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
카미유 앙솜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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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로부터 첫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던지는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당연히 기쁘기도 하고, 안심도 되고, 뭐 이런 복잡한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는 저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아내를 지켜보면 우선은 커다란 기쁨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일단 대단한 일일 것이며, 그런 대단한 일이 기다렸던 것이라면 기쁨이 더 커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대단한 일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벌어지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지는 당해보지 않아서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아이를 가지게 된 여성이나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남성이 각각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일을 ‘그저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이라고 슬쩍 눙치면서도 속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생각했다는 여성의 속마음을 담은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을 읽다보면 세상에서 아이를 갖는 일은 결코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남녀관계가 쿨하다고 듣고 있는 프랑스에서 말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은 프랑스의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카미유 앙솜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생각지도 않은 임신과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세상의 엄마들은 자신이 엄마가 되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는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한다.(7쪽)”라고 적은 첫머리를 읽으면서, 프랑스의 젊은 여성들은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저의 생각이 잘못된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녀라면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안 순간 어떤 생각을 할까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요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에서도 고등학교에 다니던 여자주인공이 임신을 하자 학교를 그만두고 남자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낳기에 이르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만, 결코 쉽지 않은 결심이라는 것은 누구나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피임방법에 문제가 있어 생긴 임신을 두고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아이를 낳기까지의 과정, 특히 심리적 변화를 꼼꼼하게 적어가고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엘르라는 잡지가 뽑은 인기 블로그의 하나인 ‘여자들의 카페’의 주인이 자신의 경험을 써내려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을 암시라도 하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어떤 것은 한쪽을 넘어가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불과 몇 줄에 불과하기도 합니다. 임신에서 출산까지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상황들 가운데 가장 황당한 것은 역시 아이의 아빠가 중절을 요구하며 떠나는 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녀석은 여자 친구를 진정 사랑하기는 한건 지 원.... 그렇게 무책임한 남자의 아이라면 미혼모라는 굴레를 써가면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자 역시 처음에는 임신을 중단하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낳지 말자’라고 하는 남자 친구나, 역시 자신을 생각해서 임신을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압박하는 부모님 등, 주변 사람들이 온통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자신만이 절망적 상황에 대한 유일한 판관이다(43쪽)’라는 판결문의 한 구절에 꽂혔기 때문에 임신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용감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자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공감해준 대모님이나 절친이 있어서 가능한 결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생명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니까요.

 

결심은 쉽게 했을지 몰라도 아이가 금새 세상에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신기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런 저자의 생각들을 따라 읽으면서 이 엄마가 끝까지 행복하기를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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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학고재신서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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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별렀던 혜곡 최순우선생님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었습니다.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님은 서문에서 “한국미에 대한 난해한 철학적 의미를 지닌 글이나 학문적 업적을 쌓기 위한 논저보다는 이슬보다 영롱하고 산바람보다 신선한 글로 우리들 가슴을 언제나 한국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게 한 분이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최순우 전집> 가운데서도 누가 읽어도 이해할만한 글들을 뽑아 모았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그분의 글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보는 듯하고 그 속에 함축된 의미와 본질까지를 깨우쳐서 무릎을 탁!치고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기도 하고 마음이 흔연하고 기쁨이 충만하기도 하고 때론 감동하고 숙연하고 설레이기도 한다.’라고도 했습니다.

 

모두 124꼭지의 글을 뽑아서, 한국미의 총론에 해당할 ‘한국미 산책’, ‘한국민 한국의 마음’에 이어, 건축, 불상, 석탑, 금속공예, 목칠 및 민속공예, 신라토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조선 전기의 회화, 조선 후기의 회화(겸재 정선, 영조시대, 단원 김홍도, 정조시대, 혜원 신윤복) 등으로 나누었습니다.

 

‘건축미에 나타난 자연관’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면서 언덕 위에 덩그러니 올라앉은 그라나다의 이슬람왕궁과 부다페스트의 헝가리왕궁과 우리나라의 왕궁이 건축철학에서부터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자연풍광 속에 집 한 채를 멋지게 세우는 뛰어난 천분을 지녔다고 저자는 보았습니다. “조그만 정자 한 채는 물론 큰 누대나 주택에 이르기까지 뒷산의 높이와 앞벌의 넓이, 그리고 거기에 알맞은 지붕의 높이와 크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인들의 형안은 상쾌하다고 할 만큼 자동적으로 이것을 잘 가늠하는 체질을 지니고 있었다.(21쪽)”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집안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더하여 반대로 먼 곳에서 그 집채를 바라보는 즐거움까지도 매우 대견하게 알아온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추상적인 지맥까지도 일치시킴으로 해서 유무형의 미학을 추구한 것입니다.

