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
주명철 지음 / 소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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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프랑스 여행에 대비한 공부 차원에서 읽은 책입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프랑스는 물론 서구 여러 나라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고 알고 있지만 대혁명을 전후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은 오랫동안 프랑스 혁명을 연구해온 주명철교수가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쓴 대중 교양 역사서입니다. 저자는 ‘우리나라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데 왠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면서도, 프랑스 혁명이 서구사회는 물론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프랑스 혁명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사건이지만, 우리에게 사회에 대한 이해와 더 나아가 인간성에 대한 성찰의 기회까지 제공’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의외로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날 무렵까지도 프랑스는 철저한 신분제에 기반한 절대왕정체제가 이어져왔습니다. 중세부터 프랑스 사람들은 왕족을 제외하고는 기도하는 사람, 싸우는 사람, 일하는 사람 등 3가지 신분에 속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성직자, 기사, 그리고 나머지 농부 어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참 관리들도 기사와 같은 부류에 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무관과 문관이 같은 부류로 쳤던 모양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하늘이 내린 왕을 모시는 것이야 말로 타고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던하게 참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계몽주의 사상이 꽃을 피우면서 사람들은 평등하다는 인식이 움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루이 14세 시절부터 이러저러한 전쟁을 벌이는 통에 나라 빚이 늘어만 갔고, 이렇게 빈 돈은 이자에 이자를 쳐서 눈덩이처럼 부풀어만 갔습니다. 1789년 5월 5일 루이 16세는 빚을 해결해볼 요량으로 175년만의 전국 신분회의(우리가 배운 삼부회의는 일본식 표현이라고 합니다)를 개최토록 하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 그리고 평민대표인 제3신분의 모여진 의견이 각각 1표씩으로 계산하던 것을 신분회의 참석자 각각의 표로 주권을 행사하자는 요구가 나왔던 것입니다. 즉 전국신분회의가 의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루이 16세는 빚을 해결하기 위하여 모은 신분회의를 결국은 용병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탄압하려 들었다가 실패하면서 사태가 꼬여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왕이 상황을 오판하여 대중의 뜻이 반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적극적인 저항에 나섰습니다.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고 시내에 병력을 배치하자 시민들은 무장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상황이 꼬여가면서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전면에 나서면서 상황은 악화되었고 결국 총과 대포로 무장을 하고 대치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총격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혁명에 성공한 다음에도 사태는 쉬이 수습되지 않고 꼬여만 갔고, 혁명세력끼리 세력이 나뉘어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에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성공의 과실을 다투기 시작한 것입니다.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이나 혁명 후의 처리과정을 보면 아군이 아니면 처형하는 식으로 악순환이 이루어지다보니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희생된 인명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던가 봅니다.

