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정글만리 1~3 세트 - 전3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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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네티즌이 선정한 올해의 책인 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을 이제야 읽게 되는 것도 남들과 같은 움직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인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태백산맥>, <아리랑> 등을 통해서 이미 친숙한 탓도 조금은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루어 순식간에 미국과 겨루는 단계에 이르렀고,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선두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특히 수천 년을 이웃으로 지내온 중국의 변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조정래 작가님 역시 1990년대 초반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갑작스럽게 몰락한 소련과 달리 건재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속살을 뒤집어 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고, 20여 년에 걸쳐 생각을 정리해온 결과가 바로 <정글만리>라고 했습니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국의 속살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비즈니스 세계를 일단 핵심 타깃으로 정하고 사람들의 관계를 엮었기 때문에 일단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다섯 나라 비즈니스맨들이 벌이는 숨막힐 듯한 경쟁이 이야기의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정글만리>는 중국에 체류 중인 상사원에게는 공감을, 실제 대중(對中)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중국 비즈니스의 노하우를, 한일관계나 한중관계에 관심이 적었던 학생들에게는 역사적 자각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중국과 중국인들의 감춰진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작가가 중국당국에 찍히지 않았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직설적이다 못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할까요?

 

특히 말로만 듯던 ‘꽌시(關係)’의 정체를 파헤치고 처음 듣는 ‘런타이둬(人太多)’라는 말의 의미와 그 이면에 있는 인명경시의 세태까지 남의 나라 작가의 손끝에서 까발려지는 것아 아플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북경을 찾아갔을 때, 중국 전통의학에 기반을 둔 생약제제를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안전이 뒷전으로 밀린다는 사실을 듣고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거침없는 이야기 전개로 단숨에 읽어내게 될 뿐 아니라 밤늦게까지 책을 들고 있는 바람에 다음날 근무에 지장을 받기도 했다. 가끔 튀어나오는 부적절한 단어가 거슬리기도 하는데, 2권에 등장하는 짝퉁시장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쓰리꾼을 조심하라고 경계하는 장면은 소매치기라는 순화된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젊은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시류를 반영한 단어를 선택하는 경향이 필요하다고 해도, 작가라면 국어를 지키는 사명감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3권에서 중국역사로 전공을 바꾼 재형이 난징대학살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2차 세계대전을 치루는 동안 군국주의 일본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고, 전후 일본이 그 만행에 눈감고 있는 이유 등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는 점도 높이 사야 하겠습니다. 반면에 중국과의 비즈니스에서 조선족 혹은 북한과 연결되는 비중이 낮은 이유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전체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마무리되지 않은 점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종합상사를 명예퇴직한 전대광이 새롭게 시작한 사업의 향배라던가, 전대광의 조카 송재형과 리옌링의 러브스토리가 결혼으로 이어지는지도 궁금합니다. 뒤처리를 하지 않고 화장실을 나온 느낌입니다. 그리고 하필 이야기가 의료사고를 낸 성형외과의사가 쫓기듯 중국으로 진출하는 모습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의료사고가 아니라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모습으로 그리면 재미가 없을 것 같나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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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문화사
전완경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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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과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이슬람문명의 자취를 보면서 경탄과 호기심 그리고 의문 등 다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슬람’하면 전투적이라는 이미지만 그려지곤 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전쟁이나 테러에 관한 단편적인 뉴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오래 전 일하던 실험실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친구는 장난기가 넘치면서도 다정다감했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합니다.

 

이슬람문명하면 아랍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낸 것인데, 어떤 경로로 아프리카를 지나 이베리아반도에 이르렀으며,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유대인, 가톨릭과 공존과 충돌을 거듭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밀려났는지 등등 궁금증은 점차 증폭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한 책읽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무함마드 아사드의 <메카로 가는 길; http://blog.joins.com/yang412/13596903>이나, 정인경의 <보스포루스 과학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72745> 그리고 김재원 등의 <유럽의 그리스도교 미술사; http://blog.joins.com/yang41213620176> 등을 북소리에서 소개드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랍문화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고 소개드리는 책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던 오해와 편견을 뒤집을, 아랍인과 이슬람 문화의 참모습을 발견하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이 책은 한국 중동학회 회장을 역임하셨던 전완경교수님이 쓰셨습니다. ‘아랍의 외교적, 경제적, 문화적 중요성이 더해 감에 따라 아랍과 이슬람 사회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줄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생각에서 기획하셨다고 합니다.

