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서점
송유정 지음 / 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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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 읽는 밀리의 서재에서 최근에 송유정 작가의 <기억서점>을 읽었습니다. 생의 의지를 잃은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모습을 드러내는 서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 서점에는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쌓은 기억이 책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런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는 랄프 이자우의 <비밀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김지원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7년째 불안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날따라 익숙한 장소에서 굳이 15나 떨어진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았지만 조제된 받은 약은 버리고 말았습니다. ’애도 기간이 좀 기네요?‘라고 한 의사의 말이 가슴에 걸렸기 때문이었을까요? 지원은 그 의사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새삼 현실을 깨닫게 된 지원에게는 모든 깨달음은 이렇듯, 너무 느리게, 후회를 동반하며 찾아온다.”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처박혀 있다가 누리망에서 찾아낸 이누이트의 이야기에 다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누이트들은 화가 나면 화가 풀릴 때까지 무작정 걷는다는 이야기. 화가 풀릴 때까지 한참을 걷고 또 걷다가 화가 다 풀리면 그제야 멈춰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간다는 이야기. 그래서 돌아오는 길을 뉘우침과 용서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나간 산책길에서 갑자기 쏟아진 비를 긋기 위하여 들어선 처마 밑에서 ㄱ서점을 만나게 됩니다. 비가 요란스럽게 쏟아지는 가운데 들어선 서점 안은 적막하기만 했습니다. 그 서점에서 발견한 책은 지원이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고, 마지막에는 지원이 남긴 짧은 소감도 적혀있습니다. 살아오면서 버렸던 책들이 이 서점에 모여 있는 것입니다. 이곳은 바로 지원씨의 기억서점이었습니다.


혹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나요?‘라고 묻는 관리자 K의 말에 지원씨는 그저 나는 그저 우울했을 뿐이다. 나는 그저 상실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지 못해 아직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엄마를 배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K그건 자기기만 같은데라고 응수합니다. K아직, 살아있는 자에게, 손을 내미는 존재였습니다.


이 서점에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세 번의 기회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살아온 날들 가운데 하나의 시점으로 돌아가 3시간을 머물수 있는데, 대신 남아있는 수명을 가져간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가져온 비인두암을 일찍 발견할 수도 있었을 시간으로 돌아가 어머니가 잊어버린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다짐을 받아놓지만, 서점에 돌아와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은 과거의 일에 개입하면 안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씨는 어머니가 병원에 잊지 않고 가도록 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죽음은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행동에는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고, 그것을 변수하고 한답니다. 어머니는 가족의 평안을 위협하는 여려 가지 일로 인하여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선택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K시는 엄마의 선택이 아니라 지원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무언가를 바꾸기 위하여 서점에 보관된 자신의 과거의 기억들을 조사한 끝에 어머니하고 할머니의 묘소에 다녀오기로 합니다. 과거에는 같이 가겠느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친구들과의 약속을 핑계로 혼자 다녀오셨다는데 생각이 미친 것입니다. 이날의 기억은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데서 오는 자책감이 자신을 괴롭히는 근원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의 시간여행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엄마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는 것이 진정으로 엄마를 위하는 길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원의 세 번째 여행은 과거의 언제쯤으로 돌아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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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트루다 스토리
김성민 지음 / 바이오스펙테이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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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종으로 진단받은 가족이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주치의께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키트루다가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만, 보호자 입장에서도 키트루다라는 약제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김성민 기자의 <키트루다 스토리>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키트루다는 면역관문억제제입니다. 우리 몸의 면역계를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지원하는 항암제입니다.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항암제, 즉 화학항암제는 빠르게 증식하는 암세포의 특성을 이용하여 분열하는 암세포의 사멸효과를 얻었습니다. 따라서 암세포를 죽이기 위하여 항암제를 사용할 때 동시에 빠르게 분열하는 정상세포 역시 암치료제의 공격을 받는 부작용이 동반됩니다. 하지만 면역 항암제는 암 환자의 면역체계를 활용하기 때문에 기종의 화학항암제가 보이던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키트루다 스토리>에서는 머크에서 키트루다를 개발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키트루다를 사용하는 암종에서의 치료효과 및 부작용 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키트루다를 사용하여 효과를 볼 수 있는 암종으로는 악성 흑색종, ㅂ소세포폐암, 두경부암, 호지킨 림프종, 요로상피암, 위암, 식도암, 신세포암, 자궁내막암, 삼중음성 유방암, 자궁경부암, 담도암, 간세포암 등이 있습니다.

