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펜 공부법
아이카와 히데키 지음, 이연승 옮김 / 쌤앤파커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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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고객만족도 순위를 발표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학원 고객 만족도까지도 측정하는 모양입니다. 일본 오리콘 차트 ‘학원 고객 만족도’ 부분에서 6년 연속 1위를 기록한 입시학원, 와세다 학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파란펜 공부법’은 비밀이라기보다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학습법이라고 합니다. 파란펜 공부법은 입시를 넘어 직장인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하는데, 와세다 학원의 창립자 아이카와 히데키가 <파란펜 공부법>에서 그 비밀을 설명했대서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오직 파란펜 한 자루와 노트 한 권이 비밀의 핵심인 파란펜 공부법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았다고 합니다. 실험내용은 검정, 파랑, 빨강 세 가지 색으로 각각 알파벳 20자를 써서 1분 안에 얼마나 많이 외울 수 있는가를 보았는데, 70퍼센트의 피실험자가 파란펜을 사용했을 때 가장 많이 외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실험의 문제는 이미 파란펜을 사용하고 있는 와세다학원의 학습법이 세상에 알려져 있기 때문에 피실험자들에게는 이미 파란펜의 우수성이 각인되어 심리적으로 강화된 상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실제로 저자는 파란펜 암기법을 응용하여 적, 녹, 청 삼색 펜을 구분하여 쓰는 법으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고백하는 것처럼 파란펜 학습법을 개발하게 된 동기는 단순했다고 합니다. ‘파란색은 안정감을 준다. 마음이 안정되면 집중력도 향상될 것이다. 그러니 이색으로 써보면 어떨까?(52쪽)’하는데 생각이 미쳤고, 학원생들에게 권했던 것으로, 당시만 해도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파란펜으로 공부하여 입시에서 성공하였다는 학생들이 나오면서 입소문을 타고 확산된 것이라고 하니, 일종의 마술과 같은 심리효과를 사용한 셈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60년대에도 이미 눈으로 보면서, 손으로는 적고 동시에 소리 내어 읽으라는 학습법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연필을 사용하거나 파란 잉크를 사용하였고, 종이는 시험지를 사용했는데, 누군가와 비교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효과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오래 전부터 학원가에 알려져 있던 학습법을 다만 ‘파란펜으로’ 바꾸어 본 다음에 입시에 성공한 학생들의 성공담을 입혀 심리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강의를 하는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받아 적을 것으로 주문합니다. 하지만 요사이 저는 강의하는 사람이 말하는 내용을 듣는데 집중하고 따로 받아 적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받아 적는 데 몰두하다보면 강의한 사람이 말한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파란펜 공부법’이라는 표지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는 ‘빨간펜 공부법’은 안될까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빨간펜으로 첨삭지도를 한다는 학습지가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저자는 빨간펜은 적절치 못하다고 설명합니다. 파란색은 대뇌의 시상하부를 자극하여 세로토닌을 분비하게 하는데, 세로토닌은 인간에게 행복감과 안정감을 주는 효과를 나타냅니다. 반면 빨간색은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시키는데, 이는 흥분작용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고조된 기분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빨간펜으로만 적혀 있는 내용을 읽게 되면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같은 조건이라면 파란펜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만, 결국 공부의 핵심은 공부에 쏟는 시간의 양과, 공부하는 시간 동안 얼마나 집중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입시와 같은 경쟁이 필연적인 상황에서 모든 이들이 파란펜을 사용하게 된다면 파란펜의 신화는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는 정말 빨간펜의 신화가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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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기억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9
윤이형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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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의 『개인적 기억』은 ‘기억’을 주제로 한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흔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녀가 좋은 관계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는 남자와 가장 마지막 일만 기억하는 여자가 만났을 때도 좋은 관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개인적 기억』에서 만난 두 남녀는 결국 헤어지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 기억』의 중심에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 http://blog.yes24.com/document/6680738, 들어 있는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가 있습니다. 푸네스는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얼룩말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되면서부터 과거의 기억이 모두 되살아났을 뿐 아니라 한번 보고 들은 것은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개인적 기억』의 주인공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76657』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89206』처럼 기억의 초능력을 타고 난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소재로 사용하여 기억의 의미를 새기는 중편을 만들어낸 작가의 기획이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네가 47살이 되던 해 초능력을 가진 아이를 두었다는 것만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나는 장례식을 치루고 나서 문득 헤어진 그녀가 읽어주었던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리고 필사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민음사에서 나온 1판 31쇄라고 합니다. 제가 읽었던 것은 2판 1쇄였습니다. 내가 과잉기억증후군으로 진단받는 것은 열한 살이 되던 2022년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고, 당시 공식으로 인정된 과잉기억증후군 환자는 전세계적으로 51명이라고 합니다. 스물다섯 살 때는 게스트하우스 스몰월드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은유와의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은유를 만나게 되면서 생긴 고민은 그녀의 장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호감을 느끼게 된 이성들의 단점은 그녀의 고유한 모양으로 새겨진 상처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장점의 경우는 예전에 알던 사람들의 비슷한 면모가 동의어사전을 펼쳐놓은 듯 주르르 떠오르는 바람에 눈깜박할 사이에 그녀의 장점을 특징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기억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징 없음을 사랑하면 안되나보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듣게 된 은유는 자신은 어떤 관계이든 오직 마지막만 기억하는 것이 문제라고 고백합니다. 즉, 기억이 보관되지 않고 휘발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관계의 끝은 헤어짐으로 인한 상처만 기억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는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유가 가진 기억의 문제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17429』의 주인공은 전쟁 중에 뇌를 다친 뒤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즉 기억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해마가 손상을 입은 것입니다.

