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미술관 - 잠든 사유를 깨우는 한 폭의 울림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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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기획한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 전집에서는 표지에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담았습니다. 마그리트의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는 꽤나 당혹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인상과 언어, 사물 사이의 관계를 다룬 작품과 사물의 미묘한 부분을 뒤틀어 표현한 작품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초현실주의 화가로 분류는 하지만 살바도르 달리나 호안 미로 등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초현실주의 화가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생각의 미술관>은 박홍순 작가의 작품입니다. 박홍순 작가는 글쓰기와 강연을 통해 사람들을 미술과 인문학으로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앞만 보고 전력 질주하느라 성찰의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고전과 미술 등을 매개로 인문학을 벗 삼을 수 있도록 하는데 애착을 가지고 있다라고 소개됩니다. 그의작품으로는 <생각의 미술관>을 처음 만났는데, 읽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잠든 사유를 깨우는 한 폭의 그림이라는 부제가 달린 것처럼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사실 철학은 살아가는 방도를 알려주는 깨닫게 만들어주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철학은 배워서 얻어진다기보다는 철학적으로 생각하다보면 저절로 깨닫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미술작품은 아주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데 있어 훌륭한 안내자라고 합니다. 특히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애초에 화가의 의도가 여기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안성맞춤이라고 했습니다.


<생각의 미술관>에서 저자는 모두 열 점의 마그리트 작품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림, 소설,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작품들을 인용하여 철학적 화두를 이끌어갑니다. 목차에서 보는 것처럼 모두 열 가지 유형의 사람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펼치고 있는데, 1변화를 생각하는 사람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다리>, 2무지를 생각하는 사람에서는 <금지된 재현>, 3기호를 생각하는 사람에서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 4관계를 생각하는 사람에서는 <골콘다>, 5모순을 생각하는 사람에서는 <빛의 지배>, 6개별성을 생각하는 사람에서는 <개인적 가치>, 7욕망을 생각하는 사람에서는 <음울한 마법>, 8비정상을 생각하는 사람에서는 <새를 먹는 소녀>, 9예술을 생각하는 사람에서는 <붉은 모델>, 그리고 10 세계를 생각하는 사람에서는 <꿰뚫린 시간>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각 장은 세 꼭지의 글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꼭지는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철학적 이야기 거리를 가져옵니다. 두 번째 꼭지에서는 해당 주제와 관련된 그림, 영화, 소설 등을 인용하여 이야기 거리에 의미를 더하고 세 번째 꼭지에서는 결론으로 이끌어갑니다. 한마디로 대단한 이야기꾼을 만났구나 싶었습니다.


열 점의 작품들 가운데 <골콘다><꿰뚫린 시간> 등 두 작품만이 본 기억이 있고 나머지 작품들은 이 책을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그리트가 남긴 작품이 얼마나 되는지 찾아볼 수 없었지만 2020년 인사동에 있는 인사 센트럴 뮤지엄에서 열린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에서 회화, 사진, 다큐멘터리 등 총 160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멀티미디어를 통해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다음 대목을 인용하고 있어 남겨놓습니다. “살짝 열린 좁은 문틈으로 깊숙이 원경이 보이는 호흐의 그림에서처럼, 아주 멀리에서 다른 색조를 띠고 스며든 비단빛 같은 질감으로 소악절이 춤을 추는 목가풍 삽화 같은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 속하듯 끼어들었다. () 소악절에서 지성으로 내려 갈 수 없는 의미를 찾고 있었으므로, 가장 내밀한 영혼으로부터 모든 논리적인 장치를 벗겨내고 영혼을 홀로 복도로 보내 음의 모호한 여과기를 통과하게 하면서 얼마나 낮선 도취감을 느꼈던가!” 저자는 이 대목이 네덜란드 화가 피터 데 호흐의 <여인 앞에서 편지를 들고 있는 남자>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유예진이 쓴 <프루스트의 화가들>에서 나오지 않은 대목이라서 찾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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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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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있는 사무실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내놓은 책은 많지 않았습니다만 언젠가 들여다보니 누군가 내놓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도서관 만들기에 동참하는 동료들이 생겨 기뻤습니다. 그들이 내놓은 책들 가운데 처음 읽은 책이 정이현 작가의 <너는 모른다>입니다.


