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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독서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책을 구입해서 읽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김난도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경우도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라는 부제 때문인지 이제 이순(耳順)을 목전에 두고 있는 처지에 굳이 찾아 읽을 것까지 싶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책읽은 핑계로 끌어다대는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을 같이 읽고 공감해보고자 한다는 핑계가 이 책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대학 4학년인 작은 아이가 읽었다 해서 무엇을 느꼈는지 아니면 조언이라도 더해줄 점은 없는지 읽어 보았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구입한 책이 266쇄라는 점과 예스24에 올려진 리뷰가 200개가 넘는 화제작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구심이 들뿐 아니라 오히려 젊은이들을 헷갈리게 하는 점도 적지 않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그대 눈동자 속이 아니면 답은 어디에도 없다",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일’이 이끄는 삶, ‘내 일’이 이끄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담겨진 글들의 논지흐름이 일관되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명강의교수라는 출판사의 홍보글이 사실이라면 역시 강의하는 것과 글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 같지 않구나 싶기도 합니다.(혹시 서울대학교 전체 학생들이 강의잘하는 교수를 뽑는 투표를 하게 된 것일까요? 전공분야가 엄청 세분화되어 있어 모든 학생들이 모든 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상대비교평가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삶에 조언을 한다는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 것도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습니다. 나의 조언을 듣고 인생항로를 결정한 사람에게 나는 모종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로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결정적인 힌트를 달라하지만 조언하는 입장에서는 선택 가능한 범위에 대한 장단점을 냉정하게 설명하고 결정은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일 듯싶습니다. 제가 10여년을 근무한 직장을 그만두려 할 적에 역시 선배로부터 조언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배님은 제게 조언하기를 선택가능 영역을 A4용지에 적고, 각각 장단점을 모두 적은 다음 장점과 단점들의 무게를 달아서 추가 기우는 쪽으로 결정하라고 조언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김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했답니다. “한 7~8년 전쯤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과의 2학년 학생이 내게 찾아와 조언을 구했다. 아버지는 강력하게 사법고시를 보라고 요구하는데 본인은 다른 쪽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학생의 뜻에 손을 들어줬다.(241쪽)” 학생의 진로문제는 학생 자신의 문제인 것 맞습니다. 하지만 그가 속해있는 가족, 특히 부모님과 의논해서 최종결정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3자가 되는 것입니다. 김교수님이 내세우고 있는 근거가 과연 그 학생의 진로결정에 결정적으로 타당한 것이었을까요? 그 학생이 결정한 미래에 책임을 지실 수 있습니까?
제가 큰아이의 진로를 두고 금년 초에 크게 대립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소위 스펙쌓는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큰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과에 지원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사회적 여건이 좋지 않다고 판단되는 과에서 지원하라는 유혹을 받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병원까지 쫓아가 미래를 설명하고 설득한 끝에 처음에 마음에 두었던 과에 지원을 했고 좋은 성적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전공은 같지 않지만 같은 의학을 전공하고 있으니 현재 상황이나 미래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던 점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상황은 변하기 마련입니다만, 그래도 비교적 변화의 진폭이 크지 않은 분야가 의학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범위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김교수님께서 조교를 지내셨다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의 최고위과정에 입학하려 지원하는 국회의원, 정부 및 각 기관의 3급 이상 공무원, 각군의 장성, 정부 투자기관의 장(長) 및 임원, 언론기관의 고위간부, 사기업체의 장 및 임원, 사회단체 지도자 들 가운데 소위 SKY라는 명문대 출신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262쪽). 즉 사회적으로 성공하는데 학벌이 중요한 요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그 과정에 지원하시는 분들이 필요한 것은 명문대 가운데서도 명문대인 서울대학교의 최고위자과정을 수료했다는 증명과 그 과정을 통하여 얻게 되는 인맥이 필요했던 때문일 것이고, 소위 SKY에 해당하는 명문대학 출신들은 그런 과정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요즘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경험이 중요한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소위 스펙이라는 것을 쌓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한우물을 파야 성공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 준비에 들어갔고 행정대학원에 입학하면서까지 시도한 세 차례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면서 학문의 길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분명 잘 한 일입니다. 다른 대학원생들이 모두 고시에 몰입하고 있으니 성적이 잘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니 크게 자랑할 일도 아닌 듯합니다. USC에 유학하여 행정학을 공부하신 것도 잘 한 일이지만, 돌아와서 전공을 살려 교수의 길을 걷고자 도전했지만 이 역시 좌절로 끝나고 말았고, 다시 방향을 바꾸어 소비자학과교수를 지원하게 된 것은 분명 잘 하신 일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치열하게 머리를 싸맨 흔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특히 수능시험 성적이 잘 나와 진학한 법과대학의 “법학과목이 재미도 없었던 데다 판검사 되는 것이 그다지 탐탁지도 않아서, 주로 술먹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246쪽)”고 한 고백을 읽고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께서 공부에 별다른 고민없이 술로 보내는 동안 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하여 머리를 싸고 공부했지만 낙방한 분이 받은 상처와 고통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10여년을 근무하고서는 다양한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인생행로가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지금까지의 다양한 영역의 경험이 종합되어 좋은 일로 마무리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책읽기를 마치고서,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다.”는 결론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리뷰를 쓸 때, 제목 이야기도 가끔은 합니다만, 아드님께 주셨던 편지에서 인용한 것이네요. 제목이 내용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도 다시 읽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철없던 시절 “이런 증상이 있지 않아?”하면서 건강한 친구들을 몰고가서 환자로 만들던 장난이 생각납니다.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들은 아프지 않습니다. 지극히 건강하단 말씀입니다. 당연히 청춘을 건강하게 청춘을 향유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