 

저도 오래 별러서 영주 부석사를 찾아 무량수전을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 저자가 특히 무량수전에 주목한 것은 고려 중기에 세운 이 건물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라서 뿐 아니라, 단출한 단층 건물인 무량수전이야말로 앞서 말씀드린 우리 건축의 미를 제대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기 기둥들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78쪽)”

 

그래서 “요사이는 집을 지으려면 대개 자연 지형을 마구 헐어내고 깎고 돋우고 해서 멋진 자연 풍광을 학대하는 일이 예사인데 과거의 한국 사람들은 결코 자연을 거역하는 무모는 최소한도로 줄이는 것을 불문율로 삼았다.(89쪽)”라면서 철학이 사라진 요즈음 우리 건축의 실태를 넌지시 꼬집기도 합니다. 삼척에 있는 죽서루에 말로 우리 건축의 철학을 잘 담고 있어 ‘한국 건축의 모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이희봉 지음, 한국건축의 모든 것 죽서루; http://blog.joins.com/yang412/13210699)

 

그리고 생각해보니 파리의 에펠탑 아래 펼쳐진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나무의 가지들을 대패로 밀어낸 듯 잘라낸 모습을 보고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는데,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헤네랄리페 궁전에 이르는 길에 늘어선 사이프러스나무들이 꼭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슬람건축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원모습은 이렇다는 것입니다. “동산이 담을 넘어 들어와 후원이 되고, 후원이 담을 넘어 번져 나가면 산이 되고 만다. 담장은 자연 생긴 대로 쉬엄쉬엄 언덕을 넘어가고, 담장 안의 나무들은 담 너머로 먼 산을 바라본다.(94쪽)” 정말 멋들어진 비유가 아닌가요? 우리 정원이 그렇지만, 그 정원을 이처럼 멋들어지게 그려내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수많은 우리 예술품이 품고 있는 미학적 설명을 제대로 느껴볼 기회를 만들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책읽기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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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역사 100장면 - 가람역사 59 다이제스트 100 시리즈 11
이강혁 지음 / 가람기획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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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이베리아 반도와 모로코를 여행하는 동안 박학다식한 조형진가이드는 여행지와 관련된 역사를 잘 요약해서 소개해주었습니다. 사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과거에 왕실간의 복잡한 결혼을 통하여 지배구조가 결정되어 나라들이 서로 합해졌다가 갈라지기를 반복한 바 있어 역사를 통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여행하는 지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지역의 문화를 알아야하고, 문화는 특히 역사적 흐름의 산물이고 보면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베리아반도는 북아프리카를 통하여 흘러온 이슬람세력과 유대세력 그리고 유럽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세력이 오랜 세월을 두고 충돌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낸 곳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항해시대를 통하여 신대륙을 오랫동안 지배했을 뿐 아니라 아시아에까지도 진출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세계사적 틀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역사를 통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저자께서는 특히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강의해온 스페인의 역사를 책으로 꾸며 <스페인 역사 100장면>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사건을 중심으로 하다보면 가벼워질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잘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큰 틀에서는 기전체방식을 취하여, 선사시대에서 서고트 족의 침입까지, 이슬람교도가 지배한 시기, 합스부르크왕조, 부르봉 왕조, 20세기 초, 프랑코 독재시기,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7개의 시대로 구분하고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관련이 있는 사건들을 통합하여 모두 100개의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꼭지는 스페인의 전체 역사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10~3세기에 북아프리카로부터 이베로족이 이베리아반도로 이주해와서 반도의 동부와 남부 해안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기원전 20~1세기에 걸쳐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 살던 켈트족은 기원전 6세기경에 이베리아반도에 들어와 주로 북서부지역에 정착하였습니다. 이베로족과 켈트족은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평화 시에는 땅을 공유하고 혼인으로 결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역사이야기는 소아시아의 페니키아인들이 아프리카 북쪽 해안에 건설한 카르타고왕국의 이베리아반도 지배와 카르타고가 로마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이베리아반도가 로마의 지배로 넘어가는 과정, 로마제국이 서고트족에 망하는 과정,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슬림들이 서고트족을 제압하고 이슬람왕국을 건설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만을 간추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건축, 문학, 정치와 경제 등 다양한 영역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구가한 합스부르그왕가 시절이 비중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특히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신대륙에서 식민지 경영에 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당시 스페인에서도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비인간적인 행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신부는 1539년 살라망카대학에서의 강연을 통하여 “도대체 이들은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또 정복자들은 자연을 파괴한 범죄자로 죄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자연을 파괴한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느 누구도 인디오를 정복할 도덕적 권리는 없다.(155쪽)”라고 지적하면서 인디오의 인권문제를 제기하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간계를 동원하여 세상물정 모르는 신대륙 주민들을 도륙하고 착취하기를 거듭했던 것입니다.