<키트루다 스토리>에서는 폐암, 삼중음성 유방암, 그리고 신세포암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악성 흑색종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상황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대목이 없지는 않습니다. 키트루다는 면역항암제들 가운데 점유율이 가장 큰 면역항암제라고 합니다. 그리고 키트루다가 더 많은 환자를 더 오랫동안 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약물이 환자 몸속에서 계속 반응하는 특성 덕분이라고 합니다.

머크가 키트루다의 적용 범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참신한 접근방식을 적용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초기암에서 수술 전 요법으로 면역관문억제제를 투여하면 신항원에 반응하는 T세포가 늘어나고, 특정 종양을 인지하는 T세포가 림프절을 돌아다니면서 길게는 몇 십 년 동안 암세포를 감시할 수 있을 것이다.(130)”라는 대목입니다.

점막 흑색종으로 진단을 받은 뒤에 빠른 시기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이어서 30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은 뒤에 면역치료제로 키트루다 치료를 3주마다 17회 받는 장정을 시작했습니다. 키트루다가 몸 속 어디엔가 숨어있을 수 있는 악성 흑색종 세포를 박멸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각종 유전자검사에서 특이한 돌연변이가 발견되지 않아 선택할만한 항암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키트루다 치료는 기대할만한 대목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예를 들면, 흑색종은 변이가 많은 암 혹은 종양 변이부담(tumor mutational burden, TMB)가 큰 암입니다. 변이가 많다는 것은 하나의 변이만 목표로 치료해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그런가 하면 TMB가 큰 흑색종은 면역반응이 높은 암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면역항암제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 지는 흑색종 치료에 효능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각종 유전자 검사에서 뚜렷한 변이가 나타나지 않은 사례에서도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제가 하고 있는 업무 가운데 PD-L1검사의 효과를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약제의 효능 등에 관한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일반 독자가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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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바르셀로나의 골목을 어슬렁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현 / 인디펍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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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다녀오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건너 방에 가듯 쉽게 다녀오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해외여행을 통하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골목을 어슬렁거리면 얼마나 좋을까>는 국악을 전공하고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발령을 받기 전에 유럽을 두루 구경한 끝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 살기를 한 경험을 담아낸 책입니다.


작가가 세운 여행 목표는 제가 보기에도 아주 간결하고 젊은이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셀로나에서는 동네 산책, 요가, 미사, 햇빛 쬐기, 자전거 타기, 밥지어 먹기, 낮잠 자기 등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굳이 바르셀로나까지 가서 할까 싶은 대목입니다.


스페인 와인 마구마시기가 할 일 목록에 있는 것처럼 술에 관해서는 철학이 뚜렷해 보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1.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2.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눈다는 주장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주종 가리지 않고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꽃말처럼 술말을 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참신한 착상도 선보였습니다. 흥미로운 인용도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고전요리 책 작가, 펠레그리노아르투시는 살면서 때때로 젤라또를 먹는 기쁨을 누리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 등입니다.


저는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만, 빠에야를 예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었다고 하는데, 제가 즐기는 단체여행에서 하루 한 끼 빠에야를 먹었다면 여행사에 전화를 했을 것 같습니다. 비빔밥이라면 하루에 한 끼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빠에야는 그렇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교단에 서실 분이라서인지 대체적으로 원샷이라던가 쎄비다’(그나마 쌔비다가 옳은 속어표현이군요)와 같은 속어 혹은 한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리하겠습니까?


