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움직이기 - 행동경제학자의 발칙한 역발상
조재형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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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유행하던 우스갯소리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3단계에서 시작한 우스개가 날로 진화하였는데, 처음 나온 3단계의 정답은 이렇습니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요즘 젊은이의 유머코드로는 ‘이거 웃기는 이야기 맞아?’ 할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일해본 분이라면 번거롭게 3단계까지 갈 필요 없이 ‘인턴선생에게 시킨다.’가 정답이라고 알고 계실 것입니다.

 

느닷없이 코끼리에 관한 우스갯소리를 내놓은 이유는 조재형교수의 <코끼리 움직이기>라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최고의 선택을 이끄는 ‘행동경제학’이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는 만큼, 설마 덩치가 산만한 코끼리를 움직이는 특별한 방법이 소개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행동경제학(行動經濟學, behavioral economics)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는 “이성적이며 이상적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를 전제로 한 경제학이 아닌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여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경제학이다.”라고 위키백과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 분야에서는 수많은 이론들이 제시되어왔습니다. 이론이 많다는 것은 정작 현실에 맞추어 보았을 때 딱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간극을 메울 새로운 이론이 필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경제활동 자체가 사람들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학 이론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상적인 사회에서나 구현이 가능한 것수도 있습니다. 왜냐구요? 인간 자체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닙니다만, 인간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게 될 지는 스스로도 모르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경제학 이론이 적용되는 사회는 다양한 인간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가지는 다양한 사회적, 인지적, 감정적 요소와 편향 등에 의해 일어나는 심리학적 현상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가설에 기초한 것이 행동경제학입니다. 심리학, 특히 실험심리학이 발전하면서 행동경제학의 이론이 공고해지게 된 셈입니다.

 

‘인간은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가?’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인간의 사고와 의사결정은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을 먼저 설명합니다. 자동시스템은 일종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날아오는 공을 피하거나 하품을 하는 등의 행위입니다.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인데, 슬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감정 혹은 감성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숙고시스템은 취직을 하기 위하여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원서를 어디에 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처럼 이성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사고와 의사결정에 간여하는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은 양분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는 발의 위치나 그립을 잡는 것부터 스윙과 팔로우까지 코치에게 배운 것을 되새기면서 따라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보기를 넘어 싱글에 이르게 되면 일부 과정은 의식하지 않은 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즉, 훈련을 통하여 숙고시스템이 자동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맞던 공이 무너지게 되면 자신의 스윙을 원점에서 검토하게 됩니다. 즉, 자동시스템을 숙고시스템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은 상호 전환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책 내용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스키폴국제공항의 화장실에 있는 특별한 무엇이라든지, 90년대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핵폐기물 매립지 설립과 관련한 주민투표 사례를 인용하여 인간의 사고와 의사결정과정에 작용하는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을 설명하고 있어서입니다. 적절한 사례마저도 군더더기를 쳐내고 핵심을 간추려 내고 있어, 그 어렵다는 심리학이나 경제학의 개념을 설명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것입니다.

 