 

어떻든 스몰월드를 재활치료의 장소로 사용하던 내가 은유를 만나고서 다시 치료를 시작하는데, 새로 먹기 시작한 약물은 기억을 사라지게 만드는 효과를 나타냅니다. “은유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를 사랑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불필요한 과거를 망각이라는 순리에 맞기고, 본래 그것들이 가야 했던 곳으로 돌려놓고 싶었다(119쪽)”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치료를 시작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렇듯 마음을 썼음에도 두 사람은 왜 헤어졌을까요? 내 이름은 지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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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부씬 투이 지음, 배양수 옮김 / 대원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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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다녀온 하롱베이, 앙코르와트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롱베이와 하노이를 잇는 짧은 여행이라서 베트남의 속살까지 들여다 본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베트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두루 찾아서 읽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와 있는 책들이 대부분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것들이 많고 베트남의 진면목을 소개하는 책들은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의 저자 부썬투이씨는 연구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머무는 동안에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뒤로 베트남을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이 늘고 있음에도 베트남의 진면목을 소개하는 책자가 없음을 발견하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얻기 힘든 베트남에 관한 정보를 일정 부분 채워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저자가 요약한 이 책의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에서는 베트남의 자연, 사람, 사회, 문화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았고 2,3장에서는 가정과 사회생활에서 볼 수 있는 베트남인의 풍속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는 베트남인의 대표적인 성격을, 5장에서는 베트남인의 열 가지 관습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베트남에서 사업을 원하는 기업인들에게 필요한 안내 자료를 제공하였습니다.”

 

저자는 베트남의 자연과 문화, 역사 등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잡 은 이후로 끝없이 외침이 이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표명하기 보다는 그들이 베트남 사회와 베트남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실제로 베트남에 있던 한국군이 가장 잔인했다. 한국군이 지나갔던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지굼도 학살 광경을 회상할 때 전율한다. 베트남 참전 이후에 한국군은 베트남 여성과의 사이에 수천 명의 혼혈아를 남겨 놓았는데, 그중 일부 모자는 한국에서 남편 및 아버지와 재회했다. 베트남인은 적개심을 갖기보다 화합을 좋아한다. 아마도 오늘날에는 한국에 대해 한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 혹은 베트남 주민을 학살한 한국군에게 복수할 방법을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45쪽)”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를 맺는 과정에서 베트남전쟁 중에 한국군의 잘 못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전투 중에 벌어진 상황에 대하여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만, 그래도 정부 차원에서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베트남의 자연환경은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경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도록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부락단위로 구성되는 공동체에 의지하는 경향이 커서 법도를 따지기에 앞서 예를 중시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넉넉하고, 재치있고 사려깊은 것은 이러한 환경적, 문화적 요인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베트남 사람들의 의식주에 관한 생각들이나, 관혼상제와 같은 기본적인 삶에 관하여 사진을 곁들여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어 베트남사람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마침 제가 상을 치루고 있는 중이라서인지 상례에 관심이 쏠리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베트남에 갔을 때, 막 모내기를 하고 있는 논에서 무덤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와는 분명 다른 장례문화가 있나보다 싶었습니다. 저자는 베트남의 장례문화에 영향을 미친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중국 등의 장례문화도 소개하면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전통장례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접대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였던 것 같습니다. 가난한 경우에는 마을에서 빚을 얻어서라도 대접을 해야 했다고 하니 상을 당하게 되면 장례를 치를 걱정이 앞섰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외국인이 지켜야 할 예절이라고 제목을 정하였지만, 사실은 베트남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미리 알게 되면 실수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업 차 방문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는 경우에도 베트남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지켜야 하는 바를 잘 인식한다면 민간외교사절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부썬투이 지음

