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는 엄마만이 꿈꾸는 아이를 키운다
김미영 지음 / 알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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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뭐하지만 제 나이쯤 되면 자기계발서 읽기보다는 자기계발서를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직은 빠른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꿈을 찾는 엄마만이 꿈꾸는 아이를 키운다>는 현직 경찰인 저자가 직장과 가정 모두를 지키면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꿀 수 있었다는 성공담을 통하여 같은 고민을 하는 여성들을 격려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문제를 들여다본다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를 읽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과연 하고 있는 모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치원선생께서는 양 손에 붓을 들고 처음과 끝에서 글을 쓰기 시작해서 가운데서 마무리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같습니다. 우리말로 다중작업이라고 하는 멀티태스킹도 이 수준에 이르면 경이에 가깝다 하겠습니다만, 최치원선생과 같은 초능력자가 아닌 범인(凡人)이 다중작업을 수행하는 경우 어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중작업의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누구나 다중작업을 할 수 있다고 격려(?)해서 범인들을 헷갈리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범인들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욕심을 내지 않는 현명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중작업의 초능력자라는 분들을 보면 결국은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초능력을 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주변에 계신 분들 역시 초능력을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동기가 강한 분에게 양보하는 바람에 자신이 초능력자가 될 기회를 잃고 마는 것은 아닐까요? 초능력을 발휘하는 아내를 적극 지원하는 것을 보면 저자의 부군께서는 참 좋은 남편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다스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분 역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내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하여 자신의 꿈을 접은 것은 아닐까요?

 

저자 역시 다중작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가진 여성들의 고민을 이렇게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모두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 둘째,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두 가지를 선택하라. 셋째, 선택한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라.(137-138쪽)’ 이런 입장을 보면 전체의 맥락에서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계발서를 읽어보면 나름대로의 독특한 무엇을 하나 정도는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놓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잘 알려진 다중작업의 달인들이 쓴 자기계발서의 핵심을 인용하고 자신의 견해를 붙여두고 있는데, 특히 자기계발서를 중심으로 한 저자의 책읽기의 성향 때문으로 보입니다.

 

저자의 독서성향을 내비친 대목이 나옵니다. “도서관에 들어가 출간된 지 20년도 넘은 소설책들이 꽂혀있는 코너로 접어들면, 고서만이 가진 독특한 냄새가 풍겼다. 나는 그 향기가 좋아 늘 그곳을 지나쳤다. 내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든 건 자기계발서와 에세이가 가득한 코너였다.(199쪽)” 편식적 책읽기를 하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저는 오래된 책의 묵은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고전읽기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전은 자기계발서보다는 정신적 자양분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같은 고민을 하는 직장여성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찰이라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여경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저자의 기획의도대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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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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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으면서 지니가 ‘뿅’하고 나타나고, 양탄자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런 세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판타지물이 인기몰이를 하는 것을 보면 환상세계를 동경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저승사자와 내기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 <에프라시압 이야기; >를 쓴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의 첫 소설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를 읽었습니다. 17세기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모험소설이라고 해서 관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뷘야민이라는 젊은이인데, 주인공이 비교적 늦게 등장하기 때문에 엉뚱한 인물이 주인공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1681년의 어느 날 콘스탄티노플 뵌야민의 외종조부 아랍 이흐산의 전함이 할리치만으로 들어오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포탄과 총탄에 망신창이가 되어 힘겹게 항해해온 전함은 조선소 부두에 접근하려는 찰나 용골이 바다 밑바닥에 닿아 좌초하고 맙니다. 마치 오스만 투르크의 쇠퇴를 암시하듯 말입니다. 오스만 투르크는 슐레이만1세(1520-1566년)가 통치하던 시기가 황금기였다.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헝가리를 빼앗고, 트리폴리를 병합했으며, 남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렀고, 동부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슐레이만1세에 이어 술탄에 오른 무라드3세 통치시기에도 카프카스를 점령하고, 이란으로부터 아제르바이잔을 빼앗는 등 영토를 넓혔지만, 오스만 투르크는 쇠퇴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는 유럽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민족국가들이 오스만을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던 시기였습니다.

