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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움직이기 - 행동경제학자의 발칙한 역발상
조재형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오래 전에 유행하던 우스갯소리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3단계에서 시작한 우스개가 날로 진화하였는데, 처음 나온 3단계의 정답은 이렇습니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요즘 젊은이의 유머코드로는 ‘이거 웃기는 이야기 맞아?’ 할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일해본 분이라면 번거롭게 3단계까지 갈 필요 없이 ‘인턴선생에게 시킨다.’가 정답이라고 알고 계실 것입니다.
느닷없이 코끼리에 관한 우스갯소리를 내놓은 이유는 조재형교수의 <코끼리 움직이기>라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최고의 선택을 이끄는 ‘행동경제학’이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는 만큼, 설마 덩치가 산만한 코끼리를 움직이는 특별한 방법이 소개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행동경제학(行動經濟學, behavioral economics)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는 “이성적이며 이상적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를 전제로 한 경제학이 아닌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여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경제학이다.”라고 위키백과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 분야에서는 수많은 이론들이 제시되어왔습니다. 이론이 많다는 것은 정작 현실에 맞추어 보았을 때 딱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간극을 메울 새로운 이론이 필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경제활동 자체가 사람들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학 이론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상적인 사회에서나 구현이 가능한 것수도 있습니다. 왜냐구요? 인간 자체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닙니다만, 인간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게 될 지는 스스로도 모르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경제학 이론이 적용되는 사회는 다양한 인간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가지는 다양한 사회적, 인지적, 감정적 요소와 편향 등에 의해 일어나는 심리학적 현상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가설에 기초한 것이 행동경제학입니다. 심리학, 특히 실험심리학이 발전하면서 행동경제학의 이론이 공고해지게 된 셈입니다.
‘인간은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가?’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인간의 사고와 의사결정은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을 먼저 설명합니다. 자동시스템은 일종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날아오는 공을 피하거나 하품을 하는 등의 행위입니다.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인데, 슬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감정 혹은 감성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숙고시스템은 취직을 하기 위하여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원서를 어디에 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처럼 이성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사고와 의사결정에 간여하는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은 양분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는 발의 위치나 그립을 잡는 것부터 스윙과 팔로우까지 코치에게 배운 것을 되새기면서 따라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보기를 넘어 싱글에 이르게 되면 일부 과정은 의식하지 않은 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즉, 훈련을 통하여 숙고시스템이 자동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맞던 공이 무너지게 되면 자신의 스윙을 원점에서 검토하게 됩니다. 즉, 자동시스템을 숙고시스템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은 상호 전환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책 내용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스키폴국제공항의 화장실에 있는 특별한 무엇이라든지, 90년대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핵폐기물 매립지 설립과 관련한 주민투표 사례를 인용하여 인간의 사고와 의사결정과정에 작용하는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을 설명하고 있어서입니다. 적절한 사례마저도 군더더기를 쳐내고 핵심을 간추려 내고 있어, 그 어렵다는 심리학이나 경제학의 개념을 설명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것입니다.