배양수 옮김

272쪽

2002년 1월 31일

대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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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하지 말고 선점하라 - 나는 어떻게 1등 프랜차이즈를 만드는가
강훈 지음 / 다산3.0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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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운 좋게 1등을 차지한 친구와는 달리 꾸준하게 1등을 유지하는 친구는 뭔가 남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만이 가지고 있는 그 특징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따라하려고 해봅니다. 사람마다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을 따라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그래도 잘 따라하다가 보면 2등은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코 1등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그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친구의 특징을 그 친구만큼 완벽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친구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그 친구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전략을 짜내서 성실하게 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날 그 친구 위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하지 말고 선점하라>는 바로 경영에서 1등을 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우리에게도 이미 친숙해진 토종 커피브랜드 할리스를 만들고, 우리 주변에서 카페베네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최근에는 생뚱맞아 보이는 망고식스 브랜드를 개발하여 국내시장은 물론 중국 그리고 미국에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는 강훈씨의 성공스토리를 담았습니다. 사실 망고라는 열대과일이 우리와 친숙해진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해 캄보디아에 갔을 때 지천으로 널려 있는 망고를 실컷 먹으면서 달착지근한 과즙이 꽤나 중독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꽃보다 할배에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망고 노래를 부르다시피해서 뇌리에 각인되다시피 한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이 분이 망고노래를 부르는 것 역시 간접광고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년 전에 스타벅스의 창시자이며 잠시 떠난 사이에 경영에 어려워진 스타벅스를 구하기 위하여 DEO 자리에 다시 돌아왔던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온 워드; http://blog.joins.com/yang412/12171970>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역시 1등을 하는 사람은 남다른 면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쓴 강훈씨는 스타벅스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건 입지전적인 경영인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비즈니스를 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혁신이라는 화두는 어느 영역에서도 먹힐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무언가 울림이 있는 책읽기였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따라하지 말로 선점하라>는 me too 전략으로 2등에 만족하기보다는 남들과는 차별화된 전략을 선제적으로 적용하여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저자의 방식을 통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접근방식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배우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예를 들면, 망고를 주제로 한 디저트 카페라는 독특한 구상을 완성하고, 브랜드를 어떤 방식으로 홍보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드라마 등에서 간접광고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들고 나왔던 것이 주효했다는 사실들을 실제 사례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확용하였다는 <신사의 품격>이나, <상속자들>이라는 드라마는 저도 본방을 사수해가면서 지켜보았던 것인데, 간접광고가 나온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을 뿐이며, 그 광고대상의 물건을 구매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저자가 제작지원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팀에 접근하여 원하는 물품을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이 자연스럽게 알리는 간접광고 기법을 적용했던 것이 주효해서 사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내용들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독자들, 특히 자신만의 영업아이템을 찾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참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마음에 새길 것은 저자의 방식대로 따라하면 그리 큰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마 저자의 이러한 전략은 꼭 디저트 카페와 같은 외식산업메만 적용되는 사항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읽기를 통하여 저자만은 특장을 붙들어 자신의 것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이유가 분명해질 것입니다.

 

따라하지 말고 선점하라

강훈 지음

224쪽

2015년 6월 25일

다산3.0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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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
버나드 루이스.분치 엘리스 처칠 지음, 서정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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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책읽기도 인연 따라 가는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마그레브지역을 여행하면서 이슬람과 유대교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100년의 기록>은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입니다. 여기 더하여 이 책을 번역하신 서정민교수님을 오래 전에 만났던 인연을 가지고 있어, 번역하신 책을 통하여 서교수님을 반갑게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100년의 기록>은 현존하는 최고의 중동역사학자인 버나드 루이스교수의 삶과 학문의 세계를 집대성한 기록입니다. 1916년에 태어났으니 이제 11 개월 정도 지나면 한 세기를 살아낸 셈이 됩니다. 들어가는 말에서도 짚고 있습니다만, 중동의 역사를 연구하려면, 반드시 이슬람의 기원과 경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니다. 저자는 학창시절부터 이미 쿠란과 선지자 무함마드의 전기를 비롯하여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읽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유대인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보니 [북소리]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는 <메카로 가는 길; http://blog.joins.com/yang412/13596903>을 쓴 저명한 무슬림 작가 무함마드 아사드 역시 유대인이었습니다.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은 가톨릭과 함께 같은 뿌리를 가진 형제 사이라고 합니다. 중세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한 이슬람제국에서는 유대인들과 공존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성취를 이루었던 것이나, 사회적 여건이 변하면 서로 개종을 하기도 하는 등 종교적 갈등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루이스교수는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 자신이 역사학자이며 문명사에 관심이 있다고 밝히면서 현재 우리는 거대한 힘들이 역사를 위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역사란 집단의 기억인데 역사의 부재는 기억상실증이고 왜곡된 역사는 신경증을 일으킨다고 비유합니다. 따라서 역사학자는 ‘도덕적이고 직업적인 책임감을 바탕으로 과거의 진실을 정확히 찾아내고, 파악한 그대로를 제시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스스로 이런 책무를 다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해왔다고 고백합니다.