 

외종조부 아랍 이흐산이 귀국한 뒤에 뷘야민은 아버지 우준 이흐산 에펜디가 건네주는 세계지도를 들고 모험을 떠납니다. 우준 이흐산 에펜디는 꿈을 통하여 세계를 발견하려고 했는데, 이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들은 세상에 직접 부딪혀보라고 권한 것입니다. 뷘야민이 죽어서 매장됐다가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땅굴 부대장 와르다페트를 따라나선 뷘야민은 소피아 공격에 참가합니다. 공격은 지상과 지하로 나뉘어 진행되었지만, 핵심 작전은 땅굴을 파서 성안으로 잠입한 다음 붙잡혀 있는 첩자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엮여 복잡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주제는 오스만 제국을 움직인 핵심세력은 세상으로부터 수집하는 정보를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정보담당부서가 결국은 술탄의 위세보다도 더 커지더라는 점과, 당시 이스탄불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술탄에게 정보의 중요성을 일깨운 자가 프랑스의 첩자였다는 것입니다. 17세기 후반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14세가 통치하던 유럽의 강자였습니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는 이미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정보팀이 허술할 리가 없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뷘야민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 소피아에서 구하려했던 첩자로부터 건네받은 동전은 자신은 물론 아버지까지 화가 미쳐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를 찾아나선 뷘야민이 결국은 정보기관의 수장 에브레헤를 만나게 되고, 정보기관에서 일하게 되지만, 곁가지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고 줄기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듯 하여 핵심이 손에 잡히지 않는 듯합니다. 지나치게 환상적 요소를 뒤쫓다 보니 정작 파악해야 할 핵심요소를 놓친 책읽기가 되고 말았던 것 같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작가는 우준 이흐산 에펜디가 뷘야민에게 남긴 편지내용을 공개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와 장자의 호접몽을 서로 엮어 존재의 의미를 새기고 있습니다만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어서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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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샘터 우리문화 톺아보기 1
류정월 지음 / 샘터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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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다룬 책을 고르다 발견한 책입니다. ‘조선시대의 우스개와 한국인의 유머’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만큼 우리의 핏속에 녹아 있는 웃음의 비밀을 붙들어 볼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물론 <고금소총>과 같은 선조들의 유머감각을 다룬 책이 있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지만,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는 단순하게 선조들이 즐기던 우스개를 모아놓은 수준이 아니라, 선조들의 우스개에 녹아 있는 웃음코드가 무엇인지 심층분석하고 있는 점이 특별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조선시대에 한문으로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온, 재담, 농담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전문적으로는 소담, 소화, 패설 등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의 ‘옛날 우스개’들을 통하여 그 옛날에 우스개를 즐긴 사람들이 누구고, 웃긴 사람들은 누구이며, 옛날 우스개에 숨어 있는 웃음의 정체를 파악하여 제대로 웃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우스개에 따라서는 다분히 성적인 내용, 언젠가 EDPS라고 부르던, 이 포함되며 그와 같은 우스개가 널리 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도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웃음이 분석적으로 이해되어 웃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왜 웃어야 하는지 정도는 알아아 하지 싶습니다.

 