사실은 준비하고 있는 책에서 바르셀로나에 대한 이야기도 다룰 예정이라고 읽게 되었습니다만, 바르셀로나에서 압생트를 마실 수 있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프랑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압생트를 죽음과 영감의 술이라고 했습니다.“독하고 값싸서 가난한 예술가들의 술이었다는 그 압생트.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기 전에 마셨다는 그 압생트. 마시면 초록 요정이 보인다는 그 압생트. 오스카 와일드가 마시곤 바닥에서 튤립이 피는 것을 보았다는 그 압생트. 내가 그 술을 마실 줄이야!”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압생트를 마시는 방법도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바르셀로나를 그저 한나절 구경하는 것으로 끝났던 여행이 몹시 아쉬웠던 탓에 바르셀로나에서 무려 한 달씩이나 살았다는 작가가 경험하거나 겪어본 것이 너무 소박하더라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것들을 눈에 담아보는 일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그것도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라서 아쉬웠습니다. 부피도 많지 않아서 단숨에 읽어내기는 했습니다만, 크게 기억에 남는 대목이 없는 듯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피게레스에 있는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에 다녀오셨다는데 카탈루냐 미술관과 현대미술관 등 바르셀로나에 있는 미술관에는 다녀오셨는지 ,언급이 없어서 궁금합니다. 하지만 기차여행에 관하여 적어놓은 대목은 새겨볼 만했습니다. “나는 기차 타는 것을 좋아한다. 은근한 소음과 이리저리 몸이 흔들리는 느낌. 조용히 하는 주변 관찰. 무엇보다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자유. 한번 지나간 창밖 풍경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진 찍을 걸!’하는 포토제닉한 순간이 많지만 실제로는 다 놓친다. 한 지점을 자세히 관찰하기 어렵고 그림을 그릴수도 없다. 구름은 계속해서 바뀐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눈으로 느낄 수 있어서 참으로 좋다.” 무엇보다 말미에 정리해놓은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상의 편린들을 보면 작가가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일상이 그보다 더 평범할 수는 없을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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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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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죽음이 물었다>라는 제목만으로는 헷갈릴 수 있습니다. 동명의 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라는 부제까지 붙여야 아나 아란치스가 쓴 책이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A MORTE E UM DIA QUE VALE A PENA VIVER>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죽음은 살 가치가 있는 날의 하나라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완화의료를 전공한 저자가 20여년이 넘도록 임종을 맞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면서 깨닫게 된 성찰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저자는 아주 어렸을 적에 말초동맥질환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할머니를 지켜보면서 의사기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의사가 되어 해부학실습을 처음 받던 날 대부분의 학생들은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이기 마련입니다만, 저자는 실습을 하게 될 시신을 지켜보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정말 특별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구나 싶습니다. 임상실습을 처음 나가서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던 순간도 회고하고 있어서 저의 기억도 되살려 보았습니다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4학년 때는 집안 사정도 있었지만, 유난히 많은 죽음을 지켜보던 끝에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소명을 버릴 수가 없다는 생각에 1년 뒤에 학업에 복귀하여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적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인용한 사람들은 이유가 존재하는 한 어떤 방식이든 견뎌낼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은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완화의료라는 분야는 생소할 것 같습니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성인을 위한 완화의료의 개정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된 문제에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으로,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 그리고 통증과 기타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의 치료를 통해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경감시킨다.(80)”