 

유대인들의 저서를 보면 자신의 뿌리를 거슬러 밝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가와 외가의 조부모에서 시작해서 부모님들이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신이 출생하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성장과정을 정리하여 자신의 학문적 성취가 어떠한 배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읽는 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자의 학문적 배경에는 어렸을 적부터 몸에 밴 책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눈여겨 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나는 어렸을 적에 어떤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책을 소유하면 그것을 읽는 기쁨이 배가 되고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책을 읽을 수 있으며, 도서관이나 법적 소유권자에게 번거롭게 돌려줄 필요가 없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특정 구절에 대한 감상과 이해가 더욱 쉬워진다.(27쪽)” 그래서 저자는 책을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언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과정에서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오페라를 즐겨 부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어에도 익숙해 있었으며, 유대 젊은이라면 누구나 열세 살에 치루는 성년식 바르미츠바행사를 위하여 히브리어를 배웠습니다. 유대의 성년식 전통은 기원전 76년 즉위한 하스모니안 왕조의 알렉산드라여왕이 유대민족의 내부단결을 도모하고자 모든 남자들에 대한 의무교육을 시작하였는데, 이로서 유대인 가장들 사이에서는 문맹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유대인들은 세 살부터 히브리어를 배워 율법을 암기하였고, 성년식에서는 모세오경 가운데 한 편을 모조리 암송해야 했으며 성인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토대로 준비한 강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교육방식은 유대민족의 탁월한 지적능력을 향상시켰다고 합니다.(홍익히 지음, 유대인 이야기 161-162쪽, 행성:B잎새, 2013년; http://blog.joins.com/yang412/13617145)

 

결국 저자는 런던대학교에 입학하여 역사학, 특히 중동역사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이집트를 거쳐 팔레스타인, 시리아 그리고 터키를 여행하는 행운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대학원과정을 마칠 무렵 터진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저자는 정보부대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중동에 파견되어 근무하면서 정보를 분석하는 작업에 참여했는데, 이 무렵에는 러시아어, 아랍어, 터키어, 알바니아어를 비롯하여 다양한 언어를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언어적 능력은 역사학자라면 필수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원전자료를 독해할 수 있기 때문에 중역으로 인한 원전의 왜곡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춘 셈입니다. 결국 1949년에는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오스만제국의 기록보관소를 방문하여 자료를 살펴볼 기회까지 얻어 중동역사의 권위를 세울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기록보관소는 수 세기 동안 유지된 오스만제국의 엄청난 분량의 자료가 쌓여 있다고 합니다. 1955년에는 UCLA에서 객원교수로 근무하게 되었고, 그 무렵부터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모스크바 등지에서 열리는 이슬람관련 학회의 초청으로 무슬림국가들을 방문하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이 책을 만나는 기회가 있다면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라는 제목의 장을 꼼꼼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필자로서는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저자의 글제목을 보면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저자의 학생들은 다양한 이유로 역사를 공부한다고 말했다는데, 저자는 그들에게 기본적으로 역사가로서 정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역사연구 역시 과학적으로 상당히 진화했으며, 무분멸한 자유보다는 검증 가능한 과학적 방법을 선호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진실은 정답이 하나인 수학과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도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역사는 과학이 아니며 불완전하고 단편적이며, 일치하지 않거나 때로는 모순되는 증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명확하지 않은 인류의 삶과 지식에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저자는 믿고 있습니다.

