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삶이 흐르는 대로 - 영원하지 않은 인생의 항로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해들리 블라호스 지음, 고건녕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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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책일 것 같습니다. 22살이 되던 해 일을 시작한 9년차 간호사인 해들리 블라호스는 외조부가 장의사였던 까닭에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고등학생 시절 친구의 죽음을 겪으면서 예상치 못한 상실의 충격에 혼란을 겪었다고 합니다. 우연히 호스피스 간호를 시작하면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과 임종에 관한 오해와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하여 누리망 사랑방을 마련하고 호스피스 간호사 활동을 통하여 경험한 이야기들을 공유하여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삶이 흐르는 대로>에서는 저자가 호스피스 활동을 통하여 겪은 잊지 못할 열두 명의 환자들의 마지막 삶을 함께 한 과정을 담았다고 합니다. 호스피스(Hospice), 즉 임종간호는 의학적으로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받던 적극적 치료를 중단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한 보살핌을 받는 활동을 말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간호활동과 호스피스 간호활동을 전혀 다른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즉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에서는 회복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주어지는 적극적인 치료적 행위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이미 죽은 사람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을 호스피스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드물지 않게 경험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호스피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저자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간호사가 되어 호스피스 업무를 시작할 때는 일주일 동안 누리망 수업을 통하여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뒤에 현업을 하는 간호사와 업무를 하면서 현장에서 심화교육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듯합니다. 즉 전문적으로 호스피스 업무를 배우는 체계가 아직은 갖추어져 있지 않은 느낌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호스피스 관련 업무에서 완전하게 감을 잡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면서, 교육과정이 짧은 것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 옳은지 모호하다는 생각입니다.


저자가 호스피스 간호를 하면서 목격한 가장 놀라운 순간은 환자들이 세상을 등지는 시간을 스스로 택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샌드라는 마치 죽음을 맞기 전에 딸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여 버티다가 딸이 도착하자마자 세상을 떠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광경 역시 드물지 않게 목격했던 모양입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호스피스 간호사가 하는 역할은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환자를 위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환자들의 곁을 지키는 일, 환자의 근심과 걱정을 달래고 위로하는 일, 환자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일 등입니다.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하여 저자는 환자들로부터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지, 죽음을 앞두고 중요해진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지 등을 듣게 되었고, 이와 같은 대화를 통하여 그녀의 삶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훈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엘리자베스의 경우는 비만을 두려워하여 평생을 운동요법에 매달리면서 인생을 낭비해왔던 것이 가장 후회로 남는다는 이야기를 저자에게 전하여, 식이장애로 삶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저자에게도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시어머니의 사례도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노숙하는 앨버트를 돌보는 과정에서 짚었던 한때 깊이 사랑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깊이 사랑한 모든 것은 우리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321)”라는 대목과 나의 경험에 따르면 삶의 끝자락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삶을 갈무리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은 사람, 사후 세계에 대한 자기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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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의 무희.천 마리 학.호수 을유세계문학전집 39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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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으로 대표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집을 읽었습니다. 다음달 떠나는 일본문학기행에서 다룰 예정인 작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인으로는 2명의 화학상 수상자에 이은 세 번째 노벨상 수상자이며 문학상으로는 처음 받았습니다.