책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행동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왜 당신은 흔들리는가?’입니다. 14꼭지의 이야기를 담은 앞부분에서는 사고와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근본적 원인을 설명하고, 12꼭지의 이야기를 담은 뒷부분에서는 의사결정을 머뭇거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들 가운데는 지금까지 제가 크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삼스러웠던 것도 있고, 나름대로 고민하던 것은 해답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사례를 인용하고, 여기에 적절한 심리학실험의 결과를 연결하여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는데, 책을 통하여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메시지는 ‘공정성’으로 귀결된다고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통업계에서 오랫동안 갑론을박이 있어왔던 최저가격보상제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대목을 예로 들어봅니다. 최저가격보상제란, “고객이 구입한 상품과 브랜드 품목 규격 모델이 똑같은 상품을 다른 점포에서 더 싼값에 팔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차액을 즉시 현금으로 돌려주는 제도이다. 이는 어떤 상품이든 동일한 것을 다른 유통점에서 더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다면 이미 그 제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추후에라도 그 차액을 내준다는 것으로, 말 그대로 유통점이 고객들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미국과 같은 유통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랜 전부터 시행되어온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5월 신세계 이마트가 처음으로 실시했다.”라고 다음백과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형유통업체가의 가격경쟁을 유도하여 물가안정과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로 인식된 최저가격보상제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제도는 결국은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동일하게 만드는, 즉 담함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입니다. 좋은 취지를 내세워 소비자를 배려하는 척 했지만 오히려 소비자를 우롱하는 제도로 전락할 운명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싶습니다. 저자의 결론은 싼 값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과 공정한 시장이 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가격비교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의료기관의 서비스 가운데 건강보험의 적용대상이 아닌 비급여항목의 수가를 고지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는 경쟁을 통하여 가격을 지속적으로 하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제도 역시 가격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무한경쟁이 소비자에게 꼭 유리한 것인가 되묻기도 합니다. 누구나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서비스를 원하겠지만, 경쟁을 통하여 가격을 내릴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싼 게 비지떡’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허실에 관한 이야기도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이 주제에 관하여 저자가 인용한 사례는 아주 놀랄만한 것입니다. 모 텔레비전 방송의 퀴즈프로그램과 유사한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라는 프랑스판 퀴즈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지구를 도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달, 태양, 화성, 금성 이라는 예시가 주어졌는데, 초등학생도 답을 알만한 문제임에도 웬일인지 출연자가 당황하면서 방청객 찬스를 쓰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방청객의 42%만이 정답인 ‘달’을 선택하였고, 무려 56%의 방청객이 ‘태양’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출연자는 다수의 답은 ‘태양’을 선택하여 탈락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출연자는 그렇다고 쳐도 방청객은 왜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요? 방청객이 잘못된 답을 제시한 건, 이 정도의 쉬운 질문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퀴즈쇼의 승리자가 되어 100만 유로를 받을 자격이 될 수 있느냐는 것으로, 참가자의 선정이 공정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오답을 선택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공정성과 경제민주화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저자는 최후통첩게임을 인용합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일정한 금액을 나누어 갖는 게임입니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돈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제시한 조건과 다른 사람이 이를 수락하는가에 따라 가져갈 수 있는지가 결정됩니다. 즉 한 사람이 제시한 금액에 다른 사람이 동의하면 두 사람이 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지만, 동의하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돈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실험을 해보면 대체적으로 제안을 하는 쪽에서 30%이상을 제시해야 두 사람이 모두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어느 정도의 노동을 하고 실험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더 공평한 비율로 돈이 배분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배에 노동의 대가에 대한 보상이라는 개념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경제민주화를 논하는 과정에서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부자가 돈을 버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돈을 버는 과정을 바로 잡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 역시 땀 흘린 만큼 돈을 버는 것이라면, 단순히 많이 벌기 때문에 세금을 더 내라는 주장이 공정한가 싶습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 면세자 수는 595만5,000명, 종합소득세 면세자 수는 140만 명으로 총 735만 명이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수입이 적은 계층에 대한 배려라는 차원의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도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고, 대신에 복지를 통하여 이를 보전해준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찜찜한 기분보다는, 다만 조금이라도 국가 재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입니다. 조세와 정의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코끼리 움직이기’는 커다란 덩치의 코끼리를 타고 있는 왜소한 모습의 기수가 코끼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들어, 타성적인 습관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코끼리에 올라탄 기수가 고삐를 쥐고 있기 때문에 코끼리가 기수의 말을 듣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코끼리는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기수의 말에 따르면 먹이 등으로 보상을 해주었기 때문에 기수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코끼리를 훈련시키는 과정은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로 조금씩 진행된다고 합니다. 