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3 동문선 현대신서 119
피에르 쌍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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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에는 ‘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오가며 쉽게 만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안타깝게도 프랑스의 평범한 시민들이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탓인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http://blog.yes24.com/document/4460181),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http://blog.yes24.com/document/4636207) 등의 전작들에 비하면 공감의 파워가 다소 떨어진다고 할까요? 

상소는 뛰어난 학자들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평범한 인생들에 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그가 위대한 학자들의 영광을 폄훼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적은 다음 글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대한 지식의 지도 위에서 한 개인의 지식은 하찮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그런 지식 때문에 교만해질 이유가 없겠지요. 반면 설익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해주는 설명은 우리를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당혹감만 더해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자신의 우월감을 나타내고, 당황해하는 우리의 모습을 즐깁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그런 계략을 꿰뚫게 되면, 이번엔 그들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할 것입니다.(9쪽)”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3>에 담긴 내용은 아마도 그의 전작들 <감각적인 프랑스>, <가난한 사람들>, <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사람들>, <공원>, <민감한 프랑스> 등에 담긴 철학들을 정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소박한 사람들이 가지는 미덕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소박함에서 나오는 일련의 태도들, 곧 거만하게 보이지 않는 것, 과도한 주장을 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난폭한 경쟁심을 갖지 않는 것, 삶의 소박한 것들을 기뻐하는 것 등은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을 잊어버리는 태도,’ 흔적을 남기기 않는 태도이다.(25쪽)”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나는 치유자, 나이든 사람들이 찾아오면 길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동네빵집의 여주인, 아마추어 수리공, 그리고 유럽축구를 휘젓는 꿈을 품고 시작하는 길거리축구 등등 소박한 동네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의 글은 한폭의 그림을 떠오르게 합니다. 실내 분위기를 그려내는 글은 마치 정물화를 보는 듯하고 교외의 풍경을 서술하는 글은 한폭의 풍경화를 만나는 느낌이 듭니다.

“연못 위로 솟은 언덕 위에는 사람의 노동이 가해지지 않은 황무지나 방목지가 펼쳐진다. 그곳에서 피우는 불은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켜 준다. 불 그림자 속에서 밤은 점점 길어지고..... 청춘의 뜨거운 피가 넘치는 젊은이들은 불빛 앞에서 포도주 잔을 기울이면서, 포도주란 것이 따뜻한 열기를 주면서도 가볍고(적포도주) 신선하며(백포도주) 젊음을 느끼게 하는(분홍색의 로제포도주) 음료라는 것을 알게 된다.(148쪽)” 뿐만 아니라 그는 정물에 냄새까지도 곁들여 현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주방이 풍기는 냄새는, 어른이 되어 훗날 정서적인 기억들을 떠올릴 때 반드시 따라오는 냄새라는 점이 다르다. 그것은 아침에 갈아 마시는 커피의 향기이며, 다갈색이 될 때까지 자글자글 졸이는 캐러멜의 냄새이고, 튀김 재료를 넣고  튀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요, 럼주를 약간 넣어서 마시는(아이들 때문에 너무 많이 넣으면 안된다) 달콤한 영국식 크림 냄새에다. 포도주를 넣은 소스가 제격인 부르기뇽 쇠고기찜 냄새이다. (151쪽)”

소박한 사람들의 삶에도 빠지지 않는 부부싸움은 슬며시 웃음이 떠오르게 만듭니다. 그것은 다른 동네에서 보는 부부싸움과는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늘 되풀이되는 부부의 낡은 언쟁은 어느덧 닮은꼴이 되어버린 일상적인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서로의 곁에서 살아온 덕분에, 그리고 꼭 뜨거운 열정을 지닌 채 살아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흔들리지 않는 동거생활을 해온 결과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개성이 모두 닳아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완벽하게 닮은꼴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이 마셔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술집의 한귀퉁이에 쓰러져 자는 마을 술꾼에 대한 상소의 지적은 애매한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 읽는 저로서도 뜨끔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뚜르 드 프랑스가 프랑스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를 비롯한 다양한 프랑스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점도 읽을만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우리네 보통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상소처럼 소개하는 글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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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단 하루가 남아있다면 - 삶의 끝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김인선 지음 / 서울문화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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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블로그(http://blog.joinsmsn.com/yang412)에 담고 있는 자료 가운데는 죽음관련 기사, 품위있게 죽기, 장수만세, 우아하게 늙어가기 등, 죽음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장수만세나 우아하게 늙어가기도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길에 관한 이야기일 터입니다.

