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말하다
남주헌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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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무상급식에 관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사퇴하게 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2010년 서울이 디자인 수도로 선정되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 근처도 보도블록으로부터 시작해서 거리모습이 일신되어 산뜻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아온 디자인이란 주로 산업디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세훈시장 덕분에 도시도 디자인을 한다는 개념에 눈이 뜨게 되었지만, 도시디자인의 실체는 남주헌박사의 <디자인을 말하다>를 통해서 보다 명확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도시 디자인은 단순하게 건물을 비롯한 시설물의 디자인만이 아니라 환경까지 아우르게 되는데, “시민들의 문화와 복지를 바탕으로 도시의 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도시 전체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디자인 업무를 수행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38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 시카고를 ‘건축의 도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카고 전체도시가 화재로 소실되는 대사건을 계기로 하여 이를 복구하면서 건물의 다양성을 요구하면서 같은 건물을 건축하지 않은 것이 시발점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미국에서 살 때 같은 아파트에 사시던 분이 시카고로 옮기셨는데, 이 분이 건축을 전공하셨던 것 같습니다. 시카고에 오면 건축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건물들을 안내해주시겠다고 하셨지만, 끝내 찾아가지 못해 지금도 안타깝습니다. 시카고의 건물들은 건축학의 역사를 나타낼만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냥갑 모양의 네모반듯한 건물, 심지어는 크기도 비슷한 건물들이 도심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지난 해 가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 특이한 모습을 한 건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귀국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그에 못지않게 튀는 건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월드컵경기장 맞은편에 서있는 마포구청 건물입니다.

그리고 보니 도심에서도 다양한 모양을 한 건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건물마다 개성이 살아 숨쉰다고나 할까요?

모양만 튄다고 해서 좋은 도시 디자인은 아니라고 합니다. ‘좋은 도시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헬싱키예술디자인대학 히보넨 학장은 “시민을 배려하는게 디자인이다. 패션이나 미에 국한돼 있던 디자인 개념을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도시디자인’이다.(80쪽)”고 말하고 있답니다.

서비스에도 디자인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는 남주헌박사의 사례소개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간호사들이 환자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환자정보를 인수․인계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 환자 서비스를 개선한 사례를 ‘서비스를 디자인’ 한다고 소개하였습니다. 일종의 서비스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입니다만, 이 역시 생각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미 디자인시대가 열린 만큼 디자인을 배우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말하다>를 통하여 독자들이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 저자는 먼저 디자인을 생각의 중심축에 놓을 것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디자인을 적용할 환경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고 하는데, 발상의 전환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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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전상국 지음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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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http://blog.joinsmsn.com/yang412/10365703>을 읽고서이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전상국선생님의 소설집입니다. 소설집에는 중편 ‘남이섬’과 ‘지뢰밭’ 그리고 단편 ‘꾀꼬리편지’, ‘춘심이 발동하여’와 ‘드라마게임’을 담았습니다. 다섯편 가운데 ‘남이섬’, ‘지뢰밭’ 그리고 ‘드라마게임’은 6.25동란의 지워지지 상처를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비극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었는지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는 작가의 응어리가 느껴집니다. 전쟁이 끝난 지 반백년이 가까워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고 있으니 전쟁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 않으신 것도 있고, 아무래도 기억에 남기기 싫어 억지로 잊으려하시는 것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의 기억에 아픔을 각인시켜 다시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소망하고 계신거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쟁이라고 해서 서로 죽이는 일만 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고지전>에서도 다루었습니다만, 막상 부딪혔을 때 살수(殺手)를 펼쳐내기란 그리 쉽지가 않았던 모양이고, 무언가 마음에 걸려 살려주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인데, 작가는 <지뢰밭>에서 그런 경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그때의 기억이 단단한 옹이처럼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언젠가 풀려날 기회만 기다리며 살아온 셈인데, 그것이 쉽게 풀려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남이섬>의 주제는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 김덕만씨와 이상호씨 만이 기억하는 여자 ‘나미’의 흔적을 뒤쫓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전쟁 당시의 남이섬 분위기를 알았더라면 몇 년 전 가을에 남이섬을 찾았을 적에 그녀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전쟁 당시 작은 시골마을 안에서도 이념이 다른(이념이 서로 달랐었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사람들이 대립하여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김덕만씨와 이상호씨로 대립되는 두 세력을 남한강의 동쪽과 서북쪽으로 나누고 그 강안에 떠있는 섬은 두 세력이 얽히는 묘한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는 여자 나미는 어느 한편의 손만 들어준 것은 아닌 셈이니 두 세력의 대립자체가 과연 이념의 대립이었는지 회의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꾀꼬리편지>에 마음이 많이 가는 것 같습니다. 길이의 여유때문인지 중장편에서는 대체적으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느슨하게 풀려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단편은 짧은 길이만큼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압축해내지 못하면 다 읽고나서도 미진한 무엇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꾀꼬리편지>는 잘 엮여진 이야기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초헌과 우목 그리고 화자(話者) 사이에서 엮이는 묘한 감정을 실타래가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한 치 흐트러짐 없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목의 물오름과 같은 속수무책의 관능으로 온몸이 뜨겁던 나이에 초헌을 만난 화자가 복사골에 정착하게 되면서 뜨겁던 몸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초헌과 우목으로부터 자연을 배우게 되면서라는 것을 은연중에 전하면서, 우리 또한 자연으로 돌아갈 운명이라는 메시지를 수목장을 통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초헌을 만나 농익은 육신의 갈증을 몰아의 황홀경으로 이끌어갔던 화자로서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만사가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은 초헌의 변화에 마음의 길을 잃고 말지만, 우목을 만나면서 그 갈증을 자연을 찾아 풀어내게 되지만 두 사람의 현실적인 거리는 결코 가까워진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화자(話者)처럼 저 역시 “상수리나무 잎 하나를 새끼손가락 두 마디쯤의 크기로 정교하게 접어놓은(26쪽)” 꾀꼬리편지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꾀꼬리가 편지를 접다니 참 신기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지 작가는 꾀꼬리편지는 거위벌레 암컷이 낳은 알을 잘 건사하기 위해서 만드는 안식처라는 설명에 그 안식처를 만드는 모습까지도 빼놓지 않는 정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꾀꼬리는 다만 이를 세상에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는 셈이라는 것까지도 말입니다.

