 일 이외에도 사림으로 행해야 할 도리를 깨우치는 내용도 있습니다. 큰 아버지 섬기기를 아버지처럼 하라는 내용도 있고, 풍족한 살림은 아니지만 여러날 밥을 끓이지 못하는 집에는 쌀되라도 퍼다 주어 굶주림을 면하도록 해주라는 당부도 담겨 있습니다.

 

제가 공부한 내용들을 간추려 전공을 같이하는 분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도 공유할 수 있도록 책을 만드는 일도 해왔으니 다산이 자식들에게 당부했던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일부는 해왔구나 하는 안심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선친께서 저를 통하여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으셨던 생각들을 어떻게 제 자식들에게 전할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공부하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지켜보는 편이었습니다. 다음 주면 입대하여 훈련을 받게 되는데, 훈련기간 중에 다산처럼 편지를 보내 세상사는 이치를 고민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선친께서 남기신 마음도 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책상서랍 귀퉁이에 던져 놓았던 펜과 잉크를 다시 챙겨보아야 하겠습니다. 컴퓨터 자판으로 두둘겨 뽑은 창백한 편지보나, 볼펜보다는 펜에 잉크를 묻혀 한자 한자 정성을 담은 손편지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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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2-20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미명이다.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어쩌고저쩌고` 하는 정일근 시인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가 생각납니다. 한 때는 이 시가 너무 마음에 들어 외우고 다녔는데 이제는 기억에서 가물가물 ...

처음처럼 2015-02-22 23:44   좋아요 0 | URL
저도 찾아서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드디어 큰 아이에게 편지를 보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벌써 기대가 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