5월의 어느 일요일 오전 10시 강가에 놀러온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 셋이서 강가에 떠밀려온 남성의 사체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변사체가 등장했다고 하니 일단은 범죄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이야기는 2008224일 방배동 서래마을의 한 가정으로 이어집니다. 이 가정은 재혼 가정입니다. 무역업을 한다는 김상호와 대만출신 화교인 진옥영 부부, 부부가 낳은 딸 유지, 그리고 김상호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맏딸 은성과 아들 혜성 등이 이들 가족의 일원입니다. 열한 살인 유지는 바이올린 영재이고, 스무 살인 혜성은 함께 살고 있지만 스물네 살인 대학생인 은성은 학교 앞에 방을 얻어 따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눈발이 흩날리는 이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김상호는 골프장으로 진옥영은 대전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대전이 아니라 대만으로 출국한 것이었습니다, 혜성은 누이 은성이 자살소동을 벌인다해서 은성의 집에 갔다가 여자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유지가 사라진 것입니다.


유지의 실종으로 느슨하게 엮여있던 이들 가족들의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빈틈이 없는 옥영은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는 것과는 달리 전처 미숙은 북받치는 감정을 다스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사소한 일로 시작한 다툼이 격렬하게 펼쳐지곤 했습니다. 김상호는 그런 강미숙이 미치도록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작가의 김상호의 그런 심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밍밍한 기내식을 연이어 세 끼 받아먹고 있는 장거리 비행자가 어마어마하게 달고 맵고 신 맛을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63)”


옛 남자친구를 만나러 대만에 갔던 진옥영은 급히 귀국합니다. 사라진 유지의 행방이 묘연하지만 김상호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탐정을 고용해서 유지의 행적을 뒤쫓습니다. 한편 은성은 철없던 시절 친구들과 작당하여 유지를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진옥영은 결혼 전에 만나던 남자친구 밍과의 관계가 미심쩍은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김상호는 사업과 관련하여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점점 사건을 미궁에 빠트립니다.


김상호가 하는 사업 내용은 후반에 가서야 드러나는데, 우리나라에서 장기이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의 의뢰를 받아서 중국에서 이식 장기를 구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나 중국 모두 장기매매는 불법입니다.


강력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로 흘러가던 유지의 실종사건은 누리망에서 알게 된 사람을 찾아 나섰다가 길이 엇갈리면서 행적이 묘연해졌던 것입니다. 결국 7월에 가서야 유지의 소재가 밝혀집니다. 그간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유지가 집을 나선지 이틀 만에 청주와 조치원 사이의 국도변에서 발견되어 응급수술을 받는 등 생명이 오가는 극한의 상태에 빠졌다가 겨우 목숨을 구한 상황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입니다.