꾀꼬리편지를 통해서 작가는 “세상의 온갖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인데 그것이 자연보다 낫다는 자신이 없으면 아예 손을 대지 말 일.(26쪽)”이라고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

우목의 유골을 생전에 소망하던 복사골 백합나무에 뿌리면서 화자(話者)가 얻는 깨달음은... “드디어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늙음과 죽음이 모두 없어졌다는 생각조차 없다는 절간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관통하여 하나되기, 그 없음이 바로 죽음이 아니겠는가. 화실이 시위를 벗어나 과녁에 맞는 순간까지가 인생일 터. 화덕을 거쳐 기계공이로 빻은 뼛가루가 이렇게 산 사람의 손가락을 통해 술술 빠져나가 바람으로 물로 사라지는 이 투명한 비움.(37쪽)”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관조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란 생각이 들어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연에 스며드는 삶이 주는 묵직함을 언젠가 느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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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 생각 버리기 연습 1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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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류노스케스님의 책입니다. 금년 2월에 240쇄를 찍은 책이고 보니 인기가 대단한 모양입니다.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책이나 인기몰이를 하는 영화를 제때 읽거나 보는 편이 아닙니다만, <생각버리기 연습>을 읽고 난 느낌은 <?>입니다. 혹시 대한민국 사람들은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들이 엄청 많은가 보다 싶기도 하구요.

어제 아침에 서울대공원 삼림욕장을 걷기 위하여 집을 나서면서 들고 간 책이 돌아올 때는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탓인지 책에 몰입하지 못하고 눈으로 건성 행간을 건너 뛴 탓은 아닐까 싶어 그래도 눈에 집혀 표시해두었던 부분들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원인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의 잡음이 현실감각에 완전히 승리할 때, 사람들은 둔해진다.(23쪽)” 그럴까요? 외부로부터 자극이 들어오게 되면 과거의 경험을 통하여 이미 입력이 되어 있는 기억과 대조하여 그 자극이 무엇인지 알아내려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따라서 생각의 잡음이 외부의 자극정보를 지워버린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 아닐까요? 오히려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하여 생각이 없음, 즉 무관심해지기 때문에 사람이 둔해지는 것이겠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나이가 들면서 자꾸 달아나려는 기억과 생각들을 붙들어 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기 이를 데 없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일반인이 행하기에 참 어렵겠다 싶습니다. 보통사람들은 분노를 발산하거나 억압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게 됩니다. 분노를 억압하는 것은 분명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분노를 불평을 통하여 발산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저자의 말대로 습관성 불평분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렇다고 저자의 말대로 응시라고 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처리하려면 마음수련이 꽤나 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보통사람이 응시라는 방식으로 분노를 잠재우려하다가 오히려 기억에 깊이 각인시키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은 기억은 특별합니다. 운동을 비롯한 신체적, 정신적 활동을 하는 동안 분노를 일으켰던 기억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제 경우는 스님께서 청아한 목소리로 읽어주시는 독경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상대의 고통을 들어준다는 대목입니다. “애인이 일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것을 듣고 있다 생각해보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내용이 지루하기 짝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푸념을 늘어놓는 쪽은 그 내용을 알리고 싶다기 보다는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들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86쪽)” 지금 생각해보니 총각 때 소개를 받아 만났던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일하고 있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어 불평을 했던 모양입니다. 결국은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던 것은 그 분은 제가 하는 불평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떻든 스님께서는 불교의 오감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감정이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것 같으면 외부의 정보가 입력되는 문제의 순간에 ‘머릿속 정보처리를 멈추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는 장점은 취할 수 있겠지만, 상대에게 집중하지 못함으로 오해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오감을 통하여 외부로부터의 감각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무언가를 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고 여러 가지 소리를 듣고 느끼기 때문에 생각의 잡음에 방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생각이 흩어지기 때문에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하면 미세하고 소소한 자극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하시지만 대충은 버릴 필요가 있는 자극에까지 반응하는 것은 생각이 여러 갈래로 분산되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할 수 없는 부작용도 생길 것 같습니다.

