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클럽
이원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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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표지에 적혀있는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늘 궁금했고 그걸 좀 물러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라는 구절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에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보다라고 탓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까마귀는 아주 영리한 새라고 들었는데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까마귀 탓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땠거나 이원석 작가의 <까마귀 클럽>에는 모두 표제작 까마귀 클럽을 포함하여 모두 7편의 단편이 담겨있습니다. 아무래도 표제작이고 저의 관심을 끌었던 까마귀 클럽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까마귀 클럽은 죽음과 여행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다른 단편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제작으로 택한 이유는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까마귀 클럽은 제 추측과는 달리 까마귀와 기억력에 관한 속설과는 무관하게 까마귀의 소란스러움을 비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위터를 통하여 [화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 이제 더는 참고 살 수 없다고 다짐한 사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믿고 함께 분노할 사람을 찾습니다. 당신을 노력형 분노스터디 <까마귀 클럽>에 초대합니다.]하는 모집공고에 응모한 주인공을 포함하여 모두 4명의 회원이 분노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기울이는 각고의 노력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최근에 방영되어 화제를 모았던 연속극 <해방일지>가 생각났습니다. 이러저런 이유로 직원들과 교류가 원활하지 않은 네 명이 모여 해방클럽을 만들고 각자 일지를 써 공유하는 방식의 동호회 활동을 해나가는 모습이 바로 까마귀 클럽과 겹쳐보였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는 내게 그날은 이런 문장들고 기억되고 있다로 시작되어 앞서 적은 트위터 글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은 내게 오늘은 또 이런 문장으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마무리가 되지만 어떤 문장인지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까마귀 클럽을 제외한 다른 단편들은 여행과 죽음이 주요 소재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 여행이라는 것을 훌쩍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수고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문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던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에 치어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꿈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기 위하여 심사숙고를 하는 모습을 <까마귀 클럽>의 단편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남녀가 함께 떠나는 여행 이야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두고 남자와 여자는 쉽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작가가 여행과 죽음을 엮어 이야기를 풀어낸 것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이소는 여행은 삶의 은유가 아니라 삶을 감당하느라 망각해버린 죽음을 은유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죽음에 대한 사유만이 우리에게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법이니, 여행의 궁극적 목표는 끝을 경험해보는 것이고, 여행은 작은 종결이나 작은 죽음을 삶에 선사한다.(265)’라고 합니다. 제 경우는 여행을 떠남에 있어 죽음과 같은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까마귀 클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이야기 없는 사람에서는 빌라에 살고 있는 주인공은 몇 시간 뒤에 떠날 여행을 두고 연인과 다투는 와중에 누군가로부터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받습니다. 자신에게 할당된 구역에 주차하고 있는 차를 빼달라는 무례한 요구를 하는 사람은 그 장소로 떨어져 세상을 하직하려고 합니다. 전화를 받은 주인공은 상대를 말리다가 옥상을 찾아가지만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정된 여행을 두고 연인과 싸우던 가운데 회사 상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문상을 모시고 가기로 하고 여행을 없었던 것으로 정리해버립니다. 그렇다면 일찍 출근을 하느라 차를 빼게 되면 자살을 예정하고 있는 사람에게 투신의 기회를 주는 셈이지만, 그에 대한 대책 역시 여행과 마찬가지로 대안을 두지않습니다. 즉 관계당국에 연락을 해서 자살을 막도록 하는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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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말하는 죽음학 수업
박중철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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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는 전공 탓에 주검과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죽음을 이해하고 좋은 죽음을 맞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죽음을 이야기는 것을 기피하여왔습니다. 어쩌면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죽음이지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근래들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두고 좋은 생각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는 죽음에 관한 좋은 책입니다. 가정의학과를 전공하고 병원에서 호스피스를 담당하고 있는 저자는 특히 환자가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스피스는 우리나라에서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비참한 죽음의 현실을 냉정하게 드러내고, 좋은 죽음이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제가 수련의 과정을 밟을 때만해도 병원에 왔던 환자도 임종에 이르면 퇴원하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통적으로 객사는 피해야 한다고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자들이 퇴원할 때는 수련의가 인공호흡 주머니를 쥐어짜며 집에까지 환자를 모시고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임종에 가까워진 환자들이 병원에 입원을 합니다. 연명치료에 매달리려는 환자도 있고, 병원에서 죽음을 맞아야 병원의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를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끝까지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려 애를 씁니다. 갑자기 심정지라도 오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수액줄이나 감시 장치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연명을 하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이것들을 제거합니다.