 

유럽문명이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로 전해진 다음, 르네상스시대에 다시 꽃피울 때까지 중세의 암흑에 묻혀있었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너져 내린 건물을 다시 복원하는데도 참고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고대문명을 근대로 연결한 무엇의 존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던 그 존재가 바로 이슬람문명이었던 것입니다. 이슬람문명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은 콧대 높은 유럽 사람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척박한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랍사람들이 동쪽으로는 인도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를 지나 이베리아반도까지 방대한 영역을 차지한데 더하여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고, 이를 근대 유럽에 이를 전수하기까지의 과정은 지중해지역원에서 정리한 <지중해 문명의 다중성; http://blog.joins.com/yang412/13570031>을 읽어 개략적인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역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인접한 문명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아람문화사>에서는 이런 아쉬움을 상당부분 채워주는 것 같습니다.

 

388쪽의 다소 많은 분량의 <아랍문화사>는 부록을 포함하여 모두 12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아랍인의 기원과 정체성(1장), 이슬람 이전 시대 유목생활 중심의 아랍인들의 삶과 그들이 일구어낸 문화적 성취(2장), 아라비아 반도에 이슬람 출현 배경과 과정 및 그 문화사적 의미와 이슬람 공동체의 성립과정(3장), 국가의 면모를 갖춘 최초의 아랍 왕국인 우마이야 왕조의 문화사적 의미를 아랍주의의 시각에서 집중 조명(4장), 이슬람 제국의 확장으로 중세 선진문화를 일구어내며 인류문명의 주체였던 아랍인들의 문화적 성취와 그 영향을 재평가(5장), 꾸란을 기록한 언어이고, 천상의 언어로 신성시되는 아랍어가 이슬람과 이슬람 공동체에서 갖는 의미(6장), 아랍 시로 대변되는 아랍 문학이 이슬람 제국의 확장에 따른 영향력 증대과정과 아랍 산문문학이 유럽의 산문문학에 끼친 영향(7장), 유럽인들의 지적 부흥운동이자 서구 근대화의 계기인 르네상스에 끼친 아랍인들의 역할(8장), 중세 이후 암흑기를 경험했던 아랍인들이 ‘나흐다(부흥)’로 불리는 지적 자각의 과정과 그들의 부흥운동(9장), 고대의 무지기, 중세의 전성기와 근대의 암흑기를 거치며 형성된 아랍인들의 인식과 그들의 사고관(10장), 아랍 특유의 관습 및 전통과 서구 사회제도가 혼합되어 있는 아랍의 사회제도가 갖는 의미와 특징(11장), 신라시대 이후부터 한반도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지속해 온 아랍․이슬람 세계와 한반도와의 역사적 교류 과정 등의 순서입니다.

 

아랍(al-Arab)이란 단어의 근원은 분명치 않으나 고대 셈족의 언어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데, 사막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민들이 유프라테스 강 지역 서쪽에 거주하는 민족들을 일컫는 말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슬람 이전 시대의 아랍인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아라비아와 시리아 사막에 거주한 유목민’을 가리키며, 아라비아 반도의 남부에서 농업을 기반으로 하던 사람들을 포함하지 않는 제한적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랍인은 바빌로니아인, 아시리아인, 히브리인, 페니키아인, 아람인, 아비시니아인, 사바인 등과 함께 셈족에 속하고, 이들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아들 셈의 후예들인 셈입니다.