정리해보면 일본서적들은 대체적으로 가벼운 경향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 말씀에 공감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생각버리기 연습>은요?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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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동시통역사, 기자처럼 뛰고 아나운서처럼 말한다 - 15년 경력 동시통역사가 전하는 생생한 방송통역이야기
이지연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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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동시통역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학회는 말할 것도 없고, 중요한 외국연자를 초청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분들의 말씀을 하나라도 놓치게 될까봐 동시통역을 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 탓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방송, 특히 생방송에서도 외국에서 들어오는 자료화면이나 인터뷰를 동시통역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전공으로 하고 있는 분야의 경우는 발표하시는 분이 말씀하시는 원래의 의미를 느끼려다보니 때로는 동시통역을 이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보니 동시통역에 관한 제 경험도 꽤나 선구적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정부기관에서 일하던 2000년대 초반에 외국에서 초청한 연자의 발표를 당시만 해도 드물게 동시통역으로 참석하신 분들께서 이해하실 수 있게 해드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열린 광우병관련 국제학회에 참석하여 발표했던 제 경험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이해되지 않았던 점을 지금까지 마음 한켠에 묻어두고 있었습니다만, 동시통역을 전문으로 하고 계신 이지연교수의 동시통역에 관한 에세이집 <방송동시통역사, 기자처럼 뛰고 아나운서처럼 말한다>를 읽고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2003년 2월이던가 일본 동경에서 광우병관련 국제심포지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광우병과 관련된 한국정부의 대응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한 발표가 뒷날 PD수첩사건과 관련이 될 줄을 까맣게 몰랐습니다.) 관련된 정부기관들의 자료들을 모아서 정리해 발표자료를 만들어 보냈습니다만, 제가 발표할 시간보다 한 시간 전에 회의장에 도착해달라는 주최측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공식언어가 영어이고 동시통역이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시통역사와 미리 만나 발표할 내용을 체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동시통역사는 제가 준비한 발표원고 내용 뿐 아니라 발표원고에 포함되지 않은 애드립성 발표내용까지 꼼꼼치 체크를 하고 OK사인이 났습니다. 당연히 발표하는 동안 동시통역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우리 기관에서 동시통역을 진행할 때 동시통역사는 이런 절차를 요구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통역은 무난하게 진행되었습니다만(무난하다는 것은 완벽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전준비를 어떻게 하나에 대한 궁금증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다가 이지연교수의 에세이에서 해답을 얻었습니다. 동시통역사들은 통역의뢰를 받는 순간부터 관련분야에 대한 나름대로의 조사를 통하여 사전준비에 들어간다는 말씀인데, 사실은 발표하는 연자와 사전인터뷰를 통하여 사전준비과정에서 미흡했던 부분도 채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일동 한국번역학회장님이 추천사에서도 짚었고 저자 역시 후기에서 “이 책은 방송동시통역의 실천 노하우와 체험담을 통역과 영어 공부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비교적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했다.(267쪽)”고 적은 것처럼, 이 책은 전문학술서라기 보다는 동시통역의 현장을 지켜온 베테랑 동시통역사의 현장경험을 진솔하게 전하고 있는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어 동시통역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9장 귀로듣고 글로 쓰는 번역’편에서 해외취재를 통하여 얻은 인터뷰자료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것을 적고 있는데, 제 경험과 최근 마무리된 모방송제작자의 사례가 비교되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입니다만, KBS의 목요리포트라는 프로그램에서 치매를 주제로 방영한 기획물을 자문한 적이 있습니다. 제작과정의 전반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국내 취재는 물론 미국의 4개 도시를 돌면서 정부기관 대학, 연구소 등을 방문하고 학자는 물론 정책입안자들까지도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터뷰내용의 번역을 전문번역사에게 의뢰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가 프로그램에 참여해온 제가 하게 되었는데, 이지연교수의 말씀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영어권 사람들이라고 해도 귀에 익숙한 표준 발음이 아닌 지방색 짙은 사투리에 개인적인 언어습관까지 들어간 다양한 발음(168쪽)” 탓을 하면서 부족한 제 영어를 변명했습니다만, 들을 수 없어 끝까지 우리말로 옮기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전후상황으로 보아 자료화면에 꼭 넣어야 하는 장면이었는데도 프로그램을 책임맡고 있던 기자는 방송은 팩트가 중요하기 때문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잘라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아닌 분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전후사정을 감안한 의역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진 것 같습니다.