품위있게 죽기는 안락사 혹은 존엄사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적극적인 개념의 안락사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만, 의미없는 연명을 위한 의학적 조치에도 반대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를 위하는 조처라기보다는 오히려 편안한 죽음을 방해하는 조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이유로 죽음을 기다리는 분의 의학적 조처를 포함한 제반편의를 제공하는 호스피스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호스피스란 환자가 마지막을 편하게 맞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활동을 하는 호스피스봉사자는 환자와 끝까지 동행하는 사람일 뿐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죽음을 앞당기거나 고통을 덜어주는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출판사의 이벤트를 통하여 읽게 된 <내게 단 하루가 남아있다면>은 독일 베를린에서 ‘사단법인 동행-이종문화 간의 호스피스’를 이끌고 있는 김인선 대표가 오랫동안 호스피스활동해오면서 경험한 다양한 죽음들 가운데 대표적 사례들을 정리하여 호스피스의 정신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에세이집입니다. 1부에서 4부까지는 삶의 마지막이 이랬으면 아름다울 것 같은 분들의 이야기를 ‘1부 집착을 버린 마지막’, ‘2부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는 마지막’, ‘3부 가족과 함께하는 마지막’, ‘4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마지막’ 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왔던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고 한다면, 한 사람의 죽음은 죽은 사람만의 문제일 수는 없습니다. 가끔은 죽은 사람이나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입장을 제대로 생각해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평화로운 마음으로 마지막을 잘 마무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또는 그녀를 보내고 남은 사람들은 이별의 아픔 대신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 더 가지게 된다.(105쪽)”

책의 뒷장에는 “내게 단 하루가 남아있다면, 당신이 바라는 ‘생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인가요?‘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인디언 속담 가운데 제 눈길을 끈 구절을 소개합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만 울고 세상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으니, 내가 죽었을 때는 나만 미소 짓고 세상 사람들이 슬퍼하는 삶을 살아라.(119쪽)” 하지만 그 또한 집찰이 될 수도 있겠다싶어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저자는 죽음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의미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오히려 거꾸로 삶에 집작하지 않으면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살면서 앞만 보고 정신없이 내닫지 말고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정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합니다.

톨스토이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서 인용한 구절을 적어봅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삶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리라. 30분 후에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삶을 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하루 일과와 같다. 생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를 가장 자유롭게 하는 것은 죽음이다. 사람의 행동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러니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239쪽)” 일찍부터 웰빙보다 웰다잉이 더 중요하든 점을 지적한 셈입니다.

저자는 ‘아름다운 이별을 돕고 싶다’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얼마전 방영한 드라마 <49일>을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익숙한 노래말, 드라마, 책의 한구절을 인용하여 삶과 죽음 그리고 호스피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도 큰 관심을 가지고 보던 드라마였기 때문에 저자의 인용이 눈길을 끌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주인공이 다시 찾은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깨닫게된다는 결말이 놀라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의 5부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죽음을 앞둔 분듥을 위해 호스피스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 “우리들 모두 평생 살 것처럼 여기지만 언젠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세상을 떠날 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237쪽)” 그리고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는 죽음 자체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254쪽)“고 당부하고 있기도 합니다.

참 아름다운 표지사진 이야기를 빼놓을 뻔 했습니다. 평화로운 모습의 촛불을 감싸고 있는 예쁜 손은 아마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를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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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의학 윤리 - 책임 원칙의 실천
한스 요나스 지음, 이유택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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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학에서 앞서 발전해온 현대의학을 따라잡기 위하여 의료계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BT분야는 최근에 시작된 분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 분야 연구를 선도하는 그룹에 들어있습니다.

그동안 BT분야가 중요하다고 변죽만 울리던 정부는 2012년도에 줄기세포연구에 1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정부예산을 들여다보면 교육과학기술부는 줄기세포 실용화기반기술(원천기술) 개발에, 보건복지부는 연구성과를 실용화할 수 있는 임상연구에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교육과학기술부는 배아․역분화줄기세포연구에, 보건복지부는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관심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그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요? 부처에 속하는 전공분야의 관점이 작용한 것일까요?