만약 누군가 아침잠을 줄여 운동을 하기로 정했으면, 갑자기 1~2시간을 일찍 일어나 운동하기보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10분 정도 운동을 하는 식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우선 코끼리를 아주 조금만 움직여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잘한 코끼리를 토닥거려 칭찬해주고, 적절하게 보상을 해주는 것처럼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해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고 있는 일을 밖에 알려야 하는 경우가 많은 저에게는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식의 저주’에 관한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맡고 있는 일 가운데 비교적 전문적인 내용을 비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들의 마음을 모른다고 하는데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내용을 비전문가들에게 설명할 때는 상대를 초등학생으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만, 막상 설명을 하다보면 어느새 본래의 자세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이 참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어려운 행동경제학이론을 사례는 물론 심리실험에 이르기까지 초보자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행동경제학의 입문서로는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 책이 절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이성이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저는 베스트셀러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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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처 몰랐던 터키 역사기행
이종헌 글.사진 / 소울메이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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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조우한 현장 스페인을 다녀왔습니다. 특히 이베리아의 이슬람은 고대 그리스문명을 보존하고, 재해석하여 유럽에 전한 숨은 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과 기독교의 만남은 새로운 형식의 건축과 예술을 탄생시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금년에는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만난 또 다른 현장 동유럽을 찾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터키가 그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터키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이종헌기자님의 <우리가 미처 몰랐던 터키 역사기행>은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오르한 파묵의 전작 읽기를 통하여 근대 터키사회의 분위기를 조금은 가늠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미처 몰랐던 터키 역사기행>은 터키에 대한 앎의 지평을 넓히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외신을 다루는 기자로서 세계의 역사에 관심이 큰 저자는 해답을 여행에서 찾았습니다. “직접 가보는 것이 해답이다. 여행은 역사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현장에 가보지 않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보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큰 감동을 준다.(8쪽)”라고 적었습니다. 그리하여 보는 것에만 머무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숨어 있는 역사를 찾는 진정한 ‘여행’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세 차례의 터키 여행을 통하여 터키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유적을 찾아 그 내력을 상세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여행은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여행이었고, 두 번째 여행은 터키의 서부를, 세 번째 여행은 터키의 동부를 누볐습니다. 터키 전역을 커버하는 서른다섯 곳입니다. 그 가운데는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격돌한 현장도 있고,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끼고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시원이 되는 장소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터키인의 조상 튀르크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돌궐족이라고 합니다.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튀르크족은 522년 처음으로 나라를 세우고 영토를 넓혔다가, 지금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이 있는 중앙아시아지역의 서튀르크와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한 동튀르크로 나뉘었습니다. 동튀르크가 망한 다음에 서튀르크는 중국에 밀려 터키의 아타톨리아 지방으로 넘어가 터키를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고구려가 망하면서 흩어진 유민의 일부가 돌궐지역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 터키와 우리나라가 형제의 나라라는 말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스만 튀르크의 멸망 이후 서구의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터키가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저자는 보았습니다. 사실 이슬람이 장악했던 이베리아 반도에서나 발칸반도에서도 이슬람은 타 종교에 대하여 관대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기독교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충돌의 배경에도 인종과 종교가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라는 것이 서로를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터키 모델의 성공여부가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문명이 충돌한 장소에서는 새로운 문화적 경향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끔찍한 일도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역사여행은 다양한 시선을 찾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주로 화려하고 낭만적인 풍경과 겉모양에 머물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그 뒤에 존재하는 야만적 역사도 같이 봐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으면 여행의 최고 목적을 실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여행을 통하여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터키 곳곳에 남아 있는 유적을 찾은 느낌뿐만이 아니라 그 유적의 역사적 배경까지 상세하게 들려주면서, 그곳에서 우리가 생각할 점은 무엇인지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터키여행에서 꼭 챙겨가지고 갈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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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300일의 마음수업
이창재 지음 / 북라이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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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론다에 갔을 때, 만난 은혜의 성모교회(Church of Our Lady of Mercy)가 성 테레사 수녀가 세운 봉쇄수도원이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봉쇄수도원에 대하여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15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사회가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면서 종교인들 역시 사치하는 풍조가 생겼다는데, 성 테레사 수녀는 교회의 변모된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수도에 정진하고자 세운 봉쇄수도원이라고 합니다.