1789년에 시작된 혁명은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트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혁명 후 들어선 공화정부를 무너뜨릴 때까지 10여년의 기간을 이릅니다. 결국 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렸지만 잠시잠깐의 공화정을 거쳐서 황제정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읽다보니 우리나라의 제1공화국의 독재정치를 무너뜨린 4.19혁명의 마무리 과정이나 혁명세력들이 5.16 쿠데타에 의하여 무너지는 과정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역사는 반복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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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대하여
윌 듀런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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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늙어가기’를 화두로 잡고 있는 탓에 <노년에 대하여>라는 제목만 보고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에 보니 <Fallen Leaves>라는 원제목을 번역하면서 <노년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붙인 듯합니다. 키케로의 동명의 책에서 따온 것인지 아니면 원제목에 우리말 제목의 의미가 담겨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원고는 1981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30여년이 지난 다음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쓸 때의 계획은 ‘다양한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내놓은 뒤 거기서 가지를 뻗어 현대(20세기) 문학과 철학을 훑어보자는 것(11쪽)’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유에서 <노년에 대하여>라는 우리말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초고는 1967년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엮은이는 그의 초고를 ‘우리 인생의 시작’으로 시작하여, ‘청춘, 중년, 노년, 죽음 등에 대하여’의 순서로 잇고, ‘우리의 영혼, 우리의 신’을 거쳐 다시 ‘종교, 재림, 종교와 도덕, 도덕, 인종, 여성, 성, 전쟁, 베트남, 정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예술, 과학, 교육 등에 대하여’로 연결되며, 역사의 통찰로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문명사학과 철학을 전공한 저자의 사유의 방향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내용을 고려하면 우리말 제목이 더욱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자는 탄생에서 출발하여 청춘, 중년, 노년을 거쳐 죽음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하여 영혼과 신, 그리고 종교로 사유를 이어갑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헛되더라도 인간의 존재를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애써보자’라는 취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순간부터, 우리가 묶여 있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리고 인생의 여러 단계, 그러니까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를 통과하면서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종교, 예술의 중요한 철학적 문제를 마주 바라보고 함께 걸으며 지적인 세계를 한 바퀴 돌아보자(21쪽)’라고 권유합니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카이사르처럼 ‘Jam satis vixi(이미 충분히 살았다)’라고 외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자손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 줄 의무가 있다’(63쪽)라는 대목은 깊이 새겨둘 이유가 충분합니다. 특히 기득권을 지키려 추한 모습을 보이는 노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공감되는 바가 있습니다. ‘교회의 이상이 버림받은 것은 그 이상이 스스로 자기를 버렸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수의 비길 데 없는 윤리 위에, 사도 바울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했지만 그리스도 본인은 잘 모르는 엄청난 교리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를 덧씌웠다. (…) 고위 성직자들은 모든 공격에서 안전한 무오류의 권위를 얻으려는 욕망에 휘둘려 그 윤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95쪽)’

다만 여성에 관한 그의 생각은 요즈음에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머니는 생명에 의미가 있는지 의심을 품지 않는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사명을 다하고 있으며 그 사명이 자신을 풍족하게 채워 주고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점점 늘어가는 가족을 한자리에 모으고 말없이 자부심과 행복을 느낀다. 그들이 바로 자신의 몸과 영혼이 낳은 열매이기 때문이다.(130쪽)’

요즈음 우리사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저출산과 관련한 해법도 읽을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나라면 부모 노릇을 권리가 아닌 특권으로 만들겠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식을 낳기에 접합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지도 않은 채 무작정 아이를 낳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런 시험을 통과한 부모들에게 정부는 합법적인 결혼생활에서 첫째와 둘째를 낳은 뒤 18년 동안 연금이나 면세혜택을 주어야 한다.(254쪽)’라고 답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부부에게 세금이나 연금 등에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일정 연령부터 결혼을 하지 않는 남녀에게는 독신세를 물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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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받지 못한 사람, 마네 예술가의 삶과 진실 5
루이 피에라르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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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도 흐름 같은 것이 있는 듯합니다. 최근에는 인상주의 화파에 관한 책들을 읽을 기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해받지 못한 사람, 마네>도 그런 흐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에두아르 인상주의 화가들의 무리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이전, 그러니까 인상주의 화파가 태동하게 된 토양이 되었던 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받지 못한 사람, 마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미학적 감상에 충실하고, 전기문학 자체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서구 유럽의 전기물을 선별해 소개하는 글항아리의 「예술가의 삶과 진실」 시리즈의 하나입니다.

사실 에두아르 마네에 대해서는 그가 파리의 유복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의 작품의 일부와 화풍을 아는 정도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시절 마르셀 푸르스트의 아버지 앙토냉 프루스트와 절친이었다는 사실이나 아버지를 따라서 법률을 공부하기를 바랐던 부모와는 달리 예술가가 되겠다고 하여 부모를 실망시킨 끝에 견습선원이 되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떠나기도 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열대지방으로의 여행은 그의 의지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열대지방의 풍광은 그의 예술적 감각에 진하게 녹아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마네를 법률가로 만들려던 아버지도 결국 아들이 예술가의 길을 걷도록 지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단 저명한 화가로부터 교습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서 말입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것은 양의 동서가 같은 것 같습니다.