황우석교수 사건 때도 논의가 된 바가 있습니다만,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피할 수 없는 논쟁거리는 ‘윤리문제’일 것입니다. 인간 배아의 윤리적 위치는 의학윤리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역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사람 배아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요 쟁점은 뒤에서 다시 논하기로 하고 원론적인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책임원칙이라는 철학적 명제에 천착하고 있는 독일의 생태철학자 한스 요나스교수님은 ‘책임원칙의 실천’이라는 부제를 단 <기술 의학 윤리>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 특히 의학분야에서 책임윤리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술 의학 윤리>를 통하여 의학의 진보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인체실험문제, 의술에서의 인간적 책임문제, 우생학으로부터 인간복제, 유전공학에 수반되는 윤리적 문제, 장기이식에 따른 뇌사의 정의와 관련하여 죽음을 실용적으로 재정하는 문제, 죽음에 대한 환자권리의 한계에 관한 문제 등등 의료현장에서 부딪힐 수 있는 다양한 이슈에서의 윤리적 판단을 논하고 있습니다.

의학은 환경지배에 여념이 없는 기술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환자의 안녕을 고려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보았지만, 과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된 최근의 의학 분야의 기술발전을 보면서, ‘책임원칙’의 중요성을 제기하게 된 요나스교수님의 철학적 배경은 서문에 있는 다음 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첨단의 야심찬 목표와 수단으로 무장한 의학의 ‘조작가능성’은 특히 인간의 현존재의 시작과 끝, 즉 우리의 탄생과 죽음과 관련하여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의미인 ‘인간적 선’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삶과 죽음의 의미, 인격적 존엄성, 인간상의 불가침성에 대한 물음 등을 불러일으킨다.”

요나스교수님은 ‘현대 기술은 왜 철학의 대상인가?’하는 원론적 물음으로 책임원칙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영위하는 삶의 핵심일 뿐 아니라 삶을 위협하는 문제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은 철학의 문제가 된다.’고 하였고, 또한 현대기술이 윤리적 사유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이유로 결과의 모호성, 적용의 강제성, 시공간적 광역성, 인간중심주의의 파괴, 그리고 형이상학적물음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습니다.

마지막 이유로 든 형이상학적물음은 전통윤리학이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인류가 과연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가?‘하는 것으로 기술의 묵시론적 잠재력, 즉 인류존속의 위협과 인류의 유전적 불가침성의 훼손, 그리고 그것의 임의변경과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는 보다 고차적인 생존 조건의 파괴를 가능케 하는 기술의 능력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만을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의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시각을 가지는 분이 의외로 많다는데 놀라곤 합니다. 사실 서양의학으로부터 발전해온 현대의학은 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의 과학분야 뿐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등 인문학 분야의 발전과 긴밀한 연관을 맺어왔습니다. 이들 분야에서 발전된 방법론을 차용하고, 이 분야에서 새롭게 발견된 이론들 응용하여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발전시켜온 것입니다. 따라서 “의학은 일종의 과학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이러한 과학에 근거한 기술, 즉 의술을 베푼다.”라고 한 요나스교수님의 명쾌한 정리는 과학자들의 선입견을 풀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요나스교수님은 전통의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의학기술발전의 대표적 사례로 배아복제와 유전자공학을 꼽았습니다. 이들 기술이 의학의 윤리적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통제될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은가 하는 문제가 있겠습니다. 언젠가 사람에서도 라이거와 같은 존재가 태어난 사례를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라이거는 수사자와 암라이온 사이에 태어난 잡종입니다. 질문의 요지는 인간도 영장류를 비롯한 다른 종의 동물 사이에서 교잡종이 탄생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제가 과문한 탓인지 아직까지 들어본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버트 랭카스터와 바바라 카레라가 주연한 돈 테일러감독의 영화 <닥터 모로의 DNA(1977년작)>을 통해서 공상과학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됩니다. 영화에서는 노벨상을 수상한 유전학자인 모로박사가 동물에 인간의 유전자를 주입시켜 반인반수의 생물체를 탄생시키지만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기술수준을 정교하게 가다듬지 못한 탓에 불안정한 유전자를 유지하기 위하여 특별히 제조한 약물을 복용시키고, 또 동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야성을 복종시키기 위하여 몸에 전자칩을 심어서 고통을 주는 것으로 복종시키지만 때로는 동물적 야성을 드러내는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특정 기술은 완성단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실패가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의학기술은 개발단계에서부터 심도있는 윤리적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배아줄기세포연구는 성체줄기세포연구와는 달리 풀어야 할 명제가 적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배아의 윤리적 위치에 관한 논쟁은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닐 것이고 배아줄기세포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분화능력으로 인한 기형종발생 가능성 역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이미 분화의 방향이 결정된 것으로 배아줄기세포가 안고 있는 윤리적, 의학적 문제점들을 피해갈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대안이 없는 경우에는 해당 기술이 가지는 위험성과 이익을 비교하여 채택여부를 결정할 수 있겠습니다만, 대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제를 안고 있는 방법을 추진하는 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요나스 교수님은 <기술 의학 윤리>를 통하여 현대의학의 발전에 따라 의료현장에서 고려해야 할 다양한 윤리적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책임원칙의 실천”이라는 명제로 풀어내고 있어 같은 고민을 하는 의료인이라면 도움을 얻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나스 교수님이 중요하게 다룬 뇌사를 포함한 죽음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에 인용하여 논의하게 될 것 같아 미루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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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1-10-1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포르시안에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댓글 달아주신 한 분께 이 책을 드립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2039
 