 

다큐멘터리영화 <위대한 침묵>이 프랑스의 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카르투지오회 대수도원(The Grande Chartreuse)의 수도사들의 일상을 그려내면서 봉쇄수도원의 일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봉쇄수도원에 들어가면서 정결, 청빈 순명서원과 함께 침묵을 서원한 수도사들은 엄격한 금욕은 물론 침묵을 지키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럽의 봉쇄수도원에 관하여 조사를 하다가 우리나라에서도 이창재감독이 2012년에 만든 영화 <길 위에서>가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작은 절 백흥암에서 수도정진하는 비구니들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의 뒷이야기가 <길 위에서>에 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앞부분에서 백흥암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곳은 참선 정진하는 수행도량이오니 외부인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품이 ‘봉쇄수도원 같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위대한 침묵>이 힌트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소리와 찬송하는 음악 이외에는 묵음수행하는 유럽의 봉쇄수도원보다는 웃어야 할 때는 웃음꽃이 피는 백흥암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현재는 중국과 티베트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에만 남아 있다는 무문관수행은 묵음수행보다도 더 처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문관수행은 감옥처럼 창문에조차 철창을 덧댄 세 평 남짓한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하루 한끼만 먹으며 처절하게 정진하는 곳으로, 석 달이든 3년이든 정해진 수행기간을 모두 마치거나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문을 박차고 나와야만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저자, 아니 감독께서는 <길위에서>를 제작하는 동안 객관적 시각에서 수행하시는 분들을 관찰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분들을 인터뷰하기도 하였는데, 아마도 구도의 길에 나선 이유를 비롯하여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수도하시는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분들의 치열한 생의 자세와 내면 깊이 흐르는 보살심은 누구의 마음이라도 녹여낼 만큼 뜨거운 마그마 같은 것이었기 때문(274쪽)”이라고 했습니다.

 

이창재 감독은 “무심한 듯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곳, 모자란 듯하지만 소박한 멋이 있는 곳, 백흥암은 바로 그런 절이다(35쪽)”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백흥암의 영운 스님은 “백흥암은 작은 사찰이지만 참 예뻐요. 불 없는 달밤에, 보름달빛이 기와지붕에 스르르 내려앉을 때 보면 정말 아름답지요. 지붕의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지면서 아주 아름다운 밤이 됩니다.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도를 찾아서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요(36쪽)”라고 설명합니다. 한 폭의 그림 같지 않습니까? 아직 절집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어 실감할 수 없습니다만, 기회가 되면 백흥암을 한 번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일년에 두 번, 초파일과 백중날에는 외부인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백흥암 극락전에 있다는 가릉빈가를 볼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백흥암의 다양한 모습과 이곳에서 정진수도하시는 분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많이 곁들이고 있어 백흥암의 모습은 이미 마음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께서 <길 위에서>를 제작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백흥암에서 수도하는 분들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제작 뒷이야기까지도 가감없이 담고 있어, 읽어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그런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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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나무 - 겨울눈에서 스트라디바리까지, 나무의 모든 것 생각하는 돌 9
라인하르트 오스테로트 지음, 모이디 크레치만 그림 / 돌베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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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작은 나무로부터’라는 리뷰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나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담았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책을 받아 펼쳐보니, “세상의 모든 것은 원래 나무로 이루어졌다.(6쪽)”는 글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정말 그럴까 하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면서 공감할 구석이 있는가 싶어 눈에 힘을 주어 읽으려는 찰나, ‘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바로 꼬리를 내리는 바람에 김이 샜습니다. 칼을 뽑았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베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공연히 낚였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서문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이 책에서는 우리와 잘 어우러져 살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주는 나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7쪽)”라는 속내를 드러냅니다. 서문이 끝나고 본론에서 만나는 수납장에 관한 이야기는 도대체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핵심이 무엇인지 종잡지 못하게 됩니다. 저자는 모두 15꼭지의 이야기 가운데 무려 4꼭지를 폐기물 사이에서 발견한 낡은 수납장을 리폼하는 과정을 넣었습니다. 화자와 저자와의 관계도 분명치 않은 사족 같은 글을 왜 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찍이 나무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인지 원....

 

독일 니더작센 주 헬름슈테트에서 태어나 역사학을 공부한 저자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숲과 나무의 선진국 독일 출신답게 나무에 관한 앎의 깊이가 대단하다는 점은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책에서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나무와 숲에 관한 이야기들의 상당부분이 독일에 국한되어 있는 것도 이 책이 가지는 한계로 보았습니다. 특히 인쇄술과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쏙 빼고 중국과 일본만 언급하는 것을 보면 저자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중국인은 이미 6세기에 목판 인쇄술을 발명했고, 그 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일본인은 많은 유럽 예술가의 경탄을 자아낸 대가다운 기교를 완성했다(67쪽)”

 