곽형덕은 일본 전후문학과 노벨문학상-현실부정과 아시아와의 연대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가와바타의 노벨문학상 수상(1968)은 일본의 전후의 폐허로부터 일어서 경제 선진국의 일원으로 다시 복귀한시점에서 일본/일본인의 자명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수상연설문 아름다운 일본의 나-그 서설이 때로 국수주의로서의 일본의 미를 강조한 연설로 해석되어 왔지만, 그보다는 현실사회부정이 더욱 강하다고 했습니다. 현실의 추악함을 피해 소설 속에 새로운 이상향을 구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즈의 무희/천 마리 학/호수> 등 야스나리의 작품들을 읽게 된 것도 다음 달로 예정된 일본문학기행에서 다루어진다고 해서입니다. 이즈의 무희(1926), 천 마리 학(1952), 호수(1954) 1950년대의 중반에 발표된 작품들인 까닭에 당대는 물론 오늘 날의 우리네 감각으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있는 것은 일본인 특유의 감성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이즈의 무희>을 읽기 시작하면서 기시감이 느껴졌습니다. “꼬불꼬불한 산길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아마기 고개에 다가왔구나 싶었을 무렵, 삼나무 밀림을 하얗게 물들이며 매서운 속도로 빗발이 산기슭으로부터 나를 뒤쫓아 왔다.(9)”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는 설국의 시작부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야스나리의 작품을 보면 여행을 통하여 얻은 감각적 표현이 눈길을 끌게 만듭니다. <이즈의 무희> 역시 작가가 1918년에 이즈 지방을 여행할 때 유랑극단을 만났던 경험이 녹아있다고 합니다. 작품의 분위기로 보아서 가극단의 막내이자 무희인 가오루와 인연이 이어질 듯 하였지만 무심하게 헤어지는 결말이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면 <천 마리 학>은 꽤나 일본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도를 즐기던 선친의 연인이었던 구리모터 지카코의 초청을 받아 엔가쿠 사의 다실에서 열리는 다도 모임에 참석하게 되는데 지카코는 연인의 아들인 미타니 기쿠지에게 제자 이나무라 유키코를 소개하려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나게 되는데 선친의 여자였던 오타부인과 그녀의 딸 후미코가 다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대목은 다회가 끝난 다음 오타부인과 함께 한 기쿠지가 오타부인과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아마도 오타부인의 적극적인 몸짓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연인의 아들에게서 연인의 모습을 읽은 탓이었을까요? 그렇다고 해서 기쿠지가 선친의 여인을 안은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오타부인은 기쿠지와의 관계를 눈치 챈 딸 후미코의 감시를 피해 다시 기쿠지를 찾아올 정도로 매몰되었다가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딸 후미코와 기쿠지가 인연을 맺기를 바랐던 듯합니다. 이번에는 후미코에게서 오타 부인의 모습을 읽은 기쿠지가 후미코와 관계를 맺게 되는 과정에 이르면 작가의 작품세계가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세 번째 작품 <호수>는 이야기가 두 가닥으로 전개되는 바람에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모모이 긴페이라는 남자 주인공은 여성을 미행하는 취향을 가졌는데, 어느 날 미야코를 미행하다가 그녀가 내던진 손가방을 주워 돌려주려 뒤쫓다가 놓치는 바람에 손가방 안에 들어 있던 20만엔을 발견하고 도망을 치게 됩니다. 도망하는 긴페이와 손가방을 잃어버린 미야코가 각각 보이는 행동을 서술하다가 결말에 이르게 되는데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끝까지 설명되지 않은 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역시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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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1 소설 보다
구소현.권혜영.이주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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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기획물입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2018년에 시작한 기획물 <소설보다:>는 그 계절의 소설을 선정하여 문지상의 후보로 삼고 단행본으로 출간해왔다고 합니다. <소설보다: 가을 2024>를 못찾은 까닭에 읽게 되었습니다만, 꿩 대신 닭이 될지 아니면 닭 대신 꿩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 기획의 특징은 앞서 적은 것처럼 당해 계절에 어울리는 작품을 선정할 뿐 아니라 선정위원이 작가와 나눈 면담의 결과를 수록하여 작품의 배경 등을 소개한다는 점입니다. <소설보다: 가을 2021>은 앞선 계절인 2021년 여름에 선정된 구소현의 시트론 호러, 권혜영의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 이주란의 위해, 3편의 단편과 작가 면담이 담겼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구소현의 시트론 호러입니다. 우선 제목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작가와의 대담에서도 제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없어 섭섭했습니다. 시트론은 히말라야 주변이 원산지인 귤을 닮은 운향과의 과일이라고 합니다. 향료로 사용되지만 과육이 적고 맛도 없어서 먹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과일이 어떤 의미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는지 속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싶습니다.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은 대학의 소설 창작 동아리의 구성원들과 이들을 뒤쫓는 유령 공선입니다. 유령이 등장하다는 점에서 공포스럽거나 괴기한 것도 아닌 것을 보면 제목의 의미가 금세 와 닿지 않습니다. 공선이 주변의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선은 영화 등에서 보는 것처럼 누군가의 눈에 띄거나 사물을 움직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능력이 없는 유령입니다. 