의료진들이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데 주력하는 이유는 최선을 다해달라는 보호자들의 요청에 따르는 경우고 있고, 혹여 치료를 태만히 하여 의료사고라고 문제제기를 하는 보호자들이 없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같은 설명으로 한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두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의료계가 환자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국민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상세하게 추적하였습니다. 또한 의사조력자살을 비록하여 안락사와 존엄사 등의 개념과 세계적인 현황도 소개합니다. 특히 의료계에서 임종에 가까운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유지하도록 만든 보라매사건의 전말로부터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된 김할머니 사건의 개요도 충분히 설명합니다.


이어서 자연스러운 죽음의 형태를 설명합니다. 필자 역시 환자를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적극적인 안락사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만,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하게 되고, 먹지 못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집에서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죽음을 맞는 것이 자연스러울 터인데, 사회적 요인에 의하여 집에서 죽음을 맞고 장례를 치르는 것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최대한 집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다가 임종에 즈음하여 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모두가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우리사회에서 변해야할 다섯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는 종합병원에 임종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둘째는 연명의료결정법에 규정된 물과 영양공급 의무조항을 삭제하며, 셋째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적극적인 확대, 넷째는 간병 등 생애 말기 돌봄에 대한 사회적 대책 마련, 마지막으로 의과대학 교육과정과 병원 수련과정에서 죽음 교육을 의무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죽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며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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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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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자필멸이나 삶이 언제 끝날지는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그 끝을 알게 된 사람들은 지금과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살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삼십대 중반의 소설가 로버트 판타노는 남아있는 나날을 글쓰기를 중심으로 살아오던 방식 그대로 따라가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는 악성뇌종양으로 진단받은 그가 남긴 생의 마지막 기록입니다. 삶과 죽음을 화두로 한 사색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수필입니다. 때로는 치료과정을, 때로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한번쯤 짚어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그의 삶과 철학을 읽다보면 저와 닮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저자를 죽음으로 이끈 악성뇌종양은 악성 별세포종양입니다. 수술을 받았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등을 받았지만 재발하였고, 교아세포종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별세포종양도 양성인 경우에는 일생을 함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악성의 경우는 진단받고 오래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주에 관한 철학도 흥미롭습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는 취해서 흐느적거리거나 말이 꼬이는 어른들이 한없이 멍청하고 한심해보였다. 그러다가 호기심이 생녀 난생 처음으로 술에 취해 보기도 했다. 아마 지금의 내가 멍청하고 한심할 수도 있고 어릴 적의 내가 멍청하고 한심할 수도 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152)”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와중에도 술 마시기를 즐겨했다고 하는데, 약을 먹지 않아 치명적이지 않다고 보아 술을 마시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유익할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도를 넘어 과음한 적이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반면 젊었을 적의 저는 그러지 못했던 차이가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나를 가장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존재는 나뿐이고, 그렇기에 나를 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112)”이라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죽는 다는 것은 그렇게까지 무서운 일도 몹쓸 일도 아니다.(224)’라고도 합니다. 우리의 몸과 머리는 단지 우주로부터 임대한 대여품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천지만물이 원자로 구성되었다는 원자론을 생각하고, 인도에서는 윤회를 생각했습니다. 만물의 삶이 끝나면 형체가 와해되어 구성원자의 형태로 자연으로 돌아가고, 새로 삶을 얻은 물체의 구성원이 되는 셈이니, 원자론이나 윤회가 모두 사실인 셈입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자는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방식 그대로 지키기로 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에서 진실 한 조각을 붙잡기 위해서, 나에게 아직 남아있는 삶과 생명을 쥐어짜내어 가치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 보기 위해서 나는 덧없는 시도를 또 해보려 한다. 나는 글을 쓰기로 한다.(27)”는 방향을 세웠던 것입니다.