책을 읽다가 의문이 들었던 것은 태풍이 유럽을 강타했다고 번역을 해놓은 것입니다. 학생 때 배우기를 태풍은 태평양에서 시작해서 동북아시아로 향하는 열대성 폭풍을 말하고, 북미 동부에서는 허리케인이라고 하고, 동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것을 사이클론이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유럽에 열대성 폭풍우가 생기는 것이 가능한지부터가 의문이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태풍이라고 번역한 것은 옳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 사이에 나무에 관한 상식 6꼭지를 삽입하였는데, 숲과 작업장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 나무에 관한 최고 기록, 종이의 역사, 나무에 관한 관용적 표현, 나무에 깃든 전설과 치유력, 그리고 나무인증서 등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왜 정리하였는지 독자들이 더 궁금해하는 것은 없을까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종이의 역사를 달랑 2쪽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읽은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의 <종이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42229>는 자그만치 524쪽이나 되는데 말입니다.

 

어떤 책을 읽어도 앎의 부피를 키울 수 있는 무엇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기대했던 것보다 크게 미치지 못하는 책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지구에서 가장 가벼운 나무는 남아메리카에서 나는 발사나무라는 것, 가장 단단한 나무는 서인도제도를 둘러싼 지역에서 나는 유창목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오래된 나무는 캘리포니아주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해발 3000미터에 사는 브리슬콘 소나무로 수령이 무려 4,700년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큰 나무는 저도 직접 가서 보았던 캘리포니아에 사는 지름이 12미터, 높이는 140미터에 달하는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라는 것 정도를 확인하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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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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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퀸네트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http://blog.joins.com/yang412/13546285>에서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길을 헤매는 것도 정도껏 해야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영미 시인은 한 술 더 떠서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라고 합니다. 이 책은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 산문집의 1부는 각종 매체에 기고한 여행과 관련된 들을 담았고, 2부에는 문학, 미술,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담았습니다. “여행은 짧은 시간에 우리를 성숙시키고 또한 파괴시키기도 한다.(242쪽)”라면서 지루하더라도 일상을 견디듯이 힘들더라도 여행이라고 하는 모험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움에의 망명’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1부에는 모두 13편의 여행산문이 실렸다. 여행산문의 경우는 때로 매체의 청탁을 받아 여행에 나서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꽃보다!~~’ 시리즈를 보면서 엄청 부러워하는 것은 여행도 하고 출연료도 받고 하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 잡지에 글을 팔기 위해 그림들을 구경하겠지만, 내 관심이 축구와 야구로 옮겨간 지 몇 년이 되었다.(65쪽)”라고 고백하거나, 심지어는 ‘이 거지같은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74쪽)’라고 노골적으로 토로하는 것을 보면 이런 글을 읽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역시 조건이 붙으면 마음이 불편한 것은 다 같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독자에게 여과 없이 투사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고집하는 나를 고치지 못한다.(75쪽)’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 같습니다.

 

리옹의 미니어처 박물관 근처의 카페에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생각나서 레모네이드와 마들렌을 시켰고, 마들렌을 먹으면서 어떤 과거도 떠올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프루스트에게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단초가 된 것인데, 시인은 마들렌이 프루스트를 이끌어내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각자에서 기억을 되살리는 단초는 나름대로의 특별한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교토의 료안지를 가보지 못해서 어떤 분위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교토의 바위정원에 깔린 돌조각들은 내게 하나인 전체에 묵묵히 복종하는 군복들, 고등학교 운동장에 줄선 교복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다가왔다(124쪽)”라고 적었습니다만, 시인이 일본의 군국주의를 어떻게 경험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장선우 감독의 <꽃잎>에 대한 감상평에서 다음 대목을 읽고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폼은 나나 너무 억지로 끼워 맞춘 ‘와꾸’라는 느낌이 든다(194쪽)” 제가 왜 실망했는지는 여러분들도 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바마에 관한 산문을 제외하고는 여행산문의 상당수가 미술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마도 미술사학을 공부한 시인의 전공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매체가 시인에게 여행산문을 청탁하게 된 것도 시인의 이런 배경을 주목한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개인의 신변잡기에 관한 생각들이 더 많아 이를 따라가는 것도 고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책의 제목을 어디서 얻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어디에서도 별도 설명이 없어서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제목은 참 멋있는데, 산문 어디에도 길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시인의 글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어서 붙인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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