가족의 실종이라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들이 가족이 맞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너는 모른다>라는 제목처럼 이들 가족은 서로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고 속내는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어 남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가정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 듯하여 정말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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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리커버)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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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를 관람하기 전에 공부하려고 산 책입니다. 캐나다 출신의 시인이자 미술가인 마크 스트랜드가 쓴 책으로 미술을 공부한 번역가 박상미님이 우리말로 옮겨 소개하였습니다. 미국에서 나온 개정판을 다시 우리말로 옮겼다고 하는데 미술관련 책의 개정판을 우리말로 소개할 정도라면 대단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작품에서 느끼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호퍼의 작품에 관심을 두고 있던 차에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다고 해서 기뻤습니다. 초기구매자들을 위한 관람이 먼저 이루어졌지만,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사태를 빚어 일찍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호퍼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 같습니다. 전시에는 호퍼의 대표작을 모두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린 습작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호퍼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관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비평가들이 낳은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흔히 호퍼의 그림들은 20세기 초 미국인들이 겪은 삶의 변화에서 비롯한 만족감과 불안감을 보여준다고들 하지만 저자는 호퍼의 그림은 현실이 드러내는 모습을 넘어서는 것으로, 어떤 감각이 지배하는 가상공간에 관객을 위치시키기 때문에 그 공간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마치 자신의 과거에서 온 장면처럼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1940년대 저자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세상을 호퍼의 그림 속에서 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립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보고, 오후에는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원계홍 전시회를 관람하였습니다. 서울의 뒷골목을 담은 원계홍의 작품들에서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젊었을 적에 살았던 동네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원계홍 화백의 골목길을 붉은 색 혹은 회색 일변도였는데, 당시 시멘트 벽돌 혹은 붉은 벽돌이 주로 사용하던 건축자재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호퍼의 전시에서는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각에서 그려낸 소묘들이 같이 걸려있었습니다. 소묘들은 아주 세밀하게 그려졌는데 유화작품들은 붓질이 상당히 거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트랜드는 호퍼의 그림은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조심스럽게 꼼꼼하게 계획된 것(59)’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반면 원계홍 화백의 작품들은 붓질이 아주 섬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시립미술관 전시에서는 다양한 책들에서 이미 만나보았던 호퍼의 대표적인 그림들 가운데 빠진 것들이 있는가 하면 이번에 처음 만난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빈방의 빛>에서는 모두 30점의 호퍼의 작품들을 싣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빈방의 빛>에서 다룬 작품들의 설명을 읽다보면 저자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호퍼의 작품들을 보면 자연광을 최대한 잘 살리고 있는데 이런 점에 대하여 스트랜드는 호퍼의 빛은 이상하게도 공기를 채우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대신 그의 빛은 벽이나 물건에 달라붙어 있는 듯하다. 마치 그곳에서 조심스럽게 잉태되어 고른 색자로 우러나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58)’


작가는 절제된 언어로 초현실적인 인상의 시를 써왔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언어로 인상을 그려내는 그의 시는 종종 호퍼의 그림과 비교되어 왔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호퍼의- 빛에 관하여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런 느낌이 완연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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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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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늙어가기는 제가 쥐고 있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노화와 죽음은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요? 즐기려면 일단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제일이지요.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도 늙어감을 배우기 위하여 읽었습니다.


초판 서문을 보면 저자 역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문제를 곰곰이 따지며 생각해보려는 성향 덕에, 또 아마 좋은 연습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인간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무얼 뜻하는지 이 글에서 밝혀보려 한다라고 운을 떼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증과학이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런 생각입니다.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 일반이라는 보편적 문제에 지성이 등을 돌리는 시대에, 나는 살아본 구체적 경험(’levécu)만을 철두철미하게 고집했다.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근접하게나마 충실하게 그리려는 노력은 성찰이라는 방법으로만 감당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여기에 주의 깊은 관찰과 공감 능력이 덧붙여져야 한다. 그러나 과학이 요구하는 엄밀함, 심지어 철저하게 완벽한 논리를 기대하는 태도는 이 시도에서 포기될 수밖에 없다.(7)”


목차를 보면 살아있음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 ‘낯설어 보이는 자기 자신’, ‘타인의 시선’, ‘더는 알 수 없는 세상’, ‘죽어가며 살아가기5개의 제목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55살이 될 무렵 초판을 냈던 것 같습니다. 살아온 나날이 덧없이 흘러간 것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이 느껴지는 첫 번째 글 묶음입니다. 두 번째 글묶음은 그렇게 살아오다보니 문득 자신이 낯설어 보이더라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세 번째 묶음은 늙어가는 내 모습을 남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담았구요. 네 번째 글묶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있구나 하는 인식 혹은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담긴 듯합니다. 그리고 마지막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듦을 감내하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겠지요.