 

반면에 이슬람 이후로부터 현대적 의미의 아랍인은 아랍어를 모국어로 말하고 아랍 세계에서 살거나 아랍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이라크에서부터 모로코에 이르는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는 19세기에 등장한 아랍 민족주의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이라크의 소설가이며 시인인 자브라 I. 자브라는 “아랍인이란 아랍어를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따라서 아랍으로 느끼는 사람(35쪽)”이라고 정의하였다고 합니다. 역시 스스로를 아랍인이라고 생각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모두 아랍인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으로 태어났지만 26살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평생을 이슬람의 진정한 정신과 문화를 알리는 연구를 해온 무함마드 아사드도 아랍인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궁금합니다.(무함마드 아사드 지음, 메카로 가는 길, 루비박스 펴냄, 2014년;  http://blog.joins.com/yang412/13596903)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아랍인들은 생존의 문제가 최우선의 과제였기 때문에 투쟁적일 수밖에 없었고, 글을 쓸 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랍 시의 언어와 리듬이라는 문학 유산을 남겼는데, 그들에게 있어 완벽한 인간은 싸우는 기술 이외에도 웅변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슬람 원년인 622년 이전을 ‘자힐리야 시대’, 즉 무지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페르시아가 대제국을 건설하는 동안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작은 왕국들이 성쇠를 거듭했고, 아랍사회는 부족들이 이합집산이 거듭되었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태어날 무렵 아라비아반도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분열되어 혼란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아이얌 아랍(Ayyam al-Arab), 즉 ‘아랍인의 싸움의 시절’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랍 부족 사이에 끊임없었던 분규와 증오와 반목, 불안한 상태가 유지된 원인은 치열한 생존경쟁과 혈연으로 뭉쳐진 단위 부족의 우상숭배 사상 때문(86쪽)”이라고 보았던 무함마드는 혈연을 초월한 종교사상, 즉 유일신을 믿음으로써 아랍족의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공백상태의 도덕적 윤리를 세우기 위하여 선행이라는 가치관을 제시한 것이라고 합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대상활동을 통하여 기독교나 유대인들과 접촉함으로써 성서의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초기에는 자신을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로 알리기보다는 아랍민족들에게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에게 계시된 최후의 심판을 알림으로써 우상숭배와 관련하여 혼탁해진 아랍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전교활동은 당시 메카의 지배계급이었던 꾸라이쉬 부족의 반발을 불러와 충돌이 불가피해지면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메디나 주민대표들과의 협상에 성공하면서 300여명의 신자들을 이끌고 622년 7월 메디나로 이주하였고, 이 시점을 이슬람의 원년으로 삼게 되었다고 합니다. 메디나로 거점을 옮긴 무함마드는 종교지도자에서 정치지도자로 변신하면서 이슬람 역사상 대전환기를 맞았습니다. 메디나의 8개 씨족으로 구성된 새로운 무슬림공동체를 성립시켰고, 이후 메카의 꾸라이쉬씨족에 속하는 추종자들로 구성된 9번째 씨족을 추가하였습니다. 메디나에서 종교적 이념공동체 움마를 토대로 사회적 통일을 이룬 무함마드는 메카와의 지하드를 선언하고 8년여에 걸친 전투를 통하여 승리를 쟁취하면서 반도의 대부분 아랍부족을 통일시켜 자신의 권위 아래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용하는 세계적 공동체의 바탕이 되는 보편적인 종교를 출범시켰고, 군대를 보유하며 체계적으로 조직된 공동체 내지 아랍국가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공동체는 합의에 의하여 칼리파가 결정되는 체제로 아부 바크르, 우마르, 오스만에 이르렀으나, 공평무사하지 못한 국정운영으로 내분이 일어 오스만이 피살되면서 무함마드의 4촌 동생이자 사위인 알리가 칼리파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의 친척이자 시리아의 총독인 무아위야를 중심으로 한 반란이 일어났고, 무아위야가 칼리파가 되면서부터는 칼리파를 선출하지 않고 세습하는 우마이야왕조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우마이야왕조는 지금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수도를 옮기고 영토 확장에 나섰는데, 661년부터 90년 동안에 걸쳐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에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전성기의 로마제국보다 훨씬 큰 제국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마이야왕조는 아랍인 우월정책을 펼치면서 아랍 부족 간의 긴장을 유발시켰고, 이슬람 초기에 이루었던 평등과 자유주의가 오히려 퇴조하는 상황을 만들어 결국은 압바스왕조에게 밀려나게 됩니다. 