세계보건기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완화의료에서는 죽음에 맞서고 있는 사람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까지도 해결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하는 부제를 죽음이 물어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살아온 날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의 곳곳에서 죽음과 관련한 좋은 말씀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꼽은 말씀을 지우베르투 지우라는 분의 다음과 같은 말입니다. “나는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으나, 죽는 것은 두렵다. / 죽음은 사후의 문제지만, / 죽는 것은 나이고, / 그것은 나의 마지막 행위이며, / 내가 그 자리에 존재해야만 한다. /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 대통령처럼, / 나는 떠난다는 것 알면서, 살면서 죽어야 한다.(90)”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에 관해서는 호스피스 활동을 해온 김여환 선생님의 추천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죽음은 나이를 먹으면서 흰 머리카락이나 주름살 같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박완서 작가가 <보시니 참 좋았다>에서명품으로 치는 골동품도 태어날 때부터 명품이었던 게 아니라, 세월의 풍상과 사람들의 애정이 꾸준히 더께가 되어 앉아야 비로소 명품이 된다라고 한 것처럼 웰다잉은 삶의 골동품 같은 것이다. 죽음에 이르러 무엇인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살명서 차곡차곡 더께가 되어 얻는 삶의 결과물인 셈이다.(12)“ 명품이라 할 수 있는 골동품은 일단 태어날 때부터 명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 세월의 더께가 더해지면서 가치가 더 높아지는 셈이겠지요. 죽음과 죽어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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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우스터리츠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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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책과는 다른 형식의 책을 읽었습니다. 독일 작가 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아마도 작가일수도) 화자가 벨기에에서 만난 영국의 건축사가 아우스터리츠를 처음 만난 뒤로 가끔씩 만나서 들은 그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듯하다가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라고 서술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대목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야기가 시작되는 대목에는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아우스터리츠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이라거나,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우스터리츠를 만나는 과정은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안트베르펜의 녹투라마 동물원이아 안트베르펜 중앙역의 모습을 서술하는 것을 보면 화자의 시선은 아주 세밀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기차가 양쪽에 기이한 뾰족탑이 달린 아치를 지나 어두운 정거장으로 서서히 들어와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 당시 벨기에에서 보낸 시간 내내 떠나지 않던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혔다.”라고 적은 대목처럼 풍경은 물론 화자 자신의 미묘한 감정까지도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아우스터리츠는 4살이던 1939년 가을 영국 구조단체의 유대어린이 호송작전(Kindertransport)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당시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할되기 전입니다)의 수도 프라하에서 영국으로 보내져 웨일스 지방의 칼뱅파 목사 부부의 슬하에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데이비스 얼라이스라는 영국식 이름을 얻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프라하에서의 기억은 조금씩 잊게 되었습니다. 양부모가 아우스터리츠의 과거에 대하여 전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선 아우스터리츠의 행보를 화자가 받아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자가 전하는 아우스터리츠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작업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공간을 찾아가 남아있는 기록이나 자신의 과거와 관련된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것입니다. 저 역시 꽤 오래 전부터 저의 삶의 흔적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경관기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작업은 아직은 현장을 찾아가는 단계가 아니라 남아있는 기억을 글로 옮기는 단계입니다만, 어느 정도 뼈대가 잡히면 현장도 찾아가보려 합니다.


아우스터리츠에게 남아있는 기억의 조각들은 여러 도시의 공간에 흩뿌려져 있어, 기억의 조각들을 조각그림맞추기 하듯 이어붙여가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저자는 “‘시간의 외부에 있는 존재( Das Außer-der-Zeit-Sein)’는 시간의 배열이 아닌 공간적 배열 원칙을 따르게 된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경관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성장과정의 기억을 짜 맞추는 작업 역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실제로는 공간의 배열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이름 아우스터리츠(Austerlitz)는 나폴레옹 시기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라고 합니다. 아우스터리츠라는 이름은 물론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리엔바트의 아우쇼비츠(Auschowitz) 샘물, 테레지엔슈타트의 바우쇼비츠(Bauschowitz) 분지 등의 이름에서 이 책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를 암시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아무래도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전자책은 물 흐르듯이 읽어낼 수 있지만 흐름을 되돌려서 음미하듯이 읽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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