 

역사 이전으로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스페인의 다양한 면모를 잘 요약하고 있어 스페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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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의 모든 것
이우상 지음, 성학 그림 / 푸른역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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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봄에 첫 해외여행지로 다녀온 곳이 베트남의 하롱베이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였습니다. 하롱베이는 그렇다고 쳐도 말로 듣던 것을 직접 보게 된 앙코르와트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조금은 급하게 정한 여행이라서 준비 없어 떠난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녀와서도 앙코르와트에 관하여 참고할만한 자료가 많지 않아서 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행사를 이용하는 단체여행은 여행에 필요한 절차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정해진 일정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원하는 장소에 충분히 머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돌아볼 곳에 대하여 충분히 공부를 하고 가면 훨씬 여유가 생길 것 같습니다.

 

이우상님의 <앙코르와트의 모든 것>은 앙코르와트에 관한 몇 안 되는 안내서 가운데 아주 좋은 책입니다. 여행사 상품으로 쫓기듯 한 번 가보고서 앙코르와트를 보았다고 하는 저와는 달리 무려 네 번이나 가서 이모저모를 꼼꼼하게 챙겨 정리했으니 당연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가까운 분들의 가족들이 뭉친 열다섯명의 대부대로 무려 보름간 돌아보았고, 두 번째는 이 책에 삽화를 그린 성학화백과 함께, 세 번째는 다시 최돈묵교수라는 분과 함께 그리고 네 번째는 드디어 혼자서 앙코르와트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읽다보면 여행지에서의 일화는 네 번의 여행이 뒤섞여 있습니다만. 그래도 방문한 유적에 대한 정보는 잘 요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무려 네 차례의 여행을 통하여 앙코르와트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유적들을 찾아보고 정리했습니다만, 단체여행에서는 그렇게 다양한 유적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저자의 안내에 따라서 책으로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엠립에 흩어져 있는 앙코르 유적을 앙코르 중심부(바욘, 앙코르 톰, 코끼리 테라스, 문둥이왕 테라스, 앙코르 와트, 프놈 바켕, 킬링필드 사원), 동부 앙코르(따 쁘롬, 쓰라 쓰랑, 반띠아이 끄데이, 쁘라사 끄라반, 톰 마논과 차우 싸이 때보다), 동 바라이 지역 및 그 너머(쁘레 럽, 반띠아이 쌈레, 차우 쓰레이 비볼, 프놈 복), 북부 앙코르(쁘리아 칸, 나악 뽀안, 따솜), 서 바라이 지역 및 그 너머(서쪽 호수와 서 메본, 프놈 끄롬, 똔레삽 호수), 룰루오스(롤레이, 바꽁), 북동부 앙코르(반띠아이 쓰레이, 끄발 스피언, 프놈 꿀렌), 앙코르 유적의 확장(벵 멜리아, 꼬 께이)로 대별하고, 마지막으로 앙코르여행의 뒷이야기에 해당하는 앙코르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앙코르와트를 찾는 분에게 많은 도움이 될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사색’이라는 제목으로 된 일종의 후기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무가치한 여행은 없다’라고 시작하는 글에서 저자는 “인간과 우주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넉넉한 사색과 너그러움을 얻고자 하거든, 또 뿌듯한 긍지를 누리고자 하거든 앙코르로 가라. 멀지 않은 곳에 앙코르가 있다.(362쪽)”라고 적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법보신문사의 기획과 후원으로 쓰여져 연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부산에 있는 영광도서 회장께서 자료를 후원해주셨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앙리 무오의 <시암과 캄보디아 탐험>를 비롯하여 주달관의 <진랍풍토기>, 앙드레 말로의 <왕도위 길> 등 희귀한 자료의 상당부분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앙코르 유적을 발굴보존하는 작업을 통하여 밝혀진 사실은 물론 캄보디아의 역사를 적절하게 인용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배한 점도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저자처럼 네 번째 찾아가 꼼꼼하게 살펴본 다음에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면서도 앙코르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너스레를 떤다면서 낯 뜨겁다고 겸양의 말씀을 하셨는데, 여행사에서 내놓은 상품여행을 한 차례 다녀온 것을 늘어놓으려는 저는 무어라 변명을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여행사 상품으로 떠나는 분들을 위해서는 조금은 압축된 정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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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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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계국은 미국의 전체 인구는 2010년의 3억 1천만 명에서 2050년에는 4억3천9백만 명으로 42%가 늘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습니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인구 4천만 명에서 8천8백만 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면서 상자형으로 된 연령별 인구구성이 보다 고연령층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노인인구의 주류를 이루는 연령층도 60대 초반에서 점점 높아져 80대 후반으로 옮아가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고 합니다. 초고령화사회가 되면서 노인들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과 맞서고 있는 의료인으로서도 치료를 통하여 환자의 삶을 연장하는 것으로부터, 치료를 통하여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관심이 옮겨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http://blog.joins.com/yang412/8944844>,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한다; http://blog.joins.com/yang412/10272224>, <체크, 체크리스트; http://blog.joins.com/yang412/12773144>를 통하여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툴 가완디교수가 새로 내놓은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노인들을 진료함에 있어 삶의 질을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체크, 체크리스트>는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어 저자가 그리 낯설지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툴 가완디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일반외과를 전공한 분인데, 앞서 쓴 책들을 통하여 의료 현장에 숨겨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진솔하게 밝히고 개선방향을 제시하고 있어 의료계는 물론 일반인의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현대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요약한 것처럼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서 의학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점은 없는지 돌아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의과대학의 교육목표가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있지 꺼져가는 생명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알려주는데 있지 않았다.