영토를 확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문화와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유입되었고, 우마이야왕조의 칼리파들은 외래문화를 수용하고 흡수하여 통합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지식을 습득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라고 주문하고 있는 꾸란의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린 압바스왕조는 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사회경제적 불만세력이 주도하여 성립된 것으로 아랍부족에 의한 귀족정치가 소멸하고, 이슬람의 원칙에 바탕을 둔 평등사회정부가 탄생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우마이야 왕조는 아랍왕국으로, 압바스 왕조는 이슬람제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압바스왕조는 지금의 이라크의 바드다드를 건설하여 제국의 수도로 삼았고, 이슬람제국은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압바스왕조의 이슬람문화는 그리스-로마의 지중해문화, 페르시아 문화, 인도와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 그들의 표현수단인 아랍어와 이슬람 신앙을 통하여 융합하여 완성한 것으로 특유의 유화력과 상대적인 관용성을 특색으로 한 다양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압바스왕조에 밀려난 우마이야왕조의 후예들은 이베리아반도까지 달아나 코르도바에 후기 우마이야왕조를 열었고, 역시 유럽이 중세 암흑기를 겪고 있을 때, 아랍어와 이슬람 신앙을 바탕으로 인류문명의 중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실제 르네상스는 15세기에 아랍무슬림의 문화부흥의 영향으로 일어났으며, 이탈리아보다 스페인이 유럽 재탄생의 요람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아랍인이 없었더라면 근대 유럽문명은 결코 성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랍인들은 고대 학문의 전달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재해석하고 사실을 규명하였으며 추가하였던 것입니다. 스페인의 안달루스나 모로코의 페스 등에 설치된 아랍의 대학에는 유럽의 학자들이 몰려들어 공부하였고, 이슬람은 이를 거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역으로 나누어 통치하던 체제에 더하여 유럽사회로부터의 십자군, 중앙아시아의 신흥세력, 몽골의 침공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하여 이슬람세계는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웃한 오스만 투르크의 강성으로 우선 타격을 입었고, 뒤이어 유럽제국이 밀려들면서 오랜 세월 침체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아랍은 다시 깨어나고 있습니다. 아랍민족주의에 입각한 부흥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다양한 이유로 두드러진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점을 볼 때,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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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의 교실 - 고대에서 현대까지 한 권으로 배우는
스즈키 히로키 지음, 김대일 옮김 / 다산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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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으면 먼저 표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전략의 교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했습니다. 우선 ‘고대에서 현대까지 한 권으로 배우는’이라는 부제가 달린 <전략의 교실>이라는 제목을 보면, 어디에 써먹을 전략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한 권으로 3000년에 걸친 전략의 에센스를 단숨에 파악한다!’라는 카피를 보면 “전략에 관한 모든 텍스트를 잘 요약하고 있나보다. 그런데 어디에 써먹지?”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습니다. 그 아래로 가야 ‘목표 달성, 매니지먼트, 조직에 도움이 되는 동서고금의 전략론 가이드’라고 작은 글씨로 이 책이 소용되는 곳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전장터에서 써먹었던 전략을 현대의 조직경영에 응용할 수 있는 요점들을 정리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요소가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는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자는 비즈니스 전략 컨설턴트로 전략론과 기업사(史)를 분석하여 새로운 혁신에 대한 힌트를 찾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아, 지금까지 많은 기업의 전략 결정이나 혁신을 도왔다고 합니다. 서론에 들어가면, “나는 고대의 군사 전략부터 현대의 경영 전략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주요 전략들의 핵심 내용을 발췌, 분류하고 정리했다.”고 하며, 이는 “역사와 시대의 흐름의 전환점에서 고민하고 있는 경영자, 팀을 이끌고 성과를 내야 하는 리더, 어려움이 있어도 실적을 내고 싶은 비즈니스맨 등 업무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차를 보면 모두 30가지의 영역에 맞춘 전략을 요약하고 있는데, 고대에서는 손무의 손자병법에서 고른 역전 전략을, 알렉산더 대왕으로부터 고른 돌파 전략을, 그리고 마키아벨리로부터 골라낸 지배 전략을 정리했고, 근대에서는 나폴레옹의 전력 강화 전략을, 클라우제비츠의 역전 우위 전략을, 리델 하트의 간접 접근 전략을, 그리고 윌리엄슨 머레이의 상황적응 전략을 정리하였습니다. 고대와 근대에서 얻어낸 전략은 주로 전투에서 적용되었던 전략으로부터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을 추출하고 있는데, 비즈니스가 반드시 전투적 요소만 있다기 보다는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갈 수 있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덟 번째부터 서른 번째까지의 전략은 주로 현대경영서들로부터 추출해내었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들만 추려보면, 오노 다이이치의 도요다 생산방식으로부터 최적화 전략을 이끌어냈습니다만, 도요다 생산방식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에서는 자기경영 전략을 이끌어냈고, 오래 전에 읽었던 김위찬과 르네 마보안의 블루오션 전략으로부터는 시장 창조 전략을 이끌러냈습니다. 