다윈의 개 - 진화론을 설명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이야기
엠마 타운센드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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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를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읽은 인연이 리뷰어 선정에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유별난 애완동물 관찰기”라는 광고카피를 내세웠습니다만, 오히려 ‘진화론을 설명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이야기’라는 설명이 오히려 잘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다윈하면 갈라파고스제도를 떠올릴 만큼 비글호를 타고 나선 탐사현장에서 진화론의 틀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윈의 개>에서는 다윈이 진화론을 세우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친 연구활동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영감을 얻었는지를 뒤쫓고 있습니다.

저자 엠마 타운센트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 담긴 내용보다는 다윈이 대부분의 당시 사람들이 믿고 있던 사물의 천지창조설을 뒤엎는 <진화론>을 세우는 과정을 그의 일상과 그가 주고받은 편지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다윈의 개인자료를 비롯한 다양한 사료를 두루 섭렵람 다윈학(?)의 전문가이기에 가능한 저술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윈의 개>라고 붙인 책의 제목을 보니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토머스 헨리 헉슬리가 생각이 납니다. 그만큼 다윈이 개를 좋아했다는 증거일 듯합니다. 저자 역시 다윈의 못말리는 개사랑이 가문의 전통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밝히는 것으로부터 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개인가 하는 점은 다윈이 진화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개라는 동물이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고 사람과 아주 친숙한 동물이라는 점을 잘 활용하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윈이 진화론을 세우는데 기여한 것은 비글호를 타고서 갈라파고스 제도를 비롯한 남아메리카 지역을 조사한 결과가 핵심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당시 조사과정에서 획득한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각각 새의 분류작업은 존 굴드가 거대한 뼈의 분류작업은 리처드 오언에 맡아 진행하였고, 특히 굴드는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가져온 다양한 모습의 새들이 모두 피리새종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를 바탕으로 환경에 따라서 진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진화론의 꼬투리를 붙잡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그 화석이 발견됨으로써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리너구리가 조류와 포유동물의 중간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점을 중심으로 같이 살고 있는 생물에서 변화가 일어나 다른 종으로 발전한다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만, 다윈이 진화론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 것은 지질학의 대가 찰스 라이엘 박사와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 목사였다고 합니다. 지질학 연구성과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억겁의 세월을 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진화는 그 억겁의 시간을 통하여 누적되어 왔을 것이라는 개념을 세울 수 있었으며, 맬더스의 인구론에서는 인구의 증가는 제한된 자원의 분배를 어렵게 할 것이라는 인구론의 개념은 더 우수한 자질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개념을 세우는데 기여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개육종 전문가인 존 하워드 골튼과의 교류에서 얻은 육종기술도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합니다. 당시만해도 유전자는 물론이고 유전학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우수한 품종의 동물을 만드는 기술로 육종학이 각광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육종의 결과물인 새로운 품종이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흔히 다윈을 과학자라기 보다는 박물학자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것은 당시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수행하던 학자들과는 다른 형태의 연구를 수행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종의 기원>의 3분의 2는 히말라야 산맥으로부터 뉴질랜드 숲에 이르기까지 지구 곳곳에서 수집한 진화과정의 증거들을 토대로 과학계의 반박을 해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윈은 스스로도 비글호를 타고 탐사에 나서기도 했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인적교류를 통하여 다양한 정보들을 교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오랜 기간동안 꼼꼼히 정리한 끝에 진화론이라는 당시로서는 경천동지할 이론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윈이 만년에 했다는 “내가 읽고 요약한 수많은 책과 학술지, 보고서를 보니 나의 부지런함이 감탄스러울 따름이다.(74쪽)”라는 말이 마음에 충격으로 남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마음에 새길 점은 <진화론>을 세상에 내놓는 과정입니다. 1837년 7월 새 노트에 연구결과를 기록하기 시작하여 <진화론>의 초고가 완성된 것은 1842년, 그리고 초판본이 세상에 나온 것이 1859년말이니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꾸준하게 자신이 세운 가설을 가다듬어 나갔고, 그 과정에는 세상에서 보일 반박을 가정하고 치밀하게 답을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곧바로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 요즈음의 조급한 과학자들이 참고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를 “<종의 기원>은 20년에 걸친 심사숙고와 신중하게 고른 문장으로 창조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과 함께 끝을 맺은 책이었다.