각가의 글묶음에는 A라고 하는 화자가 있습니다. 물론 글묶음마다 화자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덧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첫 번째 글묶음의 화자 A<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입니다. 특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편 되찾은 시간을 화두로 삼았습니다. 마침 민음사에서 새로 번역하여 출간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편을 읽고 있어서 저자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마르셀 프루스트가 루아르에셰르 주 출신이고 그곳에서는 프뤼(Pruh)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늙어감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40대 무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우아하게 늙어가는 길을 모색했는데 답을 찾아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왔는데,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나이 듦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메리는 늙어감에 대한 저항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어가는 현실에 체념하게 된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긍정적 태도, 품위 있고 불평하지 않는 노년의 두 가지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그 하나 변화와 발전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저 자기기만의 인기 높은 주장대로, ‘젊음과 더불어 젊게 살자!’고 외쳐대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대를 뒤쫓으며 사회의 [노인]파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그 숨 가쁜 행보로부터 자신은 빠져나왔다고 하면서 사회의 파괴를 부정한다. 늙는 것은 아름답고 좋은 일이다. 젊었을 때는 토론에 끼어 말을 거들었을 뿐이지만, 늙은 지금은 내 말이 진리다. 이미 오래전에 경제적으로 아무 어려움이 없게 노후를 준비해두었다. 그러니 오 세상이여, 나를 이대로 내버려다오. 노인은 아무것도 아닌 평화를 이룩해준 사회에 만족했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잡는데 분명 도움이 될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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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철학자들의 죽음 수업 -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메이트북스 클래식 12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외 지음, 강현규 엮음, 안해린 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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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외면함으로써 애써 죽음을 멀리하려고 합니다. 저는 최근에 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처음 암이 진단되었을 때는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떠올렸습니다.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도 손에 잡히는 무엇이 없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위대한 철학자들의 죽음 수업>을 읽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죽음은 철학에서 다루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많은 철학자들이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내놓았습니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죽음 수업>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 로마의 황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그리고 러시아의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 등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삶을 더욱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담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의 성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위대한 철학자 5인의 저작들 중에서 죽음과 관련된 내용만을 따로 골라냈다고 하였지만 어디에서 인용한 것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또한 원저자와 함께 엮은이와 다섯 명의 옮긴이가 소개되었지만 누가 어느 부분을 맡아 옮겼는지도 분명치가 않습니다.


죽음 수업이 곧 인생수업이라는 기회의도에 따라 5명의 철학자들이 남긴 글을 엮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주제 이외에도 딱히 죽음과 무관한 나이 듦과 삶에 관한 이야기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적을 저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떻든 엮은이가 골라낸 글에 붙여놓은 제목이 안성맞춤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장을 열고 처음 표식을 넣은 대목은 담담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였습니다. ‘다른 이의 삶을 평가할 때 나는 그가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본다. 내 삶의 평가 기준 또한 내가 담담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는지가 될 것이다라고 몽테뉴는 마무리했습니다.


갑작스레 죽음이 닥쳐도 전혀 놀랄 것이 없다는 대목은 충분히 이해되었는데, ‘늙어서 자연스레 죽은 것은 드물고 이례적인 일이다라는 생각은 당대에는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요즈음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 같습니다. 이 대목입니다. “늙어서 죽는 일은 드물다. 독특하고 이례적인 이 죽음은 다른 죽음보다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노사는 죽는 방법 중에 최후이자 극단적인 방법이며 요원하기에 고대하지 않는 죽음음이다. 또한 우리가 넘어갈 수 없는 경계선이며 자연의 법칙이 우리에게 금지한 한계다. 그러나 동시에 노쇠에 이르기까지 사는 것은 자연이 허락한 희귀한 특권이다.(42)” 아마도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인용한 듯한데, 의학적인 것에 대한 몽테뉴의 인식은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맞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우렐리우스의 말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의사들은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눈살을 찌푸리며 내려다 보았고,”라는 대목에 동의하지 못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에 의해 질질 끌려다니지 마라라는 세네카의 말에는 크게 공감합니다. “자기 나이보다 젊은 것처럼 행동하며 기쁨을 얻고 자신을 기만해가며 운명조차 속일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나약함에 굴복하고 유한한 존재임을 깨달은 후, 겁에 질려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기껑 맞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의해 질질 끌려가는 것처럼 말이다.(149)” ‘최고로 만족스러운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자라고 한 키케로의 죽음에 주목합니다. “가장 현명한 자는 최고로 만족스러운 상태로 죽음을 맞고, 가장 어리석은 자는 마지못해 눈을 감는 것인가? 더 멀리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영혼은 더 나은 곳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는 영혼은 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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