역사적 주제를 다루던 화가 쿠튀르의 화실에서 미술의 기본을 배우기는 했지만 모델을 자연스럽게 연출한다거나 빛을 다루는 방법 등에서 기존의 방법에 동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뭐든지 새로움을 시작하는 사람은 기존 사람과는 무언가 달라도 한참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쿠튀르는 ‘좋아, 자네가 새로운 화파의 두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어디 가서든 세워보지 그래(38쪽)’라고 했다는데, 쿠튀르는 번화가에 돗자리를 깔아도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초기작품인 <부모의 초상>이나 <압생트 술꾼>을 그린 초창기에는 심각한 비난을 받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1863년에 살롱에 출품했던 <풀밭의 점심>은 엄격한 비평가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마네에 대한 당시 평단의 시각을 왜곡된 채로 굳히는 계기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녹음이 짙은 숲속의 공터에 편 점심식사 자리에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와 함께 한 나체의 여성은 밝게 표현되어 강하게 대조되었기 때문에 더욱 성적인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습니다.

파리의 비평가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고도 남았을 마네였지만, 1865년 관전에 출품한 <올랭피아>는 불에 기름을 붓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미혼의 여자대통령의 얼굴과 합성한 그림을 국회에 전시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던 건에서 사용되었던 원본 그림이 바로 마네의 <올랭피아>였습니다. 작가 폴 드 생 빅토르는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의 일그러진 모습에 역겨워하는 군중은 그를 멸시하듯 압박한다. 이렇게 밑바닥까지 내려간 예술이라면 비난할 가치조차 없다.(65-66쪽)’라고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지만 말입니다.