책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행동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왜 당신은 흔들리는가?’입니다. 14꼭지의 이야기를 담은 앞부분에서는 사고와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근본적 원인을 설명하고, 12꼭지의 이야기를 담은 뒷부분에서는 의사결정을 머뭇거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들 가운데는 지금까지 제가 크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삼스러웠던 것도 있고, 나름대로 고민하던 것은 해답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사례를 인용하고, 여기에 적절한 심리학실험의 결과를 연결하여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는데, 책을 통하여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메시지는 ‘공정성’으로 귀결된다고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통업계에서 오랫동안 갑론을박이 있어왔던 최저가격보상제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대목을 예로 들어봅니다. 최저가격보상제란, “고객이 구입한 상품과 브랜드 품목 규격 모델이 똑같은 상품을 다른 점포에서 더 싼값에 팔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차액을 즉시 현금으로 돌려주는 제도이다. 이는 어떤 상품이든 동일한 것을 다른 유통점에서 더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다면 이미 그 제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추후에라도 그 차액을 내준다는 것으로, 말 그대로 유통점이 고객들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미국과 같은 유통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랜 전부터 시행되어온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5월 신세계 이마트가 처음으로 실시했다.”라고 다음백과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형유통업체가의 가격경쟁을 유도하여 물가안정과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로 인식된 최저가격보상제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제도는 결국은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동일하게 만드는, 즉 담함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입니다. 좋은 취지를 내세워 소비자를 배려하는 척 했지만 오히려 소비자를 우롱하는 제도로 전락할 운명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싶습니다. 저자의 결론은 싼 값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과 공정한 시장이 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가격비교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의료기관의 서비스 가운데 건강보험의 적용대상이 아닌 비급여항목의 수가를 고지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는 경쟁을 통하여 가격을 지속적으로 하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제도 역시 가격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무한경쟁이 소비자에게 꼭 유리한 것인가 되묻기도 합니다. 누구나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서비스를 원하겠지만, 경쟁을 통하여 가격을 내릴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싼 게 비지떡’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허실에 관한 이야기도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이 주제에 관하여 저자가 인용한 사례는 아주 놀랄만한 것입니다. 모 텔레비전 방송의 퀴즈프로그램과 유사한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라는 프랑스판 퀴즈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지구를 도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달, 태양, 화성, 금성 이라는 예시가 주어졌는데, 초등학생도 답을 알만한 문제임에도 웬일인지 출연자가 당황하면서 방청객 찬스를 쓰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방청객의 42%만이 정답인 ‘달’을 선택하였고, 무려 56%의 방청객이 ‘태양’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출연자는 다수의 답은 ‘태양’을 선택하여 탈락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출연자는 그렇다고 쳐도 방청객은 왜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요? 방청객이 잘못된 답을 제시한 건, 이 정도의 쉬운 질문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퀴즈쇼의 승리자가 되어 100만 유로를 받을 자격이 될 수 있느냐는 것으로, 참가자의 선정이 공정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오답을 선택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공정성과 경제민주화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저자는 최후통첩게임을 인용합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일정한 금액을 나누어 갖는 게임입니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돈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제시한 조건과 다른 사람이 이를 수락하는가에 따라 가져갈 수 있는지가 결정됩니다. 즉 한 사람이 제시한 금액에 다른 사람이 동의하면 두 사람이 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지만, 동의하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돈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실험을 해보면 대체적으로 제안을 하는 쪽에서 30%이상을 제시해야 두 사람이 모두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어느 정도의 노동을 하고 실험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더 공평한 비율로 돈이 배분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배에 노동의 대가에 대한 보상이라는 개념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경제민주화를 논하는 과정에서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부자가 돈을 버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돈을 버는 과정을 바로 잡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 역시 땀 흘린 만큼 돈을 버는 것이라면, 단순히 많이 벌기 때문에 세금을 더 내라는 주장이 공정한가 싶습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 면세자 수는 595만5,000명, 종합소득세 면세자 수는 140만 명으로 총 735만 명이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수입이 적은 계층에 대한 배려라는 차원의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도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고, 대신에 복지를 통하여 이를 보전해준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찜찜한 기분보다는, 다만 조금이라도 국가 재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입니다. 조세와 정의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코끼리 움직이기’는 커다란 덩치의 코끼리를 타고 있는 왜소한 모습의 기수가 코끼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들어, 타성적인 습관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코끼리에 올라탄 기수가 고삐를 쥐고 있기 때문에 코끼리가 기수의 말을 듣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코끼리는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기수의 말에 따르면 먹이 등으로 보상을 해주었기 때문에 기수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코끼리를 훈련시키는 과정은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로 조금씩 진행된다고 합니다. 만약 누군가 아침잠을 줄여 운동을 하기로 정했으면, 갑자기 1~2시간을 일찍 일어나 운동하기보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10분 정도 운동을 하는 식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우선 코끼리를 아주 조금만 움직여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잘한 코끼리를 토닥거려 칭찬해주고, 적절하게 보상을 해주는 것처럼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해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고 있는 일을 밖에 알려야 하는 경우가 많은 저에게는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식의 저주’에 관한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맡고 있는 일 가운데 비교적 전문적인 내용을 비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들의 마음을 모른다고 하는데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내용을 비전문가들에게 설명할 때는 상대를 초등학생으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만, 막상 설명을 하다보면 어느새 본래의 자세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이 참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어려운 행동경제학이론을 사례는 물론 심리실험에 이르기까지 초보자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행동경제학의 입문서로는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 책이 절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이성이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저는 베스트셀러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