전투를 이끌어가다 보면 전략은 아무래도 상황실에 들어오는 전장의 상황에 따라서 지휘부에서 결정하는 편인데, 전략에 적절한 전술이 더해져야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캐나다 맥길대학의 헨리 민츠버그교수는 ‘전략을 사전에 전부 계획해놓을 수는 없다(284쪽)’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눈에 띄는 대목 가운데 먼저 나치와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한 이유를 분석한 부분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면서도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전략보다 전투에서의 승리만 중시했다. 전체적인 모습이 아닌 부분적인 모습이 반영된 교훈만을 전달했던 것(92쪽)’이라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패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잘못을 망각 속에 묻어버리려 하는 한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 때는 혁신의 적합한 이론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된 상황에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새로운 이론은 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과거의 이론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접근방식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략의 교실>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빛을 발했던 뛰어난 전략들을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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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 동유럽 - 혼자라도 좋은 감성여행
윤정인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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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동유럽은 여전히 생소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몇 년전에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오는 길이 쉽지 않았던 탓에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퐁당, 동유럽>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작가는 이미 해외여행의 경력이 7년에 접어든 베테랑 여행가로 나름대로의 여행에 관한 주관이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여행은 계획을 짜는 과정이 더 짜릿하고 재미있고, 실제 여행은 기획했던 것들을 돌아보면서 확인하고,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께서 동유럽을 여행지로 선택한 것은 아무래도 익숙한 서유럽과 비교해보면 미지의 세계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발음조차도 어려워 순수함이 남아있을 것 같은 그런 곳들을 구석구석에서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고 그리스 등 8개국에 흩어져 있는 23곳을 지그재그로 잇는 여행일정을 짰다는 것인데, 지도에 그려진 여행경로가 너무 현란해서 전체 여행 일정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행지에 대한 설명은 여행경로와는 무관하게 ‘하나, 나만의 도시 지도 만들기’, ‘둘, 낯선 도시에서, 모험’, ‘셋, 동유럽 속, 숨은 매력을 찾아서’, ‘넷, 숨기 좋은 도시에서 잠수 타기’ 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분류로 뒤섞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행지 사이의 이동방식이 설명되기도 하고, 생략되기도 해서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정보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행을 떠난 목적이 일상과 사람에 지쳐있었기 때문에 그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고 하면서도, 낯선 사람들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게 되었다는 말씀이 쉽게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무모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해외여행에서 바로 모든 면에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띄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혼자 여행하면서 교통편이나 숙소를 챙겨야 하는 부담 때문에 점차 여행사를 통한 여행을 따라가는 것을 선호하게 되기는 했습니다만, 앞으로는 쫓기듯 찍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체류하면서 그들을 느끼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서 저자가 꼽은 독특한 여행지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작가가 다녀온 23곳의 여행지 가운데 이름이라도 귀에 익은 곳은 10곳이고, 실제로 가보았던 곳은 1곳에 불과해서 <퐁당, 동유럽>에 담긴 작가의 느낌이나 정보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삽입되어 있는 많은 사진들은 설명이 붙어 있기에 정보로서의 가치가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행지마다 덧붙여 놓은 여행노트에는 그곳에 가는 방법, 그곳에서 꼭 해보면 좋은 것들이나 관련 정보를 잘 요약하고 있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사이트를 밝혀놓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부분도 없지 않았는데,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의 할슈타드에서는 평소에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데, 작가가 머무는 동안에는 비가 내리는 탓인지 한산했다는 설명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서울과 인천도 아니고 날씨가 나쁘다고 해서 예정된 여행지를 찾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 해외여행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할슈타트에서 머물 때 찾았다는 다흐슈타인산에 오를 때는 날씨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복장이나 장비를 갖추지 않은 상태임에도 산에 오르겠다고 하는 작가를 그냥 올려 보낸 매표소 직원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산에 오른 작가의 무모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동유럽이 순수함이 남아 있다고 해도 외진 시간에 외진 장소를 찾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밖에는 통상적으로 볼 수 없는 특이한 여행지를 직접 방문해서 보고 느낀 점을 꼼꼼하고도 유려한 필치로 정리해냈고, 설명을 붙인 많은 사진을 곁들이고 있어 읽는 도중에 정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매력적인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처음 접한 도시에 섞여서 낯선 사람 낯선 공기 안에 있으면, 나도 내가 모르는 낯선 누군가가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설레었다.