 

저자는 정직한 역사 연구에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가설은 분명한 목적과 인식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둘째, 학자는 증거에 따라 자신의 가설을 어떤 단계에서라도 수정하거나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중요한 목적과 용도의 하나는 정당화라고 합니다(202쪽). 과거를 이용하여 현재를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학자 역시 인간인지라 다른 사람들처럼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피해야 할 일이지만, 특정 이념이나 권력에 대한 충성심과 편견이 학자의 역사 인식과 표현을 왜곡할 수 있는데, 진솔한 역사가는 이런 위험을 잘 알고 고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1974년 저자는 결혼생활을 청산하면서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직장은 물론 조국까지도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뉴저지의 프리스턴대학교이 근동학과 학과장직과 프린스턴 고등학술연구소의 연구원을 겸직할 수 있는 제안을 받은 것입니다.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면서 미국 정부의 중동정책에 관하여 자문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합니다. 특히 이집트와 이스라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사이의 평화협정이 타결되는 과정이 요약된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최근에는 이슬람 과격주의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저자는 처녀작인 <이스마일파의 기원>에서 이스마일파의 아사신(assassin)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이스마일파는 주류 수니파에서 떨어져 나온 시아파의 과격한 분파로 이단 중의 이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공격목표는 십자군과 같은 외부 세력이 아니라 이슬람권의 지배 엘리트와 지배이념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중세의 아시신에게 공격을 당한 피해자들은 이슬람세계의 통치자들, 군주들, 장관들, 장국들, 그리고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었으며, 이들은 항상 단검을 무기로 사용하였고, 공격 대상을 쓰러뜨린 후에도 자신은 도주하지 않았으며, 아시신을 보낸 세력 역시 아사신을 구하기 위한 구출작전도 없었다고 합니다. 임무를 끝낸 아사신은 살아남는 것을 불명예로 여겼다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늘날의 자살폭탄테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민간인을 원격조종하여 무차별적으로 살상을 하고 인질납치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오늘날의 테러리스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합니다. 이슬람의 교리, 전통, 법은 이슬람의 이름으로 테러를 감행하는 사람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슬람법은 무차별적인 민간인 살해 혹은 협박을 위한 인질납치와 같은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한다고 합니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문명의 충돌의 대표적인 사례는 8세기 이베리아반도에 이슬람제국이 건설된 것과, 오스만 투르크제국이 보스포루스해협을 건너 발칸반도를 점령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독특한 문명양식을 만들어냈고, 그 유적들이 현재까지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에서는 거대한 이슬람사원의 일부를 뜯어내고 가톨릭성당이 자리 잡은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18세기 무렵에 작성된 에스파냐 주재 모로코대사관에서 작성된 문서에는 ‘알라께서 이곳을 이슬람의 품으로 빨리 회복하시길’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에도 코르도바 메스키타를 방문하는 이슬람신자는 ‘한때 이슬람 사원이었던 이 신성한 곳에 오니, 오후 기도를 드리고 싶네요(339쪽)“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과거의 영광을 회고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이슬람 강경파들을 ‘이슬람 원리주의'로 칭하는 관행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지적도 새롭습니다. ’원리주의‘라는 용어의 근원은 1910년 무렵 일부 개신교 교회들이 주류 교회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만든 <원리들: 진실에 대한 증언>이라는 팸플릿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유주의 신학과 성경에 대한 비판을 배격했다는 것입니다. 즉 성서는 문자 그대로 신성함을 가지며 거기에는 오류가 없다는 입장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 배경을 가진 원리주의가 1980년대 들어 특정 이슬람단체를 묘사하는데 동원되었는데, 이들 무슬림단체는 미국의 개신교 원리주의자들과 하등 유사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100년의 기록>은 무슬림과 유대인에 대한 시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서구적인 일방적인 시각으로 중동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양쪽을 고루 보면서 학문적 활동을 해온 루이스 교수의 학문적 배경이 잘 녹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방대한 분량을 우리말로 옮긴 서정민교수님은 “<100년의 기록>은 루이스 교수의 학문적 삶을 모두 담아낸 책이다. 또 100년에 가까운 삶을 정리하며 집필한 개인적 회고록의 성격도 갖고 있다. 연구를 하면서 그가 직면한 학문적 고민과 논쟁에 대해서도 솔직히 담아냈다. 이혼이라는 개인사도 여과 없이 기술했고, 노년에 시작한 새로운 사랑에 대해서도 부끄럼 없이 진솔하게 밝혔다.(12쪽)”라고 이 책의 성격을 요약했습니다.

 

이 책을 소개하신 서정민교수님은 이집트 카이로아메리칸대학교의 정치학과를 거쳐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중앙일보 카이로 특파원을 지냈습니다. 서정민교수님이 카이로에서 올리는 따끈따끈한 중동소식을 블로그에서 읽으면서 교감을 하다가 일시 귀국한 서교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안내로 한남동에 있는 이슬람중앙성원을 처음 방문한 작은 인연의 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그의 노고가 밴 번역서 <100년의 기록>을 만나면서 서정민교수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갑습니다.

100년의 기록

버나드 루이스와 분치 엘리스 지음

서정민 옮김

512쪽

2015년 6월 18일

시공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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