사실 마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챈 샤를 보들레르, 에밀 졸라, 말라르메 등은 강력한 후원자였다고 합니다. 인상주의 화파의 화가들은 그들끼리의 모여 작품전도 하고는 했지만, 마네는 굳세게 관전과 살롱에 출품하는 차별화된 길을 고집했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외골수가 결국은 빛을 보게 되었는데, 중학시절 절친이던 앙토냉 프루스트가 미술부 장관이 된 것도 일조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 늦었던 것 같습니다.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어냈던 마네는 1883년 왼쪽 다리의 회저가 심해져 사망하였고, 사람들은 그때서야 위대한 화가를 잃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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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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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몇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만, 책을 쓴다는 것은 참 힘든 작업입니다. 우리말로 쓰는 것도 이처럼 어려운데 나이가 들어서 새로 배운 외국어로 책을 쓴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지 싶습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그 어려운 일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이 수필집을 낸 줌파 라히리는 런던에 사는 벵골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로드아일랜드에서 성장하였고, 바너드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하였습니다.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면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르네상스 문화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서른셋이 되던 1999년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을 출간하여 그해 오 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런 저자가 2015년에 이탈리아어로 쓴 수필집이 바로 이 책입니다. 수필은 저자가 이탈리아어를 배워온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외국어로 책을 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점은 책을 읽다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이탈리아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저자가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기간은 무려 20년이라고 합니다. 외국어로 듣고 말하기를 그 나라 사람처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책을 쓸 생각까지 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에는 2개의 단편소설과 21개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이탈리아어 배우기를 호수건너기로 비유를 합니다. 크지 않은 작은 호수임에도 너무 깊을 것이라는 생각에 호수 건너편에 있는 오두막에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추스르려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크지 않은 호수를 건너는 방법은 호수를 가로질러 헤엄치는 방법도 있고,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헤엄치는 방법도 있으며, 수영을 하지 못한다면 호숫가를 따라서 걸어도 될 일입니다. 즉 비유가 딱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거나 저자는 작은 호수 건너기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 배우기를 마치고 다음 단계로 이탈리아에 살아보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게 된 배경에는 박사학위를 받기 위하여, ‘17세기 영국 극작가들에게 미친 이탈리아 건축의 영향’이라는 주제를 붙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해외여행을 하고나서 여행기를 쓰다 보니, 해당국가의 말로 된 자료가 가장 많고 정확하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아니면 번역할 줄 아는 외국어가 없어, 영어로 옮겨진 자료를 통하여 중역하거나 혹은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는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초급정도의 해석능력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탈리아어로 글을 쓸 때 난 내가 침입자, 사기꾼같이 느껴진다(72쪽)’라고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어로 책까지 내게 된 데는 발명, 상상력, 창조성에 실마리를 준다고 믿는 ‘불완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불완전하다고 느낄수록 난 더욱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94쪽)’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내 불완전을 잊기 위해, 삶의 배경으로 숨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다. 어떤 의미에서 글쓰기는 불완전에 바치는 경의다’라고 합니다. 임신 기간을 통하여 사람이 제 몰골을 갖추어가는 것처럼 ‘책은 창작 기간에는 불완전하고 완성되지 않은 어떤 것’이라고 합니다. 임신기간이 끝나면 사람은 태어나게 되는데, 책은 다 씌어지고 나면 죽는다는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자에게는 영어도 외국어일 수밖에 없는데, 커가는 동안 주로 영어를 사용하게 되고, 모국어라 할 벵골어는 많이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일종의 언어적 괴리감 같은 것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이탈리아어라고 하는 제3의 언어를 시작함으로써 안정적인 구조의 언어의 삼각형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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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는 크리스마스처럼 - 위대한 광고의 탄생을 위해 첫걸음을 내딛는 광고인들의 필독서
이구익 지음 / 이담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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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되었습니다만, <광고천재 이태백>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드라마를 통하여 광고일을 하시는 분들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광고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을 하다가 혹은 글을 쓰다가 드라마에서 본 광고인들처럼 참신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가깜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광고와 관련된 책에도 관심이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크리에이티브는 크리스마스처럼>은 광고일을 하시는 이구익님이 쓴 책입니다. 세상이 복잡해지다보니 일을 세분하여 전문화하고 그런 전문가들이 모여 일을 하는 분야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광고 역시 몇 개의 분야로 나누어 일을 맡아 한다고 합니다. 먼저 기획자가 있는데, 광고주의 마케팅 담당자와 소통을 하면서 광고 기획의 방향을 잡고 업무 전반의 매니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광고를 제작하는 부문에서는 메시지를 담당하는 카피라이터와 비주얼을 담당하는 아트 디렉터가 있습니다. 이들을 총괄하는 사람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광고매체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미디어플래너가 있고, 디지털 광고회사에서는 개발자라는 분이 추가되는 듯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무에서 창조되는 경우보다는 꾸준하게 쌓여온 앎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더하거나, 다른 영역에서 이미 하고 있는 것을 끌어다가 새롭게 꾸며서 내놓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광고 역시 세상일의 법칙에서크게 다를 것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에이티브, 즉 창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무엇을 추구하는 일의 특성 때문인 듯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크리에이티브마스'라는 디지털 전문 종합 광고회사를 차렸다고 합니다. 그리에이티브는 예수가 탄생한 크리스마스처럼위대하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역시 기본적으로는 유대교라는 종교의 틀을 바탕으로 박애의 정신을 담아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도록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들에게는 특별한 날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크리스마스를 다양하게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크리에이티브를 크리스마스 기간에 볼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내용으로 이 책을 꾸몄습니다. 특히크리스마스 시즌에 흔히 듣는 음악을 인용하여 광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도 특이합니다. 즉 크리스마스를 축복하듯이 광고를 준비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광고일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광고일을 안내하는 안내서이면서도도 저자 자신의 회사를 홍보하는 그런 책자가 되는 셈일 수도 있습니다.

4부분으로 구성된 내용은 먼저 크리스마스와 크리에이티브의 공통점을 다룬 1장, '크리에이티브는 크리스마스'다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2장 '크리스마스처럼 설레이는 크리에이티브'에서는 광고계약을 수주하고 광고를 준비하는 작업을 크리스마스를 맞는 기독교인의심정이라고 설명합니다. 3장의 '크리스마스의악몽같이 끝없는 크리에이티브'에서는 좋은 광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끊없는 산통을 겪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4장 '크리스마스를 즐기듯 좋은 광고만들기'에서는 해야 할 일이라면 즐기듯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마지막 5장 '크리스마스처럼 화려한 크리에이티브의 기념일'은 좋은 광고를 만들었을 때의 성취감을 설명합니다.

흔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실패를 해보아야 성공하는 법을 제대로 알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목숨을 걸 듯 일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수 있습니다. 광고일 뿐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을 즐기듯 하는 편이 효율면에서도 훨씬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들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고 얻는 만큼 즐길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우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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