삶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저자는 자신이 그동안 쓴 작품들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 예전에 썼던 글에서 나라는 사람, 나의 목소리를 알아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감성이나 생각에는 깊이 공명하지만 단어나 문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쓴 것만 같아서 내가 아닌 타인이 쓴 글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죽을 날을 받아놓고도 천연스럽게 글을 써내려 갈 수 있을지는 저도 장담할 수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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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 - 존 버거와 이브 버거의 편지
존 버거.이브 버거 지음, 신해경 옮김 / 열화당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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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무엇을 배우게 됩니다. 영국 출신의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 등으로 활약한 존 버거는 중년 무렵부터는 프랑스 동부, 알프스 산록에 있는 시골 마을에 살면서 농사일과 글쓰기를 했습니다. 2013년 아내 베벌 리가 사망한 뒤로는 파리 외곽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어떤 그림>을 같이 꾸민 이브 버거는 존 버거의 아들로 아버지의 시골집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한 화가입니다.


<어떤 그림>은 존 버거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2015-16년 사이에 아들 이브 버거와 주고받은 편지 묶음입니다.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나름대로의 답변이 오고 가는데, 주제에 맞춤한 그림들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아들이 쓴 서문 격의 글 당신 차례야!’는 시골집 헛간에 탁구대를 들이고 부자간에 탁구시합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승부는 우리가 탁구를 치는 진짜 이유의 피상적인 결과일 뿐이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한 것은 우리 운을 어디까지 시험해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주고받는 과정을 얼마나 우아한 한 편의 연극으로 만들 수 있는지 보려는 의지였다. 물론 아주 드물었지만, 때때로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러면 모든 것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 리듬, 그 움직임과 몸짓, 그 타이밍,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 조화로운 단 한 번의 연극이 되었다. 우리는 탁구를 칠 때와 똑같은 기쁨과 희망을 품고 그림을 다루었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부자 간에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탁구가 부자를 통하게 만드는 장면은 영화 <어바웃 타임>이 있습니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능력을 가진 아버지와 아들이 탁구경기를 통하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정어리 매장식>은 사순절의 마지막날 벌어지는 정어리 축제를 그린 것으로 거대한 군중이 만들어내는 떠들썩한 소리를 느낄 수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 그림에서 존 버거는 소음과 침묵이라는 대립되는 개념을 설명합니다. “우리에겐 소음과 침묵이 있구나. 소음은 설명을 덮어버리고, 침묵은 계속해서 현재를 따져 묻는 질문들을 내놓지. 둘 다 온전히 살아 있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아(41)”라고 정리하는 것을 보면, 중용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설명으로 이해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그림을 눈물과도 연관을 짓고 있습니다. “사육제 군중은 자기들 세상을 모욕하며 프란시스코를 부둥켜안고 그의 웃음을 나누고 있어. 그리고 잠시 후면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지. 웃음과 상실이 모두 눈물을 불러온다는 것이 흥미롭구나(48)” 사실 기쁠 때나 슬플 때 모두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이란 무언인가?’라는 주제에 대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이라는 화두를 아들에게 건넸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브는 이렇게 답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은 정말로 그림이 짊어진 거대한 배낭 같아요. 끔찍하게 무거운 짐이지만, 이상하게도 화가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해요. 경계 너머 보기, 아니 그보다는 외양을 뚫고 내면 보기, 그것을 계속 추구해 나갈 만한 가치가 있는 바람이 아닐까요? 시간을 그 뼛속까지 드러내겠다는 목표를 잡는다면, 일생의 헌신 정도는 치러야 할 사소한 대가 같아야. 그림은 충족시킬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희밍이고여. 가망 없는 희망이죠?(65)” 화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의 사명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같습니다.