전화통화를 동시통역하는 상황에 대한 저자의 설명, “상대를 마주하고 대화할 때는 표정이나 손짓, 시선 드의 일명 ‘바디랭귀지’가 추가되지만, 전화통화에서는 순전히 청각언어 외에는 추가정보가 제공되지않아 어려움이 많다.(96쪽)”는 말씀에는, 미국에 공부하러 간 초반에는 사무실에 놓인 전화벨이 울리면 외면했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책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은 동시통역의 현장분위기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과 함께 동시통역과 방송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라고 할만한 것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겉도는 장면이 있었다는 점을 사족으로 붙여둡니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부록보다 앞에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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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기독교 예술사
남성현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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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북스에서 보내주신 남성현교수님의 <고대 기독교 예술사>를 받아들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학자의 손으로 고대 기독교 예술사를 정리한 결과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소개된 기독교예술은 중세 서양예술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고 합니다. 남성현교수님은 고대 기독교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을 위하여 이 책을 기획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책에 담긴 도판의 대부분을 자신이 찍은 자료를 이용하였다고 하니 도판을 준비하기 위하여 쏟은 노력과 정성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기독교 예술이라는 제목을 보고서는 미국 시카고 미술관을 찾았을 적에 보았던 중세유럽의 기독교 미술작품들 기억이 났습니다. 거친 붓질에 검정색과 원색을 주로 사용한 작품들은 미술에 문외한인 제가 보더라도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미술품들과는 비교가 되어 보였습니다.

남교수님은 석관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 고대 기독교 예술이 그리스-로마 문명으로 연결하여 발전하게 되는 과정도 추구하였고, 문학작품과 연계하여 해석하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모두 427쪽에 달하는 자료들을 시기별로 9개의 장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습니다. 제1장에서는 고대 기독교 예술을 개관하면서 부딪히는 기본적인 문제들, 예를 들면, 제작 연대측정의 문제라던가, 복원의 문제, 기독교 예술을 구분하는 방법들을 개괄적으로 다루었습니다. 2장에서는 그리스-로마 문명에 나타나고 있는 기독교 예술의 흔적을 뒤쫓고, 3장에서 5장까지는 2-3세기에 걸쳐서 그리스-로마 문명을 어떻게 차용하여 기독교적인 발전을 해왔는지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6장부터 9장까지는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후의 로마문명의 변화가 기독교예술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고대 기독교 예술의 중요한 소재는 석관이라고 합니다. 석관에 부조형태로 새긴 조각작품을 통하여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아를르 고대 박물관에 남아 있는 석관응 4세기경에 제작되었는데, 출애굽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초기 기독교예술은 장례의식을 모티브로 시작하여 교회예술과 생활예술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2세기 경에 되어서야 회화나 조각작품을 남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상현교수님은 생활용품을 비롯하여 조각작품, 회화, 모자이크 등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 고대기독교 예술품들을 꼼꼼하게 챙겨 그 미학적 요소들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그리스-로마의 문화와 기독교 예술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어, 고대 기독교예술 뿐 아니라 그리스-로마 문화의 예술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4장과 5장에서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나오는 말씀들을 소재로 하여 구성된 작품들을 소개하고 해설하고 있어 성서에 관심을 가진 분들께도 도움이 될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초기 기독교예술이 교회예술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장례공간이었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생각합니다. 육체적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갈망이 기독교예술의 근원적인 동기였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만, 기독교예술만의 특징만은 아닐 듯 합니다. 남교수님께서 그리스-로마 문화와의 관계를 천착한 것은 초기 기독교예술이 이교문화와도 교류가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로마문화로부터 다양한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발전하였다고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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