그저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히려 유령 10년차인 공선이 사물에 닿지 못하고, 직접 만지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우울감은 물론 사물이나 사람이 그녀를 만질 수 없음에서 오는 우울감으로 서럽고 쓸쓸하고 허무했다는 것인데, 과연 유령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는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녀가 창작 동아리 사람들을 쫓아다는 이유는 그녀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를 읽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공선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상대방의 하자에서 고유한 사랑을 발견하고 고유한 관계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전이 없는 이야기를 읽은 입장에서는 그래서 뭔데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작품, 권혜영의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역시 극적인 반전이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잠을 자다가 갑자기 울리는 화재경보에 깬 적이 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으니 집밖으로 대피하라는 방송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동네는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화재경보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는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화자는 저처럼 오작동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하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계단이 얼마나 되는지 끊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지상층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분명치 않은 상황을 현대인의 삶을 끝모를 계단의 구렁텅이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세 번째 작품, 이주란의 위해있는 듯 없는 듯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는 남들 앞에 나서서 잰 척을 하지 말라는 분위기에서 컸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 수현은 어릴 적부터 할머니에게 조용히 살거라란 말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평소 감정을 숨기고, 참고, 체념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물론 말도 잘하고 똑 부러지게 생긴 요즘의 젊은이들과는 천양지차인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자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대세가 된 요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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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에디션, 양장)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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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추천으로 읽은 책입니다. 원 제목이 <All the Beauty in the World>으로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이란 뜻일 듯한데 우리말로 옮기면 밋밋했을까요? 그래서인지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설명을 달아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형, 톰을 위해라는 헌사에 이어 작가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입사하여 경비 일을 시작하던 날부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러다보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1층과 2층 구조도 소개합니다. 이어서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와 함께 메트로폴리탄을 찾았던 일이 이어집니다. 작가는 미술에 관하여 아는 모든 것들을 부모님으로부터 배웠다고 했습니다. 좋은 부모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는 예술과 관련된 분야를 전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뉴요커라는 잡지사에 입사하여 화려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조금씩 비치는 직장생활이 화려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리고는 형이 죽은 뒤에 자신이 아는 공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고 했습니다. 형의 죽음과 전직이 어떤 맥락으로 연결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서술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2장의 제목을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라고 잡은 것을 보면 형의 죽음이 작가에게는 웬만큼 큰 충격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본격적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관하여 쉽게 알 수 없는 고급 정보를 조금씩 내보입니다. 메트로폴리탄의 주민이 8496명이더라는 이야기는 메트로폴리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헤아린 것이 아니라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시되는 미술품이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새로운 작품으로 바뀌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어떻든 가장 나이가 많은 주민은 1230년대에 태어난, 즉 그려진 이탈리아 화가 베를린기에로(Berlinghiero)<성모자(Madonna and Child)>이며 가장 젊은 주민은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1820년에 그린 <티부르시오 페레즈(Tiburcio Pérez y Cuervo)>라고 한 것 같은데, 사실은 <보르도의 황소> 연작 가운데 1825년에 그린 <나뉜 투우장에서의 투우(Bullfight in a divided ring)>가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미술품들에 관한 미학적 관점에서의 서술보다는 미술관의 경비가 하는 업무, 경비들 사이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설명합니다. 저도 미술은 잘 모르지만 유명하다는 몇 곳의 미술관에 가보기도 했고, 국내에서 열리는 유명한 전람회에도 가보려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의 미술관에 갔을 때는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짧기 때문에 작품들을 꼼꼼하게 드려다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런던에 있는 미술관에 갔을 때는 유명 작품을 사진으로 찍는 모습을 본 현지 사람이 미술작품은 그렇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술관에 가보면 전시실에 서 있는 직원들을 보게 됩니다만, 그 분들에게 궁금한 점에 대하여 물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면 관람객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기고 했던 모양입니다.