그림과 서예의 기원이 천상에 있되 그 성취는 인간의 것이라는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천상시각의 관계를 인간촉각의 관계와 비유하면서 이브는 눈을 감고 아버지의 등을 떠올린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등을 떠올리다보면 그 등을 주무르던 손이 그 장면을 선명하게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이 대목을 읽다보니 어렸을 적에 아버님의 팔 다리를 주물러드리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이 손 끝에도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화가와 미술평론가가 주고받는 그림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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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동서문화사 월드북 162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김양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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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심강현님의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에서 추천한 철학책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동서문화사의 월드북으로 읽은 <정신현상학>572쪽에 달하는 분량이나 되고, 난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루한 책읽기였습니다.


책 말미에 붙여놓은 헤겔의 사상과 <정신현상학>’이라는 글에 나오는 이런 대목이 이해되었습니다. “이른바 작가로서 그의 글솜씨는 칸트처럼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형편없다. 애매하고도 지나치게 점잔빼는 투로 글을 쓰는데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표현이 얼마나 불명확한지 때로는 악마같이 정말로 말해야 할 내용은 숨겨버리고, 그 결과 나타나는 애매함을 더욱 애매하게 만들면서 얼렁뚱땅 글을 끝맺어 버린다.(530)”


“‘현상학이 체계적인 구상 아래 태어난 것이 아니라 기나긴 사색이나 면밀한 계획도 없이 충동적으로 집필되기 시작했다고 헤링은 말했습니다. 게다가 출판사의 강한 압박으로 상당도 못할 만큼 짧은 기간에 집필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글내용이 난삽한 이유를 알 듯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차가 나열된 순서를 보면 헤겔은 자연 그대로의 의식이 참다운 앎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A ‘의식은 감각적 확신, 지각, 오성의 요소로 발전을 시작하여 B ‘자기의식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거쳐, C ‘이성으로 완성되며, 이는 정신으로 구축되어 종교를 거쳐 절대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절대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종교가 들어가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은 앎이 부족한 저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헤겔이 이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하여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가장 수준 낮고 단순한 의식에서 가장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의식에 이르기까지 의식이 거치는 모든 전개과정을 설명한 것이라고 한다거나, ‘의식을 통한 인간의 자기형성과정을 단계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는 등입니다.


그런가하면 스토아주의 철학에서부터 근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제시된 철학적 주제에 대한 비평을 담을 것을 보면 인류의 학문사, 즉 철학의 역사를 담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주에 읽을 예정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대한 해석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헤겔은 정신은 단일한 진리일 때는 의식으로 나타나서 자신의 각 요소를 분해한다(293)’면서 인륜이 참다운 정신이라 하였습니다. 인륜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법칙과 신의 법칙이 작용하는데, 각각 가족 내에서의 인륜이 국가라는 공동체에 적용될 인륜에 미치지 못하고, 국가 공동체에 적용하는 인륜은 신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륜에 미치지 못한다는 해석입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 이후 테바이의 왕위를 놓고 대립하던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전투를 벌인 끝에 서로 죽이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왕위에 오른 크레온은 테바이를 지키려던 에테오클레스에게 성대한 장례를 치러준 반면, 외국의 군대를 끌오 테바이를 치러온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방치하고 장례를 치르는 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죽음을 내릴 것이라 선언합니다. 이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방치되어 썩어 가는 오빠의 주검을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는 것이 가족으로서의 인륜에 부합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족으로서의 인륜이 대립되는 국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인륜을 뛰어넘을 수 없는 노릇일 것입니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예를 갖추어 오빠를 묻는 것은 천륜이라 주장합니다. “기록되지 않았지만 확고한 신들의 법을 필멸의 존재가 넘어설 수는 없지요. 왜냐하면 그 법은 어제오늘만이 아니라 언제나 영원히 살아 있고, 그것이 언제 생겨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니까요(소포클레스, 안티고네, 민음사, 146-147)”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국가공동체의 인륜이 신의 법칙인 천륜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책읽기에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읽기였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은 힘든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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