사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개그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청중들이 왜 웃는지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웃음 코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옛날 우스개를 읽다보면 배꼽을 잡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슬그머니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저 역시 옛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서삼경과 같이 중국고전을 바탕으로 한 우스개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왜 웃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저자는 웃음을 분석하면서 웃음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스개가 성공적으로 소통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모든 우스개는 ‘조건적’이라는 테드 코언의 명제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웃음의 효과에 관한 이론도 동원하는데, ‘기분 좋은 술꾼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자주 웃고 더 오래 산다(199쪽)’라는 영국의 심리학자 조프 로우의 연구결과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창기에 빠진 선비에게 아내가 그 이유를 묻자 ‘부인으로 말하면 서로 공경하고 서로 별다른 뜻이 있으므로 존귀하여 함부로 욕정을 풀 수 없으나, 창기에 이르러서는 정에 맡겨 욕심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음탕한 재주에 있어서도 온갖 재미를 다 볼 수 있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내는 내가 언제 존경해 달랬느냐고 남편을 어지러이 때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성과 관련된 우스개가 만연했던 것은 일상에 성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이 억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중톈의 해석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이삼십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모임에서도 EDPS를 자연스럽게 화제에 오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여자선배들이 주도하기도 해서 공연히 시선을 어디 두기가 민망한 적도 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이런 상황을 별로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성희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탓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어쩌면 성에 대한 제약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옛날 우스개에는 탐욕과 어리석음을 꼬집는 진지한 것들도 있고, 한번 듣고는 잊어버릴 만한 음담패설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소중하다고 하겠습니다. 그 우스개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경직된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 삶을 풍요롭게 만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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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농촌총각의 투르크 원정기
안효원 지음 / 이야기쟁이낙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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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터키여행기가 넘쳐나는 것을 보면 터키를 다녀온 분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분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 터키를 다녀왔을 터이나, 제 경우는 지난해 다녀왔던 스페인여행의 연장선상에 이유가 있습니다. 이베리아반도에서는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이 공존한 시기가 있었고, 그 결과로 학문과 예술분야에서 괄목할 성과를 남겼습니다.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한 인근지역은 고래로 다양한 문명이 접촉하던 지역으로 많은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는 것 때문에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안효원님의 <감사합니다> 역시 터키여행을 준비하면서 읽게 된 책입니다. ‘미스 터키를 만나 프러포즈라도 해야겠다는 원대한 꿈을 내비치는 것으로 얼버무렸지만, 터키에서 찾아간 곳들을 보면 어쩌면 초기 기독교 유적을 찾아보려는 뜻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현지 사정에 따라 움직이다보니 때로는 안타까운 상황도 벌어지기도 했지만, 느린 여행의 전형을 보는 듯합니다.

 

이스탄블로 입국한 저자는 셀주크, 에페스, 파묵칼레, 얄바츠, 올림포스, 카파도키아, 트라브존, 앙카라, 샤프란볼루를 거쳐 다시 이스탄블로 돌아왔습니다. 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어서인지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한 묘사나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끔은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그대로 적고 있어서 소설을 쓰셔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자유여행을 하시는 분들이 대체적으로 느린 여행을 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저자의 여행방식은 그야말로 느린 여행의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 여행지로 가는 차시간을 맞추기 위한 경우와 같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느지막하게 일어나 그날의 일정을 시작한다거나,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일출이나 일몰을 구경하는 등입니다. 짜여진 일정이 아니라서 상황에 따라서 여행일정을 쉽게 조정하는 것도 부러운 장면의 하나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미리 짜놓은 전체 일정에 따라서 움직이는 편이고, 일정 자체를 빠듯하게 짜는 버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탄불에서 톱카프궁전을 보러 나갔다가 입장시간에 여유가 생기자 인근에 있는 귤하네 공원으로 들어가는 모습 같은 것이 눈길을 끕니다.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나무가 멋있고, 일렬로 선 나무들이 만든 길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길처럼 근사하다. (…)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초겨울인데 나무는 여전히 푸르고, 아침의 기운을 받은 공원은 더없이 맑다. 나무들 사이로 펴지는 햇살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다.(19쪽)’라고 느낌을 적었습니다. 같은 공원에 가본다면 저런 것들이 눈에 들어올까 싶습니다. 아니 눈에 들어온다고 해도 저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여행지에서 만난 유적들에 대한 글을 쓸 때, 유적의 역사를 중심으로 정리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분은 자신의 느낌을 잘 요약해서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귤하네 공원에 대한 글의 끝에 붙인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주소를 잘 못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스만 터키의 세밀화에 얽힌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톱카프궁전에서 인용한 <내이름은 빨강>은 적절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여행기를 읽을 때마다 유심히 챙겨보는 것 중 하나가, 사진입니다. <고맙습니다>의 경우는 본문 내용과 잘 연결되는 사진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어 있는데, 역시 아쉬운 점은 설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문 설명을 참조하라는 의미이겠지요...