(138쪽)”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끝으로 꼭 인용하고 싶은 점은 ‘나는 아직도 인간은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는 낡은 믿음을 지키고 있다네’라고 말한 인스목사와 다윈의 긴밀한 관계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만해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은 인스목사에게 다양한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진화론>에 관한 자신의 책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인스목사는 그 책이 자신의 종교를 바꿔놓지는 못했지만 매우 재미있었다는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네와 나는 서로의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지. 그건 자네의 관대한 인내심과 뚝심 덕분일 거야(169쪽)”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과의 교류는 때로 스스로 세운 논리에 허점은 없는지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사족입니다. 개를 좋아했던 다윈이 개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세웠던 가설들 가운데는 지난 번에 소개해드렸던 스티븐 부디안스키의 <개에 대하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325418>에서 읽은 내용과 다소 거리가 있는 점이 있었습니다만, 저자는 말미에 개에 대한 연구에서 새롭게 드러난 과학적 사실들을 따로 적어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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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가 돈인가 -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박상조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부제를 단 <사람인가 돈인가>는 1998년 장하성교수님이 주도했던 소액주주운동에서 한발 더 나아간 시민운동으로, 기업이 윤리경영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선의를 가진 모든 개인이나 단체가 사회책임투자(SRI)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담고 있습니다. 책을 쓴 박상조박사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기획원, 재무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요처에서 근무한 다음 천주고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고 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세계적인 경제성장이나 전망을 예측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 시대의 문제점을 살피고 그러한 문제점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사회윤리적 측면에서 찾아보고자 함이다. 기업이 잘되면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정치경제학이 만들어 낸 환상에서 벗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우리가 물건을 살 때는 대부분 혹시 문제는 없는지 요모조모 뜯어보고 살펴보고 사지만, 주식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증권회사의 추천을 고려하여 고르거나 혹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종목을 고르더라도 그 회사의 영업활동의 윤리성을 따지기 보다는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나 배당금액의 과소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윤 극대화라는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거래하지 말아야 할 물건과 서비스를 만들어 환경, 가정과 사회에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기업의 비윤리적 경영을 감시하기 위하여  “개인과 단체가 소유한 자산을 운용할 때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고, 주주나 채권자로서 기업문화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가 더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회로 변할 것이다.(36쪽)”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국제표준협회에서 발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지침에 포함되는 6대 핵심주제로는 인권문제, 노동문제, 환경, 공정한 영업관행, 소비자 문제, 공동체의 참여와 발전에 관한 사항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기업풍토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내일신문, 안철수연구소의 사례와 영국의 스콧 베이더 커먼웰스 미국의 릴정밀공작과 그레이스톤 베이커리 등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윤리적 투자 혹은 사회책임투자를 주도하는데 3가지 기본적인 전략을 채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비윤리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회사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지지하는 회사의 주식이나 패권을 투자대상에서 제외한다. 둘째는 사회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에 우선적으로 투자한다. 셋째는 주주로서 투자한 기업의 변화를 유도한다 등입니다.

사회책임투자는 그동안 추진해오던 소액주주운동과 유사한 점도 있지만 접근방식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주주총회에 출석하여 공개적으로 주주로서의 권한으로서 의견을 밝히기 전에 경영진과의 비공식적 협의를 통하여 사전에 의견이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이 방법으로 회사를 설득할 수 없을 때는 주주제안을 하고, 이 또한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 주식을 매각할 뿐 아니라 기업의 문제행위가 심한 경우는 소비자 불매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책임투자 운동을 먼저 시작해온 외국의 사례들을 검토하고 자료들을 정리하다 보니 보고서 형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다소 딱딱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만, 오히려 요약이 잘되어 있어 사회책임투자 운동의 개념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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