미술작품을 어떻게 제대로 감상할 것인가는 늘 생각하는 문제인데, 작가의 생각도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 됐다. 우선 작품에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이 솔깃해할 만한 대단한 특이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싶은 유혹을 떨쳐 낸다. 뚜렷한 특징을 찾는데 정신을 팔면 작품의 나머지 대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 () 어느 예술품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114)”


그런데 작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10년을 근무한 끝에 미술관을 그만 두고 지금은 뉴욕 도보 여행 가이드로 일하며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을 회고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은데, 전직을 한 이유나 사정이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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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주의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0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훈 옮김 / 책세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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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에는 일본 동경과 니이가타 등을 돌아보는 문학기행을 다녀올 계획입니다. 나쓰메 소세키, 가와바타 야스나리, 히구치 이치요, 하야시 후미코 등 4명의 일본 작가와 관련된 곳을 돌아보는 여행으로 로쟈 이현우 선생께서 동행하여 해설을 해주신다고 하여 기대가 큽니다. 저 역시 일종의 취재여행이 되는 셈입니다.


<나의 개인주의>는 이번 여행에 포함되는 나쓰메 소세키의 강연록에 포함된 것으로 이번여행에서도 다루어진다고 해서 미리 읽어보았습니다. 책세상에서 나온 <나의 개인주의()>에는 옮긴이 김정훈님의 글과 나쓰메 소세키의 강연록 문학론(), 나의 개인주의, 현대 일본의 개화, 내용과 형식, 문예와 도덕, 점두록 등이 수록되어 있고, 이즈 도시히코의 해제 소세키의 자기본위가 더해졌습니다.


여기 실려 있는 소세키의 강연은 1910년 무렵에 이루어진 것으로 19세기말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사회가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을 즈음으로 현대적 시각에서 본다면 실감이 덜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이 강연록을 우리말로 옮기게 된 이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소세키의 작품을 즐겨 있는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소세키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그의 평론을 소개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소세키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의 근본사상과 철학을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살아오면서 학생들이나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많은 강연을 해보았습니다만, 소세키의 강연 방식은 독특한 듯합니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자신의 속사정까지도 털어놓는 것 말입니다. 강연은 구어체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라서 쉬울 듯 하지만 시대적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이야기의 핵심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문학론>에서는 그의 영국유학에 얽힌 이야기를 진솔하게 이야기합니다. 요즘에도 국비로 유학을 하려면 원하는 사람이 신청을 하고 심사를 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경우는 문부성에서 선발되어 유학하라고 통보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하고 있었구나 싶습니다.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싹을 키워가고 있던 시절이라서 일본 사회를 개조하려는 세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인적 역량을 키우고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는데 착안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영국으로 유학한 소세키는 대학에 적을 두고 출석을 했던 것도 아니고 개인교습을 받으면서 개인 역량을 키우려 노력을 했던 모양입니다. 문부성에서 요구한 목표는 귀국 후 고등학교 혹은 대학에서 교수해야 할 과목을 연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영문학이 아니라 영어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세키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어학에 숙달하는 한편 문학연구에 뜻을 두고 서너달 대학에 청강하던 것을 그만두고 영문학 서적을 닥치는 대로 탐독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가용한 자금을 동원하여 서적을 구입하고 읽어서 공책에 요약해놓았는데 그 두께가 20cm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귀국해서는 도쿄대학에서 영문학 강사로 위촉이 되어 강의를 하는 한편 <문학론>을 집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개인주의>는 그가 교수가 되고자 지원했다가 실패한 학습원에서 행한 강연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도 영국에서의 생활을 돌아보고 그의 개인주의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개인주의라 함은 타인본위의 상대적 개념인 자기본위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자기본위의 생각이면서도 소세키의 개인주의는 도의상의 개인주의로서 타인과 자신을 동등하게 놓고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상호주의적 개인주의를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는 비상시국이 아니라면 개인주의가 국가주의에 우선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로서는 쉽지 않은 내용을 공개리에 천명한 것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어지는 <현대 일본의 개화>에서는 정부가 주도하여 추진하는 개화의 허와 실을 짚어내는 내용입니다. 추진동력이 어디에 있던지 일본의 개화는 주체적으로 추진되었던 반면 일본의 개화에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피동적으로 추진되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어볼 예정입니다. 그의 첫 작품인 만큼 영국 유학을 통하여 형성된 그의 사고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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