(8쪽)’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가 죽음을 맞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곤혹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해오면서 의사들의 생각 역시 변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셔윈 눌랜드박사가 쓴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에서 다음 구절을 인용합니다. “우리 전 세대까지는 자연이 결국 이기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예상하고 받아들였다. 의사들은 패배의 징후를 훨씬 더 기꺼이 인정하려 했고, 그것을 부정하는데 있어서는 훨씬 덜 오만하게 굴었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오늘날의 의사들은 어려운 질환을 기술적으로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는 만족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 의사로서의 정체성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지금 시대에 나이 들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존재라는 게 어떤 것인지, 의학이 이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또 변화시키지 못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유한성에 대처하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 현실을 어떻게 왜곡시켰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학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자주 실망시키고 있는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의사인 저자가 생의 종말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조망하는 책을 쓴 셈입니다. 저자는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친가와 처가의 어른들의 삶을 많이 인용합니다. 아마도 그분들의 삶과 죽음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 최인호 작가 역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전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나이 들어 변화가 일어나는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독립적인 삶, 무너짐, 의존, 도움, 더 나은 삶, 내려놓기, 어려운 대화, 용기 등의 제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목의 의미를 종합적하여 정리해보면 독립적인 삶을 꾸려나가다가도, 모든 것은 결국 허물어지게 마련이라는 진리대로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의학적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고,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저자는 먼저 현대사회에서 노인의 위치를 고찰합니다. 평균기대여명이 길지 않던 시절에는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은 전통과 지식, 역사의 수호자라는 특별한 기능을 할 수 있어서 조직의 원로라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고령이 더 이상 희귀한 현상이 아닐 뿐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축적되던 지식과 지혜에 대한 독점적 지위 역시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유통기술의 발전으로 노인들의 입지는 날로 좁아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것처럼, 원만하던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관계가 갈등을 빚는 관계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부모는 어린 자식이 안정된 삶을 확립할 때까지 조언하고 경제적으로도 지원을 하였고, 자식은 부모의 노후를 책임졌습니다. 하지만 기대여명이 길어진 만큼 부모 역시 스스로를 챙겨야 할 부분이 늘어나 자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만은 없게 되었고, 자식 역시 스스로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일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족의 형태 역시 농경사회에서는 적합하던 대가족제도가 산업사회에 적합한 핵가족제도로 변하게 되면서 자식들이 장성함에 따라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처럼 부모 역시 나이가 들면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독립적으로 생활하던 부모가 언제까지나 독립적인 삶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나이 듦에 따라 건강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결국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도래합니다. 필자 역시 최근 들어 느끼는 바입니다만, 나이가 들면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됩니다. 처음에는 신경을 써서 몸을 움직이면 문제가 없지만 점차 신경을 써도 넘어지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순간이 언제인가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결국은 누구나 당하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넘어지면 골절을 비롯한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 서울 시내에서도 싱크홀이 자주 발생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만,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발밑의 땅이 꺼지는 일에 비유하였습니다. 병을 앓아서 갑자기 생길 수도 있지만, 조금씩 일어나는 노화현상으로 인해서도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대비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의학과 공중보건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전보다 더 건강하게, 더 오래, 더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발밑의 땅이 꺼지는 일을 겪는 시기를 늦춰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명제에는 변화가 없는 셈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고민은 예나 지금이나 꼭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이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즉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방식을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잃어가는 것을 수용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잃어가는 것에 대하여 분노만 하다 보면 삶이 괴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에서 기쁨을 찾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편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혹은 사회적 약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하여 구빈원을 설치하였습니다. 구빈원 가운데는 과연 이런 시설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곳도 있었던 것을 보면 후자에 가까운 개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20세기 중반에는 공적 개념의 부조에 해당하는 구빈원과는 달리 사적 개념의 부조 혹은 사업적 측면을 고려한 요양원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구빈원에서 병원으로 집중되는 환자들을 분산시키기 위한 정책적 배려가 곁들여지면서 요양원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요양시설이 먼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요양병원으로 환자가 이동하는 현상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보건당국이 주목하고 있기도 합니다.