(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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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수업 천양희 : 첫 물음 작가수업 1
천양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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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시는 분들 가운에 작가를 꿈꾸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고 있기는 합니다만,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에 관한 책에 관심이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첫 물음’이라는 부제가 달린 <작가 수업 천양희>는 천양희 시인의 에세이집입니다. 시인 자신의 시작경험을 담아 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습니다. 역시 표지에 있는 “계속 써라! 뭔가 멋진 것을 찾을 때까지”라는 카피를 달아 자신이 없어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글쓰기, 특히 시작에 관한 시인의 생각을 첫 번째 “첫 물음이 내 문학의 ‘첫’이었다”, 두 번째 “계속 써라! 뭔가 멋진 것을 찾을 때까지”, 세 번째 “시는 나의 생업”의 순서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글은 ‘왜 쓰나고요?’라고 질문하고 대답을 하고서는 “첫 물음이 내 문학의 ‘첫’이었다”라고 이어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 시작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는 사이사이에 자신의 시를 인용하면서, 그 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데, 설명을 듣고 시를 음미하다 보면 다른 맛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요”라는 시의 첫 구절이 눈길을 붙들었습니다. ‘강변역이 강변에 있지 않고 / 학여울역에 여울이 없다니요?’라는 부분입니가. 강변역이 강변에 있고 학여울역 부근에 여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던가요? 저도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말 그럴까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유년 시절은 존재의 우물”이라고 했다는 바슐라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유년의 기억은 퍼 내어도 퍼 내어도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샘인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 저에게 남은 유년의 기억은 불과 몇 자루 밖에 남지 않아서 퍼낼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과 범인의 차이일까요? 하지만 옥의 티도 눈에 띄였습니다. 유독 옥의 티가 눈에 잘 들어오는 편이라서.... ‘기린의 등에 매달려 진드기를 빨아먹고 사는 아프리카의 노랑부리할미새처럼...’인데 노랑부리할미새는 기린과 공생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시인께서는 마치 새가 기생하는 존재인 것처럼 적고 있습니다만, 새는 먹이를 쉽게 얻고 기린은 기생충을 제거하는 셈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시집의 리뷰에서도 적었습니다만, 제게 시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인께서는 “시를 많이 읽고 느끼고 이해하게 되면, 시가 좋아지고 시에 대한 안목이 생기게 된다.(79쪽)”라고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시를 읽고 즐긴 것이 아니라 시를 분해하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청소년들이 시를 멀리하게 만드는, 왜곡된 시교육의 대표적 현상이라고 통절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시는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읊조려 느낌을 얻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한 가지 가슴이 찔리는 느낌이 들었던 점은 ‘천 개의 곡조를 다룬 후에야 음악을 알게 되고, 천 개의 칼을 본 후에야 명검을 알게 되듯이 천 개의 시를 쓴 후에야 명시를 알게 되는 것(115쪽)’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천 개의 리뷰를 써냈음에도 여전히 좋은 리뷰를 써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내 시도 내 삶의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시는 절실하고 진정한 내 삶의 다른 모습이다.(153쪽)”라고 하신 시인과는 달리 제가 써온 리뷰에는 고통의 알갱이가 담겨있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먼저 백 번을 읽어라’라는 제목의 글에 청나라 초기 문장가 장조의 <유몽영>에서 인용한 글을 다시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젊은 시절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구경하는 것과 같다. 모두 살아온 경력의 얕고 깊음에 따라 얻는 것도 얕고 깊게 될 뿐(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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