 

슐레이마니예 자미에서 읽은 ‘기도하는 곳 또한 이렇게 크게 만든 건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마음을 모을 필요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모두의 마음을 모아 모두가 잘사는 삶, 모두가 신을 경배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기도하는 곳이 존재하는 이유이다.(349쪽)’라는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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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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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을 찾다 눈에 띈 단편집입니다. 제목에 이끌렸는데, 작가는 여기 담은 단편들에는 웃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주인공들이 웃는 동안만이라도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웃음은 감염성이 있다고 하던데 읽는 이도 주인공을 따라 웃다가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까요?

 

열 개의 단편을 읽고 나서야 웃음에 관한 저자의 말을 발견했고, 과연 주인공을 따라 웃었던 이야기가 있었나 되짚어 보았지만, 기억에 남은 웃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리뷰를 쓰려면 웃음 사냥에 다시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사냥에 나서기 전에 전체적인 느낌을 먼저 정리해보면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 역시 매년 서너편의 단편을 쓴다고 했는데, 그것들이 모두 귀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지는 분명치 않고, 왜 귀신 이야기를 쓰는지를 밝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등장해서 산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것인데 마치 살아있는 날처럼 적고 있어서 읽다보면 살았을 때 이야기인지, 아니면 죽었을 때 이야기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단편들을 이어서 써내려갔다고 했는데, 그래서 인지 앞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사람이 다시 등장하기도 합니다. ‘영화 오래보기’라는 이벤트 참가기를 다룬 ‘공기 없는 밤’에 마지막 부분에서 알듯 모를 듯한 묘사가 나옵니다. “친구의 관을 들고 화장장까지 걷던 친구들이라면, 저렇게 소파를 들고 길을 걸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영희와 영희가 길을 걷다 소파를 들고 가는 청년들을 만난다면 뭐라고 물어볼까? 관절염을 앓는 영희에게 청년들은 잠시 소파에 앉도록 해주겠지.…(118쪽)”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에서는 카메오로 등장하는 기법을 영화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그 점을 분명하게 해주는 대목은 이렇습니다. “두 번째 영화를 보고 나서야 첫 번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영화를 보고 나니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가 다르게 이해되었다. 그런 식으로 열 편의 영화들이 겹쳐졌다.(119쪽)”

 

어떤 독자는 비극 속에서 웃음을 찾아낼 줄 하는 작가라고 리뷰에 적었습니다만, 비극과 웃음에 관하여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극을 더욱 비극답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웃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에 웃음을 제대로 끼워 넣을 수 있는 작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가 한 꼭지의 웃음을 삽입한 이유일 것입니다. 단편마다 담겨 있는 웃음이 책읽는 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읽은 이들마다의 감성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열편의 단편 가운데 나름 인상에 남는 웃음 코드를 꼽아보았습니다. 첫 번째 작품 ‘어쩌면’은 수학여행길에 버스사고로 죽어 귀신이 된 여학생들이 귀신의 집에 놀러간 장면입니다. “우리들은 귀신의 집에 들어갔어.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이 천장에서 떨어지자 거울과 압정이 소리를 질렀어. 손을 잡고 있떤 연인들이 귀신 인형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면서 깔깔거렸어. 우리는 좀 쪽 팔였어. 가짜 귀신에게 놀란 진짜 귀신이라니. 누가 알아차릴까 봐 우리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어.(24쪽)” 요즈음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만, 이 단편에 등장하는 처녀귀신들을 인간도 놀라지 않는 가짜귀신을 보고 놀라는 순진파인 것 같습니다.

 

표제작품인 ‘웃는동안’에 숨겨둔 웃음코드는 초등학교 6학년생이 엉덩이를 좌우로 비트는 우스꽝스러운 체조를 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해서 교장선생님이 단상으로 불러 올렸는데, 소년은 마이크에 대고 “죄송해요. 체조가 즐거워서가 아니라 조카가 태어나서 웃은 거예요(69쪽)”라고 말해 전교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새로 태어난 조카에게 ‘이 삼촌은 이제부터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 될 거란다’라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늘 웃으면서 살게 되었다는 소년이 깜찍하지 않습니까? 작가가 나머지 작품들에 숨겨둔 웃음코드가 무엇인지 한번 찾아나서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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