 

요양원이 난립하면서 환자를 묶어놓는다거나, 향정신성 약물을 과도하게 처방하는 요양원이 문제가 되고, 환자의 안전에 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 화재로 환자들이 생명을 잃는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살고 있는 곳 가까이에 요양원이 많이 들어서고 있음에도 노인들은 여전히 가족들 가까이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기를 희망하는 경향이 있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족들이 충분하게 돌볼 수 없는 처지라면 어쩔 수 없이 요양원을 선택해야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요양원에 이어 등장한 어시스티드 리빙시설은-굳이 우리말로 번역을 하자면 생활지원시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독립주거시설과 요양원의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시설로서 거주민이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요양원과는 달리 서비스 제공자가 거주민의 삶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거주민의 독립적인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1991년에 뉴욕주 북부의 작은 도시 베를린에서 빌 토머스라는 젊은 의사가 주도하여 요양원 운영에 있어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였다고 합니다. 가정의학 전문의 갓 딴 토머스는 무료함, 의로움, 무력감 등 ‘요양원에 존재하는 세 가지 역병’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요양원에 살아있는 생명을 들이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요양원의 모든 방에 초록빛 식물을 들이고, 잔디밭 대신에 채소와 꽃을 심은 정원을 만들고, 개, 고양이, 앵무새와 같은 동물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결과는 놀라웠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를 정도로 치매가 심한 노인들마저도 더 의미 있고, 기쁘고, 만족스러운 삶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삶을 정리하는 단계에 이르면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말기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역시 내려놓음에 대한 관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합니다. 나이든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혁신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노화나 질병으로 인해 심신의 능력이 쇠약해져 가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면 종종 순수한 의학적 충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환자나 가족들 역시 변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90세가 넘어 거동이 불편한 분이 슬관절 치환술을 받고 대장암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적극적 치료가 환자의 삶의 질을 확실하게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시술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술로 인하여 제한받게 되는 삶의 부분도 충분히 고려가 되었을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잘 죽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죽는 기술, 즉 아르스 모리엔디(ars moriendi)를 익힐 필요가 있겠습니다. 말기 암환자에서 호스피스치료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호스피스를 선택한 환자는 삶의 마지막을 가족들과 보낼 수 있으며, 오히려 적극적 치료에 매달린 환자에 비하여 더 오래 살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평소에 마지막 순간에서의 치료방향에 관한 결정을 미리 내려두는 것도 의료진이나 가족들 모두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길입니다. 삶의 마지막 단계를 완전하게 제어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름대로 정한 기준을 만들고 지켜나가려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자는 나름대로 판단하